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21
사당역에 위치한 벽해수의 공방.
은하는 오랜만에 벽해수를 찾았다.
“오, 클랜로드. 어쩐 일이냐?”
“형 잘 지내는지 보러 왔지. 일은 잘 되가?”
“말도 마라. 시리우스그룹 얘네가 날 쉬게 내버려두지를 않아.”
벽해수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그는 그 즉시 업계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급기야 주말에도 일해야 할 만큼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은하는 벽해수의 말을 듣고는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쉬지 못한다고 엄살을 떨면서 계속 망치질을 하고 있는 것 봐.
이 일을 진짜 좋아하는 구나.
벽해수가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항시 땀이 흐를 만큼 고온으로 된 공방임에도.
그가 손에 쥔 잔 안에는 얼음이 둥둥 띄어 있었다.
“아, 이거? 지난번에 제수씨한테 부탁해서 만든 물건이야. 기똥차지? 다른 마에스트로들이 다음에 하나씩 만들어달라고 하더라고.”
“별 걸 다 만들었네.”
은하의 시선이 얼음에 향하자.
벽해수가 씩 웃어서는 그의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
이내 벽해수가 나무 테이블에 팔을 턱 괴며 물었다.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형을 내가 만들게 되는 클랜에 전속 마에스트로로 영입하고 싶어.”
“…….”
벽해수를 영입하기 위해서.
대체로 클랜마다 전속 마에스트로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S급 클랜은 모두 그러했다.
S급 클랜과 A급 클랜의 차이에는 전속 마에스트로
가 있느냐 없느냐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클랜을 만든 이상 기필코 S급 클랜을 만들 것이라고 다짐한 은하는 벽해수를 영입하고자 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이 형의 실력은 진짜야.
은하는 벽해수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전속으로 적을 두고 있는 클랜은 없어.
있어봤자 시리우스그룹이야. 내가 해수 형을 영입한다 해도 그쪽에서 신경도 쓰지 않을 거야.
마침 절묘하게도.
벽해수는 어느 클랜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은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벽해수는 클랜에 얽매여 있지 않고 다양한 플레이어들에게 디바이스를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은하는 말했다.
“전속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나는 형이 하는 일에는 간섭 안 할 거야. 형이 다른 클랜이랑 거래한다더라도 개의치 않을게. 물론…, 내 클랜과 적대하는 클랜과 거래를 하는 것은 다른 사정이겠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벽해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하여, 은하는 그에게 최대한으로 자유를 보장했다.
그랬더니, 벽해수가 코웃음을 쳤다.
“─됐다, 임마.”
“…….”
그러더니 덥석 하고.
그가 은하의 손을 잡았다.
물기가 잔뜩 묻어 있는 손이었다.
손이 잡힌 은하는 수염도 제대로 다듬지 않은 벽해수를 바라보았다.
“야, 은하야.”
“…어.”
“내가 왜 다른 클랜에 안 들어가고 이러고 있었을 것 같냐?”
“…….”
푸핫 하고.
벽해수가 침을 튀기며 웃었다.
그가 입가를 끌어올렸다.
“나는 네가 클랜을 만들 거란 걸 짐작하고 있었거든.”
“…….”
“너 같은 애가 어디 누구 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냐?”
천만에 말씀이라고.
벽해수가 자문자답했다.
“네가 내 공방을 찾아오기 전까지, 나는 아카데미의 꼴통이라고 불리며 조롱당하기만 하던 사람이었어.” “…….”
“그런 나를 네가 발견해주었고, 또 네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었지. 내가 너한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얼마나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는지 넌 모를 거다.”
벽해수가 은하의 손을 꼭 쥐었다.
그가 쾌활한 어조로 내뱉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클랜로드.”
“…나야말로 잘 부탁해.”
벽해수를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그는 은하를 처음 만난 날.
그를 따르겠다고 결심했었으니까.
☆
시간을 되돌려, 은하가 한서현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꺼낸 그날.
그날, 한서현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사용인에게 물을 달란 듯한 어조로 가족들에게 말했더랬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결코 가볍지도 또 무겁지도 않았다.
그녀의 말은 잔잔한 폭탄이었다.
“─저 은하랑 결혼하기로 했어요.” “”……!!””
“…쿨럭…컥…!!”
너무나 담담한 어조로.
한서현은 가족들을 경악시켰다.
가족들은 식기를 움직이다가 말고 일제히 그녀에게 시선이 향했다.
“서, 서현아, 너 지금 무슨 말….”
“그러니?”
아버지 한도영이 몸을 떠는 반면.
어머니 최수빈은 빙그레 웃고서는 그저 자신이 들은 말이 사실인 건지 확인하기만 했다.
“네, 은하도 동의했어요. 결혼식은 내년 5월 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5월의 신부가 되려는 거구나?”
“대체 은하를 어떻게 구워삶았으면 결혼을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은하를 5등분으로 나눠버리겠다고 협박이라도 했니?” “언니, 하나도 재미없어.”
최수빈이 짧게 축하를 건네고.
한서연이 그녀를 놀렸다.
한서현은 그냥 무시했다.
“하, 진짜…. 네가 나보다도 먼저 결혼할 줄은 알았는데 설마 21살, 아니 22살에 결혼할 줄은 몰랐다. 와…, 은하는 20살이네. 너희 혹시 사고라도 친 건 아니지?” “사, 사고…!?”
“아직 안 쳤거든.”
“언젠가 칠 거란 말이네.”
“결혼할 건데 그러지 않을까?”
“얘, 얘들아, 잠깐만…. 서현아…,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지금 결혼한다고 한 거 아니지?” “네, 아빠. 내년 5월쯤에 은하하고 결혼하기로 했어요.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서연이 자꾸 장난을 친다.
한서현은 성가시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넋을 놓고 있던 아버지가 그녀에게 재차 확인을 요구했다.
그녀가 다시 사실을 토했고.
아버지 한도영은 이제는 사경을 헤매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랑 은하가 갑자기 결혼하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그래, 서현아.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냐.”
다행히 한서연이 이유를 물으면서.
이내 사경을 헤매고 있던 아버지가 정신을 차렸다.
한도영이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별 거는 아니고요.”
한서현은 그렇게 말했으나.
별 게 맞았다.
그녀는 그날 은하와 대화를 나누며 시리우스그룹의 후원을 통해 클랜을 창설하기로 했다는 말을 꺼냈다.
“”…….””
그러자 한도영과 한서연이 표정을 바꿨다.
두 사람이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룹 안에서 계속 전속 클랜을 정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 나오기는 했지.”
“마땅한 클랜이 없으면 이 기회에 시리우스클랜이나 만들자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고요.”
노은하에게나 시리우스그룹에게나 나쁜 일은 아니라고.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정리한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서연이나 한도영은 하나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서현아.” “그런데 있잖아.”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직후 그들이 꺼낸 말은 비슷했다.
“후원의 대가로 지분은 받아야지. 하지만 굳이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지분을 받아갈게 게 아니라, 차라리 배당금을 더 많이 얻을 수가 있는 지분을 받아가도 괜찮았을 텐데…. 은하에게 말하지 않았니?” “우리야 배당금만 타먹으면 되지. 우리 하는 일만으로 바빠 죽겠는데, 은하의 클랜에 간섭할 일이 얼마나 있겠어? 걔한테 지분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았어?”
두 사람의 의문.
그들은 이제는 어느 정도 은하의 성미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은하가 꺼려할 것이 빤히 눈에 보이는 데에도 한서현이 은하에게 제안한 이야기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한서현 왈─.
“─제가 그걸 말해야 하나요?” “”…….””
사용인이 커피를 가져온다.
한서현이 커피를 마신다.
두 사람은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는 한서현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야, 너 설마….”
“서현아, 너 혹시….”
“저는 모르겠는데요.”
이내 두 사람이 말문을 틀었다.
하지만 한서현이 그들의 말을 끊고 모른 척해버렸다.
이에 한서연은 혀를 내둘렀다.
“와, 진짜…. 나는 내가 이 집에서 엄마 다음으로 여우인지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여우는 내가 아니라, 한서현 너였구나?”
“무슨 소리야?” “와…. 저 시치미 떼는 것 봐.”
최수빈이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한서현도 따라 웃었다.
웃는 얼굴이 그야말로 판박이였다.
☆
어느 날의 아카데미.
은하는 오랜만에 유도준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야, 근데 있잖아.” “어, 왜?”
동해그룹이 동참하게 된 것으로.
은하는 35%의 지분을, 동해그룹은 5%의 지분을 가져가기로 했고.
시리우스그룹은 30%를 가져가고, 나머지 세 그룹은 제각기 지분을 10%씩 가져가기로 했다.
이때, 시리우스그룹의 지분 행사는 한도영, 한서연, 한서현이 10%씩 가져가기로 결론이 났으며.
동해그룹에서는 정금전이.
영원그룹에서는 유도준이.
앨리스그룹에서는 정하양이.
루미너스그룹에서는 이정인이.
지분을 행사할 수가 있는 권한을 가지기로 했다.
“왜 그런 식으로 후원받는 거야? 나야 네 클랜의 지분만 얻는다면야 아무렴 상관없지만, 네 성격상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알아듣게 말해봐.”
은하가 그렇게 지분 구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중.
유도준이 밥풀을 튀기며 물었다.
은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아니,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배당금을 더 많이 받는 조건으로도 지분을 나눠줄 수 있었을 거 아냐. 근데 왜 굳이 그런 방식으로 후원을 받기로 했나 해서.” “그래야 다른 그룹들도 내 클랜에 애착을 가질 거 아니야.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을 테니, 물심양면으로 날 도와줄 것 같아서.” “그건 이유가 안 되는 것 같은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그냥 배당금만 보장해줘도 애착을 가졌을 텐데…. 솔직히 말해봐. 너 혹시, 진짜 그걸 몰랐던 건 아니지?”
따지듯이 묻는 유도준.
은하는 태연한 얼굴로 그의 질문을 받아넘겼다.
“내가 그걸 몰랐을 것 같아?”
“아니, 그럼 왜 그렇게 한 거야? 그것 때문에 한서현 누나한테 완전 코가 꿰이고 말았잖아. 잠깐, 너….”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고.
유도준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기만 했다.
그러던 중, 그가 무언가 깨달은 듯 은하를 쳐다보았다.
“그 누나하고 결혼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지?”
“…….”
에이, 아니겠지 하며.
유도준이 뜨악하며 질문했다.
은하는 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답을 대변했다.
“너, 그 누나 좋아하냐?” “마음이 없었으면 애초에 약혼을 하지 않았겠지.”
“얼씨구. 그 누나 수법에 말려들어 약혼하게 된 주제에. 솔직히 말해봐. 왜 그런 거야?”
유도준은 이제는 점심에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가 은하의 답을 기다리겠다는 듯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음식을 삼킨 그가 입을 열었다.
“그냥…. 그 누나가 그때 나한테 결혼을 제의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되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뭐? 그 누나가 귀엽다고?”
“태연하게 나한테 제의해놓고 정작 날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이 우왕좌왕하고 있던 거 있지?” “…….”
은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유도준은 그가 솔직하게 꺼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사실 서현이 마음은 잘 모르겠어. 그 누나가 참…, 아닌 것 같으면서 또 그런 것처럼 구니까 말이야.” “아닌 것 같으면서 그런 거랑 게 대체 뭐야?”
“그런 게 있어. 너도 연애해봐.”
“…하던 얘기나 마저 해라.”
“근데 걔가 그러는 모습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쑥쓰러워하듯.
또 겸연쩍어하듯.
은하가 불닭이에게 음식을 주면서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 싶지가 않더라고.”
“…….”
“그냥 내가 옆에 두고 있어야겠다 그런 생각밖에 없었어.”
“그래서 결혼으로 묶어놓겠다고?”
“그렇겠지?”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이게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아니,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은하는 애써 에둘러 말했다.
이에 유도준은 탄식했다.
“참…. 하양이 붙잡은 것도 그렇고, 너 진짜 소유욕이 대단하구나?”
“나는 이번에는 잃고 싶지 않고, 또 뺏기고 싶지도 않아.”
“…네가 잃은 적이 있었던가?”
“너는 모르겠지만 엄청 많았거든. 그리고 또─.”
자신은 욕심쟁이가 분명하리라.
소유욕의 화신이다.
또한 확신을 원했다.
“─클랜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게 행정관의 역할이니까. 그런 사람이 만약에 날 배신하면 곤란하지. 아마 서현이가 결혼을 제의하지 않았으면 내가 제의했을지도 몰라.”
그녀에게 배신당하고 싶지 않았고.
그녀가 자신의 편이기를 바랐다.
정략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그에게 한서현이란 그런 존재였다.
이에 유도준이 퉁명스레 말하기를.
“얼씨구, 그럼 클랜로드들은 죄다 행정관이랑 결혼이라도 한대? 그냥 그 누나한테 빠졌다고 말해라. 애가 무슨 말을 빙빙 돌려서 말해? 어휴, 내가 속이 터진다, 속이 터져.”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제 가슴을 탁탁 치는 유도준.
불닭이도 밥을 먹다말고 그를 따라 날개로 제 가슴을 탁탁 쳤다.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야, 은하야.” “왜?” “내가 누누이 말하겠는데, 하렘은 미친 짓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네가 앞으로 고생할 게 아주 훤히 보인다고. 지금이야 한 명이라지만, 나중에 하양이랑도 결혼하게 되고, 더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 결혼하는 미래를 생각해봐.”
“뭐래. 하양이가 마지막이거든.”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냐?” “…….” “거 봐, 지금 딴 마음 품고 있네. 네 앞날이 참 훤하다. 어휴, 친구야. 지금부터라도 몸보신 잘 해놔라.”
은하는 뚱한 표정을 지었고.
유도준은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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