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57
신도림이 소멸했다.
마나신의 대행자가 사라지게 되며, 마나교 신도들은 저항하지 않은 채 연행되고 있었다.
“─쯧, 마나교는 더는 쓰지 못하게 되고 말았구만.”
아마겟돈은 사태가 수습되고 있는 영등포구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성녀 신연수 그리고 교주까지.
마나교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부교주인 자신이 또 다른 사람을 뽑으면 되는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새로 사람을 뽑는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교주야 적당한 사람을 세뇌시키면 그만인 일이라지만.
이리야를 시작으로 신도림, 신연수 같은 인재를 어디서 구한다는 말인가.
“그 아이 시체라도 남아 있었다면 회생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으니, 원…. 아쉬워도 포기할 수밖에 없겠군.”
만약, 아주 만약에.
신연수의 시신이 남아 있었다면, 노인은 선녀정부의 수사를 방해해서 시신을 빼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사령술을 사용해 입맛대로 조종했을 것이다.
이번 일로 인해 마나교가 강제로 해체당한다 한들, 구심점만 있다면 재기의 발판을 노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박해는 집단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하는 법.
필시 음지로 숨어들게 될 신도들을 신연수를 중심으로 결집시킨다면, 마나신에 대한 신앙심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게 된 거지. 운이 나빠도, 영 나빴어. 설마 현장에 그놈이 있었을 줄을 어찌 알았을꼬.”
그런데 노은하가 하필 발목을 붙잡고 만 것이다.
그가 신화를 현현했다.
아직 완전한 신화는 아니었지만, 놈의 신화는 의지를 일소시켜버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불에 타버린 존재의 의지와 육체는 더는 이 세상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마겟돈은 마나교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구나. 부족하기는 해도 마나신이란 개념으로 모이는 믿음은 이쯤에서 수거해가야지.”
그러나 마냥 잃은 것은 아니었다.
마나교의 신도들이 존재하는 한, 적기는 하더라도 그들의 신앙심은 계속 자신에게 모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노인은 이번 일을 통해 영혼이 무엇인지 이전보다 명확하게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었다.
“─덕분에 어떻게 하면 내 영혼을 온태양의 몸에 집어넣을 수 있을지, 또 지금 이 몸을 얼마나 강화할 수 있는지 알 것 같구나.”
노인은 끌끌 웃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영혼은 완벽하게 육신을 제어해내지 못했다.
노인이 자신보다도 젊은 사람들의 몸을 가로채고도 완전히 제 몸으로 삼지 않고 있던 이유였다.
애초 노인은 마인으로 변모하면서 혼과 백이 완전하게 맞물리지 않는 고질병을 앓고 있었다.
그로 인해 마인이 되고서도 신화를 완전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을 경험하게 되면서, 그를 괴롭히던 문제점이 없어졌다.
“그러니 꼬마야─.”
─이겼다고 좋아하지 마라.
재앙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며.
넌 이제야 신화의 문 저편에 있는 세상을 아주 잠깐 경험했을 뿐이다.
그러니 더욱 강해지거라.
네가 그 문을 완전히 열어젖히고, 신화를 완벽히 현현하게 됐을 때─.
“─내가, 가로채주마.”
온태양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 일로 알았다.
노은하.
너의 육체는 신화를 받아들이는데 가장 최적화되어 있다.
몹시 탐이 난다.
“의지를 불태운다는 건 어디까지나 일부에 불과해. 네 녀석의 신화는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태우는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자신과 상극에 위치한 힘.
그 힘을 얻게 되면 자신은 얼마나 더 강해져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무척 기대되었다.
그때, 노인이 끌끌 웃고 있던 중에 마스테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겟돈 님.”
“왜, 무슨 일이냐.”
“두 가지 소식이 있습니다.”
“그래, 말해보려무나.’
피어싱을 한 미청년.
갈라진 공간에서 나온 마스테마가 점잖은 어조로 고했다.
“─두 번째 의 기프트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그러나 마스테마의 어조와 다르게 내용은 점잖아질 수가 없었다.
아마겟돈의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이름은 하백련, 나이는 10세이며 현재 마나관리기구에 있다 합니다. 이 나라의 축복이 되겠군요.”
“글쎄….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 아직 속단할 수 없는 일인 거지.”
마스테마의 설명을 들으며.
아마겟돈은 어깨를 들썩였다.
두 번째 .
세상 자체와 상극을 이루는 힘.
그 힘은 몬스터가 존재하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힘이었다.
그러다 보니 은 필연적으로 권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 기대되는구나.”
자, 두 번째 이 나타났다.
하나의 아래, 서로 싫어도 결집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두 번째 이란 다른 선택지가 생기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나라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하게 될 것인가.
알게 모르게 암약 속에서 피튀기는 권력다툼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리한다면─.
─내가 재앙을 일으키지 않아도, 알아서 재앙이 일어나겠지.
인재(人災)가 일어나고 말 것이다.
자칫하다간 기껏 안정시킨 민심이 다시 흉흉해질 수도 있다.
틈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바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사람들이 과연 을 두고서 권력다툼을 벌이지 않을 수 있을까.
노인은 아니라 부정할 수 있었다.
“그래, 다른 소식은.”
“네, 이번에 발생한 테러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편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중 편재에 휘말린 인간들 중에 살아남은 인간이 있었습니다.”
“호오.”
이윽고 두 번째로 들려온 소식.
아마겟돈은 입가를 찢었다.
참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번에 발생한 편재가 제법 규모가 상당했던 만큼, 편재에 휘말리고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난 인간은 무척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릴리스가 확인한 바로는 포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정신이 좀…. 그나마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더군요.”
노인은 마스테마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식의 능력을 지닌 신인류.
안타깝게도 가까스로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몬스터의 외모가 더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꼭 제3위계 시져 호퍼의 갑옷을 착용한 모습인 것 같다라….”
“벨제뷔트가 확인한 결과, 능력은 시져 호퍼를 웃도는 것 같답니다. 다행히도 마몬(Mammon)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외부 노출을 최대한 막을 수 있었다고 하고요.”
“세상은 모른다니까 다행이구나. 어찌 됐든 그 아이도 속세에 있던 이름을 더는 쓰지 못하게 됐을 테니 새로 이름을 붙여줘야겠구나.”
서울 침공에서는 사마엘을 얻었고, 이번에는 또 다른 신인류를 찾았다.
아마겟돈은 기쁨에 겨워했다.
마나교가 해체될지라도 상관없다.
자신의 밑으로 계속 강한 인재들이 모이고 있으니까.
“─아바돈(Abaddon). 그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구나.”
☆
선녀를 1번 휘두를 수 있는 권리.
은하는 지금까지 아껴두고 있었던 카드를 꺼냈다.
하백련을 비호할 수 있기 위해서는 선녀의 지지가 가장 필요해.
하지만 임가을이 정치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지할 리는 없어.
이전 삶과 이번 삶.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때야 은하는 선녀를 위협할 만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많은 배경을 등에 업고 있었다.
선녀의 호의를 사는 한편 경계를 살 만도 했다.
그래서 그는 전에 임가을에게 받은 권리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명분을 강조하고, 다른 그룹들의 힘을 빌리면 억지로 하백련을 비호할 수도 있었겠지.
근데 그랬다가는 완전히 임가을의 눈밖에 나버리는 수가 있어.
내가 백련이를 보호하는 걸 반대한 사람들에게 꼬투리를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다행히 임가을은 받아들였다.
그녀는 관료들의 반대를 무릅쓰며 은하에게 하백련을 비호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은하를 따로 불러내 대화를 요청했다.
은하는 순순히 응했다.
“─설마 판도라클랜이 그 아이를 비호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
“운이 좋았던 거죠.”
“글쎄…. 정말 운이 좋았던 걸까? 그런 것치고는 참 기가 막히네.”
선녀 임가을의 집무실.
집무실에는 은하와 그녀를 포함해 5명이 있었다.
“”…….””
호위사 박상진과 이정현은 엄숙한 얼굴로 임가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은하에게 기세를 드러내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은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이 공격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를 상대로 뭐하는 건가요. 정신 사납게 좀 하지 말고 기세를 거두어주세요.”
그에 비해 노은아는 언짢은 얼굴로 따졌다.
그녀는 혹시나 은하의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위사들은 듣지 않았다.
호위사가 말을 듣는 사람은 오직 한 명, 선녀밖에 없었다.
“후우….”
이에 은아가 임가을을 곁눈질했다.
그녀도 시선을 눈치챈 듯했다.
임가을이 한숨을 쉬었다.
“둘 다 나가 있어요.”
“하지만 선녀님을 혼자 여기 둘….”
“믿을 만한 사람들이니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보다 판도라 클랜로드도 생각이 있다면 위험한 짓은 하지 않을 테죠.”
“”…….””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까, 나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임가을이 축객령을 내렸다.
호위사들은 그녀를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문을 나가고.
이제 집무실에는 임가을과 은하, 노은아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보렴.”
임가을이 다리를 꼬았다.
그녀가 은아를 없는 것처럼 대하며 은하를 쳐다보았다.
“너는 그 아이가 을 가진 걸 알고 있었어. 그러지 않고서야 네가 파격적인 후원 조건으로 그 아이의 어머니가 클랜을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아뒀을 리 없지.”
“”…….””
“정말 미래라도 보는 거니?”
거짓말을 할 생각도 하지 말란 듯.
임가을이 단호하게 말했다.
은하는 입을 다물었다.
임가을이 의심할 만도 하지.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건가?
임가을이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은하는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행운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고, 무시하면 될 뿐이었다.
답해줄 이유도 없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알았느냐가 아닌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였다.
“어차피 제가 뭐라고 말한다 한들, 선녀님은 믿지 않으실 테죠.”
“거기에 그럴듯한 개연성만 있다면 믿지 못할 것도 없지.”
“저도 진짜 몰랐는데요. 저도 듣고 깜짝 놀랐어요.”
“개연성 자체가 필요 없는, 퍽이나 훌륭한 답이구나. 그리고 하다못해 속일 생각이면 국어책을 읽는 듯이 말하지만 말고, 연기라도 해보든가. 속일 생각도 없다는 것 같은 모습이 정말 뻔뻔하네.”
“애초 제가 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숨기고 있지 않았겠죠. 달랑 한 명 찾아놓고 끝냈을 리도 없고요. 정말 몰랐어요.”
“결국 말할 생각이 없다는 거네.”
“그것보다 이제 어떻게 할 건데요? 백련이 교육계로 누구를 생각하는지 결정한 건가요?”
은하는 화제를 돌렸다.
임가을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내 그녀도 추궁을 해봤자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그녀가 순순히 넘어가주었다.
“내 독단으로 그 아이의 교육계를 전부 지정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교육계는 내가 지정해야지. 인원은 대충 생각해두고 있어.”
“마나를 가르치는 교육계는요?”
“내가 그걸 왜 말해야 하니? 괜히 너한테 말했다가, 혹시 그 사람에게 네 입김이 닿으면 어쩌려고. 나는 네가 이 이상으로 간섭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는 어때요?” “프리시스 메모리?”
은하는 대뜸 제안했다.
이전 삶에서는 창해클랜의 십이좌 곽우혁이 백련에게 마나를 가르쳤었다.
그로 인하여 하백련은 곽우혁에게 교육을 빙자한 학대를 당했었다.
은하가 놈의 다리를 분질렀을 만큼 교사로서 좋은 인재는 아니었다.
그때랑 지금은 달라.
회귀 전에는 임가을이 힘이 없어서 중요 교육계 자리를 빼앗겼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
프리시스 메모리는 곽우혁 이후에 교육계를 맡게 된 사람이었다.
하백련은 그녀를 곧잘 따랐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이번 삶에서도 그녀가 교육계를 맡아주길 바랐다.
그런데 임가을은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 사람도 나쁘지는 않지. 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서 과연 교육계를 맡겨도 될지 모르겠네…. 그 아이가 나중에 내 자리를 이어받을 것을 생각하면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 아니라, 장차 정부 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질 관료를 두는 게 낫지 않겠니.”
임가을의 의견도 일리는 있었다.
실제로 프리시스 메모리는 회귀 전 어느 날을 기점으로 행방불명됐다.
그럼에도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도 정국이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그녀가 언제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정도로 기묘한 사람이었다.
마치 자신들과 전혀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것 같은 사람.
“하지만 마나를 다루는 일에 있어, 전 이 나라에서 만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흠….”
그럼에도 은하의 뜻은 완고했다.
그녀가 이전 삶처럼 어느 날 돌연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그녀는 하백련에게 든든한 칼이 되어줄 것이다.
“선녀의 진정한 스승이랄 수 있는 그 자리를 네가 말한 대로 해라…. 이건 심각한 월권행위란 건 아니?”
“의정부에서 코쿤을 회수한 공로를 생각해주세요.”
“그건 아까 써먹었잖아.”
“솔직히 그걸로 대신하기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러게 누가 거기에 쓰랬니?”
“관대하게 생각해주세요.”
“후…. 다른 교육계는?”
“선녀님 뜻대로 하세요. 저는 더는 참견하지 않을게요.”
“그래, 좋아.”
은하는 어떻게든 밀어붙였다.
임가을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녀가 결국 승낙했다.
그러면서 조건을 제시했다.
“그래도 그 아이를 네 품에 그대로 두기엔 불안한 것이 너무 많네. 너한테 세뇌당할 수도 있는 거잖니.”
“저는 그럴 생각이 없지만…. 네, 같이 살면 제 생각을 주입당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까 내 호위사를 그 아이의 전속으로 딸려 보낼게.”
“…네, 좋아요.”
임가을의 조건.
딱히 거부할 조건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그때, 은하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럼 이정현 호위사를 붙여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뭐?”
“아까 보니까 그 사람이 애들이랑 잘 놀 것 같더라고요.”
조금 전, 집무실에 있던 호위사.
이마를 드러내는 헤어스타일을 한 남자는 이전 삶에서 하백련과 제법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박상진이 선녀의 오른팔이었다면, 이정현은 선녀의 왼팔이었다.
실력도 준수했다.
이전 삶에서는 탄핵당한 임가을의 도주를 도왔다는 이유로 광화문에서 목이 뎅겅 날아가고 말았지만.
“그 사람을 주세요.”
“…….”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만, 얘가 이렇게 나오니 괜히 손해 보는 것 같은데.
졸지에 자신의 왼팔을 내어주게 된 임가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
임가을과 대화를 마치고.
은하와 은아는 집무실을 나섰다.
두 사람은 다른 방에서 대기하던 하백련을 만나러 갔다.
“아.”
“잘 있었어? 누가 너한테 못되게 군 사람은 없지?”
“…없어요.”
고개를 도리도리.
한서현, 류연화하고 같이 있었던 그녀가 대답했다.
은하는 하백련이 무사한 것을 보고 생긋 웃었다.
“네 부인은 여기 있는데, 오자마자 애부터 찾는 거니.”
“서현이 너도 수고했어. 연화 누나도 정말 고맙고.”
“아니야. 나도 백련이가 다른 데서 보호받는 건 싫었는걸.”
한서현이 질투했다.
은하는 가벼이 웃어넘겼다.
류연화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그는 이제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클랜으로 돌아가자. 지은 누나도 백련이 때문에 걱정하고 있겠다.”
“지은이 언니 걱정도 걱정이지만, 네 몸부터 신경 써.”
노은아와 한서현이 타박한다.
은하는 그마저도 좋았다.
무엇보다 오늘따라 백련이 순순히 손을 잡아주는 것이 좋았다.
그는 하백련의 손을 잡고서 복도를 걸었다.
“─은하야.”
“아, 선생님.”
“”””…….””””
그러다 백서진을 마주쳤다.
은하는 걸음을 멈췄다.
“저 아이를 찾아낸 것도 용한데…. 잘도 선녀에게 허락을 받아냈구나.”
“백련이가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판도라클랜은 우방이니까요.”
“그래, 그렇다고 넘어가자.”
마나관리기구의 장관 백서진.
그 역시 조금 전 하백련의 비호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다.
백서진도 하백련을 선녀정부에서 비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미 결론이 정해졌기에.
백서진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순응한 듯했다.
“인사해, 백련아.”
“…….”
그런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러.
그리고 하백련의 미래를 위해서.
은하는 하백련과 백서진이 친분을 만들 수 있도록 주도했다.
그가 그녀를 타일렀다.
그녀가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안녕, 얘야. 아까 거기서 봤었지? 나는 백서진이다. 아마 앞으로 많이 보게 될 거야.”
“백련이 너도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하백련입니다.”
백서진이 피식 웃는다.
꼭 손자를 내려다보는 듯한 얼굴.
하백련이 쭈뼛거리면서 응답했다.
그러자 그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큼지막한 손길을 어색하게 받아들였다.
“다음에 보자. 그럼 나는 가보마.” “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인사는 짧았다.
은하는 백서진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멀어졌을 때, 그제야 은하는 하백련에게 백서진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었다.
“앞으로 여기에 와서 곤란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 꼭 백서진 선생님을 의지하도록 해.”
“네….”
이전 삶에서.
영원그룹의 회장 유도준.
십이좌 류연화.
십이좌 송윤서.
그리고 백서진.
네 사람은 은하가 믿을 수 있는, 그가 살아있을 때까지 마지막까지 하백련의 아군이 돼준 이들이었다.
백서진은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은하는 제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적들의 술수에 빠져 공략에 참가했던 것이다.
그러니 부디 그녀가 이번 삶에서도 백서진의 호의를 얻기를 바랐다.
“…….”
하백련은 백서진이 사라질 때까지 배웅했다.
☆
“안녕, 얘야. 아까 거기서 봤었지? 나는 백서진이다. 아마 앞으로 많이 보게 될 거다.”
아이의 직감은 때로는 예민하다.
어딘가 무서운 사람이다.
하백련은 백서진을 처음 만났을 때 그런 감상을 피할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하백련입니다.”
무언가, 가까이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노인.
노인에게서는 성남시에서 보았던, 어머니가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던 건달의 분위기가 풍겨왔다.
그리고 짙은 담배 냄새.
하백련은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산 것만 같은 노인의 손길에 그만 경직되고 말았다.
“다음에 보자. 그럼 나는 가보마.” “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자신이 겁을 먹은 것을.
노인은 알아차린 듯했다.
그래서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잘…, 지낼 수 있을까.”
어딘가 아저씨와 비슷한 듯하면서.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듯한 노인.
하백련은 멀어져가는 그를 보면서 나직이 읊조렸다.
☆
두 번째 의 기프트가 발견되었다.
선녀정부가 소문을 잡으려고 해도,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
당연히도 판도라클랜이 하백련을 비호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퍼졌다.
판도라클랜의 동향에 촉각을 세운 사람들은 그날부로 은하가 하백련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그녀의 옆에 찰싹 붙어서.
심지어 등하교까지 같이 한단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 따로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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