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41
세종 클랜로드가 사임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나회로가 엉망이 되면서 마법을 발현할 수 없는 몸이 된 건 물론, 격심한 PTSD를 겪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그걸 가지고 몬스터의 소행이란 소리를 해대고…. 어처구니가 없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지.”
삼라 클랜로드 총은주.
그녀는 소식을 접하고 혀를 찼다.
목소리에서 불쾌함이 묻어나왔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종클랜은 광진구에 있었고.
그 광진구를 관할하는 클랜이 바로 삼라클랜이었다.
그러니 삼라 클랜로드의 입장에서 자신의 휘하에 있는 사람이 폐인이 되고 말았다는 소식을 무신경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뻔한 수작이나 쓰고, 도대체 누가 벌인 짓이지?”
상황은 명백했다.
몬스터는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다.
그럼에도 세종 클랜로드는 정신과 마나 회로에 이상을 입은 것은 빼고 멀쩡히 살아남았다.
몬스터의 소행일 리가 없었다.
인간의 소행이었다.
더군다나 세종 클랜로드의 정신에 강력한 암시를 걸어 입을 다물게 할 실력의 소유자.
나아가 대놓고서 이런 일을 벌일 뒷배경을 가진 사람.
이에 총은주는 생각에 잠겼다.
“…….”
그녀의 생각은 이 사건의 기저에 깔려 있을 ‘목적’으로 향했다.
가능성은 여러 개가 나왔다.
그중 유력한 것을 뽑자면 세 가지.
하나, 단순한 내부다툼이다.
세종클랜의 관계자들이 작당해서, 클랜로드를 갈아치우기 위해 벌인 짓이다.
그렇다면 세종클랜이 이 일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게 이해돼.
실제로 세종클랜에서는 삼라클랜에 클랜로드가 새로 바뀌었다는 공문을 보내오기만 했다.
그밖에 반응은 없었다.
세종클랜은 자체적으로 묻어두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리라.
그러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하나는─.
“─삼라클랜을 약화시키려는 건가.”
삼라클랜이 광진구를 안정적으로 차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삼라그룹이 재계 10위로 오르면서 후원 규모가 대폭적으로 상승했고, 그 돈으로 광진구의 유력 클랜들을 회유하는 정책을 펼친 덕분이다.
그중 세종클랜은 회유된 클랜 중 하나였고, 한때는 광진구를 관할로 두기도 했을 정도로 강성했다.
그런 클랜이 우방으로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우방을 겨냥했다.
우방을 약화시키면서 장기적으로 삼라클랜이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을 빼앗으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했다.
그렇다면 적은 굉장히 치밀하고, 가늠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많게는 광진구에서 삼라클랜에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클랜들이 될 수도 있어.
클랜전은 벌일 수 없는 상황이니, 이런 식으로 삼라클랜의 우방들을 제거하겠다는 건가.
총은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적을 가늠하는 것도 일이었고.
기껏 정리해놓은 광진구에서 다시 전쟁을 벌일 생각을 하는 건 굉장한 인력 낭비였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하나는 노은하에게 있었다.
듣자하니 세종 클랜로드의 아들이 판도라 클랜로드의 여동생과 다툼을 벌였다고 했어.
그래서 판도라 클랜로드가 미쳐서 세종 클랜로드를 폐인으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는 거지.
이 역시 가능성은 낮았다.
그러면서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총은주가 그동안 지켜본 노은하는 그럴 만한 인물이기도 했다.
“때에 따라서는…. 한 없이 오만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녀석이야.”
그녀는 노은하에 대해 잘 알았다.
한때는 그가 아카데미에 재학할 때 영입하려고 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의 성품이 서울 침공에서 보여준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노은하라면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에게는 지금도 계속 민심이 따르고 있어.
과연 그런 사람이 이런 짓을 벌여 어떤 이득을 얻는다는 거지?
한순간의 복수심? 굳이?
그럴 리 없을 것이다.
두 가지 가정이 공존했다.
그래서 그녀는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총은주는 한숨을 쉬었다.
세종클랜 내부에서 다툼이 일어난 사건이기만을 바라고 싶지만 그래도 영 찜찜해.
여하튼 섣불리 넘어갈 수 없었다.
총은주는 클랜 내 정보망을 동원해 다각적으로 분석하기로 했다.
당연히 어둠에도 물어보아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어둠이 관여했을 게 분명한 일이었다.
적당한 대가만 지불하기라도 하면 알려줄 것이다.
“이게 무슨….”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엇나갔다.
그녀가 알고 있는 루트를 이용해 날아온 답변은 두 부류였다.
「─우리도 자세한 정황을 파악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하지 마라.」
하나는 모르겠다는 반응.
그녀가 기존에 사용하던 루트에서 들어온 답변이었다.
총은주는 어둠도 파악하지 못하는 어둠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만큼 어둠에 들키지 않을 만큼 용의주도하다는 것이었다.
아니면 어둠이 무능하거나.
한편 다른 하나의 답변은 그녀의 루트를 역추적해 들어온 것이었다.
즉, 이 관리하는 중추가 보냈다는 뜻이었다.
「─묻어라.」
중추가 보낸 답변은 짧았고.
총은주의 얼굴은 구겨졌다.
사실상 어둠의 중추가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었으며.
이 배후를 추적하려는 총은주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할 수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뒷배가 아주 탄탄한 모양이구나.”
그러나 총은주는 이 답변으로 대략 정답을 하나 제거할 수 있었다.
어둠은 어느 한쪽의 세력에 힘을 실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에게 입을 다물란 것은 그녀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가정은 아니다.
광진구에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번 사건은─.
“─세종클랜의 내부 사건이거나, 아니면 판도라 클랜로드의 개인적인 화풀이라거나 하는 거로구나.”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총은주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후자라면 상당히 불쾌할 것 같다.
판도라 클랜로드가 관할을 침범해, 자신의 수족을 잘라냈다는 거니까.
☆
사건은 거의 일단락되었다.
노은애를 괴롭힌 사람들은 모두가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겪었는지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그들의 사고관이 변화했다.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려 하지 않게 되었다.
혹은 타인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완전히 거부하게 되었다.
무의식에 기재된 공포 때문이었다.
교사들은 처벌 대기 중이고.
학생들은 모두 처벌됐으니….
이제 신경 쓸 건 은애밖에 없겠네.
이밖에 많은 일이 있었다.
가령 세종 클랜로드가 사임하면서 일어날 변화에 대처해야 했다.
이에 은하는 이강혁에게 명령하여 세종클랜이 적당히 입을 다물게 할 조치를 취하라고 했다.
알음알음 골목길의 왕으로 불리는 이강혁은 이런 면에서 발이 넓었다.
덕분에 은하는 세종클랜의 의심을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세종 클랜로드에게도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마나 회로가 부서졌으니까 앞으로 플레이어 생활은 하지 못하겠고….
그런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도록 지원해줘야지.
유도준의 도움을 받아.
은하는 자금의 출처를 세탁해서는 세종 클랜로드의 가정을 지원하도록 했다.
2인 가정이 적당히 먹고 살도록 평생 지원할 계획이었다.
굶어 죽게 할 수는 없지.
딱 죽지 않게 살려둬야지.
최저한의 생계만 보장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아프게 될 때에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삶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죽지 못해 살아가게 될 테니까.
한편 박성호를 비롯해 가해자들은 소년원으로 보내지지 않았다.
사회 봉사활동 시간이 늘어났고, 강제 전학이나 퇴학으로 결정됐다.
마지막에 은하의 아버지가 결정을 망설였기 때문이다.
은애가 이렇게 된 건 슬프지만…. 그놈들의 인생을 파탄내고 싶지는 않다고 하셨지.
은하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가족들은 모두 그의 말을 따랐고.
무엇보다도 은애 역시 학생들에게 심한 처벌을 바라지 않았다.
은하도 용인했다.
그런 한편 아버지가 어느 날 따로 은하를 불러낸 일이 있었다.
‘─그래서 속이 편하디.’
‘…아니. 그냥 그래.’
‘원래 그런 법이야. 복수를 한다고 한이 사라지는 건 아닌 법이지.’
아버지는 눈치챘으리라.
시리우스그룹의 비서실장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아버지는 은하를 불러내 직접적으로 그가 벌인 행위에 대해 묻지 않았다.
실망하지도 않았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다만 충고할 따름이었다.
‘─은하야.’
‘어, 아빠.’
‘결혼도 했으면 이제 아버지라고 불러야지. 아빠가 뭐냐, 아빠가.’
‘…네, 아버지.’
‘세상에 평생 가는 권력이란 없어.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젠가 내가 가진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게 되는 법이야.’
‘…….’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지금이야 올라가기만 하면 되겠지만 언젠가 정상에 서게 되고 내려오는 날만을 기다리게 될 거다.’
갤럭시그룹의 초대 회장 최윤한이 꺼낸 말과 비슷했다.
그때 은하는 자세를 바로 했고.
아버지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나는 네가 권력의 칼을 휘두를 때, 네가 언젠가 그곳에서 내려올 미래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
‘네 권력의 칼에 의해 목이 날아갈 사람의 미래가 언제가 너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일이야. 그러니 꼭, 칼을 휘두르기 이전에는 심도 있게 생각했으면 해.’
아버지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칼잡이였다.
사용하는 칼이 달랐을 뿐이다.
필시 아버지 역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죽였으리라.
은하는 그때 아버지에게서 묻어난 회한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때 은하는 고개를 숙였었다.
‘─새겨들을게요, 아버지.” ‘그래, 그거면 됐다.’
반드시 그리하겠노라고.
은하는 약속하지 못했다.
다만 염두에 두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은하의 생각을 읽었어도 애써 강요하려고 하지 않았다.
두 부자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무슨 생각해?”
“…네 생각.”
“치, 거짓말.”
“그냥…. 이번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이내 은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정하양이 손을 잡은 것이다.
그녀가 몸을 기대어왔다.
은하는 그녀의 온기를 느끼면서, 꽃잎이 휘날리는 광경을 보았다.
아직 꽃이 지는 때가 아니어서인지 정말 예쁘네.
경기도 일산호수공원.
이날, 은하는 은애에게 바깥바람을 쐬어주기 위해 나섰다.
정하양, 선미예도 함께했다.
현재 은애는 선미예와 손을 붙잡고 앞서 걷고 있는 중이었다.
“저기 바위에 오리 같이 생긴 새도 앉아 있네.”
“후루티 새야. 방금 저 애가 미예 네 말을 듣고서 삐졌다고 하는데? 어떻게 구분을 못해도 오리로 볼 수 있냐고.”
두 사람이 호수를 보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은하는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절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약이긴 한가 보네.
은애도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자신의 기프트를 고백한 이후로.
노은애는 대인기피증 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은하에게는 더했다.
내 감정을 읽었기 때문이겠지.
많이 무서울 거야.
은하는 그녀를 이해했고.
되도록 은애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에 웬일인지 그녀가 먼저 은하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러고는 일산호수공원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은하는 당연히 흔쾌히 응했고.
그렇게 오늘 이곳에 나온 것이다.
그러는 한편─.
“─은애, 이대로 둬도 괜찮겠지?”
“괜찮지 않을까?”
은하는 그녀가 걱정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은애는 학교에 가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의 권위를 듣고 깜짝 놀란 중학교 이사장이 몸소 찾아와서는 사정을 해도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타협을 한 결과.
은애는 마음의 병을 이유로 들어 무기한 휴학을 받을 수 있었다.
다행이면서도 불안했다.
은애가 이대로 방 안에 틀어박혀서 살게 될까봐.
아니면 사람들을 모두 멀리하면서 동식물과 어울려 살게 될까봐.
그러자 정하양이 생긋 웃었다.
“학교야 가고 싶을 때 가면 되지. 꼭 몇 살에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학교 밖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도 있는 법이고.”
“그렇긴 하지. 괜히 마음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나가서 심력을 소모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치.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은애는 정해진 커리큘럼에 맞춰서 갑갑하게 살 필요도 없잖아.”
“삐삐빠 빠빠빠 뿌뿌뿌!”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하양의 말이 맞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은애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해도 물심양면 지원해줄 것이다.
애초 은애가 돈이 많았다.
은랑화를 키우고 있는 것만으로도 평생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녀는 세상의 잣대에 그리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게. 하양이 네 말을 들으니까, 그냥 은애가 하고 싶은 대로 편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은애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은하는 다시금 다짐했다.
그러는 한편 무서웠다.
은애가 내 감정을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다고 하니 앞으로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게 좋겠지.
자칫 잘못해서 내 감정이 은애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일이고….
은애는 이런 자신을 사랑해줄까.
은하는 두려웠다.
하지만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저만치에서 은애가 그를 불렀다.
“─오빠!! 우리 사진 찍어줘!”
그의 마음을 파악하고 있던 듯이.
별안간 그녀가 큰 소리를 내어서 은하의 시선을 환기시킨 것이다.
“그래, 알았어.”
환한 미소를 짓는 여동생.
은하는 금세 고민을 날려버렸다.
그러고 스마트폰으로 포즈를 잡은 은애와 선미예를 찍었다.
두 사람이 화면에 예쁘게 담겼다.
은하가 만족해할 때쯤─.
─화아악
일순 거센 바람이 불었다.
꽃잎이 흩날리며 시야를 가렸다.
불과 몇 초.
그리고 그는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서 있는 플레이어를 발견했다.
“””…….”””
가면을 쓴 플레이어.
후드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동물의 귀는 감추지 못했다.
은하와 정하양은 눈앞에서 나타난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다.
어둠 쪽 사람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아인이 텔레파시를 보냈다.
텔레파시는 은하에게만 전달됐다.
[─의 전언입니다.]이란 소리에.
은하는 흠칫했다.
반면 아인은 담담했다.
[이번에는 막아주지만 다음부터는 멋대로 행동하지 마라.]의 경고.
은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자신이 벌인 행적이 백서진의 눈에 들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만큼 대놓고 움직였으니까.
그리고 또한 예상했다.
내가 선녀의 편에 있는 한, 그리고 선녀정부에게 이득이 되는 한.
백서진 선생님은 나를 쳐낼 수가 없을 거야.
백서진은 묵인할 것이라고.
자신에게는 아직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은하는 백서진의 경고를 들으면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백서진의 말은 아직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 나라의 어둠은 하나면 된다. 내가 언제까지 용인한다고 자꾸만 내 영역을 침범하려고 하지 마라.]“…….”
이번에는 강도 높은 경고였다.
백서진은 은하가 뒷골목의 세력을 규합해 어둠처럼 사용하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 실력이 녹슬었다고 하지만 마냥 녹슨 건 아닌 모양이네.
아니면 그때 이후 민감해진 건가.
재작년에 백서진에게 아마겟돈에 대해 물은 이후로.
은하는 독자적으로 자신의 정보망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백서진의 시선에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당분간 자중하라고 해야겠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없었던 걸로 할 수도 없고.
소극적인 동의의 뜻으로.
은하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은 그것을 알아본 듯했다.
[─이상입니다.]그 말을 남기고 아인이 사라졌다.
그제야 일대에 순간 내려앉았던, 얼어붙은 분위기가 가셨다.
“은하야…, 아까 그 사람이 너한테 뭐라고 한 거야?”
“너 잘 대해주래.”
“장난치지 말고.” “…나 보고 조심하라네.”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었다.
은하는 정하양에게 에둘러 말하며, 은애와 선미예에게 다가갔다.
☆
세종 클랜로드의 사임.
광진구의 소규모 클랜에서 일어난 사건은 세상의 이목을 끌지 않았다.
그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클랜 내부다툼이야 비일비재하고, 세종 클랜로드가 나름 명성을 지닌 플레이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도라 클랜로드는 무모하군.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자기 눈 밖에 난 사람은 가차 없이 없애버리는 성향인 건가.”
선우화령.
마나관리기구의 감시국장인 그는 이 사건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마나관리기구가 지켜보고 있다.
다만 선우화령이 이 사건의 주범이 노은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그가 어둠의 실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까지 영웅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
선우화령은 흠 소리를 냈다.
그는 노은하에 대해 생각했다. 노은하.
그는 위험한 사람이었다.
군주들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고, 살아있는 신화들이 세상을 평정해, 선녀정부가 수립된 세상.
그는 그런 세상에 다시금 군주란 위명이 울리게 만들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아니, 가능성이 아니라 ‘위험성’.
재작년 서울 재앙 이후 노은하는 용산구와 중구를 완전히 흡수했다.
삼라클랜도 몇 년에 걸쳐 이뤄낸 지역 안정화 작업을, 신생 클랜이 고작 몇 개월만으로 완수했다는 건 놀랄 일이지.
용산구와 중구는 현재 노은하에게 광적인 추종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이 당장 마나관리기구보다 판도라클랜을 더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서울 침공 이후 노은하에게 계속 민심이 따르고 있었다.
민심이 천심이었다.
만약 노은하가 마음만 먹는다면, 두 지역구를 복속시키는 것은 물론 다시금 군주들의 시대를 개막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민심이 있었고 또 그럴 만한 무력과 무엇보다─.
─그룹들의 후원도 있지.
특정 종교를 만들기도 했고.
시리우스, 앨리스, 루미너스.
그리고 영원, 동해 등.
또 은하신교.
탄탄한 배경이 있었다.
이쯤 되면 선우화령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노은하가 의도적으로 정략결혼을 맺은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노은하가 어둠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움직여 이 일을 주도했다. 즉, 독자적인 어둠을 만들려 하고 있다라….”
그것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면’.
선우화령은 이번 일을 통해 그가 어둠과 비슷한 세력을 부리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
아직은 어둠에 비할 바가 안 되나 해당 세력이 성장하고 있는 속도는 무척이나 무서웠다.
골목길의 왕, 이강혁.
그들은 감히 을 따라 그들의 우두머리를 그런 이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강혁 이 녀석은 제거하는 게 낫다.”
은 판단했다.
또 하나의 어둠은 필요치 않다.
이 세상에 어둠은 하나면 된다.
그림자정부는 하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먼 옛날에 자신 외의 모든 군주들을 물리친 게 아니었던가.
그로 인해 세상의 인정을 받고.
살아있는 신화로서 대우를 받으며.
어둠을 온전할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 또 하나의 어둠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사람을 심기도 어렵군.
사람을 심어놓는 족족 제거되니…. 그쪽에 실력 좋은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이내 은 끙 소리를 냈다.
그들은 단순한 골목길 패거리라고 볼 수가 없었다.
이강혁의 수완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수완인지.
해당 세력을 파헤칠 만한 흔적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았다.
솜씨가 좋은 누군가가 흔적 자체를 없애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없앨 만하다.
놈들은 여러 조직으로 이어져 있어 마음만 먹으면 갈기갈기 찢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야.
거기에 이강혁이 목을 매달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지닌 여자를 보내서 놈을 암살해버리면….
세뇌나 유혹에 능한 기프트를 지닌 여성으로 이강혁의 마음을 홀리고.
중요한 때에 이강혁을 암살한다.
그렇게 세력을 해체시킨다.
그리고 그들을 어둠으로 끌어들여 하나의 어둠으로 통합한다.
은 불현듯 떠올린 계책에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한 번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러던 그때─.
[─날세.]“네, 장관님.”
백서진의 연락이 도착했다.
순간 선우화령은 움찔했다.
직감이 고했다.
백서진에게, 아니, 에게 자신의 생각이 간파당하고 말았다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백서진의 용건은 간단했다.
[그냥 내버려두게.]“…네, 알겠습니다.”
백서진의 성정은 잘 안다.
선우화령은 군말을 표하지 않았다.
전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선우화령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군. 이번 일은 이대로 묻어버려야겠군.”
노인은 나이가 많았다.
그런 노인이 지금까지 오랫동안, 어둠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물러날 때를 알았기 때문이다.
☆
은애 누나가 펑펑 울었다.
어베니어는 그녀가 그리 운 것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서글펐다.
“─좋아, 결심했어!”
그렇다고 무력하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번 일로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처음에야 은하 형의 전속이 되어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그건 부모님의 꿈이었고.
어베니어의 꿈은 그것보다도 더욱 원대했다.
“내가 은애 누나랑 다른 사람들이 울지 않게 해줄 거야! 그런 사람들, 내가 전부 혼내줄 거야.”
어베니어, 13살.
플레이어 아카데미 입학을 꿈꾸는 그는 강한 플레이어에서 ‘훨씬 더’ 강한 플레이어가 되기로 했다.
그만큼 확고한 마음이 그의 마법을 공고히 다진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742(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