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18
플레이어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노은하 사단원들에게 영입하려던 플레이어들이 모두 비슷한 답변으로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데로 입단하기로 했거든요.”
“”””뭐? 어디로?””””
그들이 그런 식으로 답하면.
플레이어들은 그런 식으로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대부분 난처해하며 그들에게 이야기했더랬다.
“”””그게…. 은하가 이번에 클랜을 만들기로 했거든요.””””
“”””…….””””
노은하 사단원들의 답변을 듣고.
그리고 S급 클랜의 스카우터들이 은하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서.
플레이어들은 패닉에 빠졌다.
“말도 안 돼. 클랜을 만들겠다고? 파티도 아니고 클랜을?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지금 플레이어 경험도 없는 애가 클랜을 만들겠다는 거잖아. 얘 진짜 주변에서 오냐오냐해주니까 미친 거 아니야!?”
“경력도 없는, 아니, 아직 플레이어 자격증도 받지 않은 학생이 클랜을 만들겠다니!”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
아니, 예측은 하였으나 현실적으로 굉장히 가능성이 낮았을 상황을.
플레이어들은 도저히 믿지 못했다.
클랜을 창설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파티를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클랜은 집단이자 세력이었다.
그만큼 거점으로 활동하는 지역의 기득권을 누리는 것에 민감했고.
그렇기에 클랜들은 서로 견제하며 물밑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노은하는─.
“─밥그릇 싸움에 끼어들겠다는 거 아니야? 미친놈…. 돌았구만.”
“클랜을 만드는 것은 그렇다고 쳐. 근데 지가 클랜을 만든다고 해서, 다른 클랜의 클랜로드들을 상대할 짬밥이 되나?”
“전투능력은 그렇다고 쳐. 하지만 절대적인 경험은 어떻게 할 건데? 그게 뭐 하루아침에 얻어지나?”
노은하는 클랜들에게 자신도 또한 그들의 기득권 싸움에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었다.
업계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클랜로드들은 거의 콧방귀를 끼며 은하의 무모한 자신감을 비웃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그래, 클랜을 만드는 것은 좋아. 지가 선배들한테 대차게 깨져봐야 자기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고 깨닫게 되겠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가 데리고 가는 애들은 뭔데?”
“지금 자기가 유망주들을 전부 다 데려가겠다는 거 아니야!”
업계 사람들이 모두 눈독을 들였던 노은하 사단원들.
그동안 그들을 얻기 위해 저희끼리 공정한 경쟁을 벌이자고 협상했던 사람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하나의 클랜이 영입할 수가 있는 노은하 사단원의 수를 최대 5명까지 제한했더니.
노은하가 모두 데려가버렸다.
“유망주들을 다 데려가면 우리는 뭐 어쩌라는 거야!”
클랜 간 전력의 균등한 분배.
담합이라는 작태를 보였던 그들도 유망주들이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고 저희끼리 클랜을 만들겠다고 하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일단, 어느 클랜에도 유망주들이 입단하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하나 그들이 계속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나관리기구!! 이건 말해야 해! 클랜 하나가 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질 수도 있는 판국인데, 당연히 못 만들게 막아야지!”
“선녀정부에 로비를 해서 어떻게든 막는 수밖에 없어.”
“우리 단체로 항의하자!”
입이 댓 발 튀어나온 플레이어들은 합심해서는 마나관리기구에 청탁을 넣으려고 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S급 클랜의 클랜로드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점은 블레이즈클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블레이즈 클랜로드 강현철을 더해 클랜원 일동은 노은하 플레이어의 클랜 창설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앞으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국가를 수호하고, 또한 헌신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십이좌 강현철은 최근에 선녀에게 근신처분과 추가로 징벌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강현철이 웬일인지 스스로 근신을 깨고 나와서 블레이즈클랜의 이름으로 성명문을 발표한 것이다.
마나관리기구에 달려가려던 이들은 블레이즈클랜의 노은하의 클랜 발족지지 서명을 듣고는 주춤했다.
“지금 블레이즈클랜이 우리들한테 경고한 거 맞지? 괜히 소란 피우면 자기네들이 가만 안 둘 거라고….”
“노은하의 클랜과 블레이즈클랜이 동맹을 맺은 건가?” “는 적으로 돌려서는 안 돼. 그놈은 자기가 망하는 일이 있어도, 한 번 눈이 돌아가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놈이니까.” “어디 뿐인가. 블레이즈클랜, 그놈들 모두 건드려도 좋을 게 없는 녀석들이잖아.”
“그놈들은 완전히 어디 너 죽고, 나 죽자고 싸우는 거지….”
자칫 잘못했다가는 블레이즈클랜을 적으로 돌려버리는 수가 있다.
업계 사람들은 결국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레귤러스클랜도 성명문을 발표했다.
[레귤러스클랜은 노은하 플레이어 그리고 정하양 플레이어의 클랜이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에 헌신하며, 나아가 인류의 평화를 이끌어내는 클랜이 되기를 기원합니다.]성명문 하단에는 레귤러스 클랜로드 구연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때쯤, 사람들은 눈치를 보면서 노은하에 대한 비난을 중지했다.
이후 루미너스그룹의 후원을 받는 신라클랜과 영원그룹의 후원을 받는 명왕클랜의 지지 성명도 있었다.
끝내, 노은하는 S급 클랜 네 곳의 지지 성명을 받게 되었다.
☆
레귤러스 클랜로드 구연수.
은하의 클랜 발족 지지 성명을 낸 구연수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안타깝기는 하네….”
며칠 전, 은하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 어느 정도 직감한 구연수는 자신의 예상대로 은하에게서 클랜을 만들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앨리스그룹의 후원에 얽매여 있는 구연수는 아쉽지만 은하에게 축하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현철이 이놈은 웬일이지? 지가 먼저 발족을 지지해주고….”
이내 그는 의아함을 표했다.
아카데미 문화제에서 사고를 치고, 선녀의 극심한 분노를 받아 근신과 징벌을 받게 된 강현철.
그가 돌연 선녀의 명령을 위반하고 노은하의 클랜 발족을 지지한다는 대외활동을 한 것이다.
그 일로 강현철은 다시금 선녀에게 욕을 먹고 말았다.
“YH그룹 입장에서는 난감하겠어. S급 클랜을 후원하는 것은 좋은데, 그놈들이 말을 들어먹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구연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강현철의 무계획, 충동적인 활동에 화를 낸 것은 선녀만이 아니었다.
YH그룹에서도 불편해하는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과거, 시리우스그룹과 동맹을 맺은 시기는 몰랐을지라도 지금은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사이였으니 그야 그럴 만도 했다.
노은하의 클랜은 시리우스그룹의 후원을 받기로 했으니까.
“그쪽 일은 그쪽이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블레이즈클랜의 행정관들은 또 죽어나가겠구만.”
혀를 끌끌 차는 구연수.
그러다 그는 블레이즈클랜을 지금 이 자리에 올려놓은 행정관을 떠올렸다.
“이참에 확 스카우트 해봐?”
마음에 드는 인재였다.
레귤러스클랜에 데려와서 죽도록 굴려주고 싶다.
뇌가 검인 강현철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인재였다.
그가 그런 생각에 잠겼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편한 자세로 앉아 있던 구연수는 자세를 정리했다.
“응, 들어와.”
“안녕하세요, 클랜로드.”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노은아였다.
라고 불리며 어느 사이에 레귤러스클랜의 마스코트로 알려진 네임드 플레이어.
그녀가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은아 네가 웬일이니?”
그녀가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
구연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노은아가 에헤헤 웃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번에 계약이 만료되잖아요…. 계약상, 제가 말하지 않으면 계약은 자동으로 1년 더 연장되고요.”
“…그렇지.”
“그래서 계약기간이 연장되기 전에 클랜로드한테 올해를 끝으로 클랜을 탈퇴하겠다는 말을 전하러 왔어요.”
“…….”
쭈뼛거리는 노은아.
구연수는 입을 다물었다.
4년 전.
이맘때였으리라.
노은아는 그에게 레귤러스클랜에 입단하는 조건으로 만약 노은하가 클랜을 창설하게 될 경우에 자신은 클랜을 탈퇴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4년 전의 기억을 떠올린 구연수는 결국 이때가 왔다는 생각에 착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탈퇴를 하면 은하가 만들 클랜에 들어갈 생각인 거지?”
“네, 그러려고요. 아직 은하는 모르고 있지만요.”
“그래, 알았다. 그동안 수고했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행정관을 동석하고 다시 하자.”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만 가봐.”
노은하가 클랜을 만들겠다는 것을 알려왔을 때부터.
구연수는 어느 정도 각오했었다.
그래서 최대한 침착하게 노은아의 클랜 탈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 유망주가 떠난다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클랜 마스코트가 사라지는군….”
레귤러스클랜은 그동안 노은아를 정면으로 내세워 대중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데 많은 이익을 보았다.
노은아 하면 레귤러스클랜이라고.
그런 말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제는 그런 말을 듣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똑똑
그러던 그때였다.
다시금 노크소리가 들렸다.
구연수는 조금 전처럼 문을 향해 들어오라는 말을 남겼다.
“저, 클랜로드.” “…연화 너는 웬일이니?”
문 너머로.
류연화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구연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가 자신을 먼저 찾았던 적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훨씬 더 긴장이 들었다.
그의 직감이 예고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를 끝으로 이제 클랜에서 탈퇴를 하겠다는 말씀을 전하러….”
“…….”
류연화가 말했다.
구연수는 그녀가 이리도 긴 말을 읊는 것을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너도 은하 클랜에 들어가려고 그러는 거니?”
“…네.”
“허….”
무표정으로 말하던 류연화.
그녀가 노은하의 이름이 나오더니 겸연쩍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연수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알았다.”
탈퇴하겠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억지로 잡아봤자 마음이 떠났는데 클랜에 도움이 될 리도 없고.
결국 구연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탈퇴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가 집무실을 나갔다.
똑똑
또 노크소리.
오늘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구연수는 몸을 축 늘어뜨리고서는 들어오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한창진이 들어왔다.
“아, 클랜로드.”
“…넌 또 왜.”
한창진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부터.
구연수는 거의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만 하고 클랜을….”
“창진이 너까지 이러기냐….” “네?”
의아해하는 한창진.
구연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창진의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얹었다.
“창진아!” “…네?”
“너까지 탈퇴하면 어떡하냐!” “아, 그게….”
“어? 은아랑 연화는 이해하겠는데 창진이 너는 형이 좀 서운하다! 어? 형이랑 몇 번이나 밥도 먹었으면서, 이런 식으로 형을 버리고 다른 데로 가겠다고 하는 게 어디 있어!?” “클랜로드, 그게….”
“너 나가면 이제 나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 씨….”
“어어…. 죄송합니다.”
구연수가 탄식했다.
뭐라고 말하던 한창진은 풀이 죽어 죄송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구연수가 큰 소리가 나게 그의 어깨를 탁탁 내리쳤다.
“됐어! 그래,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래, 창진아! 여기를 나가도 잘 지내야 한다! 언제든 생각나면 얼굴 좀 보이고!” “클랜로드…!”
“클랜로드가 뭐냐, 이놈아! 이제는 클랜원도 아닐 텐도 편하게 형이라 부르는 거야! 알았어!?”
“…형….”
한창진이 감격했다.
그가 울먹거렸다.
구연수는 그의 등을 토닥거렸고, 한창진은 감정에 벅차 구연수를 꼭 껴안았다.
“혀어엉…!!” “그래, 창진아!!”
그랬다고 한다.
☆
노은하는 클랜을 만들기로 했다.
그 사실이 자신과 친구들의 입으로 세상에 알려지자, 자신을 비난하는 여론이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비난세례는 금세 그쳤다.
서현이 말대로 하기를 잘한 건가.
강현철이 약속한 대로 지지 성명을 발표해주기도 했고.
은하가 만들 클랜에 후원하기로 한 재계그룹들이 전속 클랜을 이용해서지지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덕분에 은하가 대처를 하기도 전에 논란이 수그러든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서현 언니랑 결혼하기로 했다고?”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됐어?”
“왜, 왜 그래?”
“아니. 나랑 사귀고 있는 데에도 뻔뻔하게 다른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말이나 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렇구나. 나는 그냥 은하 너한테 한순간의 불장난 상대였던 거구나.”
“하양아, 그런 게 아니잖아….”
정식으로 공표된 것은 아니었으나.
알 만한 사람들은 은하와 한서현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20살에 결혼을 하겠다니 가족들과 친구들은 당연히 기절초풍을 했다.
한서현과 약혼을 했기에 망정이지, 그나마 반대하는 소리는 없었다.
문제는 정하양이었다.
“나는 불장난 상대였던 거구나.”
“그게 아니라니까….”
“그게 아니면 뭔데?”
“끙….”
정하양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친구들은 그럴 만도 하다며 은하를 두둔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은하는 오늘도 정하양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너 나 좋아해?” “좋아하니까 사귀지.”
“근데 서현 언니랑 결혼을 하네?”
“…….”
도돌이표.
하양은 심기가 불편한 티를 냈다.
백 번, 천 번, 만 번 잘못한 그는 그녀의 노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양아,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면….”
“흥, 됐어. 보나마나 네가 꿈꾸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서현 언니하고 정략적으로 결혼하게 되었다는 말만 하겠지, 뭐.”
“…….”
은하는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정하양은 은하의 생각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너 이제 큰일 났어.” “어? 뭐가?”
정하양은 노은하보다 높은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주눅이 든 은하에게 대뜸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러자 은하가 퍼뜩 고개를 들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에 정하양 왈─.
“─앨리스그룹에서 은하 네가 만들 클랜에 10% 지분을 받는 조건으로 후원하기로 했잖아.”
“그렇지?”
“근데 우리 아빠가 10%의 지분을 나한테 양도하겠다고 하더라고.” “…뭐?”
정하양이 활짝 웃었다.
은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알기 쉽게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은하 네 클랜에 10%만큼 간섭할 수 있다고.”
“…….”
후후후 하고.
정까망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은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그는─.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저자세로.
그가 이제 주주님이 될 까망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
“…….”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그가 알아서 알아내라는 듯,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을 뿐이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만.
그리고 은하는 내심 체념했다.
아니, 은근슬쩍 어쩔 수가 없다고 변명했다.
그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만약에 내가 너랑 결혼을 한다면, 네가 가진 지분은 내 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겠지?”
“글쎄,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은하가 넌지시 물었다.
정하양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대답했다.
그러고는 자신은 영 모르겠다는 듯 다시 그에게 배턴을 넘겼다.
“그래, 결혼하자. 너랑 사귈 때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어. 내가 어떻게 너랑 헤어지자고 할 수 있겠어.” “……!”
은하는 자신이 정하양의 혼삿길을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정하양이 앨리스그룹의 직계라서 정재계에 별 말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었을 뿐.
그녀는 단지 약혼자를 둔 노은하의 세컨드일 뿐이란 냉대 어린 시선을 받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과 헤어진다면, 그녀의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질 게 뻔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욕심이 많았던 걸 어쩌겠어.
그나마 기회는 있었다.
정하양과 1년간 계약연애를 하고,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그때라면 되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은하는 그녀를 붙잡았고, 그때 그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그래도 내 생각보다 빠르네.
조금 더 연애를 할 줄 알았는데. 그러다 하양이가 날 싫어하게 되면, 그때는 하양이의 선택을 존중해주려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어쩌면 이게 잘 된 건가.
얘가 날 싫어해도 앞으로 떠나지 못하게 될 테니까.
살며시 자조하며.
은하는 떨리는 눈동자를 하고 있는 정하양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결혼은 좀 미뤘으면 해. 서현이랑 결혼을 하고, 바로 너랑 결혼을 하면 그림이 조금 이상하잖아.”
“…맞아. 그건 그렇지. 그리고 난 이런 식으로 프러포즈를 받고 싶지 않았어.” “…다음에 정식으로 할게.”
정하양의 얼굴에는 한가득 미소가 피어 있었다.
은하는 자신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녀를 보며 얼굴을 풀었다.
이내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결혼은 시간이 지난 다음 하기로 하자.”
“아무런 약조도 없이?” “…그래서 먼저 약혼부터 하자고 말하고 싶었어. 그렇게 하면 충분히 약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고.
정하양은 눈을 반짝였다.
그녀가 탁자 위로 몸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은하에게 소곤거렸다.
“나 지금 너무 키스하고 싶어.”
“…여기는 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사람이 없는 데로 가서 하자.”
“그럼 얼른 일어나자!”
빨강이가 콧김을 뿜는다.
그녀가 은하의 손을 잡고 반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은하는 거의 끌려가는 것처럼 그녀를 따라나서야 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하양이 얘가 나보다도 더 눈치를 보지 않게 됐어.
☆
최근에 은하는 재계그룹들로부터 여러 제의를 받고는 했다.
시리우스그룹뿐만 아니라 앨리스, 영원, 루미너스그룹이 한 발 걸친다는 소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그들도 어떻게든 한 발을 걸치겠다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러자 한서현은─.
“─안 돼, 너무 많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댔어.”
한서현은 단칼에 은하에게 들어온 제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그들은 알음알음 은하에게 접근해왔더랬다.
가령 KK그룹의 경우에는 김건웅이 은하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나도 너희 클랜에 좀 후원을 할까 생각하는데….”
“미안하지만 서현이가 하지 말래.” “벌써부터 잡혀 사는구나.” “…….”
“그룹 차원에서 하는 후원이 아닌, 내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어서 그래. 어떻게 좀 안 되겠냐?” “나 말고 서현이한테 물어봐.”
“진짜 잡혀 사는구나.”
“끙….”
김건웅이 그에게 비수를 꽂았다.
그럼에도 은하는 거절해야 했다.
애초 그는 KK그룹의 직계였다.
그가 개인적으로 후원한다고 하나, 그가 KK그룹의 직계인 이상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난 지금 KK그룹이랑 척을 지고 있으니까.
얼마 전에 KK 클랜로드 황산군이 은하가 클랜을 만들겠다는 소식에 소꿉놀이 같은 장난이라 일갈했다고 한다.
그만큼 은하는 KK그룹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김건웅을 돌려보냈더니.
바로 그날 저녁─.
동해그룹 직계 정금전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은하는 정금전이 무엇을 말할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였다.
[우리도 한 발 걸치게 해줘. 많이 바라지 않을 테니까 한 5%?]“죄송하게 됐네요.”
[그래, 네가 그리 나올 줄 알았지. 그렇다고 내가 돈 냄새가 나는데, 이대로 포기할 줄 알았냐?]스마트폰 너머로 정금전이 말했다.
은하는 일단 그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제주도가 우리 앞마당인 거 알지? 만약 너희가 제주도에서 활동한다면 우리가 전폭적인 혜택을 제공할게. 예를 들면, 호텔 같은….]“제주도 갈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야, 과연 없을 것 같냐? 지금이야 제주도에 갈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신입들이 계속 들어오면 걔네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지 않겠어?]“흠….”
정금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클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은 가끔 제주도로 휴양을 다녀오고는 했다.
게다가 제주도는 클랜들이 연수의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드론도 하고 있고. 지금이야 전투에 이용하기 힘들지만 미래는 어떨지 모르는 거잖아.]“…….”
[동해그룹의 후원을 받으면 너희가 동해 드론을 이용할 때 할인혜택을 팍팍 제공해줄게.]드론이라는 말에.
은하는 생각에 잠겼다.
현재 드론산업에서 두각을 보이는 기업체는 두 곳뿐이었다.
갤럭시 드론과 동해 드론.
물론, 드론 산업은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성과를 보이는 사업체도 기껏해야 갤럭시 드론뿐이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어느 정도 상용화되지. 플레이어들에게 도움도 되고….
미래에 드론이 각광을 받는다.
드론은 위험한 지대를 탐사하고, 무기를 다는 것으로 원거리에 있는 몬스터를 요격할 수도 있었다.
물론, 미래에도 드론의 정밀성과 마나 환경에서 움직일 수 있는 성능은 현저히 떨어졌다.
그래도 드론은 장래가 기대된다는 평가를 받았더랬다.
“제 클랜에 무상으로 제공해준다면 한 번 생각해볼게요.” [야, 이 도둑놈아! 그게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
“대신 축의금은 받지 않을게요.”
[야, 그거랑 이거랑 같냐!]“아, 그리고 동해그룹은 건설로도 유명했었죠?”
[야이씨, 이 날강도야! 너는 진짜 이웃에 대한 정도 없냐!?]어쩌면 갤럭시 드론을 견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은하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