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50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는 했다.
이전 삶에서 은하는 정신계 공격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유혹도, 현혹도, 환상도, 세뇌도. 그리고 구마 릴리스의 마법 또한.
그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기프트 때문이야.
이전 삶에서는 기프트 가.
그리고 이번 삶에서는 기프트 이.
자아에 간섭하는 마법에 노출되면, 기프트가 반강제적으로 각성하면서 마법을 파훼시키는 것이다.
투콰아아앙!!
그렇기에 은하는 당황하지 않았다.
설령 벨페고르가 깨어났다 해도, 녀석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큭…!”
눈발을 기는 겨울.
거대한 뱀은 녀석에게 달려들어, 그야말로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녀석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떠올랐고.
산양의 뿔이 난, 거인의 형상을 한 마나가 거세게 요동쳤다.
인비져블 트래커
극침격자
은하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눈발을 기는 겨울이 만든 흔적에 좌표를 지정.
이어서 그는 시리게 피는 겨울을 집어던졌다.
쉬이익!
푸르른 마나로 뒤덮인 검이 그대로 길고 가느다란 창으로 변하고.
상처를 수복하는 거인의 몸속으로 흐트러짐 없이 파고든다.
“겨우 그런 걸로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물론 상대는 반마였다.
벨페고르가 당황한 것도 한순간.
놈이 금세 평정심을 찾아서는 코웃음을 쳤다.
“─너무 느려. 이런 건 내가 손을 한 번 휘두─!?”
눈앞으로 날아드는 검.
벨페고르는 손을 휘두르는 것으로 공격을 막아내려 했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우보
은하는 그의 행동을 예상했고.
그렇기 때문에 우보를 사용했다.
기프트 이 발동한 현재, 그는 인비져블 트래커를 경유하여 우보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
시리게 피는 겨울이 좌표에 완전히 도달하기 직전.
우보를 통해 지정한 좌표로 이동한 은하는 놈의 팔에 튕겨나가려 하는 시리게 피는 겨울을 잡았다.
곧장 손아귀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마나가 검신을 뒤덮었다.
바일런트 베놈
어둡고, 탁하고, 검게.
마치 세상의 모든 부정(不淨)한 기운을 머금은 것 같은 검신.
은하는 벨페고르의 힘에 반발하여 튕겨나가려고 하는 검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파치이잉─!!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벨페고르의 보호마법은 너무나도 허망하게 부서졌고.
검은 칼날은 번뜩였다.
방사형으로 퍼진 독이 그의 온몸을 덮쳐들었다.
“…커…커…헉…!”
피가 흐르는 존재에게 위협이 되는 극독, 바일런트 베놈.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녀석이 피를 토한 것이다.
“무슨 짓…커헉…!”
녀석의 뺨에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뭐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하지만 말소리는 하나의 문장조차 완성하지 못하고.
단지 꺽꺽거리는 구역질만 할 뿐.
녀석이 피를 토해내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플래티나 크로스
바일런트 베놈만으로도 치명적인 공격이었을 테지만.
은하는 과신하지 않았다.
놈은 분명 저항해내고 있었고.
완전히 끝을 보기 전까지─.
─구마는 죽은 게 아니야.
마인은 존재 자체만으로 재앙.
재앙이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재앙은 완전히 끝이 난 게 아니다.
은하는 백금색으로 번뜩이는 검을 놈의 바로 가까이에서 내리쳤다.
──!!
섬광이 세상을 먹어치우고.
새하얗게 변한 세상에서도 은하는 눈을 감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눈을 뜨며, 너무나도 강렬한 빛에 마치 눈이 멀어버릴 것 같으면서도.
그는 섬광에 먹혀든 녀석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했다.
이윽고 빛의 세기가 약해지고─.
“─…….”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은하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무언가가 마법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던 흔적이 바닥에 패여 있었을 뿐.
놈이 서 있던 자리를 제외하고.
주변 일대가 통째로 소멸해버렸다.
“젠장….”
기프트의 힘을 더하여, 한계까지 마나를 압축하고 압축하여 만들어낸 일격필살.
그럼에도 은하는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마석이 보이지 않았다.
마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꿈을 꾸었다.”
놈이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
아니나 다를까.
그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불현듯 등 뒤에서 느껴진 기척.
그곳에 벨페고르가 있었다.
너무나도 멀쩡한 상태로.
“그 마법, 하마터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위험했어.” “…….”
“아,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나았으려나. 그랬다면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을 텐데.” “차라리 그러지 그랬어.”
“그래도 역시 그렇게 못하겠더군. 죽어서 꾸는 꿈이 무슨 소용이겠어. 살아있을 때 꿔야 꿈인 거지. 나는 죽어서 게으름을 피울 게 아니라, 살아서 피우고 싶은 거거든.”
녀석은, 꿈을 지배하는 악마다.
근처에 꿈을 꾸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를 잠재워서 꿈속 세상으로 이동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유리관 속에서 복부가 갈라진 채로 눈을 감고 있는 여자아이.
여자아이의 머릿속에서 나와서는 바닥에 착지한 악마가 키득 웃었다.
“그러니 부탁이다. 그냥 이대로 날 못 본 척 해주면 안 되는 거냐?”
이내 정중하게.
웃음을 거둔 악마는,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간절히 말했다.
“이런 실험 따위는 지겹다. 나는, 단지 바깥 세상에 나가서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
“제발…, 부탁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나태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남자아이가 울먹거리듯 말했다.
그럼에도 은하는─.
─마나 크래셔
눈발을 기는 겨울을 휘둘렀다.
검에 맺힌 마나를 채찍처럼 휘어, 그대로 벨페고르를 붙잡았다.
“…큭…! 어째서…,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냐!”
억울하다는 듯이.
벨페고르가 날이 선 채찍에 조이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채찍과도 같은 칼날은 마치 그를 동강내겠다는 듯 조여들었고.
은하는─.
“─이게 어디서 뻥을 까?”
“뭐?”
“네가 밖에 나가 무슨 짓을 벌일지 내가 모를 줄 알아?”
“…….” “사람들이란 사람들은 전부 다 잠재워 버릴 속셈이면서.” “……!”
“그러고는 꿈속에서 네가 당해왔던 실험을 겪게 해줄 거고.” “…….”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웃기고 있네.”
“…….”
“사람들을 전부 꿈속에 가둬놓고, 지 혼자 조용히 살겠다는 뜻이면서 무슨….” “……!”
악마의 혀는 조심해야 한다.
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하여, 감미로운 말로 인간을 속이니까.
녀석은 이전 삶에서도 그러했다.
겉으로는 나태한 말을 지껄이며.
마음속으로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담아두고서는 기회가 생기면 흉악한 본성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교묘하게 연구원들을 속이기나 하고 말이야.” “……!”
“걔네들도 모르게 세뇌시켜서는, 네 힘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 실험을 하게 했지?” “…….”
이전 삶에서 녀석 본인이 말했다.
언젠가부터는 타의가 아닌 자의로.
놈은 세상에 나갈 날을 기대하며 연구원들에게 자신을 강화시키도록 만들었다고.
물론 녀석이 언제부터 그런 수작을 부린 건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은하는 말을 놀렸다.
시간을 벌어야 했으니까.
연달아 마나 소모가 극심한 마법을 사용한 나머지 체내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기프트가 발동하고 있는 마당이었으니.
마나 드레인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틈을 보이는 순간 형세는 언제든 역전될 수 있으니까.
벨페고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은하는 마나 드레인을 사용하면서 체내 마나를 회복했다.
하지만─.
“─들켰네?”
은하의 바람과 다르게.
벨페고르는 너무나도 순순히 자신의 속마음을 인정했다.
“그러면 안 되나? 나는 너희들에게 그런 짓을 해도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자아이는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 있는 존재는 악마일 뿐.
녀석이 입가를 귀까지 끌어올리며 낄낄거렸다.
그러고는 웃음을 뚝 그친다.
“내가 있었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거다.” “…….”
“내가 너희를 위해 희생을 했기에, 너희는 의학과 과학의 혜택을 보며 나태하고 게으르게 살 수가 있었던 거라고.”
“…….”
“그런데 난 그러면 안 되는 건가? 너희를 위해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너희가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악마의 호소.
은하는 벨페고르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웃기시네. 그냥 지 혼자 조용히 살고 싶은 거면서.”
악마의 혀는 조심해야 한다.
이전 삶에서, 플레이어들은 놈들의 감언이설에 몇 번이고 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은하는 놈의 호소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꿈도 없는 놈이군. 사람이라면 좀 흔들려야 하는 거 아닌가?”
“뻔한 거짓말에 왜 흔들리겠어.”
표정 하나도 바꾸지 않고.
벨페고르는 호소하는 얼굴 그대로 불만을 표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나는 조용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개미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는 세상에서 조용히.”
“거 보라지.”
“정말이지 넌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군. 그런데 그건 아나?” “……?” “네가 시간을 벌려고 그렇게 했듯, 나 역시 시간을 벌려 했던 거라고.”
“……!”
별안간 키득거리는 벨페고르.
반면 은하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감지망이 알려왔다.
무언가가 접근하고 있다고.
“운이 좋았던 건지, 마침 근처에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그래서 얼른 이쪽으로 좀 와 달라고 불러봤지.”
“…….”
“그런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지, 오는데 시간이 꽤나 걸리겠더라고. 그래서 시간 좀 끌어본 거야.”
벨페고르의 그 말을 끝으로.
연구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은하는 계단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
모두 그에 의해 정신이 붕괴해버린 슬레이어들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벨페고르에 의해, 꿈을 지배당하게 된 꼭두각시들.
“─꿈은 언제나 네가 상상도 못할 세상을 보여주는 법이지.”
“빌어먹을….”
부상을 입든, 말든.
슬레이어들이 우르르 뛰어내린다.
그들이 무기를 쥐고 달려든다.
은하는 혀를 찼다.
☆
겉으로는 태연함을 가장하였으나.
속으로는 몹시 불쾌했다.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벨페고르는 불쾌함을 억누르고는 슬레이어들과 사투를 벌이는 청년을 노려보았다.
대체 뭐하는 녀석이지?
전후좌우.
사방에서 공격을 하는 슬레이어들.
그럼에도 청년은 틈을 보이지 않고 그들을 차례로 무력화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벨페고르는 그의 전투실력을 보며 호기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건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
어차피 꿈속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알 수 있는 일일 테니까.
이내 벨페고르는 심드렁한 얼굴로 생각을 정리했다.
어차피 꿈을 보면 될 뿐이다.
그러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천보
미침
한편 청년의 전투실력은 그야말로 경이롭기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경이롭다고 한들.
그래봤자 인간에 불과하지.
인간인 이상, 한계가 있는 법.
백 번이 넘는 인체실험을 당하며, 인체실험을 당하는 이들을 보면서.
벨페고르는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한계를 가늠할 수 있었다.
월무
바일런…큭…!
청년의 실력은 분명 자신도 방심할 수 없는 정도였다.
인간이냐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실제로 그는 슬레이어들을 상대로도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큭…!”
그 역시 지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청년의 체내 마나는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았다.
벅찬 전투가 계속될수록.
청년은 계속 지쳐갔고, 점점 그의 체내 마나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벨페고르는 이때를 노렸다.
─지금이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청년은 자신이 그의 꿈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하지만 저리도 지쳐 있는 데에도 자신의 마법을 떨칠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
잘근잘근 그의 체력을 뺏고 있던 벨페고르는 이때를 노렸다.
꿈을 통해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청년에게 접근하려는 슬레이어의 꿈속에서 빠져나온 벨페고르는 곧장 청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잔뜩 지쳐 있던 청년은 이번에는 대응이 반 박자 늦었다.
“─이제, 꿈을 꿀 시간이다.”
청년의 얼굴에 나타나는 당혹감.
벨페고르는 키득거리며 그의 꿈을 건드렸다.
쏴아아아
세상이 순식간에 변하고.
악마는 타인의 꿈에 발을 들였다.
“…깜깜하군.“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깜깜한 세상.
생전 처음 보는 세상에.
벨페고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