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51
몬스터가 침공하고 이틀째 아침.
용산구의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며 밤사이 무너진 진지를 보수했다.
“”””…….””””
전날, 용산구에 출몰한 두 마리의 군단장들.
제4위계 삼각지 대장두터비.
군단장의 위계가 낮다고 하더라도, 군단장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는 현실은 그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하물며 그들은 한강을 접하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었다.
오늘 밤도, 두 마리의 군단장들은 자신들이 보수한 진지를 무너뜨리며 침공해 올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새하얀 천에 덮여 한쪽 건물에 안치돼 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어젯밤 중구에서 제3위계 몬스터를 쓰러뜨렸다면서? S급 클랜의 사람들이나 십이좌들도 아직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군단장을 처음으로 쓰러뜨렸다고?”
“이보게! 라니 그렇게 친근감이 없게 불러서야 되겠는가? 판도라 클랜로드가 어디 남의 동네 사람이냐고! 판도라 클랜로드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겠어!?”
“면 어떻고 판도라 클랜로드면 어때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잠도 자지 못하고 싸우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용산구의 사람들은 금세 활기 찬 어조로 떠들었다.
비록 현재 상황이 암울하다지만,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마냥 암울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주민들과 외국인들이 힘을 합쳐서 플레이어들과 싸우고 있기도 했고, 판도라 클랜원들이 군세를 막아내고 있기도 했다.
또한 다섯 번째 군단장이 나타났어도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노은하가 클랜원들과 군단장을 쓰러뜨렸다는 소식이 활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어? 저거 뭐야?”
“어어…. 뭐가 들어오고 있는데?”
서빙고로를 정비하고 있던 사람들.
그들은 이내 동작대교를 건너오는 트럭들을 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무, 물자다! 물자가 틀림없어!”
“시리우스그룹의 로고가 보인다! 앨리스그룹하고 루미너스그룹도…! 다른 그룹들 로고도 보여!”
“저것이 몇 대야….”
강북과 강남을 잇는 다리.
하지만 한강을 걸친 다리는 현재 코쿤이 파괴된 것으로 인해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강 속에 숨은 몬스터들이 주변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들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거나 다리 위를 차지하고서는 사람들의 이동을 방해했다.
정확히 말하면 강남에서 강북으로 물자가 이동하는 것을 막은 것이다.
그런데 동작대교의 상황은 달랐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마음을 빠르고 안전하게 운송하는 삼라 통운입니다! 내 이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우리의 영웅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시리우스그룹을 주축으로 하여 국내 그룹들이 물자 보급에 나섰습니다.]선두를 달리는 트럭 위에 서 있던 플레이어가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텔레파시를 전파했다.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다.
“밥이다! 얘들아, 밥이 온다!”
“누가 판도라클랜에 연락해!”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래야 나라지! 이래야 재계그룹이지!”
몬스터들이 한강 다리를 통제하며 강북은 고립 상태에 놓여 있었다.
결국 자신들은 자신들끼리 외로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고.
외부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고.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허나 판도라클랜이 용산구로 오며 동작대교를 완벽하게 사수한 결과, 강남과 강북을 잇는 길이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에 시리우스그룹을 필두로 하여, 여러 재계그룹들이 물자를 지원해 삼라 통운에 운송을 부탁한 것이다.
“나가! 나가서 얼른 물자 받아!”
“판도라클랜 덕분에 재계그룹들이 동작대교를 건널 수 있던 거라며?” “캬! 담배나 술도 있으려나? 마침 다 떨어졌는데….”
“이것들아! 거기서 보고 있지 말고 얼른 나가서 길을 알려주란 말이야! 저 많은 트럭들을 어디다 주차할지 머리를 굴려야 할 거 아니야!”
“”””판도라클랜 만세!!!””””
☆
여우비의 상태는 호전되었다.
새까맣게 변질됐던 피부도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엘릭서의 효력이 체내에 완전히 스며들게 하기 위해 하루 동안 안정을 취해야 했다.
여우비 누나가 전투에 참여하는 걸 기대하기는 어렵겠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곤히 잠들어 있는 여우비.
유남훈은 그녀의 곁을 지키겠다며 병실에 남기로 했다.
은하는 노은아와 차은우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
“군단장들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마법은 만들지 못하는 거야?”
“만들 수 없는 건 아닌데 차분히 분석할 시간이 부족한 거야. 시간만 충분히 있다면 치료마법을 개발할 수 있을 거야.”
제4위계 군단장이 둘.
은하는 이제는 울음을 그치고 활짝 웃을 수 있게 된 은우에게 물었다.
그러자 대답이 반대쪽에서 나왔다.
은아가 답한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봐야지. 이제 우비 언니도 살아났으니까, 한 번 분석해보려고.” “잠은 안 자는 거 아니지? 그래도 잠은 충분히 자두는 게 좋아.”
“너야말로 잠은 충분히 자는 거니? 코쿤이 부서지고 나서 네가 자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은우가 말을 보탰다.
그러고는 그녀가 은하의 몸 상태를 찬찬히 훑어보며 말했다.
노은아의 눈도 가늘어졌다.
“그러게. 애가 얼굴이 이게 뭐니? 조금이라도 자놔. 다행히도 대낮에 몬스터들이 나타날 가능성은 적을 테니까.” “응, 돌아가는 대로 한 숨 자려고. 오래 자지는 못하겠지만 잠시라도 눈은 붙여야지.”
은아가 타이르듯 조언했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하던 차였다.
사실 그는 군세가 침공하고 나서 지금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잠을 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쉬어두기는 해야지. 이러다 진짜 쓰러지겠다.
더군다나 오늘 새벽에 기프트까지 사용하고 말았다.
피로가 누적됐다.
다행히 해야 할 일은 다 끝났으니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나저나 독 구조를 분석하는 게 일이겠어. 라이브러리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 분석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그러게…. 독에 걸려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에게서 항체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언니, 대장두터비 밑에 있던 몬스터들의 독에 중독된 사람들 중에서 항체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일단 그거라도 해볼까…. 어쩌면 그놈들의 독이랑 군단장의 독하고 구조가 비슷할지도 모르니까.”
한편 복도를 걷는 동안.
은아와 은우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은하는─.
“─항체라면 얻을 수 있지 않아?”
“”어?””
그게 뭐가 어렵냐는 듯이.
은하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두 사람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은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저기 있네.
건물 안에 있던 클랜원들.
그는 그들 중에서 마침 찾고 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천서 기프트가 환경변화에 적응해 결과적으로 면역력을 가지게 되는 기프트잖아.”
“어? 은하야, 뭐라고?” “”…….””
이천서.
그의 기프트는 였다.
은하는 가만히 있다가 지목을 당해 눈을 휘둥그레 뜨는 그를 무시하며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일리 있는 말이네.”
“가능성은 있어.”
“어어? 뭐, 뭐야?”
두 사람의 눈이 반짝 빛났다.
차은우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고.
노은아가 턱에 손을 댄 채로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항체를 얻을 수는 없다고 해도, 천서는 기프트 덕분에 독에 당해도 쉽게 죽지 않을 거야. 치료마법이 개발된 뒤에도 살아있을걸? 은우 넌 천서의 기프트가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잖아.”
“그렇지. 뱃속에 알을 2개 품고도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줬었지. 아마 군단장의 독에 중독돼도 죽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쟤 중독시켜 버려.”
“어어…!? 뭐, 뭐야! 갑자기 나한테 뭐하는 짓이야!”
“민호야, 쟤 잡아!”
“창진아, 너도 같이 잡아!”
“”……!!””
우당탕!
은하의 명령이 떨어졌다.
두 사람이 동시에 이천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한편으로 은우는 근처에 있던 목민호에게 명령을 내리고, 은아는 마침 건물 안에 들어온 한창진에게 명령을 내렸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왜 이래!?”
“가만히 있어! 팔에 너무 힘주면 주사바늘이 부서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 금방 끝나니까 울지 말고 가만히 있어.”
“”””…….””””
이천서.
그날, 판도라 클랜원들 사이에서 간간이 오르내리게 된 이명이었다.
☆
“물자가 들어왔다!”
“응?”
이천서가 병동으로 실려가고.
건물을 나온 은하는 언덕 아래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물자가 들어왔다.
은하는 귀를 의심했다.
물자가 들어올 리 없는데?
은하는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렸다.
강남하고 강북을 연결하는 다리는 몬스터들에 의해 차단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강북의 플레이어들은 선녀가 지원군을 데리고 올 때까지 고립된 채로 싸워야 했다.
당연히 보급은 기대할 수 없었고, 플레이어들끼리 식량을 두고 서로 싸우기까지 했다.
[판도라클랜 텔레파시스트 진서나. 사람들에게 확인한 결과, 아무래도 행정관 언니가 그룹들을 설득해서 물자를 보낸 것 같아.]곧이어 들려온 텔레파시.
물자가 들어오기는 한 것 같다.
이에 은하는 다른 클랜원들과 함께 동작대교가 보이는 길로 내려갔다.
“”””와….””””
모두 감탄했다.
거대한 트럭들이 줄을 짓고 대교를 통과하고 있었다.
몇몇 트럭들은 이미 대교를 넘어, 외국인들의 안내 지시를 받으면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도 가보자.”
“클랜로드!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누가 네 클랜로드야.”
은하는 클랜원들에게 말했다.
마침 데이비드 김의 전달을 받은 도미니크가 그들을 안내했다.
“…많이도 왔네.”
가면서 도미니크에게 들었다.
판도라클랜이 동작대교를 무사히 사수해준 덕분에 그룹들이 강북으로 물자를 보낼 수 있었다고.
다시 말해, 강북 전역에 배급이 될 트럭이 동작대교로 몰린 것이다.
“몬스터는? 트럭이 이렇게 많으면 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건 강남의 플레이어들이 경비를 서줬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네들도 강남을 지켜야 해서 응원군을 보낼 수는 없으니까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했다더군요.”
도미니크가 콧대를 세우며 말했다.
그가 그런 식으로 은하에게 자신의 쓰임새를 어필했다.
은하는 모른 척하며 선두에 있던 트럭을 올려다보았다.
삼라 통운이라는 로고 위에 크게 시리우스그룹의 로고가 프린팅 되어 있었다.
다른 트럭에도 보급물자를 보내준 그룹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10대 그룹은 모두 집합했군.
시리우스, 앨리스, 영원, 루미너스.
가장 많이 보이는 그룹의 로고는 은하에게도 친숙한 그룹들이었다.
이외 삼라그룹을 더해 6개 그룹의 이름도 보였다.
간간이 재계 10위에 들지는 못한 그룹들의 이름도 찾을 수 있었다.
“야, 은하야! 너희 잘 살아 있냐!?”
“해수 형?”
그러던 그때.
근처에 주차한 트럭 중 하나에서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내렸다.
벽해수였다.
목장갑을 끼고, 멜빵바지를 입은 그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클랜원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너희들 얼굴 보니까 안 좋은 일은 없었던 모양이네! 다행이야, 다행!”
“형,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보면 모르겠냐? 보급물자잖아. 아, 너희들은 그냥 가져가고 싶은 만큼 가져가라. 이번에 후원한 그룹들이 허락했으니까.”
탕탕 하고.
벽해수가 은하를 와락 껴안고서는 그의 등을 때렸다.
큼지막한 손으로 때리니까 소리가 크게 났다.
벽해수는 뭐가 그리도 좋다는 건지 와하하 웃어댔다.
“큰 제수씨가 정말 대단하더라고. 너희들이 그날 강북으로 떠난 날, 큰 제수씨가 어떻게 했는지 아냐?”
“”””…….””””
어안이 벙벙해 있는 클랜원들.
벽해수는 은하를 풀어주고 그제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을 대비라도 한 것처럼 시리우스그룹에 보급물자를 마련해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하더라고.” “”””…….””””
“다음날부터는 여러 그룹 사람들에게 연락을 보내 물자를 강북으로 보급하는 계획을 세운 거 있지? 그리고 운이 좋게, 너희가 동작대교를 뚫어준 덕분에 오늘 이렇게 보급을 오게 된 거지.”
“이 누나가 참….”
“큰 제수씨한테 잘해, 이놈아. 아, 당연히 다른 제수씨들한테도.”
한서현의 그림이었다.
은하는 계속해 초등학교 운동장에 주차하는 트럭을 보며 황당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도 그녀에게 비밀로 했듯.
그녀 또한 자신에게 비밀로 하면서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이 잘 지내나 확인하려고 온 거야. 겸삼겸사 너희 디바이스도 정비하고, 시형이한테도 디바이스를 전해주러 왔지. 은하야, 네 디바이스부터 줘봐라.”
“아, 여기.”
클랜원들이 벽해수의 말을 듣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지 않아도 연이은 전투로 인해 디바이스의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은하를 비롯해 클랜원들이 그에게 자신의 디바이스를 건넸다.
그러던 중이었다.
“아, 그리고 이거 받아가라.”
“편지? 이건 뭔데?”
“뭐기는 뭐야. 큰 제수씨가 너한테 전해주라고 한 편지지.”
벽해수가 편지를 내밀었다.
봉투가 꽤 두툼했다.
은하는 한서현이 보냈다는 사실에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번에 시리우스그룹에서 하나 보관하고 있던 엘릭서를 은하 너한테 넘길 테니 알아서 사용하라 그러더라.”
“엘릭서도 가져왔어?”
“그건 지금 차 안에 있는데, 이따 내가 너한테 주러 갈게.”
설마 엘릭서까지 내놓을 줄이야.
한서현이 힘을 많이 썼다.
은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용산구 사람들이 임시로 배정해준 판도라 클랜회관.
어디까지나 임시에 불과하였으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은하는 곧장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 누나가 뭐라고 보낸 거지?”
그러고는 편지를 뜯었다.
지금 밖에서는 외국인들이 물자를 배급하느라 한창이었다.
그러다 보니 밖은 소란스러웠지만 건물 안은 무척 조용했다.
잠이 쏟아질 것 같다.
은하는 애써 졸음을 참으며 편지를 읽어나갔다.
“…귀엽네.”
짧은 감상이었으나.
겨우 세 글자로 이루어진 말은 많은 감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서현의 편지를 요약하자면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주력해서 자신을 돕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너는 네가 할 수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그러면서 다치지 말라고.
마지막으로, 네가 보고 싶다고.
은하는 마지막 문구에 유독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필체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 뒤에 뭐가 있네? 추신?”
그러다 편지 뒷면에도 무언가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p.s.’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또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p.s. 유정이가 부탁했어. 그 애가 자기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너한테 뭐라도 주고 싶다고 해서. 그러니 손수건을 동봉할게. 그걸 네가 어떻게 사용할지는 네 자유야.」
“…질투하는 건가?”
편지지를 새로 썼어도 됐으련만.
은하는 굳이 편지지 뒷면에 추신을 남긴 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한서현의 심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심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아는 그녀와 달랐다.
몬스터들이 강북을 침공하고 있는 상황이 그녀를 그렇게 감정적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은하는 한서현의 얼굴을 떠올리며,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그녀를 만날 날을 고대했다.
“그나저나 유정이가 보냈다 했지? 아, 이거구나.”
어쩐지 편지봉투가 두툼하더라니.
이내 은하는 편지봉투 안에 있던, 곱게 접힌 손수건을 찾았다.
달맞이꽃의 문장이 새겨진 손수건.
이유정이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손수건이었다.
“…고마워. 잘 쓸게. 그러고 보니 유정이 얘는 이런 마법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나중에 보게 되면 물어봐야겠네.”
강력한 보호마법의 술식이 새겨져 있는 손수건.
은하는 손수건을 다시 고이 접어, 군청색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졸립네…. 잠깐 잠 좀 자야겠다.”
“삐삐….”
이윽고 은하는 잠을 자기로 했다.
불닭이도 피곤했는지 창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도 이제 눈을 감으려 했는데─.
“─은하야, 자?”
“응? 무슨 일이야?”
“에헤헤.”
“빠빠!”
빼꼼 하고.
정하양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방 안에 있던 그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러더니 주저 없이 그가 누워 있던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나도 여기서 잠깐만 눈 좀 붙일까 하고!”
“어? 일은 다 끝났어?” “서나랑 민지가 맡아주기로 하고, 나는 잠시 쉬기로 했어. 왜 그래? 혹시 나랑 같이 있는 건 싫어?”
“…아니야. 이리로 와.”
“응!”
은하의 몸에 바짝 달라붙는 그녀.
정하양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은하는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금세 졸음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끙….”
“왜 그래? 잠이 안 와?”
“아니, 잠은 오는데….” “응?”
“아니야. 얼른 자자. 이러다 우리 잘 시간도 없겠다.”
은하는 끙 소리를 냈다.
정하양이 순진한 눈망울로 은하를 올려다보았다.
은하는 시선을 피했다.
그가 애써 눈을 감았다.
제대로 자기는 글렀네….
이 상황에 그럴 수도 없고….
정하양이 바짝 몸을 붙여온다.
은하는 의식적으로 엉덩이를 뒤로 뺐다.
☆
그래도 잠은 잘 왔다.
사람이 피곤하니 눈이 스르륵 감긴 것이다.
…얼마나 잔 거지.
3시간은 잠을 잔 것 같다.
은하는 눈을 비볐다.
“으음….”
기척을 느낀 것일까.
곤히 자고 있던 정하양이 곧 몸을 뒤척거렸다.
그녀가 팔을 허우적거린다.
자신을 찾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그녀가 몸을 움직여서는 은하의 배를 끌어안았다.
“으응…?”
“잘 잤어?”
“…우리 얼마나 잔 거야?”
“3시간. 더 자.” “아니야. 나도 이제 일해야지. 그래도 조금 더 이러고 있을래.”
그의 등에 얼굴을 부비는 그녀.
은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꿀밤으로 불닭이를 깨웠다.
잘 자고 있던 불닭이가 빼액 하며 눈을 떴다.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어.” “그러게.”
“너랑도 편하게 자고 싶고.”
“지금도 편하게 잤으면서 뭘.”
“3시간밖에 못 잤잖아.”
볼을 부풀리는 정하양.
은하는 손가락으로 볼을 찔렀다.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2시.
슬슬 일하고 있는 클랜원들과 교대할 시간이었다.
은하는 손을 뻗어 재킷을 집었다.
“너도 얼른 옷 입어.”
“네가 입혀줘.”
“애네, 애야.” “응, 나 애 할래.”
정하양이 두 팔을 벌린다.
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어하면서도 그녀에게 재킷을 입혀주었다.
정하양이 머리를 정리했다.
그녀가 은하의 머리도 정리해줬다.
이윽고 간단히 정리한 두 사람은 임시 클랜회관 밖으로 나왔다.
바로 그때─.
[─마나관리기구에서 알려드립니다.]“”…….””
탁 하고.
밖으로 나온 은하의 앞으로 돌연 로브를 뒤집어쓴 아인이 착지했다.
백서진 휘하에 있는 플레이어였다.
아인이 텔레파시를 전했다.
요는, 오후 2시에 회의가 있으니 필히 참석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플레이어가 전달한 내용은 은하가 어제 들었던 내용하고 조금 달랐다.
[…서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들은 오후 2시까지 마나관리기구 본부로 와주기를 바랍니다.]도봉구와 노원구, 제니스클랜.
강북구, 레귤러스클랜.
성북구, 신라클랜.
서대문구, 명왕클랜.
중랑구, 블레이즈클랜.
성동구, 템페스트클랜.
마포구, KK클랜.
은평구, 동해클랜.
동대문구, 단군클랜.
광진구, 삼라클랜.
마지막으로─.
[─용산구와 중구의 대표 클랜은 판도라클랜입니다.]“”…….””
용산구와 중구, 판도라클랜.
플레이어는 그 말을 마치고 즉각 신형을 감췄다.
두 사람은 눈을 깜빡거렸다.
“오호라….”
그리고 은하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어깨가 들썩여졌다.
실로 유쾌했다.
중구의 대표도 판도라클랜이라고?
어느새 중구를 손아귀에 넣었다.
유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652(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