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52
제1 바이오 센터 연구소장실.
건물을 지키는 플레이어 대다수가 제2 바이오 센터에서 감지된 마나를 파악하러 간 사이.
브루노와 이십오는 연구소장실에 수월하게 잠입할 수 있었다.
“세상에 액자 뒤에다 따로 공간을 만들어놓다니…. 이러면 뭐 모를 줄 알았나? 내 눈에는 다 보이는구만.”
이십오.
사전에 은하가 정보를 알려준 것과 관계없이.
그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새하얀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보고는 툴툴거렸다.
이렇다 할 만한 장식이 없는 방에 값비싸 보이는 액자가 걸려 있으니 자연히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나를 컨트롤하는데 능한 사람은 액자에 무언가 술식이 쳐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풀 수 있나?”
“어이쿠, 아저씨. 절 믿으라니까요. 이런 걸 푸는 건 제가 전문이니까.”
이십오는 액자에 손을 댔고.
브루노와 몇 마디 말을 한 사이에 액자에 걸려 있는 술식을 풀어냈다.
그가 고정되어 있는 액자를 과감히 옆으로 밀려 하자─.
─드륵
움직이지 않아야 할 액자가 옆으로 밀려났다.
이십오는 키득거렸다.
“거 보라니까요. 봤쥬?”
“흠.”
그대로 액자를 쭉 밀어내니.
사람 하나가 숨기 적절한 크기의 공간이 나왔다.
지폐 몇 다발과 금괴 몇 개.
그리고 하드커버로 이루어져 있는, 장부로 추정되는 책 몇 권.
“오, 현물도 꽤 많네. 아저씨, 이건 주인님이랑 저랑 아저씨랑 나누면 될 것 같은데요?” “난 필요 없다.” “그럼 저랑 주인님하고 둘이서만 반띵합니다?”
“…….”
“농담이에요, 농담. 삼등분하죠.” “흠.”
공간 속에
도 트랩이 있었지만.
이십오는 손을 넣었다 뺀 것만으로 트랩을 해제해버렸다.
그가 금괴를 껴안고서는 희희낙락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편 브루노는─.
“─이건가.”
재물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는 책을 한 권 꺼냈다.
표지가 적혀 있지 않은 책.
책의 내용을 확인해보기 위해 대충 페이지를 넘기자, 페이지에 숫자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와우!” “…….”
“이거 다들 어떤 식으로든 이쪽에 한 발씩 걸쳤나 보네요. 하기사…, 주민등록도 없는 꼬마애들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 세상인데 이런 게 이상한 일도 아니죠.”
10대 재계그룹을 비롯하여 정재계 사람들의 자금이 흘러든 게 기록된, 필시 세상에 공개됐다가는 크나큰 파장을 불러오게 될 장부.
브루노는 이십오가 옆으로 끼어들어 내용을 확인하려 하자, 탁 하고 책을 덮었다.
“─우리는 우리 일을 한다. 이게 무엇이든,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게 아닐 텐데.”
“쳇, 쪼잔하게…. 조금만 더 보고 싶었는데….” “…….”
“아닙니다. 주인님한테 가져다 드려야죠, 암.”
몇 마디 말로 따금히 이십오에게 주의를 주는 브루노.
이십오는 툴툴거리기만 했을 뿐, 더는 장부를 보여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한편 브루노는 가지고 온 가방에 장부들을 집어넣었다.
그러던 그때─.
─쿵
다시금 감지된 마나의 파장.
뒤이어 일순 지축을 흔드는 굉음.
두 사람은 마나가 감지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제2 바이오 센터 방향.
그들이 방 안에 있는 창문에서는 제2 바이오 센터가 한눈에 들어왔다.
쿵
또 다시 지축이 흔들렸다.
그들은 일순 어둠 속에서 건물이 흔들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지금도 흔들리고 있었다.
도대체 저곳에서 얼마나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것인지.
건물이 부서지기라도 할 것 같이 창문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저씨. 아무래도 우리가 얼른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흠….”
“지금 건물 주변에 플레이어들이 결계를 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주인님이라도 저들을 전부 상대하지 못할 거예요.”
“그렇겠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이십오.
브루노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현재 은하가 상대하고 있을 적도 만만치 않은 듯했고.
건물 주변에서 포위망을 구성하는 플레이어들도 여간 쉬운 상대들이 아니었다.
은하에게 조력자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넌 이걸 갖고 가라. 은하에게는 내가 갈 테니까.”
“네? 뭐라굽쇼?”
브루노는 장부를 담은 가방을 냉큼 이십오에게 넘겼다.
얼떨결에 가방을 받게 된 이십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브루노는 반론을 허용치 않겠다는 태도였다.
“전투가 격화되면, 가방 안에 있는 물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은하의 목적이 바로 그것인 이상,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그걸 지키고 밖으로 빠져나가야겠지.”
“그래서 저 보고 빠져나가라고요?”
“여기에서 전투가 가능한 사람이 나 말고 누가 있지?” “…….”
“연구소 밖에서 명왕클랜 사람들이 만일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을 거다. 그자들에게 보호를 요청하면 필시 들어주겠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장부였을 뿐, 현재 은하가 상대하고 있을 존재가 아니었다.
괜히 그에게 지원을 갔다가 잘못해 기껏 얻은 장부를 잃을 수 있었다.
누군가 한 명은 경비가 어수선한 이때를 노려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가라, 어서.”
그래서 이십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전투가 가능하긴 하나, 브루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능력은 이런 데 특화되어 있지 않았던가.
다만 그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저씨. 나 믿어요? 제가 만약 이걸 가지고 튀면 어떡하려고요?” “…….” “아저씨는 저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거의 충동적으로
이십오는 브루노에게 물었다.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장부였다.
이십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걸 자신의 입맛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고.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에게 그리 호의적이라 할 수 없던 브루노에게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브루노는 그의 의문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난 경박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무엇보다 레인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레인저는 무슨 잘못이래? 레인저도 가디언이면서 딜러 같은 아저씨는 싫답니다.” “당연히 널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그래, 나는 네가 싫다.”
“내 말 안 듣네.”
“그럼에도 너에게 그것을 맡기는 이유는─.”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
서로 일방적으로 말한다.
그럼에도 대화는 미묘히 통했고, 이십오는 한 차례 숨을 가다듬고는 말을 잇는 브루노를 주시했다.
“─다만 네가 은하를 위하는 마음 하나만은 거짓이 아닐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허, 참…. 아저씨, 오글거려요.”
한없이 진지하고 무거운 목소리.
이십오는 그 말을 한참 되새기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일부러 익살스런 행동을 취했다.
“이거 잃어버린대도 전 모릅니다? 진짜 내가 확 가져가는 수가 있어?” “가라.”
“말 안 해도 갈 겁니다!”
두 사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
힘이, 넘쳐흐른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속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들끓는다.
슈우우웅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는 그대로 불꽃이 되어 나부끼고.
온 감각이 곤두선다.
마나가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우보
흐름을 밟는다.
소수점에 불과한 시간 차이.
그러나 그것이 가져온 아주 사소한 차이가 변화를 만든다.
시야는 순식간에 바뀌고.
아니, 인지하고─.
“─커헉…!!”
우보
인지하는 곳에, 자신이 있다.
장소를 이동한다는 것은 은하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다.
눈으로 보면, 바로 그곳에 있었고.
검을 휘두르면, 바로 그곳에 놈이 있었다.
…굉장해.
기프트 .
그리고 기프트 .
두 기프트가 가져온 능력의 강화는 은하 자신이 내내 감탄하게 만들고 있었다.
또한─.
─플레임 고스트(Flame Ghost)
블레이즈 크래셔
환수의 힘이라 할 수 있는 불꽃.
흩날리는 불씨는 그의 의지에 따라 세상에 작용하고 있었다.
불길로 뒤덮인 원령은 벨페고르가 몸에 두른 마나를 지속적으로 태워버렸다.
“괴물 같은 녀석….”
존재가 흐트러진 상태에서.
은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던 놈은 축 늘어진 어깨를 부여잡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은하는 악마가 자신에게 괴물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게 우스웠다.
그러나 그도 부정하지 못했다.
그 역시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게 정말 나라고?
마치 한계를 벗어난 듯한 감각.
한 인간의 인지를 넘어선 실력에, 은하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파지직
꿈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힘에 신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끼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대로 오래 끌어서는 안 돼.
마나가 부족하기도 하고, 신체가 버티지 못하고 있어.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으나.
이미 속은 무너지고 있었다.
피이이익
불닭이도 그것을 느낀 모양이다.
망토가 되어 은하를 지키고 있는 환수가 머릿속에서 나직이 울었다.
괜찮아.
은하는 환수를 다독였다.
아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며 호소하고 있는 몸에게 말했다.
아직은 괜찮았다.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
이보다 더한 고통을 이전 삶에서 수도 없이 겪지 않았던가.
그러니─.
─바일런트 플레임(Violent Flame)
계속 싸울 수 있다.
그는 어느새 일대에 휘날리고 있던 불씨를 ‘인지’했다.
그것만으로.
퍼퍼퍼펑!!
마치 극독을 머금은 것처럼.
불씨는 검게, 검게, 검게 물들고.
그것들이 돌연 폭발했다.
겨우 작은 불씨 하나가 일으킨 폭발은 과히 파격적이었고.
벨페고르의 주변을 감싼 불씨들이 동시에 일으킨 폭발은 어마어마했다.
불꽃이 흩날리듯, 폭발이 흩날렸다.
그리하여 세상을 가득 메운 폭발은 결국─.
─쿠구구구
그야말로 세상을 붕괴시켰다.
☆
힘 조절을 잘못했다.
기프트의 힘이야 어느 정도 조절할 수가 있다지만.
에 까지 더해지니 내 힘이 얼마나 하는 건지 감을 못 잡겠네.
평소와 같이 힘을 휘둘러버렸으니,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밖에.
더군다나 은하 본인도 객관적으로 몇 배로 강화된 자신의 힘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연구소가 폭삭 가라앉고 말았다.
“…….”
하마터면 그대로 지하에 묻힐 뻔했다.
천장이 무너지기 직전.
우보를 사용하여 밖으로 빠져나온 그는 무너진 잔해를 둘러보았다.
더는 연구소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는 한편─.
─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진짜 안 죽었을 줄이야….
은하는 잔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벨페고르를 보고 혀를 찼다.
“…쿨럭…. 꺼헉…!!”
놈의 상태는 좋지 않은 듯했지만.
그만한 폭격을 받고서도 살아남아, 아직도 악마와 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너…, 정말 인간이냐. 나처럼 혹시 실험을 받은 건….” “그럴 리가 있겠냐.”
“악마 같은 놈.” “남이사.”
벨페고르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은 명백한 경악.
은하는 자신을 향해 떨떠름해하는 놈에게 따갑게 대꾸했다.
그러는 한편─.
─큰일이야.
사람이 왜 이리 많은 거야?
은하는 벨페고르의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속으로 한탄했다.
어쩐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2 바이오 센터 주변에 때마침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던 듯했다.
덕분에 벨페고르는 그들의 꿈을 장악해, 몸을 회복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벨페고르는─.
“─보아하니 네 무지막지한 힘에도 한계가 있는 모양인 것 같은데…. 하긴, 영원한 꿈이란 없는 법이지. 내가 보여주는 꿈 외에는.”
“꿈도 야무지시네.”
자신의 약점을 눈치 챘다.
그렇지 않아도 우보를 계속 사용해 연구소에서 탈출한 결과로 마나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마나 드레인으로 대기 중에 녹아든 마나를 흡수하고 있다지만─.
─벨페고르의 회복능력에는 따라갈 수가 없어.
그는 플레이어들을 마치 수족처럼 주변에 거느리고 있는 녀석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놈이 회복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놈이 수가 틀리면 저들의 꿈속으로 들어갈 거라는 것도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나저나 이게 바깥세상인 건가. 하늘이 참 넓기는 하군. 아주 좋아. 나는 이런 데서 한적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
“너희 인간들을 모두 잠재우고.”
흐트러지던 존재도 어느덧 안정을 되찾았는지.
놈의 태도는 무척 여유로웠다.
쿠오오오
벨페고르의 등 뒤에서.
산양의 뿔이 난 거인이 솟구쳤다.
이전까지는 반신에 지나지 않았던 거인은 이제 완전히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있었다.
거인은 은하를 내려다보았다.
또한─.
“”””─…….””””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으로.
플레이어들이 병장기를 쥐고서는 은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이지 악몽 같은 만남이었다. 싫어도 내 평생 기억하게 될 만남, 그러니 이만 뒈져라.”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이 상황에서도 입만 살아서는….”
두 팔을 활짝 펼치는 벨페고르.
그것을 시작으로 공격이 시작됐다.
플레이어들이 체내 마나를 꺼내며 대거로 은하에게 달려들었다.
그 뒤에서는 거대한 산양이 뒤따르고 있었다.
─우보
그럼에도 은하는 당황하지 않았고.
달려드는 플레이어들을 무시하고서 곧장 벨페고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너희가 꿈을 꾸는 한, 나는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다.”
“……!!”
그가 우보를 사용한 것과 동시에.
벨페고르는 플레이어의 꿈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다른 플레이어의 꿈속에서 현실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바일런트 베놈
그렇다면 꿈을 모조리 말살하면 될 일이다.
물론, 녀석은 그것까지 고려해서는 플레이어들의 배치에 신경을 쓴 듯 했지만.
그래봤자 그들은 인간이었다.
몸속에 피가 흐르고 있는 한, 독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죽음이 되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어디든 빠르게 이동하는 그에게는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리하여 방해가 되는 사람들부터 먼저 쓰러뜨리는가 했더니─.
“─걸렸구나.” “……!”
돌연 발밑에서 발동한 마법.
속박마법이었다.
우보로도 피할 수 없도록 정교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듯한 술식.
꼼짝 없이 발을 붙들리고 만 그는 그 즉시 마법을 파훼하려 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어디 그것도 독으로 처리할 수 있겠냐?” “…….”
산양을 연상케 하는 거인이.
은하의 앞에 서 있었다.
녀석이 주먹을 하늘 높이 쳐들고, 씩 웃었다.
부우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
맞는 즉시 곤죽이 나버릴 것 같은 주먹이 위에서 떨어진다.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피해야 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오만의 반격
받아치면 될 뿐.
거인의 존재가 마나로 된 것이라면 아티펙트 오만의 반격이 허용하는 범위에 머무른다고 할 수 있었다.
치이이이잉!!
목걸이가 번쩍 빛을 발했다.
떨어져 내리던 주먹은 방벽에 가로막혀, 그대로 거꾸로 치솟았고.
거인의 얼굴이 함몰되었으며.
오만의 반격은 그를 속박하고 있는 마법까지 거인에게 날려버렸다.
다시 말해, 움직이지 못하는 놈은 곧─.
─아주 좋은 표적이지.
프로미넌스 댄스(Prominence Dance)
오른쪽에는 시리게 피는 겨울이요, 왼쪽에는 눈발을 기는 겨울이요.
두 검이 불길에 휩싸여 울었다.
두 갈래의 궤적.
그 궤적은 곧 하나로 합쳐지면서, 최종적으로 거인을 난도질했다.
거인의 존재가 불에 타며 조각조각 무너져 내렸다.
“…너는 날 참 귀찮게 하는 구나.”
“내가 할 말이라니까. 그만 죽어라, 좀. 집에 가서 잠 좀 자게.”
“그렇게 자고 싶다면─.”
거인이 마나가 되어 흩어진다.
그것이 벨페고르에게 돌아간다.
벨페고르는 무너진 거인을 보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곧 평온을 되찾았다.
그의 뒤에서 조금 전보다 더 큰 거인이 솟아올랐으니까.
“─그렇게 양이나 계속 세면 된다. 계속 쓰러뜨리다 보면 너도 언젠가 잠을 자고 있겠지.”
“…….” “어디, 이걸로 세 마리째인가. 아직 잠을 자려면 한참이나 남았겠구나. 그래, 내가 네가 잠자게 될 때까지 얼마든지 어울려주지. 양이나 세라.”
벨페고르는 깔깔거렸다.
상황은 명백했다.
악마는 아직도 힘이 넘쳐났지만, 그는 점점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체내 마나의 싸움에서 승패가 결정되고 만 것이다.
“세 마리는 무슨.” “뭐?” “잘못 센 거 아니야?”
그럼에도 은하는 여전히 태연했다.
오히려 이제는 벨페고르를 따라서 이죽였다.
“무슨 소리를─…!!”
이에 벨페고르는 의아해했고.
그의 의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은하에게 향해 있던 나머지─.
─spuntóne del diavolo
악마의 창
그만 벨페고르는 기척을 지운 채로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 존재는 하늘에서 떨어졌으니까.
쿠콰아아아아아앙!!
세상을 찢어발길 듯한 파열음.
거대한 창은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쳐든 산양을 그대로 반으로 나누어버렸다.
그리하여 지면이 움푹 팬 곳에서 걸어나온 존재는─.
“─네 마리.”
“…….”
덤덤히.
벨페고르가 할 말을 잃은 가운데.
브루노는 투기를 몸에 두른 채로 입을 열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