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44
이리야의 사후.
은하는 마나교에 그녀를 대신하는 성녀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만큼 이리야의 이미지가 워낙에 강해서 알려지지 않았다는 거겠지.
내가 기억할 정도로 이렇다 하는 행보를 보인 적도 없었고….
회귀 전에 마나교의 새로운 성녀는 지극히 평범했다.
치유마법에 능했다고 하지만 그뿐.
그마저 마나신의 계시를 듣는다는 이리야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 데다가 한순간에 영등포구에 구울 사태를 일으킨 신도림이 워낙 이미지가 강렬한 사람이었으니까.
신도림의 마법에 휘말려 죽었다는 성녀에게 관심이 갈 리가….
그런데 이번 삶에서는 다른 사람이 성녀가 되었다.
신도림의 여동생 신연수.
미래가 바뀐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그녀에게 주목하던 은하는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층은 마나교에서 허가받은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에요. 마나학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 죄송해요. 저희가 돌아다니다 그만 길을 잃어서 여기까지 헤매게 됐더라고요. 얘가 길치거든요.”
신연수는 마나를 다루는 방면에서 뛰어난 면모를 선보였다.
최대한 기척을 감추고 있던 은하와 김민지를 쉽사리 발견한 것이다.
다행히 김민지가 상황을 해명하며 그녀의 의심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은하는 길치로 몰리고 말았지만.
“이 길치야. 그러게 내가 이쪽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잖아!” “…미안하게 됐다.”
찰싹 하고.
김민지가 이때가 기회라는 것처럼 은하의 등을 세게 때렸다.
은하는 항의하지 못하고 김민지의 연기에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는 거라고 했었죠? 저도 마침 나가는 길이니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성녀님. 제가 이분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괜찮아요. 그리고 신관님께서는 다른 일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러니 제가 인도할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한편 신연수는 의심하지 않았다.
김민지의 연기를 믿는 듯했다.
신연수가 친절한 얼굴을 하고서는 조금 전, 봉구래에게 세뇌를 당했던 사람을 보냈다.
세뇌를 당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당하고 있었는지도 자각을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자, 가요. 여기가 워낙에 복잡해서 길을 잃는 일이 잦기는 해요.”
이내 신연수가 안내했다.
은하, 김민지, 봉구래 세 사람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사이 그녀와 어느 정도 가까워진 김민지가 의도를 숨기고 질문했다.
신연수는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아까 마나학을 연구하는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고 했는데, 마나교랑 마나학이랑 무슨 관계인가요?”
“학문이 발달해 종교로 거듭난 게 마나교거든요. 그러다 보니 해석이 어려운 교리는 마나학을 연구해서 풀기도 한답니다. 이리야 성녀님은 마나신의 계시를 받았다지만, 저는 계시를 받지 못하니 마나학을 통해 해석할 수밖에 없기도 해서요.”
“네? 성녀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아닌가요?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요.” “보통 그런 식으로 알고 있는데…. 조금 달라요. 성녀란 교단 내에서 교주님과 부교주님 다음으로 가장 마나신의 뜻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사람을 뜻한답니다.”
“어머, 그런 거였군요. 저는 당연히 교단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성녀로 뽑는지 알았지 뭐예요.”
“네? 그런 게 아니에요. 전 하나도 예쁘지 않잖아요.”
김민지와 봉구래가 합을 맞추고.
신연수가 겸연쩍어하며 웃었다.
그녀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냥 선하고 순한 사람이네.
성녀라는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고.
이리야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평범하고, 소박하고, 소탈해 보이는 이미지였다.
말없이 세 사람을 따라가던 은하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니까 제가 성녀가 된 이유는 특별한 뭔가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닌 신의 뜻을 올바르게 해석해서예요. 저는 원래 마나학을 깊이 연구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는걸요. 그러다 이리야 성녀님이 타락하시게 되면서 성녀로 뽑힌 거고요.” “””…….”””
“미사를 드리려고 오는 신도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일 텐데, 여러분은 아직 마나교에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보네요.”
“네, 오늘 입단했어요. 저 친구가 마음이 많이 아프거든요.”
“맞아요. 우리 자기가 마음을 많이 다쳤거든요.”
“아…. 혹시 서울 침공에서….”
“네, 맞아요. 남동생은 실종됐고, 가족들은 그만….”
“괜찮아요. 마나신의 품에서 분명 안식을 맞이했을 거예요.”
계단을 오른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일행은 금세 1층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한편 신연수는 김민지와 봉구래의 이야기를 듣고 은하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안타까워하는 얼굴을 했다.
물론 은하는 두 사람이 제멋대로 지어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혀를 내둘렀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맞춰주기로 했다.
“…남동생은 제발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저도 도울 수 있는 대로 신도님을 돕도록 할게요. 저도 서울 침공으로 오빠를 떠나보냈는걸요. 이해해요.”
“네, 감사합니다. 성녀님.”
있지도 않은 남동생을 판다.
대신 성녀의 동정을 얻었다.
그녀가 그의 양손을 잡았다.
“남동생의 이름을 가르쳐주세요. 신도님처럼 가족을 잃고 마나교에 입단하는 사람들도 많아서요. 혹시 명부에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아…. 장발장이요.”
“장발장…. 좋은 이름이네요.” “…네, 좋은 이름이죠.”
“신도님의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장…동건이요.” “장동건…. 돌림자를 쓰지는 않는 모양이네요. 네, 가서 찾아볼게요.”
신연수를 속여 미안했지만.
은하는 되는 대로 말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이름을 읊으며 기억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녀가 다른 곳으로 떠나고─.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고 세상에 장동건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냐?”
“웃지 마라.”
“내가 거울 빌려줄까?”
“아, 놀리지 말라고.”
“응, 아이스크림 녹는 소리 아주 잘 들었어!”
그때까지 웃음을 참았던 김민지가 빵 하고 터졌다.
은하는 큭 소리를 냈다.
☆
마나교에 잠입하면서 얻은 소득은 성녀 신연수가 어떤 사람인 것인지 알게 되었다는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는 정보가 부족했다.
어쩔 수 없지.
이십오한테 부탁하는 수밖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은하는 어둠의 시선을 고려하면서 이십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렇게 소극적인 조사로 얻은 것은 마나교가 정기적으로 마나학에 대한 서적을 구입하고 있다는 것뿐.
이외 의식용 도구와 반혼제에 쓰일 재료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만으로도 판단하기가 힘들어.
무언가 꺼림칙한데 확증이 없어.
겉보기에는 수상한 게 없었다.
그들이 무언가 음모하고 있을 거란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였다.
다만 순수하게 마나학을 탐구하고, 순수하게 영혼을 기리는 반혼제를 개최하는 것뿐이다.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은하는 그렇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 눈으로 반혼제를 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겠어.”
이윽고 긴 고민 끝에.
은하는 방침을 정했다.
반혼제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이상, 반혼제에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
유비무환이라고 했다.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최악을 가정하고 움직여야 해.
회귀 전처럼 영등포구가 반파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해.
그러니 혼자 움직일 수는 없다.
클랜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클랜 전력을 관할구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보내려면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했다.
자칫 영등포구에 위치한 클랜들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일이었다.
나아가 반혼제에 참여할 수가 있는 명분 역시 필요했다.
때마침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다.
─마나교에서 영등포구 클랜들에게 반혼제 때 호위를 의뢰했네.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면 마나 또한 이동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편재한다.
이에 대규모 집단행동을 할 때는 일정 수의 플레이어를 고용하는 게 의무화되어 있었다.
마나교도 선녀정부의 법 아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나교가 영등포구의 클랜들에게 의뢰해놓은 상태였다.
그러니 우리 클랜원들을 그쪽으로 차출하는 형식으로 해서 반혼제에 참가하면 되겠네.
더욱이 마나교는 판도라 클랜에게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고 있었다.
타 클랜으로 포장해 활동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은하는 영등포구의 클랜을 물색했다.
판도라클랜과 협조할 수 있으며, 성향이 맞는 클랜을 찾았다.
때마침 하나가 있었다.
당산클랜.
그들의 이름을 빌리기로 했다.
“명목상 당산클랜의 이름을 빌려서 반혼제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거야. 마나교에서도 이렇게 되면 대놓고 거부할 수 없어지겠지.”
후에 은하는 그러지 않아도 바쁜데 일거리를 가지고 왔다며 클랜원들의 욕을 먹었다고 한다.
☆
한편 은하가 반혼제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 훈련도 빼먹지 않았다.
─도플갱어
작년, 아카데미에서 황진희로부터 어슴푸레한 조언을 받게 되면서.
그는 소우주를 대우주로 만든다는 발상을 생각하게 되었다.
“불닭이를 장비한 상태로 사용하면 분신체도 불닭이를 장비하는 상태로 나타나는 건가 보네.”
“그렇기는 한데 장비된 불닭이를 환수로 바꿀 수 없는 모양이네요.”
판도라 클랜회관 지하 4층 훈련장.
은하는 도플갱어로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냈다.
불꽃의 망토를 두른 노은하.
그리고 분신체 장발장.
두 사람은 서로의 상태를 살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이이익!
“불닭이가 뭐래요?”
“…하늘 아래 불닭이는 하나밖에 있을 수 없다는데.”
“무시해도 되는 소리네요.”
피이이익!!
“불닭이가 뭐래요?”
“그냥 무시해도 되는 소리야.”
서운하다는 망토를 무시하며.
두 사람은 이내 훈련을 시작했다.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 사이다 보니 길게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은하는 체내 마나를 발현했다.
내가 마나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 외부 마나를 내 마나로 만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걸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 세상을 그대로 물들인다는 것.
체내 마나에 반응하여 외부 마나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활성화됐다.
그것들이 체내 마나로 모였다.
은하는 뛰어난 컨트롤로 그것들을 자신의 마나로 탈바꿈시켰다.
이에 은하의 색으로 물든 마나가 그의 주변을 잠식하게 되었다.
화르륵!
불닭이의 힘으로.
세상이 활활 타오른다.
마나를 불꽃으로 치환한 것이다.
“여기에서 막힌 상태야.”
“이래선 그냥 불바다로 만든 거나 다름이 없는 상태네요.”
“하지만 이 공간에 위치한 마나는 전부 내 마나로 이루어져 있어.” “그렇다면 이 공간에 있는 상대는 외부 마나의 도움을 기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겠네요. 체내 마나로만 마법을 사용해야겠네요.”
“아니면 내 컨트롤을 빼앗거나.”
“마나가 공간을 아우를 정도이니, 컨트롤을 지키는 것도 일이겠어요. 그래도 어딘가에 반드시 구멍이 나 있을 거예요. 공간을 완벽히 자신의 컨트롤 아래 두는 것은 힘들겠죠.”
“맞는 말이야. 그나마 한 사람이 컨트롤을 빼앗는 거라면 막겠지만, 사람 수가 늘어나다 보면 내 힘으로 막을 수 없어질 거야.”
은하는 장발장의 말을 긍정했다.
이래서는 단지 공간을 장악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별다른 이점이 없었다.
이래서는 컨트롤만 잡아먹으면서 상대에게 쉽게 컨트롤을 빼앗기게 될 판이었다.
그래도 이론적으로는 이점이 많아.
공간을 지배하는 마나를 상대에게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자신은 마나 소모 없이 마법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상상력이 그대로 공간 속에 구현되게 되리라.
그것은 곧─.
“─그렇게 된다면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겠네요. 어떻게 본다면…, 이 공간은 자신이 창조해낸 세계와 다름없는 거니까요.”
전지전능한 신과 같아질 것이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나 할 수 있는 소리였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장발장이 간섭하자, 공간이 쉽사리 흔들리고 말았다.
통제와 지배가 완벽하지 않았다.
인간의 그릇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완벽히 장악할 방법이 없을까?
그럼에도 은하는 고민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장악한 공간은 자신의 세계, 곧 소우주였다.
그리고 장발장은 자신의 소우주로 은하의 소우주에 영향을 끼쳤다.
은하의 소우주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소우주는 상호 간섭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리라.
님의 말이 맞아. 세상이란 그렇게 소우주끼리 상호 간섭하면서 만들어진 걸 거야.
은하는 황진희의 조언을 돌이켰다.
그리고 소우주로 소우주를 잠식해 대우주가 된다는 대목에 이르렀다.
“…상호 간섭한다는 게 좋지 않은 의미라고만 생각할 수 없어.”
“서로 절차탁마하는 관계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하면서 서로를 보다 증진시키는 거죠.”
“이 공간에 있는 사람은 나를 빼고 모두 ‘적’이라고 할 수 없어.” “아군도 들어와 있을 수 있겠죠.”
“그럼 ‘적’이 내 컨트롤을 빼앗아 이 공간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그럼 ‘아군’은 컨트롤을 보조하며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거네요.”
“”…….””
한 사람의 소우주.
그것을 다른 사람의 소우주를 통해 존재 자체를 탄탄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여러 사람의 의지가 모인 소우주는 대우주가 되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화륵!
은하는 다시금 공간을 장악했다.
그리고 장발장은 조금 전과 달리 컨트롤이 빈약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았다.
본체와 분신체의 관계 때문인지.
두 사람의 마나는 상성이 좋았다.
별다른 무리 없이 장발장의 의지가 녹아든 마나가 빈틈을 보완했다.
그러자─.
───!!!!
순간적으로 불길이 거세졌다.
어디 그뿐인가.
불길의 색이 더더욱 진해졌으며.
은하의 불꽃으로도 건재했던 벽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은하 자신의 마법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장발장이 생각하는 은하의 마법에 대한 확신.
그동안 세상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구현화 과정에서 필터링된 마법이, 두 사람의 의지로 이루어진 세상에 거의 온전히 구현화된 것이다.
“이렇게 하는 건가 보네.”
“그런가 보네요. 그런데 이거 서로 파장을 맞추는 것도 일이겠는데요. 다른 사람의 의지를 끌어들이면서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삼아야 하는 일인데….”
“서로 생각이 다를 텐데 그건 또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럼에도 그가 만든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하기 짝이 없었다.
다만 소우주에서 대우주가 된다는 개념을 막연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뿐이다.
☆
영등포구 여의도 어딘가의 마나교.
신연수는 지하 3층에 들어섰다.
그녀가 마법이 걸려 있는 철문을 열었다.
또각또각
마도학에 관련된 서적들.
몬스터의 마석, 스킬석 등등.
그리고 반혼제에 쓰일 도구들.
그녀는 그것들 모두를 지나쳐서는 안쪽으로 향했다.
계단이 있었다.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환경.
또각또각
교주, 부교주를 제외하고.
이 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마법으로 어둠을 밝히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
성녀 신연수.
그녀는 자신이 성녀라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성녀가 되기로 한 이유는 계단 아래에 있는 ‘그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윽고─.
“─나 왔어, 오빠.”
그녀는 ‘그것’ 앞에 도착했다.
관이 하나 있었다.
부교주의 마법으로, 사체의 부패를 최대한 막아주는 마법이 걸려 있는 관.
그녀는 익숙한 손길로 관의 문을 열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려.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자신의 오빠 신도림.
신도림의 시체가 거기에 있었다.
신연수는 관 안을 들여다보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가족이라고는 신도림밖에 없었다.
그런 오빠가 서울 침공에서 그만 자신을 구해주고 죽고 말았다.
그녀로서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심정이었다.
그때, 마나교의 사람들이 나타나서 말해준 것이다.
─네 힘이라면, 어쩌면 네 오빠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신의 구원이 아닌.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들렸다.
하지만 신연수는 죽음을 거부하는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오빠의 시체를 이리 남겨, 자신은 마나학을 연구하면서 이날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내가 꼭 오빠를 살려줄게.”
우는 듯한 얼굴로.
신연수는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
기억, 감정, 사념.
그것이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부교주, 아니, 아마겟돈이 지금까지 연구하며 알아낸 결과였다.
“그렇다면 세계 의지에 녹아 있는 그것들만 따로 걸러낸다면 온전하게 그 사람의 영혼을 걸러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느냐. 끌끌.”
거기에 그 영혼을 걸러낼 수 있고, 담아낼 수 있는 ‘그릇’까지 더해지면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것이 현실이 되면 비로소─.
─나는 완전한 죽음을 초월하며, 진정한 신이 될 것이다.
아마겟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노인은 각고의 노력 끝에, 사람들을 대하는데 서투른 신연수를 마나교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만약 이리야가 당초 계획했던 대로 마나교를 위해 순교했더라면.
그는 신연수를 성녀로 만드는 것을 금세 포기했을 것이다.
실제로 신연수는 성녀의 일이 아닌 마나학을 공부하는데 두각을 드러낸 ‘학자’ 유형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리야가 전향하게 되면서 신연수를 성녀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이다. 부족한 시간이긴 하나 그 아이는 내가 가르친 모든 내용을 천부적인 자질로 흡수해냈다.”
아마겟돈은 해냈고.
또한 신연수도 해냈다.
아마겟돈은 지식을 흡수하는 것에 천부적인 자질을 지니는 신연수에게 순수하게 감탄하기까지 했다.
과연 을 지닌 아이였다.
세계 마나관리기구의 조사에서는, 의 기프트를 지닌 소유자는 어딘가 천부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 말이 거의 맞는 듯했다.
실제로 신서영은 의 기프트를 가진 것도 아니었으면서 자유롭게 바람을 다루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리야는 전문적으로 의학을 공부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치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신연수 또한 그런 것이리라.
여하튼─.
“─반혼제가 기대되는구나.”
이제 곧 거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노인은 입가를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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