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23
루미너스그룹의 교류회에서 일어난 이유정 납치 사건.
교류회 막바지에 일어난 해프닝은 정재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 것은 물론이고, 커다란 파장을 불러왔다.
“─루미너스그룹에서 YH그룹에게 약혼을 취소한다고 선언했다더군. 이유정을 하고 약혼을 시키겠다고.”
“허…. 그게 정말이야?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뭐라고?”
“이유정과 이 약혼한다 이 말일세.”
“뭐라고? 내가 귀가 먹었나 본데, 다시 좀 얘기해주지 않을래?”
“아, 글쎄 이유정이 과 약혼하기로 했다고!!” “”””아니, 왜!!!””””
그날 이유정을 납치한 사람은 바로 노은하였다.
노은하는 자정이 넘어갈 때쯤에야 이유정을 데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정인에게 대뜸 약혼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유정이 약혼의 증표로 웬 반지를 내보이기까지 했다.
몇 시간 동안 보이지 않던 딸이 갑자기 돌아와서 하는 말을 듣고, 이정인은 까무러쳤더랬다.
그리고 교류회에 남아 있던 이들은 그 소식을 널리 퍼뜨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약혼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냈다.
“와아, 정말 낭만적인 이야기네요. 정략결혼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서 약혼식장을 뛰쳐나가다니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네요!”
“도 남자답기는 하네. 사랑하는 사람을 납치하는 것으로 이유정과 최예장의 약혼을 반대하고 사랑을 이뤘으니까.”
“그렇다면 한 여자를 두고 두 명의 남자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는 건가? 그리고 최예장이 진 거고.”
“쯧…. 최예장은 그것도 바보같이 제 약혼녀를 어둠 속에서 놓친 데다 에게 빼앗기고 말았다면서? 도 야만적이긴 한데, 최예장 그놈은 제 여자를 지키지도 못하는구만.”
정재계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들에게 교류회에서 일어난 해프닝은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충분했다.
낭만주의에 빠져 있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열광했다.
그들 사이에서 이유정이란 존재는 두 명의 남자가 서로 다툴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가진 팜므 파탈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심지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장애도 이야기를 부각하는 요소로 쓰였다.
이유정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낭만서사시의 소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최예장은 어떻게 된 거래? 거기에서 뭐라 그랬으면 약혼하기 되게 어려워질 텐데….”
“약혼을 무효로 할 수 있는 건가? 일단 반지는 서로 끼웠잖아. 약혼이 강제력은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들 눈치를 봐서라도 쉽게 되돌릴 수가 없을 텐데….”
“최예장이 허락했다는군. 이유정의 마음을 존중하겠다나.”
“허…. 성인군자라도 되나 보네.”
“이미 이유정의 마음은 돌아갔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노은하에게 뺏겼는데 최예장이 과연 뭘 할 수 있겠어? 그냥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이는 방법밖에 없는 거지.” “듣자하니까 최예장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던데. 그리고 입장표명은 최예장이 한 게 아니라 YH그룹에서 한 거라더라.”
한편으로 최예장에 대한 이야기는 극명하게 나뉘었다.
본의가 아니었더라도 그가 자신의 여자를 노은하에게 넘겨준 모습이 퍽이나 대인배적이었다는 것.
혹은 노은하에게 남성성에서 지고, 좋아하는 여자 하나도 지키지 못한 멍청이라는 것.
“근데 그거 아나?”
“뭘?” “최예장 걔, 두 번 빼앗겼잖아.”
“뭐?” “전 약혼자도 노은하와 결혼한 거, 기억 안 나?”
“”””아….””””
처음에야 두 가지 평가가 균등하게 존재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노은하와 최예장에게 얽힌 과거를 들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세간의 평가는 후자로 기울게 되었다.
이로써 최예장의 이미지는 심하게 타격을 받고 말았다.
“제길, 내가 먼저 좋아했었는데….”
“최예장 당했네.” “뭐? 너 뭐라고 했어!”
“최예장 당했다고!! 그러게 내가 그냥 다가가서 말이라도 걸어보라고 했잖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딴 사람이 채가지!”
일명 최예장 당했다.
오죽하면 정재계에서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그런 소리를 하기까지 했다.
그것이 알음알음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입에 담게 되었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
그로 인해 최예장은 대외활동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근데, 음…. 참 이해가 안 되네. 은 이미 결혼도 한 데다 약혼자도 있지 않았나? 그런데 또 약혼하겠다고?”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있기는 해도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니야? 사람들 미친 거 아니야? 노은하를 두고서 어떻게 낭만적이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거냐고.”
한편 노은하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은하에게는 연인이 둘이 있었고, 이유정까지 포함하게 되면 이제는 세 명이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중에 그들의 반응을 크게 나누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두 번째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세 번째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중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부류.
이후 중혼이 알게 모르게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혼은 법적으로 금지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노은하의 중혼에 꺼림칙함을 표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두 사람의 약혼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자격은 없었다.
중혼은 당사자 간의 문제였다.
따라서 두 사람의 약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은 노은하의 아내 한서현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도덕적으로 노은하의 행동을 옳지 못한다고 바라보더라도 거기에서 그칠 뿐이었다.
“─세상이 이따위인데, 노은하가 몇 명하고 결혼하든 무슨 상관이야? 나는 노은하가 하렘을 차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제발 우리 좀 잘 살게만 해줬으면 좋을 뿐인데. 그리고 노은하가 결혼 안 한다고, 노은하의 연인들이 우리한테 무슨 신경이라도 써줄 것 같아?”
반면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경우, 노은하가 자신들의 삶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도 했으며, 처음부터 자신과 노은하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노은하가 하렘을 차린 채무감을 느끼면서 그만큼 세상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계산적인 속셈도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나 정재계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리우스, 앨리스, 루미너스가 확실하게 동맹을 맺는 건가.” “결혼만큼 확실한 것은 없지.”
“”””…….””””
마지막으로 노은하의 행보를 크게 경계하는 부류들도 있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만을 보지 않았다.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의도까지도 파악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결론을 내리기로는, 노은하의 중혼은 굉장히 정치적이란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하렘이라는 껍데기를 벗겨보면.
노은하의 중혼은 심상치 않았다.
시리우스, 앨리스, 루미너스.
실질적으로 국내 경제를 주름잡는 세 개 그룹이 결코 배신할 수 없는 동맹을 맺은 셈이다.
심지어 노은하는 중구와 용산구를 관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녀의 총애를 받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덧붙여 십이좌 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였고, 미래가 가장 기대되는 3세대 플레이어들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었다.
“”””흠….””””
그래서 그들은 생각에 잠겼다.
허투루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대로 만약 이것이 다분히 정치적으로 계산된 결혼이라고 한다면─.
“”””─선녀정부가 수립된 이후로, 군주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이 나오는 건가.””””
“”””…….””””
노은하의 영향력이 커진다.
이후 세상은 군주를 자청하는 플레이어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 나라를 지배할 군주가 되기 위해 전쟁을 벌였고.
살아있는 신화 을 중심으로 뜻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모이면서 군주들의 야망은 덧없이 끝이 났다.
당시 가장 거대한 세력을 가졌던 어둠의 군주 백서진 또한 의 의지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리하여 어둠을 온존한 상태로, 이 나라는 마나관리기구를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세상에 의 기프트를 보유한 선녀가 나타났다.
과 살아있는 신화들 태반이 그녀를 옹립했고, 그때가 멸망 이후 비로소 세상이 수복된 때라고 할 수 있었다.
“”””…….””””
그리하여 모든 권력이 선녀에게로 집중될 수 있었다.
그것은 질서였다.
힘은 가진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기 위해 선녀를 옹립했고, 그렇게 지금의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군주라.””””
선녀를 중심으로 재편된 세상.
그 세상에 다시금 군주라 불리는, 선녀보다 강대한 영향력을 지니는 존재가 나타났다.
노은하.
혹은 군주를 자청할지 모르는 자.
몇몇 사람들은 노은하에게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주 일부였다.
대다수는 노은하의 하렘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흥밋거리로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세 명과 결혼한다니. 그거 버틸 수 있는 건가?” “노은하가 정하양과 약혼을 할 때, 이런 말이 나돌았었지. 이러다 설마 세 명째도 만드는 것 아니냐고. 허, 그게 진짜가 됐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되고, 또 세 번이 된다면 쉬워지는 거겠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늘어날지도 모를 일이야.”
“어디 그뿐인가. 쟁쟁한 그룹들이 자기 자식들을 두 번째, 세 번째로 들이민 꼴이라고. 이제 다른 데는 어떻게 생각하겠어?”
“뭐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그룹들이 ‘노은하에게 보내는 첩이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란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고서 자기네 자식들도 첩으로라도 들이려 로비를 벌이지 않겠어?”
“”””에이, 설마….””””
“노은하가 세 번째를 만든 이상, 다른 그룹들이 정략결혼을 위해서 첩 제안을 하는 것도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거지. 그리고 어디 두 번째가 어려운 거지, 노은하가 세 번째를 들이게 됐는데 네 번째, 다섯 번째를 들이는데 막 갈등하고 그러겠어?”
“”””…….””””
일명 하렘왕 노은하.
사람들은 알음알음 그런 별명으로 노은하를 부르게 되었다.
하렘왕이란 이미지가 워낙 강력해, ‘군주’라는 이름은 쉽게 잊혔다.
☆
세상에 공표하기는 했다고 하지만 공식적인 절차를 무시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은하는 가족들을 대동하고 루미너스그룹 사람들을 만났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도 결정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딸아이가 바란다니 어쩌겠습니까. 이제 그만 고개를 드시죠, 사돈.”
“”””…….””””
상견례 자리.
아버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표로 이정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정인은 한숨을 섞어서 답하며,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은하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이 자리까지 오면서 가족에게 워낙 쓴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러셨지.
대체 내가 몇 번을 고개 숙여야 내가 사고를 치지 않는 거냐고.
그때 은하는 말하지 못했다.
차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정하양과 약혼할 때,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은하가 이유정과 약혼을 하기로 말을 했을 때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다른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저희 애 간수 잘할게요. 그러니 유정이가 고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 어머니는 진지하게 고민하셨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일을 잘못해서, 아들이 바뀐 것 같다면서.
어머니는 상견례 자리가 아니라, 산부인과를 찾으려고 했었다.
그만큼 어머니가 은하에게 크나큰 실망을 했다는 뜻이었다.
당분간 은하는 어머니에게 죽도록 용서를 빌어야 할 판이었다.
“올케가 세 명이나 된다니….” “새언니가 세 명이 되는 거네?”
한편 은아와 은애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은아는 어머니와 같은 얼굴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남동생은 한 명인데 올케가 셋이나 생기는 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넋두리를 표현했더랬다.
누나 화는 어떻게 풀어주냐.
이젠 내가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 같던데….
은아와 얽힌 해프닝도 있었다.
언젠가 은아가 가위를 들고 왔다.
그때, 은하는 간담이 서늘했다.
‘너, 잘못했지?’
‘내가 잘못했어.’
‘잘라서 내가 데리고 살면 되는데, 올케들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고…. 너 자꾸 이럴 거야?’
‘아니야, 안 그럴게.’
‘너 그러면 진짜 싹둑 한다?’
‘…….’
은아가 짐짓 무서운 얼굴을 하며.
가위를 은하의 코앞으로 들이밀며 가위질하는 시늉을 보였다.
은하는 장난으로 넘길 수 없었고, 무조건 그녀가 하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은애는 소식을 듣고 좋아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었다.
‘─새언니들이 많이 생기면 좋지. 어차피 내가 제일 센데!’
‘그래…, 은애 네가 최강 해라.’
‘그리고 오빠는 새언니들보다 나를 훨씬 더 좋아하잖아. 그치?’
‘맞아, 은애 너밖에 없다.’
은애는 실실거렸다.
그러면서 마지막 물음에는 어딘가 강압적인 어조가 담겨 있었다.
노은아와 노은애 그리고 어머니.
한편 한서현과 정하양.
은하는 다섯 명의 여자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체감하고 있었다.
누구 한 명이 있을 때, 그 사람이 자신이 제일 예쁘냐고 물으면 즉각 긍정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다섯 명이 다 같이 만나서 내가 자기를 더 좋아한다느니 하는 말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 없어.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물론, 은하는 은애를 좋아했다.
여하튼 은하는 가족들 중 유일하게 은애의 위로를 받았고.
덕분에 이유정과 약혼하는 날짜가 정해질 때까지 어찌어찌 살아있을 수 있었다.
“─은하야.” “네, 아버님.”
그때 이정인이 은하를 불렀다.
은하는 자세를 바로 하고서 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정인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나는 너보다 예장이 걔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
“유정이가 예장이하고 결혼했다면, 적어도 세상 사람들이 유정이에게 뭐라고 선뜻 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네…, 세 번째 아내가 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거다.”
최예장이 더 낫다는 말에.
어머니, 은아, 은애의 시선이 일순 이정인을 꿰뚫어버릴 듯했다.
하지만 이정인의 말은 맞았다.
이유정이 최예장과 결혼을 한다면 얻는 것이 많았을 테지만, 은하하고 결혼하면 득보다 실이 많았다.
그러겠지. 세 번째 아내라는 말이 앞으로 영영 따라붙게 될 테니….
사람들의 태도는 가변적이다.
권력과 위치에 따라 변화한다.
지금이야 이유정에게 있는 장애가 낭만주의에 빠진 사람들에 의하여 좋게 해석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이유정에게 싫은 말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뒤에서 수군거릴 것이고, 그것이 퍼지면서 그녀에게도 들리게 되리라.
세 번째 아내라는 말은 그것만으로 얕잡아 보이는 위치였다.
“─그러니까 유정이를 잘 지켜라. 유정이를 잘 부탁한다.”
이정인이 고개를 숙였다.
이에 은하도 고개를 숙여 답했다.
“─제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은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짐했다.
이유정에게 뭐라 하는 놈은 반드시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물리적으로라도 죽여 버리겠다고.
그녀를 세 번째 아내로 맞이하면서 각오한 바였다.
그러고는 이유정을 바라보았다.
“─저도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아버님, 어머님, 올케, 새언니.”
그녀가 생긋 웃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가족들에게 인사하며, 상견례 자리는 화기애애하게 끝이 났다.
☆
약혼만 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일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클랜회관으로 돌아온 은하는 정하양이 살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내 기분도 좋지 않기는 하지만, 나보다는 하양이 마음을 더 신경을 써주면 어떻겠니.’
‘…응, 고마워.’
한서현의 귀띔이 있기도 했고.
은하는 자신이 이유정을 납치하고 그날부로 정하양이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정하양은 자신의 세 번째 약혼을 반기지 않는 것이다.
서현이가 예외에 속하는 거지…, 이게 당연한 반응인 거겠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자신을 피하는 그녀를 집요하게 추궁할 수도, 또한 설득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가 계속 자신을 피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양아, 나야.”
“빠빠….”
똑똑 하고.
은하는 문을 두드렸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히려 반응은 근처에 있는 방들이 보여주었다.
벌컥
끼이익
좌우로 문이 열리고.
진서나, 김민지, 차은우를 비롯해.
같은 층을 사용하고 있는 여자들이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이 은하를 노려보면서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보여주었다.
“…….”
넌 죽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그녀들은 입술을 뻥긋거려 뭐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쓰레기, 죽어 라고.
은하는 그녀들이 입술로 하는 말이 귀에 꽂히는 것 같았다.
[─이 바보야, 가서 납작 엎드려. 하양이가 징징거리든 뭐라고 하든, 그냥 네가 다 잘못했다고 하고.] [서나 역시 너밖에….] [너 위로해주는 거 아니거든? 나는 하양이 편이야.] […….] [넌 어차피 내가 위로하지 않아도 은아 언니나, 서현 언니나, 유정이나 은애가 해줄 거 아니니? 그러면서 내 위로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얌체짓이지!] [그래, 걱정해줘서 고맙다.] [흥, 뭐래…. 내가 걱정을 왜 하니? 문 열려 있어, 그냥 들어가봐.]진서나의 텔레파시도 날아들었다.
두 사람의 밀어.
아티펙트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은하는 정하양의 문을 다시 한 번 두드렸다.
“─들어갈게.”
정하양의 답은 들리지 않았지만.
은하는 허락도 받지 않고 그녀의 방에 들어가기로 했다.
진서나가 말했던 것처럼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하양아.”
“…….”
방이 어두웠다.
은하는 불을 켜려 전원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딱 울려 방을 은은히 밝히는 쪽을 택했다.
“밥은 먹었어?”
“…….”
정하양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은하가 보기도 싫다는 듯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이불을 덮어쓰고 있기까지 했다.
은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조심히 이불을 걷어냈다.
정하양은 저항하지 않았고.
은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 만지지 마….”
“미안, 만지고 싶어.”
“…왜 왔어….”
“너 보러 왔지.”
“거짓말.”
리본이 묶여 있지 않은 머리.
은하는 풀어진 머리칼을 만지며, 마침내 그녀의 답을 받아냈다.
그녀가 약하게 밀어냈다.
하지 말라고 말했으면서도 그래도 내버려두는 이유는 정하양의 말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머리를 만지지 말란 소리는 오히려 더 만져달라는 뜻이었고.
왜 왔냐는 말은 왜 이제야 왔냐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거짓말이란 대답은 그녀의 마음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약하게 밀어냈다는 건 강하게 끌어당겨달라는 것이다.
은하는 정하양의 언어를 이해하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 마….”
“싫어.”
정하양이 작게 몸부림쳤다.
그러나 정작 그가 완강히 거부하자 그녀가 몸부림을 멈췄다.
은하는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
비록 정하양이 이불을 두르고 있어 직접 그녀의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은하는 그녀를 안고 있는 상황에 더 집중했다.
“나 안 볼 거야?”
“네 얼굴 보기 싫어.”
“오늘 유정이랑 약혼했어.”
“…….”
“약혼, 허락해줘서 고마워.”
어떤 말을 해야 할 것인가.
은하는 지금까지 고민했고,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어느 대답도 정하양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은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난, 싫어….”
“…….”
“네가 나만 봐줬으면 좋겠어.”
정하양이 흐느낀다.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은하를 쳐다보지 않는다.
다만 은하의 품속에 얼굴을 박고 눈물을 흘린다.
은하는 정하양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의 등이 미약하게 떨렸다.
“내가 두 번째라서 싫어.”
“…….”
“첫 번째였으면 네가 하렘 같은 건 만들지 못하게 했을 텐데…. 내가 왜 두 번째인데, 고백도 내가 먼저 했는데….”
“미안해.”
그녀가 억눌려 있던 감정을 모두 토해냈다.
은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건네지 못했다.
정하양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으나.
그녀의 바람대로는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현 언니하고 대화하고, 내가 두 번째를 하기로 했을 때는 싫지만 납득했어…. 네가, 결국에는 하렘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기도 했어.” “…….”
“근데, 그래도 역시 나는 싫어…. 서현 언니까지 괜찮아. 그냥 우리만 좋아해주면 안 되는 거야? 응?”
정하양이 매달린다.
그녀가 은하를 올려다본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
얼굴이 야윈 것 같기도 했다.
은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녀가 기대하지 않는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넌…, 정말 이기적이야.”
정하양이 분노에 차서 말한다.
그럼에도 정하양은 은하의 품에서 벗어나는 게 아닌, 그의 품속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행동을 택했다.
절대,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그녀가 은하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자신의 존재를 계속해 표현했다.
“하양아, 우리가 아카데미에 처음 입학했을 때 기억해?”
그때 은하는 불쑥 화제를 바꿨다.
정하양은 숨소리만 거칠게 낼 뿐,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녀가 은하의 품속에서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였다.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031기 발대식을 준비하던 때였어. 그때 내가 말했을 거야.”
“…….”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꽤 시간이 흘렀다.
은하는 중등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이유정을 찾지 못하고 정신을 반쯤 놓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정하양이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올렸다.
은하는 정하양과 눈을 마주쳤다.
“그 사람이…, 유정이야?”
“응, 맞아. 너는 믿지 못하겠지만,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뭐라고 설득해야 좋을까.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은하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다만 은하는 자신이 감춘 마음을 그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은 많은 것을 말하지 못해.” “…….”
“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게 다 끝나면 말해줄게. 근데 나는 그때─.”
노은하의 진심.
정하양이 귀를 기울이고.
은하는 그녀의 머리칼을 넘겨주며 그녀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은하는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네가 날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널 왜 무서워해….”
정하양이 고개를 젓는다.
은하는 소리 없이 웃었다.
“─약속해. 꼭…, 말해줘. 유정이랑 너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응, 그때까지 기다려줘.”
정하양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은하를 가엾이 여기며 그의 슬픔에 동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은하는 기분이 누그러진 그녀를 보고 안도했다.
“삐삐!”
그날, 불닭이가 혼자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날아가고.
두 사람은 서로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동안 쌓아온 유대를 강조했다.
그리고 서로 마음을 확인하듯이, 애틋하고 깊은 밤을 보냈다.
☆
이유정의 약혼이 있고 얼마 후.
앨리스그룹은 노은하와 정하양의 결혼을 앞당기기로 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