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05
사실 주말에는 정하양과 데이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은하는 온태양의 가족들을 만나기 전에 그녀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야 했다.
당연히 그녀는 토라지기는 했어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갈까?’
‘음…, 아니야. 하양이 너까지 가면 그 사람들도 많이 불편해할 거야.’
‘치, 그래서 지금 아라하고 단 둘이 데이트하러 가시겠다?’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
‘남녀가 단 둘이 밖에 나가서 놀면 그게 데이트지 모야.’
‘나가서 노는 게 아니라 일을 하러 가는 거야. 난 지금 여친도 있는데, 내가 설마 다른 여자하고 데이트를 하겠어?’
‘헤헤, 은하야.’
‘왜?’
‘여친만 있는 게 아니고 약혼자도 있지 않니? 그런 사람이 다른 여자 운운하는 건 좀….’
‘…내가 잘못했다.’
물론, 정하양과 가벼운 실랑이가 있기는 했다.
그녀는 그가 조아라와 단 둘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안한 듯했다.
사실 그녀가 경계심을 갖는 사람은 비단 조아라만이 아니었다.
정하양은 그의 여자친구가 된 이후 그가 알고 지내는 여자들에게 모두 경계심을 보이고는 했다.
은하는 자신이 그리도 못 미더운가 싶었다.
‘─당연하지.’
그때 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정하양이 일축했었다.
‘은하 널 믿어야 하는 건 맞는데….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너를 믿기는 좀….’
‘…….’
‘서현 언니는 네가 하렘을 차려도 상관하지 않을 거라고 했고, 나도 서현 언니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둘이서 언제 그런 얘기한 거야?’
‘그래도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하렘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는걸. 딱…, 나하고 서현 언니까지만 해.’
‘…….’
‘그래도 은하 네가 좋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안 해. 내가 하렘을 왜 만들겠어.’
어쩌다 보니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그녀가 가진 불안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이참에 확실하게 단언했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내가 그렇게 신용이 없나….”
정하양도 그렇고, 한서현도 그렇고.
그들의 심정이야 모르지 않더라도, 그래도 왜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은하는 온태양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던 아라가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길─.
“─당연한 거 아니야? 연애를 해도 상대가 정말 날 좋아하는지 아닌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말이야. 근데 너는 한 사람이랑 사귀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이랑 사귀고 있으니 당연히 불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
“두 명이랑 사귀는 거 아니거든. 한 명은 그냥 약혼자야.” “네, 네.”
“그리고 연애도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걸 어떻게 잘 알아?”
“누가 연애 한 번도 안 해봤대?”
숨을 헉헉 쉬며 언덕길을 오르다 뒤처진 은하를 돌아보는 조아라.
그녀가 표독스런 얼굴을 했다.
그녀와 다르게 고르게 숨을 쉬던 은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온태양 일편단심인 네가 연애를 해봤을 리 없지.” “…뭐지. 이상하게 짜증이 나는데, 또 이상하게 나를 잘 알고 있어서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
“그냥 기뻐해.”
“너, 이런 식으로 해서 나 꼬시고 그러는 거 아니지?” “갑자기 왜 이래? 나 여친도 있고, 약혼자도 있는 사람이야.”
“흥,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이 세 다리를 못 걸칠 것도 없지.”
“나는 그럴 생각 없다니까?”
“하양이가 왜 불안해하는지 나도 알 것 같아.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얘 나한테 관심 있나 했네.”
조아라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친다.
은하는 생명의 위기를 느낀 듯이 도망치는 그녀를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조아라의 입꼬리가 연신 씰룩거리고 있다.
그녀가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깨닫고 있던 은하는 상대를 해주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 얼마나 더 가야 해?”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거의 다 왔어.” “너도 여기 사는 거야?”
“…그건 또 왜 물어? 물어서 대체 어디에다 쓰려고.” “그냥 물으면 안 돼?”
“너 혹시….” “아니야. 아니거든. 아니라니까.”
“미안하지만 내 쪽에서 거절할게. 하양이랑 약혼자 분이랑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랄게.”
조아라가 아주 역할에 심취했다.
은하는 까르르 웃으면서 뛰어가는 그녀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되게 높은 곳에 사네.
높이가 낮은 계단이 겹겹이 쌓인 지대를 올랐다.
어쩌다 그녀와 가위바위보를 하며 계단을 오른 그는 자신이 왔던 길을 내려다보았다.
높이도 올라왔다.
온태양의 집은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다 왔어.” “여기야?”
“응, 여기야.”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온태양의 집에 도착했다.
은하는 녹색으로 칠해진 대문 앞에 섰다.
그가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는데, 조아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네, 누구세요?]“태희야, 나야.”
[응? 언니?]앳되고 여려 보이는 목소리.
은하가 온태양보다 4살 어리다는 여동생의 목소리를 듣고 느낀 감상이었다.
이런 데에서 어머니하고 단 둘이 살고 있는 건가.
아라가 뭐라고 말을 하는 사이.
은하는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당히 외진 곳에 떨어져 있었다. 듣자하니 온태희가 다닌다는 학교도 집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에 있다는 모양이었다.
낮에는 어떨지 몰라도…. 밤에는 혼자 다니기 무섭겠네.
간간이 빈 집도 있는 듯했다.
은하는 이곳까지 오며 지나온 길을 떠올렸다.
그때쯤─.
[─들어오세요.]초인종을 매개로 조아라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듯했던 온태희가 곧 대문을 열어주었다.
☆
당연히 온태양에게는 비밀로 했다.
은하가 그의 집을 찾아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노발대발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여, 조아라는 온태양이 모르게 이번 일을 주도한 것이다.
…집이 좀 작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나.
방이 두 개다.
안방 하나랑 조그마한 방 하나.
은하는 온태양의 여동생 온태희가 마실 것을 가지러 간 사이에 방안을 살폈다.
조아라의 말에 따르면, 온태양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온태희는 안방에서 어머니와 같이 생활했었다고 한다.
현재는 다락방처럼 보이기도 하는 방을 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고.
“─드세요.”
“고마워. 잘 마실게.”
잠시 후.
온태희가 오렌지 주스를 가져왔다.
은하는 그녀로부터 음료를 받으며 자신의 여동생 노은애와 키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묘하게 정감이 가는 듯했다.
성격도 조금 은애를 닮은 것 같아.
온태희의 태도가 자못 살갑다.
은하는 처음 온태희가 자신을 보고 반갑게 맞이한 걸 떠올리고 조용히 키득거렸다.
그때 얼굴 표정이 얼마나 다채로웠던지.
“응? 왜 그러세요?”
“아니야, 아무것도.”
“주스는 입에 맞으세요? 그 쥬스, 이번에 처음 만들어본 건데….”
“그랬어? 어쩐지 맛있더라.”
“집에 많이 있는데 이따가 한 병 가지고 가실래요?”
“그래도 돼? 그럼 한 병 받아갈까.”
“네, 그럼 이따가 준비해놓을게요!”
지금도 그랬다.
아라가 온태양의 어머니와 근황을 주고받고 있는 가운데.
온태희는 그가 무료해하지 않도록 옆에서 말을 걸어주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녀는 온태양과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다.
자신이 시리우스그룹의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감탄하기만 할 뿐, 온태양처럼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했고.
“─시리우스그룹 분이시라고요….”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사이.
아라가 온태양의 어머니와 대화를 마쳤다.
사전에 어느 정도 설명을 들었던 어머니가 온태희의 부축을 받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죄송해요.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제대로 대접도 못해드리네요.”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편하게 말 놓으세요, 어머니. 저는 온태양…, 태양이 친구인 걸요.”
“…그래. 그럼 편하게 할게.”
온태양의 어머니가 앓고 있는 병은 체내에서 마나가 체외로 빠져나가는 마나고갈증.
다시 말해, 생명력이 고갈돼 가는 병이었다.
그걸 방증하듯 온태양의 어머니는 척 보기에도 얼굴에 생기가 없었고, 매우 수척해 보였다.
“태양이한테 이렇게 좋은 친구가 있을 줄은 몰랐네. 그 애는…, 지금 잘 지내고 있니?”
“응? 태양이한테 연락이 없어요? 걔가 저한테 주말마다 연락한다고 그랬는데….”
“주말마다 연락을 하기는 하지…. 맨날 집에 무슨 일 있냐고 묻는 게 전부지만. 내가 톡을 보내도 오빠는 맨날 바쁘다면서 연락이 늦다니까? 은하 오빠, 아카데미 생활이 그렇게 많이 바빠요? 연락도 못할 만큼?”
“…바쁘기는 하지. 그렇다고 연락 못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온태양의 어머니가 자식의 안부를 묻는다.
태희는 마침 말이 나왔다 싶었는지 온태양이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태희야.”
“그치만 엄마.”
이후로도 태희는 온태양이 얼마나 바쁜지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은하가 그녀가 하는 말을 들어주니 그녀가 이참에 모조리 토해내는 것 같았다.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오빠가 플레이어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었냐고…. 나는 엄마랑 오빠랑 셋이서 살기만 해도 그걸로 좋은데….”
그러나 그녀가 온태양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투에는 온태양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말이 심했죠?”
“내 얘기도 아니었는데 뭘. 괜찮아. 온태양이 너한테 신경을 많이 못 쓴 모양이네.”
“…네, 맞아요.”
그러다 은하의 시선을 느꼈는지.
무심코 은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드러낸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은하는 부끄러움에 몸을 들썩이는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나 조아라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태양이랑 같이 오지 않고, 오늘 이렇게 따로 만나자 한 이유는 뭐니?”
대화가 무르익었다.
아라가 온태양에 대한 화제를 꺼내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
온태양의 어머니가 의문을 표하며 은하에게 물었다.
온태희도 내심 궁금한 눈치였는지 곁눈질로 은하를 쳐다보았다.
이에 은하는─.
“─아라랑 태양이한테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친구된 도리로서, 제가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서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찾아뵌 거예요.”
말은 청산유수였다.
은하는 준비해온 말을 꺼냈다.
이미 온태양의 어머니와 온태희는 아라를 통해 시리우스그룹의 후원을 받게 될 거라고 들은 후였다.
그래서 은하는 구태여 후원이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 시리우스그룹에서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태희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게 마음이 아팠는데 잘 된 일이지.” “엄마 또 그 소리야? 엄마가 언제 나한테 부담을 줬다고 그래?”
“그런데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왜 태양이한테 후원을 받는다는 걸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거니?”
물론, 그렇다고 온태양의 어머니는 시리우스그룹의 후원을 받을 거라며 순수하게 기뻐하지 않았다.
은하 자신이 온태양의 친구인 것을 표명했다고 한들.
그녀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후원을 받게 될 거란 이야기가 꺼림칙하게 느껴진 것이리라.
세상에 이유 없는 돈은 없었다.
“혹시 후원으로 태양이를 묶으….”
“그건 아니에요.”
“…….”
“정말 순수
히…. 태양이 친구로서 돕고 싶었을 뿐이에요.” “맞아요. 은하는 안 그래요.”
온태양의 어머니가 의심한다.
병마와 싸우고 있어 힘들 텐데도 그녀는 어머니로서 자신의 아들이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했다.
그래서 은하는 재빨리 대답했다.
때마침 조아라도 거들어주었다.
“─태양이한테 말하지 말아달란 건 태양이가 알면 제 선의를 거절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에요.” “맞아요. 태양이가 이런 면에서는 자존심이 세잖아요?”
“…정말이니?” “나중에 서류에 사인할 때, 조항을 꼼꼼히 확인해보시면 될 거예요.”
이 역시 예상한 일이었다.
은하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나중에 서류를 확인하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온태양의 어머니는 그제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었다.
은하는 속으로 안도했다.
말로는 선의라고 했지만─.
─선의만한 거짓말도 없지.
이 세상에 선의 같은 건 없어.
당연히 눈먼돈도 없는 법이고.
은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들에게 후원을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계약서는 그들에게 어떠한 의무도 부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사람 마음이 어디 편하겠어?
지속적인 후원을 받으면서도 과연 부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군다나 엘릭서가 완성된다면.
온태양의 어머니는 자신을 치료한 그를 생명이 은인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책임감이 강한 온태양이라도 마냥 그를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
은하는 단언할 수 있었다.
온태양은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온태양이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 한.
이 사람들만 잡아두면 돼.
그렇게 되면 온태양은 내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이젠 온태양을 파티에 들여도 좋고 들이지 않아도 좋다.
파티를 원활히 운영하지 못한다면 파티에 들이지 않고 온태양이 따로 세력을 만들게 후원할 뿐이다.
은하가 그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라는 기프트였으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에이, 편하게 말씀하시라니까요?”
그야말로 다른 하나의 공략법이다.
온태양의 어머니가 그에게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한다.
은하는 손사래를 쳤다.
☆
제법 시간이 지났다.
저녁이 다 돼가고 있었다.
은하는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태양이한테는 미안한 게 많아.”
온태희가 가족사진을 가져왔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온태희, 그녀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온태양.
그리고 온태양의 아버지.
온태양의 어머니는 사진을 만지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태양이는 모르는 일이란다. 그러니…, 너희도 태양이한테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조아라의 도움 덕분에.
은하는 온태양의 어머니에게 그가 온태양과 가장 친한 친구란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가 온태희와 죽이 잘 맞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온태양의 어머니는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태양이 아빠는 뭐라 해야 할지, 그래…,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었어.”
“””…….”””
“태희한테도 처음 말하는 거지만, 그동안 나는 태양이 아빠가 YH제당에서 일했었다고 말했지만….”
온태양의 어머니가 입을 연다.
세 사람은 마치 죄를 고백하듯이 토로하는 이야기에 끼지 못했다.
은하는 양옆에 앉아 있던 아라와 온태희의 안색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이 천천히 굳어지고 있었다.
아라한테 들은 이야기하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네.
은하는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했다.
애초 그는 온태양의 과거에 대해서 이곳으로 오면서 아라에게 잠시나마 들은 게 전부였다.
그래서 이야기가 잘못되었다 해도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럼 엄마…, 아빠가 죽은 이유는 내가 알고 있는 게 아니었던 거야?”
“아니야. 태희 네가 알고 있는 게 맞아. 내가 방금 말했잖니. 그이는, 태양이 아빠는 오지랖이 넓었다고.”
온태희가 따지듯이 묻는다.
온태양의 어머니가 쓸쓸히 웃는다.
은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황을 정리했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기는 하네.
온태양의 아버지는 살아생전에는 YH제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노조에 가입해 임금협상을 요구하다가 건달들하고 시비가 붙어 운이 나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모두, 거짓이었다.
“태양이 아빠가 YH제당의 불의에 분노했던 것은 맞아. 하지만 그이는 YH제당에서 근무한 적이 없어.”
온태양의 아버지는 평생 공사장을 전전하기만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의협심이 너무 넘친 나머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남의 일도 사사건건 개입했었다고 한다.
그가 YH제당의 노조에 가담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고.
그러다 정체를 들키고 쫓겨났다며.
“””…….”””
그날은 술에 된통 취했더랬다.
그러다 건달들과 시비가 붙어서는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죽음이었다.
“태양이가 그때 많이 어렸었어…. 그런데 그이를 좋아했던 그 애한테 뭐라고 말할 수 있겠니.”
온태양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를 무척이나 잘 따랐다고 한다.
아버지를 동경했었다고.
그래서 온태양은 아버지의 부재에 의문을 표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동심을 지키러 거짓말을 지어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끝없이 불의에 대항하며 영웅으로 살다, 영웅으로 죽었다고.
과거를 미화시켰다.
“그런데 지금 와서…, 태양이한테 사실을 말할 수가 없겠더구나. 아마 그 애는 믿지 않겠지만.”
사실 온태양의 아버지는 온태양과 시간을 보낸 일이 많지 않았었다고 한다.
온태양의 아버지는 밖에 나가 있는 일이 많았었다고.
그렇기 때문에 온태양은 아버지와 말을 나눈 적이 좀처럼 없었으며, 아버지를 보더라도 아버지의 등을 보기만 했다고 한다.
결국 온태양이 기억하는 아버지란 존재는─.
─환상에 지나지 않았던 거구나.
아버지의 뒷모습과.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아버지.
온태양은 끝내 주어진 정보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실재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온태양에 이르게 되었다.
“이번에 태희 너한테 말한 이유는 이제 너도 다 컸다고 생각해서야. 지금까지 말하지 않아서 미안했다.”
“…괜찮아. 난 괜찮아, 엄마.”
온태양의 어머니가 말한다.
온태희는 그녀의 침대에 다가가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연신 미안하다 되풀이하며 딸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니 너희한테 부탁할게.”
한참 온태희를 다독이던 그녀.
그녀가 품에서 온태희를 떼어내며 아라와 은하에게 고개를 숙인다.
“앞으로도 태양이랑 계속 친하게 지내주렴.”
“”…….””
“저도 이렇게 부탁할게요.”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은하와 아라는 그 자리에서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은하가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결국 내가 아는 는 영웅이 아니었던 거구나.
구국의 영웅 따위가 아니다.
온태양은 자신이 만든 아버지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치기가 어린 소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은하는 자신이 에 대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
세상에 영웅은 없었다.
영웅이라는 탈을 쓴 무언가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가 드리우게 될 재앙을 몰아내는 영웅이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허나 그 영웅의 이름은 이제 더는 라고 불리지 않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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