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57
입으로는 지루하다는 말을 언제나 달고 산다지만.
입원생활이 영 지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이나 정하양, 한서현 외에도 친구들이 종종 병문안을 와주고는 했으니까.
요즘에는 태희도 가끔 놀러오기도 하고 있고….
앨리스병원에는 온태희의 어머니도 입원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온태희는 요즘 들어 어머니의 병문안을 오면서 겸사겸사 은하의 병실을 찾고는 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어째 태희가 병문안을 오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냥 기분 탓이겠지.
태희 아주머니도 많이 편찮으신 것 같기도 하고….
은애와 죽이 잘 맞는 것도 있어서 태희가 곧잘 찾는 것 같기도 했다.
한편으로 태희가 전한 이야기로는 어머니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는 모양이었다.
몇 개월 전에 발생한 영원 신약 산업단지의 폭발사고.
서울과 경기권에 걸쳐 마나 환경에 영향을 끼친 사건이 마나 고갈증을 앓고 있는 그녀의 어머니의 상태를 악화시킨 듯했다.
최근에야 기운을 되찾았다고 하는 모양이었지만.
어서 엘릭서가 완성돼야 할 텐데.
영원 신약 산업단지의 폭발사고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은하는 내심 태희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빨리 엘릭서로 그녀의 어머니를 치유하고 싶었다.
정석훈의 말에 따르면, 엘릭서도 이제 거의 완성단계에 도달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온태희 외에도.
이날 병문안을 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몸은 이제 좀 어때? 그때보다 많이 나아진 것 같아?”
“응? 형이 여기는 웬일이야?”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렸지. 아, 이거 다음 달에 발매될 디저트인데 한 번 먹어봐. 너 좋아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어.”
루미너스그룹의 직계 이유천.
웬일인지 그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이다.
온태희가 가고 난 병실에 들어선 이유천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은하에게 잘 보이도록 종이봉투를 흔들어주었다.
☆
이병인에 의한 테러로 새벽그룹이 해체되고, 루미너스그룹이 새로이 탄생하게 되면서.
루미너스그룹에는 회장 이정인과 그의 핏줄인 이유천과 그의 여동생, 세 명의 직계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상 이정인의 뒤를 이어 다음 회장의 자리를 잇게 될 사람은 이유천 한 명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유천은 후계자로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와 약속을 잡거나, 연락하기도 정말 힘들 정도로.
이 형이 웬일이래?
갑자기 짬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닐 텐데….
이유천이 은하의 병문안을 온 것은 그가 병원에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심지어 그때도 이유천은 일이 있어 병실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은하는 그가 미안해하면서 자리를 뜨던 것이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의 상황을 잘 알았기에, 은하는 그에게 서운한 감정보다는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었다.
그러고는 유천이 자신의 병문안을 오는 일은 자신이 부르지 않고서는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유천이 이렇게 불쑥 병문안을 온 것이다.
“어때? 맛있지 않아? 가을이라서 메이플시럽을 사용해서 만든 건데 꽤 괜찮지 않아?” “맛있네. 과연 루미너스 스위트야. YH 스위트는 따라오지도 못하겠어. 딱 내 취향이야.”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YH 스위트는 경영진들이 애초에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잖아. 그러니 거기 매출이 계속 떨어지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그거 들었어?” “어떤 거?”
“여의도 증권가에 돌고 있는 건데, 요새 예장이 형이 저명한 의사들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하더라고?” “저명한 의사? 무슨 의사?”
“그거 있잖아, 그거. 불능 방면으로 뛰어난 의사.”
“아….”
과연 루미너스 스위트라고.
은하는 다음 달에 발매될 디저트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때 이유천이 몸을 바짝 붙여서는 그에게 귓속말로 전한 것이다.
YH그룹 직계 최예장의 불능을.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보다 제법 오래 가네?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은하는 스티지안 아이를 사용하여 최예장을 불능으로 만들었다.
한서현에게 질척대는 것이 너무나 짜증이 나서.
그런데 힘 조절을 잘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공포란 게 자신의 생각보다 최예장 본인에게는 강했던 것인지.
이유천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아무래도 스티지안 아이의 효과가 최예장에게 지속되고 있는 듯했다.
뭐, 알아서 하라지.
언젠가 마법의 효과는 사라지리라.
세상에 아직도 겨우 그런 공포를 떨쳐내지도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남자 구실도 못하는 자식.
은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 이유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YH그룹은 비상이라는 것 같더라고. 자칫하면 대가 끊어질지 모르는 일이니까. 거기 회장님께서 지금 전국팔도를 몽땅 뒤져서라도 거기에 좋다는 영약이나 명의들을 찾으라고 했다더라고.”
“대가 끊기기는 무슨…. YH에는 직계가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유난을 떠는 거지? 거기, 최예장 여동생도 있지 않았나? 아마 승계권도 꽤나 높을 텐데 여차하면 걔가 그룹을 이으면 되는 거 아냐?”
“그렇기는 한데 여자라서 회장님이 꺼려하시는 것 같더라고.”
“그 회장님도 여자 아니었나.”
“그러게 말이야. 그 회장님이 워낙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동해그룹처럼 장자 상속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더라고.”
“능력만 있으면 되지 뭘….”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은하는 이유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속담을 떠올렸다.
YH그룹은 갤럭시그룹에서 분리된 그룹이었다.
갤럭시그룹의 기틀을 다져놓았다는 최인호는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을 장남 최윤한
에게 물려주려 했기에.
그의 여동생이 반발하면서 그룹을 쪼개서는 YH그룹을 만든 것이다.
그만큼 딸보다 아들을 더 중시하는 풍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건만.
그녀는 대가 끊길지도 모른다고 날뛰면서 최예장의 불능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간 사람 속은 모르겠다니까.
일관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떨 때는 일관적이지 않다니까….
이러다 YH그룹에서 승계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은하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이 수면에 파문을 그리는 것은 물론, 수면이 요동치게 한 것이다.
“최예진이라고 했나? 그 애 생각은 어떻대?” “은하야…, 아무리 그래도 예전에 너한테 약혼을 신청하려고까지 하던 애인데 이름도 기억 못하는 건….” “어, 그랬어?” “…너희 아버지께서 말 안 했어?”
“뭐라고는 말했던 것 같기도 한데, 들어오는 약혼은 전부 거절해 달라 말했었으니까….”
“…너 내 이름은 기억하지?”
“당연하지.”
“후…, 그래, 내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어디야. 아,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최예진은 무슨 생각이냐고.” “글쎄…. 예진이하고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모르겠네. 이런 건 하양이나 한서현 누나한테 물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남자들에게는 남자들만의 세계가 있듯이, 여자들에게도 여자들만의 세계가 있을 테니 잘 알고 있겠지.” “하긴…, 나중에 물어봐야겠네.”
“근데 어디까지나 내 생각으론….” “응?”
“시가총액이 조 단위가 넘어가는 그룹의 직계로 태어났는데 예진이가 그걸 예장이 형한테 넘겨줄 정도로 욕심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아. 걔가 예장이 형한테 가려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내가 가진 것을 뺏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 아니야?”
이유천의 의견.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더라도 YH그룹이 승계분쟁을 하는 상황은 원치 않는데….
갤럭시그룹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YH그룹이 필요했다.
YH그룹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건 은하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최예장과 최예진이 회장이 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사이 최예장이 마법에서 풀려나 불능에서 벗어날지도 몰랐다.
그러니 은하의 고민은 아직까지는 머나먼 미래에 지나지 않았다.
크게 고민할 것까지는 없었다.
일단 상황만 파악하고 있어야지.
최예장 여동생도 나하고 동갑이니, 하양이랑 어느 정도 친한 사이겠고, 나중에 하양이한테 물어봐야겠다.
대략적인 행동방안을 내놓고.
그는 이제 YH그룹에 대한 생각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형도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는 거 아니야? 어디 들어갈지 생각은 해봤어?” “아….”
이유천의 나이는 올해로 19.
은하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하자 유천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조금 걱정이야.” “왜? 왜 그러는데?” “이변이 없는 이상 한서현 누나가 재학하고 있는 대학교에 입학할 것 같아. 그것도 한서현 누나가 있는 경영학부 말이야.” “잘 됐네. 서현이가 형 대학생활도 도와주고 그러겠네.” “…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니?”
“응?”
눈을 깜빡깜빡.
은하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천에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어째서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 이야기를 듣자하니─.
“─너한테는 안 그러는 모양인데, 그 누나 성격이 까칠한 건 정재계 사람들은 모두 알아주는 일이야.” “그렇다고는 들었지, 나도.” “너는 들었지. 나는 직접 겪어봤다. 저번 모임에서도 내가 너하고 같이 스카이라운지에 입장하니까 끝나고 그 누나가 따로 불러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낸 건 알아?”
“서현이는 나한테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는데….” “너한테 잘 보이려 하는 그 누나가 그걸 말했을 리 없지…. 혹시라도 내가 이 이야기를 말했다고 한서현 누나한테 말하면 안 된다?” “허허….”
“한서현 누나라고 부르기 어색하니 서현이 누나라고 부르려고 하니까 왜 남의 허락도 받지 않고서 멋대로 이름으로 부르냐고 까기도 하고….”
“그러게. 그냥 성까지 붙여 부르지, 왜 이름으로 부르고 그래? 서현이랑 친한 것도 아니면서.”
“…….”
“응? 왜?”
“와…. 내가 너한테 내 여동생한테 손대지 말라고 할 때마다 네가 느낀 감정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
“갑자기 뭐라는 거야?” “알았다. 깍듯하게 예의 차리면서 한서현 누나라고 부를게. 나도 사실 내 여동생만 아니었으면 그 누나랑 알고 지내고 싶지도 않았어….”
“서현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래. 형이 이해해줘.”
“하…. 여하튼 내년에 그 누나하고 같은 대학에 다니는 걸 생각하니까 조금 무섭다. 선배님 소리 안 하면 눈빛으로 잡아먹으려 할 거야….”
“…수고해.”
이유천이 우울한 소리를 중얼댄다.
안타깝게도 은하는 그의 이야기에 어떠한 공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은근히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누나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는 까칠하게 대한다는 말이지?
말끔히 정리되지 않는 감정.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뿌듯함.
은하는 콧대를 높이 세웠다.
“─슬슬 일어나야겠다.”
“벌써 가려고?”
“벌써는…. 2시간이나 있었잖아. 이제 그만 가서 일 봐야지.” “그래, 어쩔 수 없지.”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은하는 짐을 챙기며 일어나는 그를 아쉬워하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때.
“아.”
그가 병실을 나서려다 하다 말고 몸을 돌린 것이다.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앞으로는 자주 올게.” “어?”
“여동생도 오늘부터 여기에 입원하게 됐거든.”
“왜? 어디 아파?”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서 집에서 요양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힘들다는 말이 나와서 말이야.”
“…그렇구나.”
“아무래도 영원 신약 산업단지의 폭발사고 때문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아진 것 같아.” “아….”
“그러니 여동생의 병문안을 올 때 종종 놀러갈게.” “알았어. 여동생, 쾌차하길 바랄게.”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고맙다. 불닭이도.”
이유천이 병실을 나선다.
은하는 그가 나간 병실을 바라보며 그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아픈 사람이 많은가 보구나.
주변에 아픈 사람이 참 많다.
그의 여동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그녀를 위해 몸에 좋은 영약이라도 찾아야겠다.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벌컥
별안간 문이 열리고.
유도준이 병문안을 왔다.
“─오, 건강하게 잘 있었나 보네. 몸은 어때?”
“네가 제일 나쁜 놈이야.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오냐.”
“미안해. 요새 너무 바빠서 그랬어. 네가 이해 좀 해주라.”
“유천이 형도 바쁘다면서 오늘로 두 번이나 왔구만.” “안 그래도 오는 길에 유천이 형 만나서 한 대 맞고 왔어.”
“어? 맞아? 그 형이 누구를 때릴 사람은 아닐 텐데….”
“여동생. 입원했잖아. 그것 때문에 내 잘못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한 대 때리게 해달라고 하더라.” “아….”
“아우, 등 따가워. 이것도 병원에서 치료해 달라 해주면 해주려나.”
“그냥 참아.”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558(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