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35
“흠….”
줄리에타는 없다.
브루노는 팔짱을 끼었다.
그는 테이블에 놓인 영약을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흠….”
며칠 전.
제4위계 몬스터를 단신으로 물리친 은하가 가족들에게 겨우 풀려나서는 웬 영약을 하나 가져왔다.
로열 비즈.
브루노 역시 이름은 알고 있었다.
설마 실물을 목격할 줄 몰랐지만.
게다가 실물이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고.
“로열 비즈라….”
몸에 좋다.
아주 좋다.
정말 좋다.
브루노는 은하로부터 들었던 말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재생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어베니어가 자기도 동생을 가지고 싶다는 말을 하기는 했군.
줄리에타가 떠오르고.
아들 어베니어가 떠올랐다.
브루노는 고민 끝에 손을 뻗었다.
로열 비즈를 천천히 맛보며 건강을 챙기기로 했다.
바로 그때.
복도 근처에 있는 방에서 별안간 요란한 소리가 났다.
우당탕
누군가 바닥을 쿵쿵거리는 소리.
우지끈
이어서 집안에서 마나가 감지되고, 무언가가 짓이겨지는 소리가 나고.
쿠웅
마지막에는 무언가가 쓰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난 것이다.
브루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하자, 방문이 안쪽에서 바깥으로 쓰러져 있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문 아래쪽에 주먹만 한 구멍이 나 있다.
그런데 구멍이 손으로 움켜쥐고, 그대로 잡아 뜯은 것 같다.
아니, 부서져 나간 파편이 떨어진 방향이 문 안쪽이 아니라 바깥으로 나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안쪽에서 손으로 밀어낸 것 같다.
“이건, 대체….”
그렇다고는 하나 구멍 주위에서는 어찌하여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말인가.
브루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는 이 소동을 만들어냈을 게 틀림이 없을 어베니어를 찾았다.
문이 쓰러진 방의 주인은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으니까.
다시 말해, 아들이 방문을 부쉈다.
“─아빠 이것 봐! 드디어 해냈어! 내가 아직 갓 핸드는 못해도 손가락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니까!?”
“…니어야.” “왜 아빠?” “…….” “어쨌든 얼른! 얼른 이거 봐봐!”
하나뿐인 아들은 방 안에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 채 명랑하게 웃고 있다.
브루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 아들을 과연 혼내도 되는 것인가 하고.
“마법을 손바닥 전체에 두르는 건 아직 못 하지만, 손가락으로는 이제 쉽게 할 수 있어!” “…그래, 잘했다.”
“그치!? 나중에 은하 형아한테도 한 번 보여줘야겠다.”
보아하니 마법을 개발한 모양이다.
아들이 하늘 높이 올린 손가락은 초록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브루노는 그 모습을 보고는 그만 쓴웃음을 지었다.
아들을 혼내야 하건만.
눈을 저리도 반짝이며 열중해하는 아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한창 깨달음을 얻는 중인 듯했고.
“아빠! 아빠! 이거 이름을 뭐라고 짓는 게 좋을까? 응? 응?” “…….”
그러다 어베니어가 순진무구하게 물었다.
마법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것이다.
“멋진 거! 멋진 걸로 짓고 싶어!”
기대가 잔뜩 담긴 목소리.
브루노는 아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초록빛으로 빛나는 다섯 개의 손가락을 이리저리 살폈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샤이닝 핑거.” “샤이닝 핑거!? 이름 멋지다!”
“아빠가 말했지. 쿵쿵 뛰지 말라고. 저번처럼 은애 누나가 시끄럽다고 혼내러 올라올 거다.” “아, 맞다. 그랬지, 참! 안 그럴게! 조용히 하겠습니다!”
다행히 아들이 마음에 든 듯했다.
아들이 방방 뛴다.
브루노는 노은애의 이름을 빌려서 천방지축 아들을 타일렀다.
노은애의 말에 복종하는 아들이다.
어베니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브루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브루노는 쓰러진 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아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마치 무언가를 체념한 듯한 미소가 걸린다.
“아빠, 왜?” “아니다. 자, 네가 쓰러뜨렸으니까 네가 치워야지. 엄마가 이따 오면 뭐라고 하겠어.” “어, 어떡하지? 엄마가 화내겠지?”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빌어야지. 이제 너도 네가 한 일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자식은 하나로 충분할 것 같다.
브루노는 아들의 머리에 손을 턱 얹었다.
☆
KK그룹 회장 김건과 별개로.
은하는 KK그룹의 직계 김건웅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
“─도와줘서 정말로 고마워. 은하 네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 몬스터의 가축이 되어 죽었을지도 몰라.”
“고마운 거 알면 됐어.” “…그래, 너한테는 겸손한 태도를 바라는 게 아니었지.”
아카데미 문화관 스카이라운지.
아카데미 던전 사태가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자.
김건웅은 그에게 정식으로 감사를 전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현재 은하가 김건웅과 저녁을 먹고 있는 이유였다.
“그런데 설마 밥 한 끼로 은혜를 갚겠다고 그러는 건 아니지?”
“안 그럴 거니 걱정 마라.”
“그럼 다행이고.”
처음에는 그에게 격하게 고맙다며 고개를 조아렸던 김건웅도.
점점 은하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도로 원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김건웅은 이제 대놓고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나도 거기에 어울리는 보답을 줘야겠지. 내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그럼 킵.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갚도록 해.”
“…너는 대체 어디다 날 부려먹을 생각인 거냐?”
떨떠름해하는 김건웅.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는걸.
이자까지 쳐서 갚으라고 말했지만.
은하는 사실 김건웅에게 빚을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카데미 던전에서 일어난 사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에는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김건웅의 목숨값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아직 마땅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단은 묵혀놔야지.
김건웅이 나중에 없었던 걸로 만들 사람도 아닐 테고…. 만약 그랬으면 구해주지도 않았겠지만.
그래서 은하는 찬찬히 생각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언젠가 쓸 때가 올 것이리라.
그리고 쓸 때가 오더라도 김건웅이 KK그룹의 회장이 되는 날에 쓴다면 더더욱 좋지 않겠는가.
은하의 마음속에 깔린 심리였다.
“여하튼 이번 일로 알았다.”
“뭘?”
“널 적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걸. 널 내 밑에 두겠다는 생각 자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는 것 역시 깨달았고.”
“당연한 소리를 하네.”
“…….”
머쓱해하는 김건웅.
은하는 야무지게 저녁을 먹었다.
결국에는 김건웅도 뻘쭘해졌는지 저녁을 먹는데 열중했다.
“아, 그래.” “왜?”
“서나 좀 잘 챙겨줘. 걔도 일단은 너랑 같은 그룹에 있잖아.” “…서나라면 내가 안 챙겨주더라도 알아서 잘하고 있던데. 그래도 뭐…, 네가 잘 챙겨주라는데 챙겨줘야지. 알았다. 걱정 마라.”
그러다 두 사람은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김건웅은 이제는 은하를 대하는데 거만해지려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은하를 내려다보았으나.
이제는 동등한 시선으로, 그것보다 조금 더 높은 시선으로 올려다본다.
“그러고 보니까.”
“왜?”
커피가 나왔을 때.
이번에는 김건웅이 말문을 틀었다.
은하는 대충 흘러들으면서 커피를 마시려고 했다
바로 그때.
“─방학 때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응? 무슨 소리야?” “…혹시 몰라?” “뭘 모르는데.” “아직 모르나 보네….”
김건웅의 질문.
은하는 처음 듣는다는 식으로 반문했다.
그러자 김건웅이 난처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말을 잇는다.
“매년 여름마다 우리 또래들끼리 모이는 모임이 하나 있잖아.” “아, 그거?” “그래. 올해도 있을 예정이야.” “그런데?”
대략 10대, 20대 정재계 사람들이 매년 여름마다 모이는 모임.
은하는 김건웅의 말을 듣고 뒤늦게 떠올렸다.
몇 년 전, 은하도 한서연의 호위로 한 번 참석한 기억이 있었다.
명목상 교류회라고 하지만.
서로를 헐뜯고, 자신을 자랑하려는 자리였다.
“너도 와야 할 거 아니야.” “내가 거기를 왜 가?” “허….”
“나는 갈 생각 없는데?” “…정말 아무도 말 안 해줬냐?”
지루하고 참으로 유치한 자리다.
그래서 은하는 여름 모임에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김건웅의 말을 들으면 그가 어째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투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은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해봐.”
“말해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모임은 아니야.”
“그런데?” “그래도 한서현 누나는 오랫동안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이번 파티에 얼굴을 비추려고 나오려 할 거야. 그게 당연한 거고,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결국 한서현 누나가 오래간만에 모임에 나가는 자리야. 그러다 보니 모임에 뜸하게 참석하던 사람이나, 그 누나하고 친했던 사람들이라면 이번 모임에 반드시 참석하려고 하겠지.”
“그래서?”
“한서현 누나가 참석을 한다면…. 그 누나를 잘 따르는 정하양도 분명 참석하려 할 테고.”
김건웅이 미간을 주무른다.
그러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는 셈이지.” “무슨 문제?”
“다시 말하겠는데, 한서현 누나는 이번에 반드시 참석할 수밖에 없어.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는 것도 있고, 올해 너하고 한 약혼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기도 하니까.”
“…….”
“그러면 너도 같이 나와야겠지.” “…….” “문제는 정하양도 모임에 나올 게 분명하다는 소리지. 나오지 않으면 온갖 구설수에 휘말릴 테니까. 가령, 네가 한서현 누나랑 같이 있는 게 보기가 싫어서 나오지 않았다거나. 정하양이 몸이 아프다고 변명하거나 다른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다 말을 하더라도, 정재계의 사람들이 과연 그 말을 믿어줄까? 어떻게든 구설수가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
김건웅이 덤덤히 말하고.
노은하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의 말이 맞기는 했다.
“…내가 안 나가면 되지.” “그랬다가는 반대로 한서현 누나가 구설수에 시달리겠지. 예를 들면…, 역시 너하고 한 약혼은 정략결혼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아마 어떻게든 그 누나를 까려고 할 걸? 너한테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그 누나가 성격 때문에 적이 좀 많거든.”
“…….”
김건웅이 코웃음을 쳤다.
은하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모임에 참석하면 정하양이 구설수에 오르게 되고.
반대로 자신이 참석하지 않는다면 한서현이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그야말로 양자택일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하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셋이서 손잡고 가지, 뭐.”
“나쁘지는 않기는 한데….”
조금 욕을 먹기는 하겠지만.
은하는 한서현과 정하양과 셋이서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
어차피 양다리 소문은 계속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쪽이 비참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셋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았다.
무엇보다─.
─내가 양다리를 걸칠 정도로…. 잘난 놈이라는 모습을 보여주지.
당당하게 행동하면 될 뿐이다.
당당하게 행동하면 사람들도 아마 뭐라고 욕하지 못할 것이다.
은하가 그렇게 생각한 그때─.
“─정재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는 셋이서 들어가도 상관없어.” “응?”
“그런데 너도 예전에 한 번 가서 알겠지만, 거기서 그룹 직계들끼리 따로 모이는 자리도 있거든.” “그래서?” “그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직계는 한 명만 대동할 수 있다는 규칙이 있어서….”
“…….” “결국 네가 그 자리에 참석하려면 둘 중 한 명과 대동해서 참석해야만 한다는 거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재계그룹의 직계들이나, 그만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만 참석을 하는 모임이라서 어쩔 수 없다. 보안은 철저히 해야지.” “허, 참….”
“사실 원래 그 자리가 우리들끼리 서로 만나고 있는 사람을 소개하는 자리였거든. 그래서 어쩌다 보니까 그런 규칙이 생겼다고 하더라.”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 그런 자리가 다 있나 싶었다.
“혼자 참석하는 사람은 참 서글프겠네.” “…그래서 거기 참석하는 사람들은 호위라도 데려오려 그러지. 가능한 이성을 데리고 오고. 예전에 네가 한서연 누나의 호위로서 참석했던 것처럼 말이야.” “하….”
참으로 답답한 교류회다.
은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양자택일에 놓인 셈이다.
“뭐…, 힘내라. 누구랑 갈지 한 번 생각해보고….”
참으로 안 됐다는 듯이.
김건웅이 그를 불쌍하게 쳐다봤다.
이에 은하는─.
“─이건 돈으로 어떻게 안 되나?”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이거 참 골치 아프게 됐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536(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