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6
─플레이어 노은하는 단신으로 제4위계의 몬스터를 죽인 적이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의 진가는 그가 두 가지 무기를 휘두를 때야말로 비로소 드러난다고.
오른손에는 비운의 마에스트로가 그를 위해 만들었다는 마지막 작품을.
왼손에는 비운의 역작을 보조할 맹고슈를.
“이 새끼가…!”
숨을 고를 여유도 없었다. 바닥을 구른 은하는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그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사냥개 무리가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사냥개들과 눈치싸움을 벌이던 그가 바닥을 박찼다. 거꾸로 쥔 스틸레토가 사냥개의 목을 찌르고, 자동소총의 그립으로 다른 한 마리를 내리쳤다.
“거 참, 힘들게 하네.”
그가 헬 하운드와 정면대결을 벌인 시간은 몇 분도 되지 않았다. 그를 만만치 않은 상대로 인식한 녀석이 그가 체력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결국 은하는 헬 하운드에게 조금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무리에 속하는 사냥개들이 녀석이 걸어놓은 마킹을 따라 그를 추격하고만 있는 중이었다.
진짜 귀찮게 하네.
사냥개들은 그가 쉴 틈도 주지 않았다.
그는 혀를 차며 왼손으로 달려드는 사냥개를 조준했다. 다른 사냥개의 목덜미에 꽂아 넣은 스틸레토를 뽑기에는 늦었기 때문이다.
“잔챙이는 상대할 시간도 없단 말이야.”
은하는 자동권총 G-Fight1을 격발했다. 탄환은 정확히 녀석의 급소를 노렸다.
그는 마석이 떨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무리 떼를 피하기 위해 자리에서 벗어나야 했다.
내가 이 녀석들한테 쩔쩔매다니…!
고작 제7위계의 몬스터로부터 도망치는 자신에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자존심이 상해 미칠 것 같았다.
이미 미쳤지만.
“엿 같네.”
회귀 전후의 괴리였다. 그가 아무리 마나를 효율적으로 다루고 있더라도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회귀 전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억지로라도 따라하니 마나는 비상식적으로 줄어들고, 몸에 가는 부담이 심했다.
스틸레토도 마음에 안 들고…!
지금으로서는 휘두를 수 있는 무기에도 제한이 있었다.
회귀 전에는 맹고슈를 보조무기로 사용하던 그가, 비슷한 길이의 스틸레토를 주무기로 사용하려니 공방이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G-Fight1을 보조무기로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당했을지도 몰랐다.
“…개새끼가 참 짜증나는군.”
생각할수록 열이 받았다.
고작 제6위계를 사냥하겠다고 잔챙이부터 죽여야 한다니.
어이가 없었다. 바로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헬 하운드를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다.
모가지를 비틀고, 아니, 비틀어버리기 전에 굴복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좋아, 그래. 그러지 뭐.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오냐. 넌 내가 죽여주마.
오늘이 네 제삿날인 줄 알아.
“…다 죽었어, 진짜.”
은하는 보온병을 매달아놨던 끈을 잡아 뜯었다.
그 동안 보온병에 유자차가 얼마나 남았는지 신경을 썼지만, 이제는 다 필요 없었다.
전쟁이었다. 그냥.
그는 남아 있던 유자차를 모두 삼켰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산에 왔으면 막걸리를 마셔야 하는데.”
막걸리라는 포션도 괜찮았다. 마나를 회복하는 효율이 떨어졌지만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몬스터도 죽이고 술도 마실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언젠가 만들어지겠지 뭐.”
포션 유자차는 빠른 속도로 마나를 채워주었다. 마나를 모두 채우지는 못했지만, 헬 하운드를 마주했을 때 정도로는 돌아섰다.
천보.
몇 걸음 만에 하운드 무리에 뛰어든 그는,
광무(狂舞).
그야말로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 동안 최대한 마나를 절약하기 위해 계산적으로 행동했다면, 현재 빈정이 상한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숨통을 끊어냈다.
미친 듯이 휘두르는 칼날이 허공에 그려내는 궤적은 기괴했다.
불규칙적인 칼날이 날아다니는 세계에 갇힌 사냥개들은 하나 둘 나가떨어졌다.
“하, 하아하아….”
체력 소모가 심했다. 대신 무계획적으로 저지르는 행동만큼은 어린아이와 성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이질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리기도 했고.
이거다.
단숨에 죽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면 벤다. 찌른다.
이거지.
입 꼬리가 올라갔다. 몬스터를 미친 듯이 죽이는 쾌감이 가슴 속에서부터 끓어올랐다.
“이래야지.”
상황의 변화를 감지하는데 능한 사냥개들이었다.
녀석들은 모종의 공포를 느꼈다.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던 이들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그에게 절로 위축되었다.
그가 이들을 가만둘 리 없었다.
녀석들이 오지 않는다면 직접 간다.
은하는 녀석들이 무리를 부풀리려 하면 중심부로 파고들어,
“짖어 봐. 멍멍, 하고.”
아무 짝에나 스틸레토를 휘둘렀다. 마나로 확장된 블레이드는 부메랑처럼 휘어지며 변칙적인 공격을 가했다.
“이제는 네 차례다.”
무리는 이제 뿔뿔이 흩어졌다. 기껏 살아남은 개들조차 상처를 입었거나, 무리에서 도태될 정도로 약한 녀석들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다른 무리가 마킹을 따라 다가오고 있었지만 알 바가 아니었다.
무리의 수장을 죽이는 것이 우선이니까.
“죽었다고 복창해라. 멍멍, 하고.”
헬 하운드는 거의 본능적으로 피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몇 걸음 만에 나타난 그에게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감 하나는 좋네.”
녀석이 피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죽을 거니까.
어차피 죽일 거니까.
“큭…!”
바로 그때, 은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몸을 과하게 사용한 대가였다.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른 대가가 온몸을 강타했다.
“어쩌, 라고…!”
부러진 것도 아니었다. 전신을 덮치는 경고에 엿을 날린 그가 헬 하운드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릉
헬 하운드 역시 마찬가지. 검은 안개로 시야를 교란한 녀석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뛰어들었다.
“이거 참…!”
너도 미친놈이었구나!
안개로 시야를 교란한 녀석이 귀를 희생한 것이다.
헬 하운드는 지금까지 그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체력이 떨어질 때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무리와 함께 덮쳤어야 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를 죽여야 했다. 녀석은 재빨리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오른쪽 귀를 내주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큭…!”
허벅지를 물린 은하. 톱니 같은 이가 깊숙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은 좋게 말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
하지만 물러나서는 안 됐다. 기백에서 밀리는 순간, 승부는 죽음을 각오하고 돌진한 헬 하운드가 거머쥘 것이다.
그러니 확실한 승리를 원한다면,
“뒈져라.”
이 순간을 기회로 만들어야 했다. 그는 G-Fight1을 녀석의 미간에 겨눴다.
한 발.
총 소리가 산중에 울려 퍼졌다.
녀석이 이걸로 죽을 리가 없었다.
또 한 발.
머리를 감싼 안개가 일순간 흔들렸고,
한 발 더.
또 한 번 울린 총소리가 검은 안개를 헤집었다.
“이걸로 끝이다.”
한 번만 더 쏘면.
한 번만 더 쏘면 끝이었다.
허벅지를 놔주지 않는 녀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없어, 이 멍청아.”
페이크였다. 탄환은 모두 소모했다.
녀석이 이 말의 의미를 깨닫는 데에는 찰나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는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립으로 녀석의 광대를 작살냈다.
커헝
“쳇.”
한 번에 죽이지 못했다. 얼굴이 함몰된 녀석은 공격을 중단하고 물러났다.
허벅지에는 녀석이 박아 넣은 송곳니가 남아 있었다. 살점 일부는 톱니에 떨어져나가 출혈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기 위해 천보를 사용할 준비를 했고,
“…윽…!”
뒤늦게 살점이 떨어져나간 통증이 몸을 덮쳤다.
[제]정신력으로 버틴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통각에 익숙해진 회귀 전의 그와 다르게 현재의 그는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경험은 이번 생에서 처음이었다.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오는 건 오랜만이었다.
[발 도] [요.]정신력으로 버티다 보니 머리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괜한 환청까지 들렸다.
[누가 제발]시끄러워. 머리 울리잖아.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어금니를 악물며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크륵
그륵
끄우우우
운도 지지리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마킹을 따라온 사냥개들이 나타난 것이다.
녀석들은 그가 약해진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헬 하운드 역시 조금 전처럼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바닥을 구르며 사냥개들과 헬 하운드의 공격을 피해야 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없었고, 얼굴이며 팔이며 다리며 성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출혈이 심각했다.
“헉, 헉, 헉…!”
[도와주세요.]옆구리를 할퀸 녀석의 발을 잘라냈다. 그게 전부였다. 이제는 녀석들의 속도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몸이 무거웠다. 아직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용했다.
“이것들이, 정말….”
물론 가만히 당하고만 있던 그가 아니었다.
헬 하운드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녀석 역시 무리의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몸이 성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더 해볼 테냐.
녀석이 낮게 그르렁거렸다.
“…내가 너한테 질 줄 알고?”
기가 찼다. 절체절명에 몰리기는 했지만 그는 녀석들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솟구쳤다.
[누가,]그래, 힘이.
[누가, 제발 도와주세요─!!]펌프질을 하는 것처럼 끓어올랐다.
─플레이어 노은하는 단신으로 제4위계의 몬스터를 죽인 적이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의 진가는 그가 극한 상황에서 기프트를 발현할 때에야말로 비로소 드러난다고.
☆
뭐지. 저 녀석은.
헬 하운드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믿기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기 직전이었던 인간이었다. 오로지 악에 받쳐 숨이 붙어 있었을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넌 뒈졌어, 진짜.”
헬 하운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미약하게나마 박동하더니, 박동을 거듭할수록 그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인간에게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일 것 같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녀석은 뒤늦게야 주변에 깔린 짙은 냄새를 맡았다.
피냄새가 아니었다.
흙냄새도 아니었다.
땀냄새도 아니었다.
죽음의 냄새였다.
허면 누구의 죽음이냐면.
“죽었다고 복창해라.”
목소리는 바로 가까이에서 들렸다.
어느 틈에?
그렇게 생각했을 때에는 모든 게 끝나 있었다.
녀석이 죽음 앞에서 겁을 먹었던 사이, 남아 있던 무리는 무참히 도륙되어 있었다.
그리고 헬 하운드 역시.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칼끝을 피해낼 겨를이 없었다.
녀석이 가까스로 행한 것이라고는,
“─호오.”
살아남겠다는 본능만으로 검은 안개를 굳힌 것이다.
스틸레토가 찌르지 못할 정도로.
“언제까지 가나 볼까?”
게임은 끝났다.
껍질이 된 안개 속에 갇힌 시점에서.
살아있는 시간을 번 것이 고작이었다.
“의외로 단단하네?”
그만. 제발 그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제발─.
“못 부술 정도는 아니네.”
그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실망감으로,
“내가 지금 많이 늦었다.”
토마토를 찌르는 듯이 껍질을 헤집었다.
“그러니까─.”
그가 구멍 안으로 피를 뒤집어쓴 얼굴을 들이밀었고.
“울어 봐. 어디. 멍멍, 하고.”
꼬리를 말고 웅크려 있던 녀석은─
멍멍
─하고 울었다.
“잘했어. 그럼 죽어.”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