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97
불이 켜지지 않은 방.
윤이별은 다리를 끌어모은 자세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너무해.”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한 채로.
그녀는 벌써 몇 번이고 되뇐 말을 읊조렸다.
시선은 계속 화면에 못박혀 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정하양에 대한 배신감.
노은하에 대한 실망감.
그녀는 마음을 무겁게 가라앉히는 감정을 곱씹었다.
“…….”
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은하와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정하양.
윤이별은 노은하의 프로필을 보며 부정적인 감정 속으로 침잠한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는 게 어려운, 바닥이 존재하지 않는 심연.
심연이 그녀의 마음을 좀먹는다.
☆
정하양의 공개고백.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계약연애.
은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8세가 됐고, 1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시간 한 번 빨리도 지나가네.
정신없이 지나간 3주였다.
은하는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했다.
좀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정하양과 사귀기로 했다지만─.
─정작 변한 건 없었으니까.
사귀기 전이나 사귀고 나서나.
은하와 정하양, 두 사람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냈다.
단 둘이 만나 밥 먹고, 카페 가고, 영화를 보러 가고, 쇼핑을 다니고, 다른 곳으로 놀러 다니는 등등.
그나마 변한 게 있다면 두 사람이 만나는 횟수
가 늘어났다는 것뿐.
지금이야 겨울방학을 해서 시간에 여유가 생기기도 했으니까.
개강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어.
그러나 은하는 쉼 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숙지하고 있었다.
이대로 정하양이 즐거워할 수 있게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억눌러야 했다.
정하양과 거리를 둬야 했다.
“이 누나는 돌아온 건 정말 좋은데 내가 한가한 줄 알고 막 부려먹으려 한단 말이야….”
그러는 차에 한서현이 귀국했다.
한서현과 연락이 닿게 된 은하는 그녀가 꼬치꼬치 캐묻는 통에 그만 자신이 하양과 거리를 두려 한다는 생각을 엿보이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가 대뜸 만나자고 한 것이다.
덕분에 은하는 오늘 예정돼 있던 데이트도 뒤로 미뤄야 했다.
하양이가 싫어하지 않은 게 정말로 다행이지.
조금 삐진 것 같지만….
사실 굳이 약속을 취소하면서까지 한서현에게 휘둘릴 이유는 없었다.
그녀를 만나야 하는 중대한 일이 발생하지만 않았더라면.
은하는 며칠 전에 한서현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얘는 어디에 있는 거야?”
종로구 루미너스 호텔 내 카페.
은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먼저 도착해 있다는 문자를 보낸 그녀를 찾았다.
“─여기야.”
“아….”
그녀를 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손을 들어올려 자신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외모가 절로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마치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난 그는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니?” “…오랜만이야.”
여성스러움을 연출한 반묶음 머리.
그리고 왼쪽 어깨에 얹은 머리칼.
흔들리는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조명에 반짝이는 귀걸이.
은하는 순간적으로 넋을 놓았다.
☆
한서현이 갤럭시그룹의 최정훈과 약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은하는 그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하려 했었다.
그간 시리우스그룹은 갤럭시그룹을 넘어서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제 와서 시리우스그룹이 갤럭시그룹과 손을 잡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한테 영원한 적이란 말은 없는 법이야. 서로에게 이득이 되면 거래를 하는 게 우리들 기업가들의 방식이거든.” “아니, 그래도 지금까지 숙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룹하고 난데없이 손을 잡는다는 게….”
“말이 되지. 시리우스와 갤럭시가 손을 잡게 되면 얻게 되는 이득이 아주 명확하지 않니?”
“끙….”
갤럭시와 시리우스의 연대.
두 그룹이 손을 잡게 된다면 필시 국내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가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오게 되리라.
은하는 전화로도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그녀에게 직접 듣고는 뭐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런 반면 한서현은 아주 여유롭게 커피 향을 즐기고 있었다.
…이전 삶에서는 없었던 일이야.
하긴…, 당연하다고 할 수가 있나. 이전 삶에서 시리우스그룹의 직계는 한서연이 유일했으니까.
한 그룹을 경영해야 하는 한서연이 최정훈하고 결혼할 리가 없지.
은하는 속으로 끙끙 앓았다.
그는 갤럭시그룹이 성장해 미래에 국가경제를 손아귀에 집어넣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갤럭시그룹과 시리우스그룹이 함께 손을 잡아 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는 미래 또한 바라지 않았다.
어떻게든 막아야만 하는 미래였다.
아버지도 그랬지.
지금 윗선에서 서현이랑 최정훈이 약혼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기는 하다고….
전부…, 나 때문이야.
회귀 전에는 존재하지 않은 미래.
그는 일련의 흐름이 자신이 미래를 바꿔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몇 개월 전, 최정훈은 이복여동생 최가인을 죽이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었다.
그로 인해 최정훈의 약혼자가 등을 돌리고 만 것이다.
지금 최정훈은 아무런 권한도 없이 자택에서 근신을 하고 있는 직계에 지나지 않았다.
최정훈은 지금 모든 힘을 잃었어.
그러니 시리우스그룹과 손을 잡아 잃어버린 힘을 되찾으려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야.
아주 그럴듯한 상황.
은하는 한서현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한 번 파혼을 했잖니. 마침 정훈이 오빠도 파혼을 했으니 서로 하나씩 흠을 가지고 있는 거니 격이 맞는 셈 아니니?”
“…정훈이 오빠? 그 사람이랑 어째 친한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3살 많으니 오빠라 부르지 그러면 뭐라 불러야 하겠니?”
“…….”
또다시 약혼을 하게 된 상황에서.
한서현은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이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는 지금 걱정하는 중인데….
이 누나는 걱정도 안 하네.
그리고 뭐 정훈이 오빠? 허, 참….
정훈이 오빠.
어째 마음에 들지 않는 울림이다.
은하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러자 그녀가 눈꼬리를 곱게 휘며 커피를 마셨다.
“마침 다행이지. 한 번 파혼해버린 나는 쉽게 결혼할 거란 생각 자체를 포기하고 있었으니까.”
“…저번에는 나한테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어?”
“마음 같아서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시리우스의 직계인걸. 내 마음만을 앞세울 수는 없잖니.”
“…….”
“그러니 이왕 시집을 갈 바에는, 나하고 격이 맞는 상대에게 가는 게 좋지. 상대가 정훈이 오빠라 하는데 내가 무슨 명분으로 거절하겠니?”
말과는 다르게.
묘하게 여유롭다.
은하는 다리를 바꿔 꼬는 한서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의문에 답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피식 하고 웃는다.
“왜. 내가 약혼하는 게 싫어?”
“…네가 싫어하는데 당연히 싫지.”
“그건 꼭 내가 만약 좋아하면 너는 축하해줄 수 있다는 뜻이니?” “…….”
“왜 말이 없어?” “…꼭 내 의견을 물어야 하나?”
“얼굴에 싫다고 써져 있으면서도 아닌 척하기는.”
“내가 언제?”
“내 눈에는 다 보여.”
한서현이 놀린다.
은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예쁜 애가 예쁜 걸 알고 있으니까 짜증이 났다.
그런데 예뻐서 화도 못 내겠다.
그녀는 마치 눈치라도 챈 듯이─.
“─지금 여자친구도 있는 사람이 다른 여자한테 한 눈 파는 거니?”
“뭐래.”
한서현이 몸을 앞으로 내민다.
그녀가 턱을 괴며 키득거린다.
은하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럼에도 한서현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이제 네 얘기해줘. 나도 자세히 한 번 듣고 싶어. 하양이랑 어쩌다 사귀게 된 거니?”
“…저번에 전화로 말했던 대로야.”
한서현이 부드러운 어조로 묻는다.
은하는 별 거 아니라는 투로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윤이별의 고백, 정하양의 공개고백.
그러자 한서현은 나직이 감탄하며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냈다.
정작 그때 그 상황에 놓인 은하는 죽을 맛이었지만.
여하튼 그는 그 자리에서 정하양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의외기는 의외네. 나는 너희가 맨날 썸만 타다 늙어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내가 언제 썸을 탔다 그래?”
“그럼 안 탔니?” “…….”
“이제 와서 네 마음을 숨기려 하지 마렴. 자꾸 아니라고 우기면 너무 매력 없어.”
“…그래, 썸 탔다. 됐냐?”
“그래, 아무튼 축하해. 하양이하고 즐거운 사랑하기를 바랄게.” “…누나도 알잖아. 내가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그럴 거면 처음부터 고백을 받지 말았어야지. 계속 얘기해보렴.”
한서현이 털털하게 은하의 연애를 축하해주었다.
그는 무언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그녀의 축하를 들었다.
그러다 그녀가 태연하게 툭 내뱉은 말에 정곡이 찔렸다.
하지만 여기에도 사정이 있었다.
그때 은하는 앨리스그룹을 적으로 돌릴 수 없었던 것이다.
하양이 다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된 거야.”
“흠…. 1년이라….”
한서현이 먼저 자신이 처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은하도 계약 연애에 대해 그녀에게 말했다.
자신이 하양과 계약 연애를 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당연히 가족들은 모르지.
알고 있는 사람은 민지, 서나, 은혁이, 은우, 민호 정도인가.
파랑이 형은 입이 싸니까 당연히 말하지 않았고.
수빈이는 뭐….
은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천천히 나열했다.
그러다 멈칫했다.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윤이별도…, 있었지.
윤이별.
은하는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번에 은하는 자신이 그녀가 아닌 정하양을 선택한 것으로 윤이별을 상처 입혔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윤이별은 그날 이후 얼굴이 파리하게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양이랑 1년간 사귀어보기로 약속했어.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그때까지 답을 미룰 수 있게 해줘.’
‘…알았어. 기다릴게….’
‘미안.’
기약 없는 희망고문.
은하는 를 영입하러 몹쓸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일전에 은아로부터 충고를 들었던 그로서는 착잡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필시 그녀가 받게 되었을 상처는 그딴 감정으로는 표현할 수 없으리라.
그래도 일단 시간을 벌기는 했어.
한편으로 은하는 안심했다.
1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생겼다.
그 안에 윤이별의 마음을 설득해 그녀를 어엿한 파티원으로 영입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무지하게 힘든 일이 될 듯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1년 뒤에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윤이별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그녀를 파티에 영입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바로 그때─.
“─나하고 있을 때에는 다른 여자 생각은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아.”
“나는 내가 무시당하는 건 싫어. 네가 지금 생각한 사람이 하양이든, 다른 사람이든 간에.”
“…….”
“그게 예의인 거야. 대화할 때에는 앞에 있는 사람한테 집중해야 하지 않겠니?” “미안, 내가 잘못했어.”
“알면 됐어. 그럼 이제 나만 봐.”
“네, 네.”
한서현에게 혼쭐이 났다.
그는 그녀에게 미안하다 사과하며 어느새 식은 머그컵을 입에 댔다.
“근데 하양이 말이 마냥 틀린 말은 아니지.” “뭐가?” “네가 겁쟁이라는 거.” “…….”
“네 논리대로라면 플레이어는 그럼 연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 아니니?”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그게 그거지.”
한서현이 다리를 푼다.
그러고는 이내 구두를 신은 발로 그의 다리를 가볍게 툭툭 친다.
은하는 테이블 아래에서 벌어지는 그녀의 장난에 뚱한 표정을 짓기만 했다.
“너는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그걸 실행하려면 연애를 할 시간을 내기 힘들 것 같다며. 그런데다가 크게 다칠 수도 있다고 하고.” “그렇지.”
“그래서 하양이한테 괜히 상처만 주게 될 거라는 거고. 그럴 바에는 사귀지 않는 게 좋겠다는 거고.”
“응, 맞아.”
“복에 겨운 소리를 하는 구나?”
“…….”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니? 네 손에 인류의 명운이라도 달렸니?”
인류의 명운이 달려 있다.
은하는 그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한서현이 믿지 않을 게 뻔하니까.
“그래도 개소리야.”
그럼에도 상관없다고.
한서현이 평소에는 담지 않는 말로 은하를 비꼰다.
“겨우 사람 한 명의 손에 인류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시점에서 나는 그딴 세상은 멸망해버려도 싸다고 생각해.”
“…….”
“네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하면 될 일인 거야. 역사를 통틀어 세상은 그렇게 발전하고 쇠락해왔고, 그건 세상이 한 번 멸망하고 나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야.”
한서현이 코웃음을 친다.
은하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맞기는 했다.
은하 역시 혼자서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네가 파티원들을 모으고 있는 건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 거 아니니?”
“…맞아.”
“그러면서 왜 너 혼자 전부 하려고 그러는 거니. 네가 좋아하는 말로, 참 비효율적인 짓이구나.”
“…….”
“내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이고 말이야. 일본에서도 말하지 않았니. 세상에 영향을 끼칠 힘을 가진 네가 아랫사람의 사고방식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게.”
자신의 논리로 공격을 당했다.
은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론이었다.
그녀의 말이 모두 맞았다.
맞기는 했는데─.
─그래도 안 돼.
서현이는 미래에 얼마나 강한 적이 나올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하양이를 힘들게 할 수는 없어.
그럼에도 은하는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고집, 아집, 집념.
32년에 걸쳐 퇴적된 인생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자신이 없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자면.
은하는 자신이 없었다.
은연중에 자신은 마음 한 구석이 망가져 있는 사람이라고 자각하고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감정이 마모된 자신의 속내를 알게 된다면 그들은 깜짝 놀라서 도망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연애는 바로 그가 꺼려하는 상대의 속내를 알아가는 일이었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하양이를 울리고 싶지 않아.
그래서 은하는 변함이 없었다.
마음속에서 내린 결단은 확고했다.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연애를 하며 정하양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떠나게 만들겠다고.
“그래, 은하 네 마음이 정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자기 일이 아니라는 양.
이윽고 그의 눈치를 살핀 한서현이 선뜻 물러났다.
그녀가 차분히 커피를 마신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근데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뭐?”
“하양이가 은하 너한테서 멀어지게 하는 거 말이야.”
“…어떻게?”
돌연 표정을 싹 바꾸는 한서현.
그는 화사하게 미소를 짓는 그녀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은하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하양을 멀리한다고 다짐했지만, 어떤 식으로 멀리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친구들은 무조건 하양의 편을 들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잘 들어.” “응.”
그래서 그는 그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은하는 바른 자세를 취했다.
한서현이 키득거리기를─.
“─간단해. 나랑 약혼하는 거야.”
“…엥…?”
노은하는, 벙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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