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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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허억, 헉, 헉…! 빨리 뛰어!”
숨이 가빴다. 은혁은 도중에 숨을 고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기울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달음박질을 계속했다.
가방은 진작 팽개친 지 오래였다.
뒤따라오는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몸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기 위해 짐을 버린 것이다.
“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나도 몰라!”
은혁은 민지의 항의를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나도 알고 싶다고!
모르겠다.
얼마나 더 뛰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뛰어야 하는지.
은혁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그는 숱하게 생각하는 중이었다.
“꺄아아아아─!!”
“프, 플레이어! 플레이어들을 불러!”
“창해 클랜은 뭐하고 있는 거야!”
조금 전 지나쳤던, 저 위에서는 죽음이 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사람들을 구하러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은하와 약속했다.
파티를 이끄는 딜러가 되어 조원들을 지킬 것을.
자신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을.
미안해, 미안해요…!
이를 악물었다.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검을 배우고 마나를 배웠건만.
은혁은 은하로부터 배운 것을 오로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분했다.
“눈 돌리지 마.”
또 다시 들려온 비명에 고개를 돌리려던 그를 붙잡은 것은 민지였다.
“…얼른, 도망 쳐. 우리는 도움이 안 돼.”
“큭…!”
반박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작년, 고블린으로부터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날 이래 힘을 길렀어도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알고 있지만…!
분하다. 더, 더, 더 강해지고 싶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살려달라며 목이 터져라 외치는 쇳소리.
목청을 긁으며 그르렁거리는 몬스터의 소리.
지옥이었다. 점심을 먹을 때만 하더라도 친구들과 뛰놀던 산길은 귀를 막고 싶은 소리로 들끓는 지옥이 되어 있었다.
“뒤돌아보지 마, 뒤돌아보지 마. 뒤돌아보면 절대 안 돼.”
민지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친구들에게 중얼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에게 세뇌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녀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비명이 들릴 때마다 눈물이 흘렀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을 굴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은하가 다독여주지 않았더라면, 친구들이 그녀처럼 공포에 떨었다면 도망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뒤돌아보지 마. 절대로.”
다시금 되뇌었다.
‘너는 애들이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는지 지켜봐줘.’
‘…그거면 돼?’
‘그거면 돼.’
그녀가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마지막에 은하가 건넸던 말 때문이었다.
나는, 도움이 안 돼…!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친구들을 지켜보라 했던 이유를.
그는 민지가 파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억지로 역할을 부여해 정신을 놓지 않도록 한 것이다.
나는, 걸림돌이야. 나만 없었더라면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었을 텐데.
괜히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분하다. 화가 났다.
자존심이 고개를 쳐들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정말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하양아!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해!”
민지는 뜨거워진 머리로 주변을 살폈다. 파티를 이끄는 은혁은 주변을 둘러볼 처지가 아니었다. 제각기 역할을 수행 중인 서나나 하양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파티를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은 민지뿐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순간, 그녀는 그야말로 파티를 조율하는 리더가 된 것이다.
“하, 하아…! 외, 왼쪽은 안 될 것 같아…!”
하양은 전부터 마나 감지가 뛰어났다. 그녀는 마나가 전달하는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하던 일을 의식적으로 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었지만 자신의 역할이 파티의 생사를 가르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머리가 뜨거웠다. 마나가 전달하는 정보는 방대했다.
마치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것 같은 감각.
자칫 정신을 놓았다가는 정보의 호수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필사적으로 정보를 선별했다. 수많은 책 중에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감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려 했다.
“외, 왼쪽이, 뭔가 불길해…!”
그녀의 실력으로는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꺼림칙한 감각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을 뿐.
굳이 말하자면 그게 전부였다.
“…왼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아.”
불확실한 정보를 재확인하는 사람은 서나였다. 아직 마나를 느끼는데 익숙지 않은 그녀는 동물적인 감각에 의지했다.
좌측에서 사냥개들의 숨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사람들의 비명 또한 섞여 있었다.
말하면 안 돼.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는 자신만 간직하면 된다. 구태여 이 끔찍한 소리를 친구들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파티 분위기가 가라앉을 테니까.
그러니 홀로 참는다. 입을 다문다.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린 사람은 서나였다. 민지가 제정신을 찾지 못했더라면, 서나는 이성을 잃고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었다.
“더, 더, 더…! 힘들어도 참아!”
아이들의 체력은 방전된 지 오래였다. 더 이상 뛸 힘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남아 있는 힘마저 쥐어짰다. 발을 멈추었다가는 산 위에서부터 뛰어오는 무리에게 잡힐 테니까.
“왜, 왜…!”
왜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는 거야!
은혁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플레이어를 원망할 때였다.
“앞이야! 조심해!”
하양이 다급하게 외쳤다. 달려가는 방향에서 마나의 편재가 감지된 것이다.
북한산에는 하운드 무리가 흩뿌린 마나가 깔려 있었다. 거기에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마나, 그가 모르는 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플레이어들의 마나까지.
그러니 마나가 편재할 수밖에.
그리고 재수가 없게도,
“”””아….””””
아이들은 눈앞에서 몬스터의 탄생을 목격하고 말았다.
편재된 마나를 헤집고 나오는 하운드. 붉은 눈을 치뜬 사냥개는 먼지를 털어내듯 몸에 묻은 마나를 털어냈다.
그르르르
은혁은 하운드를 마주하는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이렇게 무서웠나?
은하가 해치웠던 하운드는 이 정도로 무서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마주했던 고블린이 더 무섭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은하가 해치웠던 하운드는 코쿤을 넘는 과정에서 힘이 약해진 몬스터였다.
코쿤 내부에서 태어난 하운드와는 달랐다.
눈앞에 있는 녀석이야말로 제7위계의 몬스터였다.
그르르르
하운드는 몸에 두르고 있던 검은 기운을 퍼뜨렸다.
“뭐, 뭐야, 이건…!”
마킹. 사냥개는 한 번 정한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끈질김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안개를 떨쳐내려 애를 썼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녀석은 이미 먹이를 사냥할 준비를 마쳤으니까.
아우우우우우
녀석이 하늘을 향해 긴 목을 뻗었다.
편재된 마나에서 태어난 하운드는 무리에서 두 번째로 서열이 높은 몬스터였다.
크릉
그릉
그르르르
“”아….””
“어, 어떻게….”
서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일대에 흩어져 있던 소리가 하나로 집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
하양 역시 마찬가지. 살을 푹푹 찌르는 감각이 사방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이, 이게 뭐야…!”
민지는 다시금 패닉에 빠졌다.
속속 들어 집결하는 무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입술을 씰룩이며 그르렁거리고, 당장이라도 먹고 싶어 침을 뚝뚝 흘리고, 붉은 눈으로 노려보는 그 모습은.
“어, 어떡해….”
은혁은 일대를 빼곡히 메우는 무리에 압도당했다.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살지 못해서는 아무것도 못했다.
살아야 했다.
아니 살고 싶다.
혼자라도.
나, 나만 도망치면─.
‘─이거 하나만 명심해. 파티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라고. 이 중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그 약속이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켜야 해! 은혁은 산길을 내려오면서 주었던 나뭇가지를 쥐었다.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은혁이 너, 제일 먼저 나가는 발이 뭐야?’
‘나? 그러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때 은하는 뭐라고 했던가.
‘플레이어라도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는 긴장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내가 어떤 발부터 나가는지를 기억하고 있어야 해.’
‘왜?’
‘패닉 상태에서는 발이 꼬이기 마련이니까.’
‘헤에, 그래서 그래서?‘
‘…넌 오른손잡이니까 오른발부터 나가라 그냥.’
‘오케이!’
“오른발, 오른발….”
기억에 따라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뭇가지는 중단으로 쥐고, 언제든 견제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프, 플레이어는! 하양아, 아무 것도 안 느껴져?”
“나, 나도 모르겠어! 그, 그게… 다 나쁜 느낌만 들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먹이를 포기하지 않는 사냥개들이 거리를 좁혔다.
은혁은 조원들을 뒤로 물렸다. 서로를 껴안고 몸을 떠는 아이들은 나무기둥에 몸을 바짝 붙였다.
“대장….”
나, 할 수 있겠지?
‘대장! 근데 나보다 강한 몬스터는 어떻게 상대해야 돼?’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넌 지금 체력이랑 마나를 단련해야 할 때야. 아직 호흡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알고 싶어! 제발! 대장, 알려줘!’
‘…도망치면 되지. 무조건 도망쳐. 죽고 싶은 게 아니면.’
‘그런 거 말고!’
‘하아…, 발을 봐. 웬만한 몬스터는 발을 보면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어.’
‘호오, 몬스터가 어디를 공격할지 예상하는 거구나!’
‘지능적인 몬스터는 발걸음을 속이기도 해. 그럴 때에는 눈을 봐야 해. 눈이랑 발을 같이 보면 좋지만…. 너 둘 다 못할 거 아니야.’
“…눈.”
눈이다. 그는 은하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제일 먼저 나선 하운드를 노려보았다.
“””꺄아악─!!”””
“으랏차!”
어디 실력 좀 보겠다는 듯이 달려든 하운드.
녀석의 눈만을 쳐다보고 있던 은혁은 기합소리를 내지르며 나뭇가지를 내리쳤다.
크르릉
큰 타격은 없었지만, 페이크를 섞어 뛰어든 녀석은 날아온 공격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녀석은 그가 적절하게 대응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해, 해냈다.”
“해냈긴 뭐가 해냈어야!”
민지의 말이 맞았다. 하운드의 위협을 한 번 떨쳐낸 것에 불과했다.
무리는 여전히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 어떡해어떡해어떡해….”
겁을 먹고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하양.
어디를 둘러보아도 살기가 가득했다. 도망칠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큭…!”
은혁이 달려드는 사냥개로부터 선전하고 있었지만,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디 한 번 더 피해보라는 식으로.
한 마리를 피하면 두 마리를 피해보라는 식으로.
녀석들은 언제든 그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이 놀이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먹잇감이 삶을 포기하는 순간, 목을 물어 숨통을 끊어놓는 것 또한 사냥개의 습성이었으므로.
“으으, 씨….”
세 마리를 넘어서면서부터 막아낼 수가 없었다.
은혁 역시 알고 있었다. 이놈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그래도 무릎을 굽히지 않않다. 녀석들이 자신이 포기하는 순간을 노리고 있다면, 역설적으로 포기하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넘어져도 일어난다.
쓰러지고, 일어나고, 일어나고, 일어나서,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딜러니까! …커헉…!”
“은혁아!”
네 마리. 가까스로 두 마리를 피한 그였지만, 한 마리가 옆구리를 들이박았다. 나가떨어지는 방향에서 다른 한 마리가 튀어나와 그를 짓밟았다.
어디 이것도 막아보라는 듯이.
“커, 커헉…!”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네 번째 하운드가 숨통을 눌렀기 때문이다.
사력을 다해 버둥거렸지만 그럴수록 녀석은 힘을 더 가했다.
“은혁아!”
안 돼!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끝이다.
서나는 속으로 침착해지라고 몇 번이나 외쳤다.
누구,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처음 사귄 친구들이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여기서 모두 잃어야 한다니, 그런 건 싫었다.
죽기 싫다. 친구들과.
살고 싶다. 친구들과.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다.
누가, [제] 발.
일찍이 포기했던 자비를 바랐다.
제 [발] [도] 와주세 [요.]
일찍이 체념했던 구원을 바랐다.
[누가] [제발] 도와주세요.단지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누가 제발 [도와주세요.]
단지 잃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마법이란 구체적인 상상력과 마나의 결합으로 세계의 섭리를 건드리는 현상.
그리고 구체적인 상상력이란 바로 필사적인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
[누가,]전기가 튀는 현상이 일어나고,
금색 털이 솟구쳤다.
[누가, 제발 도와주세요─!!]☆
쏴아아 하고.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부는 것은 자연의 순리였다.
무리는 처음, 그렇게 생각했다.
쏴아아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고.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었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벽처럼.
마치 자신들을 가둔 우리처럼.
무리는 그제야 바람에 휩싸였음을 깨달았다.
바람이 거세졌다.
떨어진 나뭇잎이, 들판에 피어 있던 꽃잎이 바람에 흩날렸다. 시야를 차단했다.
피냄새가, 땀냄새가, 그리고 자신들의 냄새가 바람에 뒤섞였다. 후각을 교란시켰다.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돌풍에 뽑혀나갔다.
지반이 흔들리고, 암벽마저 뜯겨나갔다.
“─어?”
오로지 아이들만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들이 기댄 나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미안해. 무서웠지?”
꽃잎과 나뭇잎이 나부끼는 세계.
돌풍이 몰아치는 세계로부터 격리된 아이들은 바람과 함께 나타난 여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죽재킷을 어깨에 걸친 단발머리의 여성.
거센 바람 속에서도 머리칼은 그저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 눈 좀 감고 있을래?”
─차르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펼쳐지는 철부채.
“언니가 이 나쁜 멍멍이들을 혼내줄 테니까.”
신서영.
십이좌의 등장이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