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09
얼마 전, 모르는 아저씨를 만났다.
남자는 어딘가 들떠 있었고.
그것이 되레 그녀의 경계심을 더욱 불러왔었다.
솔직히, 어렸을 적에 어머니에게 들었던 대로 모르는 아저씨가 와서 먹을 것을 사주겠다고 권유하는 걸 겪을 줄은 몰랐다.
“흥, 내가 그런 뻔한 납치 수법에 속을 줄 알고?”
어머니가 쥐어준 방범용 호루라기.
설마 그녀는 그걸 진짜 사용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여하튼 하백련은 호루라기를 불어, 남자를 훌륭하게 격퇴했다.
그것과 별개로 그날 이후로 그녀는 모르는 아저씨가 또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등교할 때도 하교할 때도 주의하게 되었다.
물론, 며칠이 지나면서 경계심은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 후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하백련은 그렇게 한숨을 쉬었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날, 그녀는 학교 도서관을 찾아 책을 고르고 있었다.
엄마는 일 때문에 바쁘니까 나까지 귀찮게 할 수는 없어.
그녀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초등학교에 들어서고 시야가 트인 그녀는 집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밤이 늦게 일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방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일을 돕고 싶기도 했지만 아직 키가 작고 어린 자신으로서는 도와줄 일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하백련은 어머니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가게에서 얌전히 책을 읽고는 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전에 읽었고….”
최근 그녀는 세계명작문학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세계명작동화야 진즉 졸업했다.
그래서 그녀는 문학 코너로 걸어가 서가에 진열돼 있는 책들을 살폈다.
키다리 아저씨는 재미있게 읽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가 주인공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이야기는 그녀의 환상을 충족했다.
만약 나한테도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신데렐라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녀는 키다리 아저씨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에게 더 공감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품었다.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나타나 자신과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이내 하백련은 부정했다.
그녀도 이제 현실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
부와 행복은 자신이 쟁취해야 하는 세상이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겠노라.
하백련은 콧김을 뿜으며 다짐했다.
이내 그녀는 세계명작문학이 모인 서가로 향하려고 했는데─.
“─응?” “아….”
웬 소년 한 명이.
자신이 찾으려는 책들이 모여 있는 서가에 등을 붙이고 있었다.
저러면 책을 둘러볼 수가 없다.
소년과 눈이 마주쳐 당황한 것도 아주 잠시였다.
하백련은 입술을 삐죽여 말했다.
“나 책 꺼내야 하는데…. 자리 좀 비켜줄래?” “아, 미안.”
소년이 순순히 물러났다.
하백련은 고맙다고 말하며 책장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런데 소년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자신의 등 뒤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응? 뭐지? 얘도 찾고 있는 책이 있나?
소년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다.
하백련은 어색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책을 고르지 않고 자리를 떠날 수는 없었다.
아, 저걸 읽어야겠다.
원래는 그 자리에 서서 줄거리를 찬찬히 읽고 책을 골랐지만.
하백련은 소년과 있는 게 어색해 표지만 보고 책을 고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고른 책은 은하철도의 밤이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책장에 진열된 책을 빼내려고 했다.
바로 그때─.
“─키다리 아저씨 좋아하지?”
“응?”
“자, 이거 맞지?”
어느새 뒤에 있던 소년이 다가와, 그녀가 손을 뻗은 위치에서 한 단계 아래에 있는 책을 빼냈다.
키다리 아저씨였다.
소년이 웃으며 책을 건넸다.
하백련은 벙쪘다.
“…….”
“나도 그거 재미있게 읽었어.”
“…정말?”
나 그거 이미 읽었는데.
얼떨결에 책을 받은 하백련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소년이 불쑥 말한 것이다.
하백련은 호기심이 샘솟았다.
키다리 아저씨를 읽었다.
동질감이 솟아났다.
그래서 그녀는 의식하지 못했다.
소년이 자신이 키다리 아저씨를 좋아한다고 확신한 것을 말이다.
다만 이때 하백련은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을지 모를 소년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이다.
“─난 하백련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아, 난 2학년인데….”
“…….”
왠지 이 소년과 친해질 것 같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자신을 소개했다.
☆
이때, 소년, 꼬마 은하는 당황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이라는 외형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초등학교에 잠입한 그는 하백련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도서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따라나섰다.
어쩌다 보니 이쪽으로 온 거였는데 설마 이쪽으로 딱 올 줄이야….
사실, 꼬마 은하가 이 책장 앞에 멈춘 이유는 길을 지나가다 익숙한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키다리 아저씨.
회귀 전에 하백련이 즐겨 읽었던 책이었다.
종국에는─.
‘─오빠, 그거 알아요?’
‘뭘?’
‘키다리 아저씨가 마지막에 어떻게 끝나는지요.’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뭔데?’
회귀 전, 다 클 대로 다 커서 이젠 숙녀가 된 하백련이 배시시 웃으며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은하는 묻지 말아야 했다고 후회했었다.
‘나중에 주인공은 키다리 아저씨와 결혼하게 돼요.’
‘뭐?’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사람한테 완전히 당해버린 거예요. 알고 보니 자신이 호감을 품고 있었던 사람과 편지로 대화하던 키다리 아저씨가 같은 사람이었던 거죠. 물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사랑에 확 빠진 거예요. 양쪽으로 함락당한 거 아닌가요?’
‘나이 차이가 있었을 텐데….’
‘그만큼 키다리 아저씨에게 매력이 넘쳐났던 거겠죠. 그럼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남자가 나이 많아도, 젊은 여자에 지지 않을 만큼 매력만 있으면 되는 거죠. 물론, 현실에서 그런 남자는 거의 없을 테지만요. 소설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근데 오빠는 매력 있어요.’
‘…….’
‘남자다워요, 굉장히.’
‘장난치지 마라.’
‘치, 장난 아닌데. 저는요, 예전에는 키다리 아저씨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있죠, 설마 저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요. 오빠가 절 주웠고, 이렇게 지금까지 지켜주고 있잖아요.”
‘…….’
‘오빠는 제 키다리 아저씨에요.’
‘너랑 나랑 12살 차이야.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는 돈이라도 있었지.’
‘대신 오빠는 절륜하잖아요.’
‘……! 너, 그 말 어디서 배웠어?’
‘쌍둥이 언니들이 알려줬었는걸요. 그 언니들이 살아 있었을 적에…. 그리고 저도 이제 알 거 다 알아요. 유정이 언니한테 듣기도 했고….’
‘유정이한테는 뭘 들었는데.’
‘장난 아니라고.’
‘유정이가 그런 이야기도 해?’
‘후후, 선녀의 대화기술을 무시하면 곤란해요. 오빠도 말로 못 이길걸요. 제 마음도 못 이길 테고.’
회귀 전에 하백련과 나눴던 대화.
잠시 회상에 빠졌던 꼬마 은하는 자신에게 하백련이 접근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난 하백련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아, 난 2학년인데….”
“…….”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만나게 됐다.
12살 차이가 아닌.
서로 같은 나이로.
꼬마 은하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하는 하백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미소였다.
“나는….”
하백련이 소개를 끝마치고.
이제 꼬마 은하가 자신을 소개할 차례였다.
순간 꼬마 은하는 멈칫했다.
노은하라고 소개할 수도 없고….
은하는 침묵했다.
가명이 필요했다.
그가 눈동자를 굴리면서 어울리는 이름을 찾으려고 했다.
그때, 그의 시선 끝에, 책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꼬마 은하는 손으로 책의 제목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게 가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장발장이라고 해.”
☆
꼬마 은하에게 하백련을 맡기고.
은하는 그녀의 어머니와 어떻게든 친분을 만들기로 했다.
“─그럼 여기에서 나는 빠질게.”
“”””뭐?””””
경기도 성남시.
사체가 발견됐다는 지점에 도착한 은하가 클랜원들에게 말했다.
최은혁, 카에데, 강시형, 배수빈.
네 사람은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은하는 태연했다.
“나는 현장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에게 정보를 구해볼게.” “너만 편한 일을 하시겠다?” “클랜로드니까.”
“”””…….””””
배수빈이 눈살을 찌푸리며 따졌고.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클랜원들은 은하의 태도가 너무나 뻔뻔해서 뭐라 말하지 못했다.
이내 은하가 표정을 고쳤다.
“이 근처에서 사체가 발견되었고, 행방불명자가 늘어나고 있어. 나는 이곳에 몬스터가 숨어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한 마리가 아니라, 군집 단위의 몬스터들이.”
“”””……!!””””
마나관리기구는 추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하는 확신 어린 어조로 클랜원들에게 충고했다.
그들은 은하의 말을 듣고 저마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이제 학습이 되어, 은하의 근거 없는 확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대 혼자 수색하지 말고, 고위계 몬스터를 마주할 수가 있는 가능성도 생각하도록 해.”
한편 그들이 경각심을 가졌다.
은하는 말을 이었다.
클랜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집을 가정하고서 수색하라…. 그럼 수색 장소는 정해져 있겠네. 땅 위를 찾아볼 게 아니라 아래를 샅샅이 뒤져봐야겠군.”
“맞아, 부탁해.”
“그렇다고 해도 우리 인원으로는 수색하는데 시간이 걸릴 텐데….”
그때 호시미야 카에데가 말했다.
은하는 그녀가 걱정하고 있는 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잘됐다며.
은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성남시에 있는 클랜에게도 지원을 요청해볼게. 그런 지원은…. 나밖에 하지 못하는 거잖아?” “”””…….””””
정당한 명분을 얻었다.
클랜원들은 뭔가 잘못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은하는 그들이 말하기 전에 재빨리 선수를 처버렸다.
“그럼 해산!”
은하가 대뜸 두 손을 친 것이다.
그러고는 클랜원들이 부르기 전에 속보로 자리를 이탈했다.
지원 요청을 하기는 할 거야.
마나관리기구도 그걸 염두에 두고 나한테 성남시의 클랜들을 차출할 권한을 주기도 했으니까.
업무를 방기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클랜들을 만나러 가기 전에 들리고 싶은 곳이 있었다.
은하는 이십오가 알려준 정보대로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수제 햄버거 가게라….”
시내에 있는 조그마한 가게였다.
수제 햄버거 가게.
하백련의 어머니 하지은이 임대로 운영하고 있는 가게였다.
은하는 간판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내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딸랑 하는 방울 소리가 울리고.
주방에 있던 하지은이 일어나서는 큰 소리로 맞아들였다.
은하는 가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편하신 데에 앉아주세요!” “…….”
가게가 꽤 한산했다.
최근에 행방불명 사건이 빈발하며 장사가 잘 되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한 은하는 하지은에게 고개를 돌렸다.
“…손님?”
은하는 하지은을 빤히 쳐다보았다.
프로필에는 33세라고 써 있었지만 20대 후반이라 해도 믿어줄 듯했다.
은하의 시선을 받은 그녀가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백련이가 엄마를 닮기는 했네.
어른스러운 백련이 같아.
하지은이 당황해하든 말든.
은하는 생각에 잠겼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도 생각했지만 하백련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였다.
이내 은하는 하지은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죄송해요.”
“아, 네….”
“저기에 앉을게요.”
은하는 하지은에게 사과했다.
그러고는 테이블 자리를 놔두고서 굳이 바 자리에 앉았다.
가게는 텅텅 비어 있어서 기왕이면 편안한 자리에 앉아도 됐는데.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밥만 먹으려고 온 건 아니니까.
내 목적은 이 사람하고 어느 정도 가까워지는 거니….
바 자리는 하지은과 대화를 나누기 용이한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여하튼 자리에 앉은 은하는 조용히 메뉴판을 펼쳤다.
메뉴가 얼마 없었다.
“주문할게요.”
“네.” “치즈버거랑 감자 세트 주세요.”
“음료는 뭐로 하시겠어요?” “사이다요.”
“네, 알겠습니다.”
주문은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처음에는 그에게 경계심을 보이던 그녀도 은하가 주문하자, 금세 원래 표정을 되찾았다.
은하는 하지은이 주방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경계심을 보이는 건 똑같나 보네.
얼마 뒤, 요리가 완성되었다.
하지은이 햄버거 세트를 가져왔다.
은하는 햄버거를 먹었다.
“…맛있네.”
치즈가 제대로 녹아 있었고.
햄버거 번이 고소하고 달콤했다.
하백련이 햄버거를 좋아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치즈버거를 주문하길 잘했다.
은하는 만족해했다.
그런 한편으로─.
“─햄버거가 맛있네요.”
“그래요?”
스리슬쩍.
은하는 하지은에게 말을 걸었다.
마침 그녀도 심심했던 모양이다.
자리에 앉아서 멍을 때리고 있던 그녀가 화답했다.
“인테리어가 새것처럼 보이는데, 얼마 전에 개업하셨나 보네요?”
“작년 9월이었으니…. 이제 반년은 지난 거네요.” “장사는 잘 되세요?”
“에휴, 겨우겨우 먹고 살아요. 근데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여기에 살지 않는 모양인가 봐요?”
“서울에서 올라왔어요.”
“아, 서울…. 부럽네요. 저도 사실 돈만 있다면 딸아이를 데리고 당장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데….” “아, 딸 있으셨어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좀 일찍 낳았어요.”
대화는 술술 풀렸다.
은하가 별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하지은이 술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녀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은하를 쳐다보았다.
“혹시 저 꼬시는 거 아니죠?”
“…네?”
“장난이에요.”
어느새 은하의 위에 있는 선반에 팔을 걸치고서는.
하지은이 장난을 치기까지 했다.
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끔 가게 오시는 손님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도 좀 있거든요. 그런데 손님도 방금 제가 아이가 있다 하니 표정이 살짝 변하길래….”
“…자아도취가 심한 거 아니에요? 그걸 제 입으로 말하고….”
“그래서 말했잖아요. 장난이라고요. 그런데 여친 있어요?”
“지금 꼬시는 거 아니죠?”
“이런, 들켰네. 장난이에요.”
“작년에 결혼했어요.” “정말요? 저보다도 어려 보이는데,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21살이요.” “와, 나랑 12살 차이…. 혹시 손님도 속도위반 하신 거예요?” “아직 애 없는데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여기서 얼마 전에 행방불명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해서요.” “아….”
은하는 슬그머니 운을 떼었다.
하지은은 자신을 그냥 손님으로서 상대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쯤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그녀의 신뢰를 사야 했다.
은하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넘기며 슬그머니 명함을 내밀었다.
“여기에서 나왔어요. 마나관리기구가 대신 조사해달라고 해서요.” “아, 판도라클랜에서 오셨구나…. 역시, 척 봤을 때도 몸이 다부져서 플레이어일 것 같기는 했어요. 근데 응? 판도라클랜? 어디서 많이 들은 느낌인데….”
명함을 받아든 하지은.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명함을 뚫어져라 보다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저, 알아요! 판도라클랜! 작년에 강북에서 일어난 재앙을 종식시킨 클랜 아닌가요? 여기에서도 화제가 됐거든요. 아마 거기 클랜로드가…, 어? …클랜로드세요?”
“거기 적혀 있잖아요.” “정말 ? 저 팬인데….”
“팬인데도 못 알아봐요?”
“TV로 보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 다르죠. 와, 실물이다. 저 가게에다 사진 찍어서 홍보해도 될까요? 아, 싸인도 몇 장만….”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은하의 정체를 알아차린 하지은이 어디선가 팬과 종이를 가져왔다.
그녀가 싸인을 요청했다.
은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싸인 요청이야 많이 당해서 이제는 익숙해진 것이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지은이요. 하지은. 아, 딸아이도 팬이에요. 딸아이 것도 좀….”
“딸 이름은요?”
“하백련이요.”
“아, 하백련이구나.”
“저 혹시…. 같이 사진을 찍어도 괜찮을까요? 저 TV에 나온 사람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그러면서 가게에 걸어놓을 거죠?” “이런, 들켰네. 대신 밥값은 제가 받지 않을게요.”
“밥값은 지불할 거고요. 대신해서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일을 하는데 주민들 정보가 필요해서….”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도와야죠. 행방불명 조사였나 하는 그거였죠?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장사가 더 안 되고 있었는데 당연히 도와야죠. 아, 지금 카메라 앱 열게요.”
“…천천히 하세요.”
은근히 허당인 사람이다.
은하는 어느새 주방에서 넘어와, 자신 바로 옆에 앉는 하지은을 보고 생각했다.
이내 그녀가 셀카를 찍기 위해서 은하에게 몸을 기울여 왔다.
은하는 그녀에게 맞춰주었다.
바로 그때─.
─딸랑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별안간 방울이 울렸다.
두 사람의 시선은 가게로 들어온 사람에게로 향했다.
“…엄마?”
“아, 백련아.”
“…….”
“저 아저씨는 누구야?”
“아, 이분이 누구냐면….”
하백련.
책가방을 멘 그녀가 가게 중간에서 못박혀 서 있었다.
그녀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하지은은 아무렇지 않게 여겼고.
은하는 굳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백련이 이윽고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어머니를 일별하고.
은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
“당연히 많이 봤겠지. 백련아, 사실 이분은….” “아, 초등학교!”
“응?”
“…….”
하백련이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의 시선에 불신이 담겼다.
은하는 흠칫했고.
하지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 이 사람이야! 이 아저씨가!” “아저씨 아닌데….”
“어쨌든 이 아저씨가!” “맞아, TV에 나온 이 바로 이 사람이야.” “응?”
세 사람의 대화가 엇갈렸다.
노은하의 정체를 폭로하던 백련이 예상치 못한 소리에 얼이 빠졌다.
은하는 아저씨라는 소리를 듣고는 순간 넋을 놓았고.
하지은은 뭐가 그리 좋은지 친절히 백련에게 은하를 소개했다.
그리고 또다시─.
─딸랑
방울이 흔들렸다.
세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가게 안에 네 명이 들어왔다.
은하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안 되겠어. 넓어도 너무 넓어….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동감이야.”
최은혁 그리고 강시형.
두 사람이 후우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클랜원들은은하를 발견하지 못한 듯싶었다.
“아. 노은하.”
“””어?”””
그때 최은혁의 뒤에 가려져 있던 카에데가 은하를 발견했다.
클랜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안녕?”
은하가 어색하게 인사했고.
반대로 클랜원들은 은하를 보고는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서로 살갑게 붙어 있는 노은하와 웬 젊은 여자.
그리고 여자아이 한 명.
클랜원들이 상황을 파악했다.
“─아하, 그런 거였구나? 우리가 일하고 있는 사이에 여기에서 아주 농땡이를 피우고 있으셨다? 그것도 하하 호호 웃고 떠들면서?”
“””노은하….”””
배수빈이 이죽거렸고.
세 사람이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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