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56
생각은 깊어진다.
지금보다도 훨씬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이 손 안에 있다.
위험부담이 높기는 하다지만 일단 성공만 한다면─.
─인간 중에서 최강이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도 모르지.
그때는 인간이 아니라 마인이라고 해야겠지만….
은하는 손바닥 위에 있는 내단을 쥐락펴락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세상에 들이닥칠 재앙.
그러한 재앙 중에서 많은 희생을 강요해야만 쓰러뜨릴 수 있는 재앙.
이를 테면 의정부 청사에서 보스로 군림하는 제2위계 몬스터 매구.
그리고 스스로를 신인류라 칭하는 아홉 개의 재앙, 구마들.
벨페고르는 쓰러졌으니까 이제는 구마가 아니라 팔마라고 불리게 될 테지만….
그들 외에도.
당장 2년 후에야 다가올 재앙에는 제3위계 오버랭크 몬스터 예경 또한 있지 않은가.
“…모르겠네.”
“삐삐.”
결론이 나지 않는다.
내단을 먹고 살 수 있을 것인지. 행여나 마인으로 진화를 거듭하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불안도 있었다.
또한 내단을 체내에 소화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지.
더 강해질 수 있어.
하지만 여기서 더 강해지는 것이 과연 정답일지 모르겠어….
모르겠다.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오늘도 은하는 병원 침대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잘 지냈어? 몸은 괜찮아?” “아, 누나. 어서 와.”
병실 문이 열리고.
문틈 너머로 류연화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은하는 내단을 서랍 속에 넣고는 그녀를 반겼다.
“들어갈게.”
“병실 들어오는 것 가지고 뭘 그리 허락을 받으려고 그래? 들어와.”
“빠빠!”
“응. 불닭이도 안녕?”
총총.
그 말을 들은 그녀가 긴 머리칼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왔다.
한 손으로는 창을 어깨에 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새하얀 봉투를 껴안은 채로.
☆
“계란빵 사왔어.”
“오, 고마워. 안 그래도 요새 이게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거기에 앉아 있어. 내가 커피 타올게.” “아니야. 내가 할게. 은하 넌 거기 앉아 있어.”
“마나회로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이제 몸은 괜찮아. 이렇게 간간이 운동도 하는 거지, 뭘.”
“…그럼 잘 마실게.”
“빠빠!”
류연화의 말을 듣자하니 복도에서 할머니와 마주쳤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편히 있으라면서 어머니를 데리고 자리를 피해주기로 했다면서.
류연화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 은하는 커피포트에서 뜨거운 커피를 내왔다.
“그런데…, 미안해.”
“응?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삐삐?”
은하가 자리로 돌아오고.
커피를 건네받은 그녀가 주춤하며 말을 꺼냈다.
별안간 류연화의 사과를 받게 된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류연화의 무릎 위에 앉아서 놀던 불닭이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게…. 식기 전에 가지고 오려고 도중에 마법을 써서 뛰어왔거든….”
“…응? 뭘 그렇게까지….”
은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계란빵 봉지를 한 손으로 껴안고 도심지를 활보했을 그녀를 생각하니 그만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웃어서는 안 됐다.
상황과 달리 그녀는 그에게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사정을 설명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고백은 계속되었다.
“근데 내가 마나를 발현하게 되면 내 의지하고는 관계없이 얼음으로 변화해버려서….”
“…….”
“그래서 아마 많이 식었을 거야. 미안해. 평소에는 이러지 않는데…. 하필 이럴 때 실수를 해서….”
꼭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이.
류연화가 의외일 것 같은 분위기로 사과한다.
은하는 시무룩하게 긴 머리카락을 축 늘어뜨린 그녀를 보고 낯설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물론 낯설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네.
사람답다.
얼음장 같은 성격과 비교했을 때, 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이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가 보다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내가 기억하는 은 실력 하나는 정말 믿음직했었지만, 너무 무뚝뚝해서 탈인 사람이었지.
내가 말할 것도 아니지만….
어디에서부터 미래가 바뀐 것인지, 그것은 알 수 없었지만.
은하는 그녀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이 누나도 은근히 허당인 면이 있다니까?
자신보다 4살이나 많건만.
은근히 허당이다.
그래서 가끔 귀엽게도 보인다.
물론, 그녀가 알면 화를 낼 것이 뻔했지만.
그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불닭이의 힘을 빌린다.
은하의 손은 불꽃에 휩싸였다.
“식었으면 다시 데우면 그만이지. 내가 방금 막 만든 것처럼 따뜻하게 데워줄게.”
“삐삐!”
“마법…, 사용해도 괜찮은 거야?”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불에 타고 있는 오른손.
은하는 그 손으로 봉지를 잡았다.
그러자 손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이 봉지로 옮겨갔다.
신기하게도 불은 안에 든 내용물을 데우기만 했을 뿐, 내용물을 태우려 하지 않았다.
“…대단해. 미세하게 컨트롤해서 불꽃을 조절하고 있는 거구나.” “누나도 이런 건 할 수 있지 않아? 얼려야 할 사람과 얼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은하 넌 기프트의 도움을 받지 않는 거잖아. 지금 네가 한 건 기프트의 힘으로도 까다로운 영역이야.” “음, 그런가?”
“응.”
마나 컨트롤에는 워낙 도가 터서.
은하는 불닭이의 힘을 빌린 이후로 불꽃을 컨트롤하는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연화의 감탄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 다 데워졌네. 이제 먹자.”
“응.”
따뜻하게 데워진 계란빵.
은하는 연화에게 하나를 건네주고 즉각 하나를 베어 물었다.
과연 계란 하나가 통째로 들어갔다 할 수 있는 맛이었다.
은하는 흡족해했다.
“이 맛이야. 진짜 먹고 싶었다니까. 맛있지?”
“…응, 맛있다.”
“커피도 마셔. 뻑뻑하겠다.” “응.”
“삐삐!”
“그래, 너도 먹어.”
“아니야, 내가 줄게.”
불닭이도 달라고 성화다.
은하가 한 움큼을 떼어주려 하다, 연화가 자신이 먹고 있던 빵 조각을 불닭이에게 떼 주었다.
불닭이 역시 좋아라 하며 계란빵을 쪼아먹었다.
“근데 너는 커피 안 마셔?” “아, 이거?”
은하가 계란빵을 두 개째 섭렵했을 무렵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이내 은하의 컵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처음 커피를 따랐을 때 이후, 커피의 높낮이는 변화가 없었다.
이에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뜨거운 것은 잘 못 마셔서 일단 식혀두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은아도 뜨거운 거는 잘 못 마시는데…. 은하 너도 그랬구나.”
무슨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인지, 별안간 쿡쿡 웃음을 참는 류연화.
그러던 그녀가 은하의 컵에 손을 가져다댔다.
“…자. 이제는 마실 수 있을 거야. 은아도 이 정도 온도에서 마시는 걸 좋아했거든.”
“와, 대박. 정말 딱이야.”
“다행이다.”
류연화는 냉기를 다루는데 능했고, 따라서 그녀에게 커피를 식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면 냉기를 다루는데 익숙지 못한 은하는 그것조차도 대단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감탄하자, 그녀가 쑥스러워하며 몸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다 불닭이에게 시원한 얼음을 만들어주었다.
불닭이는 빵을 먹다 말고 얼음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놀았고.
“진짜…. 가끔씩 생각하는 거지만 누나 능력은 정말 유용하다.” “나는 네 능력이 더 부러워. 나는 냉기밖에는 다루지 못하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둘이 능력을 반반씩 섞으면 딱 좋겠다. 안 그래?”
“…응, 정말 그럴 것 같아.”
계란빵을 한 입 우물거리며.
류연화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
“─그런데 아까 무슨 고민을 하고 있던 거야?”
“응?”
“내가 아까 들어왔을 때, 어쩐지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도중에 할머니와 어머니가 들어와 군것질거리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어머니와 할머니는 다시 좋은 시간을 보내라며 병실 밖으로 나갔고.
이에 은하는 디저트까지 먹으면서 연화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중간에 묘미가 있었다면 류연화가 어머니와 할머니가 사온 디저트라며 억지로라도 먹으려 했다는 것이다.
배부르면서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넘기려고 하던 모습도 웃겼는데.
류연화의 체면을 배려해서.
은하는 그녀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억지로라도 삼키려던 모습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류연화가 불쑥 물은 것이다.
조금 전에 무슨 고민을 하고 있던 것이냐고.
“…….”
“말하기 힘든 거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괜히 물어봐서 미안해.”
은하는 망설였다.
그리고 그의 망설임을 느꼈는지, 그녀가 겸연쩍어하며 말을 붙였다.
“뭘 이런 거를 가지고 미안해하고 그래?”
“…이제 주의를 해야 하니까. 내가 너한테 뭐라 그러는 게…, 어쩌면 너하고 사귀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예의가 아닌 거일 수 있잖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래도….”
“누나는 우리 누나 친구기도 하면서 뭘 그런 것까지도 신경을 쓰고 그래? 예전처럼 대해줘, 예전처럼.” “…….” “싫어?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야, 그건. 응…, 노력해볼게.”
어째 이상하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 같더라니.
아무래도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은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녀가 자신과 가깝게 지내더라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해도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효과는 있었다.
류연화가 마지못해하기는 했으나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건 그렇고─.
─말해야 하나….
은하는 제일 처음 류연화가 건넨 질문을 떠올렸다.
벨페고르의 내단에 관한 고민.
지금까지 은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홀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십오야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어 병문안을 오지 않기도 했던 데다, 브루노는 가족들에게 당분간 그에게 접근하지 말란 금지령이 떨어지기도 했으니까.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가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게 못 되는 고민이기는 하지….
그나마 서영 누나한테 조언을 구할 수가 있겠지만…. 바빠서 병문안도 잘 오지도 않고, 엄마나 할머니가 같이 있는 마당이니….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단련하는 것을 게을리 않는 류연화는 조언을 구할 만한 상대로 제격이 아닐까.
마침 병실에는 어머니나 할머니도 없는 상황이었고.
생각을 고친 은하는 입을 열었다.
“─고민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그게 뭔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내용이라면 도와줄게.”
은하가 선뜻 화제를 꺼내자.
그녀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지며 그의 말에 응답했다.
“음…. 만약에 나한테 지금보다도 더 강해질 수 있는 영약이 있다면, 누나는 어떻게 할 거야?” “…….”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걸 먹을 거야?”
그렇다고 마인이 될 수 있다느니.
은하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연화는 그가 꺼낸 가정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가 잠시 텀을 두고 물었다.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은 그걸 흡수하게 되면 그만큼 지금과 다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니?”
“…그럴지도 모르지.” “…….”
류연화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무릎 위에 앉은 불닭이의 머리를 만지며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은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고.
이윽고 그녀가 생각을 마친 것인지 입을 열었다.
“─내 스승님께서는 영약 같은 걸 좋아하지 않으셔. 특히나 영단이나 내단 같은 건.” “…….”
“포션은 별개지만, 체내에 흡수돼 힘의 일부가 되는 영약 같은 것은 원체 드시려 하지 않는 분이셔.”
그런데 뜬금없이.
그녀가 자신의 스승인 전 십이좌 남궁성운의 이름을 꺼낸 것이다.
“스승님께서 하는 말씀은 하나야. 영단이나 내단이 주는 힘에 취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
“…….” “상상력을 토대로 세상에 구현하는 마법이란 결국 ‘나’에 대해 탐구하고 나아가 자신을 규정하는 과정이야. 수련이란 그러한 과정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것이고.”
“…….” “그런데 자신을 연마하지도 않고, 영약의 힘에 의지해서는 제멋대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한다면 과연 그것이 일정 경지에 도달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강해지긴 하겠지만, 과연 그 사람의 마법에 깊이가 있다 할 수 있을까?”
또박또박.
류연화는 스승으로부터 몇 번이나 귀가 닳도록 들었을 법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은하는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경지에 이른다는 의미는 단순히 일정 궤도에 도달했다는 게 아니야. 그 경지까지 오르는 동안 많은 것을 체화했다는 뜻이라고 말씀하셨어.”
“누나 말이 맞아.” “그래서 나는…, 어디까지나 나는 그런 건 먹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 “…….”
류연화의 말이 맞았다.
단순히 강해지는 것보다는 어떻게 강해지게 된 것인지가 더 중요했다.
힘이란 무턱대고 쓰는 게 아니라, 영리하게 이용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쉬운 길은 없었다.
“─힘에 잡아먹혀 버려서는 안 돼. 그랬다가는 몬스터하고 다를 바가 뭐가 있겠니.”
‘─힘에 잡아먹힌 네놈들이 대관절 몬스터와 다를 바가 뭐가 있지?’
류연화가 말을 마쳤다.
그 순간, 은하는 회귀 전에 그녀가 언론을 통해 말했던 말이 생각났다.
구마가 세상에 출현한 그날.
스스로를 구마들의 수장이라 칭한 아마겟돈(Armageddon)은 세상에 자신들이야말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신인류라고 선언했다.
그때, 사건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사람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이다.
너희 구마는 숭고한 목적을 가진 인류의 구도자가 아니라 몬스터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라고.
“…누나 말이 맞아. 고마워.”
“도움이 돼서 다행이야.”
그때를 곱씹으며.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삶에서 그녀가 했던 말대로, 구마들은 힘에 잡아먹힌 몬스터와 다름이 없었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벨페고르의 내단을 먹게 되면.
자신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인류의 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힘에 취한다는 것은 그런 거니까.
자신이 아무리 힘에 취하지 않으려 다짐을 한다고 해도,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으리라.
그러니─.
─벨페고르의 내단은 보류하자.
그런 거 없이….
내가 강해질 수 있는 데까지 계속 훈련이나 해보자.
그동안 벽에 직면했다 생각했더니.
이제 보니 벽은 아직도 저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다.
성장할 여지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노련해질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그러니 남은 거리를 껑충 뛰어서는 내단을 흡수하고 싶지 않았다.
내단은 비장의 수라고 생각하자.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에…. 만약에 마인이 되어서라도 타개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때 생각하자.
벨페고르의 내단을 먹게 된다면, 그 전에 마인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놓겠다고.
노은하는 다짐했다.
☆
경기도 고양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원 신약의 연구소라고 불리던 장소도 이제는 불모지밖에 있지 않았다.
건재한 건물은 하나도 없었으며, 연구단지가 들어섰다는 흔적조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물며 이곳이 신인류 프로젝트의 온상지였다는 것도.
“…….”
남자는, 노인은 그곳에 있었다.
검은 중절모에, 지팡이를 짚고 선 그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불모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쯧….”
한참 만에.
노인은 혀를 끌끌 찼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노인은 이윽고 그곳으로부터 몸을 돌렸다.
“잠시 한 눈을 팔고 있던 사이에 누가 뒤통수를 치고 말았구만….”
궁시렁궁시렁.
노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며 지팡이를 짚었다.
“흔적을 보아하니 벨페고르 그놈이 소멸하기는 했나 보군. 대체 누가 꿈을 자유자재로 지배하는 그놈을 없앴
을꼬….”
신기하다고.
전혀 예측을 하지 못했다며.
노인은 투덜거렸다.
한 발이라도 빨랐다면 찾을 수야 있었을 테건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워 추적을 할 수가 없어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지나간 인연에 연연해해서는 안 되는 법이지, 암.”
이내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걸음을 멈췄다.
─탁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돌연 노인을 포위하는 형태로 하며 플레이어들이 나타난 것이다.
“…….”
한 명, 한 명이 범상치 않은 힘을 품고 있는 듯한 플레이어들.
도합 여섯.
파티 하나 규모였다.
노인은 이내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허허.”
그리고 뭐가 그리도 유쾌한지.
노인은 짤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플레이어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곳에는 웬일이십니까. 분명 바깥에 출입금지라고 붙여 놓았을 텐데요.”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아니, 너는 대체 누구냐. 감지망에 들지 않고, 어떻게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었던 거지?” “얌전히 저희를 따라오시죠, 그냥. 그럼 저희가 험한 꼴은 덜 당하도록 선생님께 배려해드리겠습니다.”
플레이어들이 체내 마나를 꺼내며 노인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노인은─.
“─허허.” “”””…….””””
노인은 그저 웃기만 했을 뿐.
이내 그가 지팡이로 지면을 탁탁 두드리자─.
“”””─……!!””””
그 순간.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노인은 유유자적 그들을 지나쳤다.
“내가 누구냐고?”
어리석을꼬.
나를 봤으면 그대로 도망쳤어야지.
허허 웃던 노인은 입가를 찢으며 낄낄 웃었다.
─디멘션 게이트(Dimension Gate)
그러고는 자신의 이름을 읊조린다.
나는 아마겟돈.
언젠가 너희 인간들을 지배하게 될 신인류니라.
노인이 그 말을 마쳤을 때.
노인은 그 자리에 없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55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