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69
밤은 몬스터들의 무대다.
놈들의 위험성이 크게 증가한다.
더욱이 코쿤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의정부의 밤은 매우 위험했다.
어둠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환경에서 흉포해진 놈들과 싸워서는 병력 손실이 클 뿐이다.
그렇기에─.
[─제2 보급소대장의 전언입니다. 제2 보급소대 전원 무사히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현 시각부로 휴식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제2차 의정부 탈환전 첫 번째 날.
도봉역 장벽을 넘은 플레이어들은 그날 저녁에 망월사역 인근에 있는 신한대학교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다행히 모든 천막을 피는 것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대학교 건물의 상태가 건재했다.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짐을 풀고, 숙영지를 만들어나갔다.
그러고 나서 저녁을 먹었다.
“전투식량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다시는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이걸 다시 먹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그러면서 자기, 맛있게 잘 먹네?”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 몰라도, 분하지만 맛있네. 이런 내가 너무 싫다….”
“군대 체질인 거야.”
“플레이어 체질이라고 해줘. 애초 다들 나랑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망월사역에 도달할 때까지.
탈환대는 소대마다 최소 5번 이상 전투를 치렀다.
그만큼 몬스터들이 계속 튀어나와 그들의 체력을 빼앗았다.
게다가 무거운 짐을 메고 행군하니 체력을 더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판도라클랜이 지휘를 맡은 소대의 역할은 보급이었다.
운반해야 하는 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파운드 케이크까지 꾸역꾸역 먹던 강시형이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 한탄할 만도 했다.
“그래도 맛있게, 많이 먹어둬. 아마 의정부로 들어가게 되면 오늘처럼 편하게 먹지는 못할 테니까.”
“…저 소리가 왜 나는 의정부에서 쉬지도 못하고 굴려주겠다는 것처럼 들리는 거지?” “”””…….””””
다른 판도라 클랜원들도 녹초가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몬스터들하고 군단장들을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자신들이 이렇게 쉬는 사이에도, 몬스터들은 오늘 토벌된 만큼 다시 수를 충당하고 있을지 몰랐다.
그런 심정을 모를 리 없었기에.
은하나 서브로드들이 돌아다니며 클랜원들을 격려했다.
물론, 은하의 격려는 강시형처럼 다른 의미로 들리기도 했다.
노은하의 악독함을 아는 사람들은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애들이 지칠 만도 하지.
소대를 선두하고 있는 역할이라서 부담이 막중하기는 할 거야.
한편 은하는 클랜원들을 헤아렸다.
클랜이 창단된 지 거의 5년.
이제는 그들도 어엿한 플레이어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을 이끄는 경험은 아직 충분치 않았다.
그러니 지금 부담이 막중하리라.
몸에 괜히 힘이 들어가고, 은연중 등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사람들이 신경이 쓰일 것이다.
바보 형이나 아리엘 같은 유형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문제는 시형이나 민호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야. 지금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
몸에서 힘을 빼줘야 해.
오늘은 전초전에 지나지 않는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의정부에서 활동하는 몬스터들은 오늘 토벌한 몬스터들보다 빠르고, 강하다.
그러니 클랜원들이 괜히 몸에 힘을 주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이는 비단 판도라클랜뿐만 아니라 탈환대 전체에 걸친 문제였다.
그래도 못 풀 것도 없지.
당연히 탈환대에서도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 없었다.
딱 하나, 방법이 있기는 했다.
그래서 은하는 탈환전 기간 동안 도봉산역에 상주하고 있을 백서진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텔레파시가 전달되었다.
[─보급부대장이 전파합니다. 모든 보급 소대장은 19번 보급품을 풀어 각 소대에 보급하기 바랍니다.]기다리고 있던 텔레파시.
은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자 소리가 나도록 손뼉을 쳤다.
“다들 오늘 하루 동안 고생했다고 위에서 술을 풀기로 했습니다. 모든 분대장은 앞으로 나오세요.”
[판도라 클랜로드의 전언을 전하니 속히 이행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대장은 앞으로 나와….]“”””……!!””””
“이슬이다! 안 그래도 지금 이슬이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우리 노은하 최고야! 최고!”
술이라는 말에.
피로에 지친 얼굴을 하던 사람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후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클랜원들이 자신들의 클랜로드를 크게 닦달하며 앞으로 나가게 했다.
다른 곳에서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기까지 했다.
[저희 먼저 마시는 게 아니에요! 다른 소대에 먼저 보급하고 난 뒤 마시는 겁니다!]사람들의 기세가 대단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힘이 없다던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냉큼 앞으로 나섰다.
진서나가 그들의 기세를 달래자, 그들은 그래도 좋다는 듯이 빠르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손발이 이리 잘 맞다니….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2 보급소대만 아니라 다른 부대, 소대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이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서며 보급품을 날랐다.
낮에 전투를 벌일 때만 하더라도 서로 협력하고는 거리가 멀었건만, 놀라울 정도로 합을 맞추고 있었다.
덕분에 빠르게 보급이 이루어졌다.
“─오늘 마시면, 아마 의정부에서 웬만해서 마실 일은 없을 겁니다.”
“”””…….””””
은하는 잔을 들었다.
플레이어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소대를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엄숙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러니 당분간 마실 일이 없겠다 생각하는 마음으로 마시도록 하죠. 그렇다고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하지는 말고요. 지금 저희, 전쟁터 한복판에 있는 겁니다.”
몇몇 사람들이 키득거렸다.
하지만 크게 웃을 수는 없었다.
그들도 탈환대가 술을 꺼낸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피로를 풀어주려는 의도도 분명 있었지만─.
─이게 마지막 삶이 될 수 있으니,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마시란 거지.
은하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도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단지 이 순간 술에 취해, 막연한 두려움을 잊고 싶을 따름이었다.
“자, 건배하죠. 적당히 마시세요. 문제 일으키면, 알죠? 건배.”
“”””건배!!””””
이윽고 은하가 술을 털어 넣자.
플레이어들이 크게 외쳤다.
그걸 시작으로 시끌벅적한 술판이 벌어졌다.
은하는 술판을 돌아다니며 분대장들과 잔을 주고받았다.
판도라 클랜원들을 찾아가서 술을 주고받기도 했다.
“자, 드루와! 드루와! 우리 은하, 나는 믿고 있었다구! 내가 널 믿고 이슬도 안 챙겨온 거야!”
“넌 그것만 마셔.”
“힝…. 너무해, 장난이지?”
“응, 장난 아니야.” “나 한 병만. 한 병만 더 마실게. 아니, 두 병만.”
“그것만 마셔. 민지 네가 잘 봐줘. 쟤 분명 더 마시려고 할 테니까.”
“그래, 잘 지켜보고 있을게. 아리엘 너도 들었지? 그거 한 병만이야.”
“힝….”
클랜원들도 신이 났다.
하지만 은하는 그중에서 어깨춤을 추고 있는 아리엘을 짚었다.
술을 통제하지 못해 아주 말썽인, 클랜 내 요주의 인물.
은하는 그녀에게 경고했다.
그녀의 하늘색 비늘이 축 처지고,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징징이가 울먹거린다.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내 말 잘 들으면, 의정부에서도 몰래 한 잔씩 마시게 해줄게.”
“…정말?”
“그래, 정말.”
알고 지낸 시간이 몇 년인데.
은하는 아리엘의 성향을 알았다.
술을 아예 마시지 않게 하는 것은 역효과였다.
그래서 은하는 그녀에게만 예외로 몰래 술을 마시게 해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니 잘 참아. 징징거리지 말고, 이 징징아.”
“나 잘 참으면, 그럼 칭찬도 같이 해줄 거야?”
“그건 너 하는 거 봐서.” “나 열심히 일할게! 근데 만약에 하루에 두 잔씩 마시게 해준다면, 내가 서나 몫까지 열심히 일….”
“넌 네 일만 열심히 하면 돼.”
“칫.”
은하는 분홍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몸을 돌렸다.
다른 클랜원들도 찾기로 했다.
그러던 그때─.
“─클랜로드! 여기에요! 우리하고 같이 술 안 마실래요?” “클랜로드! 여기 자리 있어요.”
“젠장….” “빠빠….”
은하가 다음에 향하려던 곳.
그곳에 쌍둥이들이 있었다.
은하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쌍둥이들을 보고 혀를 찼다.
저것들이 할 말이야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탈환전 기간 동안에는 쌓인 걸 풀지도 못할 텐데…. 우리가 어떻게 해줄까요?”
“언니, 근데 클랜로드한테는 저기 하양 로드도 있지 않나?”
“하양 로드도 바빠서 시간을 내기 힘들지 않을까? 소대를 지휘하느라 소대에서 잘 벗어나지도 못하겠지.” “아, 그러겠네. 그에 비해 우리는 주위를 탐사한다는 핑계로 멀리까지 나갈 수도 있고….” “우리랑 같이 핑계를 대고 나가서, 즐겁게 놀다 오면 되는 거죠. 그럼 되는 거 아니에요?” “어머, 흥분돼.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의정부에서 처음으로 그걸 한….” “어머, 기대돼. 몬스터에게 들킬까 걱정하면서 밖에서 그걸….”
“너희도 적당히 좀 마셔라. 혹시나 장난으로라도 다른 사람들 유혹했다 괜한 봉변이나 당하지 말고.”
“”쳇.””
은하는 쌍둥이들을 무시했다.
무시가 답이었다.
그는 거기에 모여 있던 클랜원들과 대충 잔을 주고받고 일어났다.
☆
소대원들도 어느 정도 챙겼겠다.
은하는 이제 다른 부대 지휘관들을 보러 가기로 했다.
마침 조금 전, 레귤러스클랜에서 은하에게 연락을 주기도 했다.
지휘관들끼리 작전 얘기나 할 겸, 같이 마시고 있다고 그랬던가.
정하양에게 소대를 맡기고.
은하는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위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한창 마시고 있는 듯했다.
은하는 옥상 문을 열고 나갔다.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 판도라 클랜로드! 왔냐?”
“와서 한잔하지.” “…안녕하세요.”
블레이즈 클랜로드 강현철.
그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 은하는 명왕 클랜로드 도완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제니스 클랜로드 지용현.
신라 클랜로드 김유진.
레귤러스 클랜로드 구연수.
템페스트 클랜로드 강예희.
동해 클랜로드 김성민.
삼라 클랜로드 총은주.
이외에도 자리에는 소대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랑 도 있고….
아, 기준 아저씨도 있네.
KK 클랜로드는 안 온 건가.
몇몇 십이좌들도 보였다.
KK클랜로드이자 십이좌이기도 한 황산군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의외였다.
대신 KK클랜에는 칠대호 중에서 한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판도라 클랜로드, 이리로 와. 내가 자리 맡아놨으니까.”
“현철이 옆에 앉아도 되고, 여기 내 옆에도 비어 있으니 여기 앉아도 좋아.”
“네, 그럼 레귤러스 클랜로드 옆에 앉아야죠.”
“쳇.”
“애도 아니고 자리 가지고 그렇게 서운해하면 어떡해요?”
이내 은하는 강현철을 무시하고, 구연수의 옆에 앉았다.
강현철이 툴툴거렸다.
박혜림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진 광경에.
사람들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5년이라는 시간은 은하가 그들과 어울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앨리스그룹의 후원을 받는 레귤러스클랜, 루미너스그룹의 후원을 받는 신라클랜은 은하에게 워낙 호의적이었다.
하나그룹의 후원을 받는 명왕클랜, 동해그룹의 후원을 받는 동해클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술은 뭐예요? 이런 건 보급품으로 지정돼 있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한편 은하는 구연수에게 술을 받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술병이 범상치 않았다.
척 보기에도 비싼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이거? 명왕 클랜로드가 오늘 이날을 위해 가져온 거지.”
“아껴둔 술이다. 계속 묵혀만 두면 마시지 않을 것 같아서 이참에 오늘 가져온 거지.”
“…술 반입은 금지일 텐데요.”
“에이, 판도라 클랜로드도 알면서. 뭘 그렇게 신경 쓰고 그래? 바로 이런 게 전쟁터의 묘미 아니겠어?”
“야, 판도라 클랜로드! 나도 하나 가져왔다! 내 것도 도수가 끝내줘! 그거 마시고 이것도 마셔봐라.”
“허….”
특권이란 이름의 군율 위반.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이 사람들이 플레이어들이 모르게 옥상에서 술을 마시자고 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더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공범자가 되기로 했다.
아리엘한테 미안하네.
사실 미안함도 잠깐이었다.
도완준이 가져왔다는 술을 넘기자, 그윽한 향에 취했다.
“어, 이거 괜찮네요?”
“그렇지?”
꼭 숲속 한복판을 걷는 듯한 기분.
비에 젖은 나무 냄새가 났다.
오크 통 냄새 같은 것.
도수가 세기는 했지만, 꼭 향수를 마신 것 같았다.
은하가 그렇게 평하자, 도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연지가 좋아했던 술이야.” “”””…….””””
그가 나직이 읊조렸다.
대화 소리가 뚝 끊겼다.
전 십이좌 방연지.
그녀는 제1차 의정부 탈환전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녀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들은 말없이 잔을 매만지기만 했다.
“좋은 사람이었지. 명왕 클랜로드 자네한테는 과분한 사람이었어.”
“나도 아니까 놀리지 마라.”
그러다 구연수가 입을 뗐다.
그가 가느다란 눈을 뜨고, 살며시 어깨를 들썩였다.
친구처럼 서슴없이 지내는 사이라 장난스럽게 말할 수 있는 농담.
도완준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구연수를 시작으로, 1명씩 방연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제가 막 십이좌로 선발됐을 때, 연지 언니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신서영 선배님이 괴팍했던 반면에 그 사람은 참 착했었지. 그때 나도 도움 많이 받았어.”
“누구한테든 다정한 사람이었죠. 가끔 저한테 다가와서 밥을 먹자며 권유하기도 했고요.”
박혜림, 강현철, 총은주.
세 사람이 이야기했다.
은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용히 술을 마셨다.
방연지라….
은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름만 알고 있었다.
이전 삶에서는 이탈리아에 감금돼,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
그러다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당시 민심은 크게 뒤집혀버렸으나, 사건은 금세 묻히고 말았다.
다른 소식들이 터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또한 그때 선녀정부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많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항의하는 것이었을 뿐.
거리가 먼 것도 이유였다.
무엇보다 그때는─.
─명왕클랜이 방연지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던 상황이었지.
제2차 의정부 탈환전이 끝나고서, 제2위계 몬스터 매구를 토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기.
그때 도완준이 죽었다.
매구에게 당한 것이다.
그로 인하여 명왕클랜 내부에서는 새로운 클랜로드를 두고 옥신각신 싸움이 일어나고 말았다.
매구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전력에 상당한 피해를 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방연지에게 제대로 신경을 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더라….
모르겠네. 그걸로 끝이었지.
제3세대 플레이어들에게 방연지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빠르게 떠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은하 역시 그녀의 생사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마 불행하게 죽었으리라고.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그런데─.
─방연지의 운명이 바뀌었지.
죽은 건 똑같지만.
이번 삶의 방연지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제1차 의정부 탈환전에서 마나 폭주를 일으켜 등나무가 됐다.
그렇기에 도완준은 이번 탈환전을 반드시 성공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방연지에 대한 복수인 셈이리라.
추억을 회상하던 도완준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그가 은하를 불렀다.
“─그러니 판도라 클랜로드.”
“네, 명왕 클랜로드.”
“연지랑…. 명왕 클랜원들을 죽인 괴시니를 반드시 토벌해다오.” “”””…….””””
“부탁한다.”
도완준이 고개를 숙이며 부탁한다.
은하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저희가 확실하게 토벌하겠습니다.”
“…고맙다.”
“그게 저희 소대 일인걸요.”
은하는 마저 술을 마셨다.
숲속의 향기가 밀려든다.
가 좋아했다는 술.
하지만 은하는 이제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방금 판도라 클랜로드가 마신 게 끝인 건가? 이봐, 명왕 클랜로드. 한 병 더 없어?”
“그것은 연지한테 뿌려줄 거라서. 저기 블레이즈 클랜로드가 가져온 괴상한 고량주나 마시지 그래.”
진하고, 밀도 높은 맛.
도완준의, 복수에 대한 염원이리라.
☆
취할 수는 없다.
지휘관들은 자중하면서 마셨다.
그러면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판도라 클랜로드.”
“네.”
이윽고 강현철이 가져온 술을 모두 비워냈을 때.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거나, 화장실을 간다며 사라졌다.
주로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던 제니스 클랜로드 지용현은 은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더니 대뜸 말한 것이다.
“─이번에 미안하게 됐어.”
“네?”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용현이 사과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자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번에 우리 서브로드 중 하나가 단군일보에서 괜한 말을 해서….”
“아, 그거요?”
이내 은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백련이 언론에 공개되고 나서, 제니스클랜 서브로드가 단군일보에서 은하를 저격한 사건이 있었다.
지용현은 그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때 이미 사과를 받았었는데, 또 사과를 받을 필요는 없죠.”
“그래도 처신은 똑바로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 서브로드는 결국 제명하기로 했다.”
제니스클랜은 선녀를 지키기 위해 설립된 클랜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클랜원들 중에서는 판도라클랜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하백련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단군일보에 제보한 서브로드 역시 그런 유형이었으리라.
하지만 은하는 걱정하지 않았다.
지용현이 지금 그에게 말했듯이, 지용현은 하백련의 뜻을 더 존중했기 때문이다.
은 우직한 사람이야.
선녀가 하는 말을 따르는 검으로서 의지를 가지려고 하지 않아.
회귀 전, 제니스클랜은 지용현이 살아있을 때만 하더라도 하백련의 검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가 아마겟돈에게 당하며, 제니스 클랜로드가 바뀌고 말았다.
갤럭시그룹의 입김이 닿은 사람은 순식간에 제니스클랜을 장악해서는 다른 행보를 보이게 되었다.
아마 이 죽지 않았더라면 제니스클랜이 계속 선녀에게 충성을 맹세했을 것이고─.
─갤럭시그룹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겠지.
그랬으리라고.
은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은하는 이번 삶에서는 이 오래 살아 있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있었다.
지금 그가 서브로드를 제명했다는 발언도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은하는 기꺼이 반겼다.
“고생하셨겠어요. 탈환전이 끝나고 돌아가면 백련이한테 알려줄게요. 그때 백련이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었거든요.”
“그래, 나도 들었다. 그 애한테는 괜히 정든 집을 떠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주렴.”
“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이전 삶과 달리 지용현과 하백련의 관계는 매우 친밀했다.
순전히 은하 때문이었다.
이전 삶에서 은하는 지용현조차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게 위협했다.
그러다 보니 하백련과 그의 접점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 은하는 그가 하백련에게 접근하는 걸 허락했다.
덕분에 지용현은 하백련으로부터 삼촌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었다.
나도 차라리 삼촌이라 불러주지.
그런데 백련이는 왜 계속 나한테만 아저씨라 부르는 거지?
불현듯 생각이 다른 길로 샜다.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하백련.
그녀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어느새 하백련은 남성 클랜원들을 전부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내가 너무 늙어 보이나….
괜히 이거 가지고 서운하네.
의정부 탈환전이 끝나면.
하백련한테 다른 호칭으로 해달라 부탁해야겠다.
하다못해 삼촌 소리라도 듣고 싶은 마음이었다.
은하는 괜히 빈 잔을 홀짝였다.
☆
술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쳇, 야, 삐졌냐? 알았어. 다음에 내가 국밥 한 그릇 사줄게. 그걸로 퉁치는 걸로 하자.”
“…도진 오빠한테는 밥 사주겠다는 말도 하면서 왜 저한테는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거죠?”
“어? 내가 그랬나?”
“지금까지 그쪽이랑 같이 먹으면 밥을 사는 건 맨날 저였거든요?”
“끙…. 좋아. 다음에 순댓국 대자로 사주면 되는 거 아니냐?” “대체 왜 맨날 국밥이에요?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허허….””””
하루종일 날이 선 기분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오늘따라 강현철의 시비조차도 짜증이 났다.
결국 이도진은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정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게 쉽지가 않네….”
습관적으로.
그는 겨우살이를 두드렸다.
애검을 만지며 마음을 추슬렀다.
흥분하지 말자.
이날만을 기다려왔는데 흥분해서 일을 그르쳐서는 되겠어?
이도진은 심호흡을 했다.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제1차 의정부 탈환전에서 참패한 사람들은 이날을 위해 복수의 칼을 갈아왔다.
자신의 동기 강현철도 겉보기에는 태연해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마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고자 다 같이 술을 마시려고 했던 것이리라.
그러니─.
─이번에는 다를 거다.
의정부 너머에 있는 양주.
그곳에 서식하고 있을 군단장.
제3위계 몬스터 이시미.
이도진은 놈을 떠올리며 겨우살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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