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77
“─철저히 죽이기 위한 검이로군.”
아카데미 객원교사로 초청을 받은 황진희는 탐탁지 않아하며 노은하의 검술을 평가했다.
무언가를 죽이는 것밖에 모르는, 결과적으로 자신마저 죽음으로 내몰 전투 스타일이었다.
그녀의 경험상, 그런 사람은 대개 잃을 게 없이 살아가고는 했으며, 인격이 파탄되어 있었다.
“저 나이에 어떤 인생을 살았으면 저런 검술을 펼칠 수가 있는 건지 모르겠군.”
그녀는
혀를 찼다.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의 생각처럼 노은하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긍정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안타깝기만 했다.
아직도 성장할 여지가 있는 나이에 자신마저 파멸로 몰고 가는 검술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그가 패도의 길을 걷게 만들었을 원망스러운 세상 때문에.
“볼수록 슬프기만 하구만.”
사람들이 블레이즈 클랜원들에게서 조금도 밀리지 않는 노은하를 보며 열광한다.
반대로 그녀는 차갑게 식은 머리로 대련을 관전했다.
그녀는 단언할 수 있었다.
노은하라는 괴물은 멸망한 세상이 만들어낸 존재라고.
그러니 어찌 열광할 수 있겠는가. 세상이 저 괴물을 만들어낼 정도로 얼마나 절망적인지 한탄해야지.
황진희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몇 십 년이나 전국을 돌아다닌 것이 큰 의미를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도류를 다루는 게 자연스러워. 제자 놈이 말한 정보에 의하면 줄곧 검 한 자루만 사용하고 있었다던데, 단기간에 이도류를 구사해내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하여튼 난 놈은 난 놈이로군.
이내 그녀는 노은하가 불길 속으로 주저 없이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얼굴을 굳혔다.
사람들은 그가 이도류를 사용하자 처음에는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다 그가 이도류를 완벽하게 다뤄내니 손바닥을 뒤집어서는 그의 무위를 칭찬하기 바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필시 두 자루의 검을 휘두르는 노은하가 멋지게 보였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저게 멋지다고 생각하면 눈알을 파야지. 죽기 딱 좋은 스타일인데.”
왼손에는 맹고슈.
오른손에는 한손직검.
그녀는 이도류를 다루는 노은하를 신랄하게 비평했다.
그가 방패 대신에 맹고슈를 선택한 이유는 방어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속전속결로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한가득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제 몸의 안전에 과연 신경을 쓸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그의 검술은 철저히 죽이기 위한 검이었다.
“제자 놈이 저 아이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네. 앞으로 절대로 따라하지 못하게 가르쳐야겠어.”
노은하와 자신의 제자 최은혁과의 관계는 진즉에 파악했다.
황진희는 다짐하듯이 되뇌었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노은하가 발을 움직이는 방식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백서진을 닮아 있다.
최은혁에게서 어렴풋이 묻어났던 품세가 노은하에게서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
물론, 노은하의 스타일이 백서진을 완벽하게 따라하는 건 아니었다.
기본바탕은 백서진의 스타일이지만 노은하의 스타일을 이루고 있는 건 그가 직접 이룩해낸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노은하와 백서진, 두 사람의 관계가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백서진의 제자 같지는 않지만 놈이 저 아이를 가르쳤다는 건 확실해.
그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괴물을 만든 거지?
황진희는 한숨을 쉬었다.
백서진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더더욱 좋아할 수가 없었다.
“호오….”
그러던 어느덧.
연푸른 머리칼이 인상적인 여성이 방벽을 부수고 경기장에 난입했다.
이내 경기장을 가득 메우던 불꽃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눈이 나부끼는 세상이 도래했다.
“…성운이 제자인가.”
황진희는 입가를 움직였다.
노은하에게 지지 않는 기백.
그리고 다섯 명을 상대로 하고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 실력.
황진희는 연푸른 머리칼의 여성이 창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기분을 전환했다.
창을 사용하는 솜씨로 보아하니, 필시 남궁성운의 제자이리라.
“냉정한 것처럼 보이면서 은근히 성운이를 꼭 닮은 아이구만.”
황진희는 허허 웃었다.
예고도 없이 경기장 난입이라니.
남궁성운의 과거를 보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눈의 세계를 지배하는 여성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저런 검을 사용할 정도면 인격이 파탄이 났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일인데…. 그런데도 주위에서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 같군.”
제자 놈도 그렇고.
남궁성운의 제자도 그렇고.
그 외 그녀가 객원교사로 생활하며 노은하의 주변을 언뜻 본 바.
노은하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끊이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복이라도 있는 건가…. 실력과 운으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걸 타고난 셈이구만.”
류연화가 가세한 것으로.
대련의 양상이 크게 기울었다.
이제 곧 끝이 나리라.
황진희는 저들의 승리를 점치면서 인자한 미소를 품었다.
☆
류연화가 가세했다.
은하가 난데없이 경기장에 난입한 그녀를 보고 놀란 것도 잠시.
그녀와 눈이 마주친 그는 시선으로 서로의 의사를 교환했다.
한 판?
한 판.
이제는 몇 년이나 된 일이었다.
그녀가 아카데미에 재학했을 시절, 아침마다 그녀와 대련을 할 때마다 주고받았던 사인.
굳이 말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서로의 실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처음 합을 맞췄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호흡을 맞춰나갔다.
한매류
장맛비
류연화가 창을 크게 내리친다.
허공에 생겨난 고드름이 수십 개.
마주한 것만으로 긴장하게 만드는 고드름이 일제히 블레이즈 클랜원들에게 날아간다.
얼음이 깨진다.
얼음이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 속에 간헐적으로 고통에 찬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 소리마저 머지않아서는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에 파묻힌다.
천보
냉기를 머금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은하는 냉기로 가득한 공간 속으로 달려나갔다.
버스트 카운터
산발적으로 폭발하는 냉기.
아직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이들이 악 소리를 내며 폭풍에 휘말렸다.
폭풍이 걷혔을 때,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팔옥 두 명밖에 없었다.
한 사람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떨어진 사람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가까스로 충격을 최소화한 듯싶었고.
그러나 다섯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설원 한복판에 선 것 같은 추위에 바짝 얼어 있었다는 것이다.
다들 어디 한 군데 동상을 입어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겠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테고.
아마 폐가 얼어붙는 기분이리라.
은하는 연화의 보호마법을 받으며 숨을 쉬는 것도 조심해하는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광무
한매류
빙판길
저들의 움직임이 현저히 늦어졌다.
두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류연화가 임채성과 정면에서 맞붙었고, 은하는 황석하를 상대했다.
그럼에도 팔옥이다.
공격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을 힘을 지니고 있었다.
천보
마나 크래셔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이미 승기는 확실하게 기울었는데.
황석하에게서 거리를 벌린 은하는 맹고슈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눈발을 기는 겨울의 표면에 또다시 검은 뱀의 형상이 떠올랐다.
“─이게 일직선으로만 나가는 게 아니라서요.” “…뭐?”
마나 크래셔의 참격을 피해 달려든 황석하.
하지만 은하는 자리를 피하지 않고 눈발을 기는 겨울을 살짝 비틀었다.
황석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분명히 그가 피했을 참격이 뒤에서 그를 공격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눈발을 기는 겨울의 특성도 꽤나 쓸만하네.
은하는 당황하는 황석하를 보고는 흡족해했다.
눈발을 기는 겨울의 특성.
도신에 불어넣은 마나를 채찍처럼 휘두를 수 있다는 것.
은하는 마나 크래셔로 채찍질하며 거리를 좁히려 달려오던 황석하를 멀리 떨어뜨렸다.
한편 그때─.
─한매류
새장
류연화가 대규모 마법을 전개했다.
바닥을 자욱이 메우고 있던 눈이 그녀의 명을 받고 거칠게 휘날린다.
거대한 새장이 만들어졌다.
새장 속에 갇힌 임채성은 어떻게든 혹독한 겨울의 세계에서 탈출하고자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눈은 부서졌다 돌아왔으며, 새장의 범위가 축소될 때마다 더욱 견고해졌다.
─한매류 극의
설룡
마침내 임채성의 움직임이 완전히 차단되고 말았을 때.
그녀가 완전히 쐐기를 박았다.
눈으로 뒤덮인 용이 아가리를 벌려 새장 속에 갇힌 임채성을 삼켰다.
팔옥 중 한 명이 패배했다.
“─그럼 나도 끝내볼까?”
한편, 황석하가 순식간에 쓰러진 임채성을 보며 아연실색하는 사이.
은하는 그를 놀리듯 키득거렸다.
걱정 마.
안 죽여.
☆
눈발이 거세다.
막상막하로 흐를 것 같던 상황은 류연화의 개입으로 완전히 기울어지고 말았다.
결국 대련은 블레이즈 클랜원들의 패배로 끝이 났다.
“저 언니 너무 멋있는 거 아니야!? 완전 여자판 노은하네.”
“여자판 노은하라니…. 뭐, 네 말이 마냥 틀린 건 아니기는 한데 나중에 연화 언니한테 그런 말을 했다가는 혼날지도 몰라.”
아리엘은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민지는 못 말리겠다는 얼굴을 하며 아리엘을 말렸다.
“저 사람이…. 연화 선배라고?” “맞아. 연화 언니는 은아 언니의 친구이기도 해.”
한편 윤이별은 뭐라 대화를 나누는 류연화와 노은하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조금 전에 민지가 알려준 류연화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단순한 선배라 하기에는 두 사람의 사이가 굉장히 가까워 보였다.
“은하랑 많이…, 친한가봐.”
“은아 언니 친구라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서 그래. 초등학교 6학년? 그때부터 알고 지냈던 것 같으니까 벌써 4년이나 됐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이별은 푸르른 머리칼이 아름다운 류연화를 보고 침울해졌다.
기분이 울적해졌다.
은하의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들은 하나 같이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과 자신의 외모를 비교하려니 괜히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그녀를 더 울적하게 만드는 원인은─.
─나한테는 저런 얼굴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나빴어.
류연화와 대화를 나누는 노은하가 감정이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또한 류연화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강한 신뢰가 묻어나는 듯했다.
그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반응이다.
“그나저나 경기장이 다 부서졌는데 은혁이랑 애들이 종합부문대회에는 출전할 수가 있으려나….”
“볼 거는 다 봤으니까 우리 그냥 문화제나 보러가는 건 어때? 어차피 내일도 와서 볼 거잖아.”
“하긴…. 그건 그렇지.” “그치? 가자, 가자! 응?”
사실상 노은하의 실력을 보려고 온 사람들이 이제 자리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리엘은 민지의 팔에 매달리면서 문화제를 보러가자고 보챘다.
그럼에도 윤이별은 자리에 앉은 채 은하와 류연화를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눈에 힘을 주며 두 사람의 입술을 읽는다.
…나랑 같이 보러 다니자.
…응. 좋아.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윤이별은 대기실로 돌아가는 듯한 두 사람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같이 보고 싶은데….”
푸념을 하듯.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나중에 은하한테 같이 둘러보자며 말이라도 걸어볼까 싶었다.
그때는, 그가 고개를 끄덕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며.
☆
류연화는 현재 한창 으로서 주가를 날리고 있는 플레이어다.
그만큼 바쁜 사람이다.
그렇기에 은하는 설마 그런 사람이 문화제를 찾아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늘 비번이라서.”
“오늘 쉬는 날이라고? 쉬는 날에는 집에서 푹 쉬어야지. 안 힘들어?”
“…몸을 한 번 풀고 나니까 이제 안 힘들어졌어. 상쾌해. 기분 좋아.”
류연화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은하는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직후 그녀가 오늘 휴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혀를 내둘렀다.
“원래는 은아랑 같이 오려 했는데 은아랑 시간이 맞지 않았거든.”
“아, 그래서 누나가 세 번째 날에 온다고 그러더라. 그럼 누나는 지금 혼자 온 거야?” “아니. 클랜로드랑 같이 왔어. 네가 이번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일도 남한테 다 맡기고….”
“그래? 원래 그런 사람이긴 하지. 어디에 있는데?”
“응, 저쪽에 있어.”
그는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레귤러스 클랜로드 구연수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은하는 그를 발견하지 못한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레귤러스 클랜로드가 저리 친근히 손을 흔드는 이유야 뻔했다.
자신을 영입하러 온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야? 클랜로드랑 같이 돌아갈 거야?”
“음….”
이내 은하는 화제를 바꿨다.
류연화가 눈가를 좁힌다.
그녀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에 잠긴 듯했다.
어째 돌아가기 싫어하는 눈치네.
은하는 고민하는 류연화를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아카데미를 찾아왔으니 그녀도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못내 아쉬운 것이리라.
“누구랑 같이 문화제를 보기로 한 사람은 있어?” “…아니. 나 혼자야.”
“그래?”
사실 혼자서도 블레이즈 클랜원들 다섯 명을 상대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가세해준 덕분에 수월하게 대련을 끝낼 수가 있기는 했다.
그러니 그녀에게 빚을 진 은하는 어떤 식으로든 갚아야 했다.
마침 이후에 시간이 비어 있었다.
은하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같이 볼 사람 없으면 나랑 같이 보러 다니자.”
“…….”
“안 말해줄 거야?”
류연화가 멈칫했다.
그녀가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응. 좋아.”
겨울의 끝을 고하듯.
그녀가 화사한 미소로 답했다.
☆
종합부문대회 본선 첫 번째 날.
경기장이 박살이 난 것으로 인해 대련은 예정된 시간보다 늦어졌다.
교관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무대를 바꾸고 시작된 대회는─.
“─에게, 고작 이것밖에 없어?”
좌석이 거의 절반이 비어 있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생각을 하고 있던 진파랑은 황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경기장을 한 번 둘러보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린 것이다.
“─승자! 진파랑─!!!”
사람들의 호응도 없다.
별 수 없이 무관심 속에서 싸운 진파랑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승자! 호시미야 카에데─!!!”
“─승자! 목민호─!!!”
“─승자! 강시형─!!!” “─승자! 최은혁─!!!”
“─승자! 배수빈─!!!”
아카데미의 교관들의 오판이었다.
노은하를 보러 온 사람들은 그대로 노은하를 보고 돌아가 버린 것이다.
결국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종합부문대회 본선은 아주 쓸쓸히 시작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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