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98
선력 14년, 노은애는 13세가 됐다.
다시 말해, 이제는 자신의 진로를 어느 정도 결정해야만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은애 너는 어디 갈 거야?”
10월의 어느 날.
이날, 담임교사는 학생들 중에서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지원을 하는 학생들은 다음 주까지 입학신청서를 제출하라고 말했다.
이외 다른 학생들은 자신이 진학할 중학교를 알아오거나, 그것도 아닌 경우에는 어떤 일을 할 생각인 건지 정해놓으라고.
“나? 음, 중학교에 가지 않을까?”
“플레이어 아카데미는 흥미 없고? 너희 언니랑 오빠는 거기 나왔잖아. 오빠는 내년에 졸업하지?”
“응, 맞아! 내년에 졸업해.”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인 선미예.
장난을 치는 남학생들을 따돌리고 그녀와 함께 하교하던 은애는 문득 그녀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디에 가려는 생각이냐고.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닌데….”
노은애는 생각에 잠긴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고는 에헤헤 하고 웃었다.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언니도. 다른 사람들도 다 반대했거든. 너무 위험하다고.”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리고….”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야.”
“말해줄 생각이 없다? 흥이다.”
“미안해.”
선미예가 콧방귀를 끼었다.
은애는 그녀가 토라진 척을 하자 그녀에게 안겨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조금 전에 꺼내려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무서웠거든.
예전부터 그랬더랬다.
오빠 노은하는 틈만 나면 다쳐서 가족들의 폐를 끼치고는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바로 작년에 있었던 일이었던가.
오빠가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때, 오빠의 부상 소식을 듣게 된 가족들은 아주 무거운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녀의 마음도 아팠다.
나는 가족들을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걸.
그녀는 그때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신이 다치면 다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고.
주변 사람들까지 실의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은애는 위험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플레이어에게 막연한 이상을 품지 않았다.
플레이어는 언니 오빠로 충분한걸. 나까지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하면 엄마랑 아빠가 슬퍼할 거야.
애초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노은애는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지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는 한편─.
“─아빠가 그랬어. 업계 사람들이 은애 너한테 주목하고 있다고.”
“…나도 들었어.”
“그리고 그러더라. 만약에 이상한 사람들이 뭐라고 회유해도 절대로 넘어가지 말라고.” “나도 아빠한테 들었어. 고마워.”
작년을 기점으로.
엘릭서가 세상에 공개되고.
엘릭서의 재료 중 하나인 은랑화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게 되면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은랑화를 재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노은애는 시리우스그룹과 계약을 맺었다.
대량으로 재배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재배하는 은랑화의 수만큼 시리우스그룹에서 거금으로 사가는 계약이었다.
그로 인해 은애는 13세란 나이에 돈방석에 앉았고─.
‘─방연지 플레이어 아니? 예전에 십이좌로서 유명한 사람이 있었어. 라고….’
그녀가 동식물의 감정에 공감하는 기프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가 알음알음 업계에 퍼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업계 관계자들이 그녀를 불쑥 찾아와서 영입하려고 했다.
‘저희는 노은애 학생이 플레이어 아카데미에서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불할 의용이 있습니다. 이밖에….’
이전 십이좌 방연지.
은애는 업계 관계자들에게 그녀의 재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노은애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비교되며 괜한 기대를 받고 싶지 않았다.
‘당신들, 어디 클랜에서 나온 거야? 이 새끼들이…. 너희는 상도덕이란 것도 없냐? 안 되겠네. 그냥 당장 클랜 제재에 들어가야지.’
다행히 알 수 없는 클랜에서 나온 플레이어들이 그녀를 찾아오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아버지가 움직인 것이다.
은애는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동시에 노은애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면 은애 너는 그냥 중학교로 가는 거겠네? 어디로 갈지 생각은 해봤어? 잘 사는 애들만 다닌다는 거기로….”
“아니, 거기는 안 갈 거야.” “응? 왜?”
이내 은애는 고개를 저었다.
선미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난 그냥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싶어. 거기에 가게 된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잘 사는 애들만 다니는 중학교니 알려질 수밖에 없겠지. 은애 너를 아는 애들도 많이 있을 테고.”
“그래서 좀 불편해서.”
노은애 본인이 말하긴 그랬으나.
그녀는 초등학교 6년 동안 학교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집안 내력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에게 진심을 말하지 못했지만, 특별취급을 받는 상황이 무척 불편했다.
“그래서 널 모르는 중학교로 가서 지내겠다고?”
“응. 집에서 제일 먼 데로 간다면 다들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를 테고, 다른 애들처럼 똑같이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너희 아빠가 퍽이나 그러시겠다.” “당연히 아빠한테는 학교에는 제발 말하지 말아달라고 해야지!” “진짜 넌 생뚱맞아. 그냥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어렵게 사려고 그러니?”
“헤헤….”
“그래도 뭐, 은애 너답네. 내가 너 응원해줄게.”
“정말? 고마워!”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지만.
노은애는 평범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중학교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그러면 이제 너랑 같이 학교도 못 다니겠네.” “미예 너는 아카데미에 갈 거야?”
“응. 마나관리기구에 취직을 해서 우리 아빠를 먹여 살리고 싶거든. 내가 취직할 때가 되면 아빠도 이제 늙어서 보살펴야 하고…. 뭐, 지금도 내가 보살피고 있지만. 거기에다가 마나관리기구는 국가직이라 철밥통이거든.”
“아…, 그렇구나.”
어려운 얘기를 꺼내는 선미예.
하지만 은애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주말마다 보면 되지! 아카데미는 주말마다 외출할 수가 있잖아.”
“그래도 이제 등교도 같이 못 하는 거잖아. 내가 없어도 괜찮은 거지? 남자애들이 장난을 쳐대면 그냥 확 꺼지라고 말해야 해?”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정말 걱정이다….”
선미예가 한숨을 쉬고.
은애는 자신을 걱정하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 맞다.”
“왜?” “이번에 오빠네 학교에서 문화제를 연다고 하던데.” “문화제? 아카데미?” “응! 우리 같이 오빠 보러 갈래? 아카데미 견학도 하고!”
“나야 좋지. 그러자.”
☆
깊은 밤.
은하는 아카데미를 빠져나와서는 루미너스그룹의 저택을 찾았다.
똑똑
3학년이 되고부터.
은하는 시간이 나면 종종 이렇게 아카데미를 빠져나와 이유정을 찾고는 했다.
오늘도 그러했다.
오랜만에 시간이 난 은하는 그녀의 방에 있는 창문을 두드렸다.
“─응, 들어와.”
문을 두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은하는 창문을 열고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잘 지냈어?” “나는 잘 지냈지. 몸은? 어디 아픈 곳은 없어?”
“응, 나는 건강해.”
잠옷 차림의 그녀가 그를 반겼다.
이유정은 이제는 거리낌도 없는지 은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은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털썩 앉았다.
“문화제를 준비하느라고 당분간은 바쁠 거라고 그러지 않았어?”
“뭐, 그렇기는 한데…. 이대로 더 바빠지기 전에 너 얼굴 좀 보려고. 요새 보지 못했잖아.”
“응? 저저번주에 봤잖아.”
“그럼 다시 갈까?”
“아니야. 사실, 나도 보고 싶었어. 오늘 와줘서 정말 기뻐.”
이유정이 미소를 짓는다.
은하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이후로 두 사람은 어깨를 붙인 채 서로 근황을 주고받았다.
주로 그녀는 저택에서 있었던 일과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은하는 문화제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노동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와, 재미있겠다.”
“이게 재미있어 보여?”
“다들 은하 널 의지하고 있나봐. 그러니까 추억을 만들자고 하면서 널 끌어들이려는 것 아닐까?”
“나를 의지하려는 게 아니라 나를 이용해먹으려는 것 같은데….”
“아니야. 널 의지하니까 그런 거야. 내가…, 이렇게 널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솔직히 말해봐. 사실은 너도 날 이용해먹으려는 거 아니야?”
“아니야. 많이 의지하고 있는걸? 그런 생각 같은 건 안 해. 오히려 네가 날 이용해먹으려고 한다면…, 난 그래도 괜찮아. 상관없어.”
“…내가 널 왜 이용해먹어. 그냥 나한테 의지하기나 해.” “응, 고마워.”
이유정이 은하의 어깨에 기댄다.
은하는 가만히 그 시간을 즐겼다.
“문화제 얘기 더 해줄래?” “더 듣고 싶어?”
“응. 난 밖에 잘 나가지 않으니까. 그래서 은하 네가 말하는 이야기가 정말 좋고, 재미있어.”
“…알았어. 더 해줄게.”
여름방학 때 그녀가 은하의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한 이후로.
정재계에는 결국 이유정과 연관된 소문이 퍼지고 말았다.
그녀가 시각 장애인이란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루미너스그룹에서는 현재 이유정의 외부활동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정재계에서 이제는 슬슬 이유정을 공식 활동에 모습을 비추게 하란 압박을 버티기 힘든 모양이었지만.
“─불꽃놀이?”
“응. 아카데미 문화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어. 마법을 가미한 폭죽이 밤하늘에 터지는 게 장관이야.” “예쁘겠다….”
은하는 문화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다 화제가 문화제 불꽃놀이에 이르게 되고.
이유정이 작게 감탄했다.
하지만 은하는 알 수 있었다.
이유정이 감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왜 그래?”
“아니, 그냥…. 나는 불꽃놀이란 걸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어떻게 생겼을지 연상이 잘 안 돼서….”
“…….”
씁쓸한 미소를 짓는 이유정.
은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내가 실수했네.
한서현이 전에도 주의를 줬건만.
문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은하는 무심코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고등아카데미 1학년이었을 때.
이유정과 불꽃놀이를 본 기억을.
그것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은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이유정을 배려하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미안해. 재미없었지?”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괜찮아. 그러니 은하 네가 미안해하지 말아줬으면 해.”
은하는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머리를 기댔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유정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주고 싶다.
이유정의 무게와 온기를 느끼면서.
은하는 생각에 잠겼다.
☆
황진희.
아카데미의 정식 교관이 된 그녀는 종합부문대회 준비로 다른 교관들과 한창 회의를 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 예선전이 끝났다.
따라서 그들이 해야 하는 회의는 본선 대진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올해는 참가자가 많이 없네요? 뭐, 3학년 학생들이야 클랜들에게 자기 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 많이 참가했다 하지만….”
“쟁쟁한 애들만 남아 있네요. 이번 대회는 꽤나 볼만하겠는데요?” “문제는 대진표를 어떻게 작성하면 좋겠냐는 건데….”
“그냥 무작위로 정해버리죠.” “작년까지는 어떠했을지 몰라도, 올해는 그렇게 안 될 거야.”
“그렇지. 올해 문화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노은하와 노은하 사단에 관심을 두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마지막 날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게 대진표를 짜야 한다는 말이지.”
노은하를 시작으로.
목민호, 최은혁, 진파랑, 배수빈, 호시미야 카에데, 아리엘, 조아라, 강시형, 이천서, 봉구래 등등.
올해 종합부문대회에는 노은하 사단이 대거 참여했다.
당연히도 문화제를 찾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주목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그들이 오랫동안 문화제를 즐길 수 있게 대진표를 짜야 했다.
관객을 얼마나 유치하는가에 따라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으며, 가능한 많은 학생들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와 의 타임어택? 허…, 이건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기획이지?” “듣자하니 가 마나관리기구에 밀어붙였다고 하던데.”
“가 또….”
“사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전에 조치를 해놔야겠네요. 니까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사후약방문보다는 낫지. 그렇게 하도록 하고…. 와 노은하의 타임어택은 문화제 마지막 날에다가 배치하자.”
“그게 좋겠네요. 그래야 사람들이 마지막 날까지 문화제를 찾을 수가 있을 테니까요.”
노은하와 강현철의 대련.
처음 이 소식을 들은 교관들은 모두 까무러쳤다.
하지만 까무러친 것도 잠시.
가 원래 그런 인물이었고.
도 그런 인물이었다.
교관들은 자세한 연유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문화제를 흥행시키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만 했다.
“그러면 이제 대진표인데….”
“노은하와 노은하 사단의 대진표를 어떻게 짤지가 문제네요.”
“다들 뿔뿔이 떨어뜨려서 계속해서 이기게 만들어야지.”
“그럼 노은하 사단이 이기는 것을 전제로 하고 대진표를 짠다 치고…. 사단원들끼리 대진표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
교관들은 노은하 사단원들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으나.
노은하 사단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순수한 실력차이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대진표를 얼추 짜놓은 상태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바로 그때─.
“─잠깐 내가 봐도 되겠나?” “아, 님. 당연하죠.”
“”””…….””””
그동안 팔짱을 끼고 침묵하고 있던 황진희가 입을 연 것이다.
교관들은 깍듯하게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이내 황진희는─.
“─노은하가 우승할 것을 전제로, 순차적으로 대련을 하게 하면 되지. 그 애들끼리 싸우게 하는 게 무슨 재미겠어. 어차피 실력은 그놈 빼고 전부 고만고만한 것을….” “”””…….””””
황진희는 혀를 찼고.
일필휘지로 대진표를 써내려갔다.
그리하여 대진표가 완성되었다.
“첫째 날에는 호시미야 카에데와 배수빈이 싸우게 해서 이긴 사람이 은하와 싸우게 하고….” “둘째 날에는 진파
랑과 강시형이 싸우게 해서 이긴 사람이 은하와, 셋째 날에는 목민호하고 온태양이 싸우게 해서 이긴 사람이 노은하와 맞붙게 하는 건가요?”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최은혁이 그놈하고 싸우게 하는 거지.”
“”””…….””””
다분히 사심이 들어간 듯했으나.
교관들은 감히 황진희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