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97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과연 누가 알았겠는가.
하룻밤 사이에 코쿤이 무너지고, 몬스터들이 침공을 해오면서 강북이 쑥대밭이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는 옛말이 딱 맞는군.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그 일로 인해 판도라클랜이 두 지역을 관할하는 클랜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용산구에 적을 두고 있는 클랜들은 모두 한숨을 쉬었다.
이번 재앙으로 인해 그들은 그동안 용산구에 끼쳐온 영향력을 상당수 잃고 말았다.
심지어 몇몇 클랜들은 클랜회관을 잃게 되면서 간이로 지은 건물에서 주민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기까지 했다.
클랜의 명예도, 위엄도, 영향력도, 병력도, 많은 것을 잃고 만 것이다.
그에 비해 판도라클랜은 사당역에 클랜회관을 두고 있고, 클랜원들이 한 명도 죽지 않아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한다.
“허, 참…. 나는 판도라 클랜로드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대비해 클랜회관을 일부러 사당역 방면에 세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더라고.”
“그 심정 이해하지. 나도 처음에는 어찌나 당황했는데. 게다가 재앙이 터지기 이전에 식량을 2달치 분량을 비축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진짜 알고 있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네.”
“운이 진짜 좋았던 거겠지.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대비한 거겠나? 식량 문제야, 애초 클랜은 최소 2달치 이상 식량을 저장할 게 의무로 명시되어 있으니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지만 신기한 일이기는 하네요. 어쩌면 어디 용한 무당을 만난 게 아닐까요?”
“어허, 이 사람이. 자네는 그런 게 정말 실재한다고 믿는 건가?”
“마법이 실재하는데 무당을 믿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그것보다 판도라클랜에는 미래를 볼 줄 아는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가 있다는 말이 더 신빙성이 있네.”
“정말 그런지 모를 일이지.”
“뭐, 미심쩍은 것이 많기는 하지. 하지만 선녀정부의 호의와 민심이 판도라클랜에게 가 있는데 그런 걸 따져봤자 뭐하겠나? 밝힐 수 없는 일을 어떻게 따져?”
“하긴, 판도라클랜이 어떤 의혹도 대답해야 할 이유는 없군요. 오히려 대답하는 게 이상한 거지.”
다른 지역의 클랜들은 잘 몰라도.
용산구의 클랜들은 판도라클랜의 시작을 상세히 지켜봤었다.
그런 의미에서 판도라클랜이 이번 재앙에서 보여준 행보는 꺼림칙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증명할 수 없는 이상, 그저 운이 좋았다는 말로밖에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제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판도라클랜은 승리했고.
자신들은 패배했다는 것을.
그들이 지금 판도라 클랜회관으로 향하는 이유는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사당역에서 지역총회를 열겠다는 초대장을 받았을 때만 해도, 누가 거기에 가겠느냐고 했는데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가게 되었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DM클랜이 몇 시간 만에 판도라 클랜로드에게 박살이 나서, 대표 클랜의 자리를 넘겨줄 줄 알았답니까. 안 그랬으면 우리가 굽실거리며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쉿! 옆에 DM 클랜로드도 있는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 이제 뭐 어쩌라고요? 이번에 대차게 깨져서 재기할 힘도 잃고, 대표 자리도 넙죽 반납한 DM클랜 눈치를 왜 봐야 합니까?”
“”””…….””””
어느 클랜로드의 말에.
클랜로드들은 내내 침묵하고 있는 DM 클랜로드를 힐끗 쳐다보았다.
DM 클랜로드는 얼굴을 붉히면서 화를 삭이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
“─그건 지들도 마찬가지인 주제에 지 주제도 분간을 못 하는군.” “뭐라고요?” “왜?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
다들 신세는 비슷했다.
그들은 이번 재앙으로 입은 피해를 수복하기 위해서라도 몇 년 동안은 클랜전을 치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그동안 판도라클랜의 치하 아래, 와신상담의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힘을 되찾더라도, 그때는 판도라클랜은 더 강한 힘을 갖추고 있을 거라는 것.
와신상담은 굴욕감을 감추기 위한 허울 좋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창해클랜이 해체된 이후로 용산구하고 중구에서 일어난, 흡사 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던 클랜전이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었다.
클랜들은 이제 판도라클랜의 말을 거스를 수 없게 된 것이다.
“자, 자. 우리 그만 싸웁시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싸워야겠어요?”
“맞는 말이네. 우리끼리 싸워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결국 모두 같은 신세인 것이다.
오늘 판도라 클랜회관에서 개최될 지역총회는 그들 모두가 정식으로 판도라클랜의 치하 아래 들어갔다는 사실을 클랜들 스스로가 인정하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굴욕감을 느껴야 했다.
그럼에도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자리는 위기지만 어떤 면으로는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최소 몇 년 동안 중구와 용산구는 판도라클랜의 왕국이 될 것이다.
상황을 도저히 바꿀 수가 없다면,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지내면서 이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겠다.
비록 자존심을 버리게 되겠으나, 그렇게 하여 이권을 보장 받는다면 손해를 본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나아가 판도라클랜에게 잘 보이면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이권 이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크흠, 크흠!!””””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지역의 대표를 자처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 그들은 이제 누가 더 판도라클랜과 사이가 가까운가 하는 충성 경쟁을 벌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은연중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
곧 판도라 클랜회관에 도착했다.
10층 높이의 건물.
그들은 완공된 지 불과 1년 밖에 안 된 클랜회관을 올려다보고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클랜이 10층 높이의 건물을 클랜회관으로 삼는다는 말인가.
그들은 건물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판도라클랜의 위엄에 압도되었다.
그때─.
“─중구에서도 왔나 보군.”
DM 클랜로드가 말을 꺼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저편에서 한때는 중구의 대표였던 한성 클랜로드 이 한성의 클랜들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DM 클랜로드.” “그러게 말이야. 우리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창해클랜이 해체된 이후로 처음인가.”
“그러게, 감회가 새롭구만.”
“”””…….””””
용산구와 중구의 클랜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들은 클랜전이 계속되는 동안, 두 지역의 패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되며 꿈에서 깨어나고 만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한성 클랜로드. 그리고 DM 클랜로드.”
그러던 그때, 그들 사이로 또 다른 무리가 나타났다.
무리라고 부르기에는 수가 적었다.
기껏해야 5명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을 따르고 있는 사람은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설마 같은 회의에 참석하게 될 줄은 몰랐군요. 그간 용산구 지역총회에는 참여도 하지 않았으면서….”
“을 오랜만에 뵈니 정말로 반갑군요.”
“시대가 변했으니까요.”
“”””…….””””
데이비드 김.
그리고 그가 이끄는 이태원 세력.
DM 클랜로드, 한성 클랜로드는 에게 예의를 차려야 했다.
한때는 그들이 내려다봤던 사람이 이제는 그들과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시대가 변하기는 했지….
판도라 클랜로드와 제일 가까운 건 지금 시점에서는 이다.
현재 이태원 세력은 판도라클랜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판도라클랜과 양호한 관계를 넘어 개 같이 꼬리를 흔들려고 생각하는 그들로서는 과 그 세력을 업신여길 수 없었다.
“여기에 있지 말고 얼른 갑시다.”
“그럽시다.”
이윽고 그들은 세 무리로 나뉘어서 클랜회관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오늘 안내를 맡은 판도라클랜 행정원 샤키라입니다.”
“판도라클랜 레인저 김민지입니다. 저희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판도라클랜 서포터 여우비입니다. 모두 어서 오세요!”
“”””…….””””
클랜회관에 들어선 클랜들을 반긴 사람은 세 명이었다.
한 명은 한국계 외국인이었다.
아리비아의 무희를 연상케 하는, 천으로 입가를 가린 여성의 피부는 볕에 그을린 듯 까무잡잡했다.
다른 한 명은 클랜로드들도 익히 전해들은 혹은 주민들이 눈물을 흘려대며 라고 부른다는 김민지였다.
마지막 한 명은 이명도 잘 모르는 서포터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안내를 받게 된 클랜로드들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판도라클랜이 우리를 무시하는군.
말단 클랜원들을 보내다니….
클랜로드들은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크기는 저마다 달라도 하나의 집단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그런 이들이 바쁜 몸을 이끌고서 몸소 찾아왔으면, 상대 입장에서는 예의를 갖춰 대하는 게 응당 마땅한 일이었다.
그들의 격을 고려한다면 클랜로드 혹은 서브로드나 행정관이 나와서 안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판도라클랜은 일개 행정원, 클랜원을 보낸 것이다.
상당히 기분이 나쁘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벌써부터 우리를 조련하려는 건가.
클랜로드들은 갖은 생각을 품었다.
한성 클랜로드는 얼굴을 굳혔고.
DM 클랜로드는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하고서는 얼굴을 붉혔다.
대관절 예의가 있는 것이냐고.
막말로 클랜로드가 해도 해도 너무 싸가지가 없는 거 아니냐고.
우리는 기분이 나빠서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얼른 너희보다 높은 사람을 데려오라고.
표현은 순화할지라도 그들은 다소 불만을 표하기로 했다.
바로 그때였다.
“─하하. 샤키라, 내 딸아. 이제는 제법 판도라클랜의 일원이 됐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잘 어울린다.”
“오랜만이에요, 아버지.”
“김민지 레인저. 우리 애들이 워낙 예의가 없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여우비 플레이어도 안녕하세요.” “말 편하게 하세요. 클랜로드께서 님을 극진히 대접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니까요.”
“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
그들이 폭발하려는 사이.
이 나서, 두 사람을 매우 호의적으로 대했다.
이번 재앙에서 나름의 공을 세운 이 그렇게 말하니, 그들은 불만을 표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리고─.
“─ 님과 동행자 분들은 이 엘리베이터에 오르시면 됩니다. 나머지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현재 가동 중인 엘리베이터가 이것 하나밖에 없어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들은 크게 깨달았다.
판도라클랜이 자신들을 철저하게 길들이려고 한다는 것을.
또한 이태원의 세력들을 극진하게 대우한다는 것을 말이다.
“여러분은 저랑 같이 가면 됩니다. 클랜로드께서 말씀하시기를, 저를 판도라클랜의 클랜로드라고 여기고 따라주기를 바란다더라고요.” “”””…….””””
이내 샤키라가 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김민지가 살가운 투로 입을 열고, 여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독이나 다름없는 말임에도.
클랜로드들은 판도라 클랜로드가 그만큼 자신들을 벼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숙연해졌다.
☆
판도라 클랜로드의 속셈은 뻔했다.
계단을 오르면서 제 분수를 몸에 새기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요.
계단을 오르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둘러보게 될 클랜회관 내부 경관에 기가 죽으라는 것이었다.
그래, 어디 좋다.
너희 클랜이 대체 얼마나 굉장한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주마.
클랜회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진즉 건물을 보고 기가 죽은 클랜로드도 몇몇 있었으나.
한 번이라도 지역 대표가 되었던 클랜로드들은 오기가 솟았다.
하지만 그들은 층수를 오를 때마다 아연실색해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판도라클랜이 식사를 하는 장소라는 거지요?”
“네, 맞습니다. 현재 입점해 있는 식당은 8곳밖에 되지 않지만 추후에 나머지 업체도 입점한다고 하네요.”
“판도라 클랜원들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텐데….”
“지금이야 클랜원들 수가 적어도, 앞으로 늘어나게 될 테니까요. 또, 저희 클랜 행정관님이 말씀하시기를 병사의 사기는 그날 먹는 식사에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
“아직은 클랜원들의 수가 적어서 아침, 점심, 저녁을 먹을 시간에는 업체들이 재료를 적절히 조정해서 뷔페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외 시간에는 클랜원들이 자율로 좋아하는 업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요.”
판도라 클랜회관 3층.
현재 5개의 음식업체가 운영되고 있는 중이었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은 물론이고 치킨 업체 등이 입점해 있었다.
판도라클랜 인원으로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한다.
“혹시 식사하셨나요? 출출하실까봐 저희 클랜에서 간식을 준비했는데, 좀 드셔보세요.”
그때 설명을 김민지에게 맡기고는 어딘가로 사라진 여우비가 돌아왔다.
그녀가 다과를 내밀었다.
클랜로드들은 혀를 내둘렀다.
시중에서 판매되지 않을 듯한 것이 상당히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맛있네….”
“그렇죠? 저도 요새 자주 먹어요. 루미너스 스위츠에서 저희 클랜에 납품하는 과자랍니다.”
“허, 거기가 과자도 납품한답니까? 그건 처음 알았네요.”
“네, 저희 클랜 한정으로요.” “”””…….””””
“…그렇군요. 그런데 1층 말고도 여기에도 카페가 있군요.” “네, 1층 카페는 클랜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입점해 있는 거라서요. 주말 같은 때에는 예배를 드리러 오는 분들도 있어서, 저는 이쪽 카페를 곧잘 이용해요.”
“주말에 예배요?”
“지하 2층에 성당이 있거든요.”
“”””아….””””
DM 클랜로드는 여우비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 기가 죽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클랜로드들도 마찬가지였다.
스케일이 달랐다.
더군다나 지하에는 은하신교라는, 얼마 전 신문에서 지나가듯 언급된 성당이 만들어지고 있단다.
클랜로드들은 혀를 내둘렀다.
지금도 주민들이 판도라클랜에게 의뢰를 맡기겠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성당이 들어오게 된다면….
플레이어와 정치를 별개로 하듯, 종교와 플레이어도 별개로 관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간 종교의 기능을 무시하고 있던 클랜로드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더욱 줄어드리란 것을 예감했다.
이후로 그들은 다과를 먹으면서, 마치 박물관을 견학하는 느낌으로 계단을 올랐다.
4, 5, 6층은 거주공간이기 때문에 볼 것 없이 지나갔다.
“”””여기는 영화관도 있네….””””
판도라 클랜회관 7층.
그들은 벽면에 붙은 영화 포스터나 한쪽에 팝콘기계가 있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돈 낭비가 따로 없다.
클랜로드들의 생각이었다.
이내 그들은 판도라클랜이 다섯 개 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탄식했다.
“경관이 매우 좋군요. 이런 곳에 수영장이 있다니….”
“수영장 말고 사우나도 있답니다. 저희 클랜 남자들은 내기 게임으로 누가 더 오래 버티나 경쟁을 하기도 하더라고요.” “”””…….””””
판도라 클랜회관 8층.
클랜원들은 한쪽에 거대한 규모의 수영장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클랜회관이 아니라 호텔이다.
한편 김민지는 사우나가 뭐가 그리 좋은지 알 수 없다며 투덜거렸다.
클랜로드들은 순간 형형한 눈으로 그녀를 째려보았다.
물론, 김민지가 고개를 홱 돌리자 그들의 고개도 홱 돌아갔다.
“9층은 도서관으로 쓰고 있어요. 다들 일을 하고 있어서 이쪽은 그냥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판도라 클랜회관 9층.
그들은 한 층 더 올라갔다.
“보통 회의는 7층에서 진행하는데, 오늘처럼 특별한 날은 경관이 좋은 10층에서 회의를 하기도 합니다.”
김민지가 회의실로 향하며 말했다.
클랜로드들은 김민지의 말에 담긴 속뜻을 간파했다.
판도라 클랜로드는 역시나 일부러 자신들이 10층까지 걸어 올라오게, 그리하여 10층 전체를 둘러보도록 의도한 것이다.
“”””…….””””
하지만 그들은 분노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환경 차이를 크게 절감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역총회를 열 때마다 대표를 맡은 클랜이 으스덕거리면서 해오던 일이 아니었던가.
이리 건방지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체념했다.
“아, 남훈아. 네가 지키는 거야?”
“누구 한 명은 지키고 있는 편이 좋다고 해서. 샤키라 누나랑 서나는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회의실 앞.
클랜로드들은 얼굴이 둥그스름한 남자를 만났다.
여우비가 부르는 이름을 통해.
클랜로드들은 금세 남자의 정체를 파악했다.
이 남자가 인가.
이번에 과 함께 제4위계 대장두터비를 물리쳤다지 아마.
유남훈.
이번 재앙에서 그가 보인 활약은 심히 대단한 것이었다.
독을 중화시키는 기프트 중에서도 효력이 강대한 을 가진 것이 판명이 난 데다가.
그리고 자신의 기프트를 이용하여 군단장을 쓰러뜨리는데 일조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었다.
소문과는 다르군. 알려진 바로는, 은 이름 그대로 칼 같은 면을 지녔다고 하던데.
지금 보니 순하게 생겼구나.
얼굴이 동그랗고, 살집이 좀 있기 때문인 것인지.
클랜로드들은 으로부터 경계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공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들은 유남훈을 기억하기로 하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왔는가.”
“”어서 오세요.””
회의실 안에는 데이비드 김이 먼저 와 있었다.
뒤에는 샤키라가 서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내 그들은 샤키라의 옆에 있는, 최근 금빛의 텔레파시스트로 통하는 진서나를 발견했다.
“클랜마다 지정된 좌석이 있으니, 좌석에 있는 푯말을 확인하신 다음 착석해주세요.”
이름 그대로 금빛 머리칼이 매우 인상적인 아인.
사람의 시선을 끄는 미인이었다.
그러나 진서나가 그들에게 내뱉는 말은 꽤나 무뚝뚝했다.
클랜로드들은 그녀에게 까칠하다는 인상을 받으며 자리를 찾았다.
그때, 그들은 멈칫했다.
왜 의 자리는 판도라 클랜로드 옆에 배치돼 있는 거지? 그에 비해 한성 클랜로드의 자리는 제법 떨어져 있고, DM 클랜로드의 자리는 저 멀리 놓여 있는 거지?
혹시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자리를 배치한 것은 아닌가.
클랜로드들은 자리에 앉고 나서는 찜찜해했다.
그러자 그들의 심리를 읽었는지, 진서나가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자리는 저희가 초대장을 보낼 때 먼저 참석하겠다고 답신을 보내온 클랜들 순서로 배정한 거랍니다.” “”””……!!””””
“별 거 아니에요.”
별 거 아니기는 무슨.
클랜로드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장 말석에 앉은 DM 클랜로드는 눈에 띄도록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서나는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샤키라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클랜로드께서 현재 중요한 일이 있는 관계로 아무래도 조금 늦을 것 같다고 하십니다.”
“”””…….””””
“괜찮습니다. 몇 시간이 걸린대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누가 좀 마실 것을 가져다주시겠습니까?” “네, 제가 다녀올게요.”
여기까지 와서도 조련인가.
클랜로드들의 표정은 썩어갔다.
그에 반해 은 시종일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그들도 결국 어쩔 수 없이 그처럼 김민지와 여우비가 가져온 다과를 먹으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지역총회를 개최하는 클랜이 종종 사용하는 짓이라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그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야 했다.
그들은 을이었고.
판도라클랜은 갑이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거 완전 포위된 신세군.
시간이 지나면서 차례차례.
목민호, 류연화, 유남훈 등이 들어와서 문가 근처에 직립했다.
명목상으로는 경호라고 하나.
몬스터도 나타나지 않을 장소에서 경호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허튼 수작을 하면 그들이 무기를 휘두를 수도 있다는 무언의 협박과 다름없었다.
의 얼굴이 변했군.
이래서 사람들이 독기가 잔뜩 들어 있다고 말했던 거였어.
DM 클랜로드.
한성 클랜로드 .
두 사람을 비롯하여 클랜로드들은 유남훈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가는 것을 보고 경계했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순진한 인상이 특징인 걸로 보이나, 전투에 임하면 살벌해지는 듯했다.
☆
지역총회가 있는 날이다.
그럼에도 은하는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클랜로드들이 벌써 클랜회관 앞에 도착을 했다는데도 여유를 부리고 있는 중이었다.
“은하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안 그러면 날 만만하게 볼 사람들이거든.”
판도라 클랜회관 2층 휴게실.
은하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운 채로 여유를 즐겼다.
조금 이따 던전을 공략하러 간다는 최은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은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
─치사하긴 해도 이렇게 해서라도 누가 위아래에 있는지 알려줘야지.
가뜩이나 나는 나이가 적다면서, 은근슬쩍 말을 놓으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인데, 뭘.
단순한 친목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권력 관계를 확실히 하는 자리였다.
뻔하고, 졸렬하고, 치사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모르는 사이에 그들에게 잡아먹혀 있을 테니까.
각자 뱃속에 10년 묵은 구렁이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클랜로드들이었다.
회귀 전에 은하가 하백련의 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고 내놓은 결론이었다.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약을까….”
“아카데미에서 경험해보지 않았어? 원래 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란 이렇게 고이게 되는 법이야. 여기는 더 심할 거다.”
“클랜로드의 사회는 정글이구나.”
“정글이 아닌 세상이 어디 있겠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도 결국에는 정글이나 다름없는데.”
세상이 원래 그런 법이다.
그렇기에 오래 살아남고 싶다면, 치사하고, 졸렬하고, 약아 빠져지는 수밖에 없다.
“저번에 회의에서 서현이가 하는 소리 못 들었어?” “들었지. 너보다 더 심하더라.”
“나보다 더 약아빠진 거지.”
“어휴….”
최은혁이 한숨을 쉬든 말든.
은하는 며칠 전에 한서현이 꺼낸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보다 더했다.
1층에서 클랜로드들의 무기를 모두 몰수하게 하고, 회의실에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배치해 놓으라고 한 것이다.
이왕 할 거면 철저하게 하라지만, 그러다가는 진짜 싸움 나는 거지.
은하는 한서현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지역구를 두고 눈치싸움을 벌이던 클랜들의 전국시대는 끝이 난 지가 오래였다.
굳이 그들의 무기를 빼앗으면서, 겁박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자 회의실에 몇몇 클랜원들을 배치하긴 할 것이다.
“은혁이 너도 그냥 가서 경호할래? 여차하면 정당방위로 확….”
“아니야, 난 정글에선 못 살겠고, 던전 가서 살련다.”
“그래, 가라, 가. 넌 그렇게 해서 클랜 홍보나 해줘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최은혁.
은하는 손으로 침대에 앉아 있던 최은혁의 허벅지를 밀어냈다.
최은혁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서나가 텔레파시를 보냈다.
[─클랜로드들은 모두 도착했어. 너 늦게 올 테니까 조금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도 전했고.] [잘했어. 난동 부리지는 않지?] [불만스러운 사람들은 많은데…. 남훈 오빠가 정색하니 잠잠해졌어.]아티펙트, 두 사람의 밀어.
진서나가 충무 등급 유물을 가공해 얻게 된 브로치형 아티펙트였다.
은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녀의 텔레파시에 집중해서는, 그녀처럼 텔레파시를 사용해 대화했다.
[꽤나 편하기는 하네.] [네 생각 다 들리거든?] [이제 좀 끊어. 내 쪽에서 어떻게 끊어야 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어디 한 번 노력해보라구.] [끊어, 끊으라고, 끊어줘.]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머릿속에 서나와 패스가 연결되니 마음의 소리가 전부 새어나갔다.
반면에 진서나는 능숙하게 마음의 소리를 조절할 수 있었다.
[네가 이리로 올라오면 풀어줄게.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생각이야?]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 알게 될 때까지.] [민지 말 들어보니까 올라오면서 많이 깨진 모양이던데…. 이제 그만 올라오지 그래.] [네가 이거 풀어주면 올라갈게.] [아, 그래? 지금 나하고 텔레파시 싸움을 벌여보자는 거지? 너 내가 마음만 먹으면 정신을 공격하는 건 일도 아니야.] [댕댕이 주제에.] [!!~!@xx!!#@!] [알았어, 간다 가.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시끄러우니까.]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한숨 푹 자고 가려고 했더니.
아무래도 그러지는 못할 듯했다.
더군다나 이미 한서현은 회의장에 올라가 있다고 하니, 은하도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얼른 와.] [가고 있어.]그리하여 은하는 10층에 도착했다.
그가 회의실 문을 열었다.
“”””…….””””
데이비드 김이 반가이 웃고.
클랜원들이 안도해하며.
클랜로드들이 은하를 주목했다.
은하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가장 상석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양 옆에는 한서현과 정하양이 앉아 있었다.
테이블 밑으로 두 사람과 가벼이 손을 잡고 푼 은하가 입을 열었다.
“─제가 좀 늦었죠? 요새 워낙에 일이 많아서요. 양해해주세요.”
“”””…….””””
40분이나 기다리게 해놓고.
은하는 태연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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