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48
한국의 플레이어가 일본의 제3위계 몬스터를 토벌한 소식은 삽시간에 요코하마 시내에 퍼졌다.
도시 내에 있던 사람들은 한국에서 라는 대우를 받는 신서영이 거대한 폭풍을 일으켜서는 규키를 봉인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말도 안 돼. 저게 가능하다고?
아니, 그럼 우리나라 플레이어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저렇게 쉽게 붙잡아놓을 거면서, 그동안 붙잡는 것도 힘들다는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사람들 사이에서는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떠올랐다.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규키를 토벌하는데 어려움이 있던 일본 플레이어들의 발언은 졸지에 신빙성이 떨어지게 되고 말았다.
요코하마에서 제일가는 플레이어 여럿이 힘을 합쳐도 감당이 안 되던 규키를 고작 한 사람이 상대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자연을 자유롭게 다루는 신서영의 신위는 일본인들로 하여금 외경심을 품게 했다.
─플래티나 크로스
그런 상황에서.
폭풍 속에 사로잡혀 있던 규키를 단숨에 집어삼킨 백금색의 섬광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단지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졌을 때에는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규키가 존재를 잃고 스러져가고 있었다.
그걸 본 사람들은 경악에 빠졌다.
마법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그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근거로 상황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배, 백금색 마법! 도대체 누구야! 누가 그런 마법을 사용한 거야!?
혹시 십이신장이 온 거 아니야?
십이신장 중에 이런 마법을 쓰는 플레이어가 있었나?
…뭐? 학생이라고?
거대한 폭풍 그리고 백금색 섬광.
머릿속에 이미지가 선명히 각인된 사람들은 규키를 토벌하는데 참여한 플레이어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결국 그들은 백금색 섬광을 날린 플레이어의 정체를 알아냈다.
한국 아카데미의 학생이란다.
거, 거짓말 치지 마!
이건 날조야! 그럴 리가 없다고!
한국인이…, 그것도 아직 학생인 아이가 규키를 쓰러뜨렸다고? 대체 누가 그걸 믿는다는 거야? 한국 수준이 그 정도였다고?
말도 안 돼…. 우리 야마토(大和) 민족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던 걸 겨우 마법 한 방으로 보내버렸다고?
요, 요코하마 수준이 낮아서 그래! 십이신장이 왔더라면 분명 규키는 상대도 안 됐을 거라고! 맞아! 그리고 최정예 플레이어들은 카구야 님을 보호하러 요코하마를 빠져나간 때였다고!
이후.
국가 간의 교류가 급격히 줄어들고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자국에 대한 자긍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일본은 섬나라였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던 데다 몬스터의 위협을 달고 살아야 했던 그들은 자국의 플레이어들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플레이어는 강하다.
그러한 의식이 배경에 깔려 있던 사람들은 한국 플레이어들의 활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마움을 모르진 않았다.
누가 토벌하면 뭐가 어때서. 결국 저들이 우리를 구해준 거 아닌가?
감사합니다.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헤에, 한국 플레이어들 대단하네. 자기 나라 국민도 아니면서 이렇게 열심히 우리를 구해주다니….
이번에 일본으로 온 한국 애들이 자원해서 인명구조작업에 참여했다면서?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뭐.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은 잊어서는 안 되고!
한국 사람들 너무 좋아요.
맞아. 고마워해야하는 건 당연히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걸 왜 이해 못하는 거지?
충격에 빠진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보다 한국 플레이어들의 활약에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단지 그들이 그동안 표현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그들이 목소리를 모았다.
평소에는 자기의견을 말하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둘 용기를 내어서는 사회에 극단적인 감정을 표출하던 사람들에게 반박했다.
게다가 일본의 플레이어들이 이내 한국의 플레이어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여론은 금세 한국 플레이어들에게 굉장히 우호적으로 다가왔다.
“후…. 걸핏하면 물을 흐리려 하는 사람들이 문제야. 이제는 제발 좀 인정할 건 인정하고,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지 좀 말고, 방구석에서 나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나 해달란 말이야….”
카구야 츠키코.
그녀가 바로 흐름을 바꾼 것이다. 때마침 요코하마에 있었던 그녀는 인명구조작업을 도와주겠다고 말한 한국의 플레이어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던 차였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만큼.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 플레이어들이 내 생각보다 더 뛰어나기는 했어….”
한국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워낙에 뛰어났다.
특히, 일본 플레이어들의 활약이 가려져버릴 정도로.
그러다 보니 자국 플레이어들에게 실망하거나, 한국 플레이어들에게 질투를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자국의 긍지가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카구야는 여론의 물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게 된 것이다.
“아무튼 이번 일로 한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네. 임가을이 으스댈 게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해도…. 그래도 보답은 해줘야지.”
요코하마 역 근처.
타카시마야 백화점 최상층.
가장 안쪽에 있는 집무실을 임시로 자신의 집무실로 만든 카구야는 곧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큼지막한 마석과 스킬석.
규키에게서 나온 것이다.
“흠….”
국제 마나관리기구 규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마석과 스킬석의 소유는 해당 몬스터를 토벌할 때에 참전한 플레이어들에게 있었다.
국제 마나관리기구의 뜻을 따르는 일본 마나관리기구도 당연히 그것을 따라야 했다.
다만 규정의 이상과 현실이 때로는 부합하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다.
만약에 마석과 스킬석의 소유권을 한국 플레이어들에게 양도하게 되면 국가의 격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일본인들의 사기 저하는 물론이고.
어찌 보면 자본의 유출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서영 플레이어가 대처는 참 잘했는데….”
그녀는 손가락으로 마석을 굴리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신서영이 마석과 스킬석의 소유권을 자신에게 넘겨준 것이다.
국제적 분쟁을 만들지 않기 위한 현명한 대처라고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그녀에게 이제 남은 것은 인명구조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는 것뿐이었다.
“그럼 무엇을 주면 될지…. 일단 규키를 토벌한 신서영 플레이어하고 노은하 학생한테는 걸맞은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보상도 현명하게 해야 한다.
카구야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서 그녀는 규키를 쓰러뜨린 노은하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얘가 서현이가 말했던 그 애지? 흠…. 그냥 가볍게 여기고 있었는데 평범한 애는 아니었던 모양이네.”
노은하, 한국의 아카데미 학생.
제3위계, 실질적으로는 제4위계로 추정되는 규키를 토벌한 장본인.
카구야는 스킬석을 굴리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
종평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마라도에서 마지막 미션을 해결한 학생들에게는 이제 도착한 날로부터 닷새 뒤에 오는 배를 타고 돌아가는 일만이 남았다.
숙식은 처음 미션을 완수한 곳에서 제공되었기에, 마라도에서 보내는 닷새는 사실상 자유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파도 잡히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제대로 된 자유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음으로 휘두른다라….”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상황에서.
아카데미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길을 선택했다.
마라도는 그들의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땅이기도 했다.
주변에 풀과 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힘을 가감하는 일이 없이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교관들과 플레이어들도 섬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특별하게 할 일이 없었기에 학생들의 훈련을 도와주기까지 했으니까.
“아, 그러니까 그런 거나 생각할 시간에 몸을 움직이라니까! 왜 자꾸 머리를 쓰려 그래!?”
“너는 입으로 말할 시간에 차라리 머리를 쓸 생각을 하지 그래.”
목민호도 훈련에 나섰다.
평소 근면한 생활이 몸에 밴 그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검을 들고 뒤뜰로 나온 것이다.
그러다 그가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배수빈과 진파랑도 기척을 느끼고는 훈련에 동참했다.
현재 배수빈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광범위를 공격할 수가 있는 마법을 연습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백날 검을 휘둘러보라고! 그런다고 될 것 같아?”
“도와줄 생각이 없으면 그냥 꺼져. 진파랑 너야말로 입씨름이나 하려고 하지 말고.”
“어휴…, 지 생각해서 말해주는데 싸가지가 바가지야, 바가지….”
목민호는 딜러고, 진파랑은 헌터다.
지원하는 부문이 다른 두 사람은 그럼에도 검을 사용한다는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참견을 가하려 했다.
‘머리가 아니라 때로는 마음으로 검을 휘두를 줄도 알아야지. 허허.’
끝내 목민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진파랑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손에 쥔 검으로 눈을 돌리며 전날에 흰 도복을 입은 여인이 건넨 말을 떠올렸다.
여인은 검사였다.
그녀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몬스터를 벤 솜씨는 그녀가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입증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지나가는 듯이 꺼낸 말이 내심 신경이 쓰였다.
‘내가 너한테 가르쳐줄 수 있는 건 임기응변 같은 거야. 너한테 검술을 가르쳐주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니까. 괜히 새로운 검술을 배우려 했다가 이도저도 아닌 결과가 나오는 수도 있어. 왜냐하면 기초적인 부분에서 너는 이미 완성되어 있거든.’
‘흠….’
‘물론, 너는 너무 검에 의존하는 게 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틀린 건 아니지만, 여유가 된다면 마음으로 휘두르는 것도 생각해봐.’
‘마음? 마음으로 휘두르라고?’
‘원래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 법이거든.’
무엇보다 여인의 조언은 목민호도 내심 느끼고 있던 바였다.
그에게 종종 검을 가르쳐주곤 하던 은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검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배운 검을 포기하고 새로운 검을 배울 필요는 없다.
그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정진하라.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노은하 그 녀석은 지만 아는 말만 지껄이고 알려줄 생각을 하려 하지 않으니, 원….”
민호는 지금 이 시간 일본에 있을 노은하를 욕했다.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마라도에 가게 되었을 때, 노은하가 대놓고 깔깔거렸다는 걸.
나중에 기차를 타고 부산항에 가며 노은하가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교관에게 들었을 때에는 얼마나 깨소금이었는지 모른다.
이내 그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검을 휘두르는 연습을 계속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 법이지.”
이른 아침 일어났을 때만 하더라도 모습을 보이지 않던 여인이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민호는 칼집에서 마저 꺼내지 않은 검으로 자신의 검을 막아낸 여인을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그가 당황해 뒤로 물러났다.
검을 칼집에 도로 집어넣은 여인은 그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어제 처음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너는 아직 네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구나.”
여인이 운을 떼었다.
목민호의 표정이 변화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검을 달라는 의미다.
잠시 주저한 목민호가 자신의 검을 그녀에게 건넸다.
여인이 칼집에서 검을 꺼내본다.
그러고는 감탄한다.
“거봐. 날이 하나도 빠지지 않았어. 아무리 관리해도 수명을 다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그렇다는 이야기는 칼날에 덧씌우는 마나가 특별하다는 거겠지.”
“그게 무슨 말인지….”
“검을 쓰는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기프트를 가지고 있다고. 허허.”
30대로 보이는 법한 여인은 마치 노인처럼 끌끌 웃었다.
그녀가 말을 잇는다.
“네 기프트는 내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도 절삭력을 올려주는 거겠지. 이론상으론…, 네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자르지 못하는 건 없겠지. 이래서 재능충이란….”
절삭력을 올려주는 기프트.
민호는 그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그러면서 여인의 설명을 듣는다.
“사람은 누구나 한 명씩 마음속에 검을 품고 있기 마련이야. 마음 속 그 검이 부러지지 않고 단단할수록 확고한 신념에 차 있는 법인데…. 그러니 마음으로 검을 휘두르란 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검을 휘둘러보라는 뜻이다.”
“이건 왜….”
여인은 칼을 빼낸 칼집을 민호에게 던져주었다.
얼떨결에 칼집을 받게 된 민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인은 한결같이 허허 웃기만 할 뿐이었다.
“내려가. 저기 내려가서 싸워라.”
여인이 가리킨 곳에는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목민호는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칼집만으로 몬스터를 토벌하란 게 가당키나 하다는 말인가.
그러자 여인이 한숨을 쉬었다.
“외적으로 보았을 때 네 검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으니까 이제 내적으로 네 검을 단련해보란 뜻이야.”
“그래서 칼집으로 몬스터와 싸우란 말인가요?”
“그래. 네가 벨 수 있다고 믿으면 손에 쥔 것이 칼집이든 지푸라기든 뭐든 벨 수 있거늘…. 축복을 받아 마땅한 재능을 가졌는데, 그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구나.”
“…….”
“아마 네 기프트라면 얼마 안 가서 마나를 덧씌우는 것만으로 몬스터를 쉽게 죽일 수 있게 될 거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베어보는 것도 해보거라.”
“마나를 사용하지 말라고요?”
“네 기프트로 기인하는 힘은 본디 각고의 노력 끝에야 얻을 수 있는 힘이다. 그걸 노력도 없이 사용하면 당장에 효과는 볼 수 있을지라도,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얻는 깨달음은 얻지 못하겠지. 그럼 네 마음속에 검이 바로 설 것 같니? 허허.”
여인은 혀를 끌끌 찼다.
목민호는 뭐라 말을 할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는 별 말을 하지 않고서는 조금 전에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나아갔다.
여인은 그의 뒷모습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허어…. 저놈 참 볼수록 아깝구만. 이미 형(形)이 고정되지 않았더라면 내가 손을 대도 됐을 텐데….”
여인은 한탄했다.
하나는 그가 깨달음을 얻지 못해도 기프트 하나만으로 하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야속한 세상에.
다른 하나는 조금이라도 빨랐다면 가르치는데 보람이 있는 제자를 맞이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에.
하지만 한탄은 잠시에 불과했다.
“서, 서나야…. 대체 어디까지 갈 생각인 거야…?”
“민호하고 수빈이랑 파랑 오빠가 이 근처에 있어. 걔네들이 간 데야! 분명 여기가 제일 좋은 곳일 테니 나만 믿으라니까? 너 나 못 믿어?” “…아냐…, 내가 널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어….”
“그럼 잔말 말고 따라와.”
새로운 배가 마라도에 들어왔다.
여인, 황진희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어디 괜찮은 아이는 없을꼬….”
황진희는 새로 짜장면을 준비하러 가게로 돌아갔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449(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