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97
덕수궁을 마주보는 형태에 위치한 한국 마나관리기구.
십이좌 강현철은 오랜만에 마나관리기구를 찾았다.
“아, 현철 오빠.”
“오, 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업무 보고 때문에 들렸죠.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웬일이에요?”
“나도 업무 보고 차원에서 들렸지. 장관님께 드릴 말씀도 있고.”
“드릴 말씀이요?”
그러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때마침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십이좌 박혜림을 마주쳤다.
박혜림이 먼저 아는 척을 했고.
강현철도 화답했다.
“드릴 말씀이 뭔데요?”
“너 이제 가는 거 아니었어? 근데 나는 왜 따라와?”
“그쪽이 지금 뭔가 저지를 것 같아 따라가는 거죠.”
“내가 그렇게 못 미덥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죠. 그래서 드릴 말씀이 뭔데요?”
이내 강현철과 걸음을 나란히 하는 박혜림.
강현철은 옆에서 핀잔을 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뭐…. 별 거 아니야.”
“별 게 아니라면 오빠가 여기까지 올 리가 없잖아요. 말해봐요.”
“끙…. 매년 십이좌들이 돌아가며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잖냐.”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그 시기네요. 어, 잠깐….”
강현철이 별 수 없이 털어놓자.
박혜림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강현철의 말대로 매년 이 시기에는 십이좌가 직접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는 했다.
그러니 강현철이 올해 강연을 맡을 차례란 사실이 당황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정말 은하랑 싸우려고요?”
“당연한 거 아니냐? 직접 그놈이랑 약속까지 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이날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략 1년 전.
강현철이 플레이어 마켓에서 만난 노은하와 대련하기로 약속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혜림은 은하의 이름을 듣자마자 벌써부터 기대된다는 것처럼 웃는 강현철을 보고 뜨악했다.
“정말 싸울 거예요?” “왜 두 번이나 묻고 그래? 그러면 정말 싸우지, 가짜로 싸우나?”
“그 애는 아직 학생이라고요.”
“이제 몇 개월이 지나면 졸업하고 플레이어가 될 텐데, 뭘.”
“이 전투광.”
“혜림아.”
“왜요?”
“전투광이라니? 나는 사나이로서 약속을 지키려는 것뿐이야. 사람을 오해하지 말란 말이야.”
그런 사람이 선녀님과 나눈 약속은 하나도 지키지 않는다고요?
박혜림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참았다.
강현철이었다.
상식으로는 통하지 않는 인간.
이제 와서 말린다고 하더라도 그가 하등 듣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에휴…. 그래서 강연도 하는 김에 겸사겸사 노은하 학생하고 대련도 하겠다고 말하러 가는 건가요?”
“그렇지! 노은하 그놈도 지 입으로 말한 게 있으니까 무르지 않을 거라 이 말이야. 이제 장관님과 선녀님께 허락을 받고, 아카데미에 통보하면 된다는 거지.”
“어떻게 이럴 때에만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걸까….”
강현철이 실실거린다.
박혜림은 한숨을 쉬었다.
그를 말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적어도 그가 십이좌 문준에게 폐나 끼치지 않게 감시나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계속 걸었다.
“그래요, 대련은 그렇다고 칠게요. 그렇다고 강연회를 소홀히 하는 건 아니죠? 학생들한테 어떤 말을 할지 생각은 해봤어요?”
“어차피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잘 싸우는 것밖에 없잖아. 그래서 잘 싸우는 방법이나 알려주게.” “나쁘지 않네요. 예를 들면요?”
한편으로 박혜림은 걱정되었다.
학생들은 십이좌란 이름에 이끌려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강연에 참석할 터였다.
그녀는 십이좌 중 한 사람으로서, 잘못해서 질이 떨어지는 강연으로 그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확인 차 물으니─.
“─사실 몬스터와 잘 싸우는 법은 별 거 없어. 어떤 일이 일어난대도 두 눈을 감지 않고 부릅뜨고 있으면 되는 일이야. 눈앞까지 오는 공격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어야지.”
“…그래서요? 두 눈을 감지 않는 마법이라도 알려주는 건가요?” “그런 마법을 왜 만들어?”
“그럼요?”
“의지지. 정신이지. 죽기를 각오한 의지로 맞서 싸워야지! 별 거 없다. 사람이란 근성이 있으면 강해지고, 없으면 약해지는 동물이니까.” “그게 다예요?”
“이게 다인데?”
“이 인간이 진짜….”
믿은 내가 잘못이라고.
박혜림은 한숨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그날, 박혜림은 시간을 내서 강현철의 강연 준비를 돕기로 했다.
☆
최근 고등아카데미 3학년 학생들은 클랜에서 파견된 객원교관들의 수업을 듣는데 한창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수업을 빙자한 영업이 한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클랜의 눈에 띄기 위해서 수업을 듣는데 열중했고, 객원교관들은 재능 있는 학생들을 발굴하러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수업이 실전위주로 된 건 좋은데, 지켜보는 눈이 왜 이리 많은지….
이미 업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은하는 아무렴 좋을 따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른 학생들이 객원교관들의 눈길을 받을 수 있게 수업에 소극적으로 참가했다.
그럼에도 객원교관들을 비롯하여 다른 학생들까지 시선은 은하에게 향하고 있었지만─.
─진짜 내가 뭘 했다고…. 난 그냥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은하가 건성으로 수업을 듣자, 도봉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A급 클랜의 객원교관이 억지로 은하에게 대표로 시범을 보이게 했더랬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교관이 가르친 내용을 보기 좋게 수행했고.
‘─과연 노은하 학생이야. 역시나 그 나이에 이 정도는 해야 이명을 받고 그러는 거구만. 어때, 노원에 관심은 없니?’
‘생각은 해볼게요.’
‘노원에는 몬스터들이 아주 많지. 의정부가 그 방향에 있거든. 그러니 십이좌를 꿈꾸는 너라면….’
‘저는 딱히 십이좌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요?’
별 거 아닌 시연이었건만.
당시 객원교관은 입이 닳도록 그를 칭찬했더랬다.
다른 수업에서도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객원교관들의 눈길을 끌려 하는 학생들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은하로서는 억울했다.
그나마 학생들은 은하를 잘 알기에 시비를 걸려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는데─.
‘─그런 식으로 관심 없다는 투로 교관님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짓은 그만 좀 하지? 네가 어느 클랜에도 들어갈 생각이 없다면 눈에 띄지 좀 말란 말이야.’
””…….””
편입생들은 달랐다.
학기 초에는 노은하에게 굴복했던 그들이 그에게 시비를 건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은하의 친구들에게도 괜한 시비를 걸었더랬다.
그 결과─.
─애들한테 된통 당했지. 덕분에 객원교관들은 애들 실력을 살필 수 있었고, 그놈들은 자멸하는 것으로 자신을 어필할 수 있었지.
그러게 그냥 가만히 있지….
시비를 걸던 편입생들은 노은하와 대련을 하게 되는 일도 없이.
은하의 친구들에게 박살이 났다.
덕분에 친구들은 객원교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한편 그것과는 별개로 그들의 노은하 사단 후려치기는 암암리에 계속되고 있었지만.
A급 클랜의 목적은 내가 아니라 내 친구들이라고 했던가.
내가 어쩔 수 없이 데려가지 못할 애들을 영입하겠다고….
A급 클랜들의 후려치기.
김민지로부터 사정을 들은 은하는 코웃음을 쳤다.
자신의 친구들은 본인들의 실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후려친다고 해서 친구들이 기가 죽을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누가 전부 데려가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 내가 전부 데려갈 생각인데….
A급 클랜들의 예상과 달리.
은하는 자신이 만들 파티에 누구도 빠뜨릴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시간을 내어 신서영의 연구실을 찾은 것이다.
“─S급 클랜들이 보내온 서신이야. 한 번 찬찬히 봐봐.”
“고마워요, 누나.”
“하, 너 때문에 이게 뭐니. 문화제 준비하랴, 객원교관들 관리도 하랴, 너 때문에 S급 클랜들이랑 서신을 주고받으랴….”
“나중에 갚을게요.” “갚는다는 말만 수도 없이 들었어. 안 갚아도 되니까 제발 나한테 일을 가져오지 말아줘. 나도 쉬고 싶다.”
형식적으로 클랜들의 영입 권유는 문화제가 끝난 시기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객원교관들은 수업을 하며 학생들을 회유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상 클랜들의 영입 권유가 지금 아카데미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은하의 친구들은 이미 몇몇 A급 클랜들로부터 넌지시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아하니까 S급 클랜들끼리 입을 맞춘 모양이더라. 너랑 네 친구들이 한쪽 클랜으로 치우쳐서 클랜균형이 깨지지 않게 말이야.”
“쩨쩨하게….”
“원래 클랜들이 다 그렇지. 그런데 KK클랜하고는 무슨 원수를 졌길래 걔네만 8:2를 고집한다니?”
“몰라요. KK클랜의 제안은 보지도 않을 생각이에요.”
“잘 생각했어. 어차피 KK클랜은 황산군이 십이좌가 되지 않았으면 A급에 머물렀을 클랜이니까. 고작 플레이어 한 명 때문에 클랜 등급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 클랜은 그리 탄탄한 클랜이라고 볼 수 없으니까 네가 관심 가질 필요도 없어.”
신서영이 보여준 서신은 클랜들의 정식 영입 제안서나 다름없었다.
서신에는 S급의 클랜들이 은하를 어떤 조건으로 영입할지 써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제안은 일전에 은하에게 제안했던 것과 다소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S급 클랜들끼리 은하와 친구들을 영입하기 위해서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과한 경쟁을 피하러 저희끼리 게임의 룰을 만든 것이다.
“KK클랜을 빼고서 제가 생각하는 친구들을 5명까지 영입할 수 있다고 하네요.”
“클랜 하나가 유망주들을 전부 다 데려가는 건 그림이 좋지 않으니까 그렇게 한 거겠지. 내가 봤을 때는 5명도 많은 거야. 그래도 걔네들이 네 입맛에 맞추겠다고 그런 조건을 달기로 한 거겠지.”
“그래도 5명은 적은데….”
“입단하자마자 클랜 내에서 은하 너만의 파벌을 만드는 것과 같은데 적다고 하기는 그렇지 않니?” “정산비는 똑같이 9:1이네요. 이때, 애들은 실력에 따라서 많게는 8:2, 최소 7:3을 보장해주겠다고 하고.” “거기에 플레이어로서 활동하면서 소요되는 비용은 입단 3년까지 전부 클랜에서 책임지겠다는 조항도 봐. 나쁘지 않은 제안이야. 네 친구들도 조항에 해당된다고 써 있어.” “통이 크네요.”
“걔네들 후원을 하는 그룹에서도 은하 널 끌어들이려 안달이 났다는 증거라 할 수 있지.”
S급 클랜들의 조건은 대략적으로 같았다.
다른 점은 각 클랜에서 입단하면 어떠한 활동과 복지를 제공하느냐는 것이었다.
“명왕클랜에서는 저와 제 친구들을 대대적으로 마케팅해주겠다는 말이 있네요. 방송출연까지 있네….”
“제니스클랜에서는 갤럭시그룹과 인연이 있는 신문사들과 합작해서 너희 이미지 마케팅을 하겠다더라. 원하는 이명이 있으면 말하래. 슬쩍 언론에 흘리겠다나, 뭐라나….”
“신라클랜에서는 루미너스그룹의 브랜드를 전부 다 무료로 이용하게 해준다네요.” “그건 너한테 이미 필요 없는 조항 아니니? 그것보다는 그 밑에 있는 1년에 한 번씩 맞춤형 디바이스를 제공해주겠다는 건 끌리지 않니?” “신라클랜에는 유능한 마에스트로
가 많이 있으니까 나쁘지 않네요.”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되는 내용.
은하는 서신들을 이리저리 살피며 신서영과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이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도 완전한 자유란 없는 거구나. 게다가 애들을 모두 데리고 갈 수도 없는 거고.
단점이 명확했다.
각 클랜이 비밀 조항을 달아서는 추후에 그와 친구들의 실적에 따라 인사권을 지급한다는 말도 있었다.
요컨대, 은하의 친구들을 한꺼번에 영입할 수는 없으니 시간을 두고서 영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졸업하는 즉시 친구들과 파티를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역시 내가 만드는 게 답인 건가.
그러다 보니 은하는 요즘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로.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못하게.
그가 파티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직접 클랜을 만드는 것밖에 없었다.
일단 문화제가 끝나기 전까지 이건 보류하고 있어야겠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고.
시간도 아직 남아 있었다.
은하는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쨌든 고마워요, 누나. 돌아가서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그래, 무턱대고 결정하지는 말고. 영입 조건이 좋다고 그것만 보고서 달려들어도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중요한 건 네가 선택하려는 클랜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는 거야.”
“네, 고마워요.”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는 것.
중요한 조언이었다.
은하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서 은하는 서신을 정리해서는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던 그때─.
“─그리고 오늘 마나관리기구에서 너와 현철이의 대련을 공식적으로 허락하겠다는 서한을 보냈어.” “…젠장.”
“이제 피할 수 없다는 거 알지?”
“피할 생각도 없었어요.”
“얼굴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약속을 잊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사람은 싸우는 방면에서는 머리가 이상하게 좋으니까….”
“아주 잘 알고 있는 말투네.”
“꼭 바보 형 같은 사람이잖아요.”
“음…, 부정은 못하겠다.”
강현철과 노은하의 대련.
은하는 신서영에게 소식을 듣고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어.
피할 수 없으면 싸워야지.
신서영이 새로 서신을 건네고.
은하는 마나관리기구가 승인한다는 대련 방식을 훑어보았다.
“대련 방식이 희한하네요?”
“현철이가 날뛸 걸 전제로 했고, 실력 차이를 고려해서 만든 거겠지. 내가 봤을 때는 과연 실력 차이를 고려해야 할까 싶지만…. 어쩌겠니. 마나관리기구 사람들이 은하 네가 어떤 애인지 알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작하고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난다니 한테는 불리하네요.” “일종의 타임어택이지. 그렇다고 현철이가 불리하다고 할 수는 없어. 대련장 전체를 움직일 수 있게 되면 그때는 걔 고삐가 풀려 있을걸?”
“하긴….”
시간 싸움이었다.
은하는 강현철이 완전히 움직일 수 있게 되기 전까지 대련을 끝내기로 다짐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