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45
군세가 침공하고 1일째 아침.
어딘가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
도시는 무너져 있었다.
온전히 남아 있는 건물이 없었고, 멀쩡한 도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소화전은 터졌는지 끊임없이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정작 그 물은 검고 탁해서 도저히 마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젯밤, 아니, 오늘 자정.
몬스터들이 작정을 하고 도시 내의 인프라를 파괴해버린 것이다.
대단히 지능적이었다.
더군다나─.
“─먹을 게 없어….”
“물, 물….”
겨우 몇 시간에 불과하건만.
메뚜기형 몬스터가 지나간 일대는 물과 식량이 남아나지 않았다.
밤새 도망쳐 다닌 사람들은 이제 꾀죄죄한 몰골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야 했다.
당연히 마트와 편의점 같은 곳은 사람들끼리 다툼이 벌어졌다.
“꺄악!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내가 먼저 들어왔어. 이게 어디서 내껄 훔쳐가려고 해?”
“이게 어디 당신들 꺼예요? 그리고 좀 나눠주면 어떻고요!”
“주위를 보쇼. 남는 게 뭐가 있나. 메뚜기들이 곳곳에 독을 뿌려가지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이것밖에 남아 있지 않단 말이야!”
“근데 플레이어들은 뭐하고 있었던 거야!? 어디 가서 보이지도 않다가 이제야 어물쩍 나타나는 사람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내가 그동안 쟤들한테 낸 세금이 얼마인데, 쯧….”
“”””…….””””
폭동, 폭력사태, 이간질 등등.
강북 곳곳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몬스터가 나타나자 나 몰라라 하며 달아났다 돌아온 플레이어들은 특히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러고도 그들은 이전처럼 언성을 높일 수가 없었다.
“밥만 축 내는 자식들…. 이러라고 내가 너희한테 돈을 낸 줄 알아?”
사람들의 민심이 돌아선 것이다.
이날, 사람들은 몬스터의 침공으로 정작 위기가 발생하면 어느 클랜이 자신들을 도와주고, 또 어느 클랜이 줄행랑을 치는지 알게 되었다.
자연히 어느 클랜의 평판은 오르고 어느 클랜의 평판은 떨어졌다.
그중에서─.
“─용산구는 가장 피해가 적다며? 그게 어떻게 된 일이야? 몬스터가 그곳으로 제일 많이 몰려들었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어?”
“그게…. 지금 통신이 잘 안 돼서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하겠는데…. 도망치지 않고 남은 플레이어들과 외국인들, 주민들이 힙을 합쳐 싸운 모양이더라고.” “뭐? 외국인들? 주민들?”
“그래. 거기 외국인 플레이어 중에 이라고…. 옛날에 상당히 이름을 날린 플레이어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지역민들을 모두 통합해 전장을 지휘했다고 하더라.”
“허…. 그런 일이 다 있었군.” “근데 참 신기한 게…. 이 자신은 판도라클랜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인 것뿐이라고 했다나.” “판도라클랜? 그건 뭐야?” “왜, 있잖아. 노은하가 아카데미를 졸업해서 만든 클랜.” “아, 그 클랜? 근데 거기는 완전 신입들로 이루어진 클랜 아니었어? 지금 그럼 걔네가 주도해서 지역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전선을 구축해 놈들과 싸웠다는 소리잖아.”
판도라클랜.
그들의 입에 그 이름이 제일 많이 오르내렸다.
대다수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사람들은 곧 노은하가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생 클랜이 다른 클랜들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며 용산구를 지켜냈다는 소식에 놀라워했다.
“에이, 말도 안 돼. 그게 말이 돼? 20살밖에 안 된 녀석들이 싸우면 얼마나 싸운다고….”
사람들은 대부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 통신이 드문드문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각 지역에서 일어난 정보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다른 지역에서 피난을 온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퍼뜨리기까지 했다.
“허, 참…. 말도 안 돼.”
“그게 사실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그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클랜원들을 이끌고서는 제4위계 군단장과 군세에 대항해서 삼각지를 지켜냈다고?”
“이태원도 장난이 아닌데, 이거…. 호시미야 카에데란 레인저가 고위계 몬스터가 전선에 다가오지 못하게 견제하고, 아리엘이란 텔레파시스트는 곡예로 전선을 뛰어다니며 텔레파시를 전달했다는데?”
“류연화만 활약한 게 아니군. 글쎄, 진파랑과 최은혁이라는 플레이어가 몬스터의 대열을 무너뜨렸다나 봐. 스위치가 기가 막혔다더라.”
판도라 클랜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그들의 활약이 너무 커서 쉽게 믿지 못했다.
그럼에도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용산구는 물과 식량이 그렇게까지 부족하지 않은 모양이야.” “어디 그뿐인가. 거기 외국인들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탓에 폭동이 일어나지도 않는다며?” “지금 강북에서 제일 치안이 안정된 곳은 용산구일지도 모르겠네.”
“”””…….””””
용산구는 피해가 덜하다는 것.
치안이 안정돼 있다는 것.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젠장, 부럽네…. 판도라클랜은 왜 용산구에 있는 거야?” “어디 클랜은 그렇게 잘한다는데, 우리 동네에 있는 클랜은 뭔지…. 돈은 돈대로 받아가면서 중요할 때 도망이나 치지 않나….”
이 순간, 사람들은 용산구에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한편─.
“─근데 그러면 노은하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클랜원들은 다 활약하고 있는데 이놈은 뭐래?”
“이 멍청아, 상단을 봐라. 거기에 기사가 올라와 있잖아. 안 보여?” “기사? 아, 이건가. 어, 야…. 아까 하늘 위에 떠 있던 그놈을 쫓아낸 사람이 노은하였어?” “이건 이제야 알았네. 그래, 임마. 클랜원들이 용산구를 지키는 사이, 걔네 클랜로드는 그 고래를 잡으러 용산구와 중구를 돌아다녔단다!”
“그 자리에 십이좌 도 같이 있었다는 모양이야. 도 중구 사람들을 지키느라 애를 썼다는 모양이고….”
“그래도 다행이야. 어제 사람들이 도, 도, 까지 없다고 해서 눈앞이 어찌나 아찔했었는지…. 그들을 대신할 사람들이 나타나서 다행이야, 다행.” “은 파견을 나가지 않고 도봉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더라. 그래서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뛰어와 군단장에게 상처를 입혔다던데?”
오늘 새벽 끝자락에 있었던 일.
어슴푸레한 하늘을 새하얗게 밝혀, 군단장으로 추정이 되는 몬스터에게 본때를 보여준 노은하.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름을 모를지라도 나 고래를 잡은 플레이어라고 말하면 누구나 알아듣게 되었다.
아니면 백금색 섬광이라거나.
☆
강북 남부, 용산구 이태원.
마나회로가 비명을 지를 만큼이나 플래티나 크로스를 남발한 은하는 겨우겨우 이태원으로 돌아왔다.
선기준 덕분이었다.
체내 마나를 모두 소모해 탈진한 그가 은하가 준 커피우유를 먹고는 정신을 차렸고, 그가 은하를 업고 여기까지 와준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됐어요. 아저씨, 고마워요.”
“고맙기는…. 오히려 내가 그놈을 쫓아낸 너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다. 너 아니었으면 그때 다 죽었을지도 몰라.”
“아저씨도 힘내셨잖아요, 뭘.”
“그거 공격 한 번 막은 것 가지고 뭘 그러냐. 아, 그러고 보니 은하야. 아까 네가 준 커피우유라는 포션은 나중에 꼭 챙겨주는 거다?”
“네, 약속할게요.”
저 멀리서 클랜원들이 보였다.
클랜원들에게 아는 척을 한 은하는 이내 선기준에게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 선기준은 은하가 내어준 커피우유를 맛보고 감탄했더랬다.
단시간에 체력과 마나를 충분하게 회복시키는 포션.
정석훈이 은하를 위한 맞춤형으로 제작한 포션이었다.
이제는 클랜원들에게도 제공되는 포션이기도 했고.
그런데 선기준이 포션을 맛보고는 자신도 나중에 몇 병 사고 싶다는 말을 전해온 것이다.
은하는 넙죽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스그룹 회장님한테는 한 번 말씀을 드려볼게요. 동해클랜에게도 팔아줄 수 있겠냐고…. 이 포션이 만드는데 수고가 엄청 든다고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한정판으로 만드는 거라고….”
“많이는 바라지 않아. 아무튼 그럼 기대하고 있으마. 수고했다.” “아저씨도 수고하셨어요.”
선기준이 척 하고 손을 내밀었다.
은하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곧이어─.
“─은하야! 너 꼴이 그게 뭐야!?”
“진짜…. 우리는 용산구를 지키고, 너는 혼자 고래 같이 생긴 몬스터를 잡으러 갔다 온 거야? 진짜 징하다. 그러다 죽었으면 어쩔 뻔했어?”
“아, 누나. 민지야….”
제일 먼저 달려온 노은아.
그녀가 은하를 와락 껴안았다.
뒤이어 다가온 김민지는 꾀죄죄한 얼굴을 하고서 한숨부터 쉬었다.
이윽고 다른 사람들도 몰려들었다.
“어디 봐. 다친 데가 있으면 얼른 말하란 말이야…. 계속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누나, 난 진짜 괜찮은데….” “흠…. 산신령의 눈으로 살펴보면 괜찮은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와, 이 상태로 어떻게 거기서 여기까지 왔냐. 진짜 대단하다. 언니, 얘 지금 마나회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회로가 뭐 이렇게 꼬였대?”
“노은하 인성이 배배 꼬였으니까 회로도 배배 꼬였나 보지.”
“…일리 있는 말이네.”
클랜원들이 속사포처럼 말했다.
김민지가 보나마나 뻔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카에데가 추임새를 넣었다.
은하는 각자 동시에 쏟아내는 말에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구에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저기, 얘들아. 은하가 지금 많이 당황한 것 같은데, 우리 한 사람씩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창진이 말이 맞아. 은하 상태를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니까 다들 조용히 있어줘.”
“은아, 네가 웬일로 날….” “창진이 너도 조용히 하고.” “응…, 그럴게, 은아야.”
“어…, 저기, 형. 힘내세요.”
그러한 상황에서 애꿎은 한창진이 은아에게 혼이 났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한창진.
그동안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강시형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여하튼─.
“─일단 비상진료소로 데려가자! 수빈아, 지금 시간 되지?”
“어쩔 수 없네. 나도 도와줄게.”
“그럼 나는 당장 쥐들을 보내서, 자리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놓을게.”
노은아, 배수빈, 김민지.
세 사람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은하는 일단 임시방편으로 은아의 치료마법을 받게 된 상황에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얘가 지금 뭘 잘했다고 웃어?”
“미안. 그냥, 왠지 기분이 좋아서.”
“피이, 얘 좀 봐. 지금 다쳤으면서 웃음이 나온다는 거니?”
노은아가 눈에 힘을 주었으나.
은하는 그럼에도 웃었다.
결국 은아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굳은 얼굴을 풀었다.
그제야 클랜원들도 얼굴을 폈다.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옮기고 있는 반면, 판도라클랜에는 죽은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 클랜원들은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 웃는 거 보니까 나도 좋네. 그럼 은하야, 나는 그만 돌아가마. 몬스터들이 퇴각한 틈에 클랜으로 돌아가 봐야지.” “네, 아저씨. 조심히 가세요.” “그래.”
잠시 후.
노은아에게 치료를 받은 선기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하와 클랜원들은 떠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민호와 아리엘이 외국인들을 이끌고 위에서 내려왔다.
“은하은하! 내가 너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살아 있는 거지!? 안 죽은 거 맞지!?”
“…너 때문에 죽을 것 같아.”
“너무해! 지금 날 피한 거야!?”
“어, 너 피한 거야.”
“힝….”
“울지 마라.”
“그럼 안아도 돼?” “아니다. 그냥 울어라.”
“히잉….”
우당탕 하며.
대뜸 은하에게 달려드는 아리엘.
다행히 그녀의 행동을 예측한 그는 옆으로 슥 피할 수 있었다.
“─나한테 파티 지휘를 맡겨놓고, 혼자 군단장이나 쓰러뜨리러 가니까 좋냐?”
“전에는 파티를 이끌고 싶다면서? 왜? 애들한테 얘기 들어보니 이번에 아주 잘했다던데. 고생했다.” “그래, 그렇게 얘기하기는 했었지. 그런데 설마 전선을 지휘하면서까지 싸울 줄은 생각도 못했지. 어쨌든 너도 고생했다.”
그때 목민호는 뚱한 얼굴을 했다.
은하는 그를 보고 낄낄거렸다.
목민호가 뚱한 얼굴을 한 것만으로 그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아까 삼각지에 있는 클랜원들한테 연락이 왔는데 다들 무사하다고 하더라.” “…다행이네. 지금은 어디 있대?”
“일단 이태원으로 모이기로 했어. 조금 이따가 도착할 거야.”
은하는 목민호를 통해 삼각지에서 험난한 전투를 치렀을 클랜원들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들까지 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
탁 하고.
그들이 있던 공간에 별안간 사람이 한 명 나타난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은하와 클랜원들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누구지?
살기는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적은 아닌 것 같은데….
자신과 클랜원들의 감지망을 뚫고, 그것도 모자라 진형 안까지 들어온 플레이어.
발목까지 내려오는 로브를 뒤집어쓴 플레이어의 등장에.
그들은 그만 자동적으로 긴장하고 말았다.
그러다─.
─아인이라고?
은하는 상대가 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플레이어가 로브를 뒤집어쓰면서 로브에 감싸여 불룩 튀어나온 귀와 꼬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윽고 플레이어가 입을 열었다.
아니, 텔레파시를 전달했다.
[마나관리기구에서 알려드립니다. 마나관리기구는 오늘 새벽에 일어난 사태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마나관리기구는 헌법에 따라 선녀가 부재한 상황에서 국가적인 비상사태가 발생했기에, 자동적으로 선녀의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바입니다.]텔레파시스트가 전한 메시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텔레파시에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그는 눈앞에 있는 텔레파시스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이런 상황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며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한 부류로 제한되어 있었다.
어둠 쪽의 사람이구나.
어둠에 적을 둔 플레이어다.
평소 양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전서구 역할을 하며 움직이게 만들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여, 이 시간부로 마나관리기구 감시국장 백서진이 장관 문준을 대리해 현재 상황을 총 지휘할 것임을 알립니다. 따라서 모든 플레이어는 지금 이 시각부로 마나관리기구의 지휘 아래로 들어와 국가의 위기에 힘을 보태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 바입니다.]십이좌 백서진.
음지를 관리하는 그가 정면에 나선 것이다.
이전 삶과 똑같았다.
그때도 문준이 세상을 떠나게 되며 백서진이 마나관리기구를 지휘하게 되었다.
의 소식은 들리지 않으면서 을 대리하겠다는 걸로 보면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네.
은 아직 살아 있는 건지.
아니면 선생님이 의 타계로 사람들이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해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건지.
텔레파시를 들으며.
은하는 생각에 잠겼다.
백서진의 의중을 읽으려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마나관리기구가 모든 플레이어들을 지휘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흐름을 떠올렸다.
분명 이 다음에는─.
─각 지역구를 관할로 둔 클랜이 지역방어의 역할을 맡고, 클랜들을 규합하는 일을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전에 지역구 대표자들끼리 모여 작전을 논했던 것 같고.
아니나 다를까.
은하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각 지역이 방어대를 조직하여 지역 방어에 임할 것을 제안합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들은 오후 1시까지 마나관리기구 본부로 와주시기 바랍니다.]백서진이 어둠 쪽의 사람을 각지로 보낸 이유였다.
지역의 대표들을 소집해,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서.
이윽고 텔레파시스트는 각 지역의 대표 클랜이라고 할 수 있는 클랜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북구 레귤러스클랜, 성북구 신라클랜, 서대문구 명왕클랜, 중랑구 블레이즈클랜, 성동구 템페스트클랜, 마포구 KK클랜, 은평구 동해클랜, 동대문구 단군클랜, 광진구 삼라클랜, 중구 한성클랜, 용산구 DM클랜. 이상으로 호명된 대표자들은 속히 마나관리기구 본부에 집합하기 바랍니다.]“”””…….””””
텔레파시스트가 전달한 메시지에는 판도라클랜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
용산구의 대표 클랜은 DM이라고.
텔레파시스트는 그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모습을 감춰버린 것이다.
“허, 참….”
“빠빠….”
“”””…….””””
클랜원들은 은하의 눈치를 살폈고.
은하는 기가 차서 코웃음을 쳤다.
─이것 봐라?
☆
서울 종로구, 마나관리기구 본부.
이날 회의실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클랜의 클랜로드들하고 십이좌들이 잇달아 모여들고 있었다.
“…제니스 클랜로드? 아니, 여기는 어떻게 온 겁니까? 제가 알기로는 경기도로 출장을 나갔을 텐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별 수 없이 다른 클랜원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더군요.” “아, 네….”
“”””…….””””
가장 먼저 회의실에 들어와 있던 사람은 십이좌 인 동시에 제니스 클랜로드인 지용현이었다.
단군 클랜로드 장봉전을 비롯해, 회의실에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용현을 보고 깜짝 놀라했다.
그들은 지용현이 자리에 있는 것이 어째 꺼림칙하기는 했으나 십이좌가 서울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한편 회의에 참석하는 자격을 지닌 사람은 십이좌이거나 관할구를 둔 클랜의 대표자여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니스클랜의 경우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3명까지 허용되었다.
“이거야, 원. 좀 너무한 것 아닌가. 누구는 십이좌도 하고 있는데다가 도봉구와 노원구를 가지고 있어서 세 명이나 참석할 수 있고….”
“”””…….””””
마치 들리라는 식으로.
자리에 앉은 단군 클랜로드 장봉전은 투덜거렸다.
허나 클랜로드들은 장봉전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콧방귀를 끼었다.
“지도 십이좌를 데리고 있으면서 남한테 뭐라 하는 것 보소. 이제는 A급도 되지 않는 클랜이 겨우겨우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말도 참 많아요.”
“크윽…!”
도긴개긴이었다.
레귤러스 클랜로드 구연수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결국 장봉전만 얼굴을 붉히고 마는 해프닝만 있었다.
신라 클랜로드 김유진을 비롯해, 몇몇 클랜로드들은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 모인 건가.”
약속 시간이 흘렀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정확히 나타난 백서진은 상석에 서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는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자석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용산구는 오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1시까지 오라 하지 않았나?”
“”””…….””””
용산구라는 푯말이 붙은 자리.
그가 언짢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살아있는 신화의 한마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클랜로드들은 멸망한 세계를 겪어 자신들과 완전히 다른 기백을 품은 백서진에게 움찔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
─벌컥
대뜸 문이 열렸다.
백서진의 시선이 가늘어지고.
클랜로드들이 문이 열린 방향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네요. 도중에 일을 하나 처리하느라 늦고 말았거든요.” “”””…….””””
회장 안으로 들어온 한 남자.
군데군데 피로 얼룩진 제복을 입은 남자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판도라 클랜로드 노은하였다.
노은하의 정체를 모를 리가 없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용산구의 대표 클랜으로 참석하는 판도라 클랜로드 노은하입니다.”
그러나 노은하는 아주 당당하게도, 자신보다 경력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뜸 자신을 소개했다.
클랜로드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백서진은─.
“─나는 용산구의 대표 클랜으로 DM클랜의 대표가 오라고 했는데. 현재 용산구를 관할구로 둔 클랜은 DM클랜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다소 불쾌하다는 듯한 어조로.
백서진이 노은하를 노려보았다.
그가 기백을 내뿜었다.
클랜로드들조차도 움찔하고 마는 기백이었다.
그럼에도 은하는 주눅이 들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주머니를 뒤적거리기까지 했다.
“네, 그렇죠. 용산구를 관할로 하는 클랜이 지금은 DM클랜이긴 하죠. 그래서 제가 DM클랜로드를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뭐?”
“글쎄, DM 클랜로드가 몸이 아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저한테 얘기하더라고요.” “”””…….””””
“그래서 DM클랜을 대신해 저한테 회의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했고요.”
딸그락 하고.
노은하가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
산을 배경으로 용이 그려진 문장.
DM클랜의 배지였다.
그 위에 피가 얼룩져 있었다.
“이걸로 자격은 충분하죠?”
“”””…….””””
“아하하하! 그래, 좋다. 허락하마.”
노은하는 태연하게 물었고.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에 할 말을 잃었다.
유일하게 백서진만 크게 웃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