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57
깊은 밤, 마라도.
학생들은 아침에 오는 배를 타고 섬을 떠나기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보초를 서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이 시간에 깨어 있는 학생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다수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서 자리에 눕자마자 뻗었다.
“씨…. 혼자 가기 싫은데….”
최가인은 극소수에 속했다.
마라도에 도착하고 남은 시간 동안 훈련에 매진한 이들과 달리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피로가 쌓였을 리가 없다.
그나마 피로가 있다면 이부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편안하게 잘 수 없다는 것 정도.
“강예슬 얜 왜 다리를 삐어가지고 사람을 고생시키느냔 말이야….”
학생들이 코를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이 오지도 않는다.
잠을 설친 데다가 하필이면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최가인은 한밤중에 혼자서 숙소를 빠져나와 밤길을 걷고 있었다.
“씨….”
낮에는 몰랐는데 밤에는 화장실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강예슬을 데려오지 못하는 대신에 보초를 서고 있는 학생을 데려오려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하필 남학생이었다.
최가인이 아무리 철면피라고 해도 화장실까지 따라와 달라는 소리는 자존심이 상해서 할 수 없었다.
“아무튼 짜증나, 진짜….”
최가인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 혼자 씨부렁거렸다.
그러다 이번 종평에서 일어난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매년 느끼는 거지만 올해 종평도 최악이 따로 없었다.
“은하는 아예 만나지도 못했지…, 태양이하고 친해진 건 좋은데 얘가 가끔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온태양과 파티를 맺은 것은 좋다.
문제는 내내 그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는 것이다.
갤럭시그룹의 직계 최가인이.
유망주를 영입하는 거라고 하지만 성격을 죽이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근데 조아라 그년은 이미 눈치를 깐 것 같단 말이야….”
다행히 무사히 화장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숨을 돌렸다.
그러다 조아라를 떠올리고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온태양의 소꿉친구 조아라.
그녀 역시 유망주였다.
조아라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듣는 온태양과 달리 의심이 많은 성격인 듯했다.
이따끔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솔직히 최가인은 이렇게까지 하며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고하게 다져줄 인재를 영입해야 하는가 싶었다.
“…같아. 진짜…, …같다고.”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겠다.
최가인은 냅다 욕지기를 내뱉었다.
조아라는 걸핏하면 사라져 있고, 온태양은 눈만 뜨면 훈련이었다.
그녀로서는 연일 학생들하고 검을 맞대는 그를 지켜보는 모습이 거의 고역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은하라면 볼거리도 많아 재미라도 있었겠지…. 태양이 개는 피, 땀, 눈물이잖아.”
최가인은 중등아카데미 출신이다. 당연히 어느 정도는 검을 볼 줄을 알았다.
그녀의 눈으로 보았을 때, 온태양 그의 검은 나름 괜찮은 수준이었다.
은하에게는 당연히 미치지 못하고, 목민호나 최은혁과 비교하기는 힘들 테지만.
한편으로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목민호와 최은혁이 이번 종평에서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온태양은 제자리걸음 같건만.
“솔직히 실망이야, 온태양. 은하가 관심을 가져서 좋게 봤는데…. 음, 내 기대보다는 못하는 것 같아. 뭐, 얼굴 하나는 정말 잘생겼지만.”
차은우도 그렇고, 목민호도 그렇고.
이제는 자신을 피하는 두 사람의 이름을 읊조린 최가인은 화장실을 나섰다.
돌아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바로 그때.
“…….”
몬스터다.
최가인은 돌연 절벽을 타고 올라온 몬스터를 발견하고 숨을 죽였다.
자신의 힘으로는 죽이지 못한다.
몬스터의 강함을 차치하고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거의 죽인 몬스터를 죽인 적밖에 없었다.
대신 최대한 기척을 죽여서 놈에게 들키지 않게끔 했다.
다른 길로 가야 해.
조그마한 어린아이를 연상케 하는, 그러면서도 혐오스러운 외견을 지닌 몬스터가 곧 숙소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했다.
최가인은 몬스터가 자신이 왔었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반대편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뛴다.
정신없이 뛴다.
“…악…!”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미끄러져서 갓길로 굴러 떨어졌다.
가까스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멈춘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흙투성이다.
어두워서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느낌상 몇몇 군데가 까진 것 같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일어났다.
다행히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위로 올라가려 했다.
“…어…?”
이내 무언가 존재감을 감지하고.
최가인은 흠칫 놀라 몸을 돌렸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보이는 건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구름에 가린 달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
지면 위로 반쯤 드러난 나무뿌리.
달빛이 비치는 곳이다.
존재감은 거기에서 느껴졌다.
이윽고 뿌리 사이에서 자라 있던, 어쩌면 죽어 있었을 식물의 줄기가 기지개를 펴듯 움직였다.
꽃망울이 펴진다.
“…….”
달빛을 머금은 듯한 꽃이다.
하얗고 푸른 꽃잎은 그 자리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굉장히 이질적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피어난 꽃은 홀려버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어느새 거의 무심결에 꽃을 꺾으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꽃을 꺾자─.
“─앗…!”
손가락 끝에 닿자마자 꽃잎이 전부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뒤로 물러났다.
그때였다.
“…뭐…!?”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빛을 내면서 허공에 흩날린다.
그리고 한데 모인 꽃잎은 그녀가 뒤로 물러나다 앞으로 내민 손목을 휘감았다.
이윽고 꽃잎과 꽃잎을 연결하듯이 줄기가 생겨나더니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조였다.
새하얀 꽃잎이 줄기 위에 달라붙어 은은한 빛을 발했다.
“이, 이게 뭐지…?”
다시 구름이 달을 가린다.
꽃잎은 이제 빛을 잃어선 평범한 팔찌가 되었다.
최가인은 그 팔찌를 어루만졌다.
☆
뜻하지 않은 수확을 얻었다.
디바이스, 토츠카노츠루기.
마나를 흡수하는데 능한 검이다. 상대의 마법을 검신으로 빨아들여 원하는 타이밍에 분출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경우에는 술식을 완전히 빨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그 외에도 검신을 매개로 이어진 마법을 채찍처럼 휘두를 수 있거나, 검신에 닿은 상대에게 독을 주입해 추가 데미지를 입힐 수도 있고….
앞으로는 마나 크래셔도 채찍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네.
부가기능이 꽤나 많았다.
과연 회귀 전에 히키가야 하야토를 로 만드는 데에 일조한 디바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이 검을 재료로 하면 해수 형이 어떤 디바이스를 만들어주려나….”
“너는 틈만 나면 검 타령이니.”
지금까지 모은 재료도 있었다.
은하는 한국에 돌아가는 대로 바로 벽해수에게 새로운 검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서현은 연신 검을 만지는 그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면박을 준 것이다.
은하는 검에서 손을 뗐다.
“알았어. 너한테 신경 쓰면 되지?”
“이제 와서 그런대도 이미 늦었어. 내 타령을 할 거면 여기서가 아니라 한국에 가서 하렴.”
“그럼 네 생각은 한국에서 할 테니 지금은 검 생각만 해도 되지?” “혼날래?”
도쿄, 하네다 공항.
은하를 비롯한 아카데미 학생들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카구야의 배려였다.
그녀는 그때 자신이 공언했던 대로 아카데미 학생들이 일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잊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은하와 신서영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항공편을 배정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여기에 남을 거야?”
“아직 유학생활이 남아 있으니까.”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YH그룹의 직계 최예장은 사건이 터진 직후에 일본을 떠났다고.
또한 시리우스그룹 회장 한도영은 카구야와 무사히 회담을 마치고서 이틀 전에 출국을 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모두 한서현에게 들은 은하는 아침 일찍부터 공항에 나온 그녀에게 물은 것이다.
정말 귀국하지 않아도 괜찮냐고.
“이제 내 의무는 사라졌다고 해도, 시리우스그룹이 여전히 일본 진출을 노리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고…. 내가 그룹에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고등학교까지는 여기에 남아 있을 생각이야.”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한서현이 자신감에 차 있다.
한서현의 얼굴에서 생기를 발견한 은하는 그녀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다.
몇 년 전에 그녀가 타의에 의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면, 이번에 그녀는 자의에 의해 유학을 계속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얼굴에 기운이 넘쳐 보이는 수밖에.
“─그러니까 내년에 봐.”
“그래. 내년에 보자.”
한서현이 내년을 기약한다.
그리 멀지 않다.
은하는 그녀와 약속했다.
언젠가 나중에 보자고 했던 약속은 너무나도 어렴풋한 것에 불과했지만 이번에 그녀와 하는 약속은 너무나 선명했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니.” “뭔데?”
수속 절차는 마쳤다.
남은 건 게이트로 들어가는 것뿐.
두 사람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비행기를 배경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중, 한서현이 뜸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은하 네가 일본에 있는 동안 계속 내 옆에 있었던 것은…. 그건 내가 시리우스그룹의 직계라서 그런 거니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니?”
“…….”
일본에 있는 동안.
은하는 가급적 친구들과 있지 않고 한서현의 전속 플레이어가 되어서 그녀와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친구들의 등살에 못 이겨 친구들과 다 같이 놀기도 했고.
그는 불현듯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대답을 기다린다.
생각해보면 몇 년 전에도 그녀가 물었던 질문이었다.
“그건 당연히 네가 시리우스그룹의 직계라서 그런 거지.”
그때는 어떻게 대답했던가.
장난기가 샘솟는다.
은하는 키득거리며 답했다.
그러자 한서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한 일(一) 자로 다물었다.
이내 은하를 꼬집는다.
“…거짓말 치지 말고. 내 눈에는 네가 거짓말 치는 게 다 보인단다.”
“이거는 뭐 답정너 수준 아니야? 나 정말 진심이라니까?”
“거짓말.”
“…….”
한서현이 확신에 찬 듯이 말한다.
그러면서도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어딘가 불안해하는 것 같은 얼굴도 동반하고 있다는 것.
그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본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대답이야 뻔했다.
그때와 같았다.
“─너라서 만난 거야. 한서현 네가 시리우스그룹 직계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너라서. 됐지?”
“…그래. 그렇게 말하면 되지. 그게 그렇게 말하기 힘드니?”
“완전 답정너면서, 무슨….”
“혼날래?”
은하의 대답을 듣고는.
한서현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이내 그녀는 금세 동요를 감춰서는 은하를 타박했다.
은하는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그녀도 지지 않는다.
“근데 애 취급은 그만하지 그래? 이제 내 나이가 몇인데….”
“그래봤자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애가 말이 많구나?”
서현이 앞으로 한 발 내딛는다.
넥타이를 붙잡힌 은하는 가까이로 다가온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은하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자신이 이겼다는 듯한 감정을 발견했다.
하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은하가 한 발 내딛는다.
“─이제 내가 너보다 더 커. 이거 키 차이 안 보여?”
“…아….”
그녀의 무표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은하는 과감해지기로 했다.
그는 용감하게도 천하의 한서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한서현의 얼굴이 그제야 처음 보는 표정을 보여준다.
“누나 키 몇이에요?”
“…165….”
“그래? 나는 이제 176인데. 크지? 근데 내년에는 이것보다 클 거야. 누나는 이제 더 안 크지?”
몇 년 전, 아카데미 문화제에서.
은하는 한서현보다 키가 미묘하게 작았다.
그때는 눈높이도 서로 엇비슷했다. 사실 한서현이 조금 더 키가 컸다.
그때는 네가 키가 커 보였었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처럼.
그때 그녀와 지키지 못하는 약속을 나누었을 때.
은하는 한서현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 자체가 자신이 이상을 거머쥘 수 없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서현이 벽처럼 보였다.
“엄청 작네. 그때는 내가 이 정도 키 때문에 자책하고 있었다니, 참.”
이제는 반대로 그녀가 그를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했다.
은하는 그녀의 머리에 얹은 손을 수평으로 이동하며 자신의 가슴께에 닿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네. 어느새 어른이 됐구나.”
한서현은 멍하니.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를 올려다보았다.
은하가 그동안 본 적이 없는 얼굴.
이윽고 한참이나 그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표정을 되찾았다.
“─그래?”
“어?”
얼굴에 도발적인 미소가 떠오른다.
은하는 예상과 다른 모습을 보고는 당황했다.
그의 반응이 그렇든 말든.
한서현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딛어서 남아 있던 거리를 좁혔다.
“어른이라면 이것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겠지?” “응? 뭘 할 수 있다는….” “지금 우리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한 명 빼고.” “무슨 소리야? 이 주변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를 보….”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녀가 그의 넥타이를 확 잡아당겨 그의 입술을 살짝 빗겨가서는 뺨에 입술을 댄 것은.
“이래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니?”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이거 성희롱이야, 성희롱.”
“내년에 다시 만나자는 의미에서, 인사차원에서 한 거야.” “아니, 이거 성희롱이라니까?” “그러면 너도 나한테 하고 그걸로 샘샘으로 치면 되지 않겠니?”
“…….”
“아니면 신고라도 하든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은하는 한서현의 입술이 남기고간 뺨에 손을 가져다대며 눈살을 찌푸렸다.
장난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하지만 한서현은 뻔뻔했다.
은하는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어라?
그러다 은하는 그녀의 목이 은근히 빨갛게 익은 것을 알아차렸다.
이제 보니 한서현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은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이 어딘가 사랑스러워, 그만 웃음이 나왔다.
“그으래? 그럼 나도 해도 되지?”
“…뭐?”
“나도 할 테니까 샘샘으로 치자고.”
괜히 놀려주고 싶어진다.
은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턱 끝을 잡는다.
“…아….”
한서현이 작게 신음한다.
그녀가 저항을 하려다 말고 이내 눈을 감은 것이다.
그리고 은하는─.
“─조심해. 아무리 장난이라 해도 이건 너무 심했어. 다른 사람한테도 그러고 다니는 건 아니지? 그러다 누나 오해 살 수 있다?”
“아야….”
은하는 이마로 그녀의 이마를 살짝 부딪쳤다.
순간 그의 품에서 풀려난 그녀가 뒷걸음질을 치며 이마를 매만졌다.
그녀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말지 그러니. 어차피 너한테 밖에 안 할 거니까.”
한서현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은하는 그녀의 눈초리를 받고서도 끄떡없었다.
“그럼 다행이고. 그리고 당분간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잘못해서 파혼하게 된 이유가 저쪽이 아니라 누나한테 갈 수도….”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니?”
“…누나가 알아서 잘 하겠지.”
서늘하게 말하는 한서현.
더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은하는 두 손을 드는 시늉을 보여주었다.
은하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녀는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더니 결국 그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아무튼, 이번에 정말 즐거웠어.”
어느덧 시간이 지났다.
한서현은 게이트 앞에 선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만나.”
“응, 다음에 봐.”
은하도 손을 흔든다.
이제 그는 그녀를 뒤로하고 게이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두 사람은, 지키지도 못하는 약속을 나누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이루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이루지 못할 것은 없으리라.
☆
그때.
윤이별은 보고 있었다.
“…….”
어떤 핑계를 대면서 은하와 같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던 윤이별은 ‘그 광경’을 보는 순간에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너무…해….”
윤이별은 보았다.
한서현이 은하에게 다가가기 전, 그녀의 시선이 한순간 근처에 있던 자신에게 머무른 것을.
한서현은 너무나 정확하게도 멀리,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던 그녀를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한서현은 과시하는 것처럼 ‘그 광경’을 보여주었다.
“…….”
윤이별은 보았다.
한서현이 은하를 게이트로 보내고 몸을 돌려서는 자신을 보는 것을.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꼭 비웃는 것 같다.
그리고 묻는 것 같다.
너는 어디까지 참을 수 있니?
마침 시험하듯이.
그녀의 시선이 묻는다.
윤이별의 대답은─.
“─저 사람…, 너무 싫어.”
윤이별은 이
를 빠득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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