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93
이전 삶에서 추영훈이 십이좌로 발탁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추영훈이 적을 두고 있는 클랜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선녀정부가 십이좌에게 기대하는 바는 십이좌 개인의 무력도 있지만, 십이좌가 등에 업은 세력을 움직일 영향력을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추영훈이 적을 둔 클랜의 가치는 매력적이었다.
미래가 바뀌어서 단군클랜이 아닌 KK클랜에 입단했지만, 등에 업은 클랜의 영향력은 회귀 전이나 후나 여전히 강하다는 거지.
다른 하나는 추영훈의 업적.
그리고 실력.
명색이 국가 최고 스페셜리스트를 뽑는 것이니 만큼 가지고 있어야 할 소양이었다.
강북 침공에서 공을 세운 추영훈은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인성도 평가에 들어가기는 하지. 다만 인성이라는 항목은 평가하기 워낙에 애매해서 점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은 문준의 사망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그들에게 이란 존재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그야말로 철옹성 같은 신화였다.
따라서 그들은 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 역시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를 희망했다.
그렇기에 젊고, 강하고, 신선하고, 명망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다.
인성이라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추영훈은 대중이 바라는 인간상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추영훈이 십이좌로 발탁된 것이다.
.
이명을 듣고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또 어떠하다는 말인가.
마스크, 업적, 이명.
추영훈에게는 뭐 하나 떨어지는 게 없었다.
그래도 추영훈은 안 돼.
하지만 미래를 아는 은하는 결코 추영훈을 십이좌로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실력은 인정하나.
인성을 비롯해 십이좌로서 의식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은하는─.
“─저는 동해클랜의 선기준 가디언을 십이좌로 추천합니다.”
“”””…….””””
추영훈을 대신할 인재로 선기준을 추천한 것이다.
이전 삶에서는 그를 대신할 인재가 마땅히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였던 선기준이 으로 불리게 되며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기준 아저씨가 추영훈에 비하자면 실력이 미치지 못하기는 해.
하지만 기준 아저씨가 이번에 세운 공적은 누구나 인정할 정도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선기준이 이번 재앙에서 어떠한 업적을 세워 대중에게 이란 인식을 각인시켰는지 알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선기준이 세운 업적은 추영훈보다 높이 평가할 만했다.
추영훈이 단지 지역을 방어했다면, 검증이 힘들기는 하지만 선기준은 쓰러져가던 사람들의 마음을 일으켜 사기를 증진시켰다.
선녀 임가을 역시 그것을 인정하여 그에게 충무 등급 보물고를 개방할 권리를 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전 삶과 다르게 추영훈은 십이좌가 되기 어려운 이유를 하나 가지고 있어.
KK클랜에는 이미 황산군이라는, 십이좌가 한 명 더 있다는 거야.
애초 추영훈은 이전 삶과 다르게 십이좌가 될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클랜 간의 균등한 전력 분배.
문준이 과거에 군주들을 통합하는 과정에 암묵적으로 내세운 관행은 지금도 유효했다.
선녀 임가을이나 다른 십이좌들도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겠지만, 내심 KK클랜에서 두 번째 십이좌가 나오는 상황을 반기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추영훈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마땅히 없어서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지.
하지만─.
─내가 의견을 일치시키면 돼.
나한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어.
은하는 자신했다.
지금, 자신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정식 십이좌는 되지 않았다지만, 이번 재앙을 이겨낸 일등 공신으로 통하고 있지 않은가.
민의가, 그에게 있었다.
강북 침공의 여파가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말과 행동은 강대한 영향력을 지닐 수 있었다.
“하긴, 그렇죠. 중구에서 이 보여준 모습이 대단하기는 했죠.”
“”””…….””””
아니나 다를까.
십이좌 도완준이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라면 괜찮기는 하지.”
“그때 저도 같이 있었어요.”
이윽고 지용현.
그리고 유수진.
두 사람도 제 의견을 늘어놓았다.
은하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면서, KK클랜의 행보를 막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편승한 것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아직 신중히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특히 문준을 대신하여 장관이 된 백서진과 마나관리기구의 국장들이 그러했다.
이에 은하는 슬쩍 운을 뗐다.
“─그리고 선기준 플레이어가 지금 적을 두고 있는 동해클랜도 상당히 괜찮은 클랜 아닌가요? 이번 공로로 내년부터 S급 클랜의 대열에 합류할 예정인데….” “…나쁘지 않구나.”
“”””……!!””””
추영훈이 아닌 후보자들을 추천한 사람들은 은하의 말을 듣고 의견을 바꾸었다.
백서진의 반응이 결정적이었다.
마나관리기구의 국장들은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선녀 임가을 역시 마찬가지였다.
“흠, 선기준 플레이어라…. 하지만 나이가 문제네요. 나이가 좀 있어서 고민이 되네요.”
다만 그녀는 소극적이었다.
은하가 그녀의 생각을 모를 리가 없었다.
임가을은 설령 클랜 간의 권력이 한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있더라도, 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사람을 원하는 거야.
십이좌 중 하나밖에 없는 가디언.
이번 재앙에서 알 수 있던 것처럼 가디언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 선기준을 뽑기 저어되는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말했다.
“십이좌 부문 가디언은 성이에요. 위기가 닥쳤을 시, 벽을 높이 세워 외적이 침입해오지 못하게 막아내며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어야만 하죠. 그러려면 당연히 그럴 만한 실력이 따라야 하고요.” “”””…….””””
“사람들은, 더는 그 성이 무너지길 원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운 의 그림자를 느끼지 않을 만큼 강하고, 새롭고, 오랫동안 자신들을 지켜줄 사람을 원할 겁니다.”
실력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마스크가 신선하지 않다.
그리고 나이가 많다.
임가을이 고민하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은하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디언의 인상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은하가 뭐라고 답할 것인지 기대하고 있다는 듯이.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내뱉었다.
“선녀님께서는 가디언에게 중요한 요소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실력이죠.”
두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은하의 질문에 그녀가 답했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가디언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첫째도 실력, 둘째도 실력, 셋째도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
“하지만 넷째는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연 마스크도, 나이도 아니고요.”
“그래요? 그럼 판도라 클랜로드는 넷째로 중요한 요소는 대체 뭐라고 생각하나요?”
“신뢰요.”
“”””…….””””
“가디언에게 실력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사람들이 가디언에게 기대는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신뢰.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선녀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전 삶을 통틀어 현장에서 험하게 구른 은하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설령 제 몸을 희생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만은 반드시 지켜줄 것이다.” “”””…….””””
“전투가 일어나게 되면 플레이어는 공격을 막아주는 가디언을 의지해 싸워야만 해요. 극단적인 경우에는, 가디언에게 방어를 모두 맡긴 채로 적을 쓰러뜨려야 하는 때도 있죠. 만약 가디언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 자리에서 파티원들을 몰살시키는 참극을 벌일 수도 있어요.”
“판도라 클랜로드의 말이 맞아요. 하지만 저는 십이좌 후보로 거론된 사람들은 이미 그만한 신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저는 누가 더 우수한지….”
“십이좌 후보로 거론된 이상에야 실력도 어느 정도 보장되는 거겠죠. 그러니 전 누가 더 신뢰할 만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가을이 말하려는 찰나.
은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누가 더 우수한 사람인지 보다도, 누가 더 신뢰가 가는 사람이냐.
그의 물음에 임가을은 고민에 잠긴 눈치였다.
그녀가 질문했다.
“그래서 선기준 플레이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건가요? 측정하기 힘든 근거를 어떤 식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선기준을 십이좌로 추천하기에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그러니 조금 더 승낙해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주렴.
은하는 자신이 계속 말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그녀의 의도를 얼추 파악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선기준 플레이어는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도 선기준 플레이어가 자신의 목숨을 내걸면서까지 예경의 포격을 막아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이미 그것만으로 선기준 플레이어는 증명한 게 아닌가요?”
“하지만 예경의 포격을 완전하게 막지 못했지.”
“네, 막지 못했죠.”
은하가 임가을을 납득시키던 중.
황산군이 대뜸 토를 달았다.
은하는 황산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말을 긍정했다.
황산군은 당황한 눈치였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은하는 말을 이었다.
“막지 못했지만 선기준 플레이어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사기를 지켜냈습니다. 오히려 증진시켰죠.”
“판도라 클랜로드. 그건 객관적인 근거라고 보기 힘들군요. 선녀님의 말씀처럼 그게 어디 측정이 가능한 지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측정 가능한 지표가 있기는 하죠.”
“”””…….””””
황산군이 반박한다.
은하는 이죽거리며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선기준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고,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이 선기준 플레이어를 구하기 위해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선기준 플레이어의 실력 미….”
“거기에는 가디언들도 있었어요. 모든 가디언이, 선기준 플레이어와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가디언들은 지금 선기준 플레이어를 영웅처럼 따르고 있는 중이고요.”
“”””…….””””
“만약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가디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그들을 지휘할 수 있는 위상을 가진 선기준 플레이어만큼 신뢰가 가는 인물이 있을까요?”
“그것은 비약입니다. 어디 추영훈 플레이어라도 그런 건 할….”
“정말요? 라는 이명은 홀로 정의가 되는 이명이 아닌가요? 혼자서 완전한 존재로서 성립되는 가 과연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을까요?”
“”””…….””””
아니라고.
은하는 단언할 수 있었다.
회귀 전에 는 그야말로 유아독존적인 인물이었다.
라는 이명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혼자만, 요새다.
황산군도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인지 반박하지 못했다.
은하는 이제 선녀를 바라보았다.
“은 분명 마스크가 신선한 플레이어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 일이 없듯이, 십이좌 부문 가디언은 그런 사람이 돼야 한다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건 신선한 게 아닌 친숙한 것이고, 강한 것이 아니라 굳건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은하는 준비한 대사를 꺼냈다.
한서현이 그와 같이 밤을 보내면서 조언해준 대사였다.
그렇게 발언을 마쳤다.
이제 그는 얌전히 임가을의 대답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내 그녀가 읊조렸다.
“뿌리 깊은 나무라…. 참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실력 또한 중요하지만 연륜과 경험 그리고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도 중요한 거겠죠.”
임가을이 빙그레 웃었다.
그녀가 은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은하에게 손을 들어주면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사람들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아직 입장을 결정하지 않은 몇몇이 선기준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에게는 딸이 한 명 있다고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딸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거란 말이 있더군요. 그 딸은 현재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재학하고 있다고 하고요.”
“그런가요? 거기까지는 몰랐네요. 그러면 부녀지간의 이야기를 이용해 위국헌신과 가족애를 강조할 수도 있겠네요.”
“네, 선녀님. 그래서 자식이 있는 부모들 사이에서는 에 대한 여론이 참 좋다고 합니다. 가정을 꾸리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그에게 호의적이라고 하고요.”
민지아 특무국장이 말을 보탰다.
그로 인하여 선기준에게 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임가을은 크게 호응했다.
이제 분위기는 완전히 에게 기울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럼 투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의 자리를 대신할 십이좌 후보는 2명으로 좁혀졌다.
추영훈.
그리고 선기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투표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굳이 결과를 발표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예상한 그대로 흘러갔다.
“그럼 전원 만장일치로 동해클랜의 선기준 플레이어를 제2기 십이좌로 선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원 만장일치.
황산군도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다.
결국 그도 선기준에게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은하는 환히 웃었다고 한다.
☆
선기준이 십이좌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
선녀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번 재앙은 코쿤이 결함을 일으켜 파괴되면서 불거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어요.”
“”””…….””””
이제는 언론에도 알려진 이야기.
십이좌들과 마나관리기구 국장들은 이번 재앙이 일어난 원인을 그보다 더욱 상세히 알고 있었다.
코쿤의 결함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만약에 모라율 통제관이 그때 코쿤을 확실하게 점검했다면, 아마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
십이좌 모라율.
그녀의 업무 태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모라율은 단순히 운이 나쁜 편이었다고 할 수 있고, 임가을은 운이 좋았다 할 수 있다.
코쿤 점검은 2년에 1번씩 점검을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니까, 모라율이 잘못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참 운도 나쁜 사람이다.
일의 전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임가을이 모라율에게 갑자기 코쿤 점검을 부탁하지 않았더라면 책임 소재는 모라율이 아닌 임가을 그녀에게 돌아갔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정말 운이 좋게도 모라율에게 코쿤 점검을 명하면서 책임 소재를 그녀에게 떠넘길 수가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근무를 태만하게 하고, 몬스터들이 강북을 침공하게 야기한 대역죄인은 당연히 십이좌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법의 원칙에 따라서 죗값을 치러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
어디 그들이 상황이 이리 흘러갈지 알았겠는가.
다만 운.
그저 운 때문에.
두 사람의 생사가 바뀐 것이다.
그들은 이번 재앙이 일단락되면서 근신을 받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모라율의 자리로 시선을 향했다.
현재 그 자리에는 은하가 대신해 앉아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모라율 통제관이 이후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분주히 일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
“따라서 사형을 내리는 것은 조금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그리고 또…. 그렇게 쉽게 목이 뎅겅 날아간다면 모라율 통제관이 죄를 뉘우쳤다고 할 수 있을까요? 피해 입은 이들은 불우한 삶을 살아갈 텐데 말이죠.”
보아하니 임가을은 이제 모라율을 어찌할지 결론을 내린 듯했다.
좌중이 침묵하는 가운데.
그녀가 또랑또랑한 어조로 고했다.
“한편으로 모라율 통제관의 능력을 이대로 감옥에서 썩히게 하는 것은 국가의 발전에 있어서 그다지 좋은 방안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모라율 통제관을 대신할, 십이좌 후보가 마땅하게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고요.” “”””…….””””
“그래서 모라율 통제관의 직위는 적합한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시킬 생각입니다. 물론, 의무는 이행하게 하되, 권리는 모두 몰수할 생각이고요.”
사람들은 흠 소리를 냈다.
십이좌들은 과연 그게 모라율에게 정당한 죗값이 될 수 있는 것인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그렇게 하려는 거지?
아무리 인재가 없다지만 찾아보면 대신할 인재가 있기는 할 텐데….
결국 모라율은 죄인이란 신분으로 십이좌라는 위치에 있을 거란 건데, 득보다 실이 크지 않을까?
은하가 그렇게 의문을 품을 무렵.
임가을이 그들의 의문을 안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죄인을 계속 세상에서 살게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기는 해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세상에서’란 대체 무슨 뜻인가.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임가을이 말하기를─.
“─따라서 지금 이 시간부로 죄인 모라율의 소속처는 단군클랜이 아닌 마나관리기구로 변경될 것입니다. 그리고 직위는 십이좌로 유지하되, 권리 없는 의무만을 강요할 것이며, 제 특별 허가 없이 마나관리기구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겁니다. 그리고 십이좌로서 일하는 대가는 모조리, 이번 재앙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지원하는데 쓰일 거고요.”
“”””……!!””””
“이미 단군클랜도 허가한 상황이고 본인 또한 그리하기로 했답니다.”
그녀가 생긋 웃으며 말했지만.
웃으면서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놀란 기색을 엿보였다.
머리가 나쁜 강현철마저도 심지어 “미친….”하고 작게 중얼거렸을 만큼 깜짝 놀랄 이야기였다.
임가을의 말을 요약하자면─.
─죽을 때까지 평생 일만 시키면서 뽕을 뽑아먹겠다는 거네. 밖으로도 나가지 못하고 매일 같이 여기에서 군만두만 먹이면서 일만 시키겠다는 소리잖아.
생각만으로도 무섭다.
네비게이터의 일이 얼마나 많은가.
모라율.
그녀는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일만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일한 대가를 전혀 받지 못할 것이며, 십이좌의 권리도 아예 누리지 못할 것이다.
평생 이 본부 안에서 지박령처럼 살아야 한다.
마나관리기구의 노예인 셈이다.
은하는 절로 몸서리를 쳤다.
그러는 한편으로─.
─열두 개의 좌중 하나를 완전히 마나관리기구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구나.
은하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들도 알아차렸으리라.
그녀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려는 것이다.
강화시킨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네.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마나관리기구가 잃게 되는 자리를 메우겠다는 거겠지.
현재 마나관리기구에 소속해 있는 십이좌는 를 포함하면 총 네 명이었다.
백서진.
윤성진.
프리시스 메모리.
아마 임가을은 플레이어 업계에서 영향력을 안정적으로 휘두르기 위해 최소 네 개의 좌를 보유하고 싶은 것이리라.
모라율을 노예로 부리겠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납득시키려는 수야.
진짜 목적은 모라율의 소속처를 강제로 바꾸는 것이고.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머리가 검뿐인 강현철이나 머리가 먹는 것으로 꽉 차 있는 유수진을 제외하면 비슷한 표정이었다.
강현철과 유수진은 대외적 목적에 주목하며 덜덜 떨고 있었을 뿐이다.
“─이견 있나요?”
“”””…….””””
이견이 있을 리 없었다.
모라율을 심판할 수 있는 권리는 임가을에게밖에 없었다.
이 자리는 그저 임가을이 그들에게 통보하는 자리일 뿐이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는 이제 죽어나가겠네. 앞으로도 재앙은 계속 벌어지게 될 텐데….”
그리하여 모라율은 죄인이 되었다.
아니, 차라리 죄인이 되고 싶어 할 노예가 되고 말았다.
☆
회의가 끝이 나고.
은하는 곧장 회의실을 나섰다.
“아.”
“오! 판도라 클랜로드! 안녕하세요! 판도라 클랜로드도 회의에 참여했나 보네요? 아, 그러고 보니 준 십이좌 대우를 받았었죠?”
“”””……””””
그가 문을 나섰을 때.
은하는 회의실 앞에 서 있던 추영훈을 마주쳤다.
추영훈이 먼저 은하를 알아보고는 반갑다는 얼굴로 다가왔다.
“준 십이좌긴 해도, 그래도 저보다 경험이 있을 테니 잘 도와주세요. 그러면 제가 잘 아는 곳에서 아주 화끈하게 대접할 테니까요.”
“아, 네….”
얼굴을 딱 보아하니.
은하는 추영훈이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뒤를 따라 나온 십이좌들도 대강 상황을 파악하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안에서 무슨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모르는 추영훈은 실실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때, KK클랜로드 황산군이 문을 나왔다.
“판도라 클랜로드.”
“오, 클랜로드! 어땠습니까? 회의는 잘 되었나요? 역시 제가….”
“추영훈, 너는 그만 닥쳐.”
“…네?” “닥치라고 했다. 판도라 클랜로드.”
“네, 뭔가요?”
실실거리는 추영훈을 무시하며.
황산군은 대뜸 은하를 불렀다.
심기가 언짢은 듯한 어조였다.
속이 뒤집힐 만도 하겠지.
황산군의 생각이 짐작 가기에.
은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황산군은 은하를 노려보았다.
이내 그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제야 그가 말을 토했다.
“─난 도통 네가 좋아지지 않는다. 네가, 정말 싫다.”
“그런가요?”
이제는 옛날과 다르다.
은하와 그가 처음 대치했을 때는 서로 서 있는 위치가 달랐다.
한 명은 아카데미 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십이좌이면서 동시에 S급 클랜의 수장이었다.
허나 이제 그들은 서 있는 위치가 서로 비슷했다.
무작정 하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황산군이 최대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말이었으리라.
이에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다행이네요. 전 여자가 좋아서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람도 있고, 약혼을 약속한 사람도 있고요. 그럼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
황산군이 어처구니 없어하든 말든.
장난으로 승화시키는 노은하.
은하는 낄낄거렸다.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동해클랜의 육룡 중 한 명.
선기준.
그날도 사람들의 재건 작업을 도운 그는 밤이 되자 동료들, 가디언들과 거나하게 퍼마셨다.
그리고 동료 가디언의 집에 들어가 4차를 벌이고 곯아떨어졌다.
아카데미에 있는 선미예가 안다면 대노할 일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아직 술이 덜 깬 건가.”
동료 가디언이 깨워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몽롱한 정신을 하고 뉴스를 보았다.
화면에 지나가는 이상한 자막.
[─마나관리기구, 오늘 오전 9시, 새로운 십이좌 발표. 동해클랜의 선기준. 나이 4….]“진짜 술 좀 그만 마셔야겠네…. 자꾸 헛것이 보이네. 제발….”
자고 일
어났더니.
십이좌가 되어 있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