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72
두 번째 엘릭서가 만들어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온태양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온태희에게 연락을 받고 이튿날에 장례식장으로 향하면서.
은하는 생각에 잠겼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는 했다.
은하가 이유정에게 엘릭서를 넘긴 그날을 기점으로.
온태양의 어머니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었으니까.
그가 종국에 보았을 때에는 사실, 언제 죽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는 온태양의 어머니의 부고를 들었을 때에는─.
─후회는…, 없어.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었으니까.
이유정을 살리기로 결심한 때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에게는 그녀가 더 소중했고.
따라서 그는 몇 번을 돌아가더라도 과거와 같은 선택을 내릴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삐삐….”
“가자.”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은하는 음울한 분위기가 걸린 듯한 건물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빈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전에 조아라가 상세한 메시지를 보내주었으니까.
듣자하니 조아라는 현재 빈소에서 온태양과 온태희를 보조하고 있다는 듯했다.
─여기인가.
지하로 내려오고.
은하는 빈소를 찾았다.
입구 앞에는 단군그룹을 앞세우며, 플레이어 아카데미, 시리우스그룹, 앨리스그룹, 루미너스그룹의 화환이 놓여 있었다.
같은 층에 위치한 빈소와 비교하면 자연히 눈에 띄게 되는 화환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떠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표식이었다.
…사람이 없네.
하지만 휘황찬란한 정면과 달리.
빈소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조차 주방에 있는 직원들이었다.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드넓은 공간이다 보니 허전함은 더했다.
“아, 은하야. 왔어?”
“어, 아라야.”
빈소 앞에서는 조아라가 조의금을 받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녀를 만난 그는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아라는 그가 온 것을 달가워하며 웬일로 그의 손을 잡기까지 했다.
“잘 왔어, 정말. 그렇지 않더라도 분위기가 이런데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좀 그랬거든….”
“많이 안 왔어?” “사실 올 사람도 많이 없었거든…. 그래서 태희가 빈소가 너무 크니까 작은 데서 하자고 말하니, 태양이가 아주머니 가시는 길만은 크게 하고 싶다고 해서….”
조아라가 말꼬리를 흐렸으나.
은하는 그녀가 말을 잇지 않아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온태양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
─이래서는 너무 적적하기만 하네.
빈소가 너무 허했다.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은 이해하나, 오히려 그녀의 죽음이 초라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도 오전에 홍예화 언니하고 단군그룹의 사람들이 우르르 오기는 했어. 그게 태양이 때문에 온 건지, 아니면 홍예화 언니 그 사람 때문에 온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많이 왔네. 아카데미에서 연락은 없고?”
조아라가 한산한 빈소를 쳐다보던 은하의 시선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녀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말이 나온 김에 은하는 아카데미 학생들은 오지 않은 건지 물어보았다.
온태양은 주변에 사람이 많았으니 그 애들이 와서 빈자리를 채워주면 될 것 같은데….
아카데미에는 온태양과 어울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주로 고등아카데미 출신 학생들.
어느 그룹의 파벌에도 들지 못한 그들은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듯 무리를 지어 다니고는 했다.
“그게…. 될 수 있으면 가겠다는 연락을 주기는 했는데 아직까지는 연락이 없어.”
“허….”
“지방에 내려간 사람들도 있다는 모양이고…. 많이 안 올 것 같아.”
그때 조아라가 한숨을 푹 쉬었다.
걱정이 담긴 듯한 어조.
은하 역시 조아라의 말을 듣고는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애들이라도 부를까….
아니야. 애들한테도 못할 짓이고…, 자리만 채운다고 다는 아니야.
오죽하면 은하는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이야 그가 부르면 오겠지만, 온태양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 그들이 자리를 채운다는 것이 정녕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옛날에 알고 지낸 애들은 내일 온다고 했고….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그럼 다행이고. 그리고 나도 발인 끝날 때까지 같이 있을게. 뭐라도 시킬 일 있으면 말해줘.”
“어? 됐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퇴원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애가 그러면 어떡해? 마음만 받을게.”
“네가 상주도 아니면서 무슨….”
“아무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네가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우니까.”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은하는 장례가 진행되는 장례식장에 머무르기로 결심했다.
집에는 말을 하고 나온 차였다.
은하 나름대로 책임을 다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아라가 눈을 크게 뜨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니까. 이따가 나 어디 잘 데나 마련해줘.”
“바닥에 누워서 자면 되지, 뭘…. 정말로 같이 밤샐 거야?” “얘가 나를 못 믿네.”
“아니, 그냥…. 너는 보면 볼수록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없잖아.” “얘가 뭘 모르네.”
한사코 괜찮다고 사양하는 조아라.
은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올려다보고.
그는 그녀의 눈을 향해 말했다.
“조아라 너랑 태희만 고생하는 게 보기 싫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나 때문에?” “너랑 온태희 때문에.”
“그 말…, 진짜야?” “얘가 속고만 살았나….”
“아야. 우씨.”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
일순 조아라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반짝이고.
그녀가 작게 감탄한다.
그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채로 마치 넋을 잃은 조아라의 머리를 손날로 톡 때렸다.
“알았어. 같이 있어준다면야 나야 당근 환영이지. 에이, 내가 너니까 봐줄게.”
“봐주기는 뭘 봐줘?”
“나랑 방 같이 쓰자. 좁기는 해도 이런 데서 자는 것보다는 따뜻하고, 또 편할 거야.”
“그냥 바닥에서 자도 되는데….”
“어허, 내 성의 무시하지 말고.”
“그래, 뭐…. 코나 곯지나 마라.”
“우씨! 나 코 안 곯거든요?” “저번에 내 옷에 코 푸는 거 보니 잘 때 엄청 곯겠더구만.”
“허, 좋아. 내가 이따 증명할 테니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흥, 그러는 너나 곯지 마시지.”
입술을 삐죽이는 조아라.
은하는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태희는?”
“지금 안에 있어.”
“알았어.”
“네가 태희 좀 많이 위로해줘.”
조아라가 까치발을 들어 은하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녀가 그의 등을 밀고.
나직이 고개를 끄덕인 은하는 이내 영좌가 마련된 방으로 들어갔다.
그 즉시─.
“─네가 뭘 잘했다고 여기를 와!?”
“오빠!”
“태양아!”
“…….”
온태양이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며 일갈했다.
☆
온태양의 분노는 이해가 됐다.
그가 은하 자신에게 이리도 강하게 적대감을 보이는 것도 그럴 만했다.
그렇다고 하나─.
“─나가. 당장 나가. 나가라고!!”
“오빠, 왜 그렇게 말하고 그래!? 은하 오빠가 와줬는데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뭐? 이런 식? 야, 온태희. 내가 얘기했어, 안 했어?”
“…….”
“너희들 좀 그만해! 문객들 앞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온태양은 조문객들이 보는 앞에서 은하에 대한 분노를 서슴없이 터뜨렸다.
그가 서슬 퍼런 눈을 하면서까지 은하에게 적의를 드러내자.
빈소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인 것은 물론, 다른 빈소에 있던 사람들까지 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누가 우리 엄마를 죽였는데!!”
“꺄악!”
“태희야!” “”””…….””””
“온태양….”
온태양이 윽박지른다.
그를 말리던 온태희를 팽개치고, 성큼성큼 은하에게 다가간다.
턱 하고.
온태양은 은하의 바로 가까이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가라…. 나 지금 많이 참고 있는 거니까.” “…….”
“마음 같아서는 엄마 영정 앞에서 너를 죽이고 싶을 정도니까. 분위기 잡치게 하지 말고 그냥 가라.”
“오빠!”
“온태희 넌 조용히 해!”
으름장을 놓는 온태양.
그의 뒤에서는 아라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난 온태희가 그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은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고는─.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하게 해줘.” “내가 말했지. 꺼지라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온태양이 은하의 옷깃을 잡는다.
은하는 덤덤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네가 날 원망하는 것도 이해하고, 내가 너한테 미안할 짓을 했다는 건 알고 있어.” “…….”
“하지만 오늘만은 넣어줬으면 해. 너희 어머니 보시는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일 수는 없잖아.”
“네가 뭔데 우리 엄마를….”
“그러면 여기서 날 패기라도 하게? 그건 아닐 거 아니야. 이런 곳에서 소란을 피울 수 있겠어?”
은하는, 온태양을 알고 있다.
온태양이란 인물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가 이전 삶에서 어머니를 살리러 엘릭서를 만들어낸 일화는 그것을 반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은하는 온태양이 이쯤에서 그만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또 그 눈이냐.”
“…….”
“처음 봤을 때부터 싫었다고! 꼭 나를 평가하는 듯한 그 눈이…!”
온태양이 눈을 번뜩였다.
그가 이를 갈며 으르렁댔다.
그러고는 이죽였다.
“─그래, 못할 것도 없지. 내가 뭐 못할 것 같아!?”
“”””……!!””””
온태양이 휙 몸을 돌려서는.
그가 한편에 세워져 있었던 검을 가져왔다.
“꺄아아아악!” “오빠 지금 뭐하는 거야!”
“온태양! 너 미쳤어!?”
“삐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든 말든.
온태양이 거침없이 칼집에서 검을 잡아 뺐다.
스릉 하고 철이 칼집과 마찰하는 소리가 울리고.
그가 검을 거칠게 휘둘러서는 불쑥 은하의 코앞으로 겨누었다.
“…뭐하는 짓이야.”
“뭐하는 짓이기는. 네놈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겠다는 뜻이지.”
그럼에도 은하는 코앞에 흔들리는 검을 보고서도 눈썹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온태양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마지막 기회다. 다치기 싫으면…, 그냥 가라.”
“삐삐!”
“넌 가만히 있어.”
일촉즉발의 사태.
온태양이 위협하고.
불닭이가 날아와서는 은하의 몸을 지키려고 들었다.
은하는 불닭이를 떨쳐내려 하고, 눈앞에서 흔들리는 검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고는 오히려─.
“─네 검.”
“…….”
“지금 흔들리고 있어. 겨눌 거면 똑바로 겨눠.”
“……!”
노은하는 과감하게.
온태양의 검을 살며시 잡고서는, 그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제 검은 은하의 가슴에 놓이고.
두 사람은 서로 아주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보는 형세가 되었다.
온태양의 눈동자에 은하가.
은하의 눈동자에 온태양이.
눈동자가 서로를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한쪽은 동요한 것처럼 크게 흔들렸을지언정─.
“─사람에게 검을 겨눌 각오조차 되어 있지도 않으면서 검을 겨누려 하지 마.”
“…큭…!”
“여기가 장례식장이 아니었더라면 너는 그대로 죽었어. 나는, 너처럼 망설이지 않을 테니까.” “……!”
은하의 눈동자는 어떠한 동요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덤덤히 상대를 응시했을 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 온태양의 손에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눈동자를 굴려서는.
힐끗 온태양의 검을 살폈다.
“검은 좋아 보이네.” “……!” “그런데 좋은 검을 가진 것하고, 그 검을 제대로 쓸 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야.”
겉멋이 잔뜩 든 검이었다.
장식용이라는 느낌.
아직 플레이어도 아닌 아카데미의 학생이 쓰기에는 과한 느낌이 드는 검이었다.
은하는 검에서 눈을 떼며 그에게 조언했다.
아니, 돌려 깠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욱하는 성격 좀 죽이라고. 나한테 그렇게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으면, 정식으로 대련을 신청하든가. 그럼 그냥 받아줄 테니까.”
“…노은하…!”
“휘두를 거면 휘둘러, 그래서 내가 네 검에 맞아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검도 제대로 휘두를 줄 모르는 사람한테는 죽지 않을 거지만.” “이익…!”
온태양이 으름장을 놓듯.
은하 또한 으름장을 놓았다.
온태양이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며 얼굴을 붉히기만 한다.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이기지 못할 것을.
또한 사람을 해치지 못할 것을.
그렇기에 은하는 등을 돌렸다.
“태희야, 너희 어머니한테 인사를 올리고 싶어.”
“…네.”
걱정하는 얼굴을 하는 온태희.
은하는 그녀에게 살며시 웃어주고, 그녀 어머니의 영정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바로 그때.
“─노은하아아아아!!”
온태양이 결국 충동에 휩쓸렸다.
그가 검을 머리 높이 위로 쳐들고, 은하에게 달려든다.
사람들의 비명이 터지고.
온태희가 다급히 불렀으나.
은하는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치이이잉!!
“…큭…!!”
은하의 앞에 펼쳐진 보호마법.
온태양이 달려들자마자 기함을 한 조아라가 마법을 전개한 것이다.
온태양의 검은 조아라의 방벽에는 제대로 상처를 내지 못했다.
결국 그가 충동에 휩쓸렸음에도, 마지막까지 망설였다는 증거였다.
“─은하한테 뭐하는 짓이야.”
“아라, 너…크흑…!”
“이제는 하다하다 은하를 죽이려고 작정을 해!? 네가 그러고도 정말로 사람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참았는데!”
상황은 반전했다.
조아라가 정면에 나섰다.
디바이스가 없었음에도.
그녀는 기프트 의 힘을 자각하기라도 한 듯.
동시에 여러 종류의 마법을 전개해 온태양을 포위했다.
“”””…….””””
그녀가 당장 신호만 내린다면.
마법은 그 즉시 발동해 온태양을 요격할 것이다.
조아라의 순간적인 기지가 상황을 종결시킨 셈이다.
“그동안 참고 또 참았어. 태양이 네가 점점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변해가도, 그래도 중요한 부분만큼은 변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어.”
“아라야, 난….”
“이제는 네 목소리 같은 건 듣고 싶지도 않아!”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조아라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그녀가 노기가 섞인 목소리로 목이 찢어져라 외치는 소리에 온태양이 손에서 검을 놓았다.
그가 뭐라 해명하려고 했으나.
조아라는 아예 귀를 틀어막은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 이제 너랑 같이 못 있겠어. 너는 나한테 관심도 가져주지 않고, 너하고 있어도 이제 하나도 즐겁지 않으니까. 이젠
그냥 끔찍하다고!!”
“…….”
우리 절교해, 라고.
그녀가 고했다.
온태양의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절교라니…. 너 말이 심한….”
“나는 진심이야. 절교해. 더 이상 너하고 엮이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녀의 태도는 확고했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온태양은 깨달은 것이다.
더는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은하한테 사과해.” “…뭐?”
“얼른 은하한테 사과하라고!”
“…….”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어조로.
조아라가 힘을 주어 말했다.
온태양이 아연실색한 얼굴을 했다.
그의 눈이 은하에게 향했다.
그때 은하는─.
“─오빠, 정말로 어디 다친 거는 아니죠? 네? 그렇죠? 정말이죠?”
“괜찮아. 너도 봤잖아. 아라가 날 지켜준 걸.” “그래도요…. 혹시 모르잖아요.” “괜찮대도….”
“아….”
조아라가 온태양을 막은 사이에.
온태희는 황급히 은하에게 달려가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반면 오빠인 온태양에게는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발을 동동 굴리며 다치지도 않은 은하를 걱정하기 바빴다.
온태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얼이 빠졌다.
“태희, 네가 어떻게 나한테….”
여동생에 대한 배신감.
온태양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온태희는─.
“─은하 오빠한테 사과해.”
“…….”
“오빠가 잘못한 거잖아. 그러니까 사과해, 제발.”
마치 감정을 잘라낸 것처럼.
은하에게 보여준 걱정 어린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차가운 얼굴로 권유하는 온태희.
아니, 그녀는 강요했다.
“왜, 어째서….”
“”””…….””””
노은하에게 매달려 있는 여동생.
노은하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선 소꿉친구.
온태양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왜, 어째서.
너희들이 왜 걔 옆에 있는 건데!
자신의 편이 돼줘야 할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노은하의 곁에 있다.
온태양은 무언가가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억장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사과해.””
“…….”
그에게 마음을 돌린 두 사람은.
이제는 온태양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잘못…,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를 표하는 상황이 그의 가슴이 타게 만들었다.
“─괜찮아. 나도 말이 심했어.”
“노은하! 너 어디 다치진 않았지? 괜찮아!?”
“네가 막아줘 놓고 그 소리야?”
“휴, 다행이다.”
“언니는 어디 다친 데 없죠?”
그날부로 발인이 있는 날까지.
아니, 그날 이후로.
조아라와 온태희는 온태양에게는 철저한 무시로 일관했다.
☆
선력 14년 3월.
고등아카데미 3학년 1학기 개강.
“─여기에 노은하가 있다는 거지? 어디…, 내가 몸소 감시할 보람은 있으려나 몰라.”
베베, 편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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