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77
고등아카데미 3학년부터는 종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학생들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그들의 실력을 어필하거나, 졸업하기 전에 플레이어의 사회생활을 체험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1학기에 예정된 클랜 실습 파견은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고등아카데미 3학년 교관 신서영.
수업을 마치고 교관회관에 돌아온 그녀는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를 마주하고 한숨을 쉬었다.
서류라기보다는 제안서였다.
클랜에서 이번 실습에 어떤 학생을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서.
“이게 다 노은하 꺼라는 말이지….”
문제는 책 몇 권을 쌓은 것처럼 쌓여 있는 제안서들이 모두 노은하 한 사람만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
올해, 아카데미 이사들에 의하여 본인이 강력히 거부했는데도 결국 노은하가 재적한 반을 담당하게 된 신서영은 혀를 내둘렀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현재 업계 관계자들이 노은하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품고 있는 건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들 일단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심산인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많잖아….”
아카데미 3학년 학생들이 클랜에 파견을 나가는 경우는 두 가지.
하나는 노은하와 같이 졸업도 전에 업계 관계자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그들로부터 제안서가 들어오게 되는 경우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아카데미와 협정을 맺은 클랜마다 일정 인원이 정해져 있는 경우였다.
그 경우,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클랜을 3지망까지 선택할 수 있고, 3지망에서 모두 떨어지게 된 이들은 무작위로 자리가 남는 클랜에 배정받게 되어 있었다.
“그나마 중등아카데미 출신 애들은 클랜들로부터 지목을 많이 받았네. 하긴, 얘네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출신 성분도 남다르니까…. 실력이 바닥을 기는 게 아니고서야 대체로 지목을 받는 게 당연한 거겠지.”
당연히 대다수 학생들은 전자보다 후자에 속했다.
대체적으로 실습 파견에 있어서, 클랜과 아카데미의 위치가 더 높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학생들을 선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클랜과 아카데미가 곧갑인 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노은하는─.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르네….”
─아주 슈퍼 갑이다.
내로라하는 콧대 높은 클랜들이, 정중한 어조로 구구절절하게 말하며 노은하를 지목하고 있다.
그녀는 같은 클랜에서 보냈음에도 수신인에 따라서 지목하는 태도가 전혀 다른 제안서를 보고는 씁쓸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여, 본 클랜은 노은하 학생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모쪼록 노은하 학생께서 진지하게 고려해주십사….』
『…하여, 본 클랜은 유서가 깊은 정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귀하의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본 클랜은 귀하의 능력을 완벽하게 이끌어 낼 것이라 자부….』
이러니 학생들이 노은하에 대하여 자격지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아니, 노은하뿐만이 아니다.
─은하 친구들은 전부 다 이번에 제안서를 받았다고 했던가.
속칭 노은하 사단.
처음 학생들이 우스갯소리로 부른 용어는 어느덧 교관들 사이에서나 업계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도 꽤나 많은 제안서가 도착했다고 한다.
신서영은 바로 조금 전에 교관들이 우울한 얼굴로 늘어놓았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진짜 걔네들까지 담당하게 됐으면 서류에 파묻혀 죽었을 거야…. 하, 이걸 언제 다 읽는담….”
제안서를 대충 훑어보고.
신서영은 앓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말이야 그렇게 했다지만.
사실 노은하에게 보내진 제안서를 선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찌 보면 학생들에게 그들과 맞는 클랜을 선별해 추천하는 것보다도 간편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냥 상위 클랜만 고르면 되니까.
미안하지만 서울권이 아닌 클랜은 전부 쳐버리고….
여기서 B+급 미만의 클랜도 전부 쳐버리면….
정중하고 길게도 제안서를 작성한 클랜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신서영은 제안서를 대충 읽으면서 송신인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어차피 제안서에 적힌 내용은 모두 고만고만했고.
은하의 수준에 맞는 클랜도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은 B+급을 쳐내지 않은 것도 나름 인정을 발휘한 것이었다.
“흠…, 삼라클랜에서도 보냈구나. 얘네는 C+급밖에 안 됐으면서 불과 3년 사이에 A-급으로 올라왔네…. 클랜을 후원하는 그룹도 그룹이지만 그만큼 클랜도 실속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
그러다 그녀는 삼라클랜에서 보낸 제안서를 보고 눈을 빛냈다.
클랜등급의 상승이 꽤나 가팔랐다.
성장속도가 이 정도로 가파르다면 몇 년 안에는 S급 클랜의 범주에 들어갈 것 같았다.
제법 실속이 있는 클랜인가 보다.
그녀는 앞으로 삼라클랜의 행보를 주의 깊게 관찰하기로 했다.
“그에 비해 동해클랜은 아직까지 S급에 들지도 못하고 있고…. 아마 지금 거기서 삼라 클랜을 경계하고 있는 중이겠지.”
한편 동해클랜에 애도를 표하며.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신서영은 노은하에게 추천할 클랜을 선별할 수 있었다.
서울권에 위치해 있는 클랜 중에서 B+ 이상 되는 등급을 받은 클랜은 거의 모두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
“─응?”
그녀는 정리한 클랜 목록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S등급을 받은 클랜은 모두 일곱.
그런데 단 하나의 클랜이 은하에게 제안서를 보내지 않은 것이다.
“얘가 KK클랜이랑 원수라도 졌나. 아니면 얘네가 미래를 읽지 못하고 있는 건가….”
KK클랜에 관한 정보를 찾으며.
신서영은 미간을 모으며 고민했다.
학생들의 미래를 고려하여 최대한 실속 있는 클랜을 추천해주려 하는 그녀로서는 KK클랜에 대한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미래를 읽지 못하는 클랜이다.
“못 먹을 줄 알면서도 이건 무조건 Go를 질러야 하는 상황인데….”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으나.
이내 신서영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KK클랜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아니면 혹시 고도의 전략인 건가. 다른 S급 클랜은 너를 지목했겠지만 우리는 너한테 관심 없다며 상대가 호기심을 갖게 하는 전략….”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곧이어 신서영은 무심결에 떠올린 가정을 부정했다.
☆
선력 14년 4월.
고등아카데미 3학년 학생들은 모두 5월에 실습을 나갈 클랜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론, 은하는 해당되지 않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당연히 레귤러스클랜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신서영이 그를 위해 선별한 클랜은 모두 23곳.
그중 S급 클랜은 KK그룹을 빼고, 제니스, 명왕, 레귤러스, 신라, 블레이즈, 템페스트 총 6곳이었다.
사실상 은하가 고민을 해야 하는 클랜들이었으나.
그는 마찬가지로 S급 클랜들에게 지목을 당한 친구들과 달리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레귤러스클랜을 선택했다.
한 달 동안 누나랑 같이 일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거기 말고 내가 어디를 가겠어?
은하는 뼛속까지 시스콤이었고.
그리하여 그는 제안서도 보지 않고 대뜸 은아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레귤러스클랜으로 실습을 나가기로 한 것이다.
‘…이럴 거면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었잖아.’
‘저는 누나라면 알 줄 알았는데….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이런 것도 모를 수 있어요?’
‘에휴…. 꼬꼬마 시절에는 그나마 귀여운 맛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훌쩍 커선 귀여운 맛도 없어지고…. 그래, 너 잘났다.’
이에 올해 은하의 담임을 맡게 된 신서영은 가슴을 두드렸더랬다.
은하는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깨라도 주물러줘야 했다.
그렇게 그녀의 연구실을 빠져나온 그는 이내─.
“─아, 좋아. 그동안 묵었던 피로가 싹 빠지는 느낌이야. 응, 거기. 거기 좀 세게 주물러봐.”
“…너도 참 대단하다. 아직까지도 이걸 기억하고 있고 말이야.” “나 손해 보고 안 사는 성격인 거 몰랐어? 그렇게 생각했다면 이제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라는 걸 알아두라구. 아, 시원하다.”
은하는 우연히 진서나를 만났고.
그녀가 때마침 잘 됐다면서 그에게 오래 전에 묵은 약속을 이행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작년 1학기 종평에서 그는 빈말로 그녀에게 밥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를 안마해주기로 약속했더랬다.
그런데 당시에 아카데미 던전에서 발생하게 된 사건으로 인해 약속은 흐지부지해지고, 게다가 2학기에는 은하가 입원을 하게 되면서.
은하가 과거 진서나와 나눈 약속은 지금껏 이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은하는 그 약속을 지금에 이르러서 이행하게 된 것이다.
“이자까지 쳐가지고 나한테 영화도 보여줘야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있으라구.”
“고리대금업자.”
“그러게 제때 제때 갚았어야지…. 아, 이거야. 시원~하다.”
진서나의 방.
저녁을 먹은 은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사람들 몰래 그녀의 방에 숨어들어야 했다.
간편한 옷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서는 은하에게 어서 주무르라고 말했고.
은하는 별 수 없이 침대에 올라, 여우를 안마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누가 주물러줬으면 좋겠네.
내 신세가 이게 뭐지….
등을 꾹꾹 주무르자.
여우가 몸을 부르르 떤다.
은하는 베개를 껴안고 황홀해하는 진서나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안마 기계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우는 두 다리를 붕붕 흔들어서는 침대 시트를 팡팡 때려댔다.
여우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그를 톡톡 건드리기도 했고.
“좀 가만히 있어.”
“지금 가만히 있거든?”
“내 뒤에 있는 꼬리는 뭔데?”
“그건 나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꼬리한테 물어봐야지.”
“얼씨구.” “계속 주무르기나 해. 열심히 하면 누나가 건웅이한테 받은 과자 줄게. 외국에서 들여온 과자라고 하던데 꽤 맛있더라.”
“너 건웅이랑 그 정도로 친해?”
“이게 친한 건가?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을 정도로 지내고는 있지. 나는 앨리스그룹 소속이기도 하면서 KK그룹 소속이기도 하니까.”
“그래, 뭐….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만으로 다행이다.”
“윽…. 좀 살살 해. 건웅이가 요즘 나한테는 꼼짝을 못해. 뭐만 하면 내가 네 이름을 팔고 다니거든.”
“어쩐지 귀가 가렵더라니…. 누가 내 이름을 멋대로 팔고 다니래?”
“으…. 너 지금 일부러 힘준 거지? 나한테 자기 이름 팔고 다니라 말한 사람이 누구인데 이제 와서 그러니. 근데 계속 거기만 주무를 거야?”
“끙…. 어디 주무르면 되는데?”
“좀 더 아래로 내려와. 양 옆 허리, 거기 좀 주물러…윽…은하 너 진짜 이럴 거야?”
“내가 뭘?”
“일부러 그랬지?”
“사람이 실수할 수 있는 거지, 뭘. 왜 이런 걸로 화를 내고 그래?”
저 혼자 편안한 시간을 만끽하는 진서나 한 마리.
은하는 여우가 참 얄미웠다.
그래서 은하는 일부러 힘을 주어 그녀를 은근히 괴롭혔다.
“그리고 이번에 KK클랜에 실습을 나가기로 했잖아. 그래서 건웅이랑 정보를 교환하러 만난 것도 있지.”
“그러고 보니까 너는 KK클랜으로 실습을 나가기는 하겠다. 너랑 같이 나가는 애들은 누구누구야?”
“연애하느라고 나한테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니야? 나는 누구 때문에 몸에도 맞지 않는 첩보활동을 하고 있는 중인데….” “첩보는 무슨. 놀고 있는 거겠지.”
“누나가 이래 보여도 다 너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라구. KK클랜이 왜 다른 S급 클랜들과 다르게 은하 널 지목을 하지 않은 것인지, 대체 널 얼마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지 알아보러 실습에 나가는 거야.”
“그래, 그건 고맙다. 그런데 자꾸 왜 누나라 해? 생일도 내가 너보다 더 빠른데 말이야.”
“네가 나한테 얻을 게 있으면 그냥 누나라고 불러야지. 그렇지 않니?”
풀어진 얼굴로 안마를 받는 여우.
은하는 진서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정보를 교환했다.
진서나는 이왕 KK클랜에 파견을 나가는 김에 KK클랜이 왜 은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지 조사를 하겠다고.
이내 여우는 은연중 에헴 하면서 칭찬을 원했고.
은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칭찬을 해주었다.
“그래서 KK클랜에 실습을 나가는 애들은 누구누구인데?”
“나랑, 건웅이랑, 카에데랑, 천서 정도려나. 아직 확정되지 않아 잘 모르겠어.”
“다른 애들은?”
“다른 애들은 뭐…. 어디 보자…. 주는 게 있으면 나도 받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계산주의자.” “다 너한테 배운 거야.” “그래서 어디 주무르면 되는데?”
“발도 해줘.”
“발?”
“응, 발.” “진짜 별 걸 다 부탁하네. 알았어. 양말이나 벗어.”
“네가 벗겨줘. 나는 이대로 누워 있고 싶으니까.” “게으름뱅이.”
“은하 너만 하겠니.”
진서나가 다리를 들어올린다.
은하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한 마리 여우의 양말을 벗겼다.
“어우, 냄새.”
“냄새 맡지 마. 그럼 하양이한테 이를 거니까.”
“…….”
[나한테는 못 당하겠지?]“일름보.”
“응, 나 일름보 맞아.”
“에휴….”
여우가 KK그룹의 방계가 된 후로.
은하는 번번이 진서나에게 당하고 사는 중이었다.
심리적으로 그녀에게 미안해하는 이유도 있었고.
단순히 그녀의 말재간에는 이기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다.
여하튼 그는 그녀의 발을 주무르며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레귤러스클랜은 알고 있지?” “내가 거기 실습을 나가니 당연히 알고 있지. 거기가 앨리스그룹에서 후원을 받고 있기도 하고….”
은하가 예상하기도 했으나.
이번에 은하의 친구들은 전부 다 S급 클랜들에게 지목을 받았다.
덕분에 친구들은 요즘 어느 클랜에 실습을 나갈 것인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 은하와 함께 레귤러스클랜에 실습을 받으러 가기로 한 사람들은 두 명이었다.
정하양과 차은우.
하양이야 앨리스그룹의 직계이고, 나랑 같이 가고 싶어 했으니까.
은우는 를 보고 싶어 했고 말이지.
친구들 모두가 같은 클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클랜마다 정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민호의 경우 은우를 따라 레귤러스클랜을 선택하고 싶었으나, 정원이 문제가 되어 제니스클랜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은혁이도 제니스클랜으로 간대. 지용현 플레이어가 클랜로드로 있는데다가, 님께서 추천하셨다더라. 아, 잠깐…. 간지럽히지 좀 마….”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지. 난 그냥 주무를 뿐인데.” “지금…. 네가 의도적으로 발바닥 간지럽히고 있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구?”
“그래서 다른 애들은 어떤데?”
“으…. 신라클랜에는 민지하고 파랑 오빠가, 템페스트클랜에는 리엘이랑 구래가 가겠다고 해. 윽, 진짜 이제 그만해! 아, 항복! 항복! 항복하겠다니까!?”
“항복은 무슨 항복이야. 그냥 아주 녹초가 될 때까지 주물러 줄 테니까 어서 정보나 불어.”
“으…, 간지럽히기 대마왕.”
“진짜 간지럽히는 게 뭔지 알려줘? 자꾸 이러면 꼬리도 주물러준다?”
“……!”
이외 은하가 진서나를 고문하면서 정보를 듣기로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강시형은 자신이 후원을 받고 있는 KK그룹의 KK클랜이 아닌 동해클랜으로 실습을 나간다는 모양이었다.
또한 명왕클랜에는 조아라가.
“다른 애들은?”
“이거 풀어주고 나면…, 말할게!”
“그럼 영화는 안 봐도 되지?”
“팝콘은…, 안 사줘도 돼.” “…팝콘까지 사 달라 할 셈이었어? 완전 수전노네.”
“그러는 넌 완전 짠돌이야!”
그로부터 지쳐 쓰러질 때까지.
두 사람은 티격태격했다고 한다.
☆
사실, 얼마 전에 신서영이 은하를 부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얼마 전에 교관들의 만장일치로 네가 졸업식에서 대련을 하는 걸로 결정이 났어.’
‘왜 하필 저래요? 저는 성적으로는 하양이한테 밀리고, 실기성적으로도 민호하고 은혁이한테 밀리는데…. 게다가 작년 2학기는 다니지도 않아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요?’
‘그걸 말이라고 하니?’
‘…….’
‘너도 부정 못하겠지?’
‘젠장….’
고등아카데미 3학년.
졸업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로 인해 3학년 대표는 내년 2월 졸업식에 있을 대련에서 무를 겨룰 상대를 지정해야 했다.
그리고 하필.
아니, 반쯤은 예상했던 대로.
은하는 학생들과 교관들의 합의로 3학년 대표로 뽑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번 달이 지나기 전까지 나한테 졸업식 대련에서 무를 겨룰 사람을 알려줘.’
‘…그날 외부에서 사람들이 엄청 많이 오겠죠?’
‘당연한 소리를.’
‘관심 받기 싫은데….’
‘은하야,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면 너 스스로한테 안 부끄럽니? 너는 진짜 언행불일치의 대명사다.’
‘…….’
‘아마 너도 알고 있을 테지만, 네가 졸업하는 날에는 연화가 졸업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올 거야. 그러니 그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대련을 보여줬으면 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대체 누구를 상대로 세워야 하는 데요?’
‘그걸 왜 나한테 묻니? 그냥 은하 네 주변에 있는 애들한테 부탁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변에 은혁이나 민호도 있고, 파랑이도 있구만….’
‘바보 형은 바보라 그런 자리에서 싸웠다가는 망신살만 당할 테니까 은혁이나 민호가 좋을 것 같기는 하네요.’
‘그리고 꼭 동기수일 필요도 없지. 031&31기 대표로서 후기지수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솔직히 나는 이쪽을 더 추천할게.’
‘음….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하네요. 이미지 메이킹에도 좋을 것 같고….’
‘얘가 아직 플레이어도 아니면서 대외적인 이미지를 따지려고 하네.’
‘제가 아직 플레이어도 아니면서 이명을 가지고 있어서요.’
‘그래, 너 잘 났다. 아, 근데 그건 어떻게 할 거니?’
‘그게 뭔데요?’
그날, 은하가 신서영의 연구실에서 대부분 보낸 시간은 졸업식 대련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신서영은 은하에게 졸업식 대련을 어떤 식으로 구성해야 하는 것인지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그의 기억을 끄집어내듯 말한 것이다.
‘네가 졸업식 대련에서 연화하고 무를 겨룬 이후로 졸업식에 어떠한 변화가 생겨났는지 아니?’
‘아….’
‘그때 이후로 3학년 대표들은 계속 후기지수들을 대련 상대로 지목해 한 수를 가르쳐주는 대련을 펼쳤어. 그런데다 대련이 끝나고 난 뒤에는 선배들의 의지를 후배들에게 맡기겠다는 상징으로서 자신이 애용한 무기를 물려줬고.’
‘…….’
‘졸업식 대련의 당사자들만 아니라 선후배들에게 널리 퍼지고 퍼졌지. 그건 어떻게 할 거니?’
3년 전.
은하가 졸업식 대련에서 류연화와 대련을 펼친 이후로.
아카데미에는 독특한 졸업문화가 생겨났다.
그것을 떠올린 은하는 그때 눈살을 찌푸렸더랬다.
‘─제가 줄 무기가 어디 있다고요. 제 검들이 어떤 검들인데….’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럼 그냥 너 좋아한다고 하는 후배들한테는 교복 단추나 뜯어주렴.’
‘…그건 또 뭐래요.’
‘교복 단추 몰라?’
‘……?’
‘내가 나이를 먹기는 먹었나 보네.’
‘그걸 이제…. 누나 참 젊으시네요. 과연 님. 안 늙으시네.’
‘립서비스 참 고맙다, 아주. 아무튼 이번 달까지 대련 상대나 알려줘.’
‘아, 누나. 지금 막 생각난 사람이 한 명 있는데요….’
은하의 인간관계는 매우 협소했고.
후기지수 학생과 대련을 펼치다가 괜히 잘못해서 여론의 등에 떠밀려 무언가를 줄지도 모를 일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서.
또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때 은하는 불현듯 떠오른 사람을 졸업식 대련의 상대로 세우고 싶다 신서영에게 말했더랬다.
그러자 그녀는 의외라는 듯이─.
‘─그래, 뭐. 그 애 허락만 받으면 나한테 알려줘.’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이후 연구실을 나온 은하는 지금껏 졸업 대련의 상대를 고민했고.
오늘이 되기까지 적당한 상대로는 그 녀석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휘릭 휙 부웅
수련동.
지하 훈련실을 찾은 은하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를 찾았다.
슈욱 휙
고등아카데미 31기 온태양.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기존에 있던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정말 오롯이 자신을 단련하는 것에 매진했다.
하루 종일 수련동에 틀어박혔다.
은하가 그가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땀을 한 바가지나 흘려가며 검을 휘두르는 온태양을 관찰했다.
잠시 후,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노은하….”
“안녕.”
“…….”
한참 검을 휘두르던 온태양이 이내 검을 내리고 은하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 실린 감정은 증오.
은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증오를 가만히 받아주었다.
“”…….””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은하는 머릿속에서 말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내년에 졸업식 대련이 있어.”
“…….” “그때 온태양 네가 내 대련 상대가 되어줬으면 해.”
“……!”
온태양.
은하는 그를 파티에 영입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것과는
별개로 온태양의 성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은하는 이 기회를 빌려서 온태양과 무를 겨루기로 했다.
“…….”
은하의 제의를 받은 온태양.
처음 그의 얼굴은 놀람으로 물들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평정심을 찾은 온태양은 노은하를 향해 답했다.
“─바라던 바야. 사람들이 보….”
“그럼 그때 보자.”
온태양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그가 뭐라고 이죽거린다.
하지만 은하는 온태양과 더 이상 대화를 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는 온태양의 말도 듣지 않으며 몸을 돌렸다.
“…….”
그러고는 몇 발자국을 나아가고.
은하는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자신이 무시당할 줄 몰랐는지 온태양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은하는 그를 향해 말했다.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아줘.”
“……!”
“네가 그때까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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