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09
시간을 되돌려, 하루 전.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한서현은 인근 카페에서 한서연과 브런치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 키스는 했고?”
“언니.”
일본에서 3년을 보내고 왔어도.
언니 한서연의 성격은 변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한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언니가 화젯거리로 자신과 은하의 연애사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어댔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이런 얘기도 못 하니?”
“가족끼리니까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 거야.” “쩨쩨하기는…. 그래서 했어?” “…….”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한서연의 태도가 완고하다.
한서현은 싸늘한 시선으로 답했다.
하지만 서연은 그녀의 표정만으로 답을 유추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 안 한 모양이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래, 누가 뭐라니. 그냥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야.”
피식 하고 콧방귀를 끼는 한서연.
한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서연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하양이가 은하랑 같이 보낸 시간이 너보다 더 길잖아.” “…….” “그렇다면 이미 진도는 나갈 대로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은하 마음이 하양이에게 더 많이 가는 거는 아닐까 걱정하는 거지. 내 동생 소박 맞을까봐 걱정이야.”
“걱정 안 해도 돼.” “그래도.”
한서연의 걱정.
눈으로 그녀의 감정을 본 서현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그러자 한서연은 불만어린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한서현은 그대로 무시했지만.
무시하려고 했었다.
그녀가 다음 말을 하기 전까지는.
“─내가 어떻게 하면 은하 마음이 너한테 가게 할 수 있을지 조언 좀 해줄까?”
“…….”
실실거리는 한서연.
한서현은 식기를 움직이던 도중에 멈칫했다.
그러고는 그녀의 감정을 살폈다.
걱정 반, 장난 반.
그나마 들을 가치는 있겠다 싶은 감정이었다.
“…….”
하지만 제 입으로는 묻지 않고.
서현은 눈빛으로 물었다.
아니, 명령했다.
어서 말해보라고.
“이거 하나면 끝이야, 끝.”
한서연은 개의치 않아하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이내 그녀가 나이프를 다루던 손을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대고는─.
“─그냥 확 키스해버려. 남자애들, 그 나이 또래면 껌뻑 죽지 않겠어?” “언니….”
“왜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니? 아니, 내 말을 들어봐. 네가 그냥 키스 한 번만 해주면 끝이라니까? 네 얼굴이 어디 그냥 얼굴이니?”
“얼른 먹고 일어나자. 슬슬 수업 들어가야 할 시간이야.”
“얘가 내 말을 안 믿으려고 하네? 믿어봐. 언니 믿지?” “…….”
“그리고 키스를 할 때에는.”
“…뭐하는 거야?” “이거. 이거를 사용해야지, 이걸.”
“…….”
한서연이 느닷없이 혀를 내민다.
서현은 자신의 언니를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내 말 믿으래도. 이렇게만 한다면 은하 마음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 “지금 너도 혹했지?” “…안 해, 안 할 거라고.”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라니까? 효과 하나는 확실할 거야. 은하가 엄청 좋아할걸?”
“…….”
한서연이 열변한다.
거짓 한 점 없다.
한서현은 잠시 속아주는 마음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편 그녀가 자신의 언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었다면.
자신의 언니가 연애를 책으로 배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
60억이다.
지불하지 못할 것은 없다지만.
1급 경매장에 입장한 사람들에게도 제법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아직 플레이어도 되지 않은 청년이 60억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환수의 알을 구입했다.
“나는 저 나이에 뭐했지….”
“미친…. 어디서 돈이 솟아났나? 60억이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거야?”
노은하.
환수의 알을 낙찰받은 그의 이름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삽시간에 알려졌다.
처음에는 그가 강현철과 경쟁을 벌이는 모습에 깔깔거리던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듣고 표정을 달리했다.
“허…, 아카데미 학생이라니….”
“그럼 아직 플레이어도 되지 않은 놈이었다는 거야?”
“어쩐지…. 어려보이기는 하더라.”
“업계에서 소문이 자자하더니만…. 쟤가 였군.”
아직 플레이어도 되지 않은 청년이 1급 경매장에서 60억이라는 거금을 지불한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기가 막혀할 수밖에 없었다.
60억이 누구 집 애 이름도 아니고 대관절 그 돈이 어디에서 나왔다는 말인가.
그들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룹에서 후원이라도 해준 건가?”
“아니, 무슨 후원을 60억이나 해줘. 그것도 경매에서 물건이나 사라고 60억이나 후원을 해준다고?”
“저 돈이 어디에서 나온 거지?” “아, 그런데 플레이어도 아니면서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지?”
“어, 그러게? 들어오지 못할 텐데, 누가 같이 들어오기라도 한 건가?”
“그러고 보니 옆자리에 있는 애는 누구지?”
“묘하게 낯이 익은데….” “…한서현 아니야?” “한서현? 그게 누구인데?”
“시리우스그룹 회장 차녀.” “”””…….””””
의문은 금세 풀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은하의 옆에 앉아 있던 여성에게 향했다.
경매장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유난히 이목을 끌었던 외모.
뒤늦게 몇몇 사람들이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시리우스그룹의 직계라고?” “아니, 왜 여기에 있지?”
“그룹경영에 참가하는 사람은 분명 장녀 한 명뿐이었을 텐데…. 왜….”
시리우스그룹의 직계 한서현.
업계 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름이 언급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호기심이 어렸다.
그들은 어찌하여 노은하가 이곳에 입장할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뒤이어 드는 의문은 대체 노은하와 한서현이 어떤 관계냐는 것.
그때였다.
“─이제 그만 이동하자.” “그래.”
경매가 다음으로 넘어간 사이.
노은하가 볼일을 다 보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가 그녀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나 그녀나.
두 사람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고 보니 노은하가 얼마 전에 시리우스그룹의 직계와 약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렇고 그런 사이였구만?”
“아, 맞아. 약혼 때문에 한때 꽤나 떠들썩했지. 그걸 까먹고 있었네.”
“그러면 머지않아 시리우스그룹의 사람이 된다는 소리인 건가….”
사람들은 경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들은 경매장을 나서는 두 사람을 뚫어져라 보며 연신 숙덕거렸다.
그중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밝은 사람들은 시리우스그룹이 노은하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러고는 한서현의 돈으로 지불한 환수의 알이 약혼예물과도 같다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혹은 그만큼 시리우스그룹이 그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거라고.
“이상하다….” “자네, 뭐가 이상한데 그러나?”
“내가 알기로 노은하는 정하양과 사귀고 있다고 들었는데….”
“정하양?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아, 님의 ?”
“앨리스그룹의 직계 아닌가?”
“잠깐,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가 있기는 했었지. 노은하가 앨리스의 직계랑 만나고 있다는….”
“…내가 지금 이해가 되지 않는데 대체 뭐가 맞는 말이야?” “둘 다 맞는 말이라더군.” “”””…….””””
“아니, 아직도 이 소식을 들어보지 않은 건가? 얼마 전에도 노은하가 양다리를 걸쳤느니 마느니 하면서 업계 내에서 소문이 파다했는데….”
“”””미친….””””
여하튼.
노은하가 60억이나 되는 거금으로 환수의 알을 구입했다는 이야기는 업계에서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
사람들의 시선이 거슬렸다.
자신이라면 모를까.
한서현까지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쁜 건 알아봐가지고….
왜 얘한테 눈길을 주고 그래?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괜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다.
모처럼 1급 경매장에 온 것이라서 경매로 나오는 물건을 구경하려던 은하는 그녀를 데리고 일어났다.
한서현이 군말 없이 따라왔다.
“……?”
“왜 그러니?”
“어째 기분이 좋아 보여서….”
“그러네. 그냥 기분이 좋네.”
환수의 알을 수령받기 위해 경매장 직원을 따라가고 있던 중.
은하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이 그윽했다.
자칫 잘못하면 빨려들 것만 같다.
가까스로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린 은하는 어느 객실로 안내를 받았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1급 경매장에 입장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인 것인가.
그게 아니면 그녀가 시리우스그룹 직계이기 때문인가.
방 안은 고급 호텔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푹신한 소파에 앉은 은하와 그녀는 직원이 가져다주는 커피를 마시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금일은 저희 매장을 이용해주셔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수령하시는 물품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직원이 부하직원들을 대동하고서는 환수의 알을 가져왔다.
은하는 그들이 정중하게 테이블에 내려놓는 목함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뒤로 물러나고.
은하는 목함으로 손을 뻗었다.
“네…. 맞아요.”
목함을 열었다.
붉은 쿠션 위에 놓인 환수의 알.
아니, 피닉스의 알.
은하는 조심스럽게 피닉스의 알을 꺼냈다.
“스마트폰보다 조금 크네.”
“그러게.”
한서현이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은하의 어깨에 어깨를 바짝 붙인 그녀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세워서는 알의 높이를 측정했다.
이내 은하는 피닉스의 알을 자신의 무릎 위로 가져왔다.
“만져도 되니?”
“만져봐.” “…매끄럽네. 그냥 알이네.”
“그럼 환수의 알이라고 뭐 다른 게 있을 줄 알았어?” “그러면 여기에서 쥐 같은 생물이 태어나는 거니?”
살며시 알을 쓰다듬는 한서현.
이내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은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 쥐 싫어해?” “나는 설치류는 질색이야.”
“그럼 얘가 태어나면 이제 나한테 가까이 오지도 못하겠네.”
“장난 칠래? 그때는 네가 나한테 오지 못하게 해줘야지.”
한서현이 퉁명스럽게 핀잔을 준다.
아무래도 그녀를 떨어뜨리는 일은 전혀 없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확고히 말하는 그녀의 손을 잡아서는 다시금 알에 가져다대게 했다.
“괜찮아. 네가 좋아하지 않는 애가 태어나지 않을 거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나 못 믿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네.”
“만약에 누나가 싫어하는 환수가 태어나면 내가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해줄게. 됐지?” “그래, 믿을게.”
“걱정 마.”
“응.”
미래를 알고 있다.
이 알에서 무엇이 태어날지 또한 알고 있었다.
은하는 그녀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알에 체내 마나를 불어넣어봐.”
“…이렇게?”
“맞아, 그런 식으로. 그렇게까지 어려워할 필요 없어.”
환수는 마나를 주식으로 삼는다. 마나를 흡수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이다.
당연히 알 속에 잠들어 있는 환수 또한 마찬가지다.
환수가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마나를 흡수해야 한다.
그래서 은하는 한서현과 함께 알에 체내 마나를 불어넣었다.
이 과정이 제일 중요해.
알에서 깨어나는 환수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마나를 불어넣은 사람을 자신의 계약자로 삼는다.
그러니 환수의 알을 얻었다고 해서 완전히 주인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주기적으로 마나를 불어넣으면서 자신이 주인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하는 것이다.
어서 태어나라.
그도 환수의 알이 언제 태어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은하는 흘러든 마나에 반응한 알이 붉게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
시간에 제법 여유가 있었다.
아직 밤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이대로 한서현을 집으로 보낸다면 그녀에게 혼이 날 게 뻔했다.
그래서 은하는 시간이 남는 김에 플레이어 마켓을 구경하기로 했다.
“이따 저녁 먹으러 갈까?” “당연한 거 아니니. 그러면 이대로 구경만 하고 집에 갈 생각이었니?”
“내가 당연히 저녁도 먹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러니? 그럼 다행이고. 그랬으면 은애한테 하소연하려 했지.”
“…누나, 너무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나한테 잘해.”
“네, 네.”
“이번에는 저기로 가보자.”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그는 눈초리를 세우는 그녀를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마터면 집으로 돌아가 은애에게 된통 혼이 날 뻔했다.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아무거나 다 좋아.”
“그럼 순댓국 먹으러 갈래? 여기서 맛있게 하는 데 아는데.” “0점.”
“응? 뭐가?”
“데이트하는데 그건 무드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니?”
갤럭시그룹이나 시리우스그룹 등. 10대 그룹에서 운영하는 브랜드가 주변에서 보이는가 하면.
그보다 영세한 가게도 있었으며, 플레이어가 직접 물건을 판매하는 부스도 있었다.
한서현은 주변을 가벼이 둘러보며 은하에게 똑바로 말했다.
“우리가 약혼하고 데이트를 한 건 그렇게 많이 되지 않았잖아.”
“그런데?” “평소에 먹는 순댓국 같은 거 말고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특별한 걸 먹어야 하지 않겠니? 무드 있게.”
“무드 있게 어떤 거?”
“그건 네가 생각해봐야지.”
“…….” “왜 그런 얼굴이니?” “누나, 나 싫지?”
“내가 싫으면 너랑 약혼했겠니.” “왠지 싫어서 한 것 같은데….”
“그럼 그렇게 생각하든가. 아무튼, 센스 있게 한 번 잘 골라보렴.”
“뭐 먹고 싶은 거는 있어? 이거는 말해줘도 되지 않아?” “맛있는 거.” “…….”
난감하다.
정말 난감했다.
졸지에 저녁 메뉴를 결정하게 된 은하는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한서현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키득거리고 있었고.
거기 순대가 정말 맛있는데.
그런 한편 은하는 입맛을 다셨다.
먹으러 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
그런데 한서현은 마치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그게 그렇게 먹고 싶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이에 은하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응. 거기 맛있어.”
한서현이 관심을 보였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결국 그의 설명을 들은 한서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먹으러 가자.” “좋아, 좋아. 누나가 최고야.”
“대신 기대한 것보다 맛이 없으면 혼날 줄 알아.” “어떻게 혼낼 건데?”
“오늘 집까지 바래다줘.”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가산점 10점 줄게.” “응?”
“집에도 바래다주고, 집에서 커피 한 잔 마시다 가.” “집에 부모님 계시지 않아?” “아마 어머니밖에 안 계실 거야. 내 방에만 있으면 들어오지도 않을 거고.”
“그럼 그러지 뭐.” “이따 집에 갈 때는 은애한테 줄 쿠키도 받아가.”
“아, 그때 그거?” “응, 그때 그거.” “고마워. 잘 먹을게.”
“너 먹으라고 주는 거 아니야.”
자신을 잘 이해하는 듯한 느낌.
은하는 한서현과 대화를 나누면서 포근한 감정을 받았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게 즐겁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서 플레이어 마켓을 구경했다.
그러다─.
“─어, 저기 찾았다! 야! 노은하!”
“…미친.”
은하는 앞에서 다가오던 인파에서 강현철을 발견했다.
아니, 그가 먼저 발견한 것이다.
은하는 그의 손가락질을 받고서는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거봐, 내가 아직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고 했잖아.”
“…아니, 그래서 어쩌려고요. 이미 알은 노은하 학생 손에 넘어갔는데 그걸 뺏으려고요?” “야, 노은하! 나 돈 많이 빌려왔다. 내가 그 알 61억에 살게!” “…….” “아니야. 남자가 쪼잔하게 1억이 뭐야, 1억이. 70억에 산다.”
“미쳤어요!? 그 돈이 전부 다 당신 돈이에요?”
“70억! 혹시 돈 더 필요하면 내가 어떻게든 더 빌려볼게! 그러니 알은 나한테 팔아라.”
미친 오징어가 뭐라고 지껄인다.
이전 삶에서나, 이번 삶에서나.
은하는 강현철의 집념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뭐에 꽂히면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는 구나.
강현철이 인파를 가로지른다.
그러고는 알을 자신에게 팔란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은하의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도망치자.”
“…응?”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서현.
은하는 그녀가 비명을 지르든 말든 두 팔로 그녀의 몸을 바쳤다.
일명 공주님 안기.
“…야, 야! 너 어디 가는 거야!?”
그리고 은하는 냉큼 몸을 돌렸다.
플레이어 마켓 내에서 허가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건 금지돼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그녀를 안은 채로는 우보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망을 쳤다.
깜짝 놀란 강현철이 뒤늦게 그를 쫓았다.
“…내려줘.”
“하지만….”
“이러고 있는 게 더 눈에 띄어.”
일단은 따돌렸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 쏟아졌다.
은하는 인파가 많은 곳으로 와서 한서현을 내려주었다.
그녀가 그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그를 혼내지 못했다.
강현철이 쫓아왔으니까.
“─야! 너 거기 서 봐! 거기 가만 있으라니까!?”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밀어내서는 길을 만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하는 혀를 찼다.
별 수 없이 그는 한서현의 손을 잡아끌어야 했다.
“미안, 달릴 수 있지?” “…노력해볼게.”
구두를 신고 뛰는 한서현.
은하는 그녀에게 미안해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전처럼 그녀를 안고 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말리라.
“찾았다!”
“젠장.”
겨우 따돌렸나 싶었더니.
강현철이 또 어디선가 나타났다.
민폐가 따로 없다.
은하는 빠른 걸음으로 뛰고, 뛰고, 또 뛰었다.
“저 사람을 이렇게 피해야 하니?”
“저 사람이랑 엮이면 인생이 엄청 힘들어져.”
“…알았어.”
“업어줄까?” “아직은 뛸 수 있어. 난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리고 좀….”
“좀?” “좀 재미있기도 하네. 숨바꼭질도 어렸을 때 이후로 해보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하니까 재미있네.”
이 상황이 웃긴지.
한서현이 은하를 따라가면서 연신 키득거렸다.
강현철을 피하며 길을 찾고 있던 은하도 그녀의 말을 듣고 저도 몰래 웃음이 튀어나왔다.
“─야! 도망치지 말라니까!?”
그만 포기해줬으면 하련만.
강현철은 포기를 모르는 듯했다.
정말이지 원수가 따로 없다.
겨우겨우 숨을 돌렸다고 생각했던 은하는 다시 도망칠 준비를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만 막다른 길에 몰리고 말았다.
은하가 난처해하는 그때─.
“─만약에 말이야.” “응? 왜?”
“저 사람을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떡하겠니?” “그런 게 있어?”
“응.”
“당연히 해야지.”
“후회 안 해?”
“저 미친 오징어를 따돌리는 건데 내가 후회를 왜 하겠어?” “네가 분명 그렇게 말한 거야.”
“…응?”
강현철이 거리를 좁혀온다.
은하는 한서현을 보호하는 자세로 그를 노려보았다.
여차하면 한서현을 업고 강현철을 뛰어넘을 생각이었다.
“야! 노은하! 대화 좀 하자!”
결국 강현철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강현철이 드디어 인파를 헤쳐 나와 그를 향해 나아가려 했다.
바로 그때─.
“─……!?”
“…잉?”
“”””……!!””””
한서현이 대뜸 은하의 뺨에 손을 얹어서는.
그대로 그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린 그녀가 까치발을 들어서는.
아주 찌인하게.
“”””…….””””
강현철이 엉겁결에 정지했다.
그가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었다.
그것은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들도 매한가지였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윽고 주변이 조용해진 걸 확인한 한서현이 발꿈치를 내렸다.
그녀가 실처럼 이어진 침을 닦으며 강현철을 홱 돌아본
다.
그러고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남 연애하는데 방해하지 마시고 저리 가 주시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주위는 완전히 한서현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있었다.
갑작스럽게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마주하게 된 강현철 역시 마찬가지.
“어…, 그, 그래…. 여, 연애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하다….”
그만 그녀의 기세에 밀린 강현철.
한서현은 그에게는 답도 하지 않고 은하의 손을 잡아끌고는 그 자리를 떠났고.
이게 뭔 일이래….
은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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