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63
플레이어 아카데미 설립 이전.
적색던전 조계사 일대 공략 직후.
“전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대체 그걸 왜 만들어야 하는 거지? 나는 도통 이해를 못하겠군.”
거울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언젠가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는 영웅이 될 것이다.
윤성진은 주저하지 않고 어둠의 주인을 향해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야 세상은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영웅을 필요로 할 테니까.”
백서진은 그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그러자 윤성진은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래서 영웅을 만들자 하는 건가? 영웅을 만들어서 어디에 쓰려고.”
세상이 멸망했다.
절망이 득실거리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멸망을 맞이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밝은 미래로 이끌어주는 영웅을 필요로 했다.
대재앙을 극복한 영웅이라는 뜻의, ‘살아있는 신화’가 그러했듯이.
사람들은 계속해서 영웅의 등장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보다 약하고, 여려서 기댈 곳이 필요해. 그러니 우리 같은 영웅들이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해.”
그러니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도록, 그들의 희망이 될 영웅을 만들자.
백서진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리고 비슷한 뜻을 품은 사람들은 백서진 혼자만이 아니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문준이.”
“흠….”
“거봐.”
백서진은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거구의 노인에게 물었다.
도복을 입은 노인이 짧게 신음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비롯하여 근처에 있던 이들도 백서진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래…, 알았다. 그런데 왜 하필 저 아티펙트인 거지? 저것 외에도 다른 아티펙트를 삼아도 될 텐데.”
결국 윤성진은 한 발 물러났다.
그러고 귀찮다는 감정을 드러내며 의문을 표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백서진의 계획이 받아들여졌다간, 자신이 복잡한 술식이 소용돌이치는 지대를 뜯어고치게 될 테니까.
“그야 자네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저 아티펙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지. 하나는 나도 밤을 새우며 해제해야 하는 트랩을 해제하든가, 아니면….”
“그게 아니면 아티펙트의 주인으로 인정을 받든가.”
백서진이 대뜸 말을 끊었다.
윤성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내 그는 자신의 질문에나 답하란 시선을 보냈다.
백서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저 아티펙트가 주인으로 인정하는 메커니즘은 뭐라 그랬지?”
“마나에서 묻어나는 미세한 욕망을 감지하는 거지. 욕망을 감지한다면, 저 돌상의 머리가 커져서….”
“바로 그거야. 이봐, 성진이. 자넨 욕망이 없는 사람이 정말로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어.”
“…….”
“사람이 희망을 품는 이유는 아직 희망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우리는 계속 사람이 영원히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해. 그런 의미에서, 이거 괜찮은 전설 아닌가?”
“…희망고문이 따로 없군, 완전히. 그래서. 영웅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아직 전설과 다르게 절망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속이기라도 할 생각인 건가? 아직 희망이 오지 않았으니 이대로 포기하지 말고 희망이 오기를 기다리라고?”
“그리고 세상은 전설과 달리 아직 절망적이지 않으니 삶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믿게 하는 거지.”
“허, 참…. 사람들이 그런 걸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안 믿을 수 있을까? 희망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
“…….”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
하지만 윤성진은 부정하지 못했다.
다시 백서진이 말을 잇는다.
“그리고 만약 욕망이 없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거는 그것대로 좋지. 욕망이 없다는 건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욕망이 결핍에서 기인한 거라면 그런 거겠지. 이 순간에 만족하고, 앞으로도 자신의 미래가 밝으리라 생각하고 있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욕망이 없는 영웅은…, 계속 그 상태를 유지시켜만 준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지 않겠어? 반대로 욕망이 있는 영웅은 그자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꽤나 수고가 들 거 아니야.”
“…….”
“영웅은 통제되어야 해. 안 그러면 세상은 혼돈 그 자체가 될 거야.”
“그게 네가 할 말이냐.”
“나니까 할 말이지. 준이, 자네도 동의하는 거 아닌가?”
윤성진은 혀를 차기만 했다.
어차피 그에게는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한편, 백서진은 적색던전 일대를 돌아보던 문준에게 물었으니.
문준은─.
“─초인은 통제되어야 하네. 더는 초인이 세상을 지배하게 내버려둬선 안 돼.”
무게가 느껴지는 듯한 어조.
그만큼 문준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내 그가 다시 입을 떼었으니─.
“─플레이어(Player) 아카데미…. 그 이름이 괜찮겠군.”
“나쁘지 않군. 초인 육성기관이니, 영웅사관학교이니, 헌터 아카데미니 그런 구닥다리 이름보다는 낫구만.”
“…결국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네들도 그리하겠다는 거구만.”
백서진이 허허 웃으며 긍정했다.
결국 윤성진은 그의 바람과 달리 저들이 바라는 대로 전설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면서.
“하하하! 전설을 만들 생각이라면, 우리 그런 전설 말고 좀 청춘다운 전설도 만들어보는 건 어때? 낭만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예를 들어…, 문화제에서 남녀 둘이서 불꽃놀이를 보게 된다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든가….”
여담으로.
아티펙트의 시험을 받고서 돌아온 남궁성운이 말을 보탰는데.
그 전설은 아주 은밀하고 위대하게 퍼져 나갔다고 한다.
☆
척사 다뉴조문경.
디버프를 비롯해 각종 버프마법을 해주(解呪)하는 마법이 깃들어 있는 아티펙트는 인헌등급으로 인정되는 귀물(貴物)이었다.
거울은 전투에서 쓰기가 불편하니 회귀 전의 온태양이 그랬던 것처럼 검을 만드는 재료로 써야겠다.
그러나 만인이 보는 앞에서 거울을 손에 넣은 은하는 고민의 여지없이 새로운 검을 만드는 재료로 쓰기로 결심했다.
전위에서 활동해야 하는 그로서는 아티펙트를 사용하기도 힘들 테고, 아직도 반항을 해대
는 아티펙트를 길들이는 것도 귀찮은 일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럴 바에는 녹이는 게 나았다.
마침 여름방학이 되면 해수 형이 새 검을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으니 그때 거울도 가지고 가면 되겠네.
이내 은하는 아티펙트에 불어넣은 마나를 거두어들였다.
마나가 모두 빠져나간 청동거울이 마치 우는 듯이 작게 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은하는 거울이 호소하는 소리를 무시하고 호수로 올라가는 길을 밟았다.
“”””…….””””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아티펙트를 손에 넣었을 때부터.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은 아직도 뭐라 말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눈치였다.
결국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청동거울을 한 손에 안고 올라온 은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그러면서 정작 눈을 마주친 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대장, 너무 멋있었어! 내가 아까 대장이 거울을 손에 넣는 걸 보고 얼마나 감동했는데! 꼭 이야기 속에 나올 법한 주인공 같았다니까!?”
“야! 치사하게 너만 폼을 잡는 게 어디 있어! 아…, 이거 진짜 아깝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최은혁이 사람들 속에서 달려나와 은하에게 자신의 감동을 토해냈다.
진파랑도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은하가 게임에서 획득한 거울을 자세히 보고 싶다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은하가 그들에게 거울을 넘기자, 두 사람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우와…. 진짜 멋지다. 이게 바로 영웅으로 만들게 해준다는 거울이란 말이지?”
“야! 너만 만지지 말고 나한테도 좀 넘겨달란 말이야!” “나도 보고 싶어! 보여줘! 보여줘!”
최은혁과 진파랑이 연심 감탄사를 흘린다.
아리엘까지 가세한다.
어느덧 은하와 친분이 있던 이들이 은하에게 몰려들며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다.
곳곳으로 환성이 퍼져 나간다.
이윽고 여론은 은하의 활약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얘네들이 날 쳐다보는 눈빛이 좀 부담스러운데….
은하는 이제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무시하고 싶어도 눈빛이 강렬해서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다 그는 그들 사이에 서 있던 정하양을 발견했다.
“어, 하양….”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말, 정말로 멋졌어.” “…….”
은하는 분위기를 전환할 생각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녀가 대뜸 말한 것이다.
그녀가 별안간 그의 손을 잡고서는 자신의 감상을 늘어놓았다.
“하양아, 좀 진정….”
“이걸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어!? 은하 네가 직접 위에서 봤어야 해! 네가 갑자기 무언가 결심한 것처럼 검에 마나를 실어서는….”
정하양이 아주 흥분했다.
은하는 그녀에게 붙잡혀, 그녀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들어야 했다.
그녀의 주관적인 감상이 들어가니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부끄러웠다.
누가 분위기 좀 바꿔줘….
곁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정하양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급기야 최은혁이 그를 껴안았으며, 아리엘이 그의 허리춤에 매달렸다.
진파랑은 머리 위로 거울을 들고 미친 듯이 춤을 춰댔고.
너무 정신이 없었다.
이제는 누가 이곳에서부터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만큼.
그때, 마치 그의 바람을 들어주듯 분위기가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머, 너희 혹시 내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거니? 날 이렇게 환영해주다니…, 센스 있네.”
저 뒤에 있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길을 비키는가 싶더니, 그 흐름이 호수 근처까지 퍼져나갔다.
인파가 갈라졌다.
길이 만들어졌다.
“뭐, 내가 더 센스 있기는 하지만.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라고 하잖아. 그래서 지금까지 참석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길로 나타난 사람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처럼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마치 그들의 시선을 즐기듯 걸음 하나하나 신경을 쓰는 듯했다.
“근데 오늘따라 시선이 많은데…. 혹시 내가 오늘 뭘 보여주려 한다는 소식이 벌써 퍼지기라도 한 건가?”
갤럭시그룹의 직계 최가인.
종강파티가 끝나갈 즈음에 도착한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마치 파티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강조하는 것처럼 콧대를 세운다.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를 걸치고 있었다.
“”””…….””””
그중에서도.
그녀가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유는 밤하늘 아래로 밝게 빛나는 팔찌 때문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따온 듯이 팔찌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너희도 역시 이게 신경이 쓰이지? 이거? 그냥 꽃이야, 꽃!”
오호호호 하면서 기품이 있는 척, 실상은 우악스럽게 웃는 최가인.
은하는 그녀의 웃음을 뒤로하면서 그녀가 높이 쳐든 손을 주시했다.
“그건….”
새하얀 꽃잎으로 이루어진 팔찌.
신기하게 꽃잎이 반짝이고 있었다.
최가인은 일부러 과시하는 것처럼 자신이 손에 찬 팔찌를 들어 올리며 깔깔거렸다.
한편, 그녀가 향하는 길에 서 있던 은하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내가 이번에 마라도에서 발견한, 아마도 세상에 단 한 송이밖에 없을 절대로 지지 않고 반짝이는 꽃이야! 그래서 내가 이 꽃에 지은 이름이 뭔지 궁금하지 않니?”
“”””…….””””
“바로─!”
새로 산 장신구를 자랑하듯.
그녀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팔찌에 매료된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멋대로 말을 이었다.
“─달빛의 축복이라고 해! 어떠니? 이름이 정말 예쁘지 않니?”
최가인이 과장된 동작을 취하면서 좌중을 향해 외쳤다.
이내 은하는─.
─찾았다.
달빛의 축복.
엘릭서의 마지막 재료 중 하나.
마침내 그동안 찾고 있었던 재료를 제 눈으로 확인한 은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
내일부터 여름방학이라 마음 놓고 안심하고 있었건만.
노은하가 또 사고를 쳤다.
유도준은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은하 쟤는 지금 자기가 뭘 했는지 알고 있는 거냐고….
노은하가 지금까지 아카데미에서 전설로 내려오던 아티펙트를 힘으로 손에 넣었다.
게임의 규칙을 어긴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하게 게임의 규칙을 따른 것도 아니었고.
저거 반칙 아니냐?
아니야.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으니 반칙은 아닌데….
야,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는 거 아니야? 이러면 나도 했지!
…미친놈이네, 저거.
몇 십 년 동안 주인을 기다리던 아티펙트 척사 다뉴조문경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아티펙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은하가 파격적인 방식으로 아티펙트의 주인이 되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행하던 사람들이 그의 방식을 받아들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노은하의 성정을 알고 있는 우리들이라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지….
유도준은 청각을 곤두세웠다.
침묵 속에서 간간이 들려오고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노은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는 익숙해져서 이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노은하를 모르는, 윗기수 학생들은 몇 십 년 동안이나 이어진 전통이 이리도 허무하게 사라진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거 건방진 거 아니야?
와…, 이건 진짜 너무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유도준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러다가 은하가 공공의 적이 될지 모를 판이었다.
더군다나 교관들이 게임의 종료를 선언하지 않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씨, 어떻게 하지.
이대로 둔다면 안 좋은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가버리고 말 거야.
그렇다고 무작정 여론을 좋은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없고….
유도준은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어느 선택을 내려도 문제였다.
아카데미에서 노은하의 영향력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론을 지금보다도 더 좋은 방향으로 조장하게 된다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되리라.
노은하가 앞으로 여론을 신경 쓰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들까봐 걱정을 하는 학생들이 무슨 수작을 부려올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사람들의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야 하는데….”
유도준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최은혁이 은하의 활약을 찬양하고, 다른 친구들까지 가세한 것이다.
뭐, 좋아. 그냥 이대로 놔뒀으면 여론이 은하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으니까.
차라리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건 좋은데….
목소리가 큰 사람이 장땡이다.
친구들이 침묵 속에서 제일 크게 외친 덕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이들도 은하를 띄워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탐탁지 않아 하면서 박수를 한다.
교관들도 여론이 이렇게 흘러가자 은하가 아티펙트의 주인이 된 것을 인정하기도 했고.
그러니 이제 남은 문제는 달아오른 분위기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양이 쟤가 왜 저기 있냐고….”
유도준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자신을 포함하여 여론을 조장하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현재 상황을 차분하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앨리스그룹의 직계 정하양이 지금 은하의 손을 연신 흔들고 있다.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그녀가 흥분해 있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네가 거기 있으면 어떡하냐….”
여론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만 아니라 정하양의 힘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서나나 민호, 은우의 영향력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유도준은 지금 당장 저 안에 있는 하양을 끌고 오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급한 불은 끄게 되더라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떡한담….
한편으로 유도준은 생각에 잠겼다.
아카데미의 여론을 바꾼다고 해도, 세상의 분위기를 바꿀 수는 없다.
필시 노은하가 척사 다뉴조문경의 주인이 되었다는 소식은 머지않아 업계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들은 은하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보나마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게 뻔했다.
“…어떻게든 은하가 주인이 된 걸 정당화해야만 해. 근데 그걸 대체 어떻게 해야….”
그러니 업계 사람들이 은하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게 어느 정도 이미지 마케팅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시켜야 했다.
“─아.”
그러다 생각이 번뜩인 것이다.
현재 업계에 알려진 은하의 이명을 바꾸는 것이다.
“아카데미의 잠룡은 어떤 존재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마당이었으니…. 이번 일과 연관된 이명을 선전해서 노은하가 친 사고를 그냥 업적으로 승화시켜버리는 거야.”
유도준은 머리를 굴렸다.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
쾌도난마.
중국 남북조시대에 생긴 일화다.
북조의 황제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세 가지 색이 엉켜 있는 실타래를 풀어보라고 말한다.
이에, 차남은 복잡한 문제는 그저 베어버리면 된다며 형제들과 다르게 실타래를 잘라버렸다고 한다.
후에 그는 왕위를 선양받게 되면서 문선제가 되었다고.
현재 은하의 상황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
은하가 업계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할 때까지 란 말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수밖에 없어.
친구 하나 잘못 둬서 고생이다.
유도준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최가인 쟤는 왜 나대는 거지?”
최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최가인이 사람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그녀가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가 신경이 쓰이기는 했으나, 그녀 덕에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었다.
“그래도 쟤가 도움이 될 때가 있긴 하네….”
오늘 한정으로.
유도준은 그녀의 존재를 감사하게 여겼다.
☆
어둠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플레이어 업계에 퍼진 ‘쾌도난마’란 이명은 금세 어둠으로 발을 뻗었다.
“…그 거울의 주인이 나타났다고?”
십이좌 백서진.
그 역시 그 소문을 접했다.
처음 그는 척사 다뉴조문경이라는 아티펙트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주 오래 전에 동료들과 적색던전 조계사 일대를 공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 영웅이 라 불리고 있다는 건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자신이 날조한 전설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백서진은 강렬한 호기심을 보였다.
“흠…. 노은하라….”
노은하.
백서진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업계에서 류연화를 능가할 잠룡이 아카데미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유명했으니까.
다만 의외인 것은 그만큼 뛰어난 사람이 척사 다뉴조문경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
“그만한 실력을 지녔으면서 어떻게 욕망이 없을 수가 있는 거지? 대체 얼마나 올곧은 사람이면….”
그로서는 믿겨지지 않았다.
세상에 어찌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는 노은하가 어떻게 청동거울의 주인이 되었는지 자세히 알아보았다.
“허, 참….”
그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기에 의하면 돌미륵의 머리가 한계까지 거대해졌다고 한다.
그때 노은하가 돌미륵의 머리를 단칼에 잘라냈다고.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이로군…. 대체 이놈은 뭐하는 놈이지?”
의외다.
너무 의외였다.
설마 이런 존재가 세상에 나타나, 자신이 날조한 전설을 어그러뜨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이 설계한 판을 깬 것이다.
그런데 화가 나기 보다는 오히려 그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백서진은 턱을 쓰다듬었다.
“어디 보자…. 그러고 보니 이때쯤 고등아카데미에서 십이좌를 초청해 강연하는 일정이 있었을 텐데….”
대체 정체가 뭔지.
아무래도 노은하라는 존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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