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11
호시미야 카에데의 파티가 토벌한 몬스터의 정체가 밝혀졌다.
판도라 클랜회관에 복귀한 은하가 정하양에게 마석을 보여주자, 곧장 플레이어 라이브러리에 접속해 알아낸 것이다.
“마석에서 나오는 파장이랑 마나의 배열 방식…. 그리고 카에데가 말한 특징을 고려하면 제5위계 몬스터인 그랜드 에이프(Grand ape)일 확률이 높아.”
“어떤 몬스터야?”
“아마존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하는 몬스터인데…. 주변 환경에 맞춰서 빠르게 진화하고, 도구를 쓸 정도로 지능이 높은 유인원형 몬스터라 해. 유인원형 몬스터가 대개 그런데…, 얘는 골격이 두꺼워서 공격도 쉽게 먹히지 않고, 단순 육체 능력으로는 유인원형 몬스터 중에서 강한 축에 속한다나 봐. 그리고….”
“그리고?”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사념이 아니라 입으로 인간의 말을 따라 할 수 있대.”
“상대하기 영 꺼려지겠네.”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개 인간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몬스터는 플레이어에게 꺼림칙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의식 한구석에서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만 같은 이질감이 떠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사념이 아닌 육성으로 인간의 말을 사용하는 몬스터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게 반복되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정신이 오염돼서 미쳐버리는 거지.
몬스터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더더욱 인간을 모방하려고 한다.
까다로운 놈들이다.
호시미야 카에데의 보고에 의하면 그런 녀석들이 지금 태봉산, 응달산, 진재산 일대에 흩어져 무리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은하는 끙 소리를 냈다.
“여러모로 골치 아프겠네. 단숨에 일망타진해야지, 안 그러면 살아남은 놈들이 어딘가에서 또 무리를 이뤄 이런 일을 벌이게 될 테니까….”
“그러게.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흩어져서 무리를 이루고 있다 하니 토벌하기 까다롭기는 하겠다.”
은하는 한숨을 쉬었고.
정하양이 동의했다.
이전 삶에서 성남시에 숨어 있던 몬스터들은 이런 놈들이 아니었는데 미래가 바뀌었나 보네.
그나마 마법을 사용하지도 않고, 지상에 서식하고 있으니 난이도가 덜한 편인가….
한편으로 은하의 생각은 다른 곳에 향해 있기도 했다.
미래가 회귀 전과 다르게 그나마 양호한 편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심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일단 마나관리기구에 보고해서, 의뢰 보수를 올려달라고 해야겠네. 성남시에 있는 클랜들을 끌어들이게 공문을 띄워달라고 그러고.”
“응, 오늘 중으로 자료를 정리해서 서현 언니한테 보내도록 할게. 그럼 서현 언니가 마나관리기구에 보고해 오늘내일 안에 처리해줄 거야.”
“부탁할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이 많다며 하소연하던 정하양이었다.
그런 그녀가 은하가 부탁한 일을 우선해서 처리해주기로 했다.
은하는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내 그녀가 은하가 사 온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어때? 맛있어?”
“응, 괜찮은데? 햄버거 번이 달고 고소해서 좋다. 바로 만들었을 때 먹으면 더 맛있겠는걸?”
“그렇게 맛있어? 그러면 다음에는 같이 가서 먹을까?”
“응? 정말?”
정하양이 리본을 쫑긋거렸다.
은하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흡족해했다.
눈을 동그랗게 떠서는 자신의 말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오는 그녀가 무척 귀여웠다.
그래서 은하가 다음에 같이 가자는 말을 꺼냈더니─.
“─마침 이놈들을 토벌하기 위해 성남시로 다시 내려가게 될 텐데, 그때 같이 가면 되잖아. 안 그래도 손발이 맞는 네비게이터가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응, 사양할게. 지금 해야 할 일도 워낙에 많아서 힘들 것 같아.”
“쳇.”
은하의 생각을 읽어내고는.
정하양이 홱 고개를 돌렸다.
이에 은하는 햄버거를 우물거리는 그녀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아쉬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참 문제였다.
“애들이 자기들 임무는 끝냈으니 토벌 임무에는 넣지 말아 달랬는데, 어떻게 하지….” “그러게 왜 애들 고생시키고 그래? 산에서 이틀이나 야영하게 하는 건 좀 심하기는 했어.”
몬스터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다시 성남시로 내려가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호시미야 카에데의 파티가 잠도 자지 못하면서 일을 했으니까 쉬게 해달라고 항의한 것이다.
은하로서는 무시할 수 없었다.
걔네들 전부를 데려갈 수는 없지. 놈들 둥지를 수색하기 위해서라도 카에데는 어찌어찌 끌고 가야겠지만 다른 애들은 쉬게 해주긴 해야지.
그러다 보니 은하는 자신과 같이 임무를 수행할 파티를 새로 짜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하양에게 넌지시 권했더니, 사정을 파악한 그녀가 즉각 거절한 것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클랜원들도 비슷한 상태였다.
이천서 같은 경우, 눈을 마주치자 후다닥 도망치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소문이 퍼진 듯했다.
“여차하면 나하고 카에데만 가고, 부족한 인원은 그냥 현지 클랜에서 충당하는 게 나으려나….”
“다들 해야 할 일이 워낙에 많아서 시간을 내긴 힘들기는 할 거야.”
은하는 쯧 하고 혀를 찼다.
하양이 위로했지만, 그녀도 별다른 해결책이 생각이 나지 않는 듯했다.
그러던 그때─.
“─하양아, 은하 여기 있니?”
“아, 언니.” “누나?”
정하양의 집무실 문을 열고.
노은아가 문틈 사이로 머리를 빼꼼 내민 것이다.
“우리 들어가도 될까?”
“연화 누나?”
그리고 은아의 머리 위로.
류연화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
기술고문 브루노와 더불어.
현재 판도라클랜의 신입들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노은아와 류연화가 은하를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애들이 참 착해. 버릇없이 구는 애들도 없고, 괜히 클랜 분위기를 흩뜨리는 사람도 없어서 참 좋아.”
“그럼 다행이네. 서나하고 은우가 보는 눈이 있기는 했네.”
노은아는 그렇게 운을 뗐다.
그러고는 미간을 모으고는 문제를 입에 담기 시작했다.
“문제는 애들이랑 파티를 맺으면 은근히 자기중심적인 면모가 조금씩 드러난다는 거야.” “자기중심적인 면모?”
“유망주로 불리다 보니 저도 몰래 자기 실력을 과신하게 되는 거지.”
“하긴…, 그렇기는 하겠네. 그런데 연화 누나도 입에 맞나봐. 맛있어?”
“응…, 내 취향이야.”
마지막 말은 류연화가 보탰다.
그러고는 감자튀김을 우물거렸다.
이내 감자튀김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에는 케첩을 듬뿍 찍어 먹었다.
한편 은하는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유망주로 불리던 애들이야.
그런 애들이니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을 가지고 있기도 하겠고, 아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중심적인 면모가 나오는 거겠지.
그런 애들만 클랜에 입단했으니, 개개인의 실력은 좋을지 모르더라도 파티 플레이가 잘되지 않는 건가.
대개 아카데미의 유망주로 불리는 학생들에게는 그만한 자신감과 함께 거만함이 드러나고는 했다.
판도라클랜의 신입들도 그것만은 다르지 않은 듯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망주들이 겪는 성장통이었다.
또는 고질병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그들은 세상에 나와서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깨달으면서 마침내 꽃을 피우거나, 때로는 결국 꽃을 피워보지 못하고서 정체하거나 뒤처지고는 했다.
그리고 또 많게는 제 실력을 너무 과신하고 있던 결과, 너무 허무하게 목숨을 저버리기도 했다.
세상에 나오면 알게 될 일이었다.
그런데 노은아 왈─.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 실전을 몇 번 겪다 보니까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있던 애들이 이젠 서로 협력할 줄 알게 됐어.”
겉으로는 파티 플레이를 하면서, 실상은 솔로 플레이를 하고는 했던 신입들이 유해졌다고 한다.
은아가 하는 말을 듣고.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두 사람이 자존심이 센 신입들이 협조할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한 모양이었다.
다들 아닌 듯하면서 은근히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했을 테니 서로 협조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지.
오히려 우리 때가 신기했던 거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유망주들이 겪는 고질병.
그게 은하의 원년 클랜원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만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본인이 말하기 부끄러웠지만─.
─내가 있었기 때문인가.
클랜원들이 과신하지 못하게.
그가 몇 단계나 더 앞으로 나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클랜원들이 자신의 실력에 과신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거만해지고 싶어도 자신이 월등히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거만해질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입들 중에서도 자신하고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고 한다.
노은아가 입을 열었다.
“문제는 성환이야.” “오성환? 걔가 왜?”
“너무 무모해. 위험해.”
오성환의 이름이 나오자.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류연화가 짧게 평했다.
그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은아가 말을 잇기를─.
“─너랑 같은 스타일을 추구해.” “…….”
“앞뒤 안 가리고, 무작정 앞으로 튀어나가선 검을 휘두르려 그러고, 부상을 입는 걸 개의치 않아. 아니, 부상을 입는 걸 자랑스럽게 여겨.”
신입들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오성환.
그러다 보니 그는 지금까지 겪은 실전을 어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그의 과신은 높아졌고, 하물며 은하의 전법을 따라 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고.
은하는 은아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왠지 내가 혼나는 느낌이네.
오성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은하는 도둑이 제 발을 저리듯이 겸연쩍게 듣기만 했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정리했다.
“─요는, 한 번 죽도록 굴려서라도 생각을 고쳐줘야 한다는 거지?”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닌데…. 성환이가 널 동경하는 만큼 그래도 네 말은 잘 듣지 않을까 생각해서, 날 잡아서 네가 좋게 타일러 달라고 말하려는 거였는데….”
“그게 그거지, 뭐.”
“””…….”””
은아가 떨떠름해하든 말든.
은하는 단번에 일축했다.
그는 누군가를 죽도록 굴리는 일은 자신할 수 있었다.
은하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마침 잘됐네.”
“응? 뭐가?”
상황이 참 적절했다.
은하는 키득거렸다.
“그러지 않아도 일손이 부족해서 걱정하고 있던 차였는데, 성남으로 신입들 데리고 내려가면 되겠네.” “””뭐?”””
“신입들도 제5위계 몬스터를 직접 마주하지는 못했을 거 아니야. 이왕 이 기회에 고위계 몬스터와 싸우는 경험을 시켜줘도 되겠네.”
제7위계, 높아봤자 제6위계.
그런 몬스터만 상대하고 다니니까 오성환이나 신입들이 아직도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5위계와 싸우게 하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완벽했다.
“세상에 어느 클랜이 신입들한테 제5위계를 상대하게 한다고….” “왜 안 돼? 못할 것도 없지. 누나, 우리 때 잊었어? 우리 때는 말이야,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갑작스레 몬스터들이 침공해서….” “””…….”””
은하의 생각을 알게 된 노은아가 말도 안 된다며 혀를 내둘렀다.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고.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당연히 누나랑 연화 누나도 같이 갈 거지? 누나들은 신입들 담당하는 역할이잖아.”
“아, 그게, 있지, 음….”
노은아가 당혹해한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듯한 눈치였다.
그녀도 호시미야 카에데의 파티가 성남시에서 어떤 일을 겪은 것인지 알고 있는 듯싶었다.
그래서 그녀가 바로 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바로 그때─.
“─응, 갈게.”
“…그래, 내 동생 내가 돌봐야지 누가 돌보겠어. 나도 갈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류연화가 대뜸 대답한 것이다.
옆에 있던 복병에게 당한 은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내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류연화를 따라 수긍했다.
그러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누나, 그거 2개째 아니야?”
“응…, 햄버거가 너무 맛있어서…. 아까 감자튀김도 그렇고, 전부 다 내 취향인 것 같아.”
“””…….”””
어느새 류연화가 두 번째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녀가 은하의 지적을 받고 시선을 홱 피했다.
목덜미가 빨겠다.
저 누나가 웬일이지?
원래 잘 안 먹는 사람인데….
그만큼 햄버거가 맛있는 건가?
고개를 돌린 채 먹고 있는 류연화.
그녀가 새하얀 뺨을 우물거리는 게 퍽 귀엽기만 했다.
잘 먹는 모습이 복스러워서 좋다.
류연화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은하는 만족해했다.
“햄버거 많이 사 왔으니까 더 먹어.” “아니야, 이거면 돼. 배불러….”
“바로 만들어서 먹으면 더 맛있어. 잘됐네, 성남시로 내려가게 되면 이 가게에 들려보자.”
“응.”
“”…….””
노은아와 정하양이 자신을 보면서 눈초리를 가늘게 뜨는 것도 모르고.
은하는 잔털이 보이는 목을 붉힌 류연화에게 권유했다.
☆
몬스터들에게 기척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놈들이 경계하며 이주를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시미야 카에데의 파티는 놈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이틀 동안 그 고생을 하다 보니, 당분간 푹 쉬고 싶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노은하도 꽉 막힌 놈은 아니니까 이번 임무에서 우리는 제외하겠지.
노은하도 자신들의 고생을 알리라.
그래서 임무를 재개하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는 중이었다.
애초 클랜의 정기 임무가 아니라, 성남시 클랜들이 마나관리기구에다 요청한 일이었다.
그들이 요청한 일도 수색이었지, 토벌이 아니었다.
굳이 다른 클랜들의 일을 도와서 토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그러니 가장 이상적인 건 노은하가 마나관리기구에 보고하는 것으로, 일을 다른 클랜에 넘기는 건데….
그놈이 그럴 리가 없다.
토벌까지 하겠다고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판도라클랜은 물론, 성남시의 클랜들까지도 갈려 나가게 될 것이다.
호시미야 카에데는 장담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에 펼쳐질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리 파티 중 한두 명은 무조건 데리고 갈 수밖에 없을 거야.”
몬스터들의 부락을 지도로 표기해 수색 임무를 마쳤다고 하나.
본격적인 토벌이 시작되면, 현장을 직접 수색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불려 나갈 것은 당연지사.
그중에서도─.
─레인저는 무조건 나가게 되겠지.
다른 파티원들은 몰라도.
레인저인 자신은 무조건 차출되게 될 것이다.
카에데는 눈살을 찌푸렸다.
“…….”
어쩔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대신, 혼자 죽을 수는 없다.
노은하에게 부려먹히고 싶지 않다.
누구 한 사람은 끌고 가야겠다.
그것이 바로 동기애고, 전우애며, 최근에 은하신교 사람들이 말해대는 인류애가 아니겠는가.
내가 먼저 노은하한테 찾아가서, 내가 같이 가주는 대신 다른 놈들도 차출해 달라고 말하는 거야.
그럼 그놈도 옳다구나 생각하고서 몇 사람을 차출하겠지.
레인저는 길을 찾는 자.
호시미야 카에데는 길을 찾았다.
혼자 죽지 않고 같이 죽는 길.
그녀가 입가를 끌어올렸다.
노은하 밑에서 참 많이 배웠다.
“아, 어디 가냐.”
“그러는 너는.”
“나? 나는 기록보관실. 거기 가서 읽을 책이나 찾아보게.”
때마침 카에데는 복도를 걷던 도중 배수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이 톡톡 말을 주고받았다.
이내 카에데의 눈이 빛났다.
배수빈을 데려가면 되겠군.
서로 다투는 사이이기는 해도.
아니, 서로 다투는 사이이기에.
카에데는 배수빈이 홀로 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같이 고생해줘야겠다.
사실, 전혀 안 미안하다.
카에데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고, 태연하게 대화를 마치기로 했다.
“그럼 나는 가볼게. 푹 쉬어.”
“그래, 푹 쉬어라.”
이대로 노은하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배수빈을 차출하자고 하자.
카에데는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바로 그때─.
“─아, 맞다.”
“왜?”
배수빈이 불쑥 입을 연 것이다.
카에데가 고개를 돌렸다.
배수빈이 씩 웃고 있었다.
“지금 은혁이랑 시형이하고 같이 은하랑 이야기하고 오는 길이야.” “……!!”
“우리가 생각했을 때, 카에데 네가 레인저이기도 하니 적격이겠더라고. 그래서 널 길잡이로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은하한테 이야기했더니, 은하가 좋다고 받아들이더라.” “너….”
“아마 조만간 은하가 호출할 거야. 네 덕에 우리는 편히 쉬게 됐으니, 잘된 일이지.”
지는 걸 죽어도 싫어하는 배수빈.
나아가 은하에게 수도 없이 당했던 그녀는 이제는 감각적으로 자신이 똥통에 빠져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후천적 인 셈이다.
그러니 기민한 두뇌로 전세를 읽고 선수를 친 것이다.
“그럼 이만. 수고해~”
아니, 저 X년이.
카에데는 몸을 홱 돌려 사라지는 배수빈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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