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16
선력 16년 5월.
성남시에서 남아 있는 일을 정리한 하지은이 마침내 하백련을 데리고서 판도라 클랜회관으로 이사 왔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회관에서 하하버거를 운영하게 될 하지은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옆에 있는 아이는 제 딸이고요…. 백련아, 이제 인사드려야지.” “안녕하세요! 하백련이라고 합니다. 올해로 9살이고, 잘 부탁드립니다.”
“다들 인사해. 오늘부터 우리 클랜 식구가 될 사람들이야.” “”””…….””””
그날 정오 무렵.
은하는 두 사람이 왔다는 소식에 클랜원들을 전부 소집했다.
그러고 그는 회관 앞에서 기다리다 두 사람이 보이자마자 밖에 나가서 짐을 받았다.
클랜원들은 두 사람의 짐을 챙기며 뒤따라오는 그를 보고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한편으로 그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노은하가 노은하했구나….””””
클랜로드가 또 별다른 얘기도 없이 사람을 들였다.
물론, 클랜원들은 조만간 회관에 수제버거 가게가 들어온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단순히 클랜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새 음식점이 입점한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노은하가 클랜원들을 불러, 자신이 저들을 특별히 여기고 있는 모습을 과시한 것이다.
복지 차원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목적으로 저들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가워요. 판도라클랜 행정관 한서현이라 해요. 아침부터 오느라 피곤할 텐데, 먼저 짐을 푼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아, 네. 잘 부탁드려요.”
노은하가 또 아무 말 없이 무언가 꾸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신입들은 몰라도 은하하고 함께한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들이 제각기 생각에 잠긴 채로 어색하게 인사에 응답하는 가운데.
한서현이 구두 소리를 내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녀가 클랜원들을 대표해 은하와 무언가 인연이 있어 보이는 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몸을 돌려서는, 은하를 쳐다보았다.
“네가 햄버거 가게를 입점시키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뭔가 있나 보구나?”
“뭐…. 그렇지?”
“근데 말이야.”
“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한서현이 은하의 옷깃을 잡았다.
그녀의 손에 이끌린 은하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지고.
그녀가 속닥거렸다.
“─다른 생각 있는 건 아니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
의미심장한 물음.
은하는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의 의문을 친절히 풀어주었다.
“─내가 네가 하렘을 차리든 말든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유부녀를 건드리는 것은 좀 그렇지 않니?”
“아니, 야…. 그런 거 아니야.”
“그게 아니면─.
아주 크게 오해하고 있다.
은하는 어이가 없어 대꾸했다.
물론, 그녀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며,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하백련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혹시 저 애를 노리거나 그러는 생각은 아니지?”
“허, 참….”
한서현이 귓가에서 키득거리고.
은하는 기가 차서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클랜원들 중에서 상당수가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노은하, 너 혹시….”
“실망이다.” “자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민지, 목민호, 봉구래.
김민지가 경멸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목민호는 저놈이 클랜로드냐는 듯 통탄할 일이라며 탄식했다.
봉구래는 얼굴을 찌푸리며 끝끝내 뒷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야, 너희들 얼굴 왜 그래?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그때쯤에는 은하도 자신을 향하는 클랜원들의 시선이 마냥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가 그들에게 뭐라 말하려 했으나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이미 멋대로 넘겨짚으면서 오해를 사실로 부풀리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 쐐기를 박듯─.
“─너 그거 범죄야. 아니?”
“……!”
“빠빠….”
한서현이 은하의 귓가에 입을 대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속삭였다.
은하는 그 말에 넋이 나갔다.
한서현이 키득거렸다.
“그러니 오해 사지 않게 조심해. 이따가 나 좀 보고.”
이상으로 은하를 놀릴 대로 놀린 한서현이 등을 돌렸다.
그녀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멍하니 서 있던 하지은, 하백련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깜빡했다는 듯한 어조였다.
“─아, 생각해보니까 소개가 조금 부족했네요. 제가 이 사람 아내에요. 하지은 씨의 이야기는 이이한테서 많이 들었어요. 나이 차이가 조금 나기는 해도, 여기에서 일할 거니까 지은 씨라고 불러도 되겠죠?”
“아, 네…. 편하신 대로 불러주셔도 괜찮습니다. 행정관님.” “네,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리고 백련이도.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언니한테 찾아오렴.”
“…잘 부탁합니다.”
처음에 오해가 있기는 했으나.
여하튼 두 사람은 판도라클랜에서 적을 두게 되었다.
☆
“─참 잘하는 짓이다.”
“끙….”
클랜원들에게 하지은과 하백련의 짐 정리를 맡기고.
집무실에서 한서현을 따로 보게 된 은하가 제일 먼저 들은 소리였다.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던 은하는 팔짱을 낀 그녀를 올려다보며 뭐라 답하지 못했다.
이내 그녀가 은하의 옆에 앉았다.
“그래서? 어느 쪽이니?”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어느 쪽 때문에 네가 저 사람들을 굳이 우리 클랜으로 들인 거냐고. 하지은 씨 쪽이니, 하백련 쪽이니?”
그날, 첫날밤을 치른 이후로.
한서현은 은하가 미래를 본다는 걸 가정에서 확신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녀는 은하가 만들어나갈 미래에 일조하기로 했다.
“물론, 조금 전 네 눈치를 보니까 대충 누구인지 알 것 같긴 하더라. 하백련이지? 초등학생 꼬마. 어쩐지 나한테 경쟁심을 품는 아이.”
“백련이가? 걔가 너한테 그랬다고? 걔가 왜?”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니? 그건 내가 아닌 그 애한테 물어봐야지. 어쨌든 그 애 때문인가 보구나?”
“…맞아.”
“그 애는 뭐 때문에 그러는 거니? 아까 보니 마나도 특출나지 않고, 플레이어로 양성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린 것 같은데. 특이한 기프트라도 가지고 있는 거니?” “…….”
“말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은하의 손에 손을 포개는 한서현.
은하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부드럽게 타이르는 소리는 이대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지.
이내 은하는 유혹을 뿌리쳤다.
한서현과 같이 인생을 걷게 되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도 모른 척하는 그녀의 배려에 기대고 있는 중이었다.
이 이상 그녀의 배려에 기댔다가는 언젠가 그녀가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리라.
사람이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지만 너무 많은 비밀을 가진 사람은 결국 배척받는 법이다.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한들, 말할 수 있는 것은 말해야 했다.
“─언젠가 선녀가 될 아이야.” “…….”
그렇기에 은하는 입을 열었다.
선녀라는 말에.
한서현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흔들린 것은 잠시였다.
“그래…, 그렇구나.”
은하가 그녀의 손을 쥐자, 이윽고 그녀도 화답하며 그의 손을 쥐었다.
그러고는 그냥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하나 그녀도 의문이 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아이가 확실하니?” “확실해.”
“체내 마나도 얼마 없는 애였어. 그런 애가 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니, 그럼?”
“은폐마법으로 감춰져 있을 뿐이지 체내 마나는 방대해.”
“네가 그렇게 말하면 맞는 거겠지. 그래, 저 아이가 선녀가 되는구나. 솔직히, 네가 하는 말이니 믿겠는데, 좀처럼 믿기지 않네.”
“지금은 믿기지 않을 거야.”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기에.
은하는 단편적인 정보를 전달하며 그녀를 이해시켰다.
이내 한서현은 군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눈동자가 이채를 띄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한테 호의적일 수 있도록 사전에 작업을 해놔야겠네.”
“내 생각도 그래. 그래서 백련이를 클랜으로 데려온 거야.”
“잘했어. 저 애가 다니는 학교에다 각별히 보살펴달라고 말해놔야겠다. 그 애 어머니도 좋게 대하고.” “잘 좀 부탁해.”
“그래, 맡겨줘.”
한서현의 생각에 동의하며.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마친 은하는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그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근데 있잖니.”
“어? 왜?”
“이대로 그냥 갈 거니?”
그녀의 눈빛이 그윽했다.
은하는 무언가 기류를 감지하고서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
이것은 명백한 사기다.
하백련은 노은하가 결혼했을 줄은 전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판도라클랜에 들어온 날에 알게 된 그녀는 큰 충격에 빠져버렸다.
진짜 실망이야. 원래 실망이었는데 더 실망이야.
그녀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자신이 이럴진데, 자신의 어머니는 또 얼마나 슬프겠는가.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그날 어머니는 웃기만 했었다.
“─시설 정말 좋다. 여기가 바로, 이제 우리가 사용하는 집인 거야. 백련이 네 방도 있어서 좋다. 사실 너도 방을 가지고 싶어했지? 엄마가 다 알아.”
“나는 그냥 엄마랑 자도 좋은데…. 그리고 엄마는 기분이 뭐가 좋아? 아저씨가 너무했다 생각하지 않아? 진짜 나빴어.”
“응? 판도라 클랜로드? 뭐가?” “아저씨가 거짓말했었던 거잖아. 결혼했다고 말하지도 않았으면서….”
“응? 그러니? 그런가? 그러고 보니 행정관님이 정말 예쁘기는 하더라. 질투하는 모습도 예뻤고…. 백련이 너도 나중에 커서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더라.”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응? 엄마가 왜?”
“그야….”
답답하다.
백련은 좀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고르려고 했다.
그때, 어머니가 피식 웃었다.
“나는 우리 백련이랑 이렇게 같이 사는 게 제일 좋은걸? 엄마는 그냥 너만 있으면 돼.”
“치….”
하지은이 대뜸 그녀를 껴안았다.
하백련은 뭐라고 말하려고 하다, 결국 말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녀는 그대로 어머니에게 안기며 감정을 갈무리했다.
“─아, 백련아. 학교는 어땠어?” “흥!”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그날부로 하백련은 노은하를 보면 흥 소리를 내며 피해 다녔다.
노은하가 우울해하든 말든 당분간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나 그녀는 클랜원들과 어느 정도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선뜻 다가오는 사람들이 착해 보이고, 친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백련아, 안녕? 여기서 뭐해?”
“안녕?”
“안녕하세요. 카페에 가서 숙제를 하려고요.” “그래? 언니들도 마침 카페 가서 커피나 마시려 했는데, 언니들이랑 같이 갈래?”
“네, 좋아요!”
그중에서도 하백련은 성남시에서 만난 적이 있던 노은아와 류연화를 더욱 친근하게 여겼다.
클랜 내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는 그녀는 카페로 향하던 길에 그들을 만났다.
노은아가 서슴없이 손을 내밀자, 그녀도 생긋 웃으며 손을 잡았다.
이 언니 정말 예쁘다.
이런 사람이 그 아저씨 누나라니, 말도 안 돼.
노은아가 재잘재잘 말을 건다.
하백련은 그녀와 즐겁게 얘기하며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은아와 노은하가 남매란 소리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천사 언니에게 그렇게 나쁜 아저씨가 동생으로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편으로 하백련은 반대편에 있는 류연화를 곁눈질했다.
이 언니도 예뻐.
그리고 시원해!
피부도 정말 새하얗지만.
푸르른 머리칼이 인상적이었다.
검은 머리만 봐왔던 하백련으로선 그녀의 머리칼이 부럽기만 했다.
또한 그녀의 곁에 있으면 어쩐지 안정감이 들었다.
류연화의 차분한 성격이 전염돼서 그녀 역시 영향을 받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시원해?” “응, 시원해….”
류연화의 곁은 무척이나 시원했다.
날씨도 서서히 더워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곁에 있으면 더위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끝내 류연화의 팔에 얼굴을 비비기까지 했다.
그렇게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중이었다.
“”─꺄아아아아악!!!””
돌연 앞에서 비명이 들렸다.
하백련은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오, 안녕! 꼬맹아, 어디 가냐?” “””…….”””
비명이 들린 방향에서.
진파랑이 걸어왔다.
문제는 그가 옷을 한 겹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였다.
그런데 진파랑은 너무나 당당하게 제 몸을 드러내고 있었고.
하백련은 덜렁거─.
“─안 돼. 보지 마.”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니!?”
“응? 내가 뭘?”
그녀가 초점이 잘 맞지 않는 것을 눈에 힘을 주고 확인하려고 할 때.
불쑥 그녀의 시야에 류연화의 손이 들어왔다.
하백련의 시야는 그녀의 손에 그만 가려지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비명이 들린 방향에서 조아라와 차은우가 뛰어왔다.
“그 꼴로 어디를 돌아다니는 거야! 오빠 요새 진짜 왜 이래!?”
“오빠, 제발 옷 좀 입어. 내가 응? 그런 걸 봐야겠어?”
“어? 옷? 아…. 깜빡했네.”
조아라와 차은우가 화를 냈다.
진파랑은 그제야 고개를 내려서는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어쩐지 좀 시원하더라니…. 미안! 목욕하고 나오다가 아티펙트 상태를 되돌리는 걸 깜빡한 모양이야!”
환상의 허물
클랜원들이 기가 차는 가운데.
진파랑은 실실 웃으며 체내 마나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그가 체내에 흡수하고 있던 아티펙트가 반응했다.
신체에 두른 마나가 판도라클랜의 제복으로 변화했다.
“파랑이 너, 백련이도 있는 앞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앞으로 제발 조심해! 그리고 잘못해 아래층으로 내려갔으면 어쩔 뻔했어?”
“미안, 미안…. 다음부터 조심할게. 근데 조아라, 차은우! 이런 거 갖고 소리를 지르는 건 아니지 않냐? 야, 난 진짜 귀 떨어지는 줄…커헉…!”
“죽어! 그냥 죽어!”
“그래, 아무렇지도 않으면 아래를 훤히 드러내든가. 내가 사진 찍어서 전시해줄게!”
“…언니, 전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조금 더 기다려.”
“네….”
하백련이 앞을 못 보는 사이.
정말 많은 일이 지나갔다.
진파랑은 은아에게 꾸지람을 듣고, 조아라와 차은우에게 먼지가 나도록 얻어맞아야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진파랑을 잡고서 질질 끌고 갔다.
그제야 하백련은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다 끝난 거예요?”
“끝났어. 못 볼 꼴을 보여 미안해. 파랑이가 나쁜 애는 아니야. 그냥…, 요새 옷을 안 입고 다닐 뿐이지.”
“네….”
변태다.
하백련은 은아가 하는 말을 듣고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노은하 다음으로 진파랑도 요주의 대상에 집어넣기로 했다.
여하튼 그녀는 다시금 걸음을 옮겨 카페로 내려갔다.
“아, 은아 언니, 연화 언니! 그리고 백련이도 같이 있네?”
“…안녕하세요.”
카페에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하백련은 그녀의 이름을 떠올렸다.
정하양이었다.
분홍색 리본이 눈에 띄는 정하양은 주문을 마치고 그녀를 반겼다.
“백련이 너도 커피 마시러 왔어?”
“커피는 아니고 쉐이크 마시러요. 숙제하면서 마시게요.”
“아, 숙제가 있었구나. 숙제도 열심히 하고 착하네.”
클랜원들에게 듣기로.
정하양도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하백련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정하양에게 호감을 품었다.
나중에 그녀가 일하는 곳에 놀러가 책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응? 반지?
그녀는 머리를 쓰다듬는 정하양이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왼손 약지.
그녀도 왼손 약지에 끼는 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 커피 나왔다. 그럼 난 가볼게. 일이 있어서 올라가봐야 하거든.”
“하양이 너도 쉬엄쉬엄해. 가끔은 쉴 줄도 알아야지.”
“응! 고마워, 언니.”
“수고해.”
“언니도 고마워. 그럼 백련아, 숙제 열심히 해.”
“안녕히 가세요.”
이내 정하양이 커피를 받아들고는 자리를 떠났다.
하백련은 카페를 나서는 정하양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녀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은아 언니.”
“응? 왜?”
“하양이 언니, 누구랑 사귀어요?”
“…어?”
“반지를 끼고 있어서요. 사귀니까 끼는 거 아니에요?”
“음…. 사귀지. 사귀고 있지.”
정하양에게 물을 수 없으니.
하백련은 노은아에게 묻기로 했다.
그러자 노은아가 난처한 기색으로 머리를 흘려 넘겼다.
이내 그녀가 조심스레 말하기를─.
“─은하랑 사귀고 있지.”
“네? 노은하 아저씨요?”
“아, 역시 모르고 있었구나. 은하랑 하양이랑 사귀고 있어. 사내 커플? 비슷한 느낌이지.”
“노은하 아저씨는 한서현 언니랑 결혼한 거 아니었어요?”
“어…. 응, 결혼, 했지?” “결혼했는데도 사귀고 있다고요? 한서현 언니는 그걸 알고 있어요?” “…알고 있지.”
“…….”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하백련은 마치 그런 얼굴을 하고 노은아를 쳐다보았다.
노은아가 시선을 홱 피했다.
대답해주기 곤란한 듯했다.
이내 하백련은 커피를 받아 마시던 류연화에게 대답을 구하고자 했다.
그녀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류연화가 결국 대답해주었다.
“내년에 결혼하는 걸로 알고 있어.”
“…한서현 언니랑 이혼하고요?”
“아니.”
“…….”
내가 정말 뭘 들은 거지.
백련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이해할 수 있던 것은─.
─쓰레기야.
그 아저씨는 쓰레기가 틀림없어.
노은하 아저씨는 쓰레기다.
차마 욕을 할 수 없었던 하백련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노은하에 대한 평가는 점점 더 나빠졌다.
☆
한서현은 처음에는 어찌된 일인지 백련에게 아줌마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백련은 한서현을 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은하는 그녀의 비법이 궁금했다.
그러자 그녀가 킥킥거렸었다.
‘─사람의 감정을 볼 수 있는 내가 어린애 감정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것 같니?’
결론, 자신은 쓸 수 없다.
은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하백련과 친해지기로 했다.
하지만 하백련은 걸핏하면 자신을 피해 다니고는 했다.
최근에는 얼굴이라도 보면─.
‘─아, 쓰레기 아저씨다.’
그렇게 말하고 지나가고는 했다.
설마 자신이 딸처럼 키운 그녀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줄 몰랐던 은하는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불닭아,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빠빠.”
왜 하백련은 자신에게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인가.
은하는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불닭이의 토닥거림을 받으며, 하백련하고 친해지는 일과 별개로 다른 일을 할 뿐이었다.
“─이번에 클랜에 웬 유부녀하고 초등학생 꼬마가 들어갔다면서요? 뭐하는 사람들이래요? 주인님께서 그렇게 각별히 챙기는 것 같던데.”
“알 거 없어.”
“혹시 주워온 자식인 건….”
“입 다물어.”
“넵.”
보문동과 숭인동의 경계선.
은하는 오랜만에 이십오를 찾았다.
접선장소에 나타난 이십오는 대뜸 은하를 보고 실실거렸다.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십오도 은하의 기분을 파악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절 부른 이유가 뭔데요?” “찾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오, 어떤 사람이래요? 주인님께서 단서만 가지고 있다면 금방 찾죠.”
“단서는 딱히 없고.” “그럼 힘든데.” “대신에 이름이랑 출신지, 나이는 알고 있어.”
“쯧, 그럼 공무원을 매수하는 게 좋겠네요. 말해주세요.”
기프트로는 찾을 수 없다.
이십오가 혀를 찼다.
그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서는 은하의 말을 받아적으려고 했다.
이에 은하가 대답했다.
“이름은 신도림. 서울이나 경기도 출신으로 알고 있고, 나보다 10살이 많은 남자야.”
“흠…, 한 번 찾아볼게요. 그런데 주인님, 주민등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어요. 빈민가나 그런 데서 태어났을 때는….”
“기록되어 있을 거야. 걱정 마.”
하백련의 반응이 시원찮았지만.
그럼에도 하백련은 계획했던 대로 자신의 비호 아래 둘 수 있었다.
그러니 내년에 대비해서 할 일은 신도림을 찾는 것이었다.
다행히 은하는 신도림을 찾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도림이 자기 입으로 직접 테러를 일으킨 이유를 밝혔으니까.
그래서 언론에서 한창 떠들었었지.
부모님을 여의고.
신도림은 몬스터에게 여동생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그는 마나교의 교리에 이끌려 여동생을 살리고 말겠다는 의식을 치르게 된다.
그것이 신도림의 영등포 반파 사건의 원인이었다.
워낙에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은하는 신도림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를 발견하게 되면─.
─죽이든가, 회유해야겠지.
양자택일이었다.
신도림이 자신이 다루기에 너무나 까다로운 인물이라면 죽인다.
반면에 자신의 말을 잘 따른다면 클랜으로 끌어들인다.
이란 기프트를 지니고 있는 신도림에게는 그럴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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