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1
선력 1년. 제3위계 몬스터 크라켄은 성산대교를 무너뜨리고, 다리 위에 있던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3년이 지났어도 크라켄이 출몰했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성산대교는 여전히 반파된 채로 남아 있었고, 한강 아래에서는 위계 확인이 불가능한 몬스터들이 숨어 있었다.
이것들이, 올라오기만 해봐.
은하는 가양대교를 지나는 내내 창밖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리에 진입하기 전부터 마나 감지망을 전개하고 있던 그는 혹시라도 일어날 불상사를 대비하는 중이었다.
선력 4년. 은하네 가족은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인천에 계시는 외할머니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은 이제 세 번째였다. 선력 2년에는 크라켄이 출몰했던 여파가 남아 있어, 인천으로 가는 길목이 제한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그때에는 은애가 막 태어난 당시였다.
두 번째는 선력 3년의 추석.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은하가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있었기에, 추석에 만나러 가는 일이 되었다.
마지막은 바로 지금. 은하는 가양대교를 지나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아까부터 뭐하는 거야?”
“…몬스터가 나오지는 않을지 둘러보는 중이야.”
은아도 은하를 따라 마나 감지망을 전개했다. 신서영을 만난 뒤로 실력이 늘어난 그녀는 은하보다도 더 넓은 범위를 수색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표면뿐이었지만.
“다리 아래에…, 꽤 많구나.”
“한강이니까.”
이후 한강에서 괴물이 나오는 일은 이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아니었다.
현재 한강은 몬스터가 서식하기 좋은 공간이었다. 코쿤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한강에는, 지금도 강물 아래에서 몬스터들이 서로의 마나를 탐하기 위해 싸우고 새로 태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이 다리 위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크라켄 출몰을 계기로 강물을 모조리 드러내버리자는 극단적인 의견도 나올 정도였다.
앞으로 몇 년 간 우려할 만한 일은 없겠지만.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은하는 미래에 인류를 위협하는 몬스터들이 한강에서부터 출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크라켄은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것을.
대한민국은 몬스터들이 일제히 서울을 침공할 때야말로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알 바는 아니야.
몬스터들이 침공하는 날짜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때가 되기 전에 가족들과 친구들을 데리고 서울을 떠나 있을 생각이었다.
개고생은 사양이었다.
“…라면 값이 튀기 전에 쟁여놔야겠네.”
“응? 라면 먹고 싶어?”
“아니. 아빠, 나는 핫도그.”
은하네는 가양대교를 지나 휴게소에서 정차했다. 이전보다는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았지만, 은애가 장시간에 걸친 이동을 견디지 못했다.
은하와 은아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바람을 쐬는 한편, 모든 음식을 맛보기 위해 돌아다녔다.
“…정말 다 먹을 수 있어?”
아버지는 의심 어린 시선으로 은하를 내려다보았다.
“당연히 다 같이 나눠 먹어야지. 나 혼자 어떻게 다 먹어?”
“아무리 그래도 좀….”
“핫도그, 닭꼬치, 소시지, 감자 버터구이, 버터 오징어랑 소프트 아이스크림 그리고….”
“…이건 나눠먹어도 될 양이 아닌데.”
아버지는 은하가 읊는 주문을 점원에게 말하던 중에 혀를 내둘렀다.
“아빠. 돈 많잖아.”
“…정말 다 먹어야 한다?”
아버지는 끙 소리를 내며 지갑을 열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자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사기는 꺼려졌다.
“아빠! 나도, 나도! 아이스크림!”
“그래. 우리 은애가 먹고 싶다는데 사줘야지.”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리에 달라붙은 은애가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하며 노래를 부르니 절로 입가가 올라갔다.
“은애야, 또 먹고 싶은 건 없니?”
어머니는 은애의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주며 물었다.
“오빠, 저건 뭐야?”
“어떤 거? 아, 빙수?”
“비~잉~수~?”
은애는 아이스크림이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빙수가 그려진 천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시럽을 뿌린 빙수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언니도 먹으려고 했는데. 은애는 뭐 먹을래?”
은하가 고른 핫도그를 먹고 있던 은아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물티슈로 은애의 손을 닦아주고는 빙수 천막이 휘날리는 가게로 다가갔다.
“언니, 언니. 나는…, 저거…!”
“저거? 저게 뭔데?”
“저거! 저거! 피! 피!”
“…피? 빨간색 말하는 거니?”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던 어머니가 되물었다.
“응! 피, 피!”
“…은하야?”
호호호.
오늘따라 점잖은 웃음소리가 무서웠다.
은하는 슬그머니 등을 돌렸다.
바로 뒤에서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은애한테 무슨 말을 가르친 거야?”
“…잘못했습니다.”
은하는 시선을 피했다. 그로서는 은애가 피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을지 몰랐다.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만화영화에서 언뜻 나왔던 장면이었는데에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가 잘못했네. 그치?”
“그치?”
은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행동마저 따라하는 은애. 포니테일을 흔들지 못하는 대신, 삐죽 튀어나온 머리칼로 쫑긋거렸다.
“언니, 언니! 이거 맛있어! 오지다! 지리다!”
“…은하야?”
“나는 가르쳐준 적 없어.”
“…은아야?”
“…잘못했습니다.”
어머니에게 혼이 난 은아는 포니테일을 축 늘어뜨렸다. 그녀로서는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 언뜻 사용한 말을 은애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은애는 아직 어려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쓴단 말이야. 둘 다 은애 앞에서는 예쁜 말을 사용하렴.”
“”네….””
휴게실 한복판에서 어머니에게 한소리를 듣는 남매였다.
“이거 맛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은애는 아버지의 옆에서 각종 음식을 즐겼다.
☆
“어서오렴. 은아도 은하도 안 본 사이에 많이 자랐구나.”
“할머니~!”
엔진 소리를 듣고 나온 할머니가 아이들을 반겼다.
은하 역시 할머니를 반가워했다. 회귀 전,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까지 할머니와 지냈던 그로서는 할머니란 무척이나 그리운 존재였다.
“얘가, 나한테도 안 부리는 어리광을 다 부리고….”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안긴 은하를 보고는 눈에 힘을 주었다.
은하는 멋쩍게 웃었다. 뒤늦게나마 어머니에게도 안겼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입술을 삐죽이고 있었다.
“너는 애를 셋이나 낳아도 애구나, 애야.”
“내가 뭘.”
“우리 딸 데리고 사느라 노 서방이 고생하는 구나.”
“치이.”
할머니에게 투덜거리는 어머니. 그래도 어머니가 할머니를 대하는 행동에는 친근함과 애교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네가…, 은애구나.”
할머니는 어머니의 다리에 달라붙어 있던 은애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
은애는 주춤거리다 어머니의 등 뒤로 숨었다.
“작년에도 만났는데. 은애는 기억이 안 나는 걸까?”
무릎을 굽힌 할머니는 은애가 고개를 내밀 때까지 기다렸다.
경계하던 은애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할머, 니?”
“그래. 은애는 이름이 뭐니?”
“…은애 이름은 은애인데요? 노은애.”
“그랬구나. 할머니가 깜빡했네. 은애는 참 똑똑하구나.”
“헤헤.”
“그럼 은애는 몇 살이니?”
할머니가 인자한 미소로 물었다.
한 번 어머니를 올려다본 은애는 천천히 손가락을 세었다.
“세 살.”
은애가 내민 손가락은 5개였다.
할머니는 “그렇구나~”하며 은애가 보여준 손가락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대신 이미 몸을 절반이나 내민 그녀의 손을 천천히 잡아끌었다.
“은애 잡았다.”
“에헤헤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즐거워하는 은애. 할머니는 은애를 거뜬히 안아 올려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느라 힘들지 않았니?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고?”
“…중간에 일이 있기는 했지만, 길은 막히지 않았네요.”
아버지는 지친 모습으로 답했다. 아이들이 모두 먹지 못한 음식을 홀로 처리하느라 배가 더부룩한 모양이었다.
아빠, 미안.
은하는 속으로 아버지에게 사과했다. 2학년이 되고부터 식욕이 부쩍 늘어난 그는 음식을 주문할 때에만 하더라도 모두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음식을 배속에 집어넣고 나서야 얼마나 주문했는지를 알아차렸다.
그러다 중간에 몬스터가 출몰했다. 그 바람에 플레이어들이 현장을 정리하기를 기다리느라 도착 시간이 늦어지고 말았다.
아침에 출발했건만, 해는 이미 져 있었다. 저녁을 먹기에도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지.”
할머니는 아버지의 등짝을 두드리며 아이들에게라도 저녁을 먹도록 권했다.
“할머니, 저는 배불러요.”
“저도요.”
은하와 은아가 배를 가리켰다. 휴게소에서 해치운 음식이 아직도 소화되지 않았다. 이 이상 먹었다가는 올챙이처럼 배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너희 치킨 좋아하지 않니? 너희 생각해서 시켜놨는데.”
“””콜.”””
치킨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손으로 입을 막고 있던 아버지조차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즉시 대답했다.
“치킨이랑 맥주가 죽여주는데…!”
치킨이랑 맥주가 죽여주는데…!
맥주를 마신다는 생각으로 입가를 다시는 아버지, 맥주를 마시지 못하고 침통해하는 은하였다.
그래도 치킨과 콜라도 상성이 좋았다. 은하는 어쩔 수 없이 콜라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누나, 얼른 들어가서 치킨 기다리자.”
“응! 은애야 들어가자!”
은애는 “치킨?”하며 손가락을 입에 문 채 고개만 갸웃거렸다.
“오빠. 언니. 치킨이 뭐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어보는 은애.
은애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은하는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치킨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먹어보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은하는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현관 안으로 살며시 발을 내딛은 그는─,
─어라?
모르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기척은 집안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왜 그래?”
“누나, 잠깐만.”
눈살을 찌푸린 은하가 은아와 은애를 물리고 앞으로 나섰다.
몬스터인가.
몬스터치고 기척은 차분했고,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 감지망을 전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무언가가 감지되고 있었다.
아니면 도둑인가? 감히 우리 할머니 집에.
은하는 조용히 신발을 벗고, 살금살금 복도를 걸었다.
도둑이라면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천천히 손을 오므리고 피며, 언제든 마나를 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기척은 TV가 있는 거실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움직이는 기색은 없었다. 집안에 들어섰을 때부터 기척은 가만히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가만히 둘 수는 없지.
은하는 문 앞에 귀를 바짝 가져다댔다. TV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드문드문 까득 까득 하는 소리도.
그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열었다. 틈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서는 까득 까득 하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굴렸다.
“응?”
상대가 돌아보았다.
재빨리 자세를 잡은 은하가 눈뭉치처럼 만든 마나를 던졌다.
“이거나 먹어라!”
“혹시 치킨 왔…, 커헉…!”
어린 남자애의 소리였다. TV로부터 고개를 홱 돌린 남자아이는 마나를 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도둑이 아니라 근처에 사는 애였던 거야?
상대가 어린애였다는 동요도 잠시.
은하는 쓰러진 아이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재빨리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는─.
─엥?
“으으….”
뒤통수가 아픈지, 머리에 손을 올린 채 누워 있는 아이를 보고는 당황하고 말았다.
어?
눈을 깜빡거리기만 하는 은하. 머리는 아직도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아씨, 뭐야? 치킨은?”
손으로 뒤통수를 쓰다듬고, 입술을 씰룩이며 일어난 소년.
잿빛처럼 짙푸른 머리칼, 머리 위로 뾰족 튀어나온 늑대 귀.
그리고 정돈되지 않아 덥수룩한 꼬리와 유독 날카로운 어금니.
마지막으로 체내 마나에 영향을 받아 변질된 붉은 눈이며.
남자아이는 늑대형 아인이었다.
왜 왜 왜….
문제는 아이가 아인이었다는 점이 아니었다.
은하가 아는 얼굴은 제법 시간이 흐른 뒤의 얼굴이기는 했어도, 머리를 연신 매만지는 아이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지, 진파랑?”
“응?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아?”
회귀 전, 은하가 이끄는 파티에서 헌터와 텔레파시스트를 겸임했던 늑대형 아인 플레이어.
언제나 최전선에서 를 따라 미친개처럼 날뛰었던 플레이어.
사람들은 모두 그를 그렇게 불렀다.
이 따로 없으니, 물리지 말라고.
그리고 진파랑이라고.
“넌 누구야?”
은하는 자신을 노려보는 진파랑을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나오지 않았던 말이,
띄엄띄엄
떨어졌다.
“혀, 형이 거기서 왜 나와…?”
리라이프 플레이어 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