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94
선기준이 십이좌가 되었다.
우스운 일은 본인은 설마 자신이 십이좌가 될 줄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은하 네가 날 밀어준 건 고맙다만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인 것 같은데….]“아저씨 정도면 되어야 마땅하죠. 같은 사람도 십이좌로 있는 세상인데 뭘 그러세요?”
[와 동급선상에 놓고 말하면 안 되지! 하여튼…. 이게 뭔 일이냐. 아직도 얼떨떨하다.]선기준이 십이좌로 발표된 그날.
동료 가디언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동해클랜으로 출근하는 사진을 찍힌 그가 은하에게 전화했었다.
듣자하니 선기준은 십이좌 후보로 천거된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동해 클랜로드로부터 동해클랜이 십이좌 후보로 추천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고 한다.
다만 십이좌가 될 줄 몰랐다고.
[─나는 될 줄 몰랐지. 동해클랜 클랜로드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보다 쟁쟁한 사람이 많고, 가 유력시되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니까 내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처음에는 그랬는데 어찌어찌하다 아저씨가 만장일치로 뽑힌 거예요.”
[들었다. 만장일치로 뽑힌 이유가 네가 한 발언 때문이었다는 것도. 뭐? 뿌리 깊은 나무? 암만 그래도 날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니냐? 내가 대체 뭐라고…. 그냥 가 십이좌가 되게 할 것이지. 은하야, 나는 미예를 지키는 것만으로 벅찬 사람이야. 나라를 지킬 정도로….]“그래서 사퇴하실 거예요?”
[끙….]한편 그가 계속 엄살을 떨어댔다.
이에 선기준과 전화를 하고 있던 은하가 툭 하고 물었다.
선기준이 끙 소리를 냈다.
엄살을 떨면서도 막상 그만둔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은하는 피식 웃었다.
이전 삶에서는 저평가되긴 했지만, 지휘능력과 실력은 믿을 만하지.
게다가 이번 삶에서는 동해클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고, 어그로 관리 능력보다 방어 능력에 더 특화돼 있는 것 같기도 하니까.
선기준만한 적임이 없다.
은하의 판단이었다.
이에 은하는 선기준의 기를 살리려 그가 십이좌로서 얼마나 어울리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 마라면서도 선기준은 결국 허허 웃었다.
[그래, 알았다. 일단 한 번 해보지. 사람들이 그렇게 날 지지해준다니, 못 하겠다는 소리는 할 수가 없지. 우리 미예한테도 창피하고….]“아, 그러고 보니 미예가 뭐래요? 미예도 아저씨가 십이좌가 된 것을 알고 있을 거 아니에요.”
[당연히 알고 있지. 아까 아침에 미예한테 어떻게 된 일이냐는 소리 들었다. 지금 아카데미에서 난리가 아니라는 모양이야. 그거는 좋더라. 덕분에 우리 미예 기가 살…어…?]“왜 그러세요?”
전화 통화를 하던 도중.
돌연 선기준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지금 파인톡이 왔는데…. 미예가 오늘 내가 동료 집에서 출근했다는 기사를 본 모양이다.]“그러게 술 좀 작작 마시지….”
[…미예한테 전화 오네. 난 죽었다. 그래, 은하야, 나중에 연락하마.]“네, 아저씨. 무사하길 빌게요.”
전화가 뚝 하고 끊어졌다.
예경의 포격을 막아내는 선기준도 딸내미는 무서운 모양이었다.
은하는 킥킥거렸다.
“기준 아저씨가 되어서 다행이지. 힘의 추도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되었으니까.”
전화를 마친 은하는 집무실 의자에 몸을 맡겼다.
집무실 책상 한쪽에서는 큼지막한 과일바구니와 여러 선물들이 놓여 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클랜원들 전원이 오늘 비슷한 선물을 받았다.
동해클랜이 보낸 것이다.
동해클랜 입장에서는 고맙겠지.
로비 능력이 미치지 못해서 내심 포기하고 있었을 텐데, 내가 갑자기 지원사격을 해준 셈이니까.
그에게 보내진 선물에는 메시지도 들어 있었다.
동해 클랜로드가 보낸 메시지였다.
요약하자면, 앞으로도 동해클랜은 판도라클랜하고 우호적으로 지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동해클랜의 호의를 얻으면 좋지.
그러지 않아도 추영훈 문제 때문에 KK클랜과 껄끄러운 사이가 될 텐데 동해클랜이 방파제가 되어준다면야 좋은 일이지.
KK와 동해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데 이전 삶과 달리 이번 삶은 KK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허나 선기준이 십이좌가 됨으로써.
균형의 추가 다시 맞춰질 것이다.
바라마지 않던 결과였다.
☆
온태양이 죽었다.
노은하에게 직접 듣자하니.
몬스터들이 강북을 침공한 시기에 자신과 온태양이 생사결을 펼쳤고, 그로 인해 온태양이 죽었다고 한다.
‘그런…, 가요….’
온태희는 그때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찾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은하는 자신을 보지 못하며,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기만 했고.
그녀는 그렇게 읊조렸을 뿐이다.
그게 끝이었다.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다.
그것이 온태희의 감상이었다.
어머니를 잃고 나서 가족은 이제 온태양밖에 남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충격이 될 만도 하건만.
정작 그녀는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나는 왜 슬프지 않은 걸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온태양이 죽었다면 슬플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눈물도 흘리지 않고 그날 덤덤히 은하를 돌려보냈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몰라.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더랬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그때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슬픔이 덜한 것이리라고.
온태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오빠는 죽었는데.
내 일상은 변한 게 없구나.
오히려…, 더 보람차.
온태양의 죽음이 그녀의 일상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그녀는 걸핏하면 울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는 했다.
그런데 온태양의 죽음을 듣고 나서 어떠했던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밥도 잘 넘어갔고, 잠도 잘 왔다.
최근에는 중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재건 작업을 도우러 나가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재잘재잘 떠들고, 집에 돌아오면 금세 잠이 들 정도로 몸을 쓰니 개운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까 오빠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로, 나는 거의 혼자서 살아왔었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거의, 오빠를 만날 일도 없었었고….
생각해보니 온태양과 시간을 보낸 날이 꽤나 오래되었다.
같이 보내지 않은 시간이 감정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제, 온태양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다고 하나─.
“─오빠, 나 왔어.”
온태양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다.
다만 가슴 한편에 묻어두었을 뿐.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던 온태희는 문득 온태양이 생각이 났고, 그가 안치돼 있는 납골당을 찾았다.
혼자 오지는 않았다.
노은하와 조아라도 같이 왔다.
“태희야, 아라야. 나는 역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래, 알았어. 금방 끝내고 갈게. 우리 기다리느라 심심하겠다.”
“근처라도 둘러보고 있으면 시간도 금세 지나가겠지. 난 신경 쓰지 마.”
“오빠, 그럼 이따 부를게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온태양은 부모님과 함께 안치되어 있었다.
루미너스그룹의 배려로, 가족들은 납골당 내에서 가장 크고 넓은 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온태희는 사진 속 그들을 따라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은하는 온태양의 사진을 잠깐 보고 아무래도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지 자리를 피했다.
“그래도 부모님이랑 같이 있으니까 다행이다. 사진, 정말 잘 나왔네.”
“그렇지? 오빠가 원래 사진 찍으면 잘 나왔잖아.”
사진 속 온태양이 환히 웃고 있다.
납골당에 오기까지 이따금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던 조아라도 그제야 안심이 든 듯했다.
그녀도 얼굴이 풀렸다.
“”…….””
이내 두 사람은 기도했다.
온태양의 명복을 빌었다.
솔직히, 난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잘 이해가 안 돼.
온태희는 추억을 되새겼다.
어렸을 때의 온태양은 용감해서, 곧잘 그와 조아라를 따라다니면서 놀고는 했다.
그녀에게 온태양은 자랑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쓰러지고 나면서, 온태양은 가정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그에게 부담이 갔고, 결국 부담감을 참지 못한 온태양이 어머니 몰래 자신을 때리고는 했다.
그럼에도 온태희는 그를 이해했고, 그 시절 그녀에게 그는 두려우면서 의지해야 할 가장이었다.
그리고 온태양이 아카데미에 가고.
거기에서부터 추억이 끊겼다.
그때 이후로 그녀에게 온태양은─.
─잘 모르겠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온태양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조금도 짐작이 가지 않게 되었다.
단절이었다.
자신과 온태양은 정말 가족인가.
다만 서류상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얼굴도 보지 않고 살고 있는데.
고등아카데미 3년.
그리고 졸업하고 몇 개월.
그것이 그녀의 생각을 잠식했다.
누구나 다 겪게 되는 이야기이고, 어쩔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그것이 온태양의 죽음을 덤덤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틀림없으리라.
그럼에도 그녀는 간절히 바랐다.
“저세상에서는 엄마하고 아빠랑,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랄게. 나는…, 오빠 몫만큼 행복하게 살다 갈게.”
온태희는 기도를 마쳤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이미 기도를 마친 조아라가 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희야, 그만 가자. 밖에서 은하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응, 언니.”
조아라가 불렀다.
온태희는 발걸음을 옮겼다.
납골당을 나온 두 사람은 한쪽에서 나무를 올려다보던 은하를 찾았다.
그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두 사람을 반겼다.
“다 끝났어?”
“응, 다 끝내고 왔지. 은하 넌…, 정말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돼?”
“내가 가기도 뭐하고…. 온태양은 날 좋아하지 않았잖아. 내가 가면, 걔가 화낼 게 뻔할 텐데…. 대신에 너희가 가준 것만으로 족해.”
“넌 참…, 어른스럽다. 그래도 너도 힘들 때는 꾹꾹 참지 말고 말해줘.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응?”
“힘들다. 클랜회관까지 네가 날 좀 업어줄래?”
“너이씨! 사람 진지하게 말하는데 꼭 그렇게 초를 쳐야겠어!?”
“클랜로드가 클랜원한테 힘들다고 말해도 되겠어? 마음만 잘 받을게. 고맙다.”
“…머리에 손 얹지 마. 세팅했는데 다 헝클어지잖아.”
은하에게 쪼르르 달려간 조아라.
온태희는 두 사람이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신기하네.
아라 언니는 우리 오빠한테도 저런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조아라의 눈빛이 그윽했다.
동경, 신뢰, 의지, 걱정 등등.
온태희는 한창 온태양을 바라보던 조아라에게서 보지 못한 눈을 보고 새삼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녀 역시 그랬으니까.
그러던 중─.
“─그러고 보니 태희도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거네. 내년에 어디 고등학교로 갈지는 정했어?”
“아.”
조아라와 서로 찌르기 바쁜 은하가 불쑥 말을 꺼냈다.
두 사람의 장난을 보며 웃고 있던 온태희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로 결정했어요.” “”뭐?””
온태희는 자신의 진로를 고백했다.
은하와 조아라가 예상치 못했는지 되물었다.
온태희는 두 손을 등 뒤로 돌렸다.
그녀가 헤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만약 공부가 적성에 맞으면 그대로 대학교까지 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루미너스그룹 계열사에 들어가려고 생각했는데요….”
“”…….””
“이번에 재앙이 일어나면서 열심히 싸우는 플레이어들을 보게 되니까, 저도 그분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 수업으로…, 재건 작업에 참여하면서 플레이어가 더 되고 싶어지기도 했고요.”
두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으리라.
사실 그녀 역시 그러했다.
1년 전의 그녀였다면 자신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앙을 겪게 되면서 그녀의 생각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올해 있을 고등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치러보려고요.” “그래…. 태희 네가 하고 싶다는데 어쩌겠어. 열심히 해. 응원할게.” “모르는 게 있으면 우리한테 말해! 아카데미 선배로서 우리가 자세히 알려줄 테니까.” “네! 고마워요, 오빠 언니!”
이내 두 사람이 그녀를 응원했다.
온태희는 감사를 표했다.
자신이 정말 플레이어가 될 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다만 하고 싶다, 해보고 싶다.
그렇게 해서─.
“─플레이어가 되면 판도라클랜에 네비게이터로 들어갈게요! 저번에 클랜회관에 놀러가니까 하양 언니가 네비게이터가 부족하다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하양이 언니 일을 도와주려고요!”
“어…. 그건 별로 추천 못 하는데, 일단 가서 적성에 맞는 걸 찾아봐.”
“맞아, 태희야. 수명이 깎이는 게 뭔지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야, 너는 말을 꼭 그렇게….”
“그러게 누가 하양이 일만 시키고 그러래? 난 사실대로 말한 거야.”
“괜찮아요! 저는 잘할 수 있어요! 하양 언니도 추천해줬는걸요?”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미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
사당역 판도라 클랜회관 9층.
기록보관실에 올라온 은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온갖 자료가 널브러져 있는 광경이었다.
클랜원들의 고충이 느껴지네.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 지경이다.
은하는 절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을 클랜원들이 떠올랐다.
그가 자료를 밟지 않도록 조심스레 안쪽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일은 어떻게 잘….”
“어, 악덕 사장 왔구나?”
“악덕 사장이 뭐야, 악덕 사장이.”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 수 있구?”
“끙….”
곧 은하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진서나였다.
책상 위로 높다랗게 쌓인 자료들.
그곳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그녀가 은하를 보고는 대뜸 비꼬았다.
은하는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척 보기에도 진서나가 일에 치여 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힘내. 이것만 끝내면 일도 이제 많이 없을 거 아니야. 조금만 참아봐.”
“으…. 말로는 나도 할 수 있겠다. 그러지 말고 너도 이리로 와서 나랑 같이 일이나 하는 게 어때? 여기에 자리 비어 있으니까.”
“클랜로드는 원래 그런 거 안 해. 이런 건 너희가 해야지.”
“진짜 악덕 사장이라니까. 널 따라 내가 왜 클랜에 들어왔을까….”
“그나저나 바보 형이랑 아리엘은? 여기에 있을 텐데 보이지 않네?”
진서나가 몸을 부들부들 떤다.
은하는 그녀를 달래주면서 화제를 돌렸다.
진파랑과 아리엘이 보이지 않았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자료를 정리해야 할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기만 했다.
그러자 진서나 왈─.
“─둘 다 내보냈어. 파랑이 오빠는 이런 일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서, 그냥 은혁이 파티랑 같이 던전이나 공략하러 가라고 했지.” “아리엘은?”
“너는 리엘이도 이런 일에 적성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니?”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나도 그 생각으로 일을 맡겼다가, 괜히 자료만 더 어질러놔서 밖으로 쫓아냈지. 재건 작업이나 하러 가지 않았을까?” “그럼 여기에는 너랑 하양이밖에는 없는 거야?”
“아니. 도와주는 사람이 있지.”
여우 꼬리를 살랑거리는 진서나.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뒤편을 가리켰다.
은하는 고개를 들었다.
“아.”
“우비 언니, 남훈 오빠, 창진 오빠가 도와주고 있는 거 보이지?”
책장 뒤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이 책장에 파일을 꽂아 넣고 있던 중이었다.
책장 밖으로 얼굴을 내민 그들은 심히 퀭해 보였다.
“으, 은하야. 왔니? 너도 도와….”
“응, 열심히 해.”
은하는 한창진에게 애도를 표했다.
얼마 전에는 은아에게 잡혀 살더니 이번에는 서나에게 부려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 너도 와서 도와.” “은하야, 안녕….”
다른 두 사람도 짠하기는 했다.
여우비가 삭신이 쑤신다고 말하며 은하에게 손짓했다.
유남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은하는 무시했다.
눈 마주쳤다가는 부려 먹힐라.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
진서나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은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로 했다.
“저쪽엔 수빈이가 누워 있을 거야. 잠깐 눈 좀 붙이겠다고 했는데…, 슬슬 깨울 시간이네. 할 일이 없는 은하 네가 가서 깨워주지 그래.”
“그러다 저번처럼 수빈이 마법에 속박될 줄 누가 알고? 은근슬쩍 날 붙잡으려고 해도 소용없다.”
“쳇.”
“하양이는 어디 있어?”
“네 약혼자는 저 방에 있을 거야. 이제 보니 하양이 보러 왔구만?”
“그럼 누구를 보러 왔겠어.” “난 나 보러 온 줄 알았지. 그래, 가라, 가. 에잇, 치사해.”
여우가 손을 훠이훠이 휘젓는다.
무사히 그녀의 마수로부터 벗어난 은하는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정하양의 집무실이었다.
“하양아.”
“아, 은하야. 어서와.”
한창 작업에 열중하던 정하양.
그녀가 작업을 중단하고는 은하를 반겼다.
정하양에게 가까이 다가간 은하는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정하양이 몸을 맡겼다.
“아, 시원해. 살 것 같아.” “일하느라 힘들지? 어때? 일은 잘 되어가고 있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내일까지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정하양이 고개를 젖힌다.
그녀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았기에, 은하는 고개를 숙였다.
감정을 나눈 아주 짧은 시간.
서로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은하의 눈길은 그녀의 손으로 가 있었다.
“했네?”
“응, 했어. 예쁘지?”
“응, 예쁘네.”
얼마 전, 은하가 그녀에게 선물한 반지였다.
그녀가 일에 치여 살고 있는데도 힘들어하지 않고 있는 이유였다.
이내 은하는 그녀가 작업하고 있던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뭘 작성하고 있던 거야?”
“은하 네가 의정부에서 토벌했다는 백면상에 대한 보고서. 선녀정부가 의정부 정보를 모으기 위해 상세한 내용을 요구했거든.”
“아, 그렇구나.”
은하는 정하양의 머리에 턱을 탁 얹었다.
그녀가 그 상태로 설명했다.
하긴, 선녀정부 입장에서는 토벌된 백면상이 사실은 살아 있었다는 게 충격적이었겠지.
그리고 소수 인원으로 제3위계 오버랭크 몬스터를 쓰러뜨렸다는 것도 놀랍게 여겨졌을 테고….
은하는 의정부에서 돌아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일을 떠올렸다.
선녀에게 백면상의 마석을 내미니,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코쿤을 가져온 것도 모자라.
제3위계 오버랭크 백면상의 생사를 확인하고, 토벌하기까지 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 은하야. 그리고 이제 스킬석은 가지고 가도 좋아. 분석은 끝나서, 스킬석 정보는 라이브러리에 이미 업데이트해놨으니까.”
이내 정하양이 서랍을 열었다.
그녀가 은하에게 그가 얼마 전에 맡긴 백면상의 스킬석을 돌려줬다.
“무슨 스킬석인지는 확인됐어?” “아니…. 그건 흡수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을 것 같아. 스승님도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써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네. 그럼 어쩔 수 없지.”
마나관리기구 원칙에 의거해, 모든 플레이어는 고위계 몬스터를 토벌해 얻게 되는 전리품을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정보를 축적하기 위함이었다.
정하양이 스킬석을 라이브러리에다 업데이트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킬석은 제3위계 오버랭크 백면상의 것이란 시장성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
물론, 은하는 팔 생각이 없었지만.
여하튼 스킬석을 받은 은하는 곧장 체내 마나를 불어넣었다.
체화하려면 2, 3일은 걸리겠네.
안 그래도 집무실에서 빈둥거리기 눈치가 보였는데 마법이나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준 십이좌 자격도 반납했겠다.
은하는 요새 비교적 한가했다.
일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클랜원들에 비할 바는 안 됐다.
마침 스킬석도 돌려받았겠다.
은하는 마법이나 새로 체화하면서 시간이나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그가 히죽거렸을 때─.
“─은하야, 샤키라 언니의 전화야. 받아봐.”
“뭐? 무슨 일이지?”
전화가 걸려왔다.
이내 집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정하양이 그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여보세요?”
“어, 누나. 무슨 일이야? 서현이가 날 찾는 거야?”
[아니요, 판도라 클랜로드를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이야기를 들으니, 판도라 클랜로드를 인터뷰하고 싶다 합니다.]“인터뷰? 누가? 나는 받지 말라고 했는데….”
이번 재앙이 종식되고 나서.
여러 언론사가 판도라클랜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그는 클랜 보도는 하되, 인터뷰 제안은 거절했다.
샤키라도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렇기에 은하는 그녀가 인터뷰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했다는 게 자못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그녀가 말하기를─.
[─새나라일보 수습기자 김유하라 합니다. 아마 판도라 클랜로드에게 말씀 드리면 알 거라고….]“김유하?”
“아.”
“하양아, 누군지 알아?”
김유하라는 이름에.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반면 정하양은 아는 눈치였다.
은하가 수화기를 떼고 물었다.
그녀가 은하의 팔을 살짝 때렸다.
“우리랑 같은 초등학교 나왔잖아. 우리보다 3살 어렸던 애. 걸핏하면 유하가 널 따라다녀서 네가 한때는 애를 먹어 했잖아.”
“…아, 그 파파라치구나.” “유하한테 그게 무슨 소리니?”
회귀 전에 일명 노은하 파파라치란 소리를 들었던 새나라일보의 기자.
정하양의 말을 듣고 기억을 떠올린 은하가 중얼거렸다.
[김유하 수습기자가 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합니다.]리라이프 플레이어 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