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34
코쿤의 점검이 필요하다.
은하는 한서현에게 그러한 내용의 진정서를 마나관리기구에 보냈다.
이에 마나관리기구에서 온 답변은 코쿤은 2년에 1번씩 점검하고 있고, 작년에 점검한 바에 따르면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작년에 점검을 했는데 뭐 이리 귀찮게 또 점검을 하자는 말을 꺼내느냐는 것.
가 그렇게 말했다나? 이런 말이 나올 것은 예상했지만, 제대로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고?
우연치 않게 연락을 전달하던 중에 윤이별이 사이에 끼게 되었다.
덕분에 은하는 오랜만에 윤이별과 근황을 주고받으며 상세한 전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십이좌가 안 된다고 하면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선녀한테로 건의하면 되는 거지.”
이 수는 쓰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은하는 아버지를 통해서 선녀에게 연락을 넣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선녀의 연락처를 보관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초연한 표정을 하며 이제는 아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선녀에게
전화를 넣었더랬다.
그리하여─.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니? 저번에 아카데미에서 현철이 놈이랑 싸웠을 때 본 이후로 처음인데…. 아, 이제 판도라 클랜로드라 부르며 깍듯하게 대해줘야 하나?” “…편한 대로 부르세요.”
“선녀님한테 예의도 없게 뭐하는 소리야? 이젠 클랜로드로서 격식을 갖추도록 해.”
코쿤이 설치된 종묘 정전.
은하의 연락을 받게 된 임가을은 당장에 코쿤을 조사하라는 압박을 모라율에게 넣게 되었다.
그리고 은하는 그녀의 초대를 받아 서브로드들과 종묘를 찾았다.
“아, 갤럭시 물산 사장의 아이구나. 아버지는 잘 계시니?” “…네, 잘 지내고 계십니다.”
“그래, 일하느라 너무 무리하지 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해주렴. 앞으로 잘 지내보자.” “네, 알겠습니다.”
선녀에게 예의가 없노라며.
은하에게 툴툴거리던 목민호는 곧 선녀의 관심을 받고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다 그녀가 얼굴을 본 것으로 그가 갤럭시 물산의 직계라는 점을 언급하자, 목민호는 움찔했다.
선녀에게 덕담을 받게 된 목민호는 크게 당황해했다.
저 사람이 기억력 하나는 좋아.
대본 하나를 통째로 달달 외우던 사람이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
덕분에 백련은 그것도 못 외우냐며 저 사람한테 혼나기도 했고….
반면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회귀 전 기억을 가지고 있다 보니 선녀를 대하는 태도가 가벼운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내 선녀는 정하양과 노은아에게 시선을 향했다.
“은아야, 잘 지냈니? 클랜 생활이 힘들진 않고?” “네! 아직은 할 만해요. 여름 언니, 아, 선녀님은 아픈 데는 없으세요?”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렴. 요즘에는 아픈 데는 없고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병에 걸렸지, 뭐니.”
“일도 중요하지만 쉬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안 그러면 나중에 피로가 쌓이고 쌓여서 쓰러지실 거예요.”
“내 걱정해주는 사람은 정말 은아 너밖에 없다. 그렇지 않나요, 박상진 호위사?”
“선녀님의 몸에 부담이 가지 않게 스케줄을 충분히 조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마 선녀 언니란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은 이 나라에서 노은아밖에는 없을 것이다.
은아와 임가을이 재잘재잘 떠들자, 선녀를 수행하는 호위사 박상진이 나직이 타박했다.
“그리고 이쪽은 민준식 회장님이 애지중지하시는 손녀구나. 아니면 판도라클랜 서브로드라 해야 하나?”
“안녕하세요, 선녀님. 판도라클랜 서브로드 정하양이라고 합니다.”
“그래, 안녕. 약혼 소식은 들었어. 미리 약혼 축하할게.”
“네, 감사합니다.”
임가을이 생긋 웃었다.
정하양은 목민호와 다르게 그다지 굳어 있지 않고 그녀를 대했다.
이내 그녀와 악수를 나눈 임가을은 몸을 돌리고는 정전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바쁜데 불러서 죄송해요. 하지만 믿을 만한 정보원에게서 나온 거라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아니에요, 선녀님. 그런데 혹시 믿을 만한 정보원이란 게 여기 있는 노은하 학생인가요?”
“”””…….””””
십이좌 모라율.
화가 나 있다는 모습을 강조하듯 똥 씹은 얼굴을 하고 나타난 그녀가 노은하를 일별했다.
노은하 학생.
아카데미를 졸업해 이제는 어엿한 플레이어가 된 그를 비하하는 듯한 호칭이었다.
그야 내가 싫을 만도 하지.
저 사람 눈에는 내가 일을 떠안긴 주범으로 보일 테니까.
은하는 잠자코 받아들였다.
모라율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만도 했다.
“이제 아카데미를 졸업한 학생이 대체 어떻게 믿을 만한 정보원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칠게요.”
모라율의 태도는 날카로웠다.
하지만 임가을은 모라율의 태도를 따지려고 하지 않았다.
어디 너 혼자 짖어보라는 듯이.
그녀는 생긋 웃었을 뿐이다.
다만 그녀의 곁에 있던 박상진이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구겼을 뿐.
그리고 그때─.
“─그럼 올 사람은 모두 왔으니까 점검이나 하러 가죠.”
은하 또한 개의치 않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가 코쿤이 있는 곳으로 걸으며, 모라율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저게 진짜….”
저게 사람을 물건 취급하고 있다.
아주 건방지다.
모라율은 이를 빠득 갈았다.
☆
코쿤은 2년에 1번씩 점검하는 게 원칙이었다.
이때, 코쿤을 점검할 때는 반드시 십이좌가 동석한 상황이어야 했다.
당연히 동석해야만 하는 십이좌는 네비게이터 부문 플레이어였다.
모라율이 이 자리에 끌려온 이유였다.
“─그런데 왜 코쿤을 점검하자는 말을 꺼낸 거니? 네가 하는 말이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따라주고 있기는 한데, 나는 잘 모르겠다.”
모라율이 기술관들과 함께 코쿤을 점검하고 있었다.
다소 떨어진 위치에서 보고 있던 임가을은 은하에게 물었다.
“코쿤이 설치된 지도 이제는 제법 시간이 지났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코쿤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길게 잡아서 20년은 쓸 수 있는 코쿤이야. 아직 5년이나 남았어.” “이제 5년밖에 남지 않은 거죠.”
이에 은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선녀도 그의 말에 일리가 있는지 더는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회귀 전에는 코쿤의 수명이 5년은 남아 있었는데 느닷없이 부서졌어. 코쿤에 어딘가 결함이 있었을 거란 소리야.
코쿤을 점검하는 사람들을 보며.
은하는 생각에 잠겼다.
이전 삶에서 코쿤은 예고도 없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부서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면서 몬스터들이 강북에 몰려들게 된 것이다.
몬스터들이 코쿤을 부수고 강북을 침공한 것이 아니라.
운이 지지리도 없던 일이었지.
하필이면 그때 임가을은 코쿤에다 의 마나를 불어넣기 위해서 다른 지역으로 순회를 떠나 있었던 시기였으니까.
1년에 1번씩 선녀는 지방에 있는 코쿤에 마나를 불어넣어주기 위해 적게는 한 달, 많게는 두 달 동안 순회를 떠나고는 했다.
선녀의 행차인 만큼, 십이좌들도 그녀의 일정에 동행했다.
그런데 몬스터들의 군세는 그녀와 십이좌들이 서울을 떠나 있던 차에 대대적인 침공을 가한 것이다.
그때 랑 는 강원도로 출장을 가 있기도 했었으니….
도 경기도로 나가 있었고.
이도진.
프리시스 메모리.
당시에 임가을은 십이좌 두 사람을 동행한 상태였고, 몇몇 십이좌들은 지방 업무로 서울에 위치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재앙은 걷잡지 못할 정도로 판을 칠 수밖에 없었다.
선녀와 십이좌들이 3일이 지나고서 강북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많은 지역이 붕괴해 있었을 때였다.
그 많은 몬스터들은 막기 힘들어. 코쿤이 어느 정도 버텨줄 수 있어야 십이좌들이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어.
몬스터들은 서울을 침공한다.
송윤서의 예언은 그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코쿤이 부서지든 부서지지 않든, 기정된 사실이었다.
따라서 은하가 할 수 있는 일은 코쿤이 군세의 침공을 막아내면서, 나아가 놈들을 약화시켜주는 역할을 오랫동안 할 수 있게 하는 거였다.
그래서 코쿤 점검을 의뢰했더니─.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만약 정밀 점검을 하면 달라질 수 있지만 그건 공방으로 가져가서 해야 하고,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점검대로라면 이게 한계입니다.”
코쿤의 상태를 한창 살피고 있던 기술관이 말을 꺼낸 것이다.
다른 기술관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모라율은 거 보란 듯이 비웃었다.
“보세요. 아무 이상 없다고 했죠? 제가 작년에 점검했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는데 어떡할 거니?”
모라율이 깔깔거리는 가운데.
임가을은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며 은하에게 말을 걸었다.
“정밀 점검도 해보는 건 어때요?”
이상하다.
은하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전 삶에서 코쿤이 부서진 이유는 내부적인 요인으로 추측되었다.
그로 인해 선녀정부는 점검 주기를 1년에 1번씩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때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은하는 점검 결과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행여나 정밀 점검으로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자 모라율 왈─.
“─정밀 점검을 하게 되면 시간을 엄청 잡아먹게 될 거예요. 장비도 필요할 테고요.”
“흠….”
“까딱하면 코쿤을 잠시 중단하고서 살펴봐야 할지도 모르는데요?”
그녀가 귀찮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코쿤을 중단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임가을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중단할지, 안 할지는 일단 내부를 뜯어보고 나서 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요?”
반대로 은하는 완고했다.
모라율이 얼굴을 구겼다.
“이보세요, 노은하 학생. 지금 이게 노은하 학생의 일이 아니라서 그냥 편하게 말하는 것 같은데, 이 일은 엄청나게 까다롭거든요? 그러니까 자꾸 그런 말 하지 마라.”
마지막에는 말을 놓는 모라율.
그녀가 으르렁대듯 고했다.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생각을 마친 임가을은─.
“─그래요, 다들 수고했어요. 이미 작년에 점검했는데 굳이 번거롭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죠.”
그녀가 상황을 중재했다.
결국 상황은 코쿤을 점검하지 않는 흐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사람이 뭘 모르고 이러네. 지금 코쿤 내부에 무슨 문제가 발생해서 가동을 중단하기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단 말이야.
한 달 뒤에 코쿤이 무너질 거라는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은하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임가을이 이번 일로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아니, 임가을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언젠가 그녀의 뒤를 이어서 선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는 하백련이었다.
당신 정치적 입지는 상관이 없지만 백련이는 신경을 써야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하자.
안 되면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것에 주력하면 될 일이고.
끙끙 앓기만 하던 은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한 번 검사를….”
“야!!”
은하가 말문을 튼 그때.
그동안 화를 참고 있던 모라율이 빼애애액 소리를 지르며 외쳤다.
“코쿤에는 아무 이상도 없다잖아! 자꾸 성가시게 할래!?”
“”””…….””””
“코쿤에 무슨 이상이 생기면 내가 다 알아서 책임을 질 테니까 그만 좀 하란 말이야!!”
빼애애액 하며.
선녀도 별안간 터진 소리에 벙찌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물론 그러했다.
은하도 마찬가지였다.
은하도 한순간 인내심이 뚝 끊긴 그녀가 지른 소리에 정신이 나갔다.
허나 정신이 나간 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요? 정말 책임질 거예요?”
“그래! 내가 책임진다니까!?”
그으래?
뜻하지 않게 방파제를 얻었다.
그렇다면 이제 무슨 일이 터지면 모라율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게 아닌가.
은하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
강북이 붕괴하는 그날까지 어느덧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은하는 한서현에게 비축이 가능한 식량을 충분히 모아놓으라고 했다.
한서현이 의심을 품기는 하였으나, 그녀는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해야 할 일은 아직 더 남아 있어.
멸망에서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나, 멸망 이후의 세상도 생각해야 했다.
그날, 은하는 클랜회관을 빠져나와 보문동과 숭인동의 경계선에 위치한 빈민가를 찾았다.
“─이십오.”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래요?”
이십오.
은하가 이십오의 이름을 부르자, 어디선가 그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십오는 별 일도 다 있다는 듯이 눈을 말똥말똥 떴다.
“조사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이 시간에 저를 불러낸 것을 보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고…. 어떤 걸 조사하면 되는데요?”
“한남동에 있는 갤럭시그룹 저택의 보안을 뚫는 방법.” “…이 주인님, 아주 어려운 것만 부탁하시네. 그것만 부탁할 게 아닌, 당연히 거기 있는 사람들의 동선도 조사해달라는 거겠죠?”
은하는 침묵으로 답했다.
침묵은 긍정을 의미했다.
은하의 생각을 알아차린 이십오는 에휴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이십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은하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건물 벽에 가려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빛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재벌가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
그곳에 위치한 갤럭시그룹 본가.
갤럭시그룹의 회장은, 아니, 이제는 전 회장 최윤한은 그곳에 있었다.
☆
중구 명동 대성당.
세상이 한 번 멸망을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절망밖에 보이지가 않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희망이, 기댈 곳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럼 오늘도 기도를 드립시다.”
“”””…….””””
신은 인간을 저버렸다.
신은 죽었다.
멸망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멸망 이전에 존재하던 신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을 대신하여 새로운 신을 만들어냈다.
“신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으며, 우리를 굽어살피고 계십니다. 비록 이 세상은 멸망을 했으나, 그럼에도 우리의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교주의 예배가 끝이 나고.
검은 수도복을 입은 여성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모자 아래로 보이는 검은 머리칼.
마나로 인해 변질된 초록 눈동자.
굽이 낮은 단화를 신은 여성은 곧 연단 위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 감동을 받은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신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연단 위에 선 여성은 마치 그들이 자신의 아이라도 되는 양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두 손을 모았다.
사람들이 따라했다.
그녀가 기도문을 읊자, 이번에도 사람들은 그녀가 내뱉는 구절들을 일일이 따라했다.
“─우리들의 주, 마나신을 통하여 이렇게 비나이다. 아멘.”
“”””…비나이다. 아멘.””””
“오, 할렐루야!”
“”””오, 할렐루야!””””
마나교.
마나 신을 받드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다음과 같이 불렀다.
이리야라고.
리라이프 플레이어 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