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58
영원 신약 게이트가 터지고.
유도준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세상은 영원그룹의 어둠을 고발한 유도준에게 주목했고.
그는 어디를 가나 스포트라이트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은하의 병문안을 갈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세상의 시선이 은하에게 쏠릴 수 있었으니까.
이 일에 내가 끼어들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골치 아파질 수가 있어.
영웅은 유도준 한 명으로 족했다.
애초 영원 신약 게이트를 파헤친 과정은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영원 신약에게 분노하고 있다지만.
언젠가 그 분노는 식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
정의를 실행한 것은 좋은데 결국 불법을 저지른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게다가 좁게 보면 이건 어디까지나 유도준의 집안사정이야.
내가 괜히 끼어들었다가는 이상한 오해를 만들 수도 있어.
또한 상황을 냉철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유도준이 정의감을 위해 영원그룹의 어둠을 고발했던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넓게 보면 세상을 위한 일이지만, 좁게 보면 도준이 회장이 되기 위한 승계분쟁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은하가 끼어들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은하가 도준을 통해 영원그룹을 간섭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순전히 유도준과 명왕클랜의 클랜로드이자 십이좌 도완준의 성과로 알려진 것이다.
무엇보다─.
─신인류 프로젝트의 배후에 있는 놈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어.
은하는 신인류 프로젝트의 배후를 밝혀내지 못했다.
은하가 영원 신약 게이트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 것을 바라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대체 누가 배후에 있는 거지?
만약 영원 신약 게이트의 관계자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게 되면.
신인류 프로젝트의 배후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배후를 잡아내려 하는 은하로서는 적에게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하지만 배후에 대한 단서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고.
은하는 영원 신약 게이트 이후로 오랜만에 얼굴을 보인 유도준에게 물었다.
“─아주 용의주도한 사람이더라.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는 게 없어.” “그래…, 역시 그렇구나.”
“일단 데우스 박사의 연구일지에서 ‘그분’이란 이름이 언급되긴 하는데,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단서가 없는 것 같더라고.”
안타깝게도 진척은 없는 듯했다.
유도준에게 전화로 간간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듣기는 했으나, 배후에 대한 단서는 조금도 찾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은하가 구한 자료 중에서 데우스 박사의 연구일지에서 ‘그분’이란 존재가 언급됐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은하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유도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게이트는 데우스 박사의 소행이었다는 선에서 끝내야 할 것 같아.” “어쩔 수 없지….”
국민들을 공분하게 만든 사건.
그러다 보니 선녀정부나 유도준은 어떻게든 게이트를 일으킨 장본인을 카메라 앞에 세워야 했다.
하지만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고.
수사를 하는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유도준은 이쯤에서 게이트를 적당히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은하도 아쉽지만 수긍해야 했다.
“그리고 조만간 마나관리기구에서 대대적인 부패척결이 시작될 거야. 선녀님이 선녀의 직인을 이용해서 이런 일을 벌인 것에 분노하셨거든. 거기 분위기 진짜 살벌하더라.”
“역시….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이야기겠지?”
“배신자…, 라고 해야 하나. 거기가 다달이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이지, 선녀님한테 충성을 해야 하는 곳은 아니잖아. 그냥 누가 공적인 힘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이용했을 뿐이지.” “그게 배신이지. 마나관리기구의 직원들은 국가와 선녀에게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서 헌신해야 한다는 걸 몰라? 사리사욕을 채울 생각이라면 국가기관이 아니라 사기업 같은 데 취직을 했어야지.”
“뭐…, 네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나는 부패척결이 과연 얼마만큼이나 효력을 지닐까 회의적이야.”
“그건 왜?” “한국이 봉건국가도 아니고, 애초 부패란 고금을 통틀어 잘라도 계속 자라는 성질이 있어. 마치 암세포처럼 말이야.” “그렇다고 그걸 가만히 내버려둬? 그랬다가는 다 썩어버리고 말 걸?”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러니 나도 이참에 마나관리기구를 청소하겠다는 데에는 동의해. 문제는 다음이야. 청소하고 나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선녀님의 눈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부패가 자라고 있을걸?”
“그렇게 안 되도록 막아야지.”
“데우스 박사의 연구일지에 나오는 ‘그분’은 정체를 드러내지도 않고서 이런 일을 꾸밀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부패를 척결한다 해서 제 몸을 사리면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
“나는 아니라고 단언해. 이 사람은 어떻게든 술수를 써서 금세 자신의 사람을 만들어버릴 걸? 그게 아니면 처음부터 자신의 사람을 집어넣든.”
“…….”
“네가 데우스 박사는 배후에 있는 존재에게 정신이 깡그리 날아갔다고 말했잖아. 이젠 살아있는 송장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그랬었지.”
“은하 너라면 신인류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를 하고 있던 사람을 겨우 그런 식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낼 수 있어?” “…….”
“높은 위치에 서 있는 사람마저도 쓰다버리는 말처럼 아무렇지 않게 제거하는 사람이야. 그러한 사람이 선녀님이 벼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몸을 사릴 것 같아?”
유도준의 단언.
은하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은하 역시 생각하고 있었다.
‘그분’이라는 배후는 보통 상대가 아닐 것이다.
그럴 만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
대체 누구지?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고 있는 기분.
은하는 침묵했다.
유도준 역시 입을 다물었다.
이내 은하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최대한 찾아봐줘.” “나도 그럴 거야. 화근을 남겨두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법이니까.”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하고.”
“말은 고맙다. 너는 어서 몸이나 얼른 나아라. 좋겠다. 2학기는 아예 아카데미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지도 안 나가고 있으면서.” “야, 검찰 조사 받고 있는 나하고 너랑 입장이 같아?”
“삐뿌삐!”
“거봐! 얘도 내 말이 맞다잖아.” “뭐라는 거야. 쟤는 지금 너한테 꿀 빨아서 좋겠다고 말한 거야.”
“…정말이냐?” “안 알랴줌.”
“후…. 은하야, 나도 네 등짝 한 번 때려보면 안 될까? 지금 너무 때리고 싶은 거 있지?”
“응, 손 넣어둬.”
화제를 돌린다.
분위기를 가볍게 한다.
두 사람은 아무 의미도 되지 않는 이야기로 실컷 떠들었다.
“─나는 그만 가볼게.”
“그래, 잘 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유도준은 그만 일어나보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맞다. 조만간에 영원그룹에서 새로운 회장이 취임할 거야. 마지막 영원그룹의 회장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네가 회장이 되지 그랬어. 괜히 중간에 다른 사람을 세워놓지 말고.”
“나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사람들 눈에는 불안하게 보이니까. 그러니 내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을 때까지 대역을 세워놓아야지.”
영원그룹은 새로이 태어날 거라고.
유도준은 어딘가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하는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마침내, 유도준은 그가 염원하던 왕좌를 손에 넣은 것이다.
비록 아직 왕이 되기에는 여론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내가 그대로 그룹을 차지해서는 바로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버리면, 그룹 사람들한테도 보기 안 좋잖아. 내가 왕의 목을 잘라서는 그 자리를 차지한 것 같잖아?”
“실제로 그렇구만, 뭘.”
“그래도 아직 목은 안 잘랐거든? 그러니까 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려, 왕이 왕이 아니도록 만들어놔야지. 그리고 다음 왕을 내세워서 그 왕이 나한테 평화적으로 자리를 넘기게 만들어야 하는 거야.”
“귀찮네. 그러다가 그 왕이 마음이 바뀌어서 너한테 주지 않으려 하면 어떻게 할 건데?”
“글쎄…. 그것도 나쁘지 않지, 뭘.”
별 거 아니란 듯이.
유도준이 시원하게 웃는다.
그것도 그것대로 좋다는 듯.
어깨를 활짝 피며 말을 잇는다.
“전문경영인으로 내세우는 사람은 어머니의 밑에 있던 사람이고,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계속 도와줬던 사람이야. 그 사람이 나를 내쫓아서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하면…, 나는 그 사람이라면 인정할 수 있다.” “어이구, 내가 기껏 힘들여 왕으로 만들어놨더니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넘기겠다고 하고 있네.”
“하하하….”
은하는 가벼운 어조로 유도준을 타박했다.
이전 삶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그때도 유도준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비서로 근무했던 사람에게 영원그룹의 회장 자리를 넘겼다.
그리고 은하가 걱정하는 것과 달리 영원그룹의 회장은 유도준에게 선뜻 자리를 내주었다.
“여하튼 영원그룹을 해체하기 전에 그 사람을 통해서 정리할 것은 전부 정리해야지. 그리고 나 때부터 이제 새롭게 태어나는 거고.”
이른바, 양위라고 할 수 있겠다.
유도준 역시 영원그룹의 직계이니 이전 왕조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아서 새로운 왕조를 만든다는 말과 다소 다르기도 하지만.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러려고. 그래서 이왕 하는 김에 그룹 이름도 바꾸려고.”
“엥?”
그러다 은하는 눈을 크게 떴다.
유도준이 그룹의 이름을 바꾼다.
이전 삶에서는 없던 일이었다.
이전 삶에서 유도준은 그룹 내부를 깨끗이 청소하는 선에서 그치고는 영원그룹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니까.
“─루미너스그룹이 새벽그룹에서 이름을 바꿔서 새로 출발한다는 걸 사람들에게 인지시켰잖아. 나 역시 그렇게 해보려고.” “그래….”
아무래도 미래가 바뀐 이유는 새벽그룹 때문인 듯했다.
과연 그걸 좋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쁘게 받아들여야 할지, 은하는 알 수 없었다.
도준이 표정이 좋아 보이니 됐어.
이내 은하는 고민을 털어냈다.
유도준의 얼굴이 환해 보이니 그냥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새로 만들 그룹의 이름은 뭔데?”
“─하나그룹.”
“하나그룹?”
“하나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거야.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이름이 하나이기도 했고….”
“아하, 이름 좋네.”
하나그룹.
이전 삶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이번 삶에서 새로 태어날
그룹.
그는 하나그룹이 나아갈 길에 대해 실컷 떠들기 시작한 유도준을 보며 흡족해했다.
☆
은하의 병실을 나서고.
유도준의 등짝을 한 대 때린 다음.
이유천은 다시금 여동생의 병실을 찾았다.
“집에 가기 전에 여동생 얼굴이나 또 한 번 보고 가야지.”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 번.
이유천은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 그대로 하염없이 서 있었다.
“…….”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아주 어렸을 적, 여동생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유천은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즐겁게 웃고 떠들던 그녀가 병실 침대에 누워서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더랬다.
그때 알았다.
여동생은 아프면서도 건강한 척, 자신에게 애써 내색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앞에서 언제나 웃고 있던 여동생이 그런 식으로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것은 당시 어렸던 그에게 그야말로 공포나 다름없었다.
“후우….”
그 기억이 선명히 남아 있었기에.
이유천은 여동생을 만나기 전에는 문 앞에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고는 했다.
다시 심호흡을 한 번.
행여나 여동생에게 어두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여 두 손으로 얼굴을 찰싹 때린다.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하고, 힘껏 입꼬리를 올리기로 한다.
그만큼 여동생의 얼굴을 보기 전에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나야. 들어갈게.”
여동생이 현재 의식불명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치 스스로에게 되뇌이듯, 그는 노크를 하며 말했다.
손 안에 있는 문고리가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문고리를 돌리며, 이유천은 이내 병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
열려 있는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커튼이 펄럭이고 있다.
의약품의 냄새가 가득한 병실.
마치 일상과 단절된 듯한 냄새는 언제나 그에게 기묘한 느낌이 들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 여동생이 있었다.
“…나 왔어.”
입술이 파르르 떨렸으나.
이유천은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해 의자에 앉는다.
그러고는 여동생의 손을 꼭 쥔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한 손이었다.
삐 삐 삐 삐─….
머리를 풀어헤친 채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여동생.
마치 죽은 것처럼.
여동생은 그렇게 눈을 감고 있다.
하지만 여동생은 의식은 잃었으나, 분명 살아 있었다.
그녀가 몸 여기저기에 붙이고 있는 장치들이 소리를 내고 있었으니까.
삐 삐 삐 삐─….
이유천은 겨우 기계 따위에 의지해 여동생의 생사를 확인해야만 하는 현실에 절망감을 느꼈다.
저 소리가 끊길까, 무서웠다.
그는 이 냄새도, 또한 이 소리도 정말 싫어했다.
증오했다.
그러면서 얄궂게도 그는 간절하게 이 냄새와 소리가 끊이지 않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그래야 여동생이 살 수 있으니까.
“…….”
은하에게 괜한 걱정을 줄 것 같아 일부러 말하지 않았으나.
여동생은 사실 지금 무척 위독한 상태에 있었다.
영원 신약 연구단지에서 발생했던 폭발사고.
그것이 여동생의 체내 마나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가뜩이나 체내 마나의 문제로 인해 병상에 드러눕고는 했던 여동생이 앨리스병원에 입원하여 집중치료를 받고 있는 이유였다.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을 정도로….”
그러니 얼른 나아 달라고.
신이 죽은 세상에서 이유천은 연신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여동생의 앞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럼 나는 이제 그만 가볼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나뿐인 여동생을 위해 기도하며 심력을 소모한 이유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차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병실을 나가기 전, 이유천은 몸을 휙 돌려서는 여동생을 돌아보았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여동생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다만 거기에 존재한다는 걸 알리듯 기계장치만 삐삐 울려대고 있었다.
이유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여동생의 이름을 부른다.
“─다음에 또 올게, 유정아.”
쓸쓸함을 남기고.
이유천은 한참을 그곳에 서 있다 병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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