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01
어머니를 잃고.
여동생마저 등을 돌리며.
온태양은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명분을 잃고 말았다.
그가 플레이어가 되려 한 이유는 플레이어로서 출세해서, 그리하여 가족들을 보살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소꿉친구 조아라도 떠나고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된 그에게 더는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야.
이건 다 노은하 때문이야.
그러다 언제부터였다.
온태양은 과거를 돌아보았다.
과거란, 과거를 되짚어보는 주체가 ‘해석’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그는 새로운 명분이란 걸 만들어냈다.
전부 다 노은하 때문이야.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고.
노은하에게 잘못이 있다.
노은하가 일을 이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여 갈피를 잃었던 마음이 노은하란 존재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는 자신이 플레이어가 되어야 할 이유를 손에 넣었다.
노은하만 없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
노은하에 대한 증오심.
그리고 복수심.
그 마음이 온태양이 검을 휘둘러, 단기간에 성장하게 만들었다.
지금 그는 목민호와 대련을 하며 자신의 성장을 새삼 실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넌 노은하의 적수가 못 돼.” “…크윽…!”
아무리 성장을 했어도.
온태양은 목민호라는 벽 앞에서 봉착하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목민호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반대로 목민호의 검은 묵직했다.
“젠장…!”
굉장히 지능적이다.
검술의 형태는 굉장히 정적이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맹렬히 휘몰아치듯 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물며 목민호가 별 거 아닌 듯이 내놓는 수가 다음 한 수에서 이어져 그를 더욱 압박했다.
목민호란 벽이, 너무 높았다.
“노은하는 나보다 더 강해. 그런데 네가 그 녀석을 쓰러뜨리겠다고?”
“입 닥쳐!”
쳐도, 쳐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너무나 올곧다.
그에 비해 자신은 계속 흔들리고, 목민호가 만들어내는 수에 자꾸만 휘말리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체내 마나를 소모하느라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데에도─.
─이게 다…!!
……기……
끓어오르는 감정에 몸을 맡기고.
분노와 증오를 곱씹으며.
과거에 자신을 매몰시키며.
온태양은 한 걸음 내딛었다.
노은하 때문이야!!
……기…프……
자신이 검을 휘두르는 이유.
플레이어가 되고자 하는 이유.
새로운 명분을 가슴에 새긴 그가 검을 힘껏 내리쳤다.
그리하여─.
─……기…프…트……
무언가가 전신을 집어삼켰다.
알 듯 말 듯한 감각.
온태양은 그 감각에 몸을 맡기면서 다시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언 크래셔
사선으로 휘며.
곡선처럼 굽어진 궤적이 온태양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아….
그는 눈을 감았다.
☆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듯이.
경기는 이변이 일어나는 일 없이 목민호의 승리로 끝이 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그가 경기를 이끌어간 것이다.
“…전보다 강해지긴 했네. 이러다 나도 따라잡힐지 모르겠어.”
마지막에는 칼날을 측면으로 돌려 온태양의 머리를 때렸다.
목민호는 바닥에 쓰러져서 기절한 온태양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노은하 사단원들 중에서 온태양과 가장 많이 싸운 목민호는 온태양의 성장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검을 칼집에 넣으며.
목민호는 대련을 복기했다.
그러고는 들 것에 실려 사라지는 온태양을 보며 중얼거렸다.
“마지막에 그건 뭐였지?”
마지막에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온태양은 지나치게 마나를 사용해 힘이 부친 듯했었다.
그런데 그의 분위기가 돌변해서는 순간적으로 목민호 자신을 압도한 것이다.
“그건 대체….”
위험하다고.
그때 목민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대로 온태양을 내버려뒀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목민호는 위험을 무릅쓰고 검으로 온태양의 머리를 후려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온태양이 기절하면서 순간적으로 오감이 곤두서게 만든 감각은 사라지게 되었다.
비장의 수라도 숨기고 있던 건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위험해 보였는데….
여하튼 그는 경기장을 내려왔다.
그러면서 내일 있을 경기를 위해 정신을 수양하기로 했다.
필시 내일 경기 상대는─.
─나는 널 대적할 수 있을까?
노은하가 될 테니까.
진파랑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
종합부문대회 본선 2일차.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시각.
무대는 아무 조형물도 없는 지형.
2일차 마지막 대련의 막이 올랐고.
은하와 진파랑은 경기장 중심부로 나아갔다.
“─야, 있잖아.” “왜?”
“내가 만약에 널 이기면 어쩌냐.”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니야?”
“아니, 내가 지금 그럴 것만 같은 기분이 들거든.”
“형은 감에만 의지하지 말고 제발 머리 좀 써.”
“뭐래? 나 진파랑이야. 내가 언제 머리 안 쓰는 거 봤어?”
“됐다…, 말을 말자.”
관람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들리지 않으리라.
필시 그들은 은하와 진파랑이 서로 마주보는 상태로 나누는 대화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고 있을지 모른다.
가령 두 사람이 덕담을 주고받으며 스포츠맨십을 다지고 있다거나.
하지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진파랑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꼭 진담처럼 늘어놓았고.
은하는 한숨을 쉬기만 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번 대회 기간 동안 검은 이거 한 자루만 사용할 생각이야. 그러니 형이 내가 두 번째 검이나 아티펙트를 사용하게 할 수 있다면 그때는 형이 이긴 걸로 해도 좋아.”
호시미야 카에데에게도 했던 제안.
은하가 시리게 피는 겨울에 손을 턱 하고 얹으며 말했다.
나름의 핸디캡이었다.
그런데 진파랑이 불쑥─.
“─아티펙트도 써.”
“뭐?”
별안간 그런 말을 꺼낸 것이다.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은하의 생각으로는 솔직히 말해서 진파랑이 거만을 떠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늑대 귀를 까딱이며 콧방귀를 끼었다.
“그냥 검 하나면 재미가 없잖냐. 이겨도 그게 이긴 거냐?”
“…과신하지 마. 나는 지금 충분히 형 힘을 고려해서….”
“아, 몰라! 됐고, 아티펙트도 깔고 들어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하…. 그러고도 내가 아티펙트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면 어쩌려고?” “어쩌기는 뭘 어쩌냐니. 그럴 일은 절대 없으니까 걱정 말라니까?”
“진짜 답도 없다….”
대회가 이제 곧 시작하는데.
은하는 한심함을 감추지 못했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다.
자신이 기껏 배려해주려고 했더니 필요도 없다고 하고 있다.
은하는 더는 그에게 말을 하는 걸 포기했다.
그러다 큰 코 다치라지.
더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없었다.
교관이 텔레파시로 그들에게 그만 지정된 자리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두 사람은 뒤로 돌아섰다.
제각기 경기장 끄트머리로 가서는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
부저음이 울렸다.
관객석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했고.
두 사람은 각자 무기를 꺼냈다.
랑보
먼저 움직인 사람은 진파랑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다짜고짜 달려나간 그가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얼마 전에 벽해수가 진파랑을 위해 새로 제작해주었다는 클로.
붉은색으로 코팅된 클로가 즉각, 그가 체외로 흘린 마나에 반응하며 변모했다.
너비가 손가락 두 개 정도 되는 칼날이 도합 10개가 솟구쳐 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칼날이 마나를 머금고 쑥쑥 자라났다.
랑보
블러드 클로우
진파랑은 더더욱 박차를 가했다.
자신과 은하 사이에 남은 위치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쯤.
그는 몸을 낮추고 달려나가 다시금 랑보를 사용하며 돌진했다.
점점 떨어지던 속도가 증가하고, 그는 은하가 계산한 시간과 다르게 순식간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사이 열 자루의 칼날이 진하게 붉은 빛을 띄었고─.
─빨라!
은하가 제대로 검을 휘두르기 전에 진파랑이 클로를 휘둘렀다.
그가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하게, 힘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게 재빨리 밀어붙인 것이다.
나아가 진파랑은 두 손을 사용하며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었으니─.
“─이래도 검 하나로 버틸 수 있을 것 같냐!?”
“……!!”
기프트
블레이드 암(Blade Arm)
다시금 그의 클로가 변모했다.
손에서 팔꿈치까지.
그의 클로가 푸른 털로 뒤덮이고, 사람의 머리 하나는 가볍게도 뭉갤 크기로 커진 것이다.
커진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만큼 짓누르는 힘도 늘어났다.
“…큭…!”
제5위계 오버랭크 몬스터 블레이드 울프의 섭리를 사용한 마법.
무지막지한 힘에 은하는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겠다고 판단했다.
끝내 그는─.
─우보
그가 발로 지면을 찼다.
그 즉시 그는 마나의 흐름을 타고 진파랑에게서 멀리 떨어진 위치로 이동했다.
“─늑대는 한 번 결정한 사냥감은 절대 놓치지 않아.” “……!!”
진파랑이 사용한 블레이드 울프의 섭리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늑대는 후각과 청각에 민감했다.
그가 블레이드 울프의 능력을 살려 주변을 확인하지도 않고 즉각적으로 은하가 나타날 장소로 뛴 것이다.
자리를 이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은하는 순식간에 배후에서 뛰어든 진파랑의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그래, 인정할게. 아무래도 내가 형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나봐.”
“그걸 이제 알았냐? 내가 그렇게 약할 거라고 생각했냐?”
“굴리라는 머리는 굴리지도 않고, 감각에 의존하는 스타일을 극대화해 여기까지 도달했구나.”
단순한 힘 싸움으로는 진다.
은하는 파랑의 공격을 흘려보내며 내뱉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진파랑의 실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그는 기프트의 힘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는 회귀 전 이라 불리었던 진파랑만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정립한 것이다.
은하는 진파랑의 성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럼에도─.
─이 형은 진짜 머리를 안 쓰네. 완전 야생에서 살다 왔나….
이전 삶에서나 현재 삶에서나.
진파랑의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진파랑은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무조건 힘과 속도로 밀어붙였으며, 자신의 본능적인 감각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파랑의 전투 스타일은 매우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나 효율이 예전보다는 좋아진 건 알겠어. 하지만 작전을 짜는 법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
노은하의 평가.
진파랑이 이죽거렸다.
이내 그가 원래대로 되돌린 손으로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래 보여도 나 지금 머리 쓰고 있는 거야.”
“…그래. 그래도 조금 전 전법은 그럭저럭 인정할게.”
“얘가 날 못 믿네. 그러니까─.”
─랑보
우보
말을 하던 도중.
진파랑이 은하의 방심을 노려서는 중간에 가속했다.
당연히 은하는 속지 않았다.
기프트를 사용하지 않은 팔.
충분히 막을 수 있겠다고 판단한 그가 우보를 사용했다.
“─올곧게 공격하려고 하지 말고, 뒤를 공격당할 것도 생각하라고.”
진파랑의 배후에서 나타난 은하.
그가 어깨 뒤로 꺾은 검을 힘껏 진파랑을 향해 내리쳤다.
진파랑과 눈이 마주쳤다.
진파랑은, 송곳니를 내보이며 히죽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머리 쓰고 있다니까. 내가 이런 경우도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냐?”
기프트
블레이드 아머(Blade Aumor)
순식간이었다.
진파랑의 등 뒤가 털로 뒤덮였다.
하늘로 바짝 솟구쳐 오른 체모가 칼날조차 부러뜨려버리는 블레이드 울프의 특성을 반영했다.
은하의 검이 먹히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처음부터 널 정공법으로 쓰러뜨릴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진파랑이 투구 자세를 취했다.
조금 전, 그가 머리에 손을 얹었던 팔이었다.
그가 손을 활짝 펼치자─.
─머리카락?
은하는 눈앞에서 휘날리는, 푸른 머리칼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퍼뜩 깨달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기프트
블레이드 니들(Blade Needle)
블레이드 울프의 마법 중 하나.
칼처럼 날카롭게 선 털을 적에게 쏘아내는 마법이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다지만.
진파랑은 자신의 머리털을 뽑아서 블레이드 울프의 마법을 응용해낸 것이다.
…이건 못 막아!
은하는 속으로 기겁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피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막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검이 산처럼 삐죽삐죽 솟은 털모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보호마법을 펼쳐야 하는데 급하게 펼친 보호마법으로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은하는─.
─오만의 반격
아티펙트의 힘을 사용했다.
목걸이가 번쩍 빛을 뿜었다.
눈앞으로 날아든 가시들이 이제는 방향을 바꿔 파랑에게 날아들었다.
당연하게도 파랑은 블레이드
아머로 카운터 마법을 방어해냈다.
이후 은하로부터 거리를 벌린 그가 은하를 돌아보았다.
“─그러게 내가 뭐랬냐. 내가 넌 아티펙트를 사용하게 될 거라 했지? 나 아니었으면 넌 핸디캡을 어기고 나한테 진 거야. 알았냐?”
“…그래, 인정할게. 훌륭해.”
만면의 미소를 띠는 진파랑.
은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오만하게 살지 좀 마라. 형이 너보다 1년을 더 살아서 알고 하는 말이야.”
말투가 짜증나기는 했지만.
은하는 말없이 검을 쥐었다.
☆
은하는 인정해야 했다.
진파랑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기프트의 힘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전투에 변화를 준 것은 물론이며.
때때로 그는 교묘한 수를 써서는 은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당하는 사람들에게 따라서는 필시 비겁하다는 말을 들었겠지만─.
“─싸움에 비겁한 게 어디 있어!?”
“동감이야. 지금 것도 좋았어.”
은하는 진파랑을 칭찬했다.
진파랑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그리하여 은하와 진파랑의 전투는 반복되는 패턴이 없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열광을 사고 있었다.
광무
블러드 클로우
금속음.
검과 검이 맞붙는다.
그 순간, 진파랑이 공격을 막으려 돌려차기를 날렸다.
은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고.
몸을 낮춰 접근한 진파랑이 연이어 마법을 가했다.
기프트
블레이드 니들
조금 전과 같은 수법.
은하는 검을 맞댄 상태에서 전개된 마법에 피식 웃었다.
파랑은 필시 오만의 반격이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같은 수법을 사용했으리라.
허나 은하가 똑같은 수법에 다시 당할 리가 없었다.
그 역시 마법을 전개했다.
원령
고등제어기술에 속하는 마법.
은하의 몸에서 흐물흐물 기어나온 영체가 진파랑의 마법에 간섭했다.
마법을 교란시키는 거야 간단했다.
고등제어기술의 대처방안을 자세히 알지 못했던 진파랑은 실패로 끝난 마법에 혀를 차야 했다.
그가 공중제비를 돌며 은하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그런데─.
“─지금 뭐하는 거야?” “뭐가? 더워서 옷 벗는 건데?”
“세상에 누가 그런 식으로 옷을 벗는다고….”
파랑이 자신의 교복 블레이저를 확 잡아뜯어버린 것이다.
은하는 대련 도중에 진파랑의 난데없는 행동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진파랑은 대충 답하더니, 냅다 은하에게 달려들었다.
기프트
블레이드 암
은하는 공격을 피했다.
늑대의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지면이 부서졌다.
진파랑은 아랑곳 않고 은하를 향해 계속 뛰어갔다.
진짜 체력 하나는 무식하네….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진파랑은 지칠 줄을 몰랐다.
전투를 시작하고 한참이 지났건만 그의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은하는 이제는 슬슬 지쳐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공격을 막는 것보다 피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로 인해─.
─어?
은하는 어느새 진파랑이 조금 전 블레이저 재킷을 벗은 자리에 발을 두고 있었다.
기운이 느껴졌다.
퍼퍼퍼펑!!
지뢰식 트랩.
진파랑이 마법에 내성을 지니도록 가공처리가 된 블레이저로 감춰두고 있던 것이다.
지뢰형식으로 작동한 트랩에 의해 은하는 폭발에 휘말리고 말았다.
“진짜…, 잔머리 하나는 최고야.”
눈발을 기는 겨울을 사용했더라면 폭발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검을 한 자루만 사용하기로 약속한 그는 폭발을 그대로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교복이 크게 해졌다.
폭발 속에서 걸어나온 은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못 하겠느냐는 전투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또─.
“─셔츠는 또 왜 벗는 건데?”
“더워서 벗는다니까!”
진파랑이 갑자기 타임을 선언했다.
그가 넥타이를 풀고.
조끼를 벗어던지며.
종국에는 와이셔츠를 찢어버렸다.
“”””──!!””””
관람석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경기장까지 들렸다.
좋다는 의미의 환호성인지.
더럽다는 의미의 야유인지.
은하는 비명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파랑이 때가 탄 와이셔츠를 어깨에 걸쳤다.
랑보
그가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무슨 수를 펼치는가.
은하는 진파랑의 걸음에 주의하며 자세를 취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확인했어.
정말 대단해, 잘 성장했어.
은하는 슬슬 끝내기로 했다.
필시 진파랑 또한 마지막 수로서 준비한 무기일 것이다.
크르르릉
진파랑이 낮게 울었다.
어느새 그의 상체는 늑대의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팔이 거대해지고.
10개의 칼날이 예리하게 빛났다.
이내 그는─.
─그냥 눈속임인 건가?
진파랑이 은하에게 다가오기 직전 난데없이 와이셔츠를 집어던졌다.
은하는 진파랑의 마지막 한 수에 내심 실망했다.
그런데─.
─기프트
블레이드 코트(Blade Coat)
공중에서 나풀거리던 와이셔츠가.
진파랑의 마나에 반응해서는 순간 금속으로 변화했다.
블레이드 울프의 특성이 반영된, 다시 말해, 검조차 막아내는 재질의 와이셔츠인 것이다.
자기 몸뿐만 아니라 설마 교복도 변화시킬 수 있었다니…!
은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야 이전 삶에서 진파랑은 자신의 기프트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했다.
이전 삶에서 진파랑은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머리를 쓰지 않으려 했고.
감각에 의존하려고만 했다.
그 차이가 여기에서 나타났다.
기프트
블레이드 암
은하는 처음 와이셔츠의 존재에는 신경을 쓰려 하지 않았으나.
와이셔츠가 금속이 되어서는 불쑥 자신을 덮쳐오게 되면서.
그는 대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식으로 대처하든 진파랑은 금속 코트가 된 와이셔츠 뒤에 숨어 대응책을 세웠으리라.
그렇다면─.
─버스트 카운터
진파랑이 세워둔 대응책을 모조리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겠다.
은하는 금속 코트가 아닌 지면에 검을 내리쳤다.
그동안 연이은 전투로 인해 주변에 잔재 마나가 충만하게 차 있었다.
그것들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터졌다.
콰콰콰콰쾅!!
대련장이 폭발했다.
우보
그리고 은하는 우보를 사용해서는 아슬아슬하게 폭발을 피해냈다.
하마터면 그 역시 폭발에 휘말려 데미지를 입을 수 있었다.
한편 진파랑은─.
“─젠장….”
그는 폭발 속에서도 무사했다.
은하가 마법의 강도를 약하게 한 이유도 있었고.
애초 그는 물리방어력에는 뛰어난 블레이드 울프의 섭리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몸에 돋아난 털을 바짝 세우며 폭발의 충격을 막아낸 그가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체내 마나가 떨어진 것이다.
“마나가 조금 더 있었다면 그대로 뚫고 나올 수 있었는데….”
“그러게 누가 그렇게 막막 쓰래? 잔머리를 굴릴 줄 아는 것은 좋은데 마나 배분은 잘 했어야지.”
“야, 너를 상대로 어떻게 그런 걸 신경 쓸 수 있냐? 당연히 처음부터 화력으로 밀어붙여야지.”
은하는 진파랑에게 다가갔다.
진파랑이 상체를 일으켰다.
그가 툴툴거렸고.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어땠냐, 나.”
“그걸 꼭 말해야 해?”
“아, 말해줘! 얼른 말해달라고!” “잘했어. 이젠 어엿한 한 사람으로 부려먹을 수 있겠네.”
“그러냐?”
어엿한 한 사람이라는 말에.
진파랑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은하가 손을 내밀었다.
진파랑이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
뭐라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관람석에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왔다.
두 사람은 그 광경을 가만히 보며 숨을 가다듬었다.
“야, 은하야.”
“왜?”
“나 교복 좀 빌려주면 안 되냐.”
“뭐?” “너 때문에 내 교복은 타버렸고, 이런 꼴로 밖에 나갈 수는 없잖냐. 네가 위에 걸치고 있는 것 좀 줘.”
“하여간….”
은하는 교복 블레이저를 벗었고.
진파랑은 누더기가 된 블레이저를 걸쳤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