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61
“너 언제 나을 거야?”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건 왜 물어보는데?”
“아니이…. 네가 없어서 요즘 너무 심심한 거 있지?”
“그럴 시간에 훈련이나 해.”
“노은하! 병문안 온 사람한테 너 그러는 거 아니야!” “응, 가서 훈련해.”
“흑흑…, 나 상처받았어. 노은하는 진짜 사람도 아니야.”
“우는 척해도 소용없다.” “뿌뿌.”
“불닭이 따라하지 말고.”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하….”
아리엘이 병문안을 오면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지 모르겠다.
아카데미 문화제가 끝이 나고.
오래간만에 병문안을 온 아리엘은 은하를 붙잡고 칭얼거렸다.
멋대로 침대 위로 올라와서는 아예 은하의 다리에 매달린다.
“내가 너 때문에 없던 병도 생기는 기분이야….”
“노은하! 그럼 안 되지! 아픈 애가 여기서 더 아프려고 하면 어떡해!? 사실은 아카데미에 가기가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거지?”
“너 때문에 내가 아플 것 같다고.” “아야! 내 귀 잡아당기지 마아아! 거기 민감한단 말이야!”
“그럼 내 침대에서 얼른 비켜.”
“으…, 노은하 다리에 매달릴 수만 있다면 이깟 고통쯤은…, 아…!”
“진짜…, 너 참 징하다.” “뭐야? 왜 하다 말아?” “네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치치치.”
“하…, 병원에 입원하기를 잘했어. 안 그랬으면 2학기에도 너 때문에 내가 마음고생을 했겠어….”
“응? 내가 뭘? 이렇게 예쁘고 참한 애가 놀아달라고 보채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 참한 애가 어디에 있다고.” “나를 봐! 나를! 여기 있잖아!”
“…세상이 멸망하기는 했나 보네. 너 같은 애가 참한 애라고 불리는 세상이 오다니 말이야.”
“와, 지금 아리엘 무시하는 거야!?”
“응, 지금 너 무시하는 거야.”
정말이지 어린 애가 따로 없다.
은하는 벌써 피곤한 기분이었다.
아리엘의 귀를 만지던 손을 떼고, 자신의 다리를 베개 삼아 드러누운 그녀를 무시하기로 했다.
“아, 졸려.” “네가 졸릴 게 뭐가 있다고.”
“요새 잠을 잘 못 자서….”
“얼씨구.” “거짓말 아니거든? 불면증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데….”
“어? 그랬어?” “그래도 이슬이라도 한 잔 마시면 잠이 푹….” “내가 혼자 마시지 말라 했지.”
“그래서 노은하 너 때문에 이슬도 안 마시고 있단 말이야! 내가 요새 잠을 잘 못 자는 이유도 너랑 한 약속 때문인데….”
“허, 참….”
“그러니까 얼른 좀 나아. 나아서 나랑 이슬 마시자.”
“그래, 얼른 나을게. 잘했어. 약속 잘 지켰네. 착하다.”
“예쁘다고도 해줘.” “그래, 예쁘다.”
“아리엘이 최고지?”
“얼른 잠이나 자시지.” “아야! 때릴 거면 머리가 아니라 귀를 때려달란 말이야!”
“응, 싫어.”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본 아리엘은 살이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은하는 눈을 감은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쓸어주었다.
그녀가 기분이 좋은 듯, 살그머니 입가를 끌어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엘은 잠이 들었다.
요새 피곤하기는 했나 보네.
눈을 감자마자 잠드는 걸 보면….
지난번에도 병문안을 와서는 불쑥 은하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잠이 든 아리엘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은하는 아리엘을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힘들지? 아리엘 챙기느라….” “그걸 알면서 나한테 부탁을 해?”
“어쩔 수 없었어. 카에데 널 빼고 아리엘을 챙겨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주변에 없었는걸.”
오늘 병문안을 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호시미야 카에데.
윤이별이 몬스터에 대한 PTSD를 호소한 이후로.
은하는 민지에게 그녀를 부탁하고, 카에데에게 아리엘을 부탁했다.
서나나 은우에게도 부탁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안 그래도 나 때문에 여러 일을 도맡아서 처리하고 있는데 이 이상 바쁘게 할 수 없으니까.
정하양, 진서나, 차은우.
세 사람은 파벌을 관리하는 한편, 아카데미 학생들의 교우관계에 깊이 간섭하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일을 맡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은하는 카에데에게 부탁한 것이었고.
다행히 아리엘이 카에데랑 친하게 지내고 있던 것 같기도 했으니까.
물론, 카에데 입장에서는 아리엘과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아리엘이 일방적으로 카에데에게 달라붙은 셈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결국 두 사람은 친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힘들겠지만 앞으로도 아리엘 좀 잘 부탁해. 정말…, 너밖에 없어.”
“…나중에 배로 갚아야 할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 “그래, 그때가 되면 너 해달란 거 다 해줄게.”
“…약속한 거야.”
불닭이를 무릎 위에 얹은 채.
카에데는 뚱한 얼굴로 그의 확답을 요구했다.
은하는 두 번, 세 번 카에데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별이나 아리엘한테 미안한 게 너무 많아….”
“…….”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는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민지나 카에데에게만 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니, 어쩌면 죄책감이었다.
은하는 그것을 꺼낸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별이의 마음을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아리엘은 조금 더 신경을 쓸 걸….
후회가 막심했다.
모두, 자신의 잘못이다.
자신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윤이별과 아리엘의 사이는 더더욱 틀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윤이별은 이제는 아예 친구들을 피해 다니고 있기까지 하다며.
아리엘은 눈에 띄게 우울해하면서 자꾸 친구들과 술자리를 주선하려 하고 있다면서.
“─그걸 알고 있으면 앞으로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마.”
“…….”
은하의 넋두리.
그것을 한참 듣고 있던 카에데가 은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나한테 위로 같은 걸 바랐다면, 안 됐지만 나는 널 위로해줄 생각이 추호도 없어.”
“…….”
“한 번은 용서해줄 수 있어. 아니, 사실 난 한 번도 용서해주기 싫어. 하지만 두 번은 더더욱 용서해줄 수 없어.”
개인적으로 자신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려는 사람이 질색이라며, 카에데는 확실하게 말했다.
은하는 그녀가 꾸짖는 소리에 뭐라 말하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듣는다.
그러자 그녀가 계속해서 꾸짖는다.
“아니면 차라리 후회를 하지 말고 한결같이 그대로 쭉 밀고 나가든가. 나쁜 놈이 될 거면 나쁜 놈이 되고, 착한 놈이 될 거면 착한 놈이 돼. 어쭙잖게 갈팡질팡하려 하지 말고. 그게 제일 역겨우니까.”
“…….”
“내가 네 파티에 들어가겠다고 한 이유는 네가 무언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노은하 네가 지금 내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어쭙잖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쓰라린 지적이었다.
은하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혼을 내는 카에데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그렇게 할게. 앞으로 약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을게.” “…알면 됐어.”
파티원의 조언이다.
그녀를 파티에 끌어들여, 파티의 리더가 되려고 하는 은하는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말에 순순히 동의했다.
그런데 그가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카에데는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퉁명스레 답했다.
그러고는─.
“─나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 한 게 아니야.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한 거지.”
그녀가 툭 내뱉은 것이다.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거 아니야?” “그게 어떻게 같을 수 있어. 나는 철혈의 리더가 되라 말한 게 아니라 리더로서 흔들림 없는….”
“그러니까 그게 그거지.”
“아니, 달라.”
“어떻게 다른데.”
“그건….”
이야기가 이상하게 빠졌다.
은하도, 카에데도 그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두 사람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카에데는 말을 꺼냈으니 책임을 지고 마지막까지 대답하려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생각을 마친 그녀는─.
“─파티 리더로서 노은하의 판단은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돼. 그건 곧 너뿐만 아니라 파티원들까지 흔들릴 위험이 있다는 뜻이니까.” “…….”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 노은하의 판단은 얼마든지 흔들려도 괜찮아. 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된다고.” “그게 무슨 소리래?” “끙…. 그냥 눈치껏 알아들어.”
알 듯 말 듯한 소리.
결국 카에데가 두 손을 들었다.
은하는 자신이 뭐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게 된 카에데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도끼눈을 뜬다.
그래서 은하는 더 웃었다.
“그래, 그럼 약한 모습은 보여줘도 된다는 거지?”
“…나는 네 약한 모습 따위는 절대 보고 싶지 않아.” “아까는 보여줘도 된다며.” “한 사람으로서는 보여줘도 된다고 말했을 텐데.”
“그러면 한 사람으로서 보여줄게. 그럼 된 거 아니야?”
“나는 네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은 보고 싶지도 않거든.”
“그럼 어쩌라는 거야?”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면 될 거 아니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말장난.
카에데가 결국에는 이를 악물고는 힘을 주며 말했다.
은하는 그녀가 이를 가는 모습에 키득거렸다.
“그래, 그럼 너한테는 안 보여줄게. 그럼 진짜 된 거지?” “…….” “또 왜, 뭐가 문제인데?”
“…그렇다고 아예 보여주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야.”
“뭐 어쩌라는 거지….”
“정 주변에 보여줄 사람이 없으면, 그때는 마지못해서라도 봐줄게.”
“부끄러워하기는.”
“닥쳐.”
카에데가 흥 소리를 내고는 시선을 피한다.
그녀가 화가 단단히 났다는 듯이 팔짱을 낀다.
그래도 은하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는 그녀를 계속 놀려댔다.
“느 느릉 증는흐는 그 으느드….”
나 너랑 장난하는 거 아니다….
급기야 카에데가 이를 악물고서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노은하.”
“삐?”
“”…….””
“쿠울…”
은하에게 무릎을 꿇고 처음으로.
온태양이 먼저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
“카에데, 아리엘 좀 데리고 잠시 나가 있어줄래?”
“됐어. 너 멀쩡한 건 다 봤으니까 아리엘 데리고 그만 돌아갈게.”
“…응? 난 은하 다리 베고 조금만 더 자고….” “가자.” “아앙! 카에데가 폭력을 행사한다! 노은하 나 좀 살려줘!”
“다음에 봐.”
아리엘이 소란을 떨든 말든.
은하는 아직 잠이 덜 깬 아리엘의 목덜미를 붙잡고서 병실을 나서는 카에데를 배웅했다.
이제 병실에 있는 사람은 은하와 온태양 뿐이었다.
“서 있지 말고 거기 앉아.”
“…됐어.”
온태양은 은하의 병실에 들어와서 한참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아리엘과 카에데가 가고 나서도, 그는 마치 벌을 서는 것처럼 그곳에 못박혀 서 있었다.
은하가 자리를 권해도, 온태양은 한사코 거절했다.
결국 은하는 포기했다.
“”…….””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문 온태양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은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그의 생각을 읽으려고 했다.
참담한 심정이겠지. 굴욕적일 거야.
왜 그러지 않겠어.
그동안 은하에게 척을 세우고 있던 온태양.
엘릭서의 존재가 알려지고.
온태양은 은하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가 지금 은하의 병실에 찾아와,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듯 은하의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은하로서는 흡족한 기분이었지만.
온태양에게는 굴욕적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할 것이리라.
그런 작은 항의의 표시였을까.
“─엘릭서는….”
“…….”
더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온태양은 이 자리가 불편하다는 듯 툭 내뱉은 것이다.
엘릭서는 어디 있느냐고.
그가 꺼낸 말은 완성되지 않은 채, 그대로 은하에게 전달되었다.
“지금 나한테 있어.”
“…….”
온태양은 확인하고 싶은 것이리라.
자신의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는 포션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그의 생각을 읽은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릭서를 꺼냈다.
침대로 돌아와서는 온태양을 향해 상자를 열어주었다.
“이게 엘릭서야.”
“아….”
별의 바다를 그러모은 듯한 포션.
가까이에서 엘릭서를 본 온태양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기라도 한 듯, 절로 탄성 어린 소리를 냈다.
“……!” “이걸로 충분하지?”
“…….”
온태양의 손이 엘릭서로 향한다.
그의 행동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던 은하는 냉큼 상자를 덮었다.
그제야 그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놀란 눈으로 바로 앞에 있던 은하를 쳐다보았다.
“정말…, 저게 있으면 우리 엄마를 치료할 수 있는 거지?”
“맞아.”
고분고분.
은하와 눈을 마주친 그가 자연히 눈을 내리깐다.
은하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온태양에게 대답했다.
온태양이 미약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너만…, 믿을게. 부탁…, 한다.”
띄엄띄엄.
온태양이 말을 늘어놓는다.
이전이었다면 듣지 못했을 소리.
은하는 자신에게 굴복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고 있어.
자신이 온태양에게 더 이상 뭐라 말할 필요가 없었다.
온태양이 설설 기고 있었으니까.
“조만간에 앨리스병원에서 수술이 잡힐 예정이야. 날짜가 정해지면…, 그때 문자를 통해 알려줄게.”
“…고마워.”
만약 온태양이 처음부터 은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더라면.
두 사람은 지금과 같이 상하관계를 보이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노은하도, 온태양도.
그때 그들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럼…, 나는 그만 갈게. 얼른…, 쾌차하기를 바랄게.”
“고마워, 조심히 가.”
하지만 후회를 해도 너무 늦었고.
이 관계는 더는 돌이킬 수 없었다.
불편한 침묵 속에 있던 두 사람은 그렇게 어색하게 대화를 마쳤다.
☆
“응? 유천이 형?”
온태양을 보내고.
저녁을 먹은 은하는 오늘은 더는 찾아올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일찍 잠에 들려 했다.
오늘은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많아 피곤하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그때, 이유천이 말도 없이 찾아온 것이다.
“은하야….”
“…응?”
거의 울 것 같은 얼굴.
머리도 헝클어져 있다.
은하는 이유천의 몰골을 확인하고 눈을 깜빡였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묻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병실 안으로 들어온 유천은 돌연─.
“──!!”
은하의 앞으로 다가와서는.
다짜고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머리를 박기까지 했다.
은하는 이유천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은하는 묻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덜덜 떨렸다.
이유천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한테….”
흐느낌이 섞인 목소리.
침대에서 내려온 은하가 이유천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무릎을 꿇은 채로 상체만 일으킨 이유천은 은하의 두 팔을 덥석 잡고 말을 이었다.
“너한테 엘릭서라는 게 있다는 걸 들었어….”
“…….”
“앨리스그룹의 회장님이…, 그걸로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니?”
엘릭서.
이유천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고 은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어째서 이유천이 엘릭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인가.
의문은 금세 해소되었고─.
─당분간 비밀을 지켜달라 했더니 결국 말하셨나 보네.
이럴 것 같아서 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한 거였는데….
이유천을 보고 당황한 마음은 금세 차갑게 식었다.
이유천이 아무리 눈물을 흘리든, 은하는 더는 그를 걱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이야 뻔했으니까.
“여동생이…, 여동생이 지금 아파. 너한테는 사실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많이 위독해.” “…….”
“앨리스그룹의 회장님이 그러셨어. 엘릭서란 게 있으면 마나고갈증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 “그게 정말이니?” “맞아.”
이유천이 연신 답을 구한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구구절절하게 늘어놓는 소리를 듣고 있던 은하는 끝내 답을 해주었다.
“…다행이다.”
이유천이 원하던 대답.
그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가 미소를 짓는다.
이윽고 얼굴에 절실함이 떠오른다.
은하의 팔을 붙잡은 손길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거의 은하에게 매달리듯.
이유천이 간절한 어조로 말한다.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할게.” “…….”
“그러니까 제발…, 제발 엘릭서를 우리한테 넘겨주면 안 될까?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루미너스그룹의 직계.
재계 10위에 드는 그룹의 직계가 이리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부탁하는 행동은 무거운 의미를 지녔다.
이유천은 자신의 목을 내놓았다.
다시 말해, 미래에 루미너스그룹의 회장이 되는 그가 은하에게 굴종을 택한 것이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면─.
“─…….”
루미너스그룹이 손에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
은하는 이유천을 조용히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계산을 마친 결과─.
─를 가진 온태양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어.
제2위계 몬스터 매구를 토벌하는 힘을 보여준 온태양.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은하는 온태양의 가치를 더 중히 여겼다.
그렇기에─.
“─미안해.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엘릭서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쓰기로 했어.”
“……!”
은하는 이유천의 기대를 배신했다.
설령 이것으로 인해 그가 적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은하는 이유천이 적이 되는 것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온태양을 손아래에 두고 싶었다.
“제발…, 부탁이야…! 하라는 것은 다 할게! 뭐든 할 테니까…, 제발…, 어떻게 좀 안 될까? 응?”
“…….”
“은하야, 우리 친구잖아. 그러니…, 제발 다시 한 번만 생각해줘.”
이유천은 매달렸다.
은하가 이대로 물러나지 못하게, 그의 팔을 꽉 쥐며 소리쳤다.
애원했다.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그럼에도 은하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대신에 형한테 약속할게. 다음에 엘릭서를 만들면 무슨 일이 있어도 형한테 넘기겠다고.”
이유천을 달래기 위해.
은하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유천의 손길을 살며시 떼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유천은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
“안 돼! 그래서는 너무 늦어!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단 말이야!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
“그러니까 제발…, 부탁해….”
이유천의 상황이 딱하기는 했다.
하지만 은하로서는 별 수 없었다.
이유천의 여동생의 상황이 딱하듯, 온태양의 어머니 또한 지금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으니까.
안 되겠어.
문을 걸어 잠그기라도 해야지, 원.
그렇기에 은하는 완고했다.
결국 은하는 힘으로라도 떼어내서 이유천을 병실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은하야! 제발…!”
단순한 힘 싸움이 된 순간.
바닥에 드러누워 자리를 지키려던 이유천은 허무하게도 은하에게 질질 끌려나갔다.
이유천은 안 된다며 발악을 했고,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어떻게 해서든 버티려고 애를 썼다.
그럼에도 이유천은 병실 문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안해, 형.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런 식으로 부탁해도 소용없어.”
“……!”
끝내 병실 밖으로 밀려난 이유천.
은하는 마치 세상을 잃은 것처럼 병실 밖에 주저앉은 이유천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제발!”
“…….”
하지만 이유천은 포기하지 않았고.
은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문을 걸어 잠그기로 했다.
끼이익
문이 닫힌다.
이유천이 허겁지겁 일어나 문으로 달려든다.
쿵!
하지만 문을 닫는 것이 더 빨랐고.
이유천은 문에 몸을 부딪쳤다.
뒤이어 그가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하야! 이러지 마! 내가 뭐든지 할 테니까 엘릭서를 나한테 줘!”
쿵쿵.
이유천이 문을 두드린다.
마치 열어줄 때까지는 결코 여기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이.
은하는 문 앞에 선 채로 움직일 수 없었다.
“…….”
“삐삐.” “나도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걸.”
불닭이가 나직이 운다.
어깨 위에 앉은 환수를 쓰다듬으며 은하는 힘없이 말했다.
이유천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그가 아무리 문을 두드린다 한들, 은하는 이 문을 결코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가 다음 말을 하기 전까지는─.
“─유정이를 살려주세요….”
이유정.
그 이름을 듣고.
은하는 벌컥 문을 열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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