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71
해가 바뀌고 선력 14년.
은하는 19세가 되었다.
병원에서 가족들과 새해를 맞이한 그는 이제 1월 중순이 되며 퇴원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입원할 때만 해도 짐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이 생겨난 거지?”
병실 한가득 병문안 선물이 쌓여 있었다.
친구들이 보낸 것을 시작으로 해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형식상이나마 보내준 선물이나 신서영의 선물은 물론이고.
갑자기 청와대에서 병문안 선물이 왔을 때는 깜짝 놀랐다니까.
아빠가 또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날 혼내기까지 했고….
인연도 없는 재계그룹에서 이참에 은하와 연을 만들어보겠답시고 대뜸 선물을 보낸 것까지는 이해할 수가 있는 범위였으나.
설마 선녀 임가을의 이름으로 해서 청와대에서 선물이 올 것이라고는 가족들 중에서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은하마저도.
덕분에 은하는 아직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가족들에게 혼이 나야 했다.
뭐, 임가을이 보낼 만도 하지.
하마터면 정치적 입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대놓고 이름으로 보낸 건 내가 이런 일을 당할 거란 걸 알고 놀리고 싶었던 거겠지. 하….
영원 신약 게이트.
세상 사람들은 노은하가 게이트와 연관돼 있다는 것을 몰랐으나.
게이트를 터뜨리고 처리하고 있는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선녀의 직인이 기재된 문서를 제일 먼저 확보하려 하였고, 그것을 선녀에게 넘기려고 했던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임가을은 선물 속에 직접 작성한 장문의 편지를 넣어 보내기까지 했다.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은하에게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어. 어차피 부모님이 다 가져갔으니까. 너무 많아서 누나가 레귤러스클랜에 가져가기도 했고.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언급된 사람들이 가져온 선물은 대부분 어떻게든 처리했다.
문제는 눈앞에 있는 냉장고 두 대, 안마의자며, 드론이며 병실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이었다.
심지어 냉장고 두 대 속에는 현재 먹을 게 꽉 차 있기까지 했다.
모두 이유천이 가져온 것들이었다.
“무슨 조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가져오지 말라 하는데도 매일 같이 가져오는 이유가 뭐야?”
“삐삐 뿌뿌!”
“그래, 너는 새 둥지까지 받아서 기분이 좋겠지. 할 일이 없는 건가. 루미너스그룹에서 둥지는 왜 만들고 그러는 건지….”
은하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겠다고.
이유천은 매일 같이 선물을 보내며 은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루미너스그룹에서는 뜬금없이 애완사업으로 진출하면서 애완용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유천은 아버지의 선물이라면서 불닭이에게 사람이 살아도 되겠다는 말이 나올 것 같은 집을 선물했다.
그때 은하는 과해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전부 가져가지는 못할 것 같으니까 병원에 기증하든 해야겠다. 먹을 건 병원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되겠고…. 할머니가 꽤나 좋아하시는 것 같았으니 안마의자는 집으로 가져갈까. 드론은 음…, 일단 가져가자. 아마 은애나 어베니어가 알아서 쓰겠지.”
“삐삐삐!” “안다고. 네 둥지도 가져갈 거야. 그런데 저건 어떻게 가져가지? 아, 오해인 누나한테 말해볼까….”
재계 10대 그룹들은 해가 바뀌자 새로이 경영계획을 발표해나갔다.
새로 영원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한 전문경영인은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영원그룹의 부조리와 관행을 해결하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년까지 사업을 정비하던 삼라그룹은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육지로 진출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내걸었다.
그 원대한 포부의 첫 행보가 바로 삼라 통운이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쓰겠어?
빚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에 삼라그룹 직계 오해인이 찾아왔더랬다.
그녀는 시리우스그룹과 앨리스그룹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삼라 통운을 발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삼라 통운을 쓰게 되면 자신에게 무조건 연락을 달라고.
‘─가장 안전하고, 정중하고, 우아하고 그리고 럭셔리하게 모실게!’
오해인의 대사였다.
즉, 은하에게 특급 대우를 약속한 것이다.
“이걸로 얼추 다 끝난 건가….”
은하는 오해인과 연락을 마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그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물건을 운반해주기로 약속했다.
할 일을 마친 은하는 그제야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아…, 짐 쌓고 있었구나.”
“윤이별?”
“음…, 잘 지냈어…?”
밖에서 문을 한 번 두드리고.
윤이별이 열리는 문에 기대다시피 병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문틈 사이로 살며시 얼굴을 내민 그녀는 은하를 발견하고 겸연쩍게 인사했다.
은하 역시 그녀의 인사를 겸연쩍게 받았고.
“단톡방을 보니까 은하 네가 오늘 퇴원한다 그래서…. 그래도 한 번은 와야겠다고 생각해서…, 늦었지만 보러 왔어.”
에헤헤 하고 영혼이 빠진 것 같은 웃음소리를 곁들여서.
윤이별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
은하가 입원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었음에도.
오직 윤이별은 그의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앨리스병원에 다니면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데에도.
물론, 은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이제는 친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사이가 됐는걸.
작년, 윤이별의 고백 이래.
은하와 윤이별의 관계는 이때까지 서먹서먹한 상태로 있었다.
아니, 그녀가 아카데미 던전에서 몬스터에 대한 PTSD를 앓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라고 부르기 어려운 관계가 되었다.
어느새 윤이별은 친구들을 피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특히 은하에게는 제대로 아는 척도 하려 하지 않았다.
“”…….””
결국 그간 아무 교류도 없었기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은하와 윤이별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 말 없이 음료만 마셨다.
이럴 때는 불닭이가 재롱을 부려서 뭐라도 화젯거리를 만들어줬는데….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몬스터에게 극도로 두려움을 보이는 PTSD를 앓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그녀를 배려해 불닭이를 이유정에게 보내놓았다.
병실이 그만큼 조용한 이유였다.
“─요새는 어때? 많이 나아졌어?”
끝내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은하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제야 바닥만 쳐다보던 윤이별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으, 응…. 선생님 말씀으로는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해….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 그렇구나.”
소심하게 말하는 윤이별.
대화가 뚝 하고 끊겼다.
은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다음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으, 은하 너는…? 괜찮아?” “…내일 퇴원하기로 한 만큼 이제 다 나았어.”
“그, 그렇구나….”
그런 방식으로 두 사람은 질문에 똑같은 질문으로 대응하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
갈수록 화제가 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바보들이나 할 것 같은 대화였다.
그들은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고.
우연히 서로 대화거리를 찾기 위해 궁리하는 얼굴을 보게 된 두 사람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도 어벙하기 그지없었으니까.
“내일 퇴원하는 사람한테 이제 와서 괜찮냐고 묻는 건 뭐야?”
“왜…. 그래도 물을 수 있지.”
두 사람은 연신 킥킥거렸다.
어느새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졌다.
그제야 두 사람은 예전에 서로를 대했던 태도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방학 하고 뭐하고 지냈어?”
“추워서 집에만 계속 있었어. 가끔 병원에 상담 받으러 오고….”
“그런데 나는 안 만나러 왔다?”
“나, 나도 만나러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하기는 했었는데….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랑 마주치면 어떡해. 특히 하양이랑…. 그래서 그냥 집에 갔지….”
“그래, 그러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아, 롤케이크 먹을래? 가져올게.”
“아…. 고마워, 잘 먹을게.”
가끔은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며.
두 사람은 되도록 민감한 화제를 피하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웃고 떠들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덧 윤이별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제 그만 가볼게. 그럼…, 다음에는 아카데미에서 봐.”
“그래. 눈도 오니까 길 조심하고. 밖에 추우니까 뭐라도 걸치고….”
“…아니야. 괜찮아.”
“응…, 그렇겠다.”
마침 밖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고.
은하는 장갑이나 모자도 없는 채로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염려했다.
그래서 뭐라도 챙겨주려다가.
은하는 멈칫했다.
“─그러면 오해 받아.”
“미안, 내가 너무 오버했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젓는 윤이별.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서로가 처음 만난 기억을 떠올린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있지.”
“응.”
먼저 입을 연 것은 그녀였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늘 널 보러 온 건 우연히 상담을 받으러 왔다 네 생각이 나서 온 게 아니야.”
“…….”
나도 알아, 라고.
은하는 답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는 했다.
자신과 윤이별은 병문안을 오기에 너무나 애매한 관계가 됐으니까.
그렇기에 그녀가 찾아왔다는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은하는 그 이유가 무엇일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나하고 작년에 약속했던 거…, 기억하고 있지.”
아니나 다를까.
은하의 예상은 적중했다.
1년 전, 은하는 윤이별의 고백에 답을 하지 않고 보류를 했더랬다.
1년 동안 보류했던 기한은 이제 효력이 끝나고 말았다.
윤이별은 자신이 1년 전에 했던 고백의 대답을 들으러 온 것이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날 좋아해줘서 고마워.”
“…….”
더는 피할 수 없었고.
피해서도 안 되었으며.
무엇보다 그녀의 목소리가 한없이 진지해서.
은하는 그녀의 마음을 마치 짓밟듯 모른 척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윤이별의 마음에 예의를 갖추기로 다짐했다.
“너무 늦게 하는 소리 아니니?”
“그때는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아. 미안해.”
“이러면…, 마지막까지 미워하지 못하겠네.”
그의 마음이 전달된 것일까.
윤이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가 마치 진실을 찾으려는 듯, 은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는 쓰게 웃었다.
장난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렇구나. 은하 너는 이제 내가 알고 있는 은하가 아닌 거구나…. 나는…, 나만 널 바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였어.”
어딘가 한탄하듯, 또한 후련한 듯.
그녀는 무언가 깨달은 얼굴을 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녀가 눈을 감는다.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한다.
그러고는 눈을 뜬다.
은하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 없이 맑았다.
“작년 한 해 동안에…. 나는 내가 생각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주변에 폐를 끼친 것 같아.” “…….”
“아카데미 던전에서 사고가 있고, 나란 애는 왜 이리 못난 걸까 하고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있지…. 계속 생각하고, 치료를 받다 보면서 하나 알게 된 게 있어.”
그게 뭐냐고.
은하는 묻지 않았다.
은하가 굳이 묻지 않아도, 그녀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으니까.
“그동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맨날 나는 못난 사람이라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려고만 했어.”
“…….”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나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고 있던, 은하 너한테 끌렸던 거야. 너하고 같이 있으면, 나도 은하 너랑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거였어.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던 거였고.”
자신감과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
윤이별은 덤덤히 읊조렸다.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르게 떨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내 존재를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으려고 했던 게 이상한 거야. 나는 나인데, 왜 다른 사람들이랑 비교해서 못나다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다른 사람이 주변에 없어도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
“아마 은하 너랑 사귀게 되었다면 나는 분명 너한테 계속 집착하면서 나란 존재를 확인받으려 했을 거고, 내 가치를 인정받으려 했을 거야. 엄청…, 구질구질한 연애였겠지?”
윤이별이 대답을 구하듯 웃는다.
그럼에도 은하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그의 대답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다만 그녀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알아가고 싶어.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
“그러니까─.”
─그런 거구나.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
은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노은하와 윤이별.
두 사람이 서먹서먹한 관계가 된, 1년 동안 유보한 윤이별의 고백.
윤이별은 고백에 대한 답을 듣고, 지금까지 은하에게 매달리려고 했던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려는 것이다.
“─은하 네 답은 이미 알고 있어. 그래도…, 확실하게 답해줬으면 해.”
윤이별은 새로이 태어나기 위해서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은하가 그녀에게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못한 상황에서.
그녀는 그녀 스스로 답을 찾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더는 은하가 기억하는 윤이별이 아니었다.
“…….”
윤이별이 답을 기다리고 있다.
1년 동안 동결된 고백.
그 고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칼자루는 은하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녀를 죽이고, 살리고, 또 다시 그녀의 목숨을 유예하는 것은 모두 그의 마음이었다.
나는….
그동안 노은하는 희망했다.
원대한 이상을 품은 그는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파티를 만들려 했다.
그렇기에 미래에 유망주로 거듭날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그러니─.
─라면 어떻게 했을까.
노은하라면, 그는 분명 두 가지 선택을 내리리라.
윤이별에게 거짓된 사랑을 약속하거나.
아니면 또 다시 그녀에게 고백을 유예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의 힘을 얻기 위해 어떠한 짓도 서슴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제 나는 누구일까.
자신은 지금도 인가 하고. 또한 인가 하고.
은하는 회의했다.
사실 회의할 필요도 없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으니까.
나는…, 그냥 노은하지.
이제 자신은 가 아니다.
가 아니다.
가족들이 보는 노은하.
친구들이 보는 노은하.
연인들이 보는 노은하.
이유정이 보는 노은하.
자신이란 존재는 수 없이 존재하는 노은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과 보낸 시간이 은하의 마음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도, 도 가리키지 않았다.
따라서─.
“─이별이 네 마음은 고맙지만…, 미안해.”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내가 정말 그 사람들을 좋아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만약….”
“…….”
“만약 내가 네 마음을 받아들이고, 그 애들이 슬퍼할 거라고 생각하면 그러지 못하겠어.”
솔직하게.
은하는 제 마음을 고백했다.
그녀가 진심을 터놓은 이상.
은하 역시 진심을 터놓기로 했다.
그것이 예의였고,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였다.
윤이별은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렇구나….”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녀가 입을 열고 한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응…, 답해줘서 고마워.”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후련함.
그녀의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은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나는 졸업하면 은하 네 파티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래, 알겠어.”
염일방일(拈一放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하나를 놓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은하는 그녀의 고백을 고민하면서 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저울질했다.
그리고 윤이별을 놓았다.
원대한 이상을 품었던 그는 비로소 자신의 그릇이 감당하기도 어려운 이상을 품었다는 걸 깨달았다.
때로는 이상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는 를 포기했다.
어쩌면 스티지안 아이를 사용하면, 윤이별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야.
하지만…, 사용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까지 하면서 파티를 만들고 싶지 않아.
그리고 또─.
─윤이별의 행복을 바라고 싶다.
그녀가 파티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단언하였으나.
그럼에도 은하에게 있어 윤이별은 자신의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은하는 순수하게 윤이별의 행복을 바랐다.
“그럼 졸업하면 어떻게 하게?”
“사실은 일반 고등학교로 편입해서 플레이어와 연이 없는 삶을 살까도 생각해봤는데…. 졸업하기까지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그러기도 애매할 것 같아서….”
“그래서?”
“아직 정한 건 아니지만…. 나는 마나관리기구에 들어가고 싶어.”
“…그렇구나.”
윤이별의 비전.
은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자연스레 그녀와 잘 어울린다고 납득했다.
“잘 되기를 빌게.”
“응, 고마워. 그럼…, 난 갈게.”
“잘 가.”
그렇게 윤이별은 새로이 태어났다.
그녀는 개운하다는 듯이 웃고서는 은하에게 작별을 고했다.
은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 참. 은하야.”
“응? 왜?”
문을 나가기 직전.
윤이별이 휙 돌아섰다.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내 그녀는─.
“─그냥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네가 너무 미워.”
상큼하게 미소를 날리고서는.
윤이별이 후다닥 달아났다.
“허, 참….”
은하는 한동안 정신이 나가 있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쩔 수 없다.
업보다.
자신이 지은 죄가 너무 많았다.
☆
병원 생활도 오늘로 끝이다.
아버지의 차에 짐을 실은 은하는 곧장 이유정을 만나러 갔다.
“이걸로…, 가는 구나….”
이유정은 서운한 기색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은하가 퇴원을 하게 된다는 것은 매일 밤마다 밀회를 하던 것도 더는 하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유정이가 아쉬워하니 기분은 좋네.
은하는 그녀의 감정을 간파했고.
그녀의 손을 잡고 흡족해했다.
“종종 병문안 갈게. 기대해.”
“하지만 이제 곧 개강도 하잖아. 그러면 바쁠 텐데….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할까?”
“…….”
이유정이 미간을 모은다.
그것이 참 사랑스럽다.
은하는 이쯤에서 장난을 관두기로 했다.
“아카데미가 개강하는 시기가 되면 유정이 너도 곧 퇴원할 거잖아.” “응…, 그렇지.”
“그럼 그때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루미너스그룹 본가에 잠입을 해야 되겠네?”
“응? 은하야, 그게 무슨….”
“몇 층 살아? 앞으로 시간을 내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종종 놀러갈게.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3층에 살아. 해가 뜨는 동쪽방향에 내 방이 있어. 3층에서 제일 끝자락에.”
은하가 넌지시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감정을 표하자.
이유정이 대뜸 응했다.
은하는 그녀가 속사포로 말하면서 자신이 사는 집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모습에 키득거렸다.
“네 생각날 때마다 꼭 보러 갈게. 혹시 창문 잠그고 있거나 그러는 건 아니지?”
“…밤마다 창문 열고 잘게.”
그리하여 은하는 은아가 찾아와서 혼낼
때까지.
병원에서 퇴원하는 그때까지 계속 이유정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엘릭서가 완성되는 시기를 며칠 남겨 두고.
온태양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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