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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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진위를 알게 된 사람들은 노은하를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렇게 불렀다.
신기하게도 은하는 이번 삶에서도 똑같은 이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전 삶과 다른 게 있다면, 이 이전 삶처럼 마냥 조롱거리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네도 이야기를 들었나? 이번에 남산클랜이 넌지시 물어봤다더군. 왜, 남산클랜이 지금 판도라클랜의 위성클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알지, 판도라클랜의 우방이잖아. 왜, 남산클랜이 뭐라 물어본 건데? 판도라클랜에 있는 그 여자아이가 정말 을 가지고 있는 건지?”
“그래, 물어봤다더군.”
“판도라 클랜로드가 뭐라던데?”
“끈 떨어져 나가고 싶지 않으면, 그 입 닥쳐라.”
“”””…….””””
“그 아이 이름이 하백련이라잖나. 그래서 판도라 클랜로드의 앞에서 ‘하’ 소리만 내도 으르렁거린다더라. 번견이 뭐야, 번견이. 아주 미친개가 따로 없다더라.”
이번 삶에서 은 두려워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간 성격이 무덤덤하기로 유명한 판도라 클랜로드 노은하가 극도로 경계심을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이 아니라, 이 아니냐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에게 호기심을 표출하려고 하지 않았다.
“선녀님의 호위사가 최근 거기에서 상주하고 있다고 하더군.”
“선녀님의 호위사가 거기에 있다면 굳이 미친개한테 묻지 않아도 정말 을 지닌 사람이 나타난 거라 말할 수 있겠네.”
“기자들도 냄새를 맡았다 하던데. 판도라클랜 근처에 잠복해 있으면서 그 아이의 사진을 찍으려 한다더군. 지금까지 판도라 클랜원들에게 속속 잡히고 있다는 모양이지만.”
“새하얀 머리칼을 지닌 아이라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필요가 없지. 정말 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선녀정부에서 조만간 언론사들에게 엠바고를 요청하거나, 압박이라도 가할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만들어봤자 좋을 것은 없으니까.”
“그래봤자 시간 문제야. 그 아이가 미래에 선녀가 될 거란 것은 결국 알려지게 되겠지.”
노은하가 워낙 으르렁댔기에.
사람들은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세상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
어떻게 된 일인 건지 판도라클랜이 미래의 선녀를 비호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판도라클랜의 찬란한 미래가 보장될 것임이 뻔했다.
어디 그뿐인가.
판도라클랜과 친분이 있는 그룹과 사람들의 미래도 보장되리라.
“─좀, 그렇군.”
“선녀를 한 클랜에서 독점한다니. 그러다 판도라클랜이 정권을 잡아서 세도를 부리면 어쩌려고….”
“선녀님도 생각이 없는 건가?”
당연히 판도라클랜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좋게 여길 리 없었다.
일반인들이야 판도라클랜의 이름에 열광하고 있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환호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허나 판도라클랜과 어떤 식으로든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이들의 경우 그러지 못했다.
특히나─.
“─판도라 클랜로드가 참 비밀이 많은 것 같단 말이지…. 자네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단군 클랜로드 장봉전.
그는 대놓고 노은하를 비난했다.
장봉전으로서는 도저히 노은하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단군클랜은 아직도 B+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단군클랜의 밑에 있던 판도라클랜이 A-로 훌쩍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자존심이 상했다.
다른 하나는 단군클랜 상황이 현재 그리 좋지 않았다.
단군클랜은 B+란 체급으로 겨우 동대문구를 관할로 두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 재앙 이후,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민심이 더욱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 선녀정부에서 서울 침공 이후 3년간 클랜전을 금지하지 않았다면 대표 클랜이 바뀌고 말았으리라.
그래서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건만.
동대문구와 인접하고 있는 중구는 민심이 워낙에 좋았다.
그러면 동대문구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럴 일이야 없기야 하겠지만…. 혹시라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판도라클랜에게 관할로 넘기란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지, 암.
장봉전은 판도라클랜이 민심으로 중구를 관할로 두게 된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동대문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이유는─.
─노은하, 이 자식….
판도라 클랜로드 때문에.
아니, 노은하 때문에.
서울 재앙이 일어난 책임에 대해 하필 십이좌 모라율이 떠맡고 말았다.
그로 인해 단군클랜의 명성은 더욱 떨어지고 말았으며.
급기야 단군클랜은 아예 모라율을 마나관리기구에 빼앗기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어쩌면 판도라 클랜로드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 그 아이가 의 기프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
워낙 악연이었다 보니.
장봉전은 노은하에게 치를 떨었다.
그래서 자신과 친한 클랜로드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투덜거렸다.
“저번 서울 침공 때부터 그랬어. 판도라 클랜로드는 꼭 미래를 알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나도 그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 소문으로는 를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술자리.
술이 한껏 들어가면서 어느 정도 격식을 차리지 않게 되자.
장봉전을 시작으로 몇몇 사람들이 동조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들 모두 노은하와 어떤 식으로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이들이었다.
“, 라…. 그러네. 판도라 클랜로드가 정말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 하지만!”
탕 소리를 내며.
장봉전이 잔을 내려놓았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판도라 클랜로드가 보인 무위를 생각하면 정말 라 생각할 수 있을까?”
“”””…….””””
“이번 마나교 반혼제 테러만 해도, 노은하 그 자식이 자기 힘을 얼마나 숨기고 있었던 건지 보여줬잖아!” “”””…….””””
“대체 그놈 기프트가 뭐냔 말이야! 아니, 미래도 볼 줄 알고,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만한 무위를 선보일 힘을 가지고 있다니…!! 대체 그런 기프트가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고.”
“그건…, 그렇지.”
마나교 반혼제 테러 사건.
화질이 흐릿하기는 했으나.
영상자료가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노은하의 무위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경외할 지경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노은하의 비범함을 인정해야 했다.
인정해야 했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드냐고. 왜 마나관리기구와 선녀정부는 그걸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는 거지?”
“”””…….””””
“마음만 먹으면 이 나라에 거대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놈이 있는데 왜 그놈 힘을 확인하려 하지 않느냔 말이야!! 아씨, 생각해보니 그러네!”
“”””…….””””
“기프트 검사! 생각해보니 그놈들, 대부분이 기프트를 공개하지 않고 있잖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장봉전이 호응을 유도했다.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몇몇은 신중했다.
기프트 검사와 공개는 의무적으로 해야 할 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봉전의 주장은 달랐다.
“그렇게 많은 공을 세운 그놈들은 이제 공인이나 다름없는 놈들이야! 그러니 그들의 힘을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나? 왜 십이좌들은 기프트를 모두 공개했는데, 놈들은 공개하지 않느냐는 말이야!”
“”””…….””””
“특히 노은하 그 녀석!! 그놈 힘이 대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은 건가? 만에 하나라도 그놈이 이번에 신도림 그 녀석처럼 테러라도 일으키면 어쩌려고!”
억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장봉전이 이날 꺼낸 소리는 점점 세상에 퍼져나갔다.
동조하는 여론이 생겨났다.
☆
소문은 막을 수 없었다.
하백련의 존재는 천천히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요새 신경이 많이 거칠었다.
“하….”
“저 사람, 혹시 백련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오죽하면 누가 한숨을 쉬기만 해도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였다.
클랜회관 1층에서 의뢰를 접수하던 사람을 지나친 은하는 그런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냥 한숨을 쉰 거잖아. 괜히 또 시비를 걸려고 하지 말자.”
“그래, 우리도 우리지만 너는 진짜 힘 좀 풀어라.”
급기야 은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으려 했다.
최은혁이 어깨를 붙잡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으리라.
한편 목민호는 은하의 행동을 보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맸다.
“은하 네가 그렇게 걱정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지. 바로 얼마 전에는 웬 기자 하나가 백련이 사진을 찍으러 가려고 했으니까.”
“그 자식은 생각만 해도 진짜….”
은하와 판도라 클랜원들의 신경이 최근 많이 거칠어질 만도 했다.
생각지도 못한 데서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백련이 비밀을 영원히 감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언젠가는 다 알게 될 일이야.
하지만 백련이가 편히 생활하도록 최대한 오래 비밀로 유지하고 싶어.
다른 클랜원들 역시 비슷했다.
하백련의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어, 그녀의 기프트가 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처음에는 놀라 하던 클랜원들은 곧 그녀가 겪게 될 운명을 떠올리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하백련과 알고 지낸 시간이 제법 길었다.
하백련에게 정을 가지게 된 그들은 자발적으로 하백련을 보호하면서, 그녀의 비밀을 지키려고 애썼다.
“백련이 걱정은 너무 하지 마라. 이정현 호위사도 있고, 클랜원들이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으니까. 나는 이제 동해 건설 사람들이나 만나러 가야겠다.”
“그리고 요새는 연화 누나가 옆에 딱 붙어 있잖아. 걱정하지 마. 아, 나도 이제 일하러 가야 하는데…. 민호야! 같이 가자, 좀!”
“그래, 둘 다 수고해.”
엘리베이터로 향하면서.
은하는 두 사람과 헤어졌다.
목민호가 직전에 꺼냈던 말대로, 현재 하백련은 확실하게 보호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정현 호위사가 백련이 학교에서 대기하고 있기도 하고, 연화 누나도 시간이 빌 때마다 옆에 있긴 하지.
어디 이정현과 류연화뿐인가.
은하는 최근에 하백련의 등하교를 돕고 있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장발장이 하백련을 감시하게 두기도 했고…. 이십오를 시켜서 백련이에게 접근할 기미가 보이는 싹을 쳐내고 있지.
이정현과 클랜원들 모르게.
은하는 하백련을 지키기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았지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장발장과 패스가 연결돼 있다지만 아무래도 백련을 눈으로 직접 봐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이제 곧 하교시간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은하는 집무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백련을 데리러 가기로 했다.
은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나 들어갈게.”
“그래, 들어와.”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집무실에 들어가고 잠시 후.
한서현이 은하를 찾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은하는 한서현을 소파로 인도했다.
이내 그녀가 서류를 내밀었다.
“클랜원들이 빈 시간을 쪼개가면서 백련이를 보호하게 하는 건 그렇게 좋은 생각인 것 같지 않아서.”
명단이었다.
그녀는 하백련을 전담으로 보호할 클랜원들을 편성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은하도 동의하는 바였다.
백련이도 미안해하고 있는 데다가, 주위를 지키는 사람이 계속 바뀌면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몰라.
하백련의 나이는 이제 10살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이도 어린 애가 벌써부터 주변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날, 하백련의 보호자를 결정하는 회의가 끝나고 나서부터 그 기질은 더욱 심해졌다.
‘…죄송해요. 제가 언니 오빠들을 힘들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구야? 누가 그런 소리를 했어? 이 오빠가 혼내줄게! 혹시 노은하 저 아저씨냐?’
그녀는 자신이 선녀가 돼야 한다는 국가의 강요보다도 일이 바쁜 한편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 클랜원들을 더 안쓰럽게 여겼더랬다.
그래서 클랜원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다.
진파랑이 길길이 날뛰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보니 클랜원들은 더욱 하백련을 지키려고 했다.
“믿을 만한 사람들로 구성해놨어. 연화 언니는 당분간 일은 안 하고 백련이 경호만 하게 하려고.”
“그래, 잘했어. 우리가 막 돈이나 실적에 궁한 건 아니잖아. 일은 좀 줄이게 된다고 해도, 백련이 보호를 더 우선으로 삼아야지.”
은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자신, 류연화, 봉구래, 브루노 등.
은하는 명단에 적힌 이름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근데 서현아.”
“응, 왜 그러니?” “왜 쌍둥이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거야?”
명단 가장 아래에.
메이링, 메이린의 이름이 있었다.
은하가 떨떠름한 어조로 물었다.
“백련이 정서에는 안 좋기는 해도, 요새 우울해하는 백련이의 기분을 밝게 하기에는 적격이라 생각해서.”
“그럴 거면 차라리 파랑이 형이나 아리엘을 넣는 게 낫지 않을까?”
“파랑 아주버님은 백련이의 마음을 미세하게까지 헤아리지 못할 거야. 아리엘도 나쁘지 않기는 한데 걔도 어째 사고를 칠 것 같고….”
“쌍둥이들도 사고 칠 것 같은데? 그리고 얘네가 생각 없이 살잖아.”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 심리는 예리하게 파악하면서 그에 맞춰 행동하는 애들이야. 네가 잘 몰라서 그래.”
“얘네가 그런다고?”
한서현이 쌍둥이를 높게 평가한다.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은하도 한서현의 기프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 기프트.
한서현만 알 수가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리라.
“가장 좋은 대안은 서나랑 아리엘 두 사람을 같이 붙여두는 건데…. 서나가 나랑 하양이 일을 돕느라고 백련이 곁에는 두지 못할 것 같아. 그래서 대신해서 쌍둥이들을 곁에 붙이려고 하는 거야.”
“괜찮을까….”
이전 삶에서도 쌍둥이는 이따금씩 하백련을 돌보고는 했다.
하백련과 쌍둥이가 꽤 친했다.
문제는─.
─백련이가 쌍둥이들 성격에 꽤나 영향을 받았다는 건데….
은하는 고민에 잠겼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래, 내 아내 말을 따라야지.”
“그래, 내 말만 잘 들으렴. 그래야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거야.”
하백련이 쑥쑥 크기를 바랄 뿐.
그리고 행복하기를 바랄 뿐.
은하는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았다.
하백련이 어떻게 성장한다고 한들, 행복하기만 하면 됐다.
☆
은하가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비단 하백련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 하지은도 있었다.
“누나 또 여기에서 술 마셔?”
“아, 판도라 클랜로드.”
“사석에서는 편하게 부르라니까.”
“이제 입에 붙은 걸 어떡해요.”
깊은 밤.
은하는 혹시나 해서 3층을 찾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하지은이 퇴근도 하지 않고 가게에 있었다.
오늘도 술을 마셨던 모양이다.
은하는 감자튀김에 맥주를 마시던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도 한 잔 줘.”
“잠깐만 기다려요.”
하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하는 주방으로 향한 그녀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많이 힘들겠지.
하백련이 을 각성하면서.
하지은은 자신의 딸이 먼 미래에 선녀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혹자는 하백련의 권위를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릴 생각에 흥겨워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녀는 그런 성격이 못 됐다.
“─백련이가…, 불쌍해요.”
“…….”
오늘도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국가라는 괴물에 사로잡힌 하백련의 미래를 서글퍼했다.
그래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밤마다 술에 빠져 살고 있었다.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즐길 일도 얼마나 많고…. 그런데 그 애가 이제는 마음대로 못하고, 선녀의 삶을 강요받아야 한다니까 너무 불쌍해요.”
“…….”
“백련이한테 너무 미안해요. 제가 그렇게 낳는 게 아니었는데….”
“자꾸 왜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 그런 소리는 하지 마.”
술이 들어간다.
하지은이 눈물을 흘린다.
은하가 휴지를 뽑아서 건네주자, 결국 그녀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백련이 이제 어떡해요. 어린 게 뭘 얼마나 안다고 선녀를 시키려고 하냐는 말이에요.”
“…….”
정해진 운명이었다.
은하는 뭐라 말하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그녀가 홀로 술을 마시지 않게 곁을 지켜주는 것뿐이었다.
“─판도라 클랜로드밖에 없어요.”
그때, 하지은이 은하의 손을 세게 쥐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애아빠는 이제는 없어요. 옛날에 몬스터들에게 도망을 치다, 저하고 뱃속에 있던 백련이를 살리기 위해 몬스터들을 유인하려고 했거든요.” “…….”
“그렇게 헤어졌어요. 그래서 저는 백련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 사람 소식을 찾으려고 했어요.”
하백련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회귀 전에는 듣지 못했었다.
하백련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하지은에게 잘 묻지 않았다 하고, 하지은은 사망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찾았어요. 그때 같이 도망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
“자신에 대해서 저한테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저랑 백련이만 남기고 홀라당 세상을 떠났지 뭐예요.”
“그래서 성남에서 가게를 내고서 새 삶을 시작하기로 했던 거야?”
“네…. 그 사람도 이제 없으니까, 이제는 저 혼자서 백련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근데요. 저 혼자서 못 지키겠어요. 선녀가 되는 애를 제가 무슨 힘으로 지킬 수 있겠어요.” “…….”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할게요…. 판도라 클랜로드밖에 없어요. 제발, 제발 우리 백련이를 지켜주세요…. 당신이 하라는 건 다 할 테니, 제발 백련이만은 꼭 지켜주세요.”
하지은이 고개를 숙인다.
탁자에 머리를 박으며.
그녀가 은하의 손을 꼭 쥔다.
은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걱정 마. 내 목숨을 바꿔서라도, 백련이는 꼭 지켜줄게.”
이미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은하는 다짐했다.
누구도, 다시는─.
─절대 그 애한테 거역하지 못하게 만들겠어.
☆
무엇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해보고 싶은 일이 참 많았고, 이것저것 해보면서 정하고 싶었다.
─너는 이제 선녀가 되어야 해.
하지만 세상은 그녀가 어떤 꿈도 펼칠 기회를 주지 못했다.
을 각성했다.
처음에는 이 무엇이며, 또 자신이 선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백련은 그 의미를 언뜻 이해하게 되었다.
“”””…….””””
자신이 기프트를 각성한 그날부로.
하백련은 초등학교에서 평소 같은 생활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
반 밖에서는 호위사 이정현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으며.
판도라 클랜원들도 수시로 그녀를 경호하고는 했다.
무엇보다 새하얗게 변색된 머리가 사람들의 경계심을 사게 만들었다.
‘머리칼이 은백색이라 예쁘긴 한데, 이러면 너무 눈에 띌 텐데…. 어디 변색이 가능한 아티펙트는 없나?’
‘안 돼, 언니. 내가 시험해봤는데 백련이의 마나가 반응해서 아티펙트 마법을 편산시키더라고.’
‘아직 힘을 제어하지 못해서 그런 건가….’
은백색의 머리칼.
하백련은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모습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굉장히 낯설었다.
그리고 자신이 더는 이전과 같은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머리카락에 대해 고민하던 노은아나 정하양의 걱정도 들으니 더더욱 체감이 되었다.
‘괜찮아요! 사실은 선녀도 해보고 싶었는걸요? 예전에 TV에서 봤던 선녀님처럼 멋지고 예쁜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자신을 걱정하는 클랜원들과.
그리고 자신을 보며 슬픔을 감추는 어머니를 보며.
하백련은 씩씩하게 변하게 된 삶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아니, 씩씩한 척을 했다.
선녀 같은 거, 하기 싫은데….
이제는 친구와 편히 놀지 못한다.
그들이 자신을 멀리한다.
아니, 자신의 환경이 이제 그들이 멀리하도록 만든다.
장발장도 마음 편히 못 만난다.
24시간 누군가의 경호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미래에 훌륭한 선녀가 될 수 있게 지금부터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다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괜찮은 척 연기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백련이가…, 불쌍해요.”
그나마 클랜회관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어머니가 술에 취해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하백련도 덜컥 눈물이 흘렀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자리에는 노은하 아저씨도 있었다.
하백련은 숨을 죽인 채로 숨어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입을 막고 울었다.
은하 아저씨는 어머니를 달래느라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싶었다.
그래서 들을 수 있었다.
“─걱정 마. 내 목숨을 바꿔서라도, 백련이는 꼭 지켜줄게.”
그가 힘을 줘서 꺼낸 그 말이.
암울하고, 불안하기만 한 미래를 걸어가야만 하는 하백련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정말, 싫어하는 아저씨인데.
그 말에 의지하고 싶었다.
앞으로 힘들게 될 때는 그 말을 떠올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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