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19
몬스터들이 강북을 침공한 이후.
정재계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자중과 절제를 요구받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여론을 신경 쓰며 대외활동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루미너스그룹이 주최하는 교류회야. 서울 침공 이후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적이 있던가?”
“루미너스라는 이름값을 하는 건지 평소에는 얼굴 보기 힘든 사람들이 잘도 참석하는군.”
재계 4위의 루미너스그룹이 주최한 교류회는 그동안 억눌려 있던 만큼 화려하고, 성대했다.
루미너스그룹의 파티는 곧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상징이었으며, 정재계 사람들이 다시금 대외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란 신호탄이었다.
교류회에 참석한 정재계 사람들은 대연회장에 모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마다 회포를 풀고, 사적인 교류를 이어나갔다.
“”””…….””””
그러면서 그들의 관심사는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현재 루미너스그룹 직계들에게 향했다.
그룹의 회장 이정인은 아내와 함께 YH그룹 부회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이정인의 장남인 이유천은 YH그룹의 직계 최예진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루미너스와 YH가 손을 잡았다는 소문은 진짜였나 보군. 그동안 서로 모른 척하던 사람들이 저리 친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말이야.”
“YH그룹 회장은 오지 않은 건가? 하긴, 다른 그룹 회장님들이 이런 자리에 오기는 그러시겠지. 그나마 부회장님이 온 것이 루미너스그룹을 배려하고 있다는 뜻인가 보네.”
“YH그룹 회장님은 연세도 있고, 많이 편찮으시니 어쩔 수가 없지. 그나저나 중요한 건 그 아이라네. 이유정이 보이지 않아.” “최예장도 아직 보이지 않는군.” “둘이 같이 들어오는 건가?”
“”””…….””””
얼마 전에 정재계에 이상한 소문이 하나 퍼졌다.
사업 부문이 겹친 나머지 서로를 라이벌처럼 여기며 경쟁하고 있던 루미너스그룹, YH그룹이 화해하고 문화산업을 독점할 거란 말이었다.
실제로 마냥 신빙성이 있는 것이, 두 그룹의 직계들이 가깝게 지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루미너스그룹의 금지옥엽 이유정이 최근에 YH그룹의 직계 최예장을 만난 것이다.
이유정이 공식적으로 대외활동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으나, 저택에만 갇혀 지내던 그녀가 차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며 어느 정도 노출 기회가 늘어난 탓이었다.
루미너스그룹의 행보에 주목하던 사람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소문이 나돌았다.
“이유정과 최예장이 약혼한다는 게 정말이었나 보군.”
“YH그룹 부회장님이 오신 걸 보면 오늘 이 자리에서 공식으로 발표할 생각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두 그룹의 회장과 부회장이 저리 친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재계 사람들이 의심하던 생각은 점점 확신이 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회포를 풀면서 이유정과 최예장이 나타나는 순간을 기다렸다.
만약 두 사람이 같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소문이 진실이 되리라.
그리고 그 소문이 진실이 된다면, 두 그룹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들은 그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했다.
그러던 그때─.
“─이군. 판도라클랜도 같이 납신 건가.”
“”””…….””””
많은 인파가 대연회장에 들어왔다.
20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의 눈은 그들에게로 향했다.
“”””…….””””
교류회는 사회적으로 저명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사람들이 참석하는 자리였다.
그러니 그들 역시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그들은 단순히 ‘저명하다고’ 부르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들은 유명 인사를 넘어 이제는 영웅으로 불리고 있는 이들이었다.
“저 사람들을 초대할 줄이야….” “초대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중요한 건 저 사람들이 초대를 받고 모두 참석했다는 거야.”
“판도라클랜이 루미너스그룹하고 각별한 관계라는 건 잘 알겠군.”
판도라클랜.
마나관리기구 기준으로 B+ 등급을 받고 있으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들을 B+급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각에서 그들은 잠재적인 S급으로 평가받고 있기까지 했다.
그만큼 판도라클랜 전원의 등장은 사람들의 갖은 관심을 받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건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
노은하.
작년 서울 침공을 해결한 영웅이자 선녀의 총애를 받고 있는 플레이어.
어디 그뿐인가.
노은하에 대해 말하자면 그야말로 입이 아플 정도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십이좌 의 대적자.
차기 십이좌 딜러.
차기 대한민국 최강.
시리우스그룹의 긴밀한 관계자.
그리고─.
“─정하양과 한서현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는 것은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겠다는 뜻인가.”
“두 사람 모두 그룹의 직계일 텐데 자존심을 상해하지 않는 게 대단해 보이는군.” “한서현이야 신경 쓸 것도 없지. 신경을 쓸 사람은 정하양인데…. 허, 전혀 개의치 않나 보네.”
“아무튼 노은하는 무서운 놈이야. 정략결혼으로 두 그룹하고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될 줄이야.”
앨리스그룹의 긴밀한 관계자.
사람들은 노은하와 시리우스그룹의 직계 한서현이 결혼한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언젠가 앨리스그룹의 직계 정하양과 결혼할 거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재계 1위와 재계 3위.
사람들은 두 그룹의 사위가 되는 노은하에게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실, 그들은 저 세 사람이 부디 사이가 좋지 않기를 빌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은 배신당했다.
노은하가 두 사람의 손을 잡고서 대연회장에 들어온 것으로, 그들을 처첩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할 거란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더불어 진심을 알 수는 없었지만, 세 사람의 표정은 화기애애했다.
“하여튼 무서운 놈이야. 노은하가 단순한 영웅에 불과했다면, 이렇게 무섭지도 않았겠지.”
사람들의 평가는 거의 비슷했다.
노은하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단순한 영웅이었다면 그들은 분명 사람 좋은 얼굴로 다가가 노은하를 구슬릴 수 있었으리라.
또한 여론은 변하는 법이었다.
오늘 영웅이었던 사람은, 어쩌면 내일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민심이란 모이면 무시할 수 없지만 갈대처럼 이리 흔들리고, 또 저리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그만큼 다루기 쉽고 가변적이다.
하지만 그는 선녀의 총애는 물론, 재계 1위와 3위의 비호 또한 받고 있기까지 했다.
여론을 악화시킨다고 한들, 여전히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그가 두 그룹의 직계와 결혼을 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사회적으로 영웅이 되고 싶은 게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 세계까지 침입해,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어.
저놈은 단순한 영웅이 아니야.
야망가야.
노은하는 권력을 탐하고 있다.
민심뿐만 아니라 정재계의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한다.
그를 순박한 영웅으로 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멀찍이서 노은하를 바라보기만 할 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
인파를 헤치고.
그들에게 향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자의 정체를 파악하고.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이내 노은하와 그를 따라온 이들도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파악한 듯싶었다.
이윽고 남자가 그들의 앞에 섰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곧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서현이도 하양이도 안 본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구나. 그리고 판도라 클랜로드도.” “”””…….””””
갤럭시그룹의 직계 최정훈.
그가 인사를 건넸다.
☆
루미너스호텔 명동지점.
강북에서 열리는 교류회인 만큼, 이번 교류회는 강북이 재건되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이 많기는 하네.
100대 그룹으로 뽑히는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이름이 났다는 사람들이 참여해서 그런가.
오른쪽에는 한서현.
왼쪽에는 정하양.
양쪽으로 손을 잡고 들어온 은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아하니 교류회에는 판도라클랜의 클랜원들만 아닌 다른 플레이어들도 참석해 있는 듯했다.
은하는 자신과 눈이 마주친 이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그들 중에는 신라 클랜로드 김유진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신라 클랜 사람 수가 많긴 하네.
하긴, 루미너스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한가. 보아하니 클랜원들 일부는 회장을 경호하는 일을 맡고 있나 보네.
신라 클랜로드는 손님으로 참석한 모양이고.
이내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YH그룹 후원을 받고 있는 클랜은 블레이즈클랜이었다.
은하는 팔옥들도 볼 수 있었다.
은하는 냉큼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들과는 엮이지 말자.
클랜원들에게도 주의하기로 하고.
은하는 한서현, 정하양과 연회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그는 자연히 두 사람하고 친분을 맺고 있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이다. 서현이도 하양이도 안 본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구나. 그리고 판도라 클랜로드도.” “”””…….””””
갤럭시그룹의 최정훈이 은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니, 표면상으로는 그는 은하의 양옆에 있는 정하양과 한서현에게 말을 건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은하는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서현이랑 하양이한테 말을 건 것은 핑계야. 목적은 나야.
실제로 최정훈은 금세 두 사람과 인사를 마치고 몸을 돌렸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이에 은하는─.
“─네, 오랜만이네요.”
“그때 아카데미에서 보았을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구나.” “그러는 그쪽도 마찬가지인데요.”
“”””…….””””
오랜 기간 자숙하고 있던 최정훈.
은하는 그와 악수했다.
두 사람은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위치가 많이 바뀌었구나. 그때 너는 아카데미 학생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영입을 엄두도 못 내는 사람이 됐으니까.”
“그러게요.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딱이네요. 그러는…, 갤럭시 드론 사장님은 복귀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많이 힘들겠어요. 요새 일 때문에 바쁘죠?”
뼈가 있는 대화였다.
최정훈이 최가인이 죽은 ‘그날’을 언급했다.
동시에 ‘그날’이란 최정훈이 근신에 봉해진 계기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최정훈이 서슴없이 대뜸 은하에게 그날 있던 일을 이야기한 것이다.
날 의심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이 녀석은 내가 적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걸 거야.
어딘가 거만한 태도.
그리고 자조하는 듯한 어조.
그러면서도 은하는 최정훈의 눈에 이채가 숨겨진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 속셈을 품고 있다.
필시 자신의 속내를 가늠하기 위해 접근한 것이리라.
그리고 또한─.
“─앞으로 많이 보게 될 것 같은데 거리감 있게 말하지 말고 말 놔라. 너랑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데.”
“그럴게.”
“바로 놓네?” “놓으라면서.”
“그래, 내가 말하긴 했지. 앞으로 서로 친하게 지내보자.”
자신하고 안면을 트려는 한편으로 견제하려는 것이리라.
최정훈이 손에 힘을 주었다.
이에 은하도 그의 손을 쥐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당연히 플레이어도 아닌 최정훈이 은하의 힘을 이길 리 없었다.
“”…….””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최정훈이 먼저 손을 풀었다.
그제야 은하는 손을 놓아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최정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한 성깔 하는구나? 눈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해.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어.”
“그러는 너도.”
“그래, 맞아. 그러니 잘 지내보자. 너나 나나 서로 경쟁해야 할 관계는 아니지 않냐. 가인이가 죽은 것도, 이제는 옛날 일이니까.”
“…….”
최정훈의 표정이 풀렸다.
그러고는 그가 다시 손을 내밀며, 은하에게 악수를 청했다.
간접적인 화해의 제스처.
은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기서는 손을 잡는 게 맞겠지.
대놓고 적대할 수 없는 법이니까.
나나 이놈이나 손을 잡는 척하며 뒤통수를 노리게 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기도 했다.
굳이 대놓고 적대적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은하는 최정훈의 의도에 응하기로 생각을 마쳤다.
바로 그때였다.
“─어머, 정훈 오빠. 왜 우리 제부 뺏어가려고 그래? 그런다고 제부가 오빠하고 놀 줄 알아? 안타깝지만 제부는 나하고 놀아줄 거야. 그치, 제부?”
“”””…….””””
“너도 참 여전하다.”
시리우스그룹 직계 한서연이 불쑥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러고는 최정훈의 손을 쳐내고, 은하의 팔을 낚아챘다.
최정훈은 한서연의 돌발 행동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다는 것처럼 한숨을 쉬었을 뿐이다.
“내가 오빠 사촌들을 회유했다고, 이런 식으로 제부를 빼앗아가려고 하면 안 되지. 서현이랑 결혼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신혼인데 좀 내버려두란 말이야.”
“내로남불이 따로 없구나. 내가 뭐 너처럼 집안을 파탄낼 것도 아니고, 그냥 친하게 지내겠다는데 이렇게 막아야겠어?”
“신혼인 애들 건드리지 말란 거지. 올해는 서현이랑 알콩달콩 지내고, 내년에는 하양이랑 알콩달콩 지낼 제부 괴롭히지 말라는 거야.”
“됐다. 넌 정말 이기적이야.”
“치, 그러는 오빠는 아닌가?”
어느새 대화는 한서연과 최정훈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은하는 소외되어 있었다.
저 누나는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그리고 제부라니, 익숙지 않네.
은하는 반쯤 얼이 빠졌다.
최정훈도 이제는 그를 무시하고서 한서연과 대화를 가장한 견제구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저기로 가자.”
“그래, 가도 될 것 같아.”
그때 한서현이 손을 잡아끌었다.
정하양도 맞장구를 쳤다.
한서연이 최정훈을 막아준 덕분에.
세 사람은 사실 어색하기만 했던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안녕, 은하야. 정말 오랜만이야. 신혼 생활은 화끈하게 보내고 있니? 서현이가 막 수줍어하며 침대에서도 내숭을 떨지는 않고?”
“쓸데없는 말을 아주 막 하는구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저질스러운 얘기나 하고 재미있니?”
“뭐가? 남들은 뭐 둘이서 그렇고 그런 짓을 안 하는 줄 아니?”
최정훈으로부터 거리를 두니.
이번에는 삼라그룹 직계 오해인이 다가왔다.
그녀가 거리를 좁혀오자마자 곧장 상스러운 말을 내뱉은 나머지.
한서현은 불쾌하다는 얼굴을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최정훈 다음은 오해인인가.
그건 그렇고 서현이하고 오해인이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네.
은하는 오해인과 간만에 인사하며 한서현을 곁눈질했다.
두 사람은 나이가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은 격 없이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를 자세하게 듣다 보면 사이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정하양도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방관하지 않고 한서현의 편을 들어주었다.
“에이, 해인이 언니.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고 해도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러면 안 되지.”
“쳇, 그래, 이제 한 가족이 된다고 서현이 편을 드는 거구나? 내 편은 하나도 없고…. 그래, 안 할게. 그럼 되는 거 아니니?”
정하양도 나서니 오해인은 자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서운하다는 듯 탄식했다.
그러고는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정훈 오빠가 몰라 볼 만큼 사람이 바뀌었네. 예전에는 얼굴에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쳐서 오지게 잘난 척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보니까 아니네. 꽤 섹시해졌어. 우울한 분위기도 풍겨서 그런 건지, 퇴폐적이야.”
“그러니. 나는 관심 없는데.”
“응? 그런가? 나도 잘 모르겠네. 별로 친하지 않아서….”
“얘네가 옆에 은하가 있다고 아주 쌍으로 내숭을 떠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그녀가 꺼낸 화제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주 내숭이 만렙을 달성했다며.
오해인이 대놓고 혀를 찼다.
☆
서울 침공 이후 삼라그룹의 이름은 세상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재계그룹들이 마련한 보급물자를 대표로 옮긴 그룹이 바로 삼라그룹이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오해인은 재계 10위의 직계로서 안정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한테 덤벼든 거야. 이제 나랑 하양이 눈치를 보는 정도에서 벗어났으니까 말이야.”
오해인이 폭풍 수다를 떨고 나서.
한서현은 그녀가 멀리 사라진 즉시 은하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라그룹의 영향력이 꽤 강해지긴 했나 보네.
서울 침공으로 인해 재계그룹들이 경제적인 피해를 많이 입은 반면, 삼라그룹은 되레 이득을 보았다는 모양이었다.
동시에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고.
은하는 그제야 조금 전 오해인이 이전과 다르게 굽실거리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주의가 필요하겠다고.
은하는 생각을 정리했다.
“저기 도준이도 보이네. 이번에는 도준이한테 가보는 건 어때?” “그래, 그러렴.”
“저기에 건웅이도 있어! 오랜만에 아카데미 동기들도 만나고 좋다.”
그 후로 그는 유도준을 만나거나, 오랜만에 KK그룹의 직계 김건웅과 회포를 풀기도 했다.
동해그룹의 직계 정금전과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
연회장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루미너스그룹의 직계 이유정.
YH그룹의 직계 최예장.
드레스와 연미복을 입은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소문이 정말이었나 보군.”
“루미너스그룹과 YH그룹의 결혼 동맹이라….”
“”””…….””””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어딘가 움츠러든 것 같은 이유정이 최예장의 부축을 받으며 연회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간간이 떠돌고 있던 소문에 끝내 진실이란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리고 은하는─.
─빠득
이유정의 어깨를 감싸며 걸어오는 최예장을 노려보며.
은하는 이를 악물었다.
☆
시간을 되돌려, 일주일 전.
은하는 벽해수의 공방을 찾았다.
“형, 나 뭐 좀 만들어줘.”
“어? 뭐 아티펙트라도 만들어달라 부탁하려고 온 거야?”
“아니, 아티펙트는 아니고.”
벽해수는 한창 일을 하고 있었다.
은하는 벽해수의 일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이윽고 일을 마친 벽해수가 은하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뭘 부탁하려고?”
“액세서리 좀 만들어달라고.” “액세서리? 아티펙트에는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했고…. 아, 선물용으로 만들어달라는 거야?”
“응, 맞아. 예쁘게 만들어줘.”
“뭘 만들어주면 되는데.”
“반지.”
“반지? 제수씨한테 주려고? 어느 제수씨한테 주려는 거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 듯이.
벽해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내 그가 호기심을 보였다.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친구 약혼 축하 선물로 주려고.” “…….”
“나한테 소중한 친구야. 그러니까 정말 예쁘게 만들어줘.”
“끙…. 그래, 알았다.”
약혼 축하.
은하는 심장을 꽉 쥐는 심정으로 말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보고.
벽해수는 군말 없이 수긍했다.
“아, 근데….”
“또 왜?”
“쉽게 가져갈 수 없게 만들어줘.”
“뭐?”
“반지함에 트랩이라도 설치해줘. 열면 폭발이라도 하게.”
“…너 정말 축하하려 만들어 달라 말하는 것 맞냐?”
은하가 뜸을 들이며 말하자.
벽해수는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은하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남의 친구를 데려가겠다는데 그럼 내가 인정할 만한 남자인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게 정말 남의 친구 맞니.
벽해수는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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