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26
선력 15년 2월.
겨울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꽃망울이 다가오는 봄을 준비하는 시기에 접어들 무렵.
[─지금부터 플레이어 아카데미 031기 그리고 31기 및 편입생들의 졸업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아카데미 학생들은 대강당에 모여 졸업식을 진행했다.
“”─선서.””
“”””선서.””””
수석 정하양.
차석 배수빈.
아카데미 총장 앞에 선 두 사람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들이 선언하자.
나머지 학생들이 두 사람을 따라서 같은 말을 읊조렸다.
“─우리는 국가를 수호하고, 또한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플레이어로서 자랑스럽게 이 한 목숨을 바칠 것을 선언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또한 죽음을 각오하는 자세로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가족들, 기자들, 업계 관계자들 등.
그들이 단상 위에 선 두 사람을 주목하고 있는데도.
두 사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를 읊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동시에 선서를 복명복창했다.
하나로 합쳐진 소리는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이윽고 그들이 손가락 끝에 발현한 마나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나갔다.
“”─이 심장이 뛰는 날까지.””
허공에 떠오른 이름.
정하양과 배수빈을 시작으로.
학생들은 푸른빛을 발하는 이름을 한 손에 거머쥐었다.
손 안에 잡힌 이름이 짓이겨지며, 형체를 잃은 마나가 허공에 일제히 넘실거렸다.
쿵쿵
이내 그들이 각자 손에 쥔 무기로 쿵쿵 소리가 나도록 바닥을 때리자.
안개처럼 넘실거리던 마나가 잘게 쪼개어졌다.
빛을 받고 반짝이는 입자.
푸른 마나의 입자가 하늘거리더니 학생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것이 꼭 신들이 세상에
나가는 그들을 축복하는 것만 같은 모습을 방불케 했다.
물론, 신은 죽었다.
대강당에 흩날리는 입자는 그들이 의지를 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상으로 플레이어 아카데미 031기 그리고 31기 및 편입생들의 졸업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그리하여, 씨앗은 싹을 틔웠고.
어느덧 꽃망울이 된 그들은 이제 저마다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린다.
이날, 학생들은 정식으로 플레이어가 되었다.
☆
졸업식이 끝났다.
대강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조금 전, 엄숙히 선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찾을 수 없었다.
졸업한 학생들은 대화를 나누거나, 사진을 찍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기 바빴다.
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은하 선배님! 이전부터 계속 존경하고 있었어요! 실례가 안 되면 선배님의 물건을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선배님, 졸업을 축하드려요! 저도 하나 받아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부터 아카데미에는 한 가지 졸업식 문화가 생겨났다.
졸업하는 학생이 후배에게 자신의 디바이스를 양도하는 문화였다.
하지만 졸업식 문화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었던 은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검들이 얼마나 좋은 건데?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에 은하는 얼마 전에 후배들에게 자신은 디바이스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다만 단추라도 하나 떼어주겠다고, 은하는 지금에 와서 후회하는 말을 하고야 말았다.
덕분에─.
“─열심히 해.”
“”””감사합니다!!””””
넥타이며, 단추며.
은하는 벌떼처럼 몰려든 이들에게 자신의 교복을 뜯어주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졸업한 사람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한 차례 폭풍을 맞게 된 은하는 몰려드는 후배들에게 더는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니, 하나 있기는 했다.
“”””…….””””
노은하 사단을 상징하는 브로치.
이제 노은하 사단은 없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브로치가 가지는 의미는 무시할 수 없었다.
유망주들 중에서도 가장 기대되는 유망주라는 의미.
게다가 브로치에는 노은하 사단이 인정했다는 의미까지 들어 있었다.
특히나 자신의 브로치는 더더욱.
그렇기에 은하는 브로치를 넘겨줄 사람을 찾았다.
“─아, 선배.”
“안녕?”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진서나가 텔레파시로 그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은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 중 한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나중에 밖에서 보자. 그러니까 어…, 음, 성환아.” “……! 네! 선배! 열심히 해서 꼭 선배 이름에 먹칠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032기 오성환.
은하는 그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다만 친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강력한 노은하의 신봉자면서, 유망주로 불리고 있다는 듯했다.
인성도 완벽하다고.
은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내침 김에 같이 사진도 찍었다.
내 성미에는 맞지 않지만….
내년에 이 애를 클랜에 영입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다분히 계산적인 생각.
하지만 오성환은 은하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 감개무량한 모양이었다.
어찌됐든 은하와 친구들의 의도는 성공한 것이다.
“은하야!!” “오빠!!’
한편 은하가 몇몇 후배, 동기들과 덕담을 주고받는 사이.
저 멀리서 인파가 갈라졌다.
라고.
학생들이 인파를 가르고 걸어오는 노은아를 보고 꺄아 비명을 질렀다.
은아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은애를 데리고 은하에게 다가왔다.
“졸업 축하해! 이제 오늘부터 너도 플레이어가 된 거네?”
그동안 노은아는 주로 레귤러스클랜의 제복을 입은 모습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가 입은 제복은 레귤러스클랜의 제복이 아니었다.
속이 비치지 않는 하얀 와이셔츠.
그 위에 걸친 군청색 재킷.
재킷 가슴 왼쪽에는 클랜의 문장이 수놓아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제복처럼 보이면서도 오피스룩처럼 보이는 스타일.
판도라클랜의 제복이었다.
“제복 엄청 예쁘다. 색감이 예뻐. 세련됐어.”
“우리 클랜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엄청 좋아 보이는데?”
“다섯 개 그룹에서 후원한다더니, 제복 가격도 만만치 않아 보이네.”
판도라클랜의 제복을 본 사람들은 감탄사를 흘렸다.
일부러 제복을 입고 온 노은아는 그들에게 만면의 미소를 선보였다.
더군다나 그녀의 옆에는 어느샌가 류연화가 있기까지 했다.
그녀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졸업 축하해, 은하야.”
“와줘서 고마워.”
“오빠, 졸업 축하해! 그리고 이건 오빠한테 주려고 만든 꽃다발이야! 서현 언니도 도와줬어!”
류연화에게 졸업 축하를 받고.
이내 은하는 자신에게 매달려 있던 은애의 축하를 받았다.
그녀가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은하는 은애의 선물에 감동했다.
“근데 창진이 형은?”
“사람도 많으니까 오지 말라 했어. 지금 클랜회관에서 청소하고 있을 거야.”
은애의 손을 잡고.
은하는 은아에게 물었다.
이후 은하는 한창진에 대해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것보다 엄마랑 줄리에타 언니 보러가자! 저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아버지는 일이 많이 있어서 오늘 오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줄리에타, 브루노, 어베니어가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다.
이에 은하는 은아의 인도를 받으며 그들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은하 오빠!”
은하는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익숙한 목소리.
누군가 인파 속에서 손을 들었다.
은하는 은아에게 은애를 맡기고, 사람들 틈에 끼어 움직이지 못하는 온태희에게 다가갔다.
“태희 너도 왔어?”
“당연하죠! 오빠 졸업식인데 제가 오지 않으면 어떡해요?”
온태희, 온태양의 여동생.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기숙사제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온태희가 은하를 보고 반가워했다.
“오빠, 졸업 축하해요!”
“여기 오느라 힘들지 않았어? 오늘 길이 꽤나 막혔을 텐데….”
“거리도 멀지 않아서 운동 삼아서 기숙사에서 걸어왔어요!”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불닭이도 졸업 축하해!”
이전과 달리 그녀는 얼굴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간간이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은하는 그녀가 기운 찬 모습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가 서슴없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대신 오빠도 제 졸업식에 꼭 와주기예요?” “그래, 알았어.” “오빠! 우리도 사진 찍어요!”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은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은하가 머리를 쓰다듬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녀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이따가 같이 밥 먹자. 끝난 다음 클랜회관에서 다 같이 뒤풀이하기로 했어.” “제가 가도 될까요?”
“당연히 와도 되지. 은애도 있으니 심심하지 않을 거야. 아, 클랜회관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네! 저번에 한 번 가서 기억해요!”
“근데 여기서 좀 멀리 있는데…. 이따가 나랑 같이 차를 타고 가자. 브루노 아저씨가 운전해주실 거야.”
“네! 그럼 기다릴게요!”
온태희와 사진을 찍었다.
그녀가 사진을 확대해서 확인하고 흡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그녀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 죄송해요, 오빠. 생각해보니 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응? 왜?” “그게….”
말을 머뭇거리는 온태희.
은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온태희는 꽃다발을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가지고 있었다.
말로는 은하를 보러 왔다지만.
정말로 자신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졸업식을 찾아왔을 리는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그보다 이제 슬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러고 있다 못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
“……!”
온태희가 졸업식을 찾은 이유.
뻔했다.
온태양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
비록 그녀가 온태양과 서먹서먹한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지만, 그들은 피가 흐르는 남매지간이었다.
정이란 게 있는 법이었다.
그녀도 이대로 계속 온태양과 싸운 상태로 있고 싶지 않았으리라.
이에 그녀의 마음을 간파한 은하는 등을 밀어주었다.
“태희 네가 대견스럽다.” “…고마워요, 오빠.”
“온태양 저기 있어. 잘해봐.”
“네.”
은하는 솔직하게 그녀를 칭찬했다.
그러자 그녀가 걱정 어린 얼굴을 싹 걷어냈다.
은하에게 용기를 받은 것인지.
그녀가 힘찬 걸음으로 온태양에게 향했다.
“오빠…, 졸업 축하해.”
“…….”
은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가 온태양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신이 온태희를 만나고부터 돌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마워, 정말….”
“이따 끝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빠 좋아하는 걸로 먹자.”
온태양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그의 얼굴이 풀어지자.
그녀의 얼굴 또한 풀어졌다.
힘을 입은 그녀가 명랑한 어조로 온태양에게 말을 걸었다.
“어….”
“응? 왜 그래?”
하지만 온태양은 머뭇거렸다.
온태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온태양의 주변으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이번에 단군클랜에 같이 입단한 동기들이랑 뒤풀이하기로 했거든…. 태희야, 진짜 미안해.” “…….”
“나도 빠지고 싶은데…. 이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빠지기가 힘들 것 같아.” “그렇…, 구나….”
“태희 너는 이해해줄 거지? 미안, 다음에 내가 꼭 밥 살게.”
온태양은 미안한 듯이 말했고.
온태희의 기대는 배신당했다.
그가 아무리 사과를 해도,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기만 했다.
어깨가 축 처지기까지 했다.
바로 그때─.
“─그러면 태희는 내가 데려가서 밥 먹일게. 태희야, 가자.”
“어? 은하 오빠?” “여기까지 왔는데 밥은 먹어야지. 대련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가족들에게 향하지 않고.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던 은하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온태희를 덥석 잡았다.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짓든 말든.
은하는 대뜸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가렸다.
“…….”
“왜? 아니면 네가 데려가게?”
“…아니야.”
순간 온태양과 시선이 마주쳤다.
은하는 퉁명스레 물었다.
주먹을 부르쥔 온태양은 끝내 그의 눈을 피했다.
은하는 더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이따 대련에서 보자.” “…….”
그 한마디를 끝으로.
은하는 온태양을 뒤로했다.
그리고 은하가 어깨에 손을 얹은 온태희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흑….”
“울지 마. 쟤도 사실 가고 싶은데 일이 바빠서 그런 걸 거야.”
같지도 않은 말.
그럼에도 은하는 그녀를 위로하러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위로를 받았다.
“저 지금 배가 엄청 고파졌어요! 오늘 배가 터지도록 먹을 거예요!”
“많이 먹어. 많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따가 대련에서 그래도 오빠라고 오빠를 응원하려고 했는데 은하 오빠를 응원할 거예요!”
“그래, 그래.”
한창 코를 훌쩍이더니.
온태희가 마음을 다잡았다.
은하는 금세 마음을 잡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향했다.
이미 가족들의 주변에는 친구들도 모여 있었다.
한 명 더 있었다.
“─졸업 축하해.” “와줘서 고마워.”
판도라클랜 행정관 한서현.
판도라클랜의 제복을 입은 그녀가 꽃다발을 안고 다가왔다.
그녀가 눈웃음을 지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627(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