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08
선력 16년 3월.
아카데미 1학기가 개강했다.
고등부 3학년으로 편입하는 이들을 담당하게 된 신서영에게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될 터였다.
신서영은 확신했다.
그녀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총장님은 왜 나한테 편입반을 맡으라고 한 거야….”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확 사퇴를 하거나, 한동안 휴직이라도 할까 싶었다.
담당하는 반 인원 구성을 보니까 견적이 나오는 것이다.
“메이링, 메이린, 이리야, 도미니크, 블라블라….”
그녀가 담당하는 반 학생들이 모두 용산구와 중구 출신이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노은하 뒤치다꺼리는 하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더니 스케일이 더 커졌잖아, 미친….
학적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세상은 이제 용산구와 중구로부터 자연스럽게 판도라클랜을 연상하게 되었고.
이태원의 외국인들이 판도라클랜과 깊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녀가 담당하게 되는 학생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판도라클랜과 관련돼 있다는 뜻이었고─.
“─내 말을 지지리도 안 들어먹을 애들을 1년 동안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씨….”
필시 말썽꾸러기들이 틀림없을.
그런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1년 동안 죽어나갈 것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미래가 절로 그려졌다.
아카데미 총장의 강압 아닌 권유가 불러온 참사였다.
이중에서 정상인이 아닌 사람들이 절반 이상은 될 거야.
뻔해, 뻔하다고….
신서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노은하다.
노은하 밑에 모이는 사람들이 어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겠는가.
그나마 정상인처럼 생긴 학생들도 모르는 새에 슬그머니 사건사고를 일으킬 것이다.
근거의 객관성은 떨어졌으나.
경험의 주관성을 무시하지 못했다.
신서영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이 담당하는 반을 찾았다.
“후우….”
문제아들이 100명.
그나마 노은하가 나쁜 놈이지만, 마냥 나쁜 놈은 아니니, 학생들도 그렇게 나쁜 놈들은 아닐 것이다.
사실, 자신이 나쁜 놈인지 모르고 사고를 치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제일 악질이었지만.
어떻든 1년을 편안하게 보내기를 빌 뿐이었다.
강의실 앞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은 신서영이 힘차게 문을 열었다.
“”””…….””””
교관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창 떠들고 있던 모양이었다.
신서영은 자신이 문을 벌컥 열자 안에서 들려온 소리가 뚝 끊기고,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걸 느꼈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석부를 탁 내려놓았다.
“─앞으로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을 담당하게 될 신서영이라고 합니다.”
편입기수라서 그런지.
학생들의 나이는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섞여 있다 보니 머리색이나 피부색도 다양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제부터 그들을 자신이 가르쳐야 하는 학생으로서 평등하게 대하기로 했다.
물론, 평등이란 상대적이었다.
자신의 눈에서 벗어나는 학생들은 해당 기준에서 평등하게 대하리라.
그녀는 그러한 뉘앙스로 말하면서 오리엔테이션을 설명했다.
“이걸로 첫 날 설명할 건 끝냈고, 궁금한 게 있으면 손을 들어주세요. 저는 두 번 설명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나중에 모른다고 하지 말고, 지금 이 기회에 묻는 게 좋을 겁니다.”
“”””…….””””
설명을 끝마치고.
신서영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그녀는 제일 가까이에 앉아서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설명을 듣던 여학생을 지목했다.
쟤가 구나.
신서영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이리야.
아카데미 교복에 추가로, 성당에서 신부들이 쓸 것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리야가 판도라클랜에 입단할 거라는 이야기도 유명했고.
작년 서울 재앙에서 그녀가 순간 기프트 을 발동하여 예경을 약화시킨 일화도 알려져 있었다.
그녀와 같은 기프트 사용자로서, 신서영은 그녀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차였다.
“그래요, 이리야 학생.”
“네, 교관님.”
신서영은 그녀를 지목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다소곳이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주님께 익히 들었습니다.” “주님?”
“네, 저의 주신이자, 판도라클랜의 노은하 클랜로드요.” “아, 아아….”
사람 좋아 보이는 분위기와 달리.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는 것 같다.
신서영은 몇 마디 말로 이리야를 파악한 것만 같았다.
그건 그렇고 주님이라니….
판도라 클랜회관 밑에 은하신교란 종교가 만들어졌다는 게 진짜였나 보구나.
걔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제는 클랜로드가 아니라 신의 자리까지 넘보려고 하는 건지….
신서영은 내심 한탄했다.
노은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러는 한편 노은하를 주님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리야를 요주의 인물로 삼기로 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저희들이 자신의 은사이신 신서영 교관님을 곤란하게 할 경우, 그때는 주님께서 응징을 가하실 거라고요.”
“…….”
“그러니 저희는 주님의 뜻에 따라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 신서영 교관님께 굴종할 것을 맹세합니다. 부디, 못난 저희를 너그러이 살피어 주님께 가르침을 베풀어주신 것처럼 저희를 설파해주시기 바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잘 부탁드려요….”
이리야가 대표로 말하자.
학생들이 단체로 복창했다.
신서영은 광신도적인 모습을 취한 그들을 보고 넋이 나갔다.
그러면서 그녀는 조금 전의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은하가 종교 하나는 잘 만들었네.
은하신교의 교리는 잘 모르겠지만.
은하가 주신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자신은 주신의 스승으로서 받들어지고 있는 듯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교관님.”
“그래요, 거기 학생. 이름이….” “도미니크입니다.” “도미니크?”
“출석부에는 도민국이란 이름으로 적혀 있을 거예요.”
“흠…, 그렇네요. 네, 도민국 학생. 질문해주세요.”
물론 그들이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르겠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됐다.
신서영은 두 번째로 손을 들어올린 도미니크를 보고 다짐했다.
“교관님께서는 판도라 클랜로드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판도라클랜에 입단하기 위해서 어떤 수업을 듣는 것이 좋을지 알고 싶습니다!”
도미니크의 물음에.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서영은 이태원의 외국인들에게 판도라클랜이 선망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편입생분들은 수강할 수가 있는 수업이 제한되어 있어서,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수업 이외에는 다른 수업을 수강하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판도라 클랜로드의 경우, 이론보다 실전을 더 중요히 여기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
“혹여 자신이 어떤 부문의 실전을 들어야 하는지 알고 싶은 학생들은 이 시간이 끝나고 제 교관 연구실로 와주세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심으로는 판도라 클랜로드처럼 실전, 효율주의를 추구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었다.
노은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재능이었으며, 또 어찌 보면 노력의 산물이었다.
무턱대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잘못하다가는 몸이 망가진다.
하지만 저들이 들을 턱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교관으로서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지 못하게 관리하도록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학생들은 그녀의 말만으로 감격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는 한편─.
“”─교관님!!””
“네, 거기…. 음….”
“만두 하나는 언니 메이링이고.”
“두 개는 동생 메이린이랍니다.”
“네,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그러면 메이링 학생부터 질문해주세요.”
학생들은 계속 손을 들었고.
신서영은 그러다가 쌍둥이 자매의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교관님은 남자 있어요? 교관님 연애 이야기 들려주세요!”
“”””…….””””
“언니! 그렇게 말하면 예의가 없지. 교관님께서 이성을 좋아할지, 아님 동성을 좋아할지 어떻게 알아?”
“아, 그렇구나. 교관님은 애인 있으세요?”
빠직 하고.
신서영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그럼에도 쌍둥이 자매는 저희끼리 하하 호호 웃으며 떠들어댔다.
동생 메이린에게는 발언을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교관님은 지금까지 몇 명이랑 잠을 자봤나요?”
“아니지, 동생! 그렇게 물으면 재미없잖아. 교관님이 마지막으로 잔 건 언제인가요?”
“둘 다, 그 입 닥치고 끝나는 대로 제 교관 연구실로 오도록 하세요. 오늘 퇴학당하고 싶지 않으면.”
☆
최근 은하는 넋이 나가 있었다.
며칠 전, 하백련에게 들은 소리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련이가 교육을 잘 받기는 했네.
그래, 모르는 사람이 다가온다면 그렇게 행동하기는 해야지.
은하는 하백련의 행동을 이해했다.
경찰아저씨 소리를 들은 게 워낙에 충격적이기는 했으나.
한편으로 하백련이 대견스러웠다.
하백련의 안전을 걱정하는 은하는 그녀의 대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날 모르는 아저씨 취급하며 경찰아저씨를 부르려 하다니….
물론 이성은 자랑스러워했으나.
감정은 사뭇 달랐다.
자신을 몰라준 것이 당연하면서도 몰라준 것이 서운했고.
이전 삶에는 자신을 오빠라 부르며 한사코 아저씨라 부르지 않았으면서 이번 삶에는 대뜸 자신을 아저씨로 취급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너무하네. 게다가 회귀 전과 달리 1살 일찍 만나는 건데….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회귀 전과 상황이 달랐으니까.
하백련이 자신을 처음 보고 그만 깜짝 놀랄 만도 했다.
은하의 잘못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어.
백련이랑 어떻게든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백련이 마나를 발현하는 수업을 받을 때까지 앞으로 2년.
그 전에 하백련을 비호할 수 있는 명분을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마나관리기구가 하백련을 비호하게 될 것이다.
“명분, 명분, 명분이 필요해….”
경기도 성남시에서 돌아와.
은하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멍하니 중얼거리기만 했다.
자신과 하백련이 친해질 수 있고, 그녀의 보호자를 자처할 수 있는, 그럴듯한 명분.
그것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안 되겠다. 걸으면서 생각하자.”
이내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으면 생각이 잘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클랜회관을 돌아다니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바로 그때였다.
“─클랜로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 은하야.”
10층 복도를 돌아다니던 중.
은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클랜원들을 맞이했다.
노은아, 류연화.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올해 클랜에 입단한 오성환을 비롯한 신입들이 모여 있었다.
“뭐야? 신입들을 데리고 이 층에는 웬일이야?”
“일단 나랑 연화가 신입들 교육을 담당하기로 했잖아. 그래서 얘네들 교육 차원으로 의뢰를 하러 가려고. 규정상, 신입들은 일을 하기 전에는 행정실에 보고해야 하거든.” “아, 그렇구나. 둘 다 고생하네.”
노은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은하는 자신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신입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작년에 은하가 졸업하면서 노은하 사단의 브로치를 선물했던 오성환의 눈이 가장 크게 빛났다.
“성환이 너, 누나들 힘들지 않게 잘해봐. 기대하고 있다.”
“네! 클랜로드! 맡겨만 주세요!”
“너희도 기대하고 있어.” “”””믿어만 주세요!!””””
오성환을 포함해.
올해 클랜에 입단한 클랜원들 수는 총 14명이었다.
그들 중 유망주로 불리는 비율이 절반은 되었다.
판도라클랜이 신생이기는 했어도, 불과 1년 사이 판도라클랜 인지도가 크게 상승한 덕분이었다.
그동안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었던 네비게이터를 많이 뽑기도 했고….
올해는 성적이 준수하네.
앞으로도 더 잘해야지.
B+급 클랜들 중에서 가장 미래가 기대된다고 평가받고 있는 클랜.
은하는 최근 사람들이 떠들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오성환의 어깨에 탁 하고 손을 얹었다.
그것만으로도 은하의 열렬한 추종자인 오성환은 감격했다.
은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류연화에게 말을 걸었다.
“애들 데리고 행정실에 들어가면 어수선할 테니까 우리끼리 가자.”
“응. 근데 은하 너는 왜?”
“누나들 일하는 거나 보려고.”
“그래.”
은하가 키득거리자.
류연화가 미소로 화답했다.
이윽고 은하, 은아, 연화는 문밖에 신입들을 대기시킨 다음에 행정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 클랜로드. 어서 오세요.”
샤키라가 그들을 반겼다.
자리에는 그녀 이외에도 한서현이 올해 추가로 뽑은 직원들도 있었다.
한창 전화를 받고 있던 직원들이 은하에게 고개를 숙였다.
은하는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고, 가장 안쪽에 있는 한서현을 찾았다.
그녀도 한창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일하고 있는 것도 예쁘네.
한서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손짓으로 잠깐 기다리란 신호를 보냈다.
은하는 그녀의 행동만으로도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던 그때─.
“─좋아 보이네.”
“어? 그야 그렇지.”
“…사이가 좋아서 다행이야.”
류연화가 불쑥 말을 붙인 것이다.
마치 부러워하는 듯한 어조였으나.
은하는 그녀의 얼굴이 평소와 같아 가벼이 넘겼다.
“서현이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여기 앉아 있자.” “응.”
은하는 소파를 권했다.
류연화가 그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러자 노은아는 은하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 사람은 그대로 목소리를 죽여, 테이블에 놓인 과자를 나눠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방금 마나관리기구에서 연락이 와서…. 새언니랑 연화 언니는 신입 교육을 보고하려고 온 거지?”
한서현이 전화를 마치고 다가왔다.
그녀는 한순간 은하의 옆에 있던 류연화를 일별하고는, 은아의 옆에 앉았다.
“응, 맞아. 성환이랑 애들을 데리고 앨리스 라이프의 의뢰를 수행할까 생각 중이야. 허가해줄래?”
“그럼 그렇게 처리해놓고 있을게.”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였다.
승인은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이내 한서현은 은하에게 물었다.
“은…. 자기는?”
“어?” “자기는 왜 왔냐고.” “””…….”””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생전 들어보지 못한 호칭.
다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는 듯한 화법이었다.
그는 처음 듣는 호칭에 떨떠름함을 감추지 못했다.
얘가 왜 이러지?
뭘 잘못 먹었나?
싫은 것은 아닌데, 어째 멋쩍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갑자기 호칭은 왜 바꾼 것이냐고 할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은하는 최대한 태연히, 자연스럽게 넘기기로 했다.
“그냥, 너 보러.”
“그러니?”
“”…….””
딱히 찾아온 이유가 없기도 했고.
그녀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서라도 그녀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다.
은아는 어휴 하고 혀를 내둘렀고.
한서현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까 마나관리기구에서 연락이 왔다는 건 뭐야?”
“아, 별거 아니야. 클랜들 중에서 파견을 나갈 클랜을 찾고 있다는 연락이었어.”
“파견? 웬 파견?”
곧, 은하는 화제를 돌렸다.
앞에서 은아가 보고 있는데 자신이 한서현을 상대하며 풀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다.
한편 한서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며칠 전에 경기도 성남시 쪽에서 신원 미상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모양이야. 그런데 부검을 해보니까 사람의 소행이라기보다는….”
“몬스터의 소행이라는 거구나.”
“그렇다는 것 같아. 그러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성남시에서 행방불명된 사람이 증가하기도 해서, 그쪽으로 의심하고 있다나 봐.”
류연화가 단번에 맥락을 짚어내고.
한서현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마 성남시 어딘가에 몬스터의 서식지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모양이야.”
“아무래도 상황이 심각한가 보네. 성남시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마나관리기구에 파견을 요청한 것을 보면….”
“그만큼 성남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플레이어들로는 감당되지 않을 것 같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거절했어. 우리는 아직 B+급이라 그런 의뢰를 완수하기엔 리스크가 크고, 아직도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니까. 중구와 용산구에서 들어오는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지경인데 성남시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지.”
한서현이 그렇게 말하고.
노은아가 말을 보탰다.
그녀나 류연화는 한서현의 판단에 동의했다.
올해 신입들이 들어오면서 조금은 인력난에 덜 시달리게 되었다지만, 그렇다고 의뢰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력은 아니었다.
그들이 실전에 녹아들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거 괜찮겠는데?” “””뭐?”””
“빠빠?”
노은하가 불쑥 말을 꺼냈다.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그가 흥미를 보였고.
세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생각을 마친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애들 몇 명 데리고 가서, 성남시에 몬스터 서식지가 있는지 조사해볼게.” “””…….”””
“마나관리기구에서 요청하는 일을 완수하면 클랜 종합 등급 평가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도 있고 좋지.”
“우리가 그 정도로 가산점이 고픈 상황은 아닌데…. 지금 이대로 해도 내년에 A-는 딸 수 있을 거야.”
“그래도.”
한서현이 반박했다.
그럼에도 그는 뜻을 꺾지 않았고, 결국 그녀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래, 알았어. 네가 얼마 전에 성남시에 다녀온 이유도 이 일하고 관련이 있나 보구나. 허가할게. 대신 인원은 많이 데려가지 말아줘.”
“몇 명까지 가능해?”
“너 포함 4, 5명까지. 그 이상은 인력을 빼기 힘들 것 같아.”
“그럼 나 포함 5명만 데려갈게.”
마침 잘 됐다.
내년에 성남시에서 발생할 사건을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을 테고.
정당한 명분으로 하백련의 주변을 맴돌 수 있지 않겠는가.
은하는 한서현의 허락을 받아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
똑같은 실수를 범할 수 없다.
은하가 파티 리더가 되어, 한동안 성남시로 파견을 나가기로 하면서.
은하는 하백련의 경계심을 풀 만한 방법을 하나 떠올렸다.
백련이가 나한테 경계심을 품는 건 내가 모르는 사람이기도 한데다가 나이 때문이기도 할 거야.
전자는 당장 해결할 수 없었다.
시간을 들여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후자는 당장에라도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그녀의 나이 또래에 맞는, 자신의 대역을 내세우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야─.
─도플갱어
이제 은하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분신체를 조종할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은하는 자신이 9살이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해 분신체를 만들어냈다.
은하의 몸에서 뭉텅이로 빠져나간 마나가 꼬마 은하의 형상을 취했다.
“─오랜만이야.”
“네,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이래도 괜찮은 거예요?”
“어쩔 수 없지. 회귀 전도 아니고, 백련이에게 경계심을 사지 않고서 접근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데.”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들키지 않도록 잘해줘. 저번처럼 생각 없이 말했다가 괜히 나 욕먹게 하지 말고.” “육체도 어려지니까 정신 연령도 일정 부분 어려지는데 어쩌라고요. 어쨌든 그렇게 할게요.”
꼬마 은하가 한숨을 쉬었다.
내키지 않는 듯했지만 꼬마 은하도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쨌든─.””
여하튼 꼬마 은하도 은하였다.
두 사람의 생각은 일치했다.
“─제가 백련이를 맡을 테니.”
“그 사이에 나는 백련이 어머니를 맡고 있을게.”
훌륭한 역할 분배였다.
두 사람은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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