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10
종합부문대회가 끝이 났다.
대회 우승자는 별다른 이변 없이, 만인이 예상했던 대로 노은하가 되었다.
“─축하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 이 나라에 보탬이 되는 플레이어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감사합니다.”
종합부문대회 시상식.
은하는 아카데미의 학장이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거의 6년.
웬만해서는 만날 리 없는 총장을 처음으로 대면한 은하는 어색하게 그를 대했다.
반면에 총장은 시종일관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 기자들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게 되더라도,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주저하지 말고 말하려무나.”
그러다 총장이 은하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은하는 총장의 의도를 간파했다.
앞으로도 자신과 인연을 이어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은하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딱히 손해가 될 리가 없을 것이란 판단을 내린 은하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트로피 수상이 있겠습니다.]그리고 잠시 후.
은하는 총장으로부터 종합부문대회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원칙적으로 이제 은하에게는 다음 문화제가 개최되기 전까지 트로피를 보유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물론, 우승자들 대다수는 트로피를 한 번 수상한 다음 관리를 위탁하며 종합부문대회 관리위원회에게 도로 넘기고는 했다.
은하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그 전에 트로피에 부여돼 있다는 마법을 한 번 사용해봐야겠지만.
오늘밤이 기대된다.
은하는 황금색의 트로피를 쥐고는 다음 수상을 기다렸다.
종합부문대회에서 수상하게 되는 학생들은 상장과 함께 아티펙트를 받기도 했다.
“…위 학생은 인류와 국가를 위해 능력을 갈고닦아, 제31회 종합부문대회에서 우승하였기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아카데미 총장이 상장을 건넸다.
은하는 얼른 상장을 받고, 이어서 손바닥 길이의 상자에 담긴 아티펙트를 받았다.
회귀 전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어코 민호를 꺾은 온태양이 받은 아티펙트였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아티펙트는 칼자루 끝에 매다는 홍조수아(紅條穗兒)였다.
아티펙트의 이름은 정화의 매듭.
붉은 색으로 이루어진 끈 장식은 검을 휘두를 때 놓치지 않기 위해서 손목에 묶는 용도였다.
이밖에도─.
─하루에 한 번밖에 쓸 수 없지만 제5위계 이하 몬스터가 만들어내는 독을 치유할 수 있었지.
나야, 아티펙트를 사용하지 않아도 바일런트 베놈 덕분에 웬만한 독에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사용할 수가 있으니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지.
정화의 매듭은 아카데미를 졸업해 세상으로 나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유용한 아티펙트였다.
물론, 새내기 플레이어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 은하에게는 그렇게 필요한 아티펙트는 아니었다.
은하는 적당히 사용하다 더 좋은 아티펙트를 얻게 되면 친구들에게 넘기기로 했다.
☆
문화제 4일차 저녁.
문화제의 마지막 밤이자, 사실상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 문화제는 오전에 끝이 나고, 그조차도 오전부터 부스를 정리하는 반들이 태반이니까.
그나마 내일 있는 이벤트는 내가 미친 오징어 자식이랑 싸우는 거고.
그렇다고 하지만 내일도 필시 많은 사람들이 문화제를 보러 오리라.
은하는 내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십이좌 강현철과 싸울 것을 생각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 앞에서 싸우는 것이 그렇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으나, 강현철과 검을 섞어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단 잊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그는 영 싫증이 나는 생각을 그만 훌훌 털어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또 순수하게 즐기기로 했다.
펑! 펑!! 펑─!!
아카데미 문화제의 꽃이라면 당연 불꽃놀이였다.
캐스터와 서포터 부문을 지원하는 학생들이 머리를 싸매고 기획하고, 문장을 만드는 크레스터(Crester)나 마에스트로 등이 힘을 모아 만드는 불꽃놀이.
마법과 아티펙트가 가미된 현상은 그해 학생들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퍼퍼펑!!
지금 그 결정체가 터지고 있었다.
서울의 밤은 너무 눈부신 나머지 밤하늘의 별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학생들이 쏘아올린 불꽃은 그보다도 훨씬 눈이 부셔서 서울의 밤하늘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하늘에서 형형색색의 꽃이 연달아 개화했다.
“와, 예쁘다….”
백화만발(百花滿發).
그리고 백화요란(百花燎亂).
순간 피었다가 순식간에 지어버린 꽃들이 산산이 흩어졌다.
그것이 꼭 흐드러지게 핀 꽃잎이 바람결에 나부끼는 것 같았다.
매년 그러하였지만 올해는 특히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사전에 신서영의 허락을 받은 뒤, 남몰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간이 탑을 설치한 은하와 친구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정하양을 비롯한 여학생들은 모두 넋을 놓고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카데미 학생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불꽃놀이네.
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하는 난간에 몸을 기대면서까지 밤하늘에 피어오르는 불꽃에 심취한 친구들을 보며 웃었다.
그러고 정하양의 손을 꼭 쥐었다.
“예쁘다. 그치?”
“그러게. 정말 예쁘다.”
“올해에는 다 같이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이상하게 지금까지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서 다 같이 보지 못했잖아.”
“그러게…. 마지막에라도 다 같이 볼 수 있어서 다행이네. 네 말대로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
환해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저 홀로 반짝이는 듯한 정하양.
그녀가 은하를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은 서로 몸을 밀착시켰다.
서로 주고받는 시선이 뜨거웠다.
“─어휴…. 추억을 만들자 했더니 지들끼리 저러고 있는 것 봐. 그냥 너희끼리 보지, 왜 괜히 우리들을 끌어들이고 그러는 거야?”
“이상하게 지금까지 다들 일정이 맞지 않기는 했었지. 그런데 대부분 너희 때문에, 아니다, 은하 때문에 그렇게 됐던 것 같은데….”
그때 난간에서 몸을 돌린 김민지가 닭살이 돋는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차은우도 한 몫 보탰다.
한창 동영상 촬영을 하던 그녀가 스마트폰을 두 사람에게 들이대며 그들을 찍어내려고 했다.
“내가 노은하를 믿는 게 아니었지. 폭죽 소리를 더 크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사람들 시선은 다른 데 가게 하고, 지들은 방음마법을 전개해서 아주 볼장을 보겠다? 내 이놈들을 그냥 죽창으로 찔러버릴 수도 없고….”
“그러게. 오늘은 좀 눈꼴 시렵네? 시형아, 어서 가서 쟤네들 떨어뜨려놓고 와.” “서나야, 왜 하필 날 시키는 거야? 저기 은혁이도 있는데….”
“아, 나 건드리지 마. 나 지금 뭔가 거대한 깨달음을 얻을 것만 같아. 그러니까 나 건드리지 마.”
친구들의 시선이 모두 두 사람에게 쏠렸다.
배수빈이 아니꼽다는 듯한 태도로 팔짱을 끼었다.
진서나가 그녀의 말을 받아주고는 굳이 멀리 있던 강시형을 지목했다.
가만히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있던 강시형은 억울한 얼굴을 하고서는 은근슬쩍 최은혁에게 떠넘겼다.
그러자 최은혁이 괜한 핑계를 대며 나 몰라라 했다.
“그냥 손 한 번 잡은 걸 가지고서 뭐라고 하네.”
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그가 투덜거렸다.
정하양은 옆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그래도 끝까지 은하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바로 그때─.
“─자, 얘들아! 그만 좀 싸움하고 얼른 술이나 마시자고! 내가 이제 트로피 맥주가 뭔지 똑똑…컥…!!” “나! 나! 나! 내가 맥주 타볼래!! 내가 술 맛있게 탈 자신 있어! 어서 아리엘한테 우승의 영광을 넘겨랏!” “아리엘. 방정 떨지 말고 제발 좀 가만히…. 갑자기 이걸 왜 나한테 넘기는 거야?”
“자기, 왜 그런지 내가 알 것 같아. 자기 보고 들고 있으란 것 같은데? 술은 자기가 따를 테니까.”
우당탕탕 난장판이 벌어졌다.
별안간 진파랑이 한쪽에 놓아놨던 종합부문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고는 친구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에 아리엘의 눈이 일순 반짝이며 진파랑에게 몸통박치기를 가했다.
이내 잽싸게 우승 트로피를 빼앗은 그녀가 바닥에 놓아둔 맥주병들을 한 움큼 들어올렸다.
그러다 두 팔에 안기가 힘들었는지 대뜸 트로피를 호시미야 카에데에게 떠넘겼다.
얼떨결에 트로피를 받은 카에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어보았고, 아리엘은 말없이 맥주병을 깠으며, 옆에 있던 봉구래가 대신 답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트로피에다가 정말 술을 따라도 되는 건지….”
목민호는 머리가 아프다는 것처럼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하지만 그의 탄식은 어느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엘이 낑낑 양 손에 쥔 맥주와 소주를 트로피에 콸콸 쏟아부었다.
“이거, 소맥 비율 맞춘 거 맞지? 소주를 너무 많이 넣는 거 아니야? 어째 느낌이 우승 트로피주가 아닌 벌주 같은데….”
조아라가 카에데의 곁에 다가갔다.
그녀가 점점 트로피 안을 채우는 술을 보고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냄새를 킁킁 맡아보기까지 했다.
“뭐, 어때! 어차피 즐거운 기분으로 마시면 그게 그거지. 내가 보기에는 색깔이 아주 좋은데?”
“그건 트로피가 금으로 돼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유도준은 개의치 않아했다.
그는 오래간만에 술을 마신다면서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내 대화에 끼어들 타이밍을 보던 이천서가 난색을 표했다.
여하튼 그리하여 우승 트로피주가 완성되었다.
“노은하.”
“나한테 줄 필요 없이 그냥 네가 해도 됐는데….” “이 트로피의 주인은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할 수 있겠어.”
술이 넘실거린다.
카에데는 트로피 밖으로 흘러내린 술이 묻은 손가락을 핥았다.
그녀에게서 트로피를 받은 은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끄덕였다.
휘이익
은하는 체내 마나를 발현했다.
우승 트로피에 마나를 부여하자, 트로피에 내재된 마법이 발동했다.
트로피 겉면은 그대로건만.
트로피 내부가 빠르게 냉각되면서 안에 채워진 술에 얼음이 둥둥 뜨게 만들었다.
“”””와….””””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의 비밀을 본 친구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술을 보고는 벌써부터 침을 꼴깍 삼켰다.
“다들 잔 들었지?”
“”””당연하지!!!!””””
“은하 앞으로 와서 한 명씩 받아! 다 같이 건배할 거니까 먼저 마시면 안 된다?”
은하가 트로피를 높이 들었다.
어느새 친구들은 종이컵을 들고서 그가 술을 따라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하양은 친구들이 줄을 서게 하며 다툼이 일어나는 일 없이 은하에게 술을 받게 했다.
“애들한테 한가득 따라줬는데에도 이렇게 많이 남아 있을 줄이야….”
정하양을 마지막으로.
은하는 친구들의 잔에 술을 전부 따랐다.
그럼에도 트로피 안에는 아직 술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이 트로피를 만들었다는 남궁성운은 꽤나 애주가인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당연히 대회 우승자는 원샷해야 하는 거겠지?”
“”””옳소, 옳소!!!!””””
돌연 김민지가 여론을 조작했다.
친구들이 그녀의 주장에 동조했다.
적당히 한 모금을 마시려고 했었던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내가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여기에 있는 거 다 마셔줄게.”
은하가 호쾌하게 선언하고.
친구들이 웬일이냐는 듯이 은하를 놀려댔다.
“그러면 은하 네가 건배사를 해줘. 네가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으니 당연히 네가 해야지.”
불꽃은 아직도 펑펑 터졌다.
정하양은 친구들을 대표해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이에 은하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따라와줘서 고마워. 너희들 덕분에 아카데미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가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난 아카데미를 졸업해도 너희랑 계속 추억을 만들고 싶어.”
본인도 오글거리는 말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은하는 이 자리를 빌어서 솔직한 마음을 내보이자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의지를 이 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전하는 것이 적절하리라 판단했다.
“”””…….””””
은하는 친구들의 두 눈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시선은 마치 무언가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반짝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은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예 새로운 클랜을 만들 거야.”
은하의 선언.
친구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들이 웃음을 참는 모습을 보고 은하도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만들 클랜에, 너희들이 모두 들어와줬으면 좋겠어.”
그동안 은하가 유력 클랜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아왔듯이.
친구들 또한 여러 제안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정중히 거절하고, 또 때로는 그들의 제안을 보류하며 은하가 확고한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은하가 고백했다.
지금까지 그가 그 말을 꺼내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은 동시에 입을 모았다.
콰콰쾅─!!
폭죽 소리가 너무나도 컸지만.
은하는 그들의 대답을 아주 선명히 들을 수 있었다.
☆
“─정말?”
“그렇다니까? 올라오는 글을 보니 은하가 대련에서 만난 사람들한테 한 수 가르쳐주면서,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했다는데?”
“정말 잘 됐다.”
이유정은 이유천으로부터 은하가 결국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러면서 이유천이 방을 나간 뒤에 쓸쓸함이 몰려왔더랬다.
그녀는 창문에 등을 기대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저도, 문화제 가고 싶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은하의 활약을 직접 보고 싶었더랬다.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
엘릭서로도 눈을 고칠 수가 없었던 그녀는 끝내 단념해야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그녀는 그러한 삶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은하를 만나게 된 이후로, 이따금 그녀는 망상을 하고는 했다.
앞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노은하를 만나기 전에.
그녀에게 실의란 낯선 감정이었다.
하지만 노은하를 만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삶에 불만족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좋지 못한 감정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이 감정을 털어내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쉬운 일이었다.
은하를 만나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계속 만나고 싶어요. 만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데도, 저도 모르게 끌리는걸요.
이유정은 털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우울감은 깊어졌다.
자신이 앞을 보지 못해 문화제에 가지 못하는 현실이 절망스러웠다.
…괜찮아요.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녀는 침대에 눕기로 했다.
물론 그녀도 잠을 잔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녀는 차라리 현실이 아닌 꿈으로 도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로 그때─.
[─아임 파인!]스마트폰이 소리를 냈다.
전화가 걸려왔다.
침대로 향하려던 그녀는 몸을 틀어 책상 위에 있던 스마트폰을 찾았다.
이유정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 세요?”
누가 전화를 한 것일까.
그녀는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무언가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은하니?”
그러다 이유정은 소음 속에서 들린 숨소리를 포착했다.
아무리 그녀라도 숨소리로 상대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왠지 은하일 것 같았다.
아니, 은하이기를 바랐다.
[응, 나야. 나 대회 우승했어.]“아, 은하 맞구나…. 응, 나도 아까 오빠한테 들었어. 우승 축하해.”
“음…, 책을 읽을까 생각 중이었어. 너는 뭐하고 있어?”
상대가 노은하라는 것을 깨닫고.
이유정의 표정은 대번에 밝아졌다.
그녀는 밝은 목소리를 띠며 은하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거짓말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은하한테 자신이 기분이 우울해서 얼른 자려 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은하에게는, 절대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매력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길 바라고 있었다.
이를 테면, 자신과 전화를 한다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느껴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그가 자신한테 계속 전화를 걸어줄 테니까.
[─지금 애들이랑 다 같이 불꽃을 보고 있어. 내가 전에 얘기했었지? 문화제 불꽃놀이가 끝내준다고.]“아, 그렇구나…. 예쁘겠다….”
하지만 이유정은 은하와 대화하다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괜히 전화를 받았다고.
그녀는 애써 은하의 말에 호응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우승 트로피로 술을….]“…재미있겠다. 그럼 은하야, 애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랄게.”
[아, 잠깐만! 잠깐 끊지 말아줘.]“…….”
도저히 전화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유정은 우울감을 이기지 못하고 은하의 전화를 끊어버리려고 했다.
그때, 은하가 스마트폰 너머에서 다급하게 그녀를 붙잡은 것이다.
[지금 소리 들려?]“…소리?”
이유정은 되물었다.
그리고 스마트폰 소리에 집중했다.
은하의 목소리에 섞여서 무언가가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저번에 네가 얘기했었잖아. 한 번 불꽃놀이를 보고 싶다고.]“…응.”
[그래서 한참 고민했지. 어떻게 하면 너한테 불꽃놀이를 보여줄 수가 있을까 하고.]“…….”
[그러다 너한테 이 광경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대신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해서.]“아….”
[수빈이란 애한테 부탁해서 이번에 폭죽 소리를 좀 크게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어때? 잘 들려?]그 말을 듣고.
이유정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려고 했다.
─응…, 들리고 있어.
그런데 은하는 그녀의 무언을 잘못 이해한 듯싶었다.
[수빈아, 주변에 소리가 증폭되는 마법 좀 전개해줄래?] [대체 얼마나 크게 해달란 거야? 너 귀 먹었어? 아니면 혹시 숨겨둔 애인이랑 이상한 짓 하려고 이러는 거야?] [유정아. 소리를 더 크게 했는데, 이제는 잘 들려?]펑, 펑, 펑.
간헐적으로 터지는 소리.
은하가 배수빈이라는 사람과 연신 입씨름을 벌이는 것을 듣고 있었던 이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무 잘 들려. 너무 좋다.”
애써 울음을 그치며.
이유정은 솔직한 감상을 토했다.
그러고는 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어쩐지,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만 같았다.
펑!
사실, 그녀에게는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소리를 곱씹으며 그녀가 아는 범위에서 불꽃놀이를 상상하고자 했다.
“고마워, 은하야. 내가 불꽃놀이를 보고 싶어 했던 걸 기억해줘서.” [네가 한 말인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따스한 한마디.
이유정은 은하의 말을 되새기면서 가슴 위로 손을 꼭 쥐었다.
따스한 감정이 몸을 데운다.
그것이 천천히 퍼져 나간다.
이유정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했다.
─고마워, 정말.
리라이프 플레이어 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