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91
2학기도 며칠 후면 끝이 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치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서걱서걱
정하양도 마찬가지.
오늘 시험 세 과목을 끝낸 그녀는 문화관 최상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험 기간이다 보니 늦은 시간에도 카페에 빈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서 홀로 공부를 하던 그녀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그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이별아, 여기야.” “아…. 늦어서 미안해.”
윤이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는 이내 학생들로 꽉 차 있는 카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평소에는 자리가 비어 있는 만큼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다행히 그녀는 먼저 자리를 잡은 정하양을 발견하고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문화관 스카이라운지 카페가 평소에는 한산하지만 문화제 기간하고 시험기간에는 엄청 붐벼.”
“아, 그렇구나. 스카이라운지에는 잘 오지 않아서 몰랐어. 음…. 나, 음료 주문하고 와도 될까?” “응, 다녀와.”
윤이별은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서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음료를 받아온 윤이별은 조심스럽게 정하양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시험은 잘 봤어?” “음…, 실수해서 놓친 게 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잘 본 것 같아. 하양이 너는 이번에 어떻게 됐어? 내일 보는 시험은 네비게이터 부문 과목 아니야?”
“맞아. 도심지에서 펼칠 수 있는 작전에 대해 공부하는 수업인데…, 외울 게 너무 많아서 힘드네.” “아, 그거 안 듣기를 잘했다.” “치. 이별이 너도 졸업을 하려면 학점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듣게 될지도 몰라.” “으…, 역시 그래야겠지?”
두 사람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오가는 내용에는 알맹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시험에 대한 대화만 나누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마치 대화를 위해 대화하는 느낌.
두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형식적인 대화를 주고받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화젯거리가 떨어지니 대화가 뚝뚝 끊긴다.
“”…….””
돌이켜보면.
정하양은 윤이별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언제였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었던 듯싶다.
학년초…였던 것 같은데.
그때는 아직…, 우리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구나.
정하양은 문득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면 그때 자신은 윤이별과 스스럼없이 지냈던 것 같다.
더는 아니지만.
이제 그녀에게서 어색함을 느끼는 정하양은 마찬가지로 자신과 같이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카페라떼를 마시는 윤이별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거북이처럼 몸을 움츠린다.
“근데 이별아. 오늘 왜 부른 거야?”
“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하양은 생긋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별은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내 그녀가 마음을 다잡은 것인지 허리를 곧추세우며 고개를 든다.
“─하양이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불렀어.”
“…….”
불안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정하양을 바라보는 윤이별.
하지만 하양은 그녀가 지금 속으로 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윤이별은 최대한 감춘다고 하지만, 그녀의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
정재계에 발을 들이게 된 이후로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하는데 능해진 정하양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 그게 뭔데?”
그래서 정하양은 여유로운 태도로 무언가 각오를 다진 듯한 그녀에게 되물을 수 있었다.
역시나, 정하양의 예상대로.
윤이별의 얼굴에 파문이 인다.
그녀가 감정을 감추는데 서투르다는 방증이었다.
“난….”
그럼에도 그녀는 기가 눌리면서도 입을 열려고 한다.
정하양은 그녀가 말을 꺼내는 것을 가만히 기다렸다.
사실, 그녀가 자신을 이곳에 부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개인 톡을 받았을 때, 정하양은 직감적으로 눈치 챘다.
그렇기에 정하양은 이다음에 나올 말을 들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난─, 은하를 좋아해.”
“그러니?”
“…….”
대뜸 윤이별에게 답하는 정하양.
윤이별은 말문이 막힌 듯했다.
반면 정하양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여유로움을 과시했다.
그녀의 입장에서, 윤이별이 은하를 좋아하는 일이야 진즉에 알아차리고 있었다.
기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친구들도 눈치 채고 있을 것이다.
필시 은하 또한.
“…그러니까…, 하양이 넌 은하랑 어렸을 적부터 ‘친구사이’였으니까 날 좀 도와주지 않을래?”
“…….”
그러나 이것은 예상치 못했다.
정하양은 웃는 얼굴로 굳었다.
올라간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가며 그녀가 진중한 얼굴을 한다.
“─미안한데 그건 안 될 것 같아.”
“…….”
“나도 은하를 좋아해.”
뻔히 보이는 수작이다.
그녀가 이별의 마음을 알고 있듯, 이별도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별이 자신을 도와달란 말을 꺼냈다는 건 교묘하게 자신을 은하로부터 떼어내려는 수작이었다.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친구라고 생각해서 선의의 경쟁을 하려고 했던 반면에 그녀는 비겁한 술수를 사용하려 한 거니까.
“”…….””
시선이 부딪쳤다.
정하양은 윤이별의 시선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신경전에서 물러난 사람은 윤이별이었다.
“…미안해. 그냥…, 한 번 확인만 해보려고 한 거였어.”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윤이별.
정하양은 그녀의 사과를 무시하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며 주변 사람들이 대화를 듣지 못하게 방음결계를 전개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심기가 상했다.
정하양은 손에 쥔 펜을 돌리면서 차분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이에 윤이별은─.
“─문화제 때 봤어. 하양이 너하고 은하가 탑에 있었던 것도.” “…….”
“사실 그 전부터 따라다녔었어.”
윤이별이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정하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기억을 샅샅이 뒤지며 그날 탑에 있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 윤이별이 있기는 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생각해보니 그녀는 윤이별의 기척을 눈치 채지 못했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윤이별이 뒤따라왔다는 걸 그날 내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 윤이별이 성장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실력이 변변치 않다고 생각했던 윤이별이 이제는 그녀가 경계할 만한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너희 사이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
“아니, 그때 이후로 더 어색해진 느낌이야.” “…….” “너희, 사귀는 거 아니지?”
그리고 그녀의 허를 찌르듯이.
이제는 이별이 생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정하양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이별은 정하양이 답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 예상이 맞았구나.”
“…아니야.”
“아니더라도…, 나는 괜찮아.” “뭐?”
“문화제가 끝나고 계속 고민했는데 이렇게 속에 담아둘 바에는 차라리 은하한테 내 마음을 고백해보기로 결심했거든.”
쑥스럽다는 듯이.
뺨을 붉히며 말하는 윤이별.
하양은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으며 펜을 돌리던 손짓을 멈췄다.
이윽고 정하양이 입을 열었다.
“─소용없을 거야.”
단언 그리고 확신.
정하양은 흔들림이 없는 목소리로 윤이별에게 말했다.
아니, 경고했다.
“왜?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윤이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녀가 추궁했다.
“은하는 지금 누구하고도 사귀려고 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걸 하양이 네가 어떻게 아니?”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아?”
“…….”
당연하다는 투로 되묻는 정하양.
윤이별은 울컥한 얼굴을 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테이블 아래에서 손으로 치맛주름을 꽉 쥐며─.
“─그래도 한 번 고백해보려고.”
“…….”
“혹시 모르는 일인 거잖아. 어쩌면 은하가 받아줄지도….”
“그럴 리는 없을 거야.”
“오늘 하양이 너하고 만나자고 한 이유는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였어. 나는 이번에 은하한테 고백할 건데 너는 아무것도 안 할 거니?”
“…….”
표독스러운 물음이 가슴을 후빈다.
정하양은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고가 헤맨다.
선택을 내리지 못한다.
“─나는 미리 알려줬어. 그러니까 나중에 어떻게 되든
,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자 윤이별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는 미련을 보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이별이 멀어진다.
이제 자리에 홀로 남은 정하양은 하염없이 테이블 위를 쳐다보면서 생각에 빠졌다.
이내 결론을 내린다.
─안 될 거야.
은하는 받아주지 않을 거야.
그녀는 노은하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요즘 들어 자신을 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너 미워. 진짜 미워. 이 겁쟁이. 너 나빠. 바보, 멍청이, 똥개….”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날 이후로 다시금 자신을 밀어내려 하고 있다.
그가 얼마 전에 말하기도 했었다.
‘─미안해. 내가, 아직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아.’
은하는 모든 걸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 말을 해석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다.
하양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던 기억을 애써 잊으며 펜을 쥐었다.
여하튼 윤이별의 고백은 안타깝게도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뽀각
그럼에도 속이 들끓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노은하가, 정말 밉다.
☆
마음을 할애할 틈이 없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나눠주게 되면 그 즉시 무뎌질 것만 같다.
그리고 무뎌진 칼로는 최정훈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최소 1년, 최대 3년.
갤럭시그룹의 성장세가 주춤하는 기회를 만들었어.
마침 시기가 적절해. 그때가 되면 서울 침공이 일어나게 될 테니까. 그때 쐐기를 하나 더 박아 넣으면, 갤럭시그룹은 피해를 추스르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갤럭시그룹을 확실하게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이 생겼다.
현재 수면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용한 승계분쟁은 갤럭시그룹에게 야금야금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유도준의 말에 따르면 몇 년 간은 갤럭시그룹의 분위기가 어수선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은하는 이 기회를 발판으로 더 나은 미래를 그렸다.
갤럭시그룹이 선녀정부에게 조금도 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미래를.
─우보
그러니 그 미래를 만들기 위하여.
은하는 문화제가 끝나고부터 계속 훈련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아니, 훈련으로 잡생각을 잊으려 하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솟구치려 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했다.
우보
결실은 있었다.
은하는 이제 우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실력에 도달했다.
이도류를 사용하는 품세도 더욱 더 정교해졌다.
월무(月舞)
“허리를 유연하게 써야지! 힘으로 휘두르지 말고, 하체로 지탱한 다음 허리로 휘두르는 거야.”
백서진의 도움도 있었다.
그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와서는 훈련을 도와준 것이다.
심지어 이전 삶에서는 배우지 못한 이도류 마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마나 크래셔와 광무를 섞은 데다가 천보를 곁들인 마법.
칼날에 마나를 머금은 채로 최소 8연속 이상 검을 유려하게 휘두르는 마법은 근거리 전투에서 유용하다고 할 수 있었다.
휙
챙
스륵
은하는 8번째 공격을 마쳤음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공격이 끝난 곳에서 가장 이상적인 자세를 지닌 마법을 사용해 흐름을 연결했다.
그리하여 15연속으로 검을 휘두른 그는 백서진의 목을 베러─.
“─아직 일렀…어?”
슥
바로 그 순간.
백서진은 우보를 사용하여 재빨리 은하의 등 뒤를 밟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은하가 한 수 더 위였다.
백서진이 우보를 사용함과 동시에 은하 또한 우보를 사용해서는 그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허, 참….”
백서진이 우보 외에 별다른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목을 내주게 된 백서진은 깜짝 놀라서는 헛웃음을 삼켰다.
“그래, 내가 졌다, 졌어. 설마 네가 내 다음 수를 예측할 줄은 몰랐다.”
“그동안 계속 보여주셨으니까요. 예상하는 거야 간단했죠.” “예상하는 게 간단하다니, 창진이 그놈도 기프트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못하는 짓인데…. 진짜 난 놈일세.”
머리 위로 두 손을 들어올리고는 혀를 내두르는 백서진.
은하는 검을 거두며 고개를 숙여 그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오늘 훈련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아니,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주로 아카데미도 종강이니까.
선생님도 바쁘셔서 앞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하시고.
“3개월인가…. 짧은 기간에 꽤나 많이 성장했구나.”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러냐. 너 혼자서 해낸 거지. 오늘 대련은 특히 아주 좋았어.” “그동안 계속 선생님의 움직임을 연구했었으니까요.”
“연구한 티가 제법 나기는 했지. 그래서 오늘 그 결과를 보게 됐다만 네가 숨기고 있는 실력을 꺼냈다면 이미 오래 전에 내 뒤를 잡았을 수 있었을 거다.” “…….”
“하하, 정곡이었나?”
“…아뇨.”
백서진이 지나가듯 툭 내뱉는다.
하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은하는 절로 뜨끔해서는 할 말을 순간적으로 잊고 말았다.
그러자 백서진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서슴없이 손을 뻗으며 은하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 머리 만지지 좀 말아요.”
“기특해서 그러는데 이거 왜 이래? 그래, 플레이어라면 비장의 카드는 숨기고 있을 줄 알아야지. 실력이 전부인 업계에서 밑천을 다 보이면 안 된다는 걸 명심해라.”
“…그래서 그러고 있어요.”
“그래도 아쉽네. 네 실력을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딱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되겠냐?”
백서진이 장난스럽게 검지를 피며 은하에게 부탁했다.
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보여줄 수가 없는 마법이 워낙에 많았다.
백서진이 이제 와서 살상용 마법을 어떻게 익혔는지 묻지는 않겠지만, 을 상대로 몸가짐에는 조심해야 했다.
혹시 모를 일이었다.
“이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그래, 은하야. 그럼 나는 이제 그만 가보마.”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전 삶에서도, 이번 삶에서도.
은하에게 백서진은 은사가 되었다.
은하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서는 그간의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때였다.
“─은하 너에게 한 가지 물으마.”
“…네.” “네 검은 무엇을 위해 있는 거냐.”
“…….”
진중한 표정으로 묻는 백서진.
은하는 그를 마주하고 나서는 잠시 멈칫했다.
네 검은 무엇을 위해 있는 거냐.
이전 삶에서도 들은 말이었다.
그때 은하는 자신의 검은 오로지 죽이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었다.
“…….”
어쩌면 백서진의 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질문.
은하는 자신을 시험하는 듯한 그를 바라보며 할 말을 곱씹었다.
내가 이제 와서 선생님의 가 될 필요가 있는 걸까?
하지만 만약 누군가의 가 된다면 선생님의 가 되는 게 가장 좋아.
선생님은 어둠하고도 깊이 연관된 사람이니, 가 되면 당연히 어둠의 정보를 마음껏 이용할 수가 있을 거야.
은하는 갈등했다.
백서진의 가 되도 좋고, 되지 않아도 좋았다.
하지만 백서진의 힘을 이용하려면 가 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은하는─.
“─선녀를 지키기 위한 검입니다.”
“호오….”
선녀를 지키기 위한 검.
은하는 장고 끝에 입을 열었다.
다분히 마나관리기구에 속해 있는 백서진을 의식하고 꺼낸 말이었다.
이전 삶에서 십이좌를 은퇴하고도 선녀를 지키는데 적극적이었던 그가 마음에 들어 할 대답일 것은 확실했다.
무엇보다 은하의 진심이기도 했다.
“…눈을 보니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구나. 아주 좋은 일이지. 너 같은 유망주가 선녀님을 지키는 검이 되겠다는 건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백서진이 관심을 보였다.
은하는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보자. 너는 대체 무엇으로부터 선녀님을 지키고 싶은 거냐?”
무엇으로부터냐고.
백서진의 질문을 받은 은하는 애써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참으려 했다.
하고 싶은 말이야 참 많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들, 백서진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은하는 회귀 전에 느꼈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로 했다.
“─전부요. 선녀님께 위해가 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지킬 거예요. 어느 누구도 선녀님을 거스르지 못하게 만들 거고요.” “…….”
시선과 시선이 맞는다.
백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턱을 쓰다듬으며 은하를 평가할 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하여 그는─.
“─너는…, 정말 위험한 놈이구나. 네 눈빛을 보아하니, 설령 광인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네 원대한 뜻을 실현시킬 생각이야.”
“…….”
회귀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은하는 백서진이 무겁게 읊조리는 말을 듣고는 멍하니 선 채로 눈을 깜빡거렸다.
백서진이 탄식한다.
“─아무래도 너와 내가 가려 하는 길은 전혀 다른 길이겠다.”
“…….”
“그래, 은하 네가 과연 어디까지 할 수가 있을지.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으마.”
백서진은 몸을 돌렸다.
은하는, 멀어지는 그의 등을 보며 여전히 멍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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