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44
강북 중부, 마나관리기구 인근.
레귤러스클랜과 신라클랜 합동으로 제3위계 몬스터를 토벌하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환경이 좋지 않았다.
“길이 왜 이렇게 복잡해….”
종로구는 안쪽으로 들어가면 좁디 좁은 길이 워낙에 많았다.
주거구역으로 이루어지는 길목들.
그런데 몬스터들이 그 길로 들어가 플레이어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하늘을 나는 몬스터들이 좁은 길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피해를 일으키고, 나아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까지 하니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도심에서 자유로이 싸울 수 있는 플레이어의 기동성이 몬스터들에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아가─.
─문제.
대로변에서 활개를 치는 몬스터들.
놈들은 제3위계 몬스터의 주위에 똘똘 뭉쳐 군단장을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군단장은 주변이 탁 트여 엄폐물이 많지 않은 환경을 이용해, 자신과 눈이 마주친 플레이어들에게 세뇌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맨홀 뚜껑은 왜 둥글까?
녀석의 세뇌마법에 걸리는 조건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녀석의 눈을 쳐다본다.
둘째, 문제를 맞히지 못하게 되면 저절로 마나 저항력이 떨어지면서 세뇌마법에 걸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플레이어들은 좀처럼 녀석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저도 저런 몬스터는 처음 보네요. 스핑크스면 스핑크스답게 아침에는 문제나 낼 것이지….”
레귤러스 클랜로드 구연수.
신라 클랜로드 김유진.
두 사람은 간신히 포위망을 구축해 제3위계 몬스터가 더 이상 날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쨌든 저놈을 처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구만.”
“종로구에서도 떨어뜨려야 해요. 레귤러스 클랜로드도 아까 봤겠지만 강북 상공을 뒤덮고 있던 보호마법이 사라진 게 불안해요.” “…그러게. 안 좋은 일만 없었으면 좋겠는데….”
두 사람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문준의 보호마법이 사라졌다.
그에게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제3위계 몬스터가 종로구로 접어들게 되면서 영향을 받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두 사람이 초조해하는 이유였다.
바로 그때─.
─문제.
“문답무용.”
“”””……!!””””
키리링 하고.
돌연 무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빠르게 지나갔다.
제3위계 몬스터의 등에서 선혈이 터져 나왔다.
저 멀리서 검격이 날아온 것이다.
“”””…….””””
제3위계 몬스터는 갑작스런 공격에 경직된 상태로 멈춰버렸고.
플레이어들은 검격이 날아온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금 늦게 왔군.”
제니스 클랜로드.
십이좌 지용현.
경기도에 나가 있어야 했을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
강북 남부, 한남동.
갤럭시그룹 본가에서 나온 은하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근처에서 전투가 일어난 것 같은데 한남동 사람들은 전부 빠져나간 게 아니었나.
멀어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총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은하는 감지망을 펼쳤다.
그를 중심으로 해 퍼져나간 파장에 걸려드는 기척이 나타났다.
플레이어는 20명 정도….
몬스터 수는 그보다 조금 적나.
대략적인 현황을 파악하고.
이내 은하는 멈칫했다.
거대한 기척이 불쑥 그의 감지망에 걸려들었다.
은하는 황급히 어슴푸레하게 푸른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놈이 또….”
제3위계 오버랭크 몬스터 예경.
금호동으로 이동했을 놈이 다시금 용산구로 영역을 옮긴 것이다.
은하는 혀를 찼다.
─투콰아아앙!!
바로 그때.
지상에서 솟구친 빛의 기둥.
가까이에서 발생한 공격이었다.
지면이 진동했다.
그럼에도 예경은 크게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녀석이 빛의 기둥을 무시하는 채로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용산구로 가려는 게 아니야.
중구로 가려고 하고 있어.
아주 골고루 돌아다니면서 편재를 흩뿌리겠다는 건가.
은하는 예경의 진로를 예측했다.
조금 전 공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러려고 했는지.
녀석이 한남동에서 방향을 틀어, 중구 방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은하는 바로 근처를 지나간 놈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플레이어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
그러다 은하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플레이어들의 기척을 느꼈다.
그들의 정체는 대충 예상이 갔다.
조금 전, 공격으로 보아서는 필시 그들 중에 십이좌 유수진도 섞여 있으리라.
그리고 그녀가 있다는 것은 그녀가 소속한 클랜원들도 지역구로 넘어 들어왔다는 뜻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이런 상황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노은하 플레이어.”
“…안녕하세요.”
템페스트 클랜로드 강예희.
한때 마나 폭주를 일으킨 영향으로 붉은 눈을 지니게 된 그녀가 대뜸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뾰족한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걸었다.
뒤이어 그녀 뒤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은하야,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아저씨?”
동해클랜의 육룡(六龍) 중 하나.
선기준이었다.
☆
동해클랜은 은평구를 관할로 두고 있었다.
그래서 은하는 이곳에서 선기준을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에 선기준이 말하기를─.
“─이 근처로 파견을 나왔었거든. 그래서 요 며칠 숙식을 해결하면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난리가 터졌지 뭐냐.”
“집에 안 들어가면 미예가 아저씨 혼내지 않아요?”
“…미예 지금 기숙사에 들어갔다. 평일에는 나 혼자 지내야 해서 이왕 그럴 바에는 파견이나 나가는 편이 좋을 것 같더라고. 그나저나 미예는 괜찮겠지…. 그 애가 깜짝 놀라….”
“아카데미에 서영 누나도 있고, 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
선기준.
그가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다.
종국에는 자신의 딸 선미예에 대한 이야기로 빠지고 말았다.
은하는 재빨리 제동을 걸었다.
어쨌든 오밤중에 이 사달이 나서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부랴부랴 나왔다가 템페스트클랜의 사람들과 마주쳤다는 거구나.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은하는 고개를 돌렸다.
대략 20여명.
플레이어들이 풍기는 기백은 꽤나 범상치 않았다.
아마 템페스트 클랜로드 강예희가 도망치는 예경을 추적하기 위해서 엄선한 사람들일 것이다.
선기준의 동료들도 꽤 실력이 있는 사람들인 듯했다.
“중구로 넘어가는 게 확실해요.”
그러던 중.
유수진이 찾아왔다.
전봇대 위에서 뛰어내린 유수진이 힐끗 은하를 쳐다보고는 강예희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강예희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우리 관할 구역을 벗어났어. 여기서 또 쫓아가기는 애매한데….”
강예희가 읊조렸다.
성동구를 관할로 둔 템페스트클랜.
그들은 이미 관할 지역을 넘어서, 용산구로 들어와 있는 실정이었다.
그녀는 여기에서 더 전선을 늘려 예경을 쫓다가는 손해가 막심하다고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렇겠지.
성동구를 지키는 것도 빠듯한데, 다른 지역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을 리가 없어.
금호동만 보호해도 되는데도 굳이 용산구까지 넘어온 것만으로도 이미 템페스트클랜이 할 일은 다한 셈이야.
은하는 강예희의 판단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애초 템페스트클랜은 지난 의정부 탈환전에서 막대한 전력을 잃었고, 아직도 그때 잃은 전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녀가 전력을 잃는 것을 고민하는 이유가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나저나 서영 누나 말이 맞았네. 내가 아는 강예희는 성격이 워낙에 불 같았었는데….
이번 삶에는 그러지 않은 것 같네.
한편으로 은하는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전 삶에서 그녀는 전 십이좌이자 템페스트 초대 클랜로드 신명환을 경애하며 따랐다.
그로 인해 신명환이 사망하게 되고 그의 자리를 잇게 된 강예희의 성격은 정반대로 돌변하게 되었다.
의정부 탈환에 목을 맨 것은 물론, 의정부 탈환을 기획한 선녀정부에게 강한 적개심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호전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삶에서 강예희는 그런 면모를 품고 있지 않는 듯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노은하 플레이어.”
“아, 네.”
그녀가 불쑥 은하를 불렀다.
선기준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가 그녀의 부름에 응답했다.
“텔레파시스트의 이야기를 들으니, 노은하 플레이어가 아까 이태원에서 저놈에게 일격을 먹였다는데….” “…….”
“우리가 엄호 사격을 해줄 테니, 노은하 플레이어가 저놈에게 다시 한 방을 먹여주는 건 어떨까요.”
“네?”
“현재 템페스트클랜의 전력으로는 성동구를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에요. 그렇다고 놈이 떡하니 중구로 넘어가게 두는 것도 양심에 찔리기도 해서요. 그러니 대부분의 전력은 성동구로 돌려보내고, 저와 수진이가 놈을 막아볼까 합니다.”
“…….”
“하지만 수진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화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서요. 그래서 노은하 플레이어의 힘을 좀 빌리고 싶은데….”
“템페스트 클랜로드. 동해클랜도 한 팔 거들겠습니다.”
강예희가 작전을 설명하고.
유수진이 껌으로 풍선을 불며.
선기준이 호기롭게 참전했다.
은하는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어슴푸레한 밤하늘.
어디선가 동이 트는 모양이었다.
밤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은하는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어디 한 번 해보죠.”
☆
몇 시간.
고작 몇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악을 쓰며 도망치고, 또 싸운 시간이 고작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제, 제발 살려줘…! 돈이라면 다 줄게! 그러니 제발, 아아악…!!”
“어머니, 어머니가 집안에 있어요. 제발 저희 엄마 좀 살려주세요!”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 한다고! 이제 다 끝났어! 다 끝났다고!” “대체 어디로 도망치면 되는 거야! 위아래에서 몬스터들이 몰려드는데 대체 어디로 도망치면 되는데!” “조금만 더 버텨라! 강남에서 곧 응원군이 올 것이다!”
“응원군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아까 동호대교가 무너지는 거 보지 못했어!? 놈들이 한강에서 나타나서 강북을 포위하고 있단 말이야!”
“라이브러리가…, 접속이 안 돼요. 신종 몬스터들이 잔뜩 나타났는데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 거야!”
패닉이었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랫동안 평화에 취해 있던 이들은 끊이지 않고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비명을 질러댔다.
처음에야 군세만 막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 플레이어들도 패닉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강북 외곽에서 몰려들던 몬스터는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강북 안으로 들어오자, 편재가 잇달아 발생하기 시작했다.
전선 안에서도 몬스터가 출몰하니, 전선은 순식간에 무의미해졌다.
“꺄아아아악!!”
“몬스터다! 몬스터가 나타났어!”
“이것들이 왜 튀어나오는 거야!” “아아아악!! 내 팔! 내 팔이…!!”
“쫓아라!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사람과 몬스터가 뒤섞였다.
플레이어들은 전선을 지키는 한편 전선 안쪽에서 벌어지는 참상까지 막아내야 했다.
더군다나─.
─부부부부
메뚜기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들.
놈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을 뜯어먹는 것은 물론이며, 놈들은 건물조차 뜯어먹었다.
가장 큰 문제는 녀석들이 입을 댄 식량은 빠르게 부패한다는 거였다.
“젠장…. 이러면 우리 보고 대체 어떻게 싸우란 거야.”
“물도 마실 수 없어. 근처 마트나 편의점은 완전히 거덜이 났다는군.”
놈들은 재빠른 귀신같았다.
후각이 뛰어나기라도 한지, 놈들은 음식을 꼭꼭 숨겨놓은 장소까지도 찾아내버렸다.
플레이어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물병을 순식간에 빼앗아버리기까지 했다.
장기전이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놈들의 행동에 절로 욕지기를 퍼부었다.
“끄아아악! 뭐, 뭐하는 짓이야!?” “조심해! 저 자식 칼을 들고 있어!”
“누가 저 새끼 막아!!”
하물며 다른 곳에서는.
환각에 빠진 사람들이 속출했으며, 그들이 피아를 구분하지 못한 채로 칼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도심의 행정기능은 완전히 마비가 되고 말았다.
“대체…, 얼마나 싸워야 하는 거야. 언제 끝이 나는 거냐고!”
“틀렸어. 다 끝났어…. 십이좌들도 지금 여기에 없다는데 우리들 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
좌절, 절망, 죽음에 대한 공포 등.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부정적인 감정을 품게 되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싸워야.
얼마나 더 싸워야 끝나는 것인가.
그들은 아무도 답을 하지 못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되물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좌절해야 했다.
그리고 가장 큰 재앙은─.
─Whiiiiieeeeeaaaaoooooo
바로 도심 상공을 부유하고 있는, 저 몬스터라는 것.
놈은 다른 몬스터들과 완전히 다른 격을 지닌 몬스터였다.
강북 전역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하늘에 떠 있는 고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
녀석은, 재앙이었다.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재앙.
실제로 플레이어들이 녀석을 향해 공격을 가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저 녀석은 마치 개미에게 물리기라도 한 듯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놈이 강북 전역을 날아다니며 곳곳에 강력한 편재를 일으켰다.
Whiiieeeaaaoooo
저것을 어떻게 쓰러뜨리란 말인가.
쓰러뜨리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별다른 타격을 주
지도 못하고.
셀 수 없이 많은 편재를 야기하고.
하필 플레이어들이 마법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재밍이나 가하고.
심지어 대량 포격 기술까지 갖춘 몬스터를 어떻게 상대하란 말인가.
“다 끝났어….”
“이제 틀렸어.”
놈이 울었다.
강북 중구, 동대입구역 인근.
사람들은 머리 위에 떠오른 수많은 마법진을 보고 전의를 상실했다.
하나 같이 거대한 규모의 마법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지는 마법진은 틀림없이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Whiiieeeeeaaaaaoooooooo
마법진이 번쩍였다.
마법이 발동하려 하고 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어떤 이는 무릎을 꿇었고.
또 어떤 이는 넋을 놓았다.
전부, 끝났다.
“”””…….””””
과연 내일이 올 것인가.
사람들은 모두 부정했다.
밤은 아직도 시커맸다.
어디선가 태양이 뜨고 있는 것인지 밤하늘 끝자락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강북에 있는 자신들에게, 더 이상 아침은 오지 않을 것이다.
Whiiiiieeeeeeaaaaooooooo
내일은,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체념해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꼭 종지부를 찍는 듯한 마법진을 올려다본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것으로 끝이라고.
그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투콰아아앙!!
거대한 굉음.
눈부신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걸 깨닫고는 고개를 들었다.
“”””……!!””””
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빛줄기가 녀석을 덮쳐버렸다.
Whiiiaaaaooooo….
빛줄기 속에 갇힌 녀석이 울고.
이내 상공을 뒤덮고 있던 마법진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몇몇 마법진은 이미 가동을 시작해 지상으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오밥 가드(Baobab Guard)
프로퍼게이션(Propagation)
순식간이었다.
마법이 떨어지는 지점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났다.
반투명한 나무.
지면에 뿌리를 틀고 자라난 나무는 기하급수적으로 가지를 뻗으며 금세 일대 전체를 아우르는 크기가 됐다.
나무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쏴아아아
셀 수 없이 많은 포격.
가지는 포격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부러지고, 가지에 맺힌 나뭇잎들이 주변에 흩날렸다.
그럼에도 포격은 지면에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슈슈슉
설령 가지가 부러진다고 할지라도.
나뭇가지는 끝없이 자라났다.
한 사람의 마나를 양분으로 태어난 나무가 마치 걸신이라도 들린 듯, 떨어지는 포격을 흡수해갔다.
흩날리는 나뭇잎이 마나를 흡수해, 지면 아래 뿌리를 튼 나무에 영양을 공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나무는 점점 쓰러졌다.
끝없이 하늘로 솟구칠 것만 같던 가지는 끝내 질량을 이기지 못하고 푹푹 꺾여나갔다.
반면 포격은 기세를 잃긴 했지만 아직도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 전처럼 마냥 굳어 있지 않았다.
한 사람이 본능적으로 소리쳤고, 하나의 소리는 곧 함성이 되었다.
“─막아라! 어떻게든 막아!!”
“죽을힘을 다해서 막아라! 조금만 더 버텨!!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터가 전합니다! 현장에 있는 가디언들은 모두 보호마법을 발동할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뒤에서 서포터들이 엄호할 예정입니다!]“얼마 남지 않았어! 저것도 막지 못하면 그냥 나가 뒈져!!”
“막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데요!?”
“닥쳐! 막으라면 막아!”
선기준.
그가 만들어준 기회를 이대로 그냥 놓칠 수 없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넋을 잃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이 끝내 쓰러지면서까지 약화시킨 공격을, 자신들이 합세해 막아내는 것이다.
[전원 마법 전개!!]네비게이터들이 지시를 내렸다.
텔레파시스트들이 전달했다.
가디언들이 함성을 질렀다.
호흡을 맞춘 가디언들이 집단이서 발동하는 마법을 전개했다.
서포터들이 그들의 뒤를 받쳤고, 캐스터들이 다시 그 뒤를 받쳤다.
Whiiiieeeaaaoo….
사람들이 악에 받쳐 펼쳐낸 마법.
거대하고, 두텁고 몇 겹으로 쌓인 보호마법이 끝내 포격을 막아냈다.
그사이 발이 빠른 헌터들은 재빨리 체내 마나를 모두 소진하고 탈진한 선기준에게 뛰어갔다.
몬스터들이 그를 덮치려 하였으나, 딜러들이 제 몸을 무릅쓰고 그들과 육탄전을 벌였다.
이윽고 헌터들이 선기준을 데리고 후방으로 대피했고, 스나이퍼들이 그들이 무사히 후퇴하도록 엄호를 해주었으며.
레인저들이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급격하게 바뀐 상황을 파악했다.
마지막으로─.
─플래티나 크로스
“”””……!!!””””
다시금 빛줄기가 솟구쳤다.
화약 냄새가 나지 않는 빛줄기.
어딘가 건물 옥상에서 솟구쳐 오른 빛줄기가 백금색으로 반짝였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에 가려져 있던 별이 마지막 순간을 다해 반짝이는 초신성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별이, 십자가로 퍼졌다.
──!!!!
세상을 뒤흔드는 듯한 굉음.
백금색의 별이 폭발했다.
일순 밤하늘이 번쩍였다.
“”””아….””””
백금색의 빛이 세상에 퍼진다.
세상 저 멀리 퍼져나간 빛줄기가 밤하늘을 백금색으로 물들였다.
세상이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던 밤하늘이 깨끗이 사라졌다.
플래티나 크로스
다시 한 번.
플래티나 크로스
그리고 또 한 번.
마치 밤을 몰아내는 것처럼.
아니, 밤을 몰아내겠다는 것처럼.
백금색의 빛이 연이어 번쩍였다.
“”””…….””””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빛줄기가 어디에서 날아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플래티나 크로스
어딘가의 건물 옥상.
군청색의 제복을 입은 남자는 마치 저 고래가 무섭지 않다는 듯이 연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다…. 틀림없어.”
“라고?”
“랑 싸워 이겼다는 그놈?”
대체 저 남자는 누구인가.
사람들의 의문은 금세 해소됐다.
노은하.
그에 대해 알고 있던 플레이어가 무심결에 중얼거린 말이 순식간에 좌중에 퍼져나갔다.
☆
유수진은 물론이고.
템페스트 클랜로드 강예희 자신과 간부들이 어그로를 끌어주겠다.
놈이 일으키는 피해는 동해클랜이 어떻게든 막아주겠다.
그러니 너는 전력을 퍼부어라.
강예희의 작전이었다.
“거, 참…. 더럽게도 안 죽네.”
은하는 그녀의 작전을 받아들였다.
손해 볼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예경을 상대하는데 누군가가 어그로를 끌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십이좌와 S급 클랜이 마침 어그로를 끌어주겠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힘이 다 빠지네….”
“빠빠 뿌뿌 빠뿌삐 뿌.”
“나는 엄살 피우는 거 아니거든?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데….”
“뿌뿌.”
동대입구역 방면.
은하는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서 예경을 상대하고 있었다.
선기준이 예경의 발목을 붙잡고, 유수진이 어그로를 끌어준 덕분에.
은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시리게 피는 겨울에 마나를 집중시킬 수 있었다.
세 번으로는 타격이 별로 없고…. 네 번은 해야 타격이 있나 보네.
그러면서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내구력 하나는 지독했다.
보통 플래티나 크로스를 펼칠 때, 은하는 검에 담는 마나를 세 번이나 압축했다.
역동적인 전투를 치르는데 있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세 번보다 많이 압축을 하게 되면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데다 파괴력을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하물며 도심지 같은 경우는 더욱.
그나마 예경이 하늘을 날고 있으니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예경은 하늘을 날고 있어서 주변에 피해가 갈 일이 없었다.
게다가 동해 클랜원들이 그를 지켜주고 있는 덕분에, 은하는 이제 편히 마나를 압축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다섯 번.
─플래티나 크로스
피가 역류하는 듯한 감각.
팔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은하는 압축할 대로 꾹꾹 눌러 담은 마법을 해방시켰다.
──!!
효과는 과히 대단했다.
하늘이 진동했다.
그동안 미동도 보이지 않던 놈이, 드디어 피를 흘렸다.
Whiiieeeaaaaooooo….
복부를 사선으로 가로지른 상처.
쩍 벌어진 상처에서 굵직한 피가 철퍼덕 쏟아졌다.
녀석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동요했다.
어디 한 번 더 먹어봐라.
예경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처음으로 놈이 자신의 존재를 경계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으로 누워 허우적대는 놈의 눈은 꼭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플래티나 크로스
그래, 내가 바로 너의 적이다.
은하는 다시금 검을 내리쳤다.
허공을 가른 빛줄기가 이제는 놈의 원뿔을 스쳤다.
Whiiieeeaaaa….
원뿔 측면이 깊이 파였다.
녀석이 당황한다.
은하는 다시금 플래티나 크로스로 녀석을 공격하려 했다.
바로 그때─.
─Whiiieeeeeaaooooo
“……!!”
녀석이 재밍을 발동했다.
한계까지 마법을 압축하던 은하는 술식이 허무하게 흩어지는 걸 보며 망연자실해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마나회로가 반응했다.
몸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압축했던 마나가 체내로 돌아가려 역류하고 있는 것이다.
마나 폭주.
기프트 부여 아티펙트
그 순간.
그는 즉각 를 발동해 재밍 마법에 저항했다.
그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자식이….”
가 없었다면 그대로 죽고 말았으리라.
식도를 타고 올라온 피를 탁 뱉은 은하는 예경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예경은 그에게서 눈을 돌려 방향을 틀고 있었다.
Whiiiieeeeaaaaoooo
놈이 뭐라고 소리를 내지른다.
그러자 일대에 존재하는 몬스터가 움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일대만이 아니었다.
강북 전역에 있는 몬스터들이 모두 같은 반응을 보였다.
“후퇴하는 건가.”
마나를 상당량 소모했다.
마나회로가 꼬였는지 활성화하려니 고통이 찾아들었다.
더군다나 예경은 뒤에 몬스터들로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었다.
결국 은하는 별 수 없이 멀어지는 예경을 바라보아야 했다.
“”””…….”””””
예경이 하늘 위로 사라지고.
몬스터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길고 긴 싸움이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플레이어들은 퇴각하려는 몬스터들을 쫓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녀석들이 퇴각하는 걸 한참 동안 바라보다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것이다.
털썩
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이란 힘은 다 써버린 것 같았다.
진이 다 빠졌다.
“아, 겨우 끝났네. 이 짓을 앞으로 얼마나 해야 하는 거야?”
“삐삐 빠빠….”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밤이 가고, 아침이 오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밤.
길고 긴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단 좀 쉬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해야겠다. 밤이 되면 또 싸워야 한다니….”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놈들은 퇴각한 것에 불과했다.
코쿤이 무너진 이상, 몬스터들은 다시 밤이 되면 전력을 갖춘 채로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
─너희만 전력을 갖추냐?
우리도 이제 전력을 갖추지.
한 번 기습을 당했는데.
두 번 또 당하겠는가.
은하는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