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47
『유사과학으로 취급되는 것 중에 세포 기억설이라는 게 있다.
신체를 구성하는 장기에는 그동안 해당 존재가 살아왔던 기억과 성격, 습관 등이 녹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한 사람의 기억과 성격, 습관이 전이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 중에 심장을 기증한 사람의 기억과 성격, 습관 등이 전이된 것 같은 사람이 있기도 한다.
(중략)
…나학에 따르면 세포 기억설이 썩 설명이 되기도 한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인간의 혼은 이성과 감성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뇌와 심장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신빙성을 얻고 있다.
그것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심장에 감성을 담당하는 혼이 있는 동시에 혼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나 성격이 깃들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이 난데없이 심장을 기증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기억을 알게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란 것이다.
(중략)
…약 그렇다면 세포 기억설이 정말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42번에 달하는 심장을 이식받은 벨페고르는 42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벨페고르의 성격은 변화무쌍하다.
어느 날에는 남자아이 같으면서, 어느 날에는 여자아이 같은 면모를 보인다.
또한 어느 날에는 황혼길에 접어든 노인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연구원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는 벨페고르가 연구의 일환으로 노인의 심장을 이식받은 이후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모양이다.
(중략)
…하여, 연구진 중에서 소싯적에 정신분석학과 행동심리학 방면으로 연구한 적이 있었다는 연구원에게 벨페고르의 정신을 분석하게 했다.
상담결과, 벨페고르가 10개 이상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워낙 많은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 벨페고르가 정말로 42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중략)
…한 결과, 벨페고르에게는 42개의 자아가 공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니, 벨페고르 본인의 자아를 더해 43개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벨페고르의 본래 자아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벨페고르를 보면서 성격이 유별나다고만 생각했었지, 진정 그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생각해보려 하지 않은 것 같다.
(중략)
벨페고르가 말하기를, 본인 역시 본래 자아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 듯하다.
우리가 자아에 대해 물어본 순간, 벨페고르는 다양한 얼굴을 보이며 그것들 제각기가 본래의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한 자아가 말했다.
“─우리는 전체로서 하나다.”
(중략)
어린아이는 새하얀 도화지다.
물들이기가 아주 쉽다.
내가 신인류 프로젝트의 실험체로 주로 어린아이를 사용하는 이유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내 뜻대로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다루기 쉽다.
아마 벨페고르의 몸에 들어가 있는 수십 개의 자아들 또한 그러리라.
본래 가지고 있었을, 어린 자아는 다른 자아들에게 물들어버렸으리라.
어쩌면 물들어버렸기 때문에 그가 어떠한 부작용을 호소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자아가 했던 말이 맞다.
그들의 자아를 나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벨페고르의 자아는 이제 수십 개의 자아가 모인 집합체이다.
전체로서 하나다.
(중략)
…한 연구진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만약 벨페고르에게 돼지의 심장을 이식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돼지와 인간의 심장 크기가 같으니 불가능한 소리가 아니기는 했다.
이 미친 아이디어는 그분에 의하여 승인되었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재미있겠군.”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재미있겠다.
(중략)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고.
벨페고르는 돼지와 같은 행동양상을 보였다.
수술 후,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러 벨페고르의 외견이 마치 돼지처럼 변해갔다.
그제야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번쩍 정신이 들었다.
부랴부랴 심장 이식을 개시했다.
(중략)
…고르가 연구원 한 명을 죽였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새로 이식받은 심장에 적응한 뒤에 검진을 하러 온 연구진을 죽이고서 탈주를 감행하기까지 했다.
(중략)
…고르가 연구원을 또 죽였다.
이제는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실험을 할수록 강해지고 있다.
(중략)
벨페고르가 점점 인간의 그릇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다.
하마터면 탈주할 뻔했다.
때마침 그분이 있었기에 망정이다.
한편 그분은 벨페고르에게 더더욱 흥미를 붙이신 듯하다.
(중략)
아무래도 우리는 진짜 악마를 만든 것 같다.
─닥터 데우스의 연구일지 중』
☆
매드 사이언티스트 데우스.
이전 삶에서는 신인류 프로젝트가 선녀 임가을의 이름 아래 이루어진 실험이었다며 여론을 선동한 작자.
그리고 실컷 여론을 선동한 후에.
벨페고르의 손에 직접 처형당한, 마인이 아니었던 인간.
“─커헉!!”
은하는 드디어 그를 찾아냈고.
그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가서 철저하게 팼다.
“…쿨럭쿨럭…!”
명치 아래를 발로 얻어맞은 남자.
그가 덩어리진 피를 토하며 숨을 헐떡였다.
“꿇려.” “커헉!”
정신이 붕괴를 당한 슬레이어들은 은하의 말을 따랐다.
그들이 억지로 데우스가 무릎을 꿇게 했다.
“…크…흐흑…!”
“이제는 말할 생각이 들어?”
기계 눈이 파괴당한 남자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은하는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에게 물었다.
“얼른 말해. 누가 그랬어?”
“…….”
“네 뒤에 있는 놈이 누구야?”
“……!”
“말 안 해?”
신인류 프로젝트의 배후.
필시 그를 알고 있을 게 틀림없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데우스.
은하는 그가 입을 열려 하지 않자, 다시금 그에게 폭력을 가했다.
“…컥…! 그, 그만아악…!”
“그럼 말을 하라고.”
어디를 때려야 고통이 심한지.
얼마나 힘을 줘야 죽지 않는지.
무엇을 해야 공포심이 드는지.
은하는 모두 알고 있었다.
결국 극심한 고문을 견디지 못한 탓이었을까.
“─낄낄낄!”
“왜 이래?”
마치 넋이라도 놓은 것처럼.
별안간 데우스가 낄낄거렸다.
툭
그가 부러진 앞니를 뱉어서는.
하나 남은 눈을 부릅떴다.
“…….”
독기, 살의, 악의, 증오.
그토록 고문을 당했는데에도 그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낄낄거림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듣고 나서 후회할 텐데?”
“허, 참….”
그러고는 은하를 도발한다.
은하는 코웃음을 쳤다.
후회라면 회귀 전에 충분히 했다.
그때 눈앞에 있는 작자가 갑작스레 벨페고르에게 죽음을 맞이하고.
그로 인해 진실을 밝혀내지 못해 선녀에 대한 지지여론이 그야말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을 때.
선녀가 악녀가 되어 몰락했을 때.
‘─가을이 언니가 그럴 리 없어요. 오빠도 알잖아요!’
그리고 하백련이 울었을 때도.
그때 얼마나 분을 삼켜야 했던가.
그러니 다시는 그런 일이 닥치지 못하도록─.
“─말해.”
“……!”
진실을 알아야 한다.
은하는 데우스의 뺨을 때렸다.
짝 하는 큰소리가 나고.
그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말 안 해?”
“마, 말하마….”
뺨을 한 대 맞고서 그야말로 넋이 나간 듯했던 데우스.
은하가 또다시 손을 들려고 하자, 데우스가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은하는 손을 내렸다.
그러자─.
“─선녀. 이건 선녀 임가을 님께서 허가하신…커헉…!”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은하는 마저 반대쪽 뺨을 때렸다.
그가 되지도 않는 거짓을 씨부리자 순간 욱하고 말았다.
자칫하면 데우스의 목이 그대로 꺾여버릴 뻔했다.
“저, 정말이다…. 이, 이건 정말로 선녀님의….”
“…….”
“크하하하! 이제 알겠냐!? 네놈이 지금 누구에게 손을 대려 한 건지 똑똑…크헉!”
“헛소리 말고 진실만 대답해.”
들어줄 가치도 없다.
은하는 데우스를 발로 찼다.
슬레이어들에게 양쪽 팔이 붙잡힌 그는 한 대를 맞고 오뚜기처럼 도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은하는 다시 공격을 가했다.
“크허허허….”
“아니면 내가 잘못 말했나? 그래, 선녀님 직인을 사용해서는 멋대로 프로젝트를 날조한 놈이 누구야?”
“…너…, 대체 누구냐.” “알아서 뭐하게.”
“히히….”
뒤로 자빠지려는 데우스.
슬레이어들에게 붙들린 채로 그가 고개를 뒤로 젖힌 자세로 공중에서 매달린 상태가 되었다.
자세가 불편했는지.
그가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이고는 침을 질질 흘렸다.
“─그래, 네놈 말대로다. 선녀님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이 없다.”
“…….”
이윽고 닥터 데우스가 히히 웃으며 은하가 원하는 대답을 토했다.
은하는 이죽거렸다.
“그래서 누구냐고. 멋대로 선녀의 이름을 빌려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실험을 기획한 장본인이.”
“크흐흐흐….”
마치 그를 비웃듯.
닥터 데우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사례 걸렸는지 침을 바닥에 탁탁 뱉어냈다.
아니, 피를 토해냈다.
그가 피와 침이 섞인 타액을 뚝뚝 떨어뜨렸다.
말을 잇는다.
아니, 비웃는다.
“─뭐? 빌려? 크흐하하하하!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구나.”
“…….”
“선녀의 이름을 빌린 게 아니야. 우리는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졌던 권리를 사용했을 뿐이다! 그 이름이 어디 그냥 주어졌을 것만 같으냐? 그 이름이 그만한 가치를 지닌 게, 어디 그년 때문이었을 것 같으냐?” “무슨 소리야?”
“크흐흐흐….”
데우스가 피를 꺼이꺼이 뱉는다.
그러면서 미친 듯이 깔깔거린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것이 피와 섞이며 피눈물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뒤이어 그가 마치 하찮은 것이라도 내려다보는 태도로.
절로 안타깝다는 듯한 시선으로─.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
“여기에 도달해서, 내 정체마저도 알아낸 거라면 모두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 “너는 아무것도 몰랐던 거야!”
“말해, 얼른.”
“커헉…!”
그의 눈빛에 심기가 상해서.
은하는 폭력을 행사했다.
정말 죽지 않을 만큼.
은하는 닥터 데우스를 가격했다.
그러자 데우스가 악 소리를 내며, 고통 속에서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선녀어어어어─!!!”
퍽
“정녕 그 이름이이이이─!!”
짝
“그년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느냐아아아아─!!!!!”
팍
뭐가 그리도 좋은지.
닥터 데우스는 공격을 맞으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가 실성했다.
이빨이 덜렁거리는 입을 벌리며, 꺼이꺼이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허…어억…, 애송아….”
“…….”
“날개옷도 없는 선녀가….” “…….”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 선녀가, 어디 선녀라고 할 수 있겠느냐.”
“…….”
“그것이 어찌…, 다른 인간들하고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너희는 그년이 진정 무언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지! 끌끌….”
“…….”
“지상에 내려온 선녀는…, 선녀가 아니야. 그건 그냥 사람이지. 너희는 모두 속고 있어. 선녀라는 이름에는 아무 의미도, 가치도, 무게도 없다.”
“…….”
“그러니 그 이름이 그만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 것은 너희들이 멋대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리 되게 만들었기 때문이지. 끌끌….”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은하는 슬레이어들에게 명령하여 닥터 데우스를 풀어주도록 했다.
닥터 데우스가 그대로 바닥에 벌렁 쓰러졌다.
천장을 보며 쓰러진 그가 그제야 얼굴을 폈다.
“그래서.”
“허허….”
“누가 꾸민 짓인지 말하라고.” “애송아, 너는 절대로 감당 못해.”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아니, 그것 역시 네가 정하는 게 아니다.”
“뭐?”
“애송아.”
“…….”
“지배란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지는 법이다. 완벽한 통제란, 완벽한 지배란 자신이 지금 지배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라고. 낄낄.”
“…….” “자신이 지금 누군가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말한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 것 같으냐. 끌끌.”
콰직
은하는 그의 팔을 분질렀다.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나고.
데우스가 비명을 질렀다.
“─말해.”
“…너는…, 아무것도 몰라아아!!”
콰직
고통이 덮쳐들고 있는 데에도.
닥터 데우스는 그저 낄낄거리면서 몸부림을 칠 뿐이었다.
…진짜 질긴 자식이네.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가급적 고문을 통해 진실을 토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스티지안 아이로 정신을 붕괴시켜 진실을 토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그를 양지로 끌고 나가 세상에 공개하는 게 어려워졌다.
그가 있어야 배후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정신을 붕괴시키지 않으려 하고 있었는데─.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끝이 없겠다.
은하는 아쉽지만 정신을 붕괴시켜 정보를 토해내게 만들려고 했다.
바로 그때.
“─애송아….”
“…….”
닥터 데우스가 돌연 부른 것이다.
은하는 마법을 중단했다.
그가 큭 소리를 내며 힘겹게 입을 움직인다.
“─심연은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법이지
….”
“…….”
“네가 그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면, 심연 또한 널 들여다보게 될 거다. 네가아아아!! 날 이렇게 만들고도! 무사하리라아아!! 생각하냐아아아!!”
“…….”
“넌…, 이제 죽은 목숨…커헉…!”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은하는 아주 천천히 그의 갈비뼈를 지르밟았다.
뼈가 천천히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닥터 데우스가 혼절했다.
이윽고 은하는─.
─스티지안 아이
억지로 눈을 뜨게 해서는.
그의 정신에 공포를 심었다.
“……!”
닥터 데우스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은하가 가슴을 밟았던 발을 떼자, 그가 덜덜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의식이 공포에 먹혀든다.
자아라는 것이 부서지고.
기억과 정보를 토하는 인형이 되는 바로 그때.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축 늘어지려던 몸이 다시금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나는 움직임이었다.
팔다리가 기괴하게 뒤틀린다.
목이 옆으로 돌아가며, 게거품을 문다.
눈을 회까닥 뒤집는다.
“…젠장. 누가 먼저 정신에 손을 대놨던 건가.”
이윽고 떨림이 멈췄을 때.
은하는 닥터 데우스의 상태를 보고 혀를 찼다.
“……………………………….”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아가 붕괴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당연히 기억과 정보도.
결과적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살아있는 송장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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