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7
apter 027] [새벽백화점(2)]
.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플레이어.
아무도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모른다. 사람들은 단지 남자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글라스를 쓰고, 왼쪽 손목에 타투를 새겼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그가 이름이 없는 플레이어라는 의미로 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의 기프트 때문이다.
기프트 , 체내 마나를 발현하는 것으로 무언가에 대한 인지능력을 저해시키는 능력.
그것은 사람을 인간으로 인식하는 몬스터에 대해서는 실용적인 기프트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매우 실용적인 기프트였다.
그리고 은 자신의 기프트를 십분 활용해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청부살인 플레이어가 되었다.
이 완수하지 못하는 의뢰는 없었다. 고용주가 그가 만족해할 만한 의뢰금을 지불한다면, 그는 자신의 기프트를 발휘해 때로는 대담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대상자를 살인했다.
플레이어도, 정치인도, 기업가도.
그의 타겟이 살아남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에게 걸리기 전까지는.
은 차기 선녀 하백련을 납치하려다, 에게 걸려 잔혹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그 가 지금 여기에 있다.
“…넌 내 손에 죽었어, 아주.”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달리던 은하가 씨부렁거렸다. 지금 그는 가까이 있는 에스컬레이터로 뛰어가는 중이었다.
의 목적이 단순히 백화점을 테러하는 것인지, 누군가를 암살하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은하는 의 목적이 무엇이든, 고용주의 의도가 무엇이든 궁금하지 않았다.
노은하,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녀석이 자신의 인생에 똥물을 끼얹으려 한다는 점이었다.
“은하, 조심해라.”
브루노가 반대편에서부터 도망쳐오는 사람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마나를 덧씌운 주먹이 달려드는 하운드의 두개골을 박살냈다.
실로 놀라운 일격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플레이어 디바이스를 장비하지 않은 상태였고, 달리던 중에 주먹을 휘두르는 동작이나, 마나를 제어하는 과정에서 낭비되는 마나가 조금도 없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다.
브루노, 그는 은하의 예상대로 뛰어난 플레이어였다.
“가자. 얼른.”
“네.”
가장 중요한 것은 은아와 줄리에타를 구하는 것.
의 목적이나 고용주의 의도는 알 바가 아니었다.
“알 바는 아니지만….”
지나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다.
이것은 테러였다. 이후 몬스터에 대한 공포를 절감한 인류는 마나가 편재할 여지를 가진 행위에 굉장히 민감했다.
유명무실했던 사형제도에 힘이 실릴 정도로.
그러니 마나의 편재를 조장하는 행위는 사형이라는 선고가 떨어지고도 이상하지 않는 범죄행위이자, 범법행위였다.
이번 일은 그만큼 대단한 사건일 터였다. 더군다나 테러 장소는 새벽백화점 1호점이 아닌가.
하지만 은하는 회귀 전, 새벽백화점의 테러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그가 이 시기에 자폐아처럼 살았다고는 하더라도, 플레이어 아카데미에서조차 설명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내가 모르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미래가 바뀌었다.
은하는 이를 부득 갈며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별안간 자신이 모르는 일이 툭 튀어나와, 자신이 거기에 휘말리게 되는 상황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판 위에 놀아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진정해라.”
브루노가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충동적으로 살기를 드러냈을 것이다.
후우.
머리를 식힌 은하는 다시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숙지했다.
은아와 줄리에타의 구출.
모든 층에서 편재가 확인되었으니, 두 사람이 있던 층에서도 몬스터가 출현했을 것이다.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건 없으려나.”
굳이 무기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곰 같은 덩치를 가진 브루노가 딜러와 가디언을 겸용하며 하운드들을 뭉개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하운드.
녀석들과는 질긴 인연이었다.
은하는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사냥개 무리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몇 개월 전에 수십 마리를 죽였던 그로서는 녀석들을 사냥하는데 진저리가 나 있었다.
물론, 하운드는 그에게 다가오는 일 없이 소멸했다.
“브루노 아저씨, 누나랑 줄리에타 누나는 어디 있어요?”
“…5층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위층에서부터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니, 에스컬레이터의 방향을 거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위치는 5층에 고정되어 있다. 발이 붙잡힐 만한 일이 터진 것은 확실했다.
은하와 브루노는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지 걱정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때,
“오, 네가 아까 마나를 날린 거였구만?”
혀를 삐죽 내민 플레이어가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테러를 알아차리는 즉시 마나 감지망을 전개했었다.
테러를 일으킨 플레이어들이 감지망을 역추적해 두 사람의 위치를 찾지 못할 리가 없었다.
“…바빠 죽겠는데.”
앞머리를 쓸어 올린 은하는 밀려오는 역정을 토했다.
거치적거렸다.
방해였다.
테러를 일으킨 플레이어가 베테랑이라 하더라도, 그래봤자 B~C.
은하가 십이좌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녔다고 판단하는 브루노에게는 바람 앞에 꺼질 등불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추측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꾸헉!”
한 방.
브루노가 휘두른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플레이어.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았기 때문인지 치아 몇 개가 바닥에 투둑 떨어졌다.
“어…, 어…, 내, 내 이…. 끄악…!”
그것이 플레이어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이게 쫄따구 주제에 말이 많아.”
은하가 남자의 아래부위를 걷어찼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게거품을 물고 실신했다.
“은하….”
브루노가 안쓰러운 시선으로 실신한 플레이어를 곁눈질했다.
은하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브루노 아저씨. 이 사람들, 웬만해서는 죽이면 안 돼요. 범죄자니까요.”
회귀 전, 분노로 이성을 잃은 은하는 그만 을 죽여 버리고 말았다. 선글라스를 쓴 상태로 얼굴을 뭉개버렸으니, 그의 얼굴을 보는 일도 없었다.
그때 선녀 임가을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던가.
그는 아직도 그녀가 자신을 한심한 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잊을 수 없었다.
또 사후처리는 제대로 해야 나중에 뒤탈이 없지.
은하는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어깨를 밟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은하….”
남겨진 브루노가 내려오던 사람들이 아프다고 소리치든 말든 2층으로 올라간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은하가 플레이어의 급소를 걷어찬 일이 생생해서 잊을 수 없었다.
꼭 자신이 당한 것처럼. 무언가를 잃어버린 플레이어의 얼굴이 꼭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아이는 무섭군.”
이탈리아에서도 이렇게까지 당찬 아이는 없건만.
그러고 보니 은하를 따라다니는 아이들 역시 당돌한 기색이 있었다.
브루노는 걸핏하면 뉴스에서 보도되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체감했다.
“안 오고 뭐해요?”
“…아, 간다.”
상념에서 깨어난 브루노도 2층으로 오르려 했다. 은하에게 한 번 당한 사람들이 대뜸 길을 비켜주어서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여기도 말이 아니네.”
2층은 난장판이었다. 상품이 아무 짝에나 떨어져 있고, 바로 근처에서는 개 짖는 소리와 비명소리까지 들렸다.
“하아.”
은하는 돔 형식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을 둘러보았다.
대략적으로 모든 층을 둘러볼 수 있었다.
시선을 더 올려, 5층을 살핀 그는─.
“─찾았다.”
바로 맞은편에서 흔들리는 금발을 찾았다.
은아는 보이지 않았지만 필시 줄리에타와 같이 있을 터였다.
“아저씨!”
“흠!”
새벽백화점의 구조는 에스컬레이터가 엇갈린 구조로 되어 있었다. 한 층을 둘러보고 위로 올라가는 구조였기에, 다음 에스컬레이터를 찾으려면 일각에 달하는 거리를 뛰어야 했다.
두 사람은 체내 마나를 발현해 신체능력을 끌어올렸다. 먹이를 찾는 몬스터나 입을 피로 물들이며 제 할 일을 하는 몬스터를 지나쳤다.
녀석들이 방해가 될 때에는 선두를 달리던 브루노가 주먹을 때렸다.
“네 놈들은 뭐냐!”
“쳇, 플레이어가 벌써 온 건가.”
2층에서 마주친 플레이어는 아래층에서 확인했던 플레이어들과는 다른 남자들이었다.
모든 층에서 테러가 일어났으니, 층마다 테러범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꺼져!!”
성가셨다. 살기를 쏘아낸 은하가 달리던 와중에 주었던 화장품 샘플을 던졌다.
“씨발! 이거 뭐야!”
남자가 눈앞으로 날아드는 샘플을 쳐냈지만, 용기가 깨지고 내용물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은하는 입꼬리를 올렸다. 얼굴에 묻은 화장품을 닦아내려고 손을 허우적거리는 남자의 꼴이 실로 우스웠다.
“꺼져라.”
뒤이어 브루노의 한 방.
“이 새끼가….”
아래층으로 떨어지는 동료를 보고 얼굴을 구긴 플레이어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허리춤에서 뽑은 검으로 등을 보인 브루노를 내리찍으려 했다.
“브루노 아저씨!”
이번에도 은하의 어시스트가 빛을 발했다. 때마침 바닥에 떨어져 있던 옷걸이를 주운 그가 브루노에게 던진 것이다.
손을 등 뒤로 뻗어 옷걸이를 받아 든 브루노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플레이어의 손목에 끼어 넣었다.
그는 칼날이 등에 닿기 직전에 옷걸이를 잡아당겼다.
“큭!”
칼을 쥔 남자의 손목이 그가 의도한 방향으로 틀어졌다.
그 사이, 자세를 취한 그가 남자의 복부를 걷어찼다.
“커헉! 이, 새끼가…!”
배를 한 번 걷어차였다고 정신을 잃을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브루노는 옷걸이로 빼앗은 칼로 남자의 목을 그어버렸다.
남자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의 목을 더듬었다.
그 순간, 가늘게 열린 틈새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어나왔다.
뭐라 말하려 입을 뻐끔거리던 남자는 뒷걸음을 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쓰러졌다.
“얼른 가요.”
“흠. 기다려라.”
브루노는 은하의 재촉을 듣지 않았다. 그는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찾기 위해 바닥을 흥건히 적신 플레이어의 몸을 뒤졌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동작이었다.
“이거면 되겠지?”
브루노가 던져준 것은 아이가 휘두르기에 적당한 칼이었다.
“고마워요. 이거면 됐어요.”
“방어구는 필요 없나?”
“걸리적거려서….”
브루노와 은하는 마치 음식점에서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 모두 이 대화가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네.”
3층으로 올라왔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래층보다 더 심했다. 바닥을 흥건히 메운 피가 아래층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구, 구해주세요!”
기괴한 방향으로 틀어진 다리를 질질 끌며 도움을 호소하는 여자.
“으, 으악! 사, 살려줘!”
하운드에게 물린 채, 이리저리 헤집어지는 남자.
아래층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백화점을 탈출할 수 있었지만, 위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했다.
더군다나.
“…역겹네.”
은하는 화장실 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도망치고, 누군가는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처지이건만.
“흐, 흐, 으…. 사, 살려주세요…!”
“뭘 살려줘? 하아, 하아…. 내가, 너…, 죽인다고… 그랬냐? 어?”
고삐가 풀린 플레이어는 대놓고 그런 일이나 벌이던 중이었다.
허리를 흔드는 남자의 얼굴은 희열감으로 차 있었다. 격한 숨소리를 내며, 본능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는 그는 몬스터보다 더한 몬스터였다.
역겹다.
아주 역겨웠다.
저런 녀석들이 백화점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은아가 저런 녀석들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어? 꼬맹이, 넌 뭐….”
남자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조용히 다가간 은하가 남자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기 때문이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죠.”
남자를 죽인 그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은하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았다. 흰 등을 내보인 채 흐느끼는 여성에게서 등을 돌린 그는 다시금 걸음을 내딛었다.
한 걸음.
짜증이 치밀었다.
한 걸음.
분노가 끓어올랐다.
한 걸음.
격정적인 불꽃이 속을 뒤집었다.
“…시발.”
은아를 걱정하면 걱정할수록.
이 모든 일을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지나가는 을 보고 있자면 더욱 더.
“…브루노 아저씨.”
“흠.”
“우리 누나, 부탁해도 되죠?”
브루노가 눈을 가늘게 모았다.
그 역시 은하가 주시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던 차였다.
범상치 않은 남자였다. 어쩌면 그가 이 테러를 계획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우선순위는 줄리에타였다. 이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은하 역시 그럴 줄 알았는데.
“제가 지금, 야마가 돌아서요.”
“야마?”
처음 듣는 말이었다.
“네, 야마.”
브루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그의 얼굴에 점점 노기가 서리는 것을 보고는 그 의미를 추측했다.
“…네 누나는 내가 지키겠다.”
“부탁할게요.”
마음 같아서는 제 손으로 은아를 데리러가고 싶은 은하였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 살 수는 없었다.
이대로 휘둘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당하면 배로 갚아준다.
그것을 떠나서─,
“건투를 빈다.”
“아저씨도요. 누나를 부탁해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인다.
그냥 죽인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