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
4살이 되었을 때에는 체내 마나가 조금 늘어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처음에는 마나를 다룰 때마다 정신을 잃는 일도 비일비재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법 버티는 날이 늘어난 것이다.
“후우.”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은하는 체내에 모아두려던 마나를 풀어헤쳤다.
마나는 술과 같다. 적당한 양은 몸에 이로울 수 있지만, 너무 많은 양은 몸을 해치는 독이 될 수 있다.
마나를 모을 때에는 천천히 마시고, 단숨에 들이키지 말아야 한다. 괜히 분수에 맞지 않게 그러모았다가는 몸이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하는 마나 폭주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젊음의 패기를 부렸다가 위에 구멍이 나는 일로는 끝나지 않는 것이다.
혹자는 체내 마나를 늘리기 위해서는 필름이 끊기도록 마나를 모아야 한다지만 다음날 아침에 무사히 일어나고 싶다면 절제를 지켜야한다.
남자들끼리 맨몸으로 부대끼고 자고 싶지 않다면.
이건 절대로 경험담이 아니다.
아, 젠장. 눈물이 앞을 가리네.
“이래서는 회귀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겠네.”
회귀 전에는 어릴 때부터 마나를 다룰수록 체내 마나가 늘어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은하로서는 어릴 때부터 마나를 다루더라도 회귀 전 자신의 체내 마나를 월등히 뛰어넘을 것 같지는 않았다.
포기해라. 그리고 인정해라.
플레이어 세계의 격언이었다.
모든 존재는 제각기 다른 마나를 가지고 태어난다.
누구나 마나 앞에서는 평등하다. 가지고 태어나는 마나는 부모의 권력도 재력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나는 몬스터가 만연하는 이 세계에서 평등하면서도 차별적이기도 했다.
누구나 마나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화려한 마법을 구현할 수 있는 마나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숨만 쉬고 살 수 있는 만큼의 마나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세계에서 체내 마나는 힘이 되고, 권력이 되고, 재력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형성하는 기준이 된다.
노력과 결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것이 체내 마나라면 더더욱.
모든 존재는 모두 체내 마나를 얼마나 보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한계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체내 마나가 많은 사람과 적지 않은 사람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격차는 더 벌어진다.
그러니 노력하지 말고 포기해라.
인정해라. 내 자신의 한계를.
마나를 사용해 몬스터를 멸하는 플레이어의 세계는 천부적인 자질과 센스가 모든 것을 가르는 세계.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재능이 없는 사람들부터 목숨을 잃고 마는, 노력이 배신하는 세계였다.
그런 세계에서도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그에게도 천부적인 센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녀왔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누나는 어떤지.
은하는 은아의 체내 마나를 보았을 때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주체할 줄 모르는 마나가 언제나 넘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몸으로는 마나를 모두 감당하지 못해 무의식적으로 방출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다 크면 도대체 얼마나 늘어나려고?
“…볼수록 대단하네.”
“응? 뭐가?”
“아니야. 근데 누나, 내 팔은 왜 잡아당기는 거야.”
“동네 애들이랑 놀기로 했어! 너도 가자!”
“난 집에서 쉴래.”
“아이, 가자~”
“하아….”
나이를 32살하고도 4살을 더 먹었으면서도 은아는 도저히 이기지 못하는 은하였다.
☆
은아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박자가 이상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를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로 데려갔다.
“얘들아 나 왔어!”
“은아야 안녕.”
“은아 언니다!”
“은아야 이쪽으로 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은아를 보자마자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뛰어왔다.
그가 일찌감치 은아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이 만들어낸 인파에 휩쓸리고 말았으리라.
애들 돌보기 싫은데.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노은아. 뿐만 아니라 그녀는 동네 주민들로부터도 사랑받는 아이로 통했다.
우리 누나가 어머니를 닮아서 예쁘긴 하지.
그에 비해 은하 자신은 어떤가.
아버지를 닮은 험상궂은 눈매, 붙임성이라고는 없는 외모에, 툭하면 귀찮다느니 집에 가겠다느니 말을 꺼내는 그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리 없었다.
아이들이 겁을 먹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넌 안 와도 되는데.”
“나도 오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러던 중 또래 여자아이들과 모래밭에서 놀고 있던 민지가 다가왔다.
두 사람은 악연에 가까운 소꿉친구였다.
그래서 서로 던지는 말은 투박하고 까칠했다.
근데 이 먹보는 대체 애들이랑 뭘 하고 노는 걸까.
불현듯 흥미가 생긴 은하는 민지가 놀고 있던 모래사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여자아이들이 모래밭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내 아들, 너 같이 천한 것한테 절대 못줘.”
“어머님!”
“누가 네 어머님이니!”
“…제가 잘 할게요. 어머님께서 걱정하시지 않게….”
“이게 진짜…. 너 정말 말귀를 못 알아먹는 구나? 우리 아들, 앞길 창창한 애야. 그런데 너처럼 부모도 없이 자란 애가 어울릴 것 같아?”
“어머니….”
“됐고, 이거나 먹고 떨어져!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네.”
왜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인지.
“…뭐냐.”
“뭐긴 소꿉놀이 하고 있잖아. 안 보여?”
어린애들 소꿉놀이가 이리도 꿈도 희망도 없었던 건가.
하긴, 이 세상에서 꿈도 희망은 모두 몬스터 앞에서 사라졌지.
“나도 껴도 돼?”
왜 또 왜.
누나는 왜 끼려고.
여자애들이 그래도 박진감 넘치게 연기를 하기는 했다.
아침 드라마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은아가 소꿉놀이에 흥미를 보이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지지야, 지지라고!
“아니, 누나는 하지 마.”
“…너무해.”
절실하게 그녀를 붙잡는 은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자신의 누나가 막장 드라마에 빠지게 둘 수 없었다.
“배워도 무쓸모야. 누나는 제발 지금 이대로만 자라주라.”
“응?”
“그럼 뭐하고 놀 건데?”
먹민지 너는 왜 끼어드는데.
“내가 그걸 왜 정해야 하는데.”
“너 때문에 은아 언니가 못 놀고 있으니까.”
어쭈 이게? 너 정말 마음에 안 든다.
그가 노려보자 민지도 똑같은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하아….”
은하는 어느새 주변에 몰린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제각기 놀고 있던 아이들이 모두 모여 있는 상태였다.
누나 효과 굉장하네. 자석이야 뭐야?
“…인원수도 많으니 경찰과 도둑이나 하자.”
“경찰과 도둑?”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들.
어떻게 경찰과 도둑을 모를 수가 있지.
의외라고 생각한 은하는 공원에 모인 아이들에게 경찰과 도둑에 대해 설명했다.
규칙은 간단. 경찰이 도둑을 잡아서 감옥에 넣으면 끝이었다. 이때 도둑은 경찰이 모르게 감옥에 갇힌 도둑들을 탈옥시킬 수 있었다.
“그럼 인원을 경찰과 도둑으로 나눠야겠네.”
자기주장이 심한 아이들을 정리할 수 있는 아이는 그만한 영향력을 가진 아이여야 했다.
민지와 은아는 경찰과 도둑으로 나뉘어 아이들을 이끌기로 했다.
“그럼 은하는….”
“난 도둑 할래 누나.”
“그럼 난 경찰 할래! 민지야 내가 경찰 할게.”
“그래, 그럼. 언니가 경찰 해. 내가 도둑 하지 뭐.”
시작하자마자 바로 잡혀서 편히 쉬고 있어야겠다.
두 사람은 그의 속내도 모르고 시원히 수락했다.
이윽고 시작된 게임.
어느새 놀이터는 도망치는 도둑과 도둑을 쫓는 경찰의 함성에 싸여 있었다. 소리를 듣고 나온 아이들도 가세해서 게임을 시작했을 때보다 인원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아, 편하다.”
한편 은하는 계획했던 대로 시작하자마자 경찰에 잡혔다. 감옥으로 연행된 그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뛰어노는 아이들만 유유자적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들이 꽤 노력을 하는지 도둑들이 감옥으로 차례차례 연행되고 있었다.
그때 경찰로부터 눈을 피해 슬금슬금 다가오는 민지가.
“얘들아 도망쳐!”
“난 집 지키고 있을게. 바이바이~”
“이 바보야! 거기는 집이 아니라 감옥이거든!”
누가 모른대.
은하는 눈살을 찌푸리는 민지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도둑이 들어갈 집이 감옥 아니면 어디겠어. 자고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나는 감옥에서 너희들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을게. 한 명은 집을 지키고 있어야겠지?”
“뭔 개소리야. 아이스크림 녹는 소리나 하고 있네.”
“…아이스크림 녹는 소리가 어떤 소린데.”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말이나 주워들어서는.
설마 누나도 먹민지처럼 이런 말을 지껄이는 건 아니겠지.
제발 애는 애답게 컸으면 좋겠다.
“얘들아~! 여기 먹민지가 있어!”
어디 고생이나 해봐라.
“김민지 잡아라!”
“김민지야! 민지가 도둑들을 탈옥시켰어!”
“노은하 너 진짜~!”
“응, 수고~”
도둑을 탈옥시킨 민지는 경찰들이 우선적으로 체포해야할 대상이었다.
은하의 제보를 듣고 뛰어오는 경찰들.
민지는 그를 죽일 기세로 노려보고는, 경찰이 잡기 전에 감옥을 벗어났다.
그 사이 은하는,
“노은하 체포!”
“…난 이미 감옥에 있는데.”
“그래도 탈옥한 거잖아?”
“뭐, 맞기는 하지.”
현실이었다면 감옥 문은 열려 있는 상태라서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는 도망칠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은아가 수갑을 채우는 흉내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이따 끝나고 꼭 기다려. 저번처럼 먼저 가면 안 돼?”
“알았어, 알았어. 이제 안 버리고 갈게.”
“약속이야!”
마지막까지 은아는 감옥을 잠그는 시늉을 하고는 민지를 잡으러 뛰어갔다.
“…너 가만 안 둬.”
결국 경찰들을 따돌리지 못한 민지는 감옥으로 연행되었다. 여러 명에게 쫓긴 게 꽤 분했는지 눈시울이 여간 붉은 게 아니었다.
독하다, 독해.
그래도 울지는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고 있는 거 봐.
뭐 아무렴 어때.
“아이스크림 녹는 소리나 하고 있네.”
너도 똑같이 당해봐라. 누가 꺼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입에 착착 붙는 개소리네.
☆
“그럼 내일 보자~!”
“얘들아 잘 가!”
“노은하 너 나중에 가만 안 둬!”
“얘들아 안녕~!”
중간에 아이스크림 녹는 소리가 하나 섞여 있네.
경찰과 도둑을 마쳤을 때에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오늘 하루 땀을 잔뜩 흘린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가자~”
“꼴이 이게 뭐야.”
“에헤헤….”
절로 한숨이 나온 은하는 은아가 입고 있는 옷을 털어주었다. 손을 흔들며 아이들을 마지막까지 배웅한 은아는 흙먼지라도 뒤집어썼는지 깨끗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재미있었지?”
“그럭저럭.”
반나절이나 감옥 안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는 책이나 한 권 가져올까.
“내일도 또 놀자.”
“시간이 되면.”
오늘따라 유독 즐거웠나 보네.
싱글벙글거리는 은아를 보고 있자면 그만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만 넘어갈 뻔했지만 그래도 어림없어.
내일도 오늘처럼 시끄러운 하루가 되려나.
초등학교에서 돌아온 누나가 내 손을 붙잡고 놀이터로 뛰어가는 일상이.
단조로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는 이 삶을 지키고 싶었다.
회귀 전에 무력하게 잃고 말았던 것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니까,
“크릉….”
“…괘, 괜찮아.”
집에 가는 길목에서 튀어나온 들개.
은아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러면서도 은하가 겁을 먹지 않게끔 일부러 강한 척을 하고 있었다.
“이노옴! 절로 가!”
떨림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는 속일 수 없었다.
다리까지 떨고 있잖아.
자기도 무서우면서 괜히 누나라고 나서다니.
누가 그를 지키려 앞으로 나선 적이 있었던가.
아무도 없었다. 회귀 전의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은 누구든 적으로 여겼으니까.
누군가 그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서지 않을 정도로 그는 강했으니까.
그러니 한참이나 작고 어린 은아가 앞으로 나서는 모습은 낯설었다.
낯설다?
아니, 아니야.
그는 비슷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차체 속에서도 그를 지키려고 꼭 끌어안았던 누나의 모습.
그랬지. 누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괜찮아 은하야.’
“…괜찮아 은하야.”
목소리가 겹친다.
떨림조차도.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누나는 내가 지켜줄게.”
“…어?”
“누나는 내가 지켜줄게.”
“…어?”
이번 생에는 내가 지킨다. 잃었던 것들을 모두 되찾는다.
다시금 각오를 다진 그는 은아를 등 뒤로 숨기고 앞으로 나섰다.
“크르릉…. 왈! 왈!”
겨우 동네 들개 따위에게 질까 보냐.
은하는 체내 마나를 끌어올렸다.
몸 밖으로 넘실넘실 피어오르는 마나.
바라는 것은 가족을 지키고 싶은 힘.
이미지를 담은 마나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워지고,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실체를 갖기 시작했다.
“크르….”
나는 너를 죽일 수 있다.
칼날처럼 다듬어진 마나가 일제히 경고한다.
“꾸….”
살기를 견디지 못한 들개는 결국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이런 건 나한테 맡겨.”
아직 키는 작지만 언젠가 누나보다 커지겠지.
그는 까치발을 들어 은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은하야 지금….”
당황하며 은하를 내려다보는 은아. 눈에는 조금 전에 참고 있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나 강해. 걱정 마.”
조금은 믿음직하게 보였을까.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정신은 32살하고도 4살을 더 먹었지만, 남자는 여자 앞에서 강해 보이고 싶은 법이니까.
조금 멋쩍을 생각을 하며 은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등 뒤에서 덮쳐드는 일격이─.
“─쿠억!”
괜히 폼을 잡으며 걸어가고 있던 은하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은하야 지금 그건 뭐야! 그게 마나라는 거지!? 나도 하고 싶어! 나도 할래! 나 좀 가르쳐줘!”
이럴 때는 감동해서 나를 다시 봐야 하는 거 아니야?
하긴, 우리 누나라면 이러고도 남지.
“알았어. 안 그래도 날 잡아서 가르쳐줄 생각이었어.”
“야호!”
재잘재잘 떠들며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가는 길은 저녁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다음 시간에 계속─.
To Be Continued─.
─계속은 개뿔.
집으로 돌아온 은하는 은아가 막대한 마나를 타고났음에도 마나를 다루는 센스는 더럽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재능을 주지 않는다.
21세기 전에 존재했던 격언을 떠올리며 은하는 이 세상도 조금은 평등하지는 않는가 생각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