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83
극비리에 지정된 코쿤 회수 작전.
작전에 소요되는 예상 시간은 대략 5일이었다.
의정부에 잠입한 사람들이 무사히 코쿤을 회수하고 강북으로 돌아오는 날이 말이다.
“휴우…. 얘네는 괜찮은 거겠지?”
그래서 판도라클랜의 서브로드인 노은아는 4일째가 되는 날부터 혹시 의정부로 떠난 클랜원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장벽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옆에는 김민지도 있었다.
간부들과 회의한 결과, 노은아와 김민지가 그들을 맞이하는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이다.
그녀와 같은 서브로드인 정하양은 연일 마나관리기구 회의에 참석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서브로드인 목민호는 파괴된 용산구를 복구하기 위해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서류더미 속에서 치여 살고 있는 행정관 한서현도 두말할 것 없었고.
서브로드들 중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노은아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늦어도 오늘쯤에는 돌아올 텐데….”
“노은하니까 잘 지내고 있을 거야. 너무 걱정 하지 않아도 괜찮아.”
제니스클랜에서 호의로 자신들의 건물을 사용해도 좋다고 말했다.
덕분에 은아와 김민지는 장벽 앞 건물에서 의정부로 떠난 클랜원들을 편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은아는 걱정 어린 얼굴로 창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민지 역시 겉으로는 태연해하면서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
째깍째깍 하고.
두 사람이 침묵하고 있는 동안에도 방 안에 있는 시계 초침은 변함없이 흘러갔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난 거 아니야? 지금쯤 돌아왔어도 이상하지 않는데….”
“일단 조금만 기다려보자. 간 곳이 의정부인데 칼 같이 돌아올 수는 없을 거 아니야.”
작전에 참가한 사람들이 돌아오는 예정 시각은 오늘 오전 10시였다.
하지만 10시가 지나도 장벽 위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노은아는 불안해하며 중얼거렸다.
처음 침착하게 행동하던 김민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시계를 올려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시침이 숫자 3을 가리키게 되었을 때─.
“─왔어. 애들이 왔나봐!” “어? 정말!?”
노은아는 창틀 너머로 장벽 위에 인영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즉각 건물을 나섰다.
이미 그들이 왔다는 소식이 주변에 퍼진 모양이었다.
그녀처럼 장벽 앞으로 마중을 온 블레이즈 클랜원들과 마나관리기구 직원들도 밖에 나와 있었다.
“…….”
“하…, 하아…. 은아 언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빨리 뛰는 거 아니야? 어떻게 레인저인 나보다도 더 빠를 수가 있어?”
“…민지야, 내 눈이 이상한가봐.” “어?”
“은하랑 창진이가 보이지 않아.” “뭐?”
이내 은아는 장벽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시야를 확장하는 마법을 써 장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다.
호시미야 카에데, 배수빈, 진파랑.
그런데 자신의 남동생인 노은하와 한창진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못박힌 상태로 장벽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왜 2명은 보이지 않는 거지?”
“코쿤은 무사히 회수한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은아는 걸음을 더 내딛었다.
그때쯤 장벽을 내려온 카에데하고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배수빈을 업고 있었다.
보아하니 체내 마나를 탈진한 것 같았다.
이내 그녀가 클랜원들을 이끌고는 은아에게 다가왔다.
“은아 언니.”
“얘들아, 수고했어. 많이 고생했지? 일단 수빈이부터 먼저 치료하는 게 우선이겠네. 체내 마나를 탈진한 것 같은데, 그것 말고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야?” “없어…, 나는 괜찮아. 그저께부터 잠도 자지 못하고 강행군을 펼쳐서 체력이 떨어진 것뿐이야.”
은하와 창진이 걱정되기는 했으나.
서브로드라는 자각을 지닌 그녀는 제일 먼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무사히 돌아온 클래원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고는 배수빈을 시작으로 하여 클랜원들의 상태를 살폈다.
마나관리기구 직원들이 흥분해서는 코쿤에 아무 결함도 없다고 외치는 말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클랜원들이었다.
그중 지금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노은하와 한창진 두 사람이 그녀의 최대 관심사라 할 수 있었다.
다행이야. 심하게 다친 데는 없고, 피로가 누적됐을 뿐이야.
며칠 푹 쉬면 괜찮아질 거야.
세 사람 중 가장 많이 다친 이는 호시미야 카에데였다.
그것으로 미루어 그녀가 선두에서 파티원들을 지휘한 듯했다.
한편 진파랑이 블레이즈 클랜원의 망토로 몸을 두르고 있는 걸로 보아 기프트를 발동한 듯싶었다.
그러면서도 세 사람은 공통적으로 상당히 지쳐 있었다.
조금 전, 배수빈의 말로 짐작컨대 잠도 자지 못하고 강행군을 펼쳤기 때문이리라.
필시 밤에도 움직였을 것이다.
몬스터가 흉포해지는 밤에도 계속 움직였을 정도라니….
의정부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질문.
노은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클랜원들을 치료하고 나서 물어도 늦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카에데를 대신해서 배수빈을 들쳐업은 김민지가 대뜸 물은 것이다.
“그래서 노은하랑 창진 오빠는 왜 보이지 않는 거야?”
“””…….”””
그녀의 질문에.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진파랑이 고개를 푹 숙였다.
배수빈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은아에게 치료를 받고 있던 호시미야 카에데가 입을 열었다.
“…도중에 일이 좀 있었어. 우리가 코쿤을 회수하는 틈에 괴시니에게 포위당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파티를 둘로 나눠, 우리는 코쿤을 강북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맡았어.”
“”…….””
“그리고 노은하랑 한창진 오빠는 우리들을 무사히 탈출시키기 위해서 몬스터들을 교란하는 일을 맡았고.”
“그, 그럼 지금….”
목이 잠긴 목소리로.
카에데가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쯤 의정부에서 돌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퍼진 듯했다.
장벽 앞으로 나와 있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노은아는 카에데가 하는 말을 듣고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은아가 못 다한 이야기를 대신하듯─.
“─노은하랑 한창진 오빠…. 아마 다른 파티는 지금 의정부에 고립돼 있을 거야.” “”””…….””””
카에데가 꺼낸 말에.
노은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도 착잡한 얼굴을 했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프리시스 메모리.
강현철.
노은하.
한창진.
네 사람이 의정부에 고립되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코쿤을 회수했다며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멀거니 장벽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
상황은 좋지 않건만.
하늘은 빌어먹게도 파랬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바로 그때였다.
노은아가 중얼거린 것은.
“그러니까….”
“”””…….””””
클랜원들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노은아는 웃고 있었다.
그녀가 어조 하나하나에 힘을 담아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니까 둘이 쌍으로 내 속을 터지게 했다 이거지?” “”””…….””””
“돌아오기만 해봐, 아주…. 둘 다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걱정과 불안을 분노로 승화시킨다.
노은아가 서브로드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
괴시니의 군세는 물론이고, 현재 인근에 있는 몬스터들이 지상에서 활보하고 있다는 모양이다.
아마 한 번 흉포해진 놈들의 화가 가라앉기까지 기다리려면 며칠이나 있어야 할 것이라며.
촌장이 충고했다.
결국 은하와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 마을에 머무르기로 했다.
“아, 따분해. 이게 뭐냐. 그냥 확 밖으로 나가서 한 판 붙어봐? 이봐, 판도라 클랜로드. 어떻게 생각해? 너도 지금 가만히 있기 영 심심하지 않냐?”
“저는 안 심심한데요. 심심하다면 마을 주민들 일을 도와주지 그래요. 가뜩이나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돼 저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한데.”
“끙…. 소일거리를 돕는 것은 영 내 성향에 맞지 않는데….”
하루가 지났다.
은하와 일행은 촌장이 배정한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주민들이 사는 구역과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촌장 딴에는 은하와 일행이 최대한 주민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리라.
남몰래 마을을 돌아다닌 한창진의 말에 따르면, 많은 주민들이 현재 의정부를 들쑤신 은하와 일행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듯했다.
우리를 싫어할 만도 하지.
그들 입장에서는 생업을 방해받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의정부 주민들도 밖으로 나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비축해둔 식량이 있었기에 며칠은 버틸 수 있다는 모양이었다.
물론, 은하와 일행들에게 나누어줄 식량은 없다는 듯했지만.
은하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저들의 식량이 워낙에 맛이 없고, 위생도 불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하는 의정부로 들어올 때 식량을 넉넉히 챙겨 와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기도 했다.
“불닭이 너는 좋겠다. 내가 주는 마나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뿌뿌.”
“그래, 너도 맛잘알이라는 거지? 강북으로 돌아가면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원 없이 먹게 해줄 테니, 내 마나로 참아라.”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환수 놈이 뭐 이리 맛을 따지냐. 그냥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뿌뿌뿌!”
그렇다고 해도 의정부에 며칠이나 고립돼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식량을 아껴야 했다.
은하와 일행은 식량 1끼로 하루를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불닭이는 은하의 마나를 주식으로 삼고 있어서 식량 수급에 문제가 없었다.
불닭이도 나름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말이다.
“아, 싸우고 싶다. 여기에 며칠이나 갇혀 지낼 걸 생각하니 우울해지네. 판도라 클랜로드, 적적한데 나하고 대련이나 한 판….”
“여기서 대련을 했다가 위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들킬 일이 있게요?”
“쳇.”
한편 강현철은 갇혀 있기만 해서 좀이 쑤시는 모양이었다.
그가 툭하면 은하에게 말을 걸면서 대련이나 하자고 구슬렸다.
당연히 은하는 거절했다.
그렇다고 하나─.
─미친 오징어 저놈이 하지 말라고 하지 않을 사람이 아닌데…. 만약 이 상황이 계속 진행되면 결국에는 폭발해 밖으로 뛰쳐나갈지도 몰라.
강현철의 인내심이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는 전투광이었다.
싸우지 못해 쌓이는 욕구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풀어주어야 했다.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조만간에 사고를 칠지도 몰랐다.
그리고 의정부에서 사고를 치면, 정말 답도 나오지 않을 상황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은하는 절대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애초 강현철을 여기에 남긴 이유가 있지 않았던가.
마지못해 은하는 강현철의 성향을 이용하기로 했다.
“며칠만 좀 참아요. 만약 제 말을 듣는다면….” “너랑 싸우게 해줄 거냐?”
“저랑 싸우는 건 아니고 아주 강한 녀석이랑 싸우게 해줄 테니까요.” “아주 강한 녀석이라니…. 혹시 너 괴시니를 토벌할 생각인 거냐? 야, 진짜 죽이네, 화끈하네. 내가 이래서 널 좋아하나 보다. 안 그래도 나도 그놈이랑 붙어보고 싶었는데!”
“괴시니는 아닌데…. 뭐,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그러니 가만히 좀 있어요. 아니면 검을 휘둘러서 연습이라도 하든가.” “좋아. 약속한 거다. 나중에 가서 딴 말했다가는 그때는 너하고 싸울 거니까 그런 줄 알아라.”
“진짜 답도 없다.”
에휴 하고.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넌지시 꺼낸 말에 저리도 신나서 미끼를 물 것을 예상했지만, 그래도 너무 바보 같았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기합을 다지는 미친 오징어가 멍청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되도록 주민들과는 엮이기 싫었고.
그러자니 마법을 연습하는 것 외에 특별히 할 게 없었다.
한창진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연습은 잘 돼가?”
“어느 정도 섭리를 구현화하는 건 가능한데, 실전에서는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은하는 한창진에게 다가갔다.
한창 마법을 연습 중이던 한창진이 은하를 반겼다.
그러고는 그가 쓴웃음을 짓고서는 땅바닥 위로 손을 펼쳤다.
그의 손이 마나에 휩싸이고.
마나는 색깔이 검고, 끈적거리는 물질로 변했다.
뚝
그가 손 방향을 아래로 향하자.
손가락 끝에 고인 마나가 방울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한두 방울이 지면에 스며들었다.
치이익
지면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한창진은 근처에 있는 돌 위에도 독을 떨어뜨렸다.
방울이 떨어진 부위가 녹아내렸다.
“대장두터비의 섭리로 얻은 독인데 추가적으로 부식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아.”
“좋은 걸 얻었네. 제4위계였으니까 제법 고위계 몬스터들에게 통하는 독일 거 아니야. 해독하기도 정말 어렵겠네.”
“해독도 어렵고, 지속적으로 독에 노출되면 해독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 같아.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것 같아.”
“그래서 어떤 마법을 생각하는데? 떠오르는 게 없으면 나처럼 편하게 검격을 연상해보는 건 어때.”
은하가 검을 뽑았다.
그가 바일런트 베놈을 사용했다.
그의 검신이 검게 물들었다.
이미 몇 번이나 은하의 마법을 본 한창진은 별로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장검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검격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내 스타일에 맞게 생각해봐야지.”
“그럼 그렇게 해. 그래도 좋겠네. 나는 검격으로밖에 만들지 못하는데 형은 체화한 스킬석이 워낙에 커서 다양한 방면으로 쓸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 활용 범위가 넓어서 꽤나 실용적일 것 같아.”
한창진이 독을 거두어들였다.
은하는 그의 손에서 마나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살짝 아쉬워했다.
한창진의 독 마법에 비해 자신의 바일런트 베놈은 활용범위가 워낙에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스킬석의 크기 차이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대신 내가 얻은 독은 위계가 높고, 전염성도 강해서 꽤나 강력하니까.
남이 가진 것에 크게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회귀 전에 몇 번이고 재능의 벽을 절감한 은하가 경험적으로 납득한 버릇이었다.
가질 수 없는 부러움이란 자신을 깎아먹는 독이었다.
그러던 중─.
─저걸 써먹을 수도 있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말을 걸어준 것만으로 싱글벙글해하고 있던 창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형, 능력을 잘 컨트롤하면 혹시 음식에다 독을 탈 수 있지 않을까?”
“뭐? 부식하는 특성이 있어서 아마 시간제한이 있기는 하겠지만…. 응, 가능하기는 할 거야. 그건 왜?”
“마침 연습하기 딱이겠네.”
조그마한 초콜릿이라면 많이 있다.
게다가 카에데의 파티원들이 가진 초콜릿들도 잔뜩 챙기지 않았던가.
은하는 짐가방에서 초콜릿 봉지를 꺼냈다.
봉지를 뜯어서 조그마한 초콜릿을 한창진의 앞에 놓았다.
“해봐.”
“…뭘?”
“포장지에는 독이 닿지 않게 하고, 안에 들어 있는 초콜릿에만 독을 투입시켜 보라고.” “…….”
갑작스런 은하의 주문에.
한창진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은하야, 그게 얼마나 어려운데. 고등제어기술이 뛰어나도 그건….”
“백서진 선생님한테 배웠을 테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포장지가 아니라 안에 든 내용물에 수작을 부리는 짓 정도는 간단하게 할 수 있잖아?”
“안 배운 건 아닌데…. 끙, 알았어. 한 번 해볼게.”
끝내 한창진은 체념했다.
뭐라고 반박하려던 그가 초콜릿을 손에 쥐었다.
그가 마법을 발동했다.
실패했다.
포장지채로 녹아버렸다.
이후로도 계속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그쳤다.
그러다 끝내 한창진은 성공했다.
“─됐다. 고등제어기술을 이렇게 한계까지 몰아붙인 건 오랜만이야.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
“그러네. 음식 속에다 침투시키고, 부식하는 시간을 늦춘 것 같네.” “은하야, 너무 막 만지지 마. 나도 부식이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 너, 너,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은하는 초콜릿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고는 대뜸 포장지를 깠다.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아주 평범한 초콜릿이었다.
안에 독이 들어 있는지도 모를 듯 감쪽같이 생겼다.
꿀꺽
그래서 은하는 몸소 확인하기 위해 초콜릿을 삼켰다.
뒤늦게 한창진이 말렸지만 그때는 이미 초콜릿이 식도를 타고 넘어간 뒤였다.
“배, 뱉어! 죽으려고 환장했어!?”
“이미 뱃속에 들어간 것을 어떻게 뱉으라고. 그리고 걱정하지 마.” “걱정하기는 뭘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이제 곧 독이 온몸에 스며들 텐데, 진짜…!!”
“아, 시작됐다. 온다. 화끈하네.”
“……!!”
“빠빠?”
한창진이 어깨를 흔들든 말든.
은하는 뱃속에서 시작되는 신호를 느꼈다.
뱃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다.
뜨겁다.
아프다.
하지만 그 감각도 잠시였다.
바일런트 베놈
대장두터비의 독은 제4위계였고.
자신이 섭리로 체화하고 있는 독은 제3위계의 것이었다.
몸속에서 바일런트 베놈의 섭리가 대장두터비의 독에 이를 드러냈다.
“너, 너 정말 괜찮은 거야?”
“나한테 독은 안 통해.”
“진짜…. 은아한테 뭐라 설명하면 좋을지 당황하고 있었잖아. 그래도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형.”
“응?”
“하나만 더 만들어주라. 초콜릿.” “뭐?”
“아니, 이게 의외로 몸에 좋은 것 같아서.”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은하는 입가를 씩 끌어올렸다.
몸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기어코 대장두터비의 독을 파괴한 바일런트 베놈의 섭리가 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다.
대장두터비의 독 구조를 파악하며, 조금이지만 변형되고 있었다.
“뭔가 깨달을 것 같으니까 몇 개만 더 만들어봐. 달고 맛있네.”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독이 어떻게 달고 맛있다고 할 수 있어? 너 혹시 미각이 잘못된 건….”
“형이 나중에 민지 음식을 먹어봐. 무엇이든 맛있게 느껴질걸?”
“뭐?”
“됐고, 얼른 만들어줘.”
“…알았어. 기다려봐.”
그날 내내.
은하는 한창진을 옆에 붙잡아놓고 독이 든 초콜릿을 만들게 했다.
음, 몸에 좋은 맛이네.
달다, 달아.
이에 한창진은 대장두터비의 독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은하는 새로이 부식 속성이 가미된 바일런트 베놈을 만들어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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